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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衛公問對直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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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高麗侵新羅어늘 朕遣使諭호되 不奉詔일새 將討之하노니 如何
고려高麗(高句麗)가 자주 신라新羅를 침략하기에 이 사신을 보내어 타일렀으나, 조명詔命을 받들지 않으므로 장차 토벌하려 하니, 어찌해야 하는가?”
原注
唐太宗言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高麗頻數侵擾新羅어늘 朕遣使宣諭호되 不肯奉詔일새 我將興兵討之하노니 其計如何
고려高麗가 자주 신라新羅를 침략하여 소란을 일으키기에 이 사신을 보내어 타일렀으나, 조명詔命을 받들려 하지 않으므로 이 장차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려 하니, 그 계책을 어찌해야 하는가?”
高麗, 新羅 皆東夷國名이라
고려高麗신라新羅는 모두 동이東夷의 나라 이름이다.
新羅 其先後也 在高麗東南이라
신라新羅는 그 선대가 진한陳韓(辰韓)의 후예이니, 고려高麗의 동남쪽에 있었다.
時新羅內附로되 而高麗蓋蘇文 弑其上하고 畏討故 梗化
이때 신라新羅나라에 귀부歸附하였으나, 고려高麗개소문蓋蘇文군주君主시해弑害하고 토벌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교화敎化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다.
朕者 我也 太宗自稱也
’이란 ‘나’이니 태종太宗이 자칭한 것이다.
字朱蒙이요 都平壤하니 古朝鮮也
고구려高句驪는 〈시조始祖의〉 주몽朱蒙이고 평양平壤에 도읍하였으니, 옛 조선朝鮮이다.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探知蓋蘇文自恃知兵하고 謂中國無能討 故違命하니 臣請師三萬擒之하노이다
“탐문해보건대, 개소문蓋蘇文이 스스로 병법兵法을 안다고 믿고 중국中國이 토벌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을 어기는 것이 분명하니, 은 청컨대 3만 명의 군대로 그를 사로잡겠습니다.”
原注
李靖 字藥師 京兆三原人으로 封衛公이라
이정李靖은 자가 약사藥師이니, 경조京兆 삼원三原 사람으로 위국공衛國公에 봉해졌다.
對太宗曰
이정李靖태종太宗에게 대답하였다.
臣探知高麗蓋蘇文 自倚恃能知兵法하고 謂中國地遠하여 不能征討故 違抗詔命하니 臣請以三萬衆擒取之호리이다
이 탐문해보건대, 고려高麗개소문蓋蘇文이 스스로 병법兵法을 안다고 믿고 중국中國이 거리가 멀어서 토벌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명詔命을 어기고 항거하는 것이 분명하니, 은 청컨대 3만 명의 병력으로 그를 사로잡겠습니다.”
蓋蘇文者 高麗東部大人 하고 自爲莫離支하니 其官 如中國吏部尙書也
개소문蓋蘇文고려高麗동부대인東部大人천개소문泉蓋蘇文이니, 정관貞觀 16년(642)에 그 왕인 건무建武를 시해하고 왕의 아우의 아들인 을 왕으로 세우고 스스로 막리지莫離支가 되었는데, 그 관직은 중국의 이부상서吏部尙書와 같다.
소문蘇文은 또 개금蓋金이라고 이름하였으니, 스스로 물속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게 했으므로, 천씨泉氏라 하였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兵少地遙하니 何術臨之
“병력이 적고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무슨 방법으로 대응하려는가?”
原注
太宗言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三萬兵甚少하고 而地數千里之遠하니 卿以何法臨之
“3만의 병력은 매우 적고 지역은 수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 무슨 방법으로 대응하려는가?”
靖曰
이정李靖이 말하였다.
臣以하리이다
정병正兵을 사용하겠습니다.”
原注
李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用正兵臨之하리이다
정병正兵을 사용하여 대응하겠습니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平突厥時이러니 今言正兵 何也
돌궐突厥을 평정할 때에는 기병奇兵을 사용하였는데, 지금 정병正兵을 말함은 어째서인가?”
原注
太宗言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卿平突厥時 用奇兵勝之러니 今征高麗 却言用正兵 何也
돌궐突厥을 평정할 때에는 기병奇兵을 사용하여 승리하였는데, 지금 고려高麗를 정벌함에는 도리어 정병正兵을 쓰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突厥 本西方小國으로 姓阿史那氏 世居金山之陽이라
돌궐突厥은 본래 서방의 작은 나라로 아사나씨阿史那氏이니 대대로 금산金山의 남쪽에 거주하였다.
이요 殷曰鬼方이요 周曰이요 漢曰匈奴 魏曰突厥이니
나라에서는 훈육獯鬻이라 하였고, 나라에서는 귀방鬼方이라 하였고, 나라에서는 험윤玁狁이라 하였고, 나라에서는 흉노匈奴라 하였고, 나라에서는 돌궐突厥이라 하였다.
工於鐵作하여 金山狀如兜鍪하니 其俗呼兜鍪爲突厥하여 因爲國號
쇠를 잘 다뤘는데 금산金山의 형상이 투구 모양처럼 생겼는바, 민간에서 ‘투구[兜䥐]’를 ‘돌궐突厥’이라고 불렀으므로, 이를 국호로 삼은 것이다.
