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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略直解

삼략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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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略
原注
夫人 能扶持天下衆人之危者 則據天下之安하고 能除去天下衆人之憂者 則享天下之樂하고 이라
澤及於民이면 則賢人歸之하고 澤及昆蟲이면 則聖人歸之하나니
賢人所歸 則其國强하고 聖人所歸 則六合同이니라
原注
德澤及於人民이면 則賢人來歸之하고 이면 則聖人來歸之하나니
賢人之所歸 則其國盛强하고 聖人之所歸 則六合和同이라
六合 天地四方也
求賢以德이요 致聖以道
賢去則國微하고 聖去則國乖하나니 微者 危之階 乖者 亡之徵이니라
原注
人君求賢 當以德이요 致聖 當以道
德不盛則賢不至 道不隆則聖不歸 人君欲求賢致聖이로되 而不修道德이면 亦安能致之來哉리오
賢人若去 則國家衰微하고 聖人若去 하나니 微者 危殆之階梯 乖者 亡滅之徵兆
賢人之政 降人以體하고 聖人之政 降人以心하나니
原注
賢人之爲國政 降人以體하고 聖人之爲國政 降人以心하나니
以體降人이면 可以謀其始 以心降人이면 可以保其終이니 降吾之體以下人 當以禮 降吾之心以下人 當用樂이라
所謂 非金石絲竹也 謂人其家하고 謂人樂其族하고 謂人樂其業하고 謂人樂其都邑하고 謂人樂其政令하고 謂人樂其道德이니 如此君人者라야 以節之하여 使不失其和하나니라
原注
所謂樂者 非金石絲竹之類也
鍾也 磬也 琴瑟也 簫管也
盖謂人樂居其家하고 謂人樂會其族하고 謂人樂守其業하고 謂人樂處其都邑하고 謂人樂奉其政令하고 謂人樂聞其道德이니 如此君主斯人者라야 乃作樂以節之하여 使不失其本然之和也
有德之君 하고 無德之君 以樂樂身하나니 樂人者 久而長하고 樂身者 不久而亡이니라
原注
以樂樂人者 其國祚久而長하고 이라
釋近謀遠者 勞而無功하고 釋遠謀近者 佚而有終하나니 佚政 多忠臣하고 勞政 多怨民하나니라
原注
舍近而圖謀其遠者 則勞而無功하니 是也
舍遠而圖謀其近者 則佚而有終하니하여 遠交而近攻 是也
佚政則國多之臣하고 勞政則下多怨懟之民이라
曰 務廣地者하고 務廣德者하며 能有其有者하고 貪人之有者하나니
殘滅之政 累世受患하고 造作過制 雖成이나 必敗라하니라
原注
曰 務廣求土地者 必荒而不能治하고 務廣施德惠者 必强而無敵하며
能有自己之當有者 則國安하고 貪人之有而强取之者 則國殘이라하니
하고 智伯貪趙蔡皐狼之地라가 皆爲所滅 是也
殘滅之政 使子孫累世受患하고 造作過其制度 雖成이나 而後必敗하나니 是也
素書 引能有其有者安하고 貪人之有者殘二句하여 以足第五章之義하니라
原注
舍己之身以敎人者 其事逆하고 正己之身以化人者 其理順하니 逆者 乃亂之招 順者 乃治之要
正己化人之義 己身不正하고 而欲化民이면 其可得乎
素書 引此二句於末章이로되 而增逆者難從, 順者易行, 難從則亂, 易行則理四句하여 以廣其義耳
道德仁義禮五者 一體也
道者 人之所蹈 德者 人之所得이요 仁者 人之所親이요 義者 人之所宜 禮者 人之所體 不可無一焉이니라
原注
道德仁義禮五者 原於天而具於心하니 其體則一也
이나 大用之流行 則各有異耳
道者 事物當然之理 人之所踐行者也 德者 行道而有所得也 仁者 愛之理
義者 處物而得其宜也 禮者 人之所體而行之也
五者 不可無一焉이라
이나 仁義禮智 德也
散之萬事하고 備於一心하니 分而言之하면 各有體有用이요 統而論之하면 其原皆出於天하여 而體則歸於一也
素書 引此一節하고 而推廣其意以成文耳
仁之發也 得己得人 德之路也 使人均平하여 不失其所 道之化也니라
原注
早興夜寐하여 不失其節 者也 旣有得於己하고 又有得於人 乃德之路也 得己者 得之於心也 得人者 得人心之歸也
使人均平如一하여 而不失其所 乃道之化也 道之化 謂政敎化人之道也
此亦以其大用之流行者 言之하니 若論其體하면 則微妙而難見耳
出君下臣 名曰命이요 施於 名曰令이요 奉而行之 名曰政이니라
原注
出於君하여 下於臣 名曰命이요 施之於竹帛 名曰令이요 百官奉而行之하여 布於四海 名曰政이라
夫命失이면 則令不行하고 令不行이면 則政不立하고 政不立이면 則道不通하고 道不通이면 則邪臣勝하고 邪臣勝이면 則主威傷이니라
原注
王言也 王言有所失이면 則施於竹帛之令 亦不能行하고 令旣不行이면 則百官奉行之政 亦不能立하고 政旣不立이면亦不能通하고 道旣不通이면 則邪臣由是而勝하고 邪臣旣勝이면 則人主威權亦傷矣
千里迎賢 其路遠하고 致不肖 其路近하니 是以 明君 舍近而取遠이라
能全功尙人하여 而下盡力하나니라
原注
千里迎賢 其路甚遠하고 招致不肖之人 其路甚近하니 言賢者難求하고 而不肖易致也
是以 明君 舍不肖之在近하고 而迎賢者於千里之遠이라
能全功尙人하여 而在下者務盡其力이라
廢一善이면 則衆善衰하고 賞一惡이면 則衆惡歸하나니 善者 得其祐하고 惡者 受其誅하면 則國安而衆善至하나니라
原注
廢一善而退之하면 則衆善皆衰하고 賞一惡而進之하면 則衆惡皆歸하나니 若善者得其爲善之福하고 惡者受其爲惡之誅하면 則國家安寧하고 而衆善皆至
衆疑 無定國이요 衆惑이면 無治民이니 疑定惑還이라야 國乃可安이니라
原注
衆人皆疑 則無安定之國이요 하고 衆惑皆回라야 國家乃可安也
一令逆이면 則百令失하고 一惡施 則百惡結이라
善施於順民하고 惡加於凶民하면 則令行而無怨이니라
原注
一令旣逆이면 則百令皆失하고 一惡旣施 則百惡遂結이라
國家之善令 施於順服之民하고 惡令 施於凶頑之民이면 則君令行而下無所怨이라
善令之類 惡令 如鞭械繫之類
使怨治怨이면 是謂逆天이요 使讐治讐 其禍不救 治民使平하고 致平以淸이면 則民得其所하고 而天下寧이니라
原注
使怨者 治怨人이면 是謂逆天之理 使讐者 治讐人이면 其禍 遂不可救 如秦 是也
治民 要使之平均이니 이라하시고 詩云 赫赫師尹이여
오하니
治民 必欲使之平均也
致民之均平 當淸其心하여 而無纖毫私欲之染이면 則民得其所하여 而天下安寧이라
하고 貪鄙者하면 雖有聖主라도 不能致其治니라
原注
干犯在上者 反尊之以爵하고 貪殘卑鄙者 反富之以祿이면 雖有聖主在上이라도 不能致天下之治
하면 則化行而衆惡消하나니라
原注
干犯在上者 以刑誅之하고 貪殘卑鄙者 以法拘之 則敎化行而衆惡皆消矣
原注
士之志行淸白者 不可以爵祿得이니 是也 士之有節義者 不可以威刑脅이니 是也
明君 求賢 其所以而致焉하니 致淸白之士인댄 修其禮 致節義之士인댄 修其道
然後 士可致而名可保니라
原注
明君 欲求賢士 必觀視其所以致之之術이니 欲致淸白之士인댄 當修其禮 欲致節義之士인댄 當修其道
