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又得柳柳州
하여 相爲羽翼
이라 故此唱彼和
하니
昌黎之文
은 得諸古
者爲多
하고 而柳州
는 則間出乎
矣
라
其深醇渾雄은 或不如昌黎나 而其勁悍泬寥는 抑亦千年以來曠音也라
再覽鈷鉧潭諸記
하니 하여 若將凌虛御風也已
니 奇矣哉
라
予錄書啓三十三首와 序傳十七首와 記二十八首와 論議辯十四首와 說贊雜著十八首와 碑銘墓碣及誄表狀祭文二十首하여 釐爲十二卷하니라
按柳州平淮雅與鐃歌及五七言詩什은 於諸家中에 尤擅所長이나 予校而錄之者는 特文也라 故不及하니라
창려昌黎 한퇴지韓退之는 그 문장이 8대에 걸쳐 쇠퇴해진 것을 크게 일으켜 세웠고, 또 유유주柳柳州를 얻어 서로 우익이 되었기 때문에 이쪽에서 선창先唱하면 저쪽에서 화답和答하였다.
비유하자면 마치 범이 산골짝에서 포효할 적에 한 번 소리치면 한 번 메아리가 반응하는 것과 같았으니, 성대하였다고 말할 만하다.
창려昌黎의 문장은 옛날 육예六藝 및 맹가孟軻와 양웅揚雄에게서 얻은 것이 많았고, 유유주柳柳州의 경우는 《국어國語》 및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그리고 제가諸家에서 간간이 흘러나왔다.
그 깊고 순박하며 소박하고 중후한 점은 간혹 창려昌黎보다 못하지만 힘차고 활달한 점은 어쩌면 또한 역사적으로 그와 유사한 사례가 없을 것이다.
내가 이전에 허경조許京兆(許孟容)에게 보낸 편지와 소한림蕭翰林(蕭俛)에게 보낸 편지 등을 읽어볼 적에 그 느낌이 사마자장司馬子長(司馬遷)의 〈답임소경서答任少卿書〉와 서로 막상막상인 것 같아, 그만 읽던 책을 덮고 한참 동안 감탄사를 토하고픈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다시 〈고무담기鈷鉧潭記〉 등 여러 기문記文을 열람해보았더니 정신이 원수沅水와 상수湘水 가에서 노니는 듯 아련하여 장차 허공으로 올라가 바람을 타고 돌아다닐 것만 같았으니, 기이한 일이었다.
나는 서書‧계啓 33수, 서序‧전傳 17수, 기記 28수, 논論‧의議‧변辯 14수, 설說‧찬贊‧잡저雜著 18수, 비명碑銘‧묘갈墓碣 및 뇌誄‧표表‧장狀‧제문祭文 20수를 초록하여 12권으로 정리하였다.
살펴보건대, 유주柳州에서 지은 〈헌평회이아표獻平淮夷雅表〉와 〈요가鐃歌〉 및 오칠언시 작품은 여러 작가들 중에서 우수한 고지를 점하고 있으나, 내가 교정하여 채록하는 것은 오직 산문散文이므로 거기까지는 미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