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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子直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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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料敵者 料敵人强弱虛實之形也
上篇 言圖國하니 知己者也 此篇 言料敵하니 知彼者也
以篇內有料敵二字故 取以名篇하니 凡四章이라
武侯謂吳起曰
今秦脅吾西하고 楚帶吾南하고 趙衝吾北하고 齊臨吾東하고 燕絶吾後하고 韓(拒)[據]吾前하여 六國之兵四守하여 勢甚不便하노니 憂此奈何
原注
魏武侯謂吳起曰 今秦脅吾國之西라하니 이니 伯益之後
有非子者養馬어늘 周孝王 封爲附庸하여 而邑之秦이러니
至襄公하여 能逐犬戎한대 平王始與周西都畿內八百里之地하여 都咸陽하니라
大國而居其西 曰脅이라하니 謂迫脅於西 勢之逼也
楚帶吾國之南이라하니 이니 熊繹之後 都於郢하니 在魏之南하여 如衣帶之相連接也
趙衝吾國之北이라하니 趙籍 本晉大夫 與韓魏 共分晉地하여 爲諸侯하고 하니
與魏最近이라 曰衝이니 言爲魏之衝要也
都臨淄하니 亦大國이라 曰臨이니 言勢之大如居上而臨下也
燕絶吾國之後라하니 姬姓이니 召公之裔 都於하니
絶吾後者 謂斷絶其後하여 退無所往也
韓據吾國之前이라하니 韓亦晉大夫韓虔之後 都宜陽이라
據於前者 謂據抗於前하여 進無所之也
六國之兵 四面與吾相守하여 其勢甚有不便者하니 憂此將爲之奈何
魏都安邑이러니 至惠王하여 遷都大梁하니 宜陽 卽弘農也
韓故都亦曰宜陽이니 城在洛州福昌縣東하니라
起對曰
夫安國家之道 先戒爲寶하나니 今君以戒하시니 禍其遠矣리이다
原注
吳起對武侯曰
夫安定國家之道 先戒謹而預防之 爲國之寶也
今君以能戒謹預防하시니 禍患其遠矣
臣請論六國之俗호리이다
夫齊 陳重而不堅하고 陳散而自鬪하고 陳整而不久하고 陳守而不走하고 三晉 陳治而不用하니이다
原注
臣請評論六國之風俗호리라
夫齊國之陳 重而不甚堅者 以其後輕也 秦國之陳 人心散而欲自爲戰者 以其不讓也 楚國之陳 齊整而不能久者 以其數戰而民力疲也 燕國之陳 能守而不能走者 以其性而心愼也 三晉之陳 整治而不能用者 以其無死志也
三晉 兼韓趙而言이니 與魏 共爲三晉也
夫齊性剛하고 其國富하여 君臣驕奢而簡於細民하고 其政寬而祿不均하여 一陳兩心하여 前重後輕이라
重而不堅하니
原注
夫齊人 心性剛忿하여 如云이니 是其性之剛也
其國富饒하니 以其通工商之業하고 便魚鹽之利也
君臣驕傲奢侈하여 而簡慢於細民하고 其政令寬緩而俸祿不均平이라
一陳而兩其心 言其心之不一也 前軍重而後軍輕 言其力之不齊也 心不一하고 力不齊 雖重而不堅固也
擊此之道 必三分之하여 獵其左右하고 脅而從之 其陳可壞리이다
原注
擊此之道 必三分吾軍하여 獵齊人之左右하여 以勢脅而從之 其陳 可得而壞矣
秦性强하고 其地險하고 其政嚴하고 其賞罰信하고 其人不讓하여 皆有鬪心이라 散而自戰하니
原注
秦人性强하니 如所謂悍然有之氣 是也
左崤函하고 右隴蜀하니 地豈不險乎
步過六尺者有罰하니 政豈不嚴乎
하니 賞罰豈不信乎
其人不相遜讓하여 皆有爭鬪之心이라
陳散而各欲自爲戰也
擊此之道 必先示之以利하고 而引去之 士貪於得而離其將이어든 乘乖獵散하고 設伏投機하면 其將可取리이다
原注
擊此之道 必先示以小利하고 而引去之 士旣貪於所得하여 而離其將帥어든 我則乘其乖錯하여 獵其散亂하고 設伏以待之라가 發機以勝之 其將 可得而取之
楚性弱하고 其地廣하고 其政騷하고 其民疲
整而不久하니
原注
楚人性弱 以南方風氣柔弱故也
其地廣하고 其政騷擾하고 其民疲困이라 陳雖整治 而不能持久也
擊此之道 襲亂其屯하여 先奪其氣하고 輕進速退하여 弊而勞之 勿與爭戰이면 其軍可敗리이다
原注
擊此之道 襲亂其兵屯하여 先奪其三軍之氣하고 使吾軍輕進而速退하여 困弊而勞苦之 勿與彼爭戰이니之意
其軍 可得而敗也
燕性慤하고 其民愼하고 好勇義하고 寡詐謀
守而不走하니
原注
燕人之性 慤實하고 其民謹愼이라
好愛勇義事觀之하면 可見이요 寡少詐謀事觀之하면 可見이라
陳守而不走也
擊此之道 觸而迫之하고 陵而遠之하고 馳而後之하면 則上疑而下懼 謹我車騎하여 必避之路하리니 其將可虜리이다
原注
擊此之道 或觸而迫之 是也 或陵而遠之 是也
或馳而後之 謂掩之於後也
如此 則在上者疑惑하고 在下者恐懼 又當謹我車騎하여 必避之路하리니 其將 可得而虜矣
三晉者 中國也
其性和하고 其政平이나 其民疲於戰하고 習於兵하여 輕其將하고 薄其祿하여 士無死志
治而不用하니
原注
三晉 地居中國하여 其人性協和하고 其國政均平하나 其民疲困於戰鬪하고 士習於兵而輕其將이라하면 可知
薄其祿 以君之祿爲薄하여 無致死之志
陳治而不爲用也
韓趙皆晉地 其事同이라 總以三晉言之하니라
擊此之道 阻陳而壓之하여 衆來則拒之하고 去則追之하여 以倦其師 此其勢也니이다
原注
擊此之道 阻其陳而壓之하여 衆來則絶而拒之하고 兵去則追而襲之하여 以勞倦其師 擊韓趙二國之勢也
夫韓趙魏三國 如輔唇齒之相依也하니 豈可自相攻擊而引之倦哉
吳子但略言其勢하고 不言其虜將敗軍之形也
然則一軍之中 必有虎賁之士하여 力輕하고 足輕戎馬하며 搴旗取將 必有能者리니 若此之等 選而別之하고 愛而貴之하면 是謂軍命이니이다
原注
然則一軍萬人之中 必有虎賁之士하여 其力輕於扛鼎하니 言力之多하여 不以鼎爲重也 其足輕於戎馬하니 言足之疾
過於馬也 搴旗取將 必有能者리니 若此之人 簡選而貌別之하고 親愛而貴重之하면 是謂三軍之司命이라