然後 賢士可致之來하고 而名可保於成也
夫聖人君子 明盛衰之源하고 通成敗之端하고 審治亂之機하고 知去就之節하나니라
原注
夫聖人君子 明乎盛衰之源하고 通乎成敗之端하고 審乎治亂之機하고 知乎去就之節이라
聖人 神明不測之號 君子 才德出衆之稱이라
如水之源이니
將衰 必有本源이요 端者 端倪也 國家將成將敗 必有端倪之先見者也
機者 國家將治將亂 必有發動之機 限量也 士之去就 必有節이요 不可妄爲之也
四者 惟聖人君子라야 能明之通之審之知之 所謂者 是也
曰源曰端曰機 非至誠前知 其孰能之리오
素書 引此語호되 更爲賢人君子 明於盛衰之道하고 通乎成敗之數하고 審乎理亂之勢하고 達乎去就之理라하니 其義深矣로다
雖窮이나 不處亡國之位하고 雖貧이나 不食亂邦之粟이니라
原注
雖窮窶 不處亡國之爵位하고 雖貧乏이나 不食亂國之穀祿이니者也
潛名抱道者 時至而動이면 則極人臣之位하고 德合於己 則建殊絶之功이라
其道高而名揚於後世하나니라
原注
潛名者 名者也
潛名抱道之士 時至而動이면 則能極人臣之位하고 君之德 與己相合이면 則能成絶代之功이라
其道隆高하고 而名譽稱揚於後世
하여 潛名抱道라가 及遇成湯高宗하야는 德與己合하여 功成名遂하여 後世無比
素書 引此語호되 改爲潛居抱道하여 以待其時라가
若時至而行이면 則能極人臣之位하고 得機而動이면 則能成絶代之功이요
如其不遇 沒身而已也
是以 其道足高而名揚於後世라하니 此蓋有益於功名矣로라
聖王之用兵 非樂之也 將以誅暴討亂也
所以而不進者 重傷人物也
原注
聖王所以優游恬淡하여 不肯剛勇而進者 重傷害人物也
夫兵者 不祥之器 專主殺伐하나니
天道春生夏長하여 物盛而極이라
秋冬嚴霜凜雪 亦用收斂殺伐之耳
夫人之在道 若魚之在水하니
得水而生이요 失水而死
君子常懼而不敢失道하나니라
原注
夫人在道中 若魚在水中하니
魚得水而能生이요 失水而必死하니 喩人不可無道
有道則存이요 無道則亡이라
君子常常戒懼하여 而不敢失道하니 此卽之義
豪傑秉職이면 國威乃弱이요 殺生 在豪傑이면 國勢乃竭이요 豪傑低首 國乃可久 殺生在君이면 國乃可安이요 四民用虛 國乃無儲 四民用足이면 國乃安樂이니라
原注
豪傑之人 秉持百官之職이면 國之威勢乃衰弱而不振矣 殺生之權 在豪傑이면 國之威勢乃窮竭矣之類
低首하여 而不敢專權恃勢 國祚乃可長久 殺生之權 在人君이면 國家乃可安寧이요
이니 四民之用 空虛 國家乃無儲積矣 四民之用 豐足이면 國家乃安而且樂矣
賢臣內 則邪臣外하고 邪臣內 則賢臣斃하나니 內外失宜하면 禍亂 하나니라
原注
臣在內用事 則邪臣皆屛之於外하고 邪臣在內用事 則賢臣皆致於死地하나니 如宋哲宗元祐間 用賢臣이면 則邪臣 屛之於外하고 紹聖間 用邪臣이면 則謫貶正臣范純仁以下三十餘人하고 又追貶司馬光等一十餘人하고 竄呂大防, 劉摯, 梁燾하여 皆致之死地하여 而欲盡殺元祐諸賢이라
內外之職失宜 則禍亂傳世 豈有安寧乎
此宋所以釀成
之亂하여之禍無已也
大臣 衆姦集聚하고 臣當君尊이면 上下乃昏하고 君當臣處 上下失序하나니라
原注
大臣 有疑主之心이면 則衆姦皆集聚矣 大臣 當君之尊이면 則上下乃昏惑矣 人君 當臣之處 則上下失序矣
傷賢者 殃及三世하고 蔽賢者 身受其害하고 嫉賢者 其名不全하고 進賢者 福流子孫이라
君子 急於進賢하여 而美名彰焉하나니라
原注
傷害賢者 及於三世하고 蒙蔽賢者 自身受其患害하고 嫉妬賢者 其名譽不能保全하고 薦進賢者 福澤流於子孫이니
利一害百이면 民去城郭이요 利一害萬이면 國乃思散이요 去一利百이면 人乃慕澤이요 去一利萬이면 政乃不亂이니라
原注
利一人而害百人이면 則民去而不守矣 利一人而害萬人이면 則國中思欲散亂矣
去一人而利百人이면 則人人思慕恩澤矣 去一人而利萬人이면 國政不致於危亂矣


하략下略
능히 천하의 위태로움을 붙들어주는 자는 천하의 편안함을 차지하고, 능히 천하의 근심을 제거하는 자는 천하의 즐거움을 누리고, 능히 천하의 를 구제하는 자는 천하의 을 얻는다.
그러므로 덕택德澤이 인민에게 미치면 현인賢人이 돌아오고, 덕택이 곤충에게까지 미치면 성인聖人이 돌아오는 것이다.
현인賢人이 돌아오는 곳에는 그 나라가 강하고, 성인聖人이 돌아오는 곳에는 육합六合이 함께한다.
으로써 현인賢人을 구하고 로써 성인聖人을 초치해야 한다.
현인이 떠나가면 나라가 쇠미衰微(衰弱)해지고 성인이 떠나가면 나라가 어그러지니, 쇠미해짐은 위태로움의 계제요, 어그러짐은 멸망의 징조이다.
현인賢人의 정사는 남에게 낮춤을 몸으로써 하고, 성인聖人의 정사는 남에게 낮춤을 마음으로써 한다.
몸으로 남에게 낮추면 처음을 도모할 수 있고 마음으로 남에게 낮추면 끝을 보전할 수 있으니, 몸을 낮춤은 로써 하고 마음을 낮춤은 으로써 한다.
이른바 이라는 것은 쇠와 돌과 실(현악기)과 대나무(관악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집을 즐거워하고 사람들이 자기 친족들과 즐거워하고, 사람들이 생업을 즐거워하고 사람들이 도읍都邑을 즐거워하고, 사람들이 정사와 명령을 즐거워하고 사람들이 도덕을 즐거워함을 이르니, 이와 같이 인민에게 군주 노릇하는 자라야 비로소 음악을 만들어 절제해서 함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있는 군주는 음악으로써 남을 즐겁게 하고, 덕이 없는 군주는 음악으로써 자신을 즐겁게 하니, 남을 즐겁게 하는 자는 오래도록 장구하고, 자신을 즐겁게 하는 자는 오래가지 못하여 망한다.
가까운 것을 버려두고 먼 것을 도모하는 자는 수고롭기만 하고 이 없으며, 먼 것을 버려두고 가까운 것을 도모하는 자는 편안하면서도 좋은 끝마침이 있으니,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정사에는 충성하는 신하가 많고,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정사에는 원망하는 백성이 많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토지를 넓히기를 힘쓰는 자는 황폐해지고 덕을 널리 베풀기를 힘쓰는 자는 강해지며, 능히 자기 소유를 보유하는 자는 편안하고 남의 소유를 탐하는 자는 해로우니,
남을 해롭게 하고 무너뜨리는 정사는 누대에 걸쳐 화를 받으며 제작함이 제도를 지나치면 비록 이루어지더라도 뒤에 반드시 패한다.” 한 것이다.
자기를 버려두고 남을 가르치는 자는 거스르고, 자기를 바로잡고 남을 교화하는 자는 순하니, 거스름은 을 초래하고 순함은 다스림의 요체가 된다.
다섯 가지는 일체一體이다.
