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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略直解

삼략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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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略
중략中略
無言而化流四海
삼황三皇은 말씀이 없이도 교화敎化사해四海에 흘러 퍼졌다.
天下無所歸功하니라
그러므로 천하가 을 돌릴 곳이 없었던 것이다.
原注
夫上古之世 三皇爲君하여 無言而化流四海
상고上古의 세대에는 삼황三皇이 군주가 되어서 말씀이 없이도 교화敎化사해四海에 흘러 퍼졌다.
天下之人 無所歸功이라
그러므로 천하의 사람들이 을 돌릴 곳이 없었던 것이다.
三皇者 此時 方開하여 大朴未散하여 其民易治
삼황三皇복희伏羲신농神農헌원軒轅이니, 이때에는 풍기風氣가 막 열려서 큰 질박함이 아직 흩어지지 않아 백성을 다스리기가 쉬웠다.
人君 無用多言而化自行也
그러므로 인군人君이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교화가 저절로 행해진 것이다.
帝者 體天하여 有言有令하여 而天下太平하고 君臣讓功하여 四海化行호되 百姓 不知其所以然이라
는 하늘을 체행體行하고 땅을 본받아서 말씀이 있고 명령이 있어서 천하가 태평太平하고, 군신君臣을 서로 사양하여 사해에 교화가 행해졌으나 백성들은 그러한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使臣 하고 美而無害하니라
그러므로 신하를 부릴 적에 공이 있는 이를 예우하거나 상 주지 않고도 아름답고 해로움이 없었던 것이다.
原注
帝者 體天之道하고 法地之理하여 有言有令하여 施於兆民하여 而致天下太平하고
는 하늘의 도를 체행하고 땅의 이치를 본받아서 말씀이 있고 명령이 있어서 억조 백성에게 시행하여 천하가 태평함을 이룩하고,
하여 而敎化行乎四海호되 百姓亦不知其所以然하니
군신君臣이 서로 자신의 공로를 사양하여 교화가 사해에 행해졌으나 백성들은 그 소이연所以然을 알지 못하였으니,
이른바 ‘그 백성들이 호호皞皞하여 누가 시키는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使臣 不待禮賞有功이로되 盡美而無害하니라
그러므로 신하를 부릴 적에 공이 있는 이를 예우하거나 상 주지 않아도 극진히 아름답고 해로움이 없었던 것이다.
五帝 少昊, 顓頊, 高辛, 唐堯, 虞舜也
오제五帝이니 소호少昊전욱顓頊고신高辛(帝嚳)‧당요唐堯우순虞舜이다.
言令讓功之事 載在하니 皆可考焉이라
말씀과 명령과 을 사양한 일은 전적典籍에 기재되어 있으니, 모두 상고할 수 있다.
出於口者也 施於竹帛者也
말씀은 입에서 나온 것이요, 명령은 죽백竹帛에 베풀어진 것이다.
王者 制人以道하여 하고 設矩備衰하여 四海會同하여 王職不廢하나니
왕자王者는 사람을 로써 제재하여 마음을 낮추고 뜻을 굴복시키고, 법도를 만들어 쇠할 때에 대비해서 사해四海제후諸侯가 회동하여 왕자의 직책이 무너지지 않았다.
雖甲兵之備라도 而無鬪戰之患하여 君無疑於臣하고 臣無疑於主하여 國定主安하고 臣以義退하니 亦能美而無害하니라
비록 갑옷과 병기를 구비하더라도 전투하는 근심이 없어서, 군주는 신하를 의심하지 않고 신하는 군주를 의심하지 않아서 나라가 안정되고 군주가 편안하며 신하가 의리로써 물러났으니, 또한 능히 아름답고 해로움이 없었던 것이다.
原注
王者 制人以道하니 謂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之道
왕자王者는 사람을 로써 제재하니,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의 도리를 이른다.
制者 制爲禮節等級하여 使上下不亂이니 如此 則能降人之心하고 服人之志
라는 것은 예절禮節등급等級을 제정하여 상하上下가 어지럽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능히 사람의 마음을 낮추고 사람의 뜻을 굴복시킬 수 있다.
又設立規矩法度하여 以備衰世하여 使諸侯 皆來會同하여 而王職不廢也
규구規矩법도法度를 설립하여 쇠한 세상을 대비해서 사해四海제후諸侯들로 하여금 모두 회동會同하러 오게 하여 왕자의 직책을 무너지지 않게 하였다.
法度之器 所以爲方者也
’는 표준의 기물이니 네모난 것을 만드는 것이다.
衆見曰會 曰同이라
여럿이 뵙는 것을 ‘會’라 하고, 천하의 제후가 모두 모여 성대히 뵙는 것을 ‘同’이라 한다.
雖甲兵備具 而無鬪戰之患하여 爲君者無疑於臣하고 爲臣者無疑於君하여 國家人主 皆安定하고 而臣告老하여 以義而退하니 亦能盡美而無害
비록 갑옷과 병기가 구비되었으나 전투할 근심이 없어서 군주 된 자가 신하를 의심하지 않고 신하 된 자가 군주를 의심하지 않아서, 국가와 군주가 모두 안정되고 신하가 고로告老하고 치사致仕하여 로써 물러가니, 또한 능히 극진히 아름다워 해로움이 없었다.
三王이니 夏禹, 商湯, 周之文武也
삼왕三王이니, 우왕禹王, 탕왕湯王, 문왕文王무왕武王이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 의심하는 바가 없었던 것은, 예컨대 우왕禹王백익伯益에 있어서와, 탕왕湯王이윤伊尹에 있어서와, 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소공召公태공太公에 있어서 마음이 같고 덕이 한결같았으니, 어찌 의심하는 바가 있었겠는가.
霸者 制士以權하며 結士以信하며 使士以賞하니 信衰則士疏하고 賞虧則士不用命하니라
패자霸者는 선비를 권도權道로 제재하며 선비를 신의信義로 맺으며 선비를 으로 부리니, 신의가 쇠하면 선비가 소원해지고 상이 없으면 선비가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原注
霸者 制士用權道하며 結士用信實하며 使士用賞賜하니 若上之信衰 則士亦疏하고 上之賞虧 則士亦不肯用命이라
패자霸者는 선비를 제재할 적에 권도權道를 사용하며 선비를 취할 적에 신실信實함을 사용하며 선비를 부릴 적에 을 하사하는 방법을 사용하였으니, 만약 윗사람의 신실함이 쇠하면 선비 또한 소원해지고 윗사람의 상이 없으면 선비 또한 명령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
若以太公之時論之하면 爲是 若以黃石公之時言之하면之類 爲是
패자霸者는, 만약 태공太公의 때를 가지고 논한다면 나라의 곤오昆吾, 나라의 대팽大彭시위豕韋 등이 이것이요, 만약 황석공黃石公의 때를 가지고 말한다면 환공桓公 문공文公 등이 이것이다.
