曾子固之才燄
은 雖不如韓退之柳子厚歐陽永叔及蘇氏父子兄弟
나 然其議論
은 必本於
하고 而其
는 必折衷之於古作者之旨
라
近年
에 와 이 始亟稱之
나 然學士間
에 猶疑信者半
이요 而至於膾炙者罕矣
라
予錄其疏箚狀六首와 書十五首와 序三十一首와 記傳二十八首와 論議雜著哀詞七首하노라
然於文苑中
에 當如漢所稱古之
是已
니 學者不可不知
니라
《증문정공문초曾文定公文抄》에 대한 서문[인引]
증자고曾子固(증공曾鞏)의 글재주는 비록 한퇴지韓退之(한유韓愈)‧유자후柳子厚(유종원柳宗元)‧구양영숙歐陽永叔(구양수歐陽脩) 및 소씨蘇氏 삼부자三父子(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만 못하지만, 그 논변은 반드시 육경六經을 근본으로 삼았고, 녹여내고 재단하는 것은 반드시 옛 작가의 뜻에다가 그 기준을 맞췄다.
주회암朱晦菴(주희朱熹)은 일찍이 그의 문장이 유향劉向과 비슷하다고 하였는데, 유향劉向의 문장은 서한西漢에서 가장 우아하니 이것이 이른바 ‘슬기로운 자에게 말할 수 있지 속인俗人에게는 말하기 어렵다.’는 경우이다.
근래에 진강晉江의 왕도사王道思(왕신중王愼中)와 비릉毘陵의 당응덕唐應德(당순지唐順之)이 비로소 그를 매우 칭송하였으나, 학사學士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의심하는 자가 태반이었으므로 〈그의 문장이〉 세상에 회자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나는 소疏‧차箚‧장狀 6편, 서書 15편, 서序 31편, 기記‧전傳 28편, 논論‧의議‧잡저雜著‧애사哀詞 7편을 수록하였다.
아, 증자고曾子固의 문장은 서序‧기記가 가장 훌륭하고, 지명誌銘은 그에 조금 못 미친다.
그러나 문단文壇에서는 분명히 한漢나라 때 칭송을 받았던 옛날의 삼로三老‧좨주祭酒와도 같은 존재이니, 배우는 자들은 이 점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