는 사람이 행하는 바요, 은 사람이 얻은 바요, 은 사람이 친애하는 바요, 는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요, 는 사람이 체행하는 바이니, 한 가지도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은 의 제재요, 역적을 토벌하고 원수를 갚음은 의 결단이요, 측은해하는 마음은 의 발로요, 자기에게 얻음이 있고 남에게 얻음이 있음은 의 길이요, 사람으로 하여금 고르게 해서 그 살 곳을 잃지 않게 함은 의 교화이다.
군주에게서 나와서 신하에게 내려지는 것을 이라 하고, 죽백竹帛에 베풀어지는 것을 이라 하고, 받들어 행하는 것을 이라 한다.
이 잘못되면 이 행해지지 못하고, 이 행해지지 못하면 이 확립되지 못하고, 이 확립되지 못하면 가 통하지 못하고, 가 통하지 못하면 간사한 신하가 이기고, 간사한 신하가 이기면 군주의 위엄이 손상된다.
천 리의 현자賢者를 맞이함은 그 길이 멀고, 불초不肖한 사람을 오게 함은 그 길이 가까우니, 이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가까움을 버리고 멂을 취한다.
그러므로 공을 온전히 하고 훌륭한 사람을 높여서 아랫사람들이 힘을 다하는 것이다.
한 명의 한 사람을 폐기하면 여러 선한 사람들이 쇠하고, 한 명의 한 사람에게 주면 여러 악한 사람들이 돌아오니, 선한 자가 복을 얻고 악한 자가 주벌을 받으면 나라가 편안하고 선한 사람들이 이른다.
여러 사람이 의심하면 안정된 나라가 없고, 여러 사람이 미혹하면 평안한 백성이 없으니, 의심이 진정되고 미혹이 돌려져야 나라가 비로소 편안할 수 있다.
한 가지 명령이 이치에 어긋나면 온갖 명령이 잘못되고, 한 가지 악한 정사가 베풀어지면 온갖 악이 모인다.
그러므로 선한 정사가 순한 백성에게 베풀어지고 악한 정사가 흉한 백성에게 가해지면 명령이 행해지고 원망이 없게 된다.
원한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한을 다스리게 하면 이것을 일러 ‘하늘을 거스른다.’ 하고, 원수로 하여금 원수를 다스리게 하면 그 화를 막지 못하니, 백성을 다스려 고르게 하고 고름을 이루기를 깨끗함으로써 하면 백성들이 제자리를 얻어 천하가 편안하게 된다.
윗사람을 범하는 자를 높여주고 탐욕스럽고 비루한 자를 부유하게 해주면, 비록 성스러운 군주가 있더라도 훌륭한 정치를 이루지 못한다.
윗사람을 범하는 자를 주벌하고 탐욕스럽고 비루한 자를 구속하면, 교화敎化가 행해지고 악한 사람들이 사라지게 된다.
청백淸白한 선비는 관작官爵녹봉祿俸으로써 얻을 수 없고, 절의節義가 있는 선비는 위엄威嚴형벌刑罰로써 위협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가 현자賢者를 구할 적에 반드시 그 초치하는 방법을 살펴서 초치하니, 청백한 선비를 초치하려면 를 닦아야 하고, 절의가 있는 선비를 초치하려면 를 닦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선비를 초치하고, 훌륭한 이름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聖人군자君子성쇠盛衰의 근원에 밝고 성패成敗의 단서를 통달하며 치란治亂의 기미를 살피고 거취去就의 절도를 안다.
비록 곤궁하더라도 망하는 나라의 작위爵位에 처하지 않으며, 비록 가난하더라도 어지러운 나라의 녹봉祿俸을 먹지 않는다.
이름을 숨기고 를 간직한 자가 때가 이르러 출사出仕하면 인신人臣의 지위를 지극히 하고, 이 자기와 부합하면 매우 뛰어난 공을 세운다.
그러므로 그 가 높고 이름이 후세에 드날리는 것이다.
성왕聖王용병用兵을 하는 것은 전쟁을 좋아해서가 아니요, 장차 포악함을 주벌하고 난리를 토벌하려고 해서이다.
의로움으로써 불의不義를 주벌하는 것은 장강長江대하大河를 터서 작은 횃불에 물을 대는 것과 같으며, 측량할 수 없이 깊은 못에 임하여 떨어지고자 하는 사람을 떠미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여유롭고 침착하여 서둘러 나아가지 않는 것은 사람과 물건을 해치는 일을 어렵게 여겨 신중히 하기 때문이다.
병기兵器란 상서롭지 못한 기물器物이니, 천도天道가 미워하지만 부득이하여 사용하니, 이것이 천도天道이다.
사람이 에 있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 있는 것과 같다.
〈물고기는〉 물을 얻으면 살고 물을 잃으면 죽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항상 두려워하여 감히 를 잃지 않는 것이다.
호걸豪傑이 관직을 잡고 있으면 국가의 권위가 약해지고, 사람을 살리거나 죽이는 것이 호걸에게 달려있으면 국가의 권위가 고갈되고, 호걸이 머리를 낮추면 국가가 장구하고,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이 군주에게 달려있으면 국가가 편안하고, 사민四民재용財用이 공허하면 국가에 저축이 없게 되고, 사민四民의 재용이 풍족하면 국가가 안락하게 된다.
어진 신하가 안에 있으면 간사한 신하가 밖에 있고, 간사한 신하가 안에 있으면 어진 신하가 죽으니, 안과 밖이 마땅함을 잃으면 를 잇게 된다.
대신大臣이 군주를 의심하면 간사한 자들이 모두 모여들고, 신하가 군주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 상하上下가 마침내 혼란하고, 군주가 신하의 자리를 담당하면 상하가 질서를 잃는다.
현인賢人을 해치는 자는 앙화殃禍삼대三代에 미치고, 현인을 은폐하는 자는 자신이 그 해로움을 받고, 현인을 질투하는 자는 명예가 보전되지 못하고, 현인을 등용하는 자는 복이 자손에게까지 전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어진 이를 등용함을 급하게 여겨서 아름다운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다.
한 사람을 이롭게 하고 백 사람을 해롭게 하면 백성들이 성곽城郭을 버리고 지키지 않으며, 한 사람을 이롭게 하고 만 사람을 해롭게 하면 나라 사람들이 마침내 흩어질 것을 생각하며, 한 사람을 제거하여 백 사람을 이롭게 하면 사람들이 마침내 은택을 사모하며, 한 사람을 제거하여 만 사람을 이롭게 하면 정사가 마침내 어지럽지 않게 된다.


역주
역주1 夫能扶天下之危者……則獲天下之福 : 《新刊增補三略》에 “살펴보건대 이 章은 바로 湯王이 桀王을 정벌하고 武王이 紂王을 정벌한 것과 漢 高祖가 秦나라와 項羽를 멸망시킨 것이 이것이다.[按 此章卽湯之伐桀 武王之伐紂 漢高祖之滅秦項 是也]” 하였다.
역주2 能救天下衆人之禍者 則獲天下之福 : 《新刊增補三略》에 “《敬篇》에 이르기를 ‘正當한 이치로 順從하는 자는 福을 받고, 非理로 역행하는 자는 禍를 받는다.’ 했다.[敬篇云 以正理從順者 福也 以非理逆行者 禍也]” 하였다.
역주3 德澤及於昆蟲 : 《新刊增補三略》에 “역사책에서 말한 ‘湯王의 덕이 금수에게까지 미쳤다.’는 말과 같은 따위이다.[猶史所稱湯德及禽獸之類]” 하였다.