軍勢曰 出軍行師 將在自專이니 進退 內御하면 則功難成이라하니라
군세軍勢》에 이르기를 “군대를 출동하고 군대를 운행함에는 장수가 마음대로 수행함을 중시하니,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궁중에서 제재하면 을 이루기 어렵다.” 하였다.
原注
軍勢 論兵家之形勢也 其書 有曰 難得而成矣라하니라
군세軍勢》는 병가兵家의 형세를 논한 책이니, 이 책에 이르기를 “무릇 군대를 출동하고 군대를 운행함에 장수 된 자가 스스로 그 임무를 마음대로 수행함을 중시하니, 만약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군주가 안에서 제재하면 공훈功勳을 이루기 어렵다.” 하였다.
軍勢曰 使智使勇하며 使貪使愚라하니
군세軍勢》에 이르기를 “지혜로운 선비를 부리고 용맹한 선비를 부리며, 탐욕스러운 사람을 부리고 우매한 사람을 부린다.” 하였다.
智者 樂立其功하고 勇者 好行其志하고 貪者 邀趨其利하고 愚者 不顧其死하나니 因其至情而用之 此軍之微權也라하니라
지혜로운 자는 공을 세우는 것을 즐거워하고, 용감한 자는 자기의 뜻을 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탐하는 자는 그 이익을 위해 달려감을 좋아하고, 우매한 자는 죽음을 돌아보지 않으니, 지극한 에 따라 사용하는 것은 군대의 은미한 권도權道이다.
原注
軍勢有曰 爲主將者 當使有智謀之士하며 使有勇敢之士하며 使貪財之人하며 使愚昧之人이라하니
군세軍勢》에 이르기를 “주장主將이 된 자는 마땅히 지모智謀가 있는 선비를 부리고 용맹勇猛이 있는 선비를 부리고 재물을 탐하는 사람을 부리고 우매한 사람을 부려야 한다.” 하였다.
有智謀之士 喜樂建立其功하고 有勇敢之士 好愛行其所志하고 貪財之人 專務邀趨貨利하고 愚昧之人 進戰不顧其死하나니 能因其至情而用之 此行軍之微權也
지모가 있는 선비는 자기의 공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용맹이 있는 선비는 자기의 뜻한 바를 행하기를 좋아하고, 재물을 탐하는 사람은 오로지 재화와 이익에 달려가기를 힘쓰고, 우매한 사람은 나가 싸울 적에 자기의 죽음을 돌아보지 않으니, 능히 그 지극한 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은 군대를 운용하는 미묘한 권도[微權]이다.
微權 權之微妙者也
미권微權’은 권도權度 중의 미묘한 것이다.
軍勢曰 無使辯士談說敵美 爲其惑衆이요 無使仁者主財 爲其多施而附於下라하니라
군세軍勢》에 이르기를 “변사辯士로 하여금 적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못하게 함은 사람들을 미혹시키기 때문이요, 인자仁慈한 자로 하여금 재물을 주관하게 하지 않는 것은 많이 베풀어서 아랫사람을 따르게 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原注
軍勢有曰 無使辯給之士 談說敵國之美 爲其惑亂於衆이요 無使 主掌財用 爲其多惠施而親附於下라하니라
군세軍勢》에 이르기를 “구변口辯이 좋은 선비로 하여금 적국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못하게 함은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어지럽히기 때문이요, 인자한 자로 하여금 재물을 주관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은혜를 많이 베풀어서 친히 아랫사람들을 따르게 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軍勢曰 禁하여 不得爲吏士卜問軍之吉凶이라하니라
군세軍勢》에 이르기를 “무당巫堂축원祝願하는 사람을 금지하여 관리와 병사로 하여금 군대의 길흉吉凶을 점쳐 묻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하였다.
原注
軍勢有曰 禁止巫祝之人하여 不得與吏士卜問軍中之吉凶이라하니 亦恐其惑衆也
군세軍勢》에 이르기를 “무당과 축원하는 사람을 금지하여 관리와 군사들로 하여금 군중軍中길흉吉凶을 점쳐 묻게 해서는 안 된다.” 하였으니, 이 또한 사람들을 미혹시킬까 두려워해서이다.
軍勢曰 使義士 不以財라하니
군세軍勢》에 이르기를 “의로운 선비를 부릴 적에 재물로써 하지 않는다.” 하였다.
그러므로 의로운 자는 불인不仁한 자를 위하여 죽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어두운 군주를 위하여 도모하지 않는 것이다.
原注
軍勢有曰 使有義之士 當以禮 不以財라하니
군세軍勢》에 이르기를 “의리가 있는 선비를 부릴 적에 마땅히 로써 해야 하고 재물로써 해서는 안 된다.” 하였다.
有義之士 不爲不仁者效死 言不仁者 不能使人以禮하니 雖有財 義士亦不爲之死
그러므로 의리가 있는 선비는 불인不仁한 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지 않으니, 불인不仁한 자는 남을 로써 부리지 못하니, 비록 재물이 있더라도 로운 선비는 그를 위하여 죽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之士 不爲昏闇之主謀하니 言闇主 不能使人以禮하니 雖有財 智士亦不與之謀也
지혜가 있는 선비는 어두운 군주를 위하여 도모하지 않으니, 어두운 군주는 사람을 로써 부리지 못하니, 비록 재물이 있더라도 지혜로운 선비는 그와 함께 도모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主不可以無德이니 無德則臣叛하고 不可以無威 無威則하나니라
군주는 이 없어서는 안 되니 이 없으면 신하가 배반하고, 위엄威嚴이 없어서는 안 되니 위엄이 없으면 권세를 잃는다.
原注
人主治國 不可以無德이니 無德則臣下皆離叛하고 臨民 不可以無威 無威則失人主之權이라
군주가 나라를 다스릴 적에 이 없어서는 안 되니 이 없으면 신하들이 모두 이반離反하고, 백성에게 임할 적에 위엄이 없어서는 안 되니 위엄이 없으면 군주의 권세를 잃는다.
行道而有得於心 謂之德이요 有威而可畏 謂之威
를 행하여 마음에 얻음이 있는 것을 이라 하고, 위엄이 있어서 두려워할 만 한 것을 라 한다.
德以附之하고 威以臨之하나니 無德無威 則無以治國而君臨民矣
으로써 따르게 하고 위엄으로써 군림하니, 이 없고 위엄이 없으면 나라를 다스려서 억조億兆 백성에게 군림할 수가 없는 것이다.
臣不可以無德이니 無德則無以事君이요 不可以無威 無威則國弱하고 威多則身蹶하나니라
신하는 이 없어서는 안 되니 이 없으면 군주君主를 섬길 수 없고, 위엄威嚴이 없어서는 안 되니 위엄이 없으면 나라가 약해지고, 위엄이 많으면 몸이 쓰러진다.