其有工用五兵하고 材力健疾하여 志在呑敵者 必加其爵列이니 可以決勝이니이다
原注
其善用五兵하고 材技勇力 輕健剽疾하여 志在呑滅敵人이어든 必加其爵祿之等列하여 用之而進이면 可以決勝이라
五兵 謂戈, 盾, 戟, 夷矛, 酋矛也
平頭戟也 干也 小枝向上者也 夷矛 長二丈四尺이요 酋矛 長二丈이니 皆鉤也
或改列爲則하니 然則尉繚書中爵列之等 又何改乎
厚其父母妻子하고 勸賞畏罰이니
堅陣之士 可與持久 能審料此하면 可以擊倍리이다
武侯曰 善하다
原注
厚待其父母妻子하고 勸之以重賞하고 畏之以重罰이니 此二等 皆堅陣之人이라 可與之持久 爲將者能審料此 可以擊人之倍
武侯稱曰 善하다
原注
○ 愚按 此章前段 言料敵하고 後段 言選士하니 料敵者 知彼也 選士者 知己也
然必先選士하여 養己之勢力然後 料敵하여 有可乘之隙而取勝也니라
吳子曰
凡料敵 有不卜而與之戰者八이니 一曰疾風大寒 早興寤遷하고 剖冰濟水하여 不憚艱難이요
原注
吳子言
二曰 盛夏炎熱 晏興無間하고 行驅飢渴하여 務以取遠이요
原注
次二曰 盛夏之時 天氣炎熱이어늘 起之又晩하여 無有暇隙之處하며 行走驅馳하여 飢而又渴하여 務取遠路而與人戰이라
三曰 師旣淹久 糧食無有하여 百姓怨怒하고 妖祥호되 上不能止
原注
次三曰 師旣淹延日久 糧食皆無所有하여 百姓怨而且怒하고 妖祥之事 頻數而起호되 在上之人 不能止息이라
四曰 軍資旣竭하고 薪蒭旣寡하며 天多陰雨하여 欲掠無所
原注
次四曰 軍之資財旣竭盡하고 薪蒭旣寡少하며 天時又多陰雨하여 欲往獵取 無有去所
五曰 徒衆不多하고 水地不利하며 人馬疾疫하고 四隣不至
原注
次五曰 徒衆又不多하고 水地不便利하며 人馬皆生疾疫하고 四隣之救者 不至
六曰 道遠日暮 士衆勞懼하여 倦而未食하고 解甲而息이요
原注
次六曰 道路遙遠하고 日已昏暮 士衆勞苦畏懼하여 倦怠而未得飮食하고 解甲休息於路
七曰 將薄吏輕하고 士卒不固하여 三軍하고 師徒無助
原注
次七曰 將不持重하고 吏又輕薄하고 士卒又不堅固하여 三軍之衆 頻數驚擾하고 師徒又無助援이라
八曰 陳而未定하고 舍而未畢하며 行阪涉險 半隱半出이라
原注
次八曰 行陳未能安定하고 舍次未能完畢하며 行山阪하고 涉險阻 半隱於內하고 半出於外
諸如此者 擊之勿疑니라
原注
遇敵有如此者 宜速擊之 勿疑惑也
有不占而避之者六이니
原注
有不必占問而避者 凡六事
一曰 土地廣大하고 人民富衆이요
原注
初一曰 土地廣大 則財必盛이요 人民富衆이면 則兵必强이라
二曰 上愛其下하여 惠施流布
原注
次二曰 在上者親愛其下하여 恩惠施與流行宣布於民이라
三曰 賞信刑察하며 發必得時
原注
次三曰 賞有功者務信하고 刑有罪者務察하니
察者 明也
發動 必得其時 言不違時也
四曰 陳功居列하며 任賢使能이요
原注
次四曰 戰陳有功者 居於班列之中하며 所任者惟賢이요 所使者惟能이라
五曰 師徒之衆하고 兵甲之精이요
原注
次五曰 師徒衆多則力强이요 兵甲精銳則利戰이라
六曰 四隣之助 大國之援이니
原注
次六曰 有四隣之助하고 得大國之援이라
凡此不如敵人이면 避之勿疑
原注
凡此數者 不如敵人이면 當避之 無疑惑也
所謂見可而進하고 知難而退也니라
原注
○ 愚按 此章之旨 吳子亦擧其大槩者言之
兵家之勢不常하여 亦有變弱而爲强하고 轉禍而爲福者
하고 句踐收禍敗之餘하여 而卒滅吳하며 하고
恃富盛而滅이라
要在臨時而制宜하고 相機而行事하니 不可執一也니라
武侯問曰
吾欲觀敵之外하여 以知其內하고 察其進하여 以知其止하여 以定勝負하노니 可得聞乎
原注
武侯問吳起曰
我欲觀敵之外하여 以知其在內之虛實하고 察其前進之勢하여 以知其所止之形하여 以定彼我之勝負하노니 其道 可得而聞乎
起對曰
敵人之來 蕩蕩無慮하고 旌旗煩亂하며 人馬 一可擊十하여 必使無措니이다
原注
吳起對曰
敵人之來 蕩蕩然無他謀慮 蕩蕩 輕忽之貌
旌旗煩擾紊亂하고 人馬頻數顧望이면 此爲愚將이니 吾以一倍之少 可擊十倍之多하여 必使之倉皇無措也
諸侯未會하고 君臣未和하며 溝壘未成하고 禁令未施하여 三軍洶洶하여 欲前不能하고 欲去不敢이면 以半擊倍하여 百戰不殆니이다
原注
隣國諸侯 未曾會合하고 君臣上下 未曾協和하며 溝塹壁壘 未得成就하고 法禁號令 未曾施設하여 三軍之衆 洶洶然驚懼하여 欲前進而不能하고 欲後退而不敢이면 以吾一半之少 可以擊彼加倍之多 雖百戰而不危殆也
武侯問敵必可擊之道한대 起對曰
用兵 必須審敵虛實하여 而趨其危니이다
原注
武侯問敵必可擊之道한대 吳起對曰
凡用兵之法 必須審察敵人之虛實하여 而趨其危急之隙이라야 乃可勝也
若不審虛이면 恐彼實而示之虛하고 虛而示之實하여 反爲所勝耳
敵人 遠來新至하여 行列未定이면 可擊이요 旣食 未設備 可擊이요 奔走 可擊이요 勤勞 可擊이요 未得地利 可擊이요 失時不從이면 可擊이요 涉長道하여 後行未息이면 可擊이요 涉水半渡 可擊이요 險道狹路 可擊이요 旌旗亂動이면 可擊이요移動이면 可擊이요 將離士卒이면 可擊이요 心怖 可擊이니 凡若此者 選銳衝之하고 分兵繼之하여 急擊勿疑니이다
原注
因敵人遠來新至하여 行列部伍未定이면 則可擊이요 旣食而不設備禦之計 則可擊이요 士卒奔走하여 氣必不屬이면 則可擊이요 士卒勤勞하여 力必不全이면 則可擊이요 不得地利之便者 則可擊이라
凡擧事動衆 必順其時 若失時不順者 則可擊이라
涉長道하여 後行未息이면 則前後不接이라 可擊이요 涉大水 候其半渡 行列未定이라 可擊이라 險道狹路 或衝其中하고 或掩其後하면 敵難以相救 可擊이요
旌旗亂動이면 是無節制也 可擊이요 陳數移動이면 人心不定也 可擊이요 將離士卒이면 則上下相隔하여 令不一也 可擊이요 衆心恐怖 可擊이라
凡若此等 簡選精銳하여 左右衝之하고 分吾兵衆하여 前後繼之하여 急速擊之 勿致疑也


原注
요적料敵이란 적의 강약强弱허실虛實의 형세를 헤아리는 것이다.