역주4 則國家乖舛 : 괴천
역주5 穆生去而楚危 : 穆生은 楚 元王의 門客이다. 漢 高祖는 천하를 통일한 뒤에 막내아우인 劉交를 楚王에 봉하였으니, 이가 바로 元王이다. 元王은 서책을 좋아하여 魯나라의 申公과 穆生‧白公과 함께 浮丘伯에게서 《詩經》을 배웠는데, 楚나라에 봉해지자 세 사람을 中大夫로 중용하였다. 穆生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元王은 술자리를 베풀 때마다 특별히 穆生을 위해 단술을 장만하였으며 元王의 아들 夷王 또한 그렇게 하였는데, 손자인 王戊가 즉위하여서는 시간이 지나자 단술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穆生은 말하기를 “단술을 마련하지 않으니 王의 마음이 태만해진 것이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楚나라 사람이 장차 나를 죄인으로 만들어 시장에서 재갈을 물릴 것이다.”라고 하고 떠났다. 그 후 王戊가 吳王 濞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申公과 白公도 함께 화를 당하였으나, 穆生은 무사할 수 있었다. 《漢書 권36 楚元王交傳》
역주6 微子去而殷亡 : 微子는 이름이 啓로, 殷나라 紂王의 庶兄인데, 微는 나라 이름이고 子는 爵位이다. 紂王이 무도한 짓을 자행하므로 자주 諫하였으나 듣지 않자 宗祀를 보존하기 위해 殷나라를 떠나 은둔하였는데, 뒤에 周 武王이 宋나라에 봉하여 湯王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論語》 〈微子〉에 “微子는 떠나가고 箕子는 종이 되고 比干은 간하다가 죽었는데,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殷나라에 세 仁者가 있었다.’라고 하셨다.[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라고 보인다.
역주7 降人以體 降心以樂(악) : 《新刊增補三略》에 “《詩經》에 ‘이미 君子를 만나보면 내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였으니, ‘降’자는 마땅히 本字(내릴 강)대로 읽어야 한다.[詩云 旣見君子 我心則降 降者當讀如字]” 하였다.
역주8 : 악
역주9 : 악
역주10 : 락
역주11 乃作樂(악)以節之 使不失其和 : 《新刊增補三略》에 “節은 조절함이요 제재함이다. 《通論》에 ‘작은 즐거움을 ‘喜’라 하고 큰 즐거움을 ‘樂’이라 한다.’ 하였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와 管絃에 펼쳐지니, 聖人이 天下의 즐거움을 함께한 뒤에야 비로소 음악을 만들어 절제하였으니, 帝嚳의 雲門, 帝堯의 咸池, 帝舜의 大韶, 禹王의 大夏, 湯王의 大濩, 武王의 大武와 같은 음악이 이것이다.[節 操也制也 通論曰 小曰喜 大曰樂 樂出於人心 布於管絃 有聖人者 同天下之樂 然後乃作樂以節之 如帝嚳雲門 帝堯咸池 舜之大韶 禹之大夏 湯之大濩 武之大武 是也]” 하였다.
역주12 : 악
역주13 以樂樂 : 악락
역주14 孟子所謂與人樂樂之義……卽孟子所謂獨樂樂 : ‘與人樂樂’은 다른 사람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이고, ‘獨樂樂’은 혼자서 음악을 즐기는 것이다.
《孟子》 〈梁惠王 下〉에, 孟子가 齊 宣王과 음악을 말씀하면서, 宣王에게 “홀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다른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이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하고 물으니, 宣王이 “남과 함께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孟子가 “적은 사람과 음악을 즐김과 많은 사람과 음악을 즐김이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하고 물으니, 宣王이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만 못합니다.”[曰 獨樂樂 與人樂樂孰樂 曰 不若與人 曰 與少樂樂 與衆樂樂孰樂 曰 不若與衆]라고 대답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15 以樂樂身者 其國祚不久而亡 : 《新刊增補三略》에 “商나라 紂王이 桑間과 濮上의 음탕한 음악을 만들고서 밤낮으로 음악에 빠져 나라를 멸망하고 몸을 죽임과 같은 따위이다. ‘여러 사람들과 즐거워한다.’는 것은 위의 註에 보인다.[如商紂作桑間(條)[濮]上靡靡之樂 晝夜沈溺 亡國滅身之類 衆樂 上見註]” 하였다. 《新刊增補三略》 원문의 ‘條’는 《禮記》 〈樂記〉에 의거하여 ‘濮’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6 秦越韓魏而攻齊 : 戰國時代 말기에 秦 昭王은 외숙인 穰侯 魏冉에게 국정을 일임하였는데, 魏冉은 가까이 있는 韓나라와 魏나라를 넘어가 齊나라를 공격하였다. 昭王 26년(B.C. 281)에는 趙나라의 關津을 점령하였는데, 이를 趙나라에 돌려주는 대가로 趙나라로부터 원병을 얻어서 齊나라를 공격하다가, 齊 襄王이 보낸 蘇代의 설득에 넘어가 공격을 중지하였으며, 昭王 36년(B.C. 271)에는 客卿 竈에게 명해서 齊나라의 剛‧壽를 공격하여 자신의 영지인 陶邑을 넓히도록 하였다. 《史記 권72 穰侯列傳》
역주17 范睢說(세)秦 遠交而近攻 : 范睢는 魏나라 사람으로 魏나라 中大夫 須賈를 섬겼는데, 오해를 받아 相國 魏齊에게 모진 매를 맞고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는, 秦나라 사신 王稽를 따라 秦나라에 들어가 昭王에게 魏冉이 韓‧魏를 넘어가서 齊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잘못된 계책이라며 대신 遠交近攻策을 쓸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昭王은 穰侯 魏冉을 내치고 范睢를 재상으로 삼아 遠交近攻策을 써서 六國을 피폐시키고 천하통일의 기초를 세웠다. 《史記 권79 范睢列傳》
역주18 : 세
역주19 忠藎 : 《新刊增補三略》에 “藎은 進이니, 충성과 사랑이 돈독해서 나아가고 나아가 그치지 않는 것이다.[藎 進也 忠愛之篤 進進不已也]” 하였다.
역주20 東胡貪冒頓(묵특)千里馬閼氏(연지)……皆爲所滅 : 冒頓은 蒙古 일대의 騎馬 民族을 통합하여 帝國을 건설한 匈奴의 單于이고, 東胡는 蒙古 高原 동부에 있었던 수렵 민족들이 연맹한 부족국가로, 뒤에 冒頓에 의해 匈奴에 服屬되었다.
冒頓이 처음 單于가 되자, 東胡가 冒頓을 시험하기 위해 사자를 보내 千里馬를 요구하였는데, 冒頓은 순순히 千里馬를 내어주었다. 東胡가 다시 사자를 보내 單于의 애첩인 閼之를 달라고 하자, 冒頓은 또 애첩을 내어주었다. 이에 교만해진 東胡가 匈奴와의 경계에 있는 천여 리의 황무지를 달라고 요구하자, 冒頓은 “땅은 나라의 근본인데 어찌 땅을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東胡를 급습하여 그 왕을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켰다. 《史記 권110 匈奴列傳》
智伯은 春秋時代 말기 晉나라의 六卿 가운데 가장 강성했던 智氏 집안의 智襄子 瑤를 가리키며, 皐狼은 원래 蔡나라 땅이었는데 晉나라의 六卿 가운데 하나인 趙氏가 점령해 있던 땅이다. 智伯 瑤가 卿을 세습한 다음 韓氏와 魏氏에게 땅을 떼어달라고 요구하여 뜻대로 되자, 趙襄子에게도 땅을 떼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趙襄子가 이를 거절하자 智伯 瑤가 韓氏‧魏氏와 함께 趙襄子를 공격하니, 趙襄子는 晉陽으로 도망하였다. 趙襄子는 晉陽城에서 농성하면서 韓氏와 魏氏를 설득하여 밀약을 맺고 함께 智伯 瑤를 협공하여 智氏를 멸망시켰다. 《資治通鑑 권1 周紀》
역주21 東胡貪冒頓 : 묵특
역주22 千里馬閼氏 : 연지
역주23 秦造阿房過制 二世而亡 : 秦 始皇帝는 천하를 통일하고 난 뒤에 황제로서의 위엄을 보이고자 도성인 咸陽에 阿房宮이라는 큰 궁궐을 건축하였는데, 웅장함과 화려함이 역대 최고였으나, 과중한 부역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 始皇帝가 죽고 二世皇帝인 胡亥가 즉위하자, 학정을 이기지 못한 백성들이 사방에서 봉기하여 결국 秦나라는 천하를 통일한 지 2대 만에 멸망하였으며, 阿房宮도 落成을 보지 못한 채 咸陽으로 쳐들어간 項羽에게 불타고 말았다.