原注
臣不可以無德이니 無德則無以事奉人君이요 臣不可以無威 無威則國勢衰弱이라
신하는 덕이 없어서는 안 되니 덕이 없으면 군주를 섬겨 받들 수가 없고, 신하는 위엄이 없어서는 안 되니 위엄이 없으면 국가의 권세가 쇠약해진다.
夫人臣之威 當行於敵國이요 施於士衆이니 則國勢盛强이어니와
신하의 위엄은 마땅히 적국에서 행해지고 병사들에게 베풀어져야 하니, 이렇게 되면 나라의 형세가 성하고 강해지지만, 만약 위엄이 많아 군주를 두렵게 하면 몸이 도리어 쓰러지게 된다.
聖王御世 觀盛衰하고 得失하여 而爲之制
그러므로 성왕聖王이 세상을 어거할(다스릴) 때에는 성쇠盛衰를 관찰하고 득실得失을 헤아려서 법제를 만드는 것이다.
三師 天子 六師 世亂이면 則叛逆生하고 王澤竭이면 則盟誓하여 相誅伐하나니라
이 때문에 제후諸侯는 2이고 방백方伯은 3이고 천자天子는 6이니, 세상이 어지러우면 반역이 생기고, 왕자王者의 은택이 고갈되면 맹세하여 서로 주벌誅伐하는 것이다.
原注
聖王御世 觀望氣化之盛衰하고 量度人事之得失하여 而爲之法制
그러므로 성왕聖王이 세상을 다스릴 적에 기화氣化의 성세를 관망하고 인사人事의 득실을 헤아려 법제法制를 만들었다.
諸侯之國 二師 二師 二軍也 方伯之國 三師 三師 三軍也 天子之國 六師 六師 六軍也
제후의 나라는 2였으니 2는 2이요, 방백의 나라는 3였으니 3는 3이요, 천자의 나라는 6였으니 6는 6이다.
之義同이요 非五旅爲師 萬二千五百人耳
여기의 ‘師’자는 ‘6를 동원하여 제후국의 군주를 바꿔놓는다.’는 뜻과 같고, ‘5라 한다.’는 가 아니니, 바로 12,500명이다.
世亂 是無聖王在上이니 則叛逆之人生하고 王澤竭 是御世之道衰 則諸侯하여 以相征伐이라
‘세상이 어지럽다.’는 것은 성왕聖王이 윗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니, 이렇게 되면 반역하는 사람이 나오고, ‘왕자의 은택이 고갈되었다.’는 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방도가 쇠한 것이니, 이렇게 되면 제후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맹세하여 서로 정벌하게 된다.
德同勢敵하여 無以相傾이어든 乃攬英雄之心하여 與衆同好 然後 加之以權變이라
이 같고 세력이 비등하여 서로 기울게 할 수가 없으면 이에 영웅의 마음을 거두어 잡아서 사람들과 좋아함과 싫어함을 함께하게 해야 하니, 그런 뒤에야 권변權變을 가할 수 있다.
非計策이면 無以決嫌定疑 非譎奇 無以破姦息寇 非陰計 無以成功이니라
그러므로 계책이 아니면 혐의스러움을 결정할 수가 없고, 속임수와 기이한 계책이 아니면 간사함을 깨뜨려 적의 침략을 그치게 할 수 없고, 은밀한 계책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原注
德與之同하고 勢與之敵하여 無得以相傾이어든 乃延攬英雄之心하여 然後 加之以之術이라
이 서로 같고 권세가 서로 비등하여 서로 기울게 할 수 없으면 이에 영웅의 마음을 널리 거두어 잡아서 병사들과 좋아함을 함께하고 싫어함을 함께하게 해야 하니, 그런 뒤에 권변權變의 술수를 가할 수 있다.
非籌策이면 無以決嫌而定疑 是也
그러므로 계책이 아니면 혐의를 결정할 수가 없으니, 예컨대 설공薛公영포英布의 계책을 헤아린 것과 우근于謹소역蕭繹의 계책을 헤아린 것이 이것이다.
非譎奇 無以破姦而息寇 譎奇 謂謀之譎詐奇異者 是也
속임수와 기이한 계책이 아니면 간사함을 깨뜨려 적의 침략을 그치게 할 수가 없으니, 속임수와 기이한 계책이란 계책의 속임수와 기이한 것을 이르니, 예컨대 진평陳平이 여섯 번 기이한 계책을 낸 따위가 이것이다.
非陰密之計 無以成就事功이니 陰計 謂謀之秘密者 機事不密則害成이라
은밀한 계책이 아니면 공을 성취할 수가 없으니, 은밀한 계책이란 계책 중에 비밀스러운 것을 이르는바, 기밀의 일이 비밀스럽지 않으면 가 이루어진다.
陰計可以成功也
그러므로 은밀한 계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聖人 體天하고 賢人 法地하고 智者 師古하나니라
성인聖人은 하늘을 체행體行하고, 현인賢人은 땅을 본받으며, 지혜로운 자는 옛것을 본받는다.
原注
上古 聖人 體天而行하니 天道 無爲而成化하고 聖人 無爲而成治
상고시대上古時代성인聖人은 하늘을 체행體行하였으니, 하늘의 작위作爲함이 없이 교화를 이루고, 성인은 작위함이 없이도 다스림을 이룬다.
賢人 法地而行하니 地道有爲라야 方成生長之功이요 賢人亦有爲라야 方成安民之治 若春不種이면 地何以生이며 夏不耘이면 地何以長이리오
현인賢人은 땅을 본받아 행하니, 땅의 도는 작위함이 있어야 비로소 생장하는 공을 이룰 수 있고, 현인賢人 또한 작위함이 있어야 비로소 백성을 편안히 하는 다스림을 이룰 수 있으니, 만약 봄에 파종播種하지 않으면 땅이 어떻게 낳게 하며, 여름에 김매지 않으면 땅이 어떻게 곡식을 자라게 하겠는가.
是以 必待有爲而成功也
이 때문에 반드시 작위함이 있어야 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賢人 非聖人比也 安能以無爲而成治哉리오
현인賢人성인聖人에 견줄 바가 아니니, 어찌 작위함이 없이 다스림을 이룰 수 있겠는가.
智者 師古而行하나니 攸聞이라하고 이라하니
지혜로운 자는 옛날을 본받아서 행하니,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옛일을 본받지 않는 것은 부열傅說이 들은 바가 아니다.[事不師古 匪說攸聞]” 하였고,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옛날 가르침을 본받는다.[古訓是式]” 하였다.
而行 惟智者能之
그러므로 옛것을 본받아 행함은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가능한 것이다.