에서는 국가를 도모하는 것을 말하였으니 이는 자기를 아는 것이요, 이 에서는 적을 헤아리는 것을 말하였으니 상대방을 아는 것이다.
안에 ‘요적料敵’ 두 글자가 있으므로 취하여 을 이름하였으니, 모두 4이다.
무후武侯오기吳起에게 물었다.
“지금 나라가 우리의 서쪽을 위협하고, 나라가 우리의 남쪽을 띠처럼 둘러 있고, 나라가 우리의 북쪽을 요충지로 삼고, 나라가 우리의 동쪽에 군림하고, 나라가 우리의 배후를 차단하고, 나라가 우리의 전면을 가로막고 있어서, 육국六國의 군대가 사방으로 지켜 형세가 매우 불편하니, 이를 근심하나 어찌해야 하겠는가?”
原注
무후武侯오기吳起에게 나라가 나라의 서쪽을 위협한다고 말하였으니, 나라는 이니 백익伯益의 후손이다.
비자非子라는 자가 말을 잘 길렀는데, 효왕孝王이 그를 부용국附庸國에 봉하여 땅에 도읍하게 하였다.
양공襄公에 이르러 견융犬戎을 축출하자, 평왕平王이 처음으로 나라 서도西都기내畿內 800리의 땅을 주어서 함양咸陽에 도읍하게 하였다.
나라는 강대국으로 위나라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위협한다’라고 하였으니, 서쪽에서 위협받음을 말한 것이니, 위태로운 형세가 절박하다고 말한 것과 같다.
나라가 우리나라의 남쪽을 띠처럼 둘러 있다.’ 하였으니, 나라는 이니, 웅역熊繹의 후손으로 땅에 도읍하였는데, 나라의 남쪽에 있어서 옷과 띠가 서로 이어져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라는 우리나라의 북쪽을 요충지로 삼고 있다.’ 하였으니, 조적趙籍은 본래 나라 대부大夫였는데, 한씨韓氏위씨魏氏와 함께 나라의 땅을 분할하여 제후가 되고 한단邯鄲에 도읍하였다.
나라와 가장 가깝기 때문에 이라 말하였으니, 나라가 나라의 요충지가 됨을 말한 것이다.
나라는 우리나라의 동쪽에 군림한다.’ 하였으니, 나라는 본래 강씨姜氏이니 태공太公의 후손이었는데, 뒤에 전씨田氏에게 찬탈을 당하였다.
임치臨淄에 도읍하였는데 나라 또한 강대국이므로 이라 말하였으니, 형세가 커서 마치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래를 굽어보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나라는 우리나라의 배후를 차단한다.’ 하였으니, 나라는 희씨姬氏이니 소공召公의 후손으로 에 도읍하였다.
우리의 배후를 차단한다는 것은 그 뒤쪽을 차단하여 후퇴하면 갈 곳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나라가 우리나라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하였으니, 나라 또한 나라의 대부大夫 한건韓虔의 후손으로 의양宜陽에 도읍하였다.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앞을 점거하고 가로막아서 전진함에 갈 곳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육국六國의 군대가 사면으로 우리나라와 서로 지키고 있어서 그 형세가 매우 불편하니, 이것을 근심하나 장차 어찌해야 하겠는가?
나라는 안읍安邑에 도읍하였는데 혜왕惠王 때에 이르러서 대량大梁으로 도읍을 옮기니, 의양宜陽은 바로 홍농弘農이다.
나라의 옛 도읍 또한 의양宜陽이었으니, 낙주洛州복창현福昌縣 동쪽에 있었다.
오기吳起가 대답하였다.
“국가를 편안하게 하는 방도는 먼저 경계하는 것이 보배가 되는데, 지금 임금께서 경계하고 계시니, 가 멀어질 것입니다.
原注
오기吳起무후武侯에게 대답하였다.
국가를 안정시키는 방도는 먼저 경계하고 삼가서 미리 방비하는 것이 나라의 보배가 된다.
지금 임금이 능히 경계하고 삼가서 미리 방비하고 있으니, 와 환란이 멀어질 것이다.
육국六國의 풍속을 한번 논해보겠습니다.
나라는 진영이 중후重厚하나 견고하지 못하고, 나라는 진영이 흩어져서 각자 싸우고, 나라는 진영이 정돈되었으나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나라는 진영이 지키기만 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삼진三晉은 진영이 잘 다스려졌으나 병력을 활용하지 못합니다.
原注
한번 육국六國의 풍속을 논해 보겠다.
나라의 진영이 중후하나 그리 견고하지 못한 것은 뒤가 가볍기 때문이요, 나라의 진영이 인심이 흩어져서 각자 싸우려 하는 것은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요, 나라의 진영이 가지런하고 정돈되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은 자주 싸워서 백성들의 힘이 피곤하기 때문이요, 나라의 진영이 지키기는 잘하나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성질이 질박하여 마음이 신중하기 때문이요, 삼진三晉의 진영이 정돈되고 다스려졌으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을 바쳐 싸울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삼진三晉나라와 나라를 겸하여 말하였으니, 나라와 함께 삼진三晉이라고 하였다.
나라 사람들은 성질이 강하고 나라가 부유해서 임금과 신하가 교만하고 사치하여 백성들을 소홀히 하며, 그 정사政事가 너그러우나 녹봉祿俸이 공평하지 못하여, 한 진영陣營이 두 마음을 품어서 앞은 중후하고 뒤는 가볍습니다.