역주24 舍己而敎人者……治之要 : 《新刊增補三略》에 “道와 業을 가지고 남을 가르치는 것을 ‘敎’라 이르고, 몸소 위에서 행하여 風化가 아래에까지 動하게 함을 ‘化’라 이른다.[以道業誨人 謂之敎 躬行於上 風動於下 謂之化]” 하였다.
역주25 董子所謂正身以正朝廷……正百官以正萬民 : 董子는 前漢 武帝 때의 학자인 董仲舒를 높여 칭한 것이다. 武帝는 景帝를 이어 즉위하자 처음으로 年號를 사용하여 建元이라 칭하고, 建元 원년(B.C. 140)에 조칙을 내려 賢良方正하고 直言極諫하는 선비를 천거하게 하여 古今의 정치하는 방도를 직접 策問하였는바, 이 구절은 이때 董仲舒가 策問에 답한 내용 중의 일부이다. 《漢書 권56 董仲舒列傳》
역주26 親親仁民愛物……但有厚薄之不同也 : 《孟子》 〈告子 上〉에 “君子가 물건에 대해서는 사랑하기만(아끼기만) 하고 仁하지 않으며 백성(사람)에 대해서는 仁하기만 하고 親하지 않으니, 친척을 친애하고서 백성을 仁하게 하고 백성을 仁하게 하고서 물건을 사랑하는 것이다.[君子之於物也 愛之而弗仁 於民也 仁之而弗親 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라고 보이는바, 朱子는 《集註》에서 “物은 禽獸와 草木을 이른다. 사랑한다는 것은 취함이 때가 있고 씀이 절도가 있음을 이른다.”라고 註하였다.
親‧仁‧愛는 가까이 친애하고 仁德을 베풀고 아끼는 것이어서 모두 사랑이라 할 수 있는데, 세밀히 나누면 親親은 어버이나 친척을 친애하는 것이고 仁民은 사람을 人道로 대하는 것이고, 愛物은 물건을 아끼고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이어서 厚하고 薄한 차이가 있다.
역주27 節文度數 : 《新刊增補三略》에 “天理의 節文이요 人事의 儀則이다.” 하였다.
역주28 夙興夜寐……惻隱之心 : 《新刊增補三略》에 “夙은 일찍이란 뜻이고, 興은 일어남이다. 惻은 서글퍼함이 간절한 것이고, 隱은 애통함이 깊은 것이다.[夙早也 興起也 惻 傷之切也 隱 痛之深也]” 하였다.
역주29 皆義之決也……仁之發見(현)者也 : 《新刊增補三略》에 “義는 마음의 制裁함이고 일의 마땅함이다. 仁은 마음의 德이고 사랑하는 원리이다.” 하였다.
역주30 : 현
역주31 竹帛 : 《新刊增補三略》에 “竹은 대나무를 깎아서 엮은 것이고 帛은 비단이니, 옛날에 종이가 없었으므로 일이 있을 때엔 이 내용을 대나무와 비단에 쓴 것이다.[竹 削竹而編之也 帛 繒也 古者無紙 故有事則書之竹帛也]” 하였다.
역주32 三綱五常之道 : 인간이 지켜야 할 倫理‧道德으로 三綱은 신하가 군주에게 충성하고[君爲臣綱],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고[父爲子綱], 부인이 남편에게 정조를 지키는 것[夫爲婦綱]이며, 五常은 五倫으로 父子有親, 君臣有義, 長幼有序, 夫婦有別, 朋友有信을 가리킨다.
역주33 衆人皆惑……衆疑皆定 : 《新刊增補三略》에 “惑은 迷惑됨이니 따를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요, 疑는 의심하는 것이니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이다.[惑 迷惑也 不知所從 疑 二疑也 不相信也]” 하였다.
역주34 飮射讀法 : 飮은 鄕飮酒禮이고 射는 鄕射禮를 이르는데, 옛날에 지방관이 백성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禮敎를 가르치기 위해 鄕飮酒禮를 행하게 되면 먼저 활쏘기 대회인 鄕射禮를 행하였다. 讀法은 백성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법령을 읽어주고 알려주는 제도이다.
《新刊增補三略》에 “백성들을 모아 권하고 경계하는 명령을 읽게 하는 것이니, 藍田呂氏(呂大臨)가 매월 鄕約을 읽게 한 類가 이것이다.[聚民讀勸誡之令 如藍田呂氏 每月讀鄕約之類 是也]” 하였다.
역주35 (朴)[扑] : 저본의 ‘朴’은 《書經》 〈虞書 舜典〉의 “채찍은 官府의 형벌로 만들고, 회초리는 學校의 형벌로 만든다.[鞭作官刑 扑作敎刑]”에 의거하여 ‘扑’로 바로잡았다.
역주36 二世使趙高 治李斯之獄 : 二世는 秦 二世皇帝인 胡亥이고, 趙高는 宦官으로 二世의 사부이며, 李斯는 楚나라 사람으로 秦 始皇帝를 도와 六國을 통합하는 데 큰 功을 세워 丞相이 된 인물이다.
始皇帝는 長子인 扶蘇가 직간을 자주하자, 멀리 북쪽으로 보내어 蒙恬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는데, 동쪽 지방을 순행하던 중 병이 위독해지자 扶蘇를 불러오게 하면서 有故時에는 帝位를 승계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始皇帝가 갑자기 서거하자, 딴마음을 품은 趙高가 李斯를 유인하여 國喪을 발표하지 않고 詔書를 위조하여 扶蘇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 하고 胡亥를 二世皇帝로 세웠다. 趙高는 權力을 독점하기 위해 李斯가 반란을 도모한다고 모함하니, 二世皇帝는 趙高로 하여금 李斯의 죄를 다스리게 하였다. 趙高는 이 틈을 타 李斯의 三族을 멸하고, 더 나아가 二世皇帝까지 시해하여 秦나라는 결국 망하였으며, 李斯와 趙高는 姦臣의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역주37 孔子云 不患寡而患不均 : 《論語》 〈季氏〉에 “나(丘)는 들으니, 나라를 소유하고 집을 소유한 자는 백성이 적음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함을 근심하며,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고 한다. 고르면 가난함이 없고 和하면 적음이 없고 편안하면 기울어짐이 없다.[丘也聞 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라고 하였는데, 朱子는 《集註》에서 “寡는 백성이 적음을 이르고, 貧은 재물이 궁핍함을 이른다. 均은 각기 분수를 얻음을 이르고, 安은 上下가 서로 편안함을 이른다.[寡謂民少 貧謂財乏 均謂各得其分 安謂上下相安]”라고 하였다.
역주38 詩云……不平謂何 : 師尹은 太師 尹氏로 周 幽王 때의 執政大臣이라 하나 확실하지 않으며, 赫赫은 기세가 등등함을 이른다.
《詩經》 〈小雅 節南山〉에 “높은 저 南山이여. 초목이 골짜기에 가득히 있도다. 赫赫한 太師 尹氏여. 고르지 않으니 일러 무엇 하리오. 하늘이 거듭 병을 내리니 喪亂이 크고 많으며 백성들의 말이 아름다움이 없는데도 일찍이 징계하여 서글퍼하지 않는구나.[節彼南山 有實其猗 赫赫師尹 不平謂何 天方薦瘥 喪亂弘多 民言無嘉 憯莫懲嗟]”라고 보이는바, 이는 家父라는 신하가, 王이 太師 尹氏를 중용하여 나라가 혼란한 것을 풍자한 시라 한다.
역주39 犯上 : 《新刊增補三略》에 “도리를 배반하고 떳떳함을 어지럽히는 것을 ‘犯上’이라 이르니, 예컨대 漢나라의 王莽, 董卓과 같은 따위이다.[背理亂常 謂之犯上 如漢之王莽董卓之類]” 하였다.