是故 이니 上略 設禮賞하고 別姦雄하고 著成敗 中略 差德行하고 審權變이요 下略 陳道德하고 察安危하고 明賊賢之咎하니라
이 때문에 《삼략三略》은 쇠한 세상을 위하여 지었으니, 〈상략上略〉은 예우禮遇하고 주는 일을 진술하고 간웅姦雄을 구별하여 성패를 드러냈으며, 〈중략中略〉은 덕행德行을 차별하고 권변權變을 살폈으며, 〈하략下略〉은 도덕道德을 말하고 안위安危를 살피고 현자賢者를 해치는 잘못을 밝혔다.
原注
是故 三略之書 爲衰世而作也 上略一卷 陳說禮賞之事하고 辨別姦雄之人하고 著顯成敗之迹이요 中略一卷 差別德行하고 審察權變이요 下略一卷 敷陳道德하고 審察安危하고 明辨賊害賢士之殃咎
이 때문에 《삼략三略》은 쇠한 세상을 위하여 지은 것이니, 〈상략上略〉 1권은 예우하고 상 주는 일을 진설陳說하고 간사하고 뛰어난 사람을 변별辨別하고 성패의 자취를 드러내어 밝혔으며, 〈중략中略〉 1권은 덕행을 차별하고 권변權變을 살폈으며, 〈하략下略〉 1권은 도덕을 펴서 말하고 안위安危를 살피고 어진 선비를 해치는 재앙과 허물을 밝게 분별하였다.
按此節以下 至中卷末 疑是黃石公推演之言이니 學者詳之니라
살펴보건대, 이 이하로 중권中卷의 끝부분까지는 아마도 황석공黃石公이 미루어 부연한 말인 듯하니, 배우는 자들이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상략上略〉을 깊이 깨달으면 능히 국정을 현자賢者에게 맡겨 적을 사로잡고, 〈중략中略〉을 깊이 깨달으면 능히 장수를 어거하여 무리를 거느릴 수 있고, 〈하략下略〉을 깊이 깨달으면 능히 성쇠盛衰의 근원을 밝게 알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강紀綱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原注
人主深曉上略이면 則能任賢用人하여 擒取敵將이니 上略 設禮賞 所以能任賢也 著成敗 所以能擒敵也
그러므로 군주가 〈상략上略〉을 깊이 깨달으면 현자에게 국정을 맡기고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여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으니, 〈상략上略〉에 예우하고 상을 주는 것을 가설한 것은 현자에게 국정國政을 맡기려 한 것이요, 성패成敗를 드러내어 밝힌 것은 적을 사로잡으려 한 것이다.
人主深曉中略이면 則能御治將帥하고 統屬士衆이니 中略 差德行하고 審權變 所以能御將統衆也
군주가 〈중략中略〉을 깊이 깨달으면 능히 장수를 어거하고 병사들을 통솔할 수 있으니, 〈중략中略〉에 덕행德行을 차별하고 권변權變을 살핀 것은 장수를 어거하고 병사들을 통솔하려 한 것이다.
人主深曉下略이면 則能明辨盛衰之根源하고 審察治國之綱紀 下略 陳道德하고 察安危하고 明賊賢之咎 所以能明盛衰之源하고 審治國之紀也
군주가 〈하략下略〉을 깊이 깨달으면 성쇠의 근원을 밝게 변별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강을 살피게 되니, 〈하략下略〉에 도덕을 말하고 안위安危를 살피고 현자를 해치는 허물을 밝힌 것은 성쇠의 근원을 밝게 알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강을 살피려 한 것이다.
人臣 深曉中略이면 則能全功保身이니라
신하가 〈중략中略〉을 깊이 깨달으면 공을 온전히 하고 몸을 보전할 수 있다.
原注
人臣 深曉中略이면 則能全功而保身이니
신하가 〈중략中略〉을 깊이 깨달으면 능히 공을 온전히 하고 몸을 보전할 수 있다.
中略 審權變하니 人臣知權變之道 所以能全功保身也
중략中略〉에 권변權變을 살폈으니, 신하가 권변의 도를 알면 공을 온전히 하고 몸을 보전할 수 있게 된다.
不言上略下略者 但論人臣全功保身之事也
상략上略〉과 〈하략下略〉을 말하지 않은 것은 다만 신하가 공을 온전히 하고 몸을 보전하는 일을 논했기 때문이다.
하나니 亡者 非喪其身也 謂奪其威하고 廢其權也니라
높이 나는 새가 죽으면 좋은 활이 감춰지고, 적국이 멸망하면 도모하는 신하가 망하니, 망한다는 것은 그 몸을 잃는 것이 아니요 위엄을 빼앗기고 권세를 잃음을 말한 것이다.
原注
夫高鳥之死 則良弓藏之於府庫하고 敵國旣破滅이면 則謀臣皆亡去하나니 亡者 非喪亡其身也 謂人君奪其威하고 廢其權하여 不令總兵柄也
높이 나는 새가 죽으면 좋은 활이 창고에 감춰지고, 적국이 파괴되고 멸망하면 도모하는 신하가 모두 망하여 떠나가니, 망한다는 것은 그 몸을 망치는 것이 아니요 군주가 위엄을 빼앗고 권세를 잃어 병권을 통솔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此下 又言人主保全功臣之道하니라
이 아래에는 또 군주가 공신功臣을 보전하는 방도를 말하였다.
封之於朝하여 極人臣之位하여 以顯其功하며 善國으로 以富其家하며 美色珍玩으로 以悅其心하나니라
공신功臣을 조정에서 봉하여 인신人臣의 지위를 지극히 해서 공로를 드러내며, 중국의 좋은 나라로 그 집을 부유하게 하며, 아름다운 여색과 진귀한 보배로 그 마음을 기쁘게 한다.
原注
封之於朝하여 使極人臣之位하여 以彰顯其功하며 與之中州善國하여 使納貢賦하여 以富其家하며 賜之美女珍玩하여 以娛悅其心이니 이요 非上古聖帝明王所以保全功臣之道
공신功臣을 조정에서 봉하여 신하의 지위를 지극하게 해서 그 공을 밝게 드러내며, 중국의 좋은 나라를 봉해주어서 공물貢物부세賦稅를 바치게 하여 그 집을 부유하게 하며, 아름다운 여인과 진귀한 보물을 하사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으니, 후한後漢광무제光武帝 태조太祖가 공신을 보전한 방법이요, 상고시대上古時代스러운 황제와 현명한 왕이 공신을 보전한 방도는 아니다.
夫人衆一合이면 而不可卒離 權威一與 而不可卒移 還師罷軍 存亡之階
군대를 한번 모으면 갑자기 해산할 수 없고 권세와 위엄을 한번 주면 갑자기 옮길 수 없으니, 장수가 개선凱旋하여 군대를 해산하는 것은 존망의 계제이다.