그러므로 중후하나 견고하지 못합니다.
原注
나라 사람들은 심성이 강하고 분노를 잘 일으켜, 예컨대 ‘우리가 우선 이들을 제거하고 아침밥을 먹는다.’라고 말한 것과 같으니, 이는 그 성질이 강한 것이다.
그 나라가 부유하니, 공업工業상업商業을 통하고 물고기와 소금의 이익을 편리하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군주와 신하가 교만하고 사치하여 아래 백성들에게 소홀히 하며, 그 정사가 너그럽고 느슨하나 녹봉이 공평하지 못하다.
한 진영에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그 마음이 통일되지 못함을 말한 것이요, 앞의 군대는 중후하나 뒤의 군대가 가볍다는 것은 그 힘이 고르지 못한 것이니, 마음이 통일되지 못하고 힘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비록 중후하나 견고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을 공격하는 방도는, 반드시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서 그 왼쪽과 오른쪽을 공격하고 위협하여 쫓으면, 그 진영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原注
이들을 공격하는 방도는, 반드시 우리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서 나라 사람의 왼쪽과 오른쪽을 공격해서 기세로써 위협하여 쫓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그 진영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라 사람들은 성질이 강하고 지형이 험하고 정사가 엄격하고 상벌賞罰이 분명하고 사람들이 겸양하지 않아서, 모두가 싸울 마음을 갖고 있으므로 흩어져서 각자 싸웁니다.
原注
나라 사람들은 성질이 강하니, 예컨대 이른바 ‘사나워서 팔주八州를 차지하여 동렬同列들에게 조회받을 기상이 있다.’라는 것이 이것이다.
왼쪽에는 효산崤山함곡관函谷關이 있고 오른쪽에는 이 있으니, 지형이 어찌 험하지 않겠는가?
1가 6을 넘는 자는 벌이 있었으니, 정사가 어찌 엄격하지 않겠는가?
나무를 옮겨놓는데 신의信義를 세우고 재를 버리는데 을 세웠으니, 상벌賞罰이 어찌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 사람들은 서로 겸손하고 사양하지 않아서 모두 다투고 싸울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진영이 흩어져서 각자 싸우고자 하는 것이다.
나라를 공격하는 방도는 반드시 먼저 이익을 보여주고 군대를 이끌고 떠나는 것이니, 나라 병사들이 얻음을 탐하여 그 장수를 이탈하거든, 그 어긋난 틈을 타서 흩어지는 자들을 공격하고 매복을 설치하여 기회를 틈타면, 그 장수를 잡을 수 있습니다.
原注
이들을 공격하는 방도는 반드시 먼저 작은 이익을 보여주고 군대를 이끌고 떠나는 것이니, 저들의 병사가 얻을 것을 탐하여 그 장수를 이탈하거든, 우리가 그 어긋난 틈을 타서 흩어지고 혼란한 병사들을 공격하고 매복을 설치하여 기다리다가 기회를 틈타 싸워 승리하면, 적의 장수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나라 사람들은 성질이 나약하고, 영토가 광활하고 정사가 어지럽고 백성들이 피로합니다.
그러므로 정돈되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原注
나라 사람들이 성질이 나약한 것은 남방南方의 풍기가 유약하기 때문이다.
영토는 광활하고 정사는 어지럽고 백성들은 피곤하므로, 진영이 비록 질서정연하나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을 공격하는 방도는, 주둔한 적의 군대를 습격하여 어지럽혀서 먼저 적의 기세를 빼앗고, 재빠르게 전진하고 신속하게 후퇴하여 적을 지치고 수고롭게 할 것이요, 저들과 다투고 싸우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그 군대를 패퇴시킬 수 있습니다.
原注
이들을 공격하는 방도는, 적의 주둔한 군대를 습격하여 어지럽혀서 먼저 삼군三軍의 기세를 빼앗고, 우리 군대로 하여금 재빠르게 전진하고 신속하게 후퇴하게 하여 적을 곤궁하고 수고롭게 할 것이요, 저들과 다투고 싸우지 말아야 하니, 이는 바로 나라가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서 번갈아 출동하여 나라 군대를 피곤하게 만든 뜻이다.
그러므로 그 군대를 패퇴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나라 사람들은 성질이 질박하고 백성들이 신중하고 용맹과 의리를 좋아하며 속임수가 적습니다.
그러므로 지키기만 하고 나아가지 못합니다.
原注
나라 사람들의 성질은 질박하고 성실하며 백성들의 마음이 신중하다.
용맹과 의리를 사랑하고 좋아함은 형가荊軻의 일을 보면 알 수 있고, 속임수가 적음은 기겁騎劫의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진영을 잘 지키기만 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을 공격하는 방도는, 막아 압박하고 능멸하여 멀리 추격하고 달려가서 뒤를 습격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윗사람은 의심하고 아랫사람은 두려워하며 우리의 전거戰車기마병騎馬兵을 조심하여 반드시 길을 피할 것이니, 적의 장수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原注
이들을 공격하는 방도는 혹은 〈좌우에서〉 막아서 압박하는 것이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른바 ‘왼쪽과 오른쪽에서 공격한다.’는 것이 이것이요, 혹은 능멸하여 멀리 추격하는 것이니, 예컨대 이른바 ‘천하고 용맹한 자로 하여금 시험하되 패주하는 것을 힘쓰고 얻는 것을 힘쓰지 말게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혹은 달려가서 뒤를 습격하는 것이니, 이는 뒤에서 엄습함을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윗자리에 있는 자는 의혹하고 아랫자리에 있는 자는 두려워할 것이며 또 마땅히 우리의 전차와 기마병을 조심하여 반드시 길을 피할 것이니, 적의 장수를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삼진三晉중국中國입니다.
이들은 성질이 온화하고 정사가 공평하나 백성들이 전투에 지쳐 있으며, 병사들이 전쟁에 익숙하여 자기의 장수를 가벼이 여기고 녹봉을 하찮게 여겨서, 병사들이 결사적으로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영이 질서정연하나 활용하지 못합니다.
原注
삼진三晉은 땅이 중국에 위치하여 사람들의 성질이 화목하고 나라의 정사가 공평하나 백성들이 전투에 지쳐있으며, 병사들이 병난에 익숙하여 자기의 장수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니, 순임보荀林父순언荀偃의 일에서 보면 알 수 있다.
녹봉을 하찮게 여긴다는 것은 군주의 녹봉을 하찮게 여겨서 사력을 다해 싸울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영이 질서정연하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가 모두 나라의 땅이니, 그 일이 같기 때문에 총괄하여 삼진三晉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들을 공격하는 방도는, 적의 진영을 가로막아 압박해서 군대가 오면 막아내고 물러나면 추격하여 그 군대를 지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그 형세입니다.
