漢宋之諸儒 言兵事
하고 策戰略也
에 莫不
而折(衷)[衝]之
하니 則儒而不知兵
이면 非通儒也
라
昔孫武著書十三篇에 凡攻守戰備之要 在於知彼知己知天知地之理라
近閱趙君羲純所撰註釋하니 本諸儒術하고 參以武經하여 辨難舊註之穿鑿하고 折衷群言之同異하며 間附己意하여 發前未發者多하고 迂直岐逕이 井井若航海之分針이라
於書無不讀
하고 讀而悟其眞諦
하여 하여 妙有自得之神
이요 而尤長於
하여 分析古作者微奧
하여 釐爲一家之藏
하니 雖謂之
이라도 未爲侈語也
라
要余訂定
하여 弁之于卷
하니 余以爲
하고 로되 而以余所未嘗學者
로 顧安所質劑於此乎
아
然竊自有得於涉獵中일새 略敍兵家源委하여 以明儒者不得不知하노라
라하니 夫甲冑干櫓之尙忠信禮義
는 是爲用兵之本
이니 讀兵者又不可不知此也
라
지수地水의 상象이 복희伏羲와 문왕文王에게서 시작되었고, 감비甘費의 글이 우왕禹王과 주周나라 때에 가법家法이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오래되었다.
태공太公이 도략韜略을 짓고 오자吳子(吳起)가 병법兵法을 논할 적에 반드시 도덕道德과 인의仁義를 말하였고, 중니仲尼의 문사文事와 무비武備와 맹씨孟氏의 지리地利와 인화人和는 모두 천고千古에 없앨 수 없는 도금韜靲(韜略)이다.
한漢‧송宋의 여러 학자들은 병사兵事를 말하고 전략戰略을 계책할 적에 존조尊俎에서 절충折衝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학자로서 병법兵法을 알지 못하면 통달한 선비가 아니다.
옛날 손무孫武가 병서兵書 13편篇을 지었는데, 공격과 수비, 전투에 대비하는 모든 요점이 적敵을 알고 자기를 알며, 천시天時를 알고 지리地理를 아는 데 있었다.
이른바 ‘적이 오도록 만들고 적에게 끌려가지 않는다.’라는 것과, ‘병력을 나타냄이 지극함은 형체가 없음에 이르는 것이다.’ 등의 말은 모두 우리 유가儒家의 정론正論에서 나왔으니, 네 가지 이로움과 일곱 가지 계산함과 아홉 가지 변함과 다섯 가지 간첩間諜의 비밀스러운 묘리뿐만이 아니다.
장구章句를 나누어 해석함과 뜻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은 제가諸家의 주해註解에 이미 구비되어 있다.
근간에 조군趙君 희순羲純이 지은 주석을 보니, 유학儒學에 근본하고 무경武經을 참작해서 옛 주석의 천착穿鑿함을 변론하고 여러 말의 동이同異를 절충하였으며, 중간에 자기 뜻을 붙여서 예전에 아직 드러내지 못한 뜻을 발명함이 많았고, 우회와 직선, 갈림길과 오솔길이 분명하여 항해航海의 분침分針과 같았다.
조군趙君은 무신武臣의 이름으로 선비의 행실을 하는 자이다.
책을 읽지 않은 것이 없고, 읽으면 그 참된 뜻을 깨달아서 식견이 고매하여 스스로 터득하는 신묘함이 있고, 더더욱 동보同甫의 병법兵法을 논함과 서산西山의 진법陣法을 부연함에 장점이 있어서 옛날 작자作者들의 은미하고 심오한 뜻을 분석하여 한 사람의 장서藏書로 정리하여 만드니, 비록 후세의 자운子雲이라고 평하더라도 지나친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이것을 수정하여 책의 머리글을 써줄 것을 요구하니, 내 생각건대 자유子游의 《시서詩序》가 모씨毛氏의 전의箋義에 취해졌고 강성康成의 예소禮疏가 진씨秦氏의 《통고通考》에 산정刪正되었으나, 나는 일찍이 병서兵書를 배우지 않은 자로서, 돌아보건대 어찌 여기에 대해 질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적이 이 책을 섭렵하는 가운데 얻음이 있었으므로 병가兵家의 원류源流를 간략히 서술하여 선비가 병법兵法을 알지 않으면 안 됨을 밝히는 것이다.
오기吳起가 말하기를 “선비는 충신忠信으로써 갑주甲冑를 삼고 예의禮義로써 방패를 삼는다.” 하였으니, 갑주甲冑와 방패를 사용하면서도 충신忠信과 예의禮義를 숭상함은 이것이 용병用兵하는 근본이 되니, 병서兵書를 읽는 자가 또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