弱之以位하고 奪之以國이니 是謂霸 者之略이라
그러므로 지위를 약화시키고 나라를 빼앗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패자霸者의 지략’이라 한다.
그러므로 패자가 나옴은 그 의논이 잡박雜駁한 것이다.
原注
夫人衆一合이면 而不可倉卒以離之 權威一與 而不可倉卒以移之 還師罷軍之日
군대를 한번 모으면 갑자기 해산할 수 없고 권세와 위엄을 한번 주면 갑자기 옮길 수 없으니, 장수가 개선하여 군대를 해산하는 날은 존망의 계제이다.
弱之以位하여 不使執大權하고 奪之以國하여 不使居要地 此謂霸者之謀略이라
그러므로 지위를 약화시켜서 큰 권세를 잡지 못하게 하고 나라를 빼앗아서 중요한 자리에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패자霸者의 모략이라 한다.
그러므로 패자霸者가 나옴은 그 의논이 잡박한 것이다.
지위를 약화시키고 나라를 빼앗은 것은, 고조高祖가 거짓으로 운몽雲夢에 유람하여 초왕楚王 한신韓信을 사로잡아서 그 나라를 빼앗고 강등하여 회음후淮陰侯로 봉한 경우이다.
論者以爲漢雜霸道라하니 於此 亦可見矣
의논하는 자가 말하기를 “한나라는 왕도王道패도霸道를 섞어 썼다.” 하니,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存社稷하고 羅英雄者 中略之勢也
사직社稷을 보존하고 영웅을 망라하는 것은 〈중략中略〉의 권세이다.
勢主秘焉하나니라
그러므로 권세 있는 군주가 비밀로 간직하는 것이다.
原注
存守社稷하고 搜羅英雄者 乃中略之權勢也
사직社稷을 보존하여 지키고 영웅을 망라하는 것은 바로 〈중략中略〉의 권세이다.
權勢之主 秘密而不肯泄焉이라
그러므로 권세를 잡은 군주가 비밀로 간직하고 누설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역주
역주1 三皇 : 중국 상고시대 신화 속의 聖君들인 太昊伏羲氏‧炎帝神農氏‧黃帝軒轅氏를 이른다. 伏羲氏는 천하를 다스릴 적에 龍馬가 黃河에서 나오자 그 무늬를 본떠서 《周易》의 八卦를 그렸다고 하며, 神農氏는 쟁기와 보습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치고 온갖 藥草를 맛보아 醫藥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하며, 軒轅氏는 신하인 蒼頡을 시켜 처음 글자를 만들었으며 창과 방패, 배와 수레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文明을 가르쳤다고 한다.
역주2 伏羲神農軒轅 : 《新刊增補三略》에 “伏羲氏가 처음 犧牲을 사용하였으므로 號를 伏羲라 하였고, 神農氏가 처음 쟁기자루와 보습을 사용하여 농사짓는 것을 가르쳤으므로 號를 神農이라 하였고, 軒轅氏가 처음 수레와 면류관을 사용하였으므로 호를 軒轅이라 했다.[始用犧牲 故號伏羲 始敎耒耜 故號神農 始服軒冕 故號軒轅]” 하였다.
역주3 風氣 : 《新刊增補三略》에 “天地가 처음 開闢할 적에 만물이 기운[氣]을 얻어서 비로소 이뤄지고, 〈세찬〉 바람을 맞고 자라므로 비로소 견고해진다.[天地初闢 萬物得氣而始成 受風而始堅]” 하였다.
역주4 : 칙
역주5 不待禮賞有功 : 《新刊增補三略》에 “‘不待禮賞有功’은 마땅히 한 句가 되어야 한다.[不待禮賞有功 當作一句]” 하였다.
역주6 君臣相讓其功 : 《新刊增補三略》에 “《書經》 〈大禹謨〉에 ‘舜임금이 禹王에게 命할 적에 六府와 三事가 진실로 다스려져서 萬世토록 영원히 힘입는 것, 이것이 바로 너의 功이다.’라고 했다.[書曰 大禹謨舜命禹 六府三事允治 萬世永頼 是乃功]” 하였다.
역주7 所謂其民皞皞而不知爲之者 : 皞皞는 廣大하여 스스로 만족한 모양이다. 《孟子》 〈盡心 上〉에 “霸者의 백성들은 매우 즐거워하고, 王者의 백성들은 皥皥하다. 죽여도 원망하지 않으며 이롭게 하여도 功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날로 改過遷善을 하면서도 누가 그렇게 만드는지를 알지 못한다.[霸者之民 驩虞如也 王者之民 皥皥如也 殺之而不怨 利之而不庸 民日遷善而不知爲之者]”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8 典籍 : 《新刊增補三略》에 “三皇의 책을 ‘典’이라 이르고, 五帝의 책을 ‘籍’이라 이른다.[三皇之書謂之典 五帝之書謂之籍]” 하였다.
역주9 降心服志 : 《新刊增補三略》에 “마음[心]은 몸[身]을 감추는 주체이고 神明의 집이다. 마음이 가는 것을 ‘志’라 한다.[心 藏身之主 神明之舍 心之所之 謂之志]” 하였다.
역주10 四海 : 《新刊增補三略》에 “天池이니 온갖 냇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바다(海)’라 한다. 九夷‧八狄‧七戎‧六蠻을 ‘四海’라 이르니, 海는 어둡다는 뜻으로 매우 멀어 어두운 뜻을 취한 것이다. 동쪽을 ‘滄海’라 하고 서쪽을 ‘瀚海’라 하고 남쪽을 ‘溟海’라 하고 북쪽을 ‘渤海’라 한다. 또 四海를 통틀어 ‘裨海’라 한다.[天池 以納百川曰海 九夷八狄七戎六蠻 謂之四海 海者 晦也 取其荒遠冥昧之稱 東曰滄海 西曰瀚海 南曰溟海 北曰渤海 又四海 通謂之裨海]” 하였다.
역주11 殷見(현) : 《新刊增補三略》에 “殷은 성함이니, 六服의 諸侯가 모두 와서 조회하는 것을 ‘殷見’이라 한다.[殷盛也 六服盡爲來朝曰 殷見]” 하였다. 六服은 王畿에서 멀고 가까운 차이에 따라 여섯 등급의 제후를 나눈 것으로 侯服‧甸服‧男服‧采服‧衛服‧蠻服이다.
역주12 : 현
역주13 致仕 : 《新刊增補三略》에 “禮에 ‘신하의 나이가 70세가 되면 벼슬을 내놓는다.’라고 했다.[禮 人臣年七十 致其仕]” 하였다.
역주14 禹之於伯益……同心一德 : 伯益은 舜임금의 신하였는데 禹王이 舜임금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즉위하자 禹王을 섬겼으며, 뒤에 禹王은 伯益을 후계자로 천거하였으나 백성들이 동의하지 않아 아들 啓가 세습하였다.