原注
이들을 공격하는 방도는, 적의 진영을 가로막아 압박해서 군대가 오면 차단하여 막아내고 병사들이 물러나면 추격하여 습격해서 그 군대를 지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나라와 나라 두 나라를 공격하는 형세이다.
세 나라는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 입술과 이가 서로 의지하는 것과 같이 관계가 밀접하니, 어찌 스스로 서로 공격하고 타인을 이끌어서 지치게 하겠는가?
이는 오자吳子가 그 형세만 간략히 말하였고, 적장을 사로잡고 적군을 패퇴시키는 형세를 말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면 1 가운데에 반드시 호분虎賁용사勇士가 있어서, 힘은 큰 가마솥을 드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발은 군마軍馬보다 빠르며, 적의 깃발을 뽑아 오고 적장을 사로잡음에 반드시 능한 자가 있을 것이니, 이러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특별히 대우하고 친애하여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일러 삼군三軍사명司命이라 하는 것입니다.
原注
이렇게 하면 1의 만 명 가운데에 반드시 호분虎賁과 같은 용맹한 병사가 있어서, 그 힘이 큰 가마솥을 드는 것을 가볍게 여길 것이니, 이는 힘이 세서 큰 가마솥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 것이요, 그 발이 군마軍馬보다 빠를 것이니, 이는 발이 말보다 빠름을 말한 것이다.
적의 깃발을 뽑아 오고 적장을 사로잡음에 반드시 능한 자가 있을 것이니, 이와 같은 사람들을 선발하여 특별히 예우해서 친애하여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일러 삼군三軍사명司命이라 하는 것이다.
그중에 다섯 가지 병기를 잘 사용하고 재주와 힘이 뛰어나고 몸이 빠르면서 뜻이 적을 병탄함에 있는 자는 반드시 그 작위와 반열을 높여주어야 하니, 이렇게 하면 승리를 결정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原注
그중에 다섯 가지 병기兵器를 잘 활용하고 재주와 기예와 용맹과 힘이 굳세고 몸이 가볍고 빠르면서 뜻이 적을 병탄하고 섬멸하는 데 있으면, 반드시 그 작위爵位녹봉祿俸의 등급을 높여서 등용하여 나오게 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승리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섯 가지 병기는 창[戈]과 방패[盾]와 갈라진 창[戟]과 긴 창[夷矛]과 짧은 창[酋矛]을 이른다.
는 끝이 평평한 창이고 은 방패이고 은 작은 가지가 위로 향한 것이며, 이모夷矛는 길이가 2장 4척이고 추모酋矛는 길이가 2장이니, 이모夷矛추모酋矛는 모두 갈고리가 있는 창이다.
혹자는 ‘’자를 ‘’자로 고쳐 읽어야 한다고 하니, 그렇다면 《울료자尉繚子》의 글 가운데에 작렬爵列의 등급을 또 어떻게 고칠 것인가?
그들의 부모父母처자妻子들을 후대하고 또 으로 권장하고 로 두렵게 합니다.
이들은 견고한 진영의 병사들이라 함께 오랫동안 버텨 싸울 수 있으니, 능히 이것을 잘 살펴 헤아린다면 갑절이나 많은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무후武侯는 “좋은 말이다.”라고 칭찬하였다.
原注
그들의 부모와 처자들을 후대하고 많은 으로써 권면하고 무거운 형벌로써 두렵게 하는 것이니, 이 두 등급의 병사는 모두 진영을 견고히 하는 사람이므로 오랫동안 함께 지구전持久戰을 펼칠 수 있으니, 장수 된 자가 이들을 잘 헤아려 살핀다면 갑절이나 많은 적의 군대를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무후武侯오기吳起의 말을 듣고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原注
○ 내가 살펴보건대, 이 의 앞 단락에서는 적을 헤아리는 것을 말하였고 뒤 단락에서는 병사를 선발하는 것을 말하였으니, 적을 헤아리는 것은 적을 아는 것이요, 병사를 선발하는 것은 자기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먼저 병사를 선발하여 자기의 세력을 기른 뒤에 적을 헤아려서 적의 결점을 틈타 공격하여야, 승리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오자吳子가 말하였다.
“무릇 적을 헤아릴 적에 점치지 않고 적과 싸워야 할 경우가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적이 빠른 바람과 큰 추위에 일찍 일어나고 잠을 깨자마자 옮겨가며 얼음을 깨고 물을 건너면서도, 어려움을 꺼리지 않는 경우이다.
原注
오자吳子가 말하였다.
무릇 적을 헤아리는 방도는, 굳이 점을 쳐서 묻지 않고도 적과 싸우는 경우가 모두 여덟 가지 있으니, 첫 번째는, 적이 빠른 바람을 만나고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 혹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혹은 처음 잠에서 깨자마자 이동하며 얼음을 깨고 물을 건너면서도, 그 어려움과 수고로움을 두려워하고 꺼리지 않는 경우이다.
두 번째는, 한여름 무더위에 늦게 일어나서 한가로운 틈이 없으며 행군하고 말을 달려 굶주리고 목마른데도 먼 길을 가는 것을 힘쓰는 경우이다.
原注
다음 두 번째는, 한여름에 날씨가 몹시 무더운 데다가 적의 병사들이 늦게 일어나서 한가로운 틈이 없으며, 먼 길을 행군하고 말을 달려서 굶주리고 목마른데도 먼 길을 달려가 남과 싸우기를 힘쓰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군대가 이미 오랫동안 지체해서 식량이 고갈되어 백성들이 원망하고 분노하며 요망스러운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도 윗사람이 제지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原注
다음 세 번째는, 병사들이 이미 오랜 기간을 지체하여 식량이 모두 고갈되어 백성들이 원망하고 또 분노하며 요망스러운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도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능히 그치게 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네 번째는, 군대의 물자가 고갈되고 땔감과 꼴이 부족하며, 날씨가 음산하고 비 오는 날이 많아서 노략질하려고 해도 할 곳이 없는 경우이다.
原注
다음 네 번째는, 군대의 물자와 재물이 이미 고갈되고 땔감과 꼴이 부족하며, 날씨는 또 음산하고 비 오는 날이 많아서 노략질하러 가려 해도 갈 곳이 없는 경우이다.
다섯 번째는, 적의 병력이 많지 않고 물과 지형이 편리하지 못하며, 사람과 말이 전염병에 걸리고 사방 이웃의 구원이 이르지 않는 경우이다.
原注
다음 다섯 번째는, 적의 병력이 또한 많지 않고 물과 지형이 편리하지 못하며, 사람과 말에게 모두 전염병이 발생하고 사방 이웃의 구원하는 자들이 이르지 않는 경우이다.