역주40 犯上者誅 貪鄙者拘 : 《新刊增補三略》에 “拘는 잡음이니, 예컨대 舜임금이 驩兜를 추방하고 共工을 流配시키고 鯀을 귀양보내고 三苗를 멀리 추방함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拘執也 如舜放驩兜 流共工 殛鯀 竄三苗 是也]” 하였다.
역주41 淸白之士……不可以威刑脅 : 《新刊增補三略》에 “脅은 위엄과 힘으로 서로 두렵게 하는 것이다. 淸白은 마음이 공평하고 깨끗하며 행실이 潔白한 것이다.[脅 以威力相恐也 淸白 心平淸 行潔白也]” 하였다.
역주42 齊之魯仲連 : 魯仲連은 戰國時代 齊나라 말기의 高士이다. 그는 기이한 계책을 잘 냈으나 얽매여 사는 것을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고 趙나라에 은거하고 있었다.
秦나라가 趙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邯鄲을 포위하자, 여러 제후들이 秦나라를 두려워하여 감히 趙나라를 구원하지 못하였다. 魏의 安釐王은 新垣衍이란 辯士를 趙나라에 보내, 秦나라 임금을 황제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는 계책을 고하게 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魯仲連이 “포악한 秦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칭한다면 나는 차라리 東海에 빠져 죽겠다.”라고 하니, 여러 제후들이 이 말을 듣고 연합하여 秦나라 군대를 패퇴시켰다.
齊나라 장군 田單이 齊王에게 천거하여 벼슬을 내리려 하자, 魯仲連은 바닷가로 도망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부귀하고서 남에게 굽히며 살기보다는 차라리 빈천한 채 세상을 가볍게 여기면서 마음대로 살겠다.[吾與富貴而詘於人 寧貧賤而輕世肆志焉]” 하였다. 《史記 권83 魯仲連列傳》
역주43 漢之嚴光周黨 : 嚴光과 周黨은 모두 後漢 초기의 隱士이다. 嚴光은 字가 子陵으로 젊어서 光武帝 劉秀와 同門修學하였는데, 光武帝가 王莽을 토벌하고 황제가 되었으나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光武帝가 특별히 불러 諫議大夫를 제수하였으나 벼슬을 굳이 사양하고 富春山에 은거하여 七里灘에서 낚시질로 세월을 보냈다. 《後漢書 권83 逸民列傳 嚴光》
周黨은 太原 廣陵 사람으로 字가 伯況인데 지조를 지키고 행실을 잘 닦았다. 王莽이 漢나라를 찬탈하자 사방에서 의병과 도적떼가 일어났으나, 그가 사는 廣武 지방에 이르면 모두들 피해서 지나가고 들어가지 않았다. 뒤에 光武帝의 부름을 받고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병을 칭탁하고 두문불출하였으며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後漢書 권113 周黨傳》
역주44 樂毅之於王蠋 : 樂毅는 戰國時代 燕나라의 장수이고, 王蠋은 畫邑 사람으로 齊나라의 충신이다.
樂毅는 연합군을 거느리고 齊 湣王과 濟西에서 싸워 대승하고 승승장구하여 齊나라의 도성인 臨淄까지 함락시켰다. 樂毅는 王蠋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는 畫邑 30리에 일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王蠋을 燕나라로 데려가려 하였으나, 王蠋은 “湣王이 나의 말을 듣지 않으므로 물러나 들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이제 나라가 망하고 군주가 도망하였으니, 나만 홀로 살 수 없다. 忠臣은 두 군주를 섬기지 않고 烈女는 두 남편을 거치지 않는다.” 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史記 권82 田單列傳》
역주45 白公之於宜僚 : 白公은 이름이 勝으로 楚 平王의 손자이고 太子 建의 아들인데, 吳나라로 망명해 있다가 令尹 子西의 주선으로 楚나라에 돌아가 白公에 봉해졌다.
宜僚는 성이 熊으로 楚나라의 용사인데, 500명을 당해냈다 하며 탄환을 잘 던져 백발백중의 솜씨가 있었다.
白公 勝이 熊宜僚로 하여금 子西를 죽이게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였으며, 칼로 위협하였으나 宜僚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태연자약하니, 白公 勝이 마침내 포기하였다. 뒤에 楚나라가 宋나라와 싸울 적에 楚軍이 위기에 빠지자 熊宜僚가 가슴을 헤치고 적의 칼날을 받으며 군대 앞에서 탄환을 희롱하니, 宋나라 장병들이 넋을 잃고 구경하다가 楚軍의 역습에 대패하였는바, 楚 莊王은 이 싸움에서 승리하여 돌아와 霸者가 되었다. 《春秋左氏傳 哀公 16년》, 《淮南子 道應訓》
역주46 必觀 : 《新刊增補三略》에 “일상적인 일을 보는 것을 ‘視’라 하고, 非常한 일을 보는 것을 ‘觀’이라 한다.” 하였다.
역주47 國家將盛將衰 : 《新刊增補三略》에 “王莽이 漢 平帝를 鴆毒으로 살해하자, 北海의 逄萌이 친구들에게 이르기를 ‘三綱이 끊어졌으니 떠나가지 않으면 禍가 장차 사람들에게 미칠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처자식을 버리고 바다를 항해하여 遼東에 나그네가 되어서 스스로 ‘吳市門의 병졸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예이다.[王莽鴆殺平帝 北海逄萌 謂友人曰 三綱絶矣 不去 禍將及人 乃棄妻子 浮海客於遼東 自云吳市門卒 是也]” 하였다.
역주48 國家將盛 : 《新刊增補三略》에 “漢 光武帝 때에 五星이 奎星에 모이고, 아름다운 벼가 있어 한 줄기에 아홉 개의 이삭이 나왔던 조짐이 이것이다.[漢光武帝時 五星聚奎 嘉禾一莖 有九穗之兆 是也]” 하였다.
역주49 至誠之道 可以前知 : 《中庸》 제24장에 “至誠의 道는 일이 닥쳐오기 전에 미리 알 수 있으니, 국가가 장차 일어나려 할 적에는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으며 국가가 장차 망하려 할 적에는 반드시 妖怪스러운 일이 있어, 이것이 蓍草占과 거북점에 나타나며 四體에 動한다. 그리하여 禍와 福이 장차 이를 적에 좋을 것을 반드시 먼저 알며 좋지 못할 것을 반드시 먼저 안다. 그러므로 至誠은 神과 같은 것이다.[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孽 見乎蓍龜 動乎四體 禍福將至 善必先知之 不善必先知之 故至誠如神]”라고 보인다.
역주50 孔子所謂危邦不入亂邦不居 : 《論語》 〈泰伯〉에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으며, 天下에 道가 있으면 나타나고 道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라고 보인다.
《新刊增補三略》에 “나라가 아직 위태로움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紀綱이 이미 문란하므로 亂邦이라 이른 것이다. ‘亂邦不居’는 百里奚가 혼란한 나라의 곡식(녹봉)을 먹지 않은 것과 같다.[雖未至危 而綱紀已紊 故謂之亂邦 百里奚不食亂邦之粟]” 하였다.
역주51 不沽 : 《新刊增補三略》에 “沽는 팖이니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賣也 不聞於人也]” 하였다.
역주52 伊尹傅說……後世無比 : 伊尹은 商나라 湯王의 賢相이고, 傅說은 商나라 高宗(武丁)의 賢相이다.
伊尹은 夏나라 말기 세상이 혼란에 빠지자 有莘이라는 나라의 들에서 농사를 짓고 은둔하였는데, 湯王의 초빙을 받고 출사하여 끝내 湯王을 도와 夏의 桀王을 토벌하고 商 王朝를 열었다.
傅說은 집이 가난하여 傅巖에서 판자로 담을 쌓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高宗이 어진 보필을 염원한 끝에 꿈속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畵像을 그려 물색해서 정승으로 임명하였는바, 《書經》의 〈說命〉은 바로 高宗이 傅說을 정승으로 임명하는 과정과 서로 문답한 내용을 서술한 것이다.