湯王은 이름이 履이고 天乙이라고도 칭하였으며, 武功을 이루었다 하여 成湯으로도 칭하였다.
伊尹은 이름이 摯로 有莘의 들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商의 湯王이 등용하여 夏나라를 정벌하고 商王朝를 세웠다.
文武는 周나라 文王과 武王의 병칭으로 文王은 이름이 昌이고 武王은 發이며, 周公은 이름이 旦으로 文王의 아들이고 武王의 아우이며, 太公은 姜太公으로 氏가 呂이기 때문에 呂尙 또는 呂望으로 불리었는바, 周公과 함께 文王과 武王을 보좌하여 殷나라를 정벌하고 周 王朝를 세웠다.
夏의 禹王과 商의 湯王과 周의 文王‧武王을 三王이라 하여 五帝 이후 가장 훌륭한 정치가 시행된 시대로 일컬어진다.
역주15 夏昆吾商大彭豕韋之類 : 昆吾‧大彭‧豕韋는 당시 제후들의 霸者이다. 孟子의 五霸에 대하여, 趙岐는 “齊 桓公, 晉 文公, 秦 穆公, 宋 襄公, 楚 莊王이다.” 하였고, 丁公著는 “夏나라의 昆吾, 商나라의 大彭과 豕韋, 周나라의 齊 桓公과 晉 文公이다.” 하였다. 《孟子 告子 下》
역주16 齊桓晉文 : 《新刊增補三略》에 “齊 桓公은 이름이 小白이고 성이 姜氏이니 呂望의 후손이며, 晉 文公은 이름이 重耳이니 叔虞의 후손이다.” 하였다.
역주17 凡出軍行師……難得而成矣 : 《兵學指南演義》 〈旗鼓定法 1 任將篇〉에는 ‘대장이 군대를 출동하여 표를 세우고 물시계를 설치한 다음, 영문을 닫고 淸道를 하면, 군주의 사자나 장관은 물론, 군주를 모시고 오는 신하도 함부로 군문에 들어올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이 대목을 인용 예시하고 있다.
역주18 功勳 : 《新刊增補三略》에 “수고로움으로 나라를 안정시킴을 功이라 하고, 功이 자손에게 미침을 勳이라 한다.[以勞定國曰功 功及子孫曰勳]” 하였다.
역주19 仁者 : 《新刊增補三略》에 “살펴보건대 여기의 仁者는 오직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소문만 있을 뿐, 마땅히 베풀어야 할 방법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按 仁者 惟仁心仁聞而不知有爲當施者]” 하였다.
역주20 巫祝 : 《新刊增補三略》에 “무당[巫]은 神을 섬기는 자이고 축관[祝]은 神에게 기도하고 축원하는 자이다.” 하였다.
역주21 : 《新刊增補三略》에 “살펴보건대 이 章은 요상[祥]함을 금지하고 의심스러움을 제거하는 뜻을 말하였으니, 옛사람의 이른바 ‘法令을 자세히 살피면 《周易》점을 치지 않아도 吉함을 얻고, 功을 귀하게 여기고 수고한 사람을 길러주면 기도하고 제사하지 않아도 福을 얻는다.’는 것이니, 그 뜻이 또한 互文이다.[按此章 言禁祥去疑之意 古人所謂明法審令 不筮而獲吉 貴功養勞 不禱祠而得祚 其意亦互文]” 하였다.
역주22 義者……不爲闇主謀 : 《新刊增補三略》에 “‘爲’자는 모두 去聲이다. ‘闇’은 暗과 같으니, 밝지 못한 것이다. 百里奚가 虞나라를 떠나자 虞나라가 망하였고 秦나라로 가자 秦나라가 霸者가 되었으니, 이는 어두운 군주를 위하여 도모하지 않은 것이다. 豫讓이 일찍이 范氏와 中行氏를 섬겼는데, 智伯(智瑤)이 이들을 滅亡시켰으나 이들을 위해 원수를 갚지 않았고, 도리어 智伯의 신하가 되어서는 智伯이 죽자 원수를 갚고자 하다가 죽었으니, 이것은 不仁한 자를 위하여 죽음을 바치지 않았다고 이를 만하다.[爲 竝去聲 闇暗同 不明也 百里奚去虞而虞亡 之秦而秦覇 此不爲闇主謀也 豫讓嘗事范中行氏 智伯滅之 不爲報仇 反質於智伯 智伯死 欲報仇而死 此可謂不爲不仁者 效死也]” 하였다.
역주23 有智 : 《新刊增補三略》에 “智는 명철함이니, 마음에 아는 바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情을 통달하고 일의 기미를 보아서, 속임수를 쓰는 자가 속이지 못하고 참소하는 말이 들어가지 못하여, 변화에 응함이 일정한 방소가 없고 禍를 바꾸어 福으로 만드는 자이다.[明 哲也 心有所知也 達人之情 見事之微 詐不能欺 讒不能入 應變無方 轉禍爲福者也]” 하였다.
역주24 : 《新刊增補三略》에 “살펴보건대 昏愚한 군주는 사람의 어질고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고 일의 마땅하고 마땅하지 못함을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가 그를 위하여 쓰임이 되지 않는 것이다.[按 昏暗之主 不能識人之賢愚 不能決事之當否 故智者不爲之用]” 하였다.
역주25 失權 : 《新刊增補三略》에 “權은 저울의 추이니 물건의 가볍고 무거움을 저울질하여 그 평평함을 얻는 것이다. 權은 저울추이고 柄은 도끼자루이니, 일을 처리하는 權變이다. 權은 남의 윗자리에 있는 자가 쥐고 있는 권력이니, 아랫사람에게 옮겨줘서는 안 된다.[稱 錘也 所以稱物之輕重而得其平者也 權 是稱權 柄 是斧柄 處事之變也 居人上者所執 不可下移也]” 하였다.
역주26 : 《新刊增補三略》에 “兆는 많음이니, 10億을 ‘兆’라 한다.” 하였다.
역주27 若威多震主 則身反顚蹶矣 : 《新刊增補三略》에 “韓信이 군주를 두렵게 하는 위엄을 보유하고 賞을 줄 수 없는 功을 간직하였으므로 뒤에 顚覆됨에 이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韓信戴震主之威 挾不賞之功 後至於顚蹶 是也]” 하였다.
역주28 : 탁
역주29 聖王御世……相誅伐 : 《新刊增補三略》에 “御는 臨御하는 것이다. 度은 음이 鐸이다. 王澤은 王者의 덕택이다. 聖王의 덕택은 물이 못에 가득한 것과 같으므로 또한 敎化와 恩澤이 다하는 것이다.[御 臨御也 度音鐸 王澤 王者之德澤也 聖王之德澤 如澤水之盈滿 故又化澤竭盡也]” 하였다.