여섯 번째는, 길이 멀고 날이 저물었는데 적군들이 수고롭고 두려워하여 지쳐 있는데도 밥을 먹지 못하고 갑옷을 풀어놓고 휴식하는 경우이다.
原注
다음 여섯 번째는, 행군해 온 길이 멀고 해가 이미 저물었는데, 병사들이 힘들고 두려워서 지치고 피곤한데도 음식을 먹지 못하고 갑옷을 풀어놓고 길에서 휴식하는 경우이다.
일곱 번째는, 적의 장수가 경박하고 관리들이 경솔하며 병사들이 견고하지 못해서 삼군三軍이 자주 놀라고 병사들이 도와주지 않는 경우이다.
原注
다음 일곱 번째는, 적의 장수가 신중하지 못하고 관리들도 경박하며 병사들도 견고하지 못해서 삼군三軍의 군중들이 자주 놀라 소요하고 병사들이 또한 도와주지 않는 경우이다.
여덟 번째는, 적군의 대오가 안정되지 못하고 주둔할 곳이 갖춰지지 못하였으며, 산비탈을 행군하고 험한 곳을 건너갈 때에 반은 숨고 반은 노출된 경우이다.
原注
다음 여덟 번째는, 적군의 대오가 안정되지 못하고 주둔할 곳이 완전히 갖춰지지 못하였으며, 산비탈을 행군하고 험하고 막힌 곳을 건너갈 때에 반은 안에 숨고 반은 밖으로 노출된 경우이다.
모든 이와 같은 경우는 의심하지 말고 공격해야 한다.
原注
적을 만났을 때 이와 같은 것이 있으면 마땅히 신속하게 공격하고 의혹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점치지 않고 피할 경우가 여섯 가지 있으니,
原注
굳이 점쳐 묻지 않고 피할 경우가 모두 여섯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적의 영토가 광대하고 인민人民이 많은 경우이다.
原注
첫 번째는, 영토가 광대하면 재물이 반드시 풍성할 것이고, 인민이 많으면 병력이 반드시 강할 것이다.
두 번째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여 은혜의 베풂이 두루 펴지는 경우이다.
原注
다음 두 번째는, 위에 있는 자가 아랫사람을 친애하여, 은혜가 백성들에게 두루 펼쳐져 베풀어지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을 분명히 내리고 형벌刑罰을 잘 살피며, 출동함을 반드시 제때에 하는 경우이다.
原注
다음 세 번째는,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줄 적에는 신의信義(약속) 지키기를 힘쓰고, 죄가 있는 자를 형벌할 적에는 살피기를 힘쓰는 것이다.
잘 살핀다는 것은 분명히 하는 것이다.
군대를 출동할 적에 반드시 제때에 한다는 것은 때를 어기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네 번째는, 전쟁에 공이 있는 자가 높은 반열에 있으며, 어진 자에게 임무를 맡기고 능한 자를 부리는 경우이다.
原注
다음 네 번째는, 교전交戰하고 대진對陣함에 공이 있는 자가 높은 반열에 있으며, 오직 어진 자에게 임무를 맡기고 오직 재능이 있는 자를 부리는 경우이다.
다섯 번째는, 군대가 많고 병기와 갑옷이 정예로운 경우이다.
原注
다음 다섯 번째는, 군대가 많아서 힘이 강하고, 병기와 갑옷이 정예로워서 싸움에 유리한 경우이다.
여섯 번째는, 사방 이웃의 도움이 있고 강대국의 지원이 있는 경우이다.
原注
다음 여섯 번째는, 사방 이웃의 도움이 있고 강대국의 원조를 얻는 경우이다.
무릇 이것이 적보다 못하면, 의심하지 말고 적을 피해야 하니,
原注
무릇 이 몇 가지가 적보다 못하면, 마땅히 피하고 의혹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가능함을 발견하면 전진하고 어려움을 알면 후퇴한다.’는 것이다.”
原注
이른바 ‘가능함을 발견하면 나아가 싸우고 그 어려움을 알면 후퇴한다.’는 것이다.
原注
○ 내가 살펴보건대, 이 의 뜻 또한 오자吳子가 그 대략을 들어 말했을 뿐이다.
병가兵家의 형세는 일정하지 않아서, 약한 것을 강하게 변화시키고 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태왕太王은 오랑캐의 강성함을 피하여 마침내 나라를 일으켰고, 월왕越王 구천句踐와 패망을 당한 뒤에 병사들을 거두어서 마침내 나라를 멸망시켰으며, 부견苻堅은 강대함을 믿다가 멸망하였고, 외효隗囂는 부유하고 성대함을 믿다가 멸망하였다.
요컨대 때에 임하여 마땅한 방도를 만들고 기회를 엿보아 일을 운용함에 달려있으니, 한 가지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무후武侯가 물었다.
“내가 적의 밖을 보고서 안을 알고 적의 전진함을 살펴 그 멈춤을 알아 승부를 결정하고자 하니, 이에 대해 들을 수 있겠는가?”
原注
무후武侯오기吳起에게 물었다.
내가 적의 밖을 보고서 그 안의 허실虛實을 알고, 전진하는 형세를 살펴서 적이 멈출 바의 형체를 알아서 적과 우리의 승부를 결정짓고자 하니, 그 방법을 들을 수 있겠는가?
오기吳起가 대답하였다.
들이 쳐들어올 적에 경솔하여 사려가 없고 깃발이 번거롭고 혼란하며 사람과 말이 자주 돌아보면, 적은 병력으로 열 배나 많은 적의 군대를 공격할 수 있어서 반드시 적들로 하여금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만들 수 있습니다.
原注
오기吳起가 대답하였다.
적이 쳐들어올 적에 탕탕蕩蕩하여 다른 지모와 사려가 없으니, 탕탕蕩蕩은 경솔한 모양이다.
깃발이 번거롭고 문란하며 사람과 말이 자주 돌아다보면 이는 어리석은 장수이니, 우리가 1의 적은 병력으로 열 배나 많은 적의 군대를 공격할 수 있어서, 반드시 적으로 하여금 경황이 없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제후諸侯들이 모이지 않고 적국의 군주와 신하가 화합하지 못하며 해자와 보루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금령禁令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해서, 삼군三軍이 흉흉하여 전진하려고 해도 전진하지 못하고 후퇴하려고 해도 후퇴하지 못하면, 절반의 군대로 갑절이나 되는 적을 공격할 수 있어서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습니다.”
原注
이웃 나라의 제후諸侯들이 아직 모이지 않고 적국의 군신君臣상하上下가 화합하지 못하며 해자와 보루가 완성되지 못하고 법금法禁호령號令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해서, 삼군三軍의 무리들이 흉흉하여 놀라고 두려워해서 전진하려고 해도 전진하지 못하고 후퇴하려고 해도 후퇴하지 못하면, 절반밖에 안 되는 우리의 적은 군대로 갑절이나 많은 적의 군대를 공격할 수 있으니, 비록 백 번 싸우더라도 위태롭지 않은 것이다.
