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少時에 得世說新語善本吳中하여 私心已好之하여 每讀에 輒患其易竟이라 又怪是書가 僅自後漢終於晉하여 以爲六朝諸君子에 卽所持論風旨가 寧無一二可稱者아하다
最後에 得何氏語林한대 大抵規摹世說하고 而稍衍之하여 至元末이나 然其事詞錯出하여 不雅馴하니 要以影響而已라
至於世說之所長하여는 或造微於單辭하고 或徵巧於隻行하며 或因美以見風하고 或因刺以通贊하여 往往使人으로 短詠而躍然하고 長思而未罄이어늘 何氏는 盖未之知也라
余治燕趙郡國獄에 小間無事하여 探橐中所藏하니 則二書在焉이라 因稍爲刪定하고 合而見其類하니 盖世說之所去는 不過十之二요 而何氏之所采는 則不過十之三耳라
余居恒謂 宋時經儒先生이 每譏讁淸言致亂하니 而不知晉宋之于江左一也라 驅介胄而經生之乎인댄 則毋乃驅介胄而淸言也와 其又奚擇矣리오
注
李云 “與經生淸言竝稱, 似貶之太過. 王導․溫嶠․謝安皆淸言也, 用之介冑, 何如哉? 吾未見經生而介冑者也.”
내가 젊었을 때 ≪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선본善本을
에서 얻고는 내심 매우 좋아하여, 읽을 때마다 번번이 빨리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였다. 또 이 책이 겨우
후한後漢에서 시작하여
진晉에서 끝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
의 군자 중에 어찌
지론持論이나
풍지風旨 면에서 내세울 만한 한두 사람도 없었겠는가’라고 생각하였다.
왕세정王世貞
나중에 ≪하씨어림何氏語林≫을 얻었는데, 이 책은 대체로 ≪세설신어≫를 모방하였고 시대를 조금 늘려 원대元代 말末까지 다루었으나 일화와 담론이 섞여 나와 전아典雅하고 순정純正하지 못하였으니 요컨대 ≪세설신어≫의 그림자나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세설신어≫의 장점은 한마디 말에서 미묘함이 생기기도 하고 한 구절의 글에서 교묘함이 드러나기도 하며, 칭찬에 의지하여 풍자를 드러내기도 하고 비난에 의지하여 찬사와 통하기도 하여, 종종 사람으로 하여금 짧게 읊어도 놀라게 하며 길게 생각하여도 끝나지 않게 하는데,
는 이러한 것을 알지 못했다.
잠시 일이 없을 때 짐 속을 뒤져보니
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하여
대체로 ≪세설신어≫에서 없앤 것은 10분의 2를 넘지 않고 ≪하씨어림≫에서 채택한 것은 10분의 3을 넘지 않는다.
나는 평소에 늘 송나라 때
들이 매번
청언淸言이 난리를 초래하였다고 비난하나, 〈그것은〉
진晉나라와
송宋나라 때의
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적의〉 군사를 축출하면서
이 되었다면 〈적의〉
과 같은 게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또 어찌 구별한단 말인가.
가정嘉靖 병진년丙辰年(1556) 6월에
낭야琅琊의
이 찬술하다.
注
◦ 이지李贄:경생經生과 청언淸言을 병칭한 것은 너무 지나치게 폄하한 듯하다. 〈진晉나라에서〉 왕도王導․온교溫嶠․사안謝安은 모두 청언淸言을 하였으나 그들을 무장武將에 기용한 것이 어떠하였는가. 나는 〈송宋나라에서〉 경생經生이면서 무장이었던 자를 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