역주30 方伯 : 諸侯 중에 한 지방의 우두머리로 동쪽 지방의 우두머리를 東伯, 서쪽 지방의 우두머리를 西伯이라 칭하였는데, 뒤에는 道伯을 일컫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역주31 此師字……萬二千五百人耳 : 六師는 6軍으로 天子의 군대를 이른다. ‘六師移之’는 《孟子》 〈告子 下〉에 “〈제후가〉 한 번 조회하지 않으면 그 官爵을 貶하고, 두 번 조회하지 않으면 그 땅을 떼어내고, 세 번 조회하지 않으면 軍師를 동원하여 군주를 바꿔놓는다.[一不朝則貶其爵 再不朝則削其地 三不朝則六師移之]”라고 보인다.
옛날 군대 편제에 대하여 《周禮》 〈地官 小司徒〉에 “5명을 伍라 하고, 5伍를 兩이라 하고, 4兩을 卒이라 하고, 5卒을 旅라 하고, 5旅를 師라 하고, 5師를 軍이라 한다.[五人爲伍 五伍爲兩 四兩爲卒 五卒爲旅 五旅爲師 五師爲軍]”라고 보인다. 卒은 100명, 旅는 500명, 師는 2,500명, 軍은 12,500명인바, 여기서 말한 師는 2,500명의 師가 아니고, 바로 軍과 같은 12,500명임을 강조한 것이다.
역주32 六師移之 : 《新刊增補三略》에 “《周禮》에 ‘諸侯가 한 번 조회 오지 않으면 관작을 貶下하고, 두 번 조회 오지 않으면 封地를 줄이고, 세 번 조회 오지 않으면 六軍을 동원하여 군주의 자리를 바꾸고 죄를 문책한다.’ 했다.[周禮 諸侯一不朝則貶其爵 再不朝則削其地 三不朝則六師移之 問罪]” 하였다.
역주33 盟誓 : 《新刊增補三略》에 “피를 마시는 것을 ‘盟’이라 하고, 信義를 맺는 것을 ‘誓’라 한다. 犧牲을 사용하는 것이 똑같지 않아서 天子는 소와 말을 사용하고 諸侯는 개와 돼지를 사용하고 大夫 이하는 닭을 사용한다.[歃血曰盟 結信曰誓 用牲不同 天子牛馬 諸侯犬豕 大夫以下用鷄]” 하였다.
역주34 : 오
역주35 與士衆同好同惡 : 《新刊增補三略》에 “살펴보건대 이것은 바로 〈上略〉 首章의 뜻이니, 다시 말하여 英雄을 맞이하고 사람들과 좋아하고 싫어함을 함께한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按 此卽上略首章之旨 重言以申明延攬英雄 與衆同好惡之意也]” 하였다.
역주36 權變 : 《新刊增補三略》에 “權變은 權謀와 奇變이다.” 하였다.
역주37 薛公之策英布 : 英布는 黥布로 六縣 사람인데, 項羽 밑에서 큰 공을 세워 九江王으로 봉해졌다가 漢 高祖(劉邦)에게 귀순하여 淮南王에 봉해진 인물이다.
漢 高祖 11년(B.C. 196)에 黥布가 배반하자, 高祖가 薛公을 불러 물으니, 대답하기를 “만일 黥布가 上策으로 나오면 山東 지방은 漢나라의 소유가 아닐 것이요, 中策으로 나오면 승패를 알 수 없고, 下策으로 나오면 陛下께서 베개를 높이 베고 누우셔서 漢나라에 아무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高祖가 묻기를 “黥布의 계책이 장차 어디로 나오겠는가?” 하니, 薛公은 “黥布는 驪山에서 부역하던 무리로서 스스로 萬乘의 군주가 되었으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하고 후손을 돌아보지 아니하여 반드시 下策으로 나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는데, 黥布는 과연 下策을 따르다가 멸망하였다. 《史記 권91 黥布列傳》
薛公은 옛날 楚나라의 令尹이었다.
역주38 于謹之策蕭繹 : 蕭繹은 梁 元帝이다. 西魏에서 于謹을 보내 그를 江陵에서 토벌할 적에 長孫儉이 于謹에게 묻기를 “蕭繹의 계책이 장차 어떻게 나오겠는가?” 하니, 于謹이 대답하기를 “漢水와 沔水 지역에 병력을 과시하되 병력을 모두 인솔하여 揚子江을 건너가서 곧바로 丹陽을 점령하는 것이 上策이요, 城 안에 있는 거주민을 이주시키고 물러가 子城을 확보하고 城堞을 높이 쌓아 지원군이 이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中策이요, 만약 이동하는 것을 어렵게 여겨서 羅郭(羅城)을 점거하여 지키면 이것이 下策입니다.” 하였다.
長孫儉이 “정녕 무슨 계책으로 나오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蕭氏는 강남 지방을 점거하여 몇십 년을 면면히 이어왔는데, 지금 中原에 사변이 많아 밖을 경략할 겨를이 없으며, 또 蕭繹은 나약하고 智謀가 없어서 의심이 많고 결단력이 적으며, 사람들은 처음을 도모하는 것을 어렵게 여겨서 모두 살고 있는 고을을 연연해하고 옮겨가는 것을 싫어하니, 마땅히 羅郭을 保守하여 반드시 下策을 쓸 것입니다.” 하였는데, 뒤에 모두 그의 말과 같이 되었다. 《孫子 虛實》
역주39 陳平六出奇計之類 : 漢나라의 策士인 陳平이 漢 高祖 劉邦을 따라 여섯 번 기이한 계책을 낸 것을 이른다.
淸나라 錢大昭가 지은 《漢書辨疑》 〈陳平傳〉에 “첫 번째는 楚나라 項羽의 謀士인 范增과 장수인 鐘離眛 등을 이간시킨 것이고, 두 번째는 高祖가 滎陽에 포위되었을 적에 한밤중에 女子 2,000명을 滎陽의 東門으로 내보내 楚나라 장병들이 이것을 구경하느라 해이해진 틈을 타서 高祖를 위기에서 빠져나오게 한 것이고, 세 번째는 韓信이 齊나라를 평정하고 齊나라의 임시 王이 될 것을 청하자, 高祖를 설득하여 그대로 齊王으로 봉하게 해서 韓信의 도움으로 끝내 천하를 얻은 것이고, 네 번째는 楚王으로 봉한 韓信을 제거하기 위해 高祖가 雲夢이라는 못으로 구경간다고 거짓으로 말하여 韓信이 高祖를 배알하러 오자 武士들을 시켜 韓信을 포박해서 淮陰侯로 강등시킨 것이고, 다섯 번째는 高祖가 匈奴의 冒頓單于와 싸우다가 匈奴의 속임수에 빠져 平城에 포위되었을 적에 冒頓單于의 아내인 閼氏에게 뇌물을 써서 高祖를 풀어주게 한 것이고, 여섯 번째는 자세하지 않으나 高祖가 반란을 일으킨 臧荼와 陳豨‧黥布를 직접 정벌할 때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였다.