무후武侯가 적을 반드시 공격할 수 있는 방도를 묻자, 오기吳起가 대답하였다.
“군대를 운용할 적에는, 반드시 적의 허실虛實을 잘 살펴서 그 위태로운 곳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原注
무후武侯가 적을 반드시 격퇴시킬 수 있는 방도를 묻자, 오기吳起가 대답하였다.
무릇 용병하는 방법은 반드시 적의 허실을 자세히 살펴서 그 위급한 틈으로 달려가야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만약 적의 허실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면, 저들이 견실하면서도 허약한 것처럼 내보이고 허약하면서도 견실한 것처럼 꾸며서 도리어 승리를 취할까 두렵다.
적이 먼 길을 달려와서 막 도착하여 항렬行列이 아직 안정되지 못했으면 공격할 수 있고, 이미 밥을 먹었으나 수비하는 대비책을 갖추지 못했으면 공격할 수 있고, 병사들이 분주하면 공격할 수 있고, 피로에 지쳐 있으면 공격할 수 있고, 지형의 편리함을 얻지 못했으면 공격할 수 있고, 때를 잃고 따르지 않으면 공격할 수 있고, 먼 길을 달려와 뒤의 항렬이 아직 쉬지 못했으면 공격할 수 있고, 물을 건널 적에 절반쯤 건넜으면 공격할 수 있고, 길이 험하고 좁으면 공격할 수 있고, 깃발이 어지럽게 움직이면 공격할 수 있고, 진영이 자주 이동하면 공격할 수 있고, 적의 장수가 병사들과 떨어져 있으면 공격할 수 있고, 적이 공포심을 품고 있으면 공격할 수 있으니, 이와 같은 경우에는 정예병을 선발하여 충돌하고 병력을 나누어 계속하여, 의심하지 말고 급히 공격해야 합니다.”
原注
적들이 먼 길을 달려와서 막 도착하여 항렬行列대오隊伍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으면 공격할 수 있고, 이미 밥을 먹었으나 수비하는 대비책을 갖추지 못했으면 공격할 수 있고, 병사들이 분주하여 사기士氣가 만일 이어지지 못했으면 공격할 수 있고, 병사들이 피로에 지쳐 힘이 만일 온전하지 못하면 공격할 수 있고, 지형의 편리함을 얻지 못했으면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병사들을 동원할 때에는 반드시 그때를 따라야 하는데, 만약 때를 놓치고 따르지 않으면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먼 길을 달려와서 뒤의 항렬이 아직 쉬지 못했으면 앞뒤가 이어지지 못하므로 공격할 수 있고, 큰 물을 건널 적에 적군이 절반쯤 건너기를 기다리면 항렬이 안정되지 못하므로 공격할 수 있고, 험하고 협소한 길에서 혹은 그 중앙을 습격하고 혹은 그 뒤를 엄습하면 적이 구원하기 어려우므로 공격할 수 있다.
깃발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면 이는 통제統制를 못하는 것이므로 공격할 수 있고, 진영陣營을 자주 이동하면 인심人心이 안정되지 못하므로 공격할 수 있고, 적의 장수가 병사들과 떨어져 있으면 상하上下가 서로 막혀서 명령命令이 통일되지 못하므로 공격할 수 있고, 군중의 마음이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무릇 이와 같은 경우에는 정예병을 선발하여 좌우로 충돌하고 병력을 나누어서 앞뒤로 계속하면서, 의심하지 말고 신속히 공격해야 하는 것이다.


역주
역주1 : 영
역주2 (喜)[善] : 저본의 ‘喜’는 明本에 의거하여 ‘善’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猶言威] : 저본에 3字 공란이 있으나,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猶言威’를 보충하였다.
역주4 : 미
역주5 都邯鄲 : 한단
역주6 齊本姓姜……後爲田氏所簒 : 田氏는 陳完의 후손으로 대대로 齊나라에서 卿이 되어 國政을 담당하였는데, 뒤에 姓을 田으로 바꾸었다. B.C. 387년 田和가 齊나라를 차지하고는, 齊 康公을 바닷가로 옮겨 한 城邑의 수입을 먹게 하였다. 이로써 戰國時代의 齊나라는 田씨가 차지하게 되었다.
역주7 (可)[齊] : 저본의 ‘可’는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齊’로 바로잡았다.
역주8 : 계
역주9 : 각
역주10 吾姑翦此而朝食 : 《春秋左氏傳》 成公 2년에 보이는 내용으로, 당시 晉나라의 郤克이 제후들과 연합하여 齊나라를 공격하자, 齊 頃公이 출전하여 한 말이다.
역주11 招八州而朝同列 : 八州는 中國의 천하를 九州라 하는바, 당시 秦나라가 차지하고 있던 雍州를 제외한 여덟 개의 州로, 兗州‧冀州‧靑州‧徐州‧豫州‧梁州‧揚州‧荊州를 가리키며, 同列은 같은 반열로 당시 楚‧燕‧齊‧韓‧魏‧趙의 여섯 나라는 秦나라와 함께 모두 周나라의 제후국들이었다. 賈誼의 〈過秦論〉에 “秦나라가 하찮은 땅을 가지고 萬乘天子의 권력을 차지하여 八州를 점령하고 同列들에게 조회를 받은 것이 백여 년이었다.[秦以區區之地 致萬乘之權 招八州而朝同列 百有餘年矣]”라고 보인다.
招는 翹와 같은바, ‘들다’, ‘모두 차지하다’의 뜻이다.
역주12 左崤函……立法於棄灰 : 崤函은 崤山과 函谷關으로 천연의 요새이고 隴蜀은 隴西와 蜀으로 지금의 甘肅省과 四川省 일대인데 역시 지형이 험하였다.