역주53 (耘)[耕] : 저본의 ‘耘’은 明本에 의거하여 ‘耕’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4 版築 : 《新刊增補三略》에 “양쪽 곁에 판자를 끼고 흙을 쌓는 것을 ‘版築’이라 한다. 伊尹은 有莘의 들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湯王이 세 번 사람을 보내어 초빙하자, 마침내 湯王을 도왔다. 傅說이 胥靡(罪人)를 위하여 傅巖에서 版築을 하였는데, 武丁의 꿈에 하늘이 훌륭한 보필을 내려주시므로 찾아서 정승으로 삼았다.[版築兩傍挾板而築土曰版築 伊尹耕於有莘之野 湯三使往聘之 遂相湯 傅說爲胥靡 版築於傅巖 武丁夢 上帝賚以良弼 求以爲相]” 하였다.
역주55 聖王之用兵……討亂臣也 : 《新刊增補三略》에 “兵은 흉기이다. 聖人이 부득이하여 사용하니, 이는 백성들이 塗炭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죽여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면 죽여도 괜찮은 것이고, 적국을 공격하여 적국의 백성들을 사랑할 수 있으면 공격해도 괜찮은 것이다. 이는 모두 포악한 군주를 誅伐하고 백성을 慰問하는 것이다.[兵者凶器也 聖人不得已而用之 爲其生民之塗炭也 故殺人安人 殺之可也 攻其國 愛其民 攻之可也 皆誅其君 弔其民也]” 하였다.
역주56 若決江河而漑爝火……必矣 : 《新刊增補三略》에 “‘漑’는 음이 蓋이니 물을 대는 것이고, ‘爝’은 음이 雀이고 또 다른 음은 肖이니 횃불이다. 擠는 밀침이고, 墜는 음이 錘이다.[漑 音蓋 灌注也 爝 音雀 又音肖 炬火也 擠 排也 墜 音錘]” 하였다.
역주57 夫以義而誅不義……必矣 : 《兵學指南演義》 〈營陣正彀 2 作戰篇〉에는 ‘적을 공격함에 법도가 있어서 함부로 나아가 적을 함부로 죽이지 말아야 하니, 仁義를 구비한 장수가 아니면 이러한 전투의 심오한 의미를 알 수 없음’을 말하면서, 이 대목을 인용 예시하여 장수들이 殺生을 삼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역주58 優游恬淡 : 《新刊增補三略》에 “優游는 자유로운 모양이고, 恬淡은 편안하고 고요한 모양이고, 祥은 좋음이다.[優游 自如貌 恬淡 安靜貌 祥 善也]” 하였다.
역주59 夫兵者……不得已而用之 : 《老子》 31장에 “좋은 兵器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요, 군자가 사용하는 기물이 아니니, 부득이하여 사용한다.[夫佳兵者 不祥之器 非君子之器 不得已而用之]”는 구절이 있다.
역주60 聖王所以優游恬淡……是亦天道也 : 《兵學指南演義》 序文에서 ‘兵學指南’의 뜻을 설명하는 대목에 “隊伍를 편성하여 연습하는 것을 兵이라 하고, 전수받아서 아는 것을 學이라 하고, 방법을 열어 뜻을 보여주는 것을 指라 하고, 한 가지를 주장하여 방향을 정하는 것을 南이라 한다.” 하고, “《三略》에 이르기를 ‘兵은 吉하지 못한 器物이다.’ 하였고, 《尉繚子》에 ‘兵은 凶器이다.’ 하였으니, 사람들이 함부로 군대를 운용할까 두려워해서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역주61 中庸……恐懼乎其所不聞 : 이 내용은 《中庸》 첫 章에 보인다.
역주62 魯三家晉六卿 : 魯三家는 春秋時代 魯나라의 세 公族인 孟孫氏‧叔孫氏‧季孫氏를 이른다. 이들은 桓公의 자손들로 國政을 전횡하여 그 권세가 公室보다 더욱 강성해서 魯나라 임금은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晉六卿은 春秋時代 晉나라의 권세를 잡았던 范氏‧中行氏‧智氏‧趙氏‧魏氏‧韓氏를 이른다.
역주63 豪傑 : 《新刊增補三略》에 “《素書》에 ‘행실이 충분히 儀表가 될 만하고 지혜가 충분히 혐의를 결단할 만하고 信義가 약속을 지킬 수 있고 청렴이 재물을 나누어줄 수 있으면 이는 사람의 豪이며, 직책을 지켜 廢하지 않고 義理에 처하여 〈마음을〉 바꾸지 않고 혐의스러움을 당하고도 구차히 면하려 하지 않고 이익을 보고도 구차히 얻으려 하지 않으면 이는 사람의 傑이다.’ 했다.[素書云 行足以爲儀表 智足以決嫌疑 信可以守約 廉可以使分財 此人之豪也 守職而不廢 處義而不回 見嫌而不苟免 見利而不苟得 此人之傑也]” 하였다.
역주64 農工商賈 謂之四民 : 四民은 네 종류의 백성으로, 원래 士‧農‧工‧商을 이른다. 商은 行商이고, 賈는 물건을 한곳에 쌓아놓고 파는 장사꾼이다.
역주65 傳世 : 《新刊增補三略》에 “傳世는 ‘歷世’라는 말과 같다. 斃는 음이 敝로 죽음이니, 仁義를 간직하고 공경히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傳世猶言歷世也 斃 音敝 死也 懷仁抱義 祗受其斃之意]” 하였다.
역주66 : 一本에는 이 위에 ‘自古’ 두 글자가 더 있다.
역주67 司馬光范純仁呂大防 : 모두 北宋의 名相들이다. 司馬光은 溫國公에 봉해져 司馬溫公으로 불리는바, 神宗‧哲宗 때에 벼슬하였는데, 王安石의 新法을 반대한 舊法黨의 領袖로서 명성이 높았으며, 《資治通鑑》의 저자이기도 하다.
范純仁은 名相 范仲淹의 아들로, 哲宗 때에 尙書僕射 겸 中書侍郞을 역임하면서 선정을 펼쳐 名臣의 반열에 올랐으며 字가 堯夫, 시호가 忠宣이다.
呂大防은 藍田 사람으로 字가 微仲인데, 直諫으로 명망이 높았다. 英宗이 즉위하자 监察御史가 되고 神宗 熙寧 원년(1067)에 求言에 응하여 直言을 서슴지 않았으며, 哲宗 때에 尙書左丞에 오르고 汲郡公에 봉해졌다.
역주68 章惇安燾呂惠卿王中正 : 北宋의 姦臣들로 王安石에게 붙어 新法黨을 만들고, 司馬光‧范純仁‧呂大防 등 명현들을 元祐黨人으로 몰아 축출하였다.
역주69 楊畏……張商英 : 楊畏와 蔡卞, 張商英 역시 北宋의 姦臣들이다.
역주70 靖康之亂 : 靖康은 北宋 欽宗의 年號(1126~1127)로, 靖康의 난리는 宋나라 徽宗‧欽宗이 金나라로 잡혀간 것을 가리킨다.
역주71 靖康 : 《新刊增補三略》에 “靖康은 宋 徽宗의 연호(1126~1127)이다. 哲宗이 별세하고 徽宗이 帝位를 이었는데 간사한 사람을 등용하기를 더욱 좋아해서 많은 小人들이 조정에 가득하였다. 欽宗에게 傳位하였는데, 오래지 않아 金나라 군대가 汴京으로 쳐들어와서 〈徽宗과 欽宗〉 두 황제가 모두 북쪽으로 잡혀가는 禍가 있었다.[靖康 宋徽宗年號 哲宗崩 徽宗嗣位 又喜任姦邪 群小人滿朝 傳位欽宗 未久 金兵入汴 二帝俱有北轅之禍]” 하였다.