역주40 書曰……匪說(열)攸聞 : 說은 殷나라 高宗(武丁)의 어진 재상인 傅說로, 이 내용은 《書經》 〈商書 說命 下〉에 “傅說이 말하기를 ‘王이여! 聞見이 많은 사람을 구함은 이 일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옛 가르침을 배워야 얻음이 있을 것이니, 일을 옛것을 본받지 않고서 능히 장구하게 하는 것은 제가 들은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說曰 王 人求多聞 時惟建事 學于古訓 乃有獲 事不師古 以克永世 匪說攸聞]”라고 보인다.
역주41 : 열
역주42 詩曰 古訓是式 : 《詩經》 〈大雅 烝民〉에 “仲山甫의 덕이 유순하고 아름다워 법칙(모범)이 되니, 威儀가 빼어나고 顔色이 훌륭하며 조심하여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옛 교훈을 이에 본받으며 위의를 힘쓰며 天子에게 순종하며 밝은 命을 사방에 펴도다.[仲山甫之德 柔嘉維則 令儀令色 小心翼翼 古訓是式 威儀是力 天子是若 明命使賦]”라고 보인다.
仲山甫는 樊侯의 字로, 周 宣王의 名臣이다.
역주43 故師古 : 一本에는 故가 없고 ‘蓋法古(옛것을 본받다.)’로 되어있다.
역주44 三略 爲衰世作 : 尹鑴는 《白湖集》 권22 〈黃石公三略跋〉에서 “《삼략》이란 책은 霸者의 책이다. 그 책에서 이르기를 ‘《삼략》은 쇠한 세상을 위하여 지었다.’ 하였으니, 부득이했던 것이다. 아, 王道가 행해지지 않음으로써 霸者가 되려는 도모가 일어난 것이니, 한갓 세상이 쇠했을 뿐만 아니라 德 또한 강등된 것이다. 덕은 이미 先王에 미치지 못하거니와, 道 또한 쇠한 세상을 다스릴 수 없고 보니, 敗亡과 危厄이 뒤를 따라 백성을 살리는 도리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이 곧 《삼략》이란 책을 짓게 된 까닭이다.[三略之書 伯(패)者之書也 其言曰 三略 爲衰世作 非得已也 嗚乎 王道不行而伯圖興 非徒世之衰 亦德之降也 蓋德旣不及乎先王 而道又不足以御衰世 則敗亡危厄隨之 而生民之理 或幾乎息矣 此三略之書所以作也]” 하였다.
역주45 深曉上略……審治國之紀 : 《新刊增補三略》에 “曉는 밝음이다. 紀는 벼릿줄이니 큰 것을 ‘綱’이라 하고 작은 것을 ‘紀’라 한다.[曉明也 紀維也 大曰綱 小曰紀]” 하였다.
역주46 高鳥死……謀臣亡 : 이 말은 漢나라의 개국공신 韓信이 鍾離昧의 일에 연루되어 모반죄로 체포되었을 때 한 말이다.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구나.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가 삶아지고, 높이 나는 새가 다하면 좋은 활이 감춰지고, 적국이 멸망하면 도모하는 신하가 망하게 된다.[狡兎死 良狗烹 高鳥盡 良弓藏 敵國破 謀臣亡]’ 하였는데,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史記 권92 淮陰侯列傳》
《新刊增補三略》에 “살펴보건대 이것은 越나라 大夫 文種의 말인 듯하다.[按 此疑是大夫種之言]” 하였다.
역주47 中州 : 《新刊增補三略》에 “中州는 中土라는 말과 같다. 珍은 보배이고 玩은 희롱함이다.[中州 猶中土 珍 寶也 玩 弄也]” 하였다.
역주48 漢光武宋太祖保全功臣之術 : 漢 光武는 後漢의 光武帝인 劉秀이고, 宋 太祖는 北宋의 太祖인 趙匡胤이다. 前漢을 일으킨 高祖 劉邦은 천하를 통일한 뒤에 韓信을 楚王에, 彭越을 魏王에, 黥布를 淮南王에 봉했으나 韓信과 彭越을 의심하여 모두 죽이니, 黥布와 陳豨 등이 모두 두려운 마음을 품고 배반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光武帝는 이것을 거울삼아 開國에 큰 功이 있는 鄧禹와 馮異 등에게 큰 封地와 軍權을 주지 않고 대신 잘 우대하여 부귀를 누리며 즐겁게 살게 하였다.
唐나라 이후 五代時代에는 軍功이 있는 자에게 아침에는 王으로 봉하였다가 저녁에는 죽이는 일이 빈번하였다. 宋 太祖는 이것을 거울삼아 功이 있는 신하들에게 軍權을 주지 않고 부귀를 끝까지 누리게 하였으며, 심지어는 諫臣을 한 명도 죽이지 않는 王朝를 만들었다.
역주49 不可卒移……其論駁也 : 《新刊增補三略》에 “卒은 급함이다. 還은 음이 旋이니 돌아옴이요, 駁은 잡됨이다.[卒 急也 還 音旋 反也 駁 雜也]” 하였다.
역주50 存亡之階梯也 : 《新刊增補三略》에 “成功하고 돌아와서 角巾을 쓰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감은 몸을 보존하는 기틀이요, 兵權을 탐하여 군주로 하여금 의심하고 꺼리게 하는 것은 몸을 망치는 階梯이다.[成功而還 角巾歸第 存身之機 貪握兵權 使之疑忌 亡身之階梯也]” 하였다.
역주51 霸者之作 其論駁雜也 : 王者는 仁義를 행하여 순수한 반면, 霸者는 權謀術數를 구사하므로 그 의논이 잡박하다 한 것이다.
역주52 此漢高所以僞遊雲夢……而降封爲淮陰侯也 : 漢 高祖는 천하를 통일한 다음 韓信을 楚王에 봉했으나 그의 재능과 封地가 큰 것에 불안을 느끼던 중 韓信이 장차 배반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러나 제재할 길이 없었는데, 陳平이 “皇帝께서 楚나라와 가까운 雲夢으로 유람을 가신다고 하면 韓信이 반드시 皇帝를 배알하러 올 것이니, 이때 사로잡으면 됩니다.”라고 계책을 내었다. 高祖가 거짓으로 유람을 간다고 하며 雲夢에 이르러서는, 高祖를 뵈러 온 韓信을 사로잡아 長安으로 데리고 가서 淮陰侯로 강등시켰다. 韓信은 이에 불만을 품고 陳豨와 내통하여 반란을 획책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삼략직해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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