秦나라는 法令이 엄하여 步幅이 6尺이 넘는 자에게는 벌을 내렸다 한다. 戰國時代 초기 衛나라의 公孫鞅은 秦 孝公에게 발탁되어 부국강병을 위해 대대적인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다. 이때 公孫鞅은 새로운 법령을 제정하였으나 백성들이 믿지 않을까 우려하여, 세 길쯤 되는 나무를 도성의 시장 南門에 세워놓고, 백성들에게 懸賞하기를 “이것을 北門으로 옮겨놓는 자에게는 金 10근을 주겠다.” 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괴이하게 생각하여 아무도 옮겨놓지 않았다. 公孫鞅은 다시 이것을 “北門으로 옮겨놓는 자에게는 金 50근을 주겠다.” 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반신반의하며 이것을 옮겨놓자, 金 50근을 즉석에서 주고 새로운 법령을 공포하였다. 그리하여 이 법령을 시행한 지 10년 만에 秦나라는 강대국이 되었다. 孝公이 公孫鞅에게 商於의 땅을 떼어주어 商君으로 봉하였으므로, 公孫鞅은 商鞅으로도 불렸다. 《史記 권60 商君列傳》
蘇軾의 《東坡志林》 〈趙高李斯〉에 “商鞅은 나무를 옮겨놓는 데에서 信을 세우고, 재를 버리는 데에서 法을 세웠다.[商鞅立信於徙木 立威於棄灰]”라고 보이는데, 일설에는 옛날 거름의 일종이었던 재를 길바닥에 버리면 商鞅이 墨刑에 처하였다 하고, 일설에는 잿가루를 함부로 버릴 경우 어린 망아지가 이 재를 뒤집어쓰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금한 것이라 한다.
역주13 吳爲三軍 迭出而疲楚 : 《春秋左氏傳》 昭公 30년에 吳王 闔閭가 伍員에게 楚나라를 공격할 계책을 물으니, 伍員은 대답하기를 “楚나라는 執政大臣이 많고 뜻이 서로 맞지 않아 患難을 책임지려 하지 않으니, 우리가 세 부대를 만들어 저들을 수고롭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한 부대가 쳐들어가면 저들은 반드시 모든 군대를 다 출동시킬 것이니, 저들이 출동하면 우리 부대는 돌아왔다가 저들이 돌아가면 또다시 한 부대를 출동시키면 楚나라는 반드시 도로에서 피폐해질 것입니다. 자주 이렇게 하여 저들을 피폐하게 하고 여러 방면으로 오판하게 해서 피폐해진 뒤에 우리의 三軍을 모두 출동하여 계속 싸우게 하면 반드시 크게 승리할 것입니다.” 하였다. 闔閭가 그의 말을 따르니, 楚나라가 마침내 피폐해져 결국 吳나라에 대패하였다.
역주14 荊軻 : 戰國時代의 刺客으로 衛나라 사람인데, 衛나라에서는 慶卿, 燕나라에서는 荊卿이라고 불렸다. 燕나라 太子 丹이 일찍이 趙나라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秦나라의 왕자인 嬴政과 서로 친하게 지냈는데, 뒤에 嬴政이 秦나라로 돌아가 王이 되니, 이가 바로 始皇帝이다. 始皇帝가 王이 되어 太子 丹을 홀대하자, 太子 丹은 이에 원한을 품고 荊軻를 秦나라에 보내 始皇帝를 살해하게 하였다. 그러나 荊軻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죽임을 당했으며, 燕나라도 곧 秦나라에게 멸망하였다. 《史記 권86 刺客列傳》
역주15 騎劫 : 戰國時代 燕나라의 장수이다. 燕나라의 樂毅가 齊나라를 공격하여 5년 만에 齊나라의 70여 개의 城邑을 함락하였는데, 오직 莒와 卽墨만이 항복하지 않고 있었다. 樂毅는 이들 城邑을 무력으로 점령하지 않고 仁義를 베풀며 항복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 燕 昭王이 죽고 아들 惠王이 즉위하였는데, 惠王은 太子로 있을 때부터 樂毅를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즉위한 다음 樂毅를 의심하였다. 齊나라 장군 田單은 이러한 내용을 알고 燕나라에 소문을 퍼뜨리기를 “樂毅는 스스로 齊王이 되고자 하여 힘을 다해 齊나라를 공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齊나라 사람들은 樂毅 대신 다른 장수가 부임해 올까 두려워한다.” 하였다. 惠王은 이 말을 듣고 樂毅 대신 騎劫을 장수로 삼았는데, 騎劫은 齊나라의 속임수에 넘어가 대패하여, 자신은 죽고 齊나라에게서 빼앗았던 70여 개의 城邑을 모두 잃었다. 《史記 권80 樂毅列傳》
역주16 春秋傳所謂左右角之 : 《春秋左氏傳》 宣公 12년에 “晉나라 사람이 추격하여 좌우에서 공격한다.[晉人逐之 左右角之]” 하였는데, 杜預의 註에 “角은 양쪽으로 벌려 옆에서 협공하는 것이다.[張兩角 從旁夾攻之]” 하였다.
역주17 所謂令賤而勇者……無務於得 : 이 내용은 본서 第四 〈論將〉에 보인다.
역주18 荀林父荀偃之事 : 모두 晉나라의 大夫로, 荀林父는 中行桓子라고도 칭하며 荀偃은 中行偃 또는 中行獻子라고도 칭하였는바, 荀林父는 《春秋左氏傳》 僖公‧文公‧宣公 때에 보이고, 荀偃은 成公‧襄公 때에 보인다.
역주19 : 차
역주20 : 강
역주21 遭遇迅疾之風……不畏憚其艱難勞苦者 : 《兵學指南演義》 〈營陣正彀 2 長短相濟篇〉에는 “때에 따르고 형세를 헤아려서 적을 상대하여 임기응변하는 것은 진실로 훌륭한 장수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말하면서 이 대목을 인용 예시하고 있다.
역주22 : 삭
역주23 : 삭
역주24 所謂見可而進 知難而退也 :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宣公 12년에 “승리의 가능성을 발견하면 전진하고 어려움을 알면 후퇴하는 것이 軍의 좋은 정사이다.[見可而進 知難而退 軍之善政也]”라고 보인다.
역주25 太王避狄人之强 而卒興周 : 太王은 周나라의 古公亶父로 王季의 아버지이고 文王의 할아버지이며 武王의 증조인데, 武王이 천하를 통일하고 太王으로 추존하였다. 狄人은 獯鬻으로 匈奴族이다. 太王은 원래 邠(지금의 甘肅省) 지역에 거주하였으나 훈육이 계속 공격해 오자, 나라를 岐周로 옮기고 周나라라고 이름하였는데, 증손인 武王 때에 周왕조를 세웠다. 《孟子 公孫丑 上》
역주26 苻堅恃强大而亡 : 苻堅은 五胡十六國 당시 前秦의 군주로, 자국의 강대함을 믿고 東晉을 공격하였다가 謝玄에게 대패하여 결국 멸망하였다.
역주27 隗囂(외효)恃富盛而滅 : 隗囂는 後漢 초기 隴右 지역을 점령하고는, 부유함을 믿고 光武帝 劉秀를 배반하였다가, 光武帝의 장수 馬援의 토벌을 받고 패망하였다.
역주28 隗囂 : 외효
역주29 : 삭
역주30 [實] : 저본에 누락되었으나, 《吳子》 본문을 참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1 : 삭

오자직해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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