역주72 金人 : 《新刊增補三略》에 “金나라는 본래 女眞의 部落이었는데, 遼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疆土를 모두 차지하여 國號를 ‘金’이라 했다.[金本女眞部落 滅遼 竝其地 國號曰金]” 하였다.
역주73 疑主 : 《新刊增補三略》에 “疑主는 權勢가 군주와 비슷한 것이니, 珷玞疑玉(‘珷玞(무부)’라는 옥돌이 玉과 비슷함)의 ‘疑’자와 같다. 혹자는 ‘比肩함이고 유사함이다.’ 하니, 劉寅의 註는 잘못되었다.[疑主 權疑於主也 猶珷玞疑玉之疑字 或曰 擬也似也 劉註非]” 하였다.
역주74 臣當君尊……是上行下職也 : 《新刊增補三略》에 “예컨대 燕王 噲가 國政을 子之에게 맡기자, 子之가 南面하고 王의 일을 수행하고, 噲가 도리어 子之의 신하가 된 것과 같은 사례가 이것이다.[如燕王噲 屬國於子之 子之南面行王事 而噲反爲子之之臣 是也]” 하였다.
역주75 殃禍 : 《新刊增補三略》에 “사람의 害를 ‘禍’라 하고, 하늘의 罰을 ‘殃’이라 한다.[人害曰禍 天罰曰殃]” 하였다.
역주76 弘恭石顯之殺蕭望之 : 弘恭과 石顯은 前漢 成帝 때의 환관이며, 蕭望之는 宣帝‧元帝로부터 재상의 자질을 인정받은 인물로 成帝의 사부이다.
弘恭과 石顯은 成帝의 총애를 믿고 온갖 비행을 저질렀는데, 蕭望之가 자신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여기고 成帝를 충동질해서 蕭望之를 압박하여, 그로 하여금 자살하게 하였다. 成帝는 자신이 잘못하여 어진 사부를 죽게 했다며 눈물을 흘리며 반성했으나 끝내 弘恭과 石顯을 처벌하지 못하였는데, 이로 인해 漢나라는 환관이 발호하게 되어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끝내 외척인 王莽이 찬탈하여 나라가 망하였다.
역주77 武三思之殺五王 : 武三思(?~707)는 則天武后의 조카로 한때 權柄을 잡은 權臣이며, 五王은 則天武后 말년에 권력을 농간하던 張易之‧張昌宗 등을 제거하고 폐위되었던 中宗을 다시 복위시키는 데 공을 세운 平陽王 敬暉, 扶陽王 桓彦範, 漢陽王 張柬之, 南陽王 袁恕己, 博陵王 崔玄暉를 가리킨다.
則天武后는 中宗과 睿宗을 차례로 폐위시키고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되어 국호를 周로 바꾸고는 자신의 친정 집안인 武씨를 대거 등용하고 친정조카인 武三思에게 나라를 물려주려 하였는데, 말년에 狄仁傑의 諫言에 마음을 돌려 房州에 유폐되었던 큰아들 中宗을 다시 불러와 皇太子로 삼았다.
長安 4년(704) 武后가 위독해지자, 張柬之와 崔玄暉가 中臺右丞 敬暉와 司刑少卿 桓彦範, 相王府司馬 袁恕己와 함께 모의하여, 張易之‧張昌宗 등을 죽이고 武后로 하여금 皇太子에게 전위하게 하였다. 이에 中宗이 즉위하여 국호를 다시 唐으로 고치고 연호를 神龍으로 바꾸었는데, 황후가 된 韋氏가 武三思와 사통하고 함께 권력을 독단하였다. 武三思는 중종 등극의 공신들인 敬暉 등 다섯 명의 권력을 빼앗기 위하여 먼저 그들을 王으로 봉한 다음 모두 죄를 뒤집어씌워 죽였다. 《舊唐書 권91 中宗本紀》
역주78 侯覽之殺陳蕃李膺 : 侯覽은 後漢 桓帝 때의 宦官으로, 말을 잘하고 교활해서 桓帝‧靈帝의 신임을 얻어 中常侍가 되고 高乡侯에 봉해졌다. 太傅 陳蕃과 司隷校尉 李膺은 당시의 명사들로, 환관의 발호를 막기 위해 노력한 충신들이다.
桓帝 때 일어난 1차 黨錮의 禍로 많은 명사들이 금고되고 환관들이 권력을 독점하여 폐단이 심화되었는데, 167년 靈帝가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외척 竇武가 李膺‧陳蕃 등과 힘을 합하여 환관들을 제거하려다가 사전에 누설되어 竇武와 陳蕃이 모두 살해당하였다.
이어 169년에 侯覽이 또다시 張儉 등이 파당을 이루었다고 무고하여 李膺‧杜密 등을 주륙하고 黨人과 太學生들을 대거 체포하였으며, 이들과 관련이 있는 자들을 모두 폐출하거나 禁錮하였는바, 이것이 2차 黨錮의 禍이다. 後漢은 黨錮의 禍로 인하여 결국 黃巾賊의 난을 불러오게 되고 차츰 혼란에 빠져 멸망하였다.
역주79 臧文仲之下展禽 : 臧文仲은 魯나라의 대부인 臧孫辰이며, 展禽 역시 魯나라의 大夫인 柳下惠로 이름은 獲이며 禽은 그의 字이다.
臧文仲이 柳下惠를 은폐한 일은 《論語》 〈衛靈公〉에 “臧文仲은 지위를 도둑질한 자일 것이다. 柳下惠의 어짊을 알고서도 더불어 조정에 서지 아니하였구나.[臧文仲 其竊位者與 知柳下惠之賢而不與立也]”라고 보인다.
역주80 龐涓之刖孫臏 : 龐涓은 孫臏과 함께 鬼谷子에게서 兵法을 배웠으나 자신이 魏나라의 장수가 되자, 孫臏의 재능을 시기하여 불러다가 발뒤꿈치를 잘라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역주81 宋三司使李士衡……張鄧公 : 李士衡(959~1032)은 李仕衡으로도 표기하는바, 字가 天均으로 秦州 成紀 사람이다. 北宋 太宗 淳化 연간에 進士에 급제하고, 眞宗 때 河北都轉運使와 三司使 등을 역임하였으며, 仁宗 때 尙書左丞이 되었다.
范仲淹이 지은 〈宋故同州觀察使李公神道碑銘〉에 “公은 성품이 강개하고 변론을 잘하였으며, 사람을 알아보는 데 밝아 재주가 뛰어난 관리 수백 명을 보증하여 임용하였고, 일찍이 呂文靖公, 陳文惠公을 강력히 천거하였으며, 또 일찍이 太傅 張鄧公을 천거하였다.[公性慷慨 善辯論 明於知人 凡保任才吏數百員 嘗力薦呂文靖公 陳文惠公 又嘗薦太傅張鄧公]”라고 보인다. 《范文正集 권11》
文靖公은 呂夷簡의 諡號이고, 文惠公은 陳堯佐의 시호이며, 鄧公은 鄧國公에 봉해진 張士遜을 이른다.
呂夷簡(979~1044)은 壽州 사람으로 字가 坦夫이다. 眞宗 때에 權知開封府가 되고, 仁宗 때에 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으며, 許國公에 봉해지고 太尉로 致仕하였다.
陳堯佐(963~1044)는 婺州 사람으로 자가 希元이고 知餘子라 自號하였다. 벼슬이 參知政事와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고 太子太師로 致仕하였는데, 학문을 좋아하고 詩‧書‧畵에 모두 뛰어났으며 志節이 높고 直諫을 잘하여 《名臣言行錄》에도 등재되었다.
張士遜(964~1049)은 陰城 사람으로 字는 順之이다. 太宗 淳化 연간에 進士에 급제, 벼슬이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文懿이다.
역주82 城郭 : 《新刊增補三略》에 “10리의 城과 7리의 郭이다. ‘城’은 盛과 같으니, 백성을 담는 그릇이다.[十里之城 七里之郭 城與盛同 所以盛民之器也]” 하였다.

삼략직해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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