貞觀三年 以李靖爲定襄道總管하여 統諸軍討突厥이러니 四年春二月 襲破突厥於陰山하니 頡利 遁走하니라
정관貞觀 3년(629)에 태종太宗이정李靖정양도총관定襄道總管으로 삼아 여러 군대를 거느리고 돌궐突厥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4년 봄 2월에 돌궐突厥음산陰山에서 습격하여 격파하니, 힐리가한頡利可汗이 도망하였다.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諸葛亮七擒孟獲 無他道也 正兵而已矣니이다
제갈량諸葛亮맹획孟獲을 일곱 번 사로잡은 것은 다른 방도가 없었고, 정병正兵일 뿐이었습니다.”
原注
李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無他道也 用正兵而已矣니이다
諸葛亮諸葛亮
“옛날에 제갈량諸葛亮남만南蠻에 들어가서 맹획孟獲을 일곱 번 풀어주었다가 일곱 번 사로잡았을 적에 다른 방도가 없었고, 다만 정병正兵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原注
○愚謂孔明用正兵이어늘 若何而七擒孟獲乎
○내가 생각하건대 제갈공명諸葛孔明정병正兵을 어떻게 사용하여 맹획孟獲을 일곱 번 사로잡았는가?
그가 어복포魚腹浦의 평평한 백사장 위에 돌을 쌓아 문양을 만든 것을 보면 (세로)과 (가로)이 모두 여덟이었는데, 나라 환온桓溫이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상산常山에 있는 뱀의 형세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구군九軍진법陣法이다.
所謂隅落鉤連하고 曲折相對하여 四頭八尾 觸處爲首하여 敵衝其中하면 兩頭皆救하니 孟獲豈識此術이리오
이른바 ‘네 귀퉁이가 서로 연결되고 곡절曲折이 서로 마주하여 네 머리와 여덟 꼬리가 닿는 곳이 머리가 되어서 적이 그 중간을 충돌하면 양 머리에서 모두 구원한다.’는 것이니, 맹획孟獲이 어찌 이 방법을 알았겠는가.
所以七縱之而七擒也
이 때문에 제갈량諸葛亮이 일곱 번 풀어주었다가 일곱 번 사로잡은 것이다.
諸葛亮 字孔明이요 諸葛 其覆姓也 琅琊陽都人이라
제갈량諸葛亮공명孔明이며 제갈諸葛복성複姓이니 낭야琅琊 양도陽都 사람이다.
先主枉駕顧之하여 後爲軍師將軍하다
선주先主(劉備)가 왕림하여 삼고초려三顧草廬한 뒤에 군사軍師장군將軍이 되었다.
先主崩 事後主하여 爲丞相이러니 建興三年 率衆征南中平之하니라
선주先主가 별세하자, 후주後主(劉禪)를 섬겨 승상이 되었는데, 건흥建興 3년(225)에 병력을 거느리고 남만南蠻을 정벌하여 평정하였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晉馬隆討涼州할새 亦是依八陣圖하여 作偏箱車하여 地廣則用鹿角車營하고 路狹則木屋하여 施於車上하여 且戰且前하니 信乎 正兵 古人所重也로다
나라 마륭馬隆양주涼州를 토벌할 적에도 이 팔진도八陣圖에 의하여 편상거偏箱車를 만들어서, 넓은 지역에서는 녹각거鹿角車의 진영을 사용하고 길이 좁으면 나무로 만든 지붕을 수레 위에 설치하여 싸우면서 전진하였으니, 참으로 정병正兵고인古人들이 소중히 여긴 바이다.”
原注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나라 태시泰始 연간(265〜274)에 마륭馬隆양주涼州수기능樹機能 등을 토벌할 적에도 팔진도八陣圖를 따라 편상거偏箱車를 만들어서, 만약 지형이 넓고 평평하면 녹각거鹿角車를 사용하여 진영을 만들고 도로가 협소하면 나무로 된 지붕을 만들어서 수레 위에 설치하여 싸우면서 전진하였으니, 참으로 정병正兵고인古人이 소중하게 여긴 바이다.”
馬隆 字孝興이니 東平平陸人이라
마륭馬隆효흥孝興이니, 동평東平 평륙平陸 사람이다.
州擧其才堪良將하여 遷司馬督假節宣威將軍이러니 平涼州後 爲平虜將軍西平太守하니라
그의 재주가 뛰어나 장수가 될 만하다고 연주兗州에서 천거하였는데, 사마독司馬督으로 승진하여 절월節鉞을 받고 선위장군宣威將軍이 되었다가, 양주涼州를 평정한 뒤에 평로장군平虜將軍서평태수西平太守가 되었다.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討突厥할새 西行數千里하니 若非正兵이면 安能致遠이릿고
돌궐突厥을 토벌할 적에 서쪽으로 수천 리를 행군하였으니, 만약 정병正兵이 아니면 어찌 먼 곳에 갈 수 있었겠습니까.
偏箱, 鹿角 兵之大要
편상거偏箱車녹각거鹿角車는 군대의 큰 요점입니다.
一則治力하고 一則前拒하고 一則束部伍하여 三者迭相為用하니 斯馬隆所得古法深也니이다
한편으로는 힘을 다스리고 한편으로는 앞에서 막고 한편으로는 군대를 단속하여 세 가지를 번갈아 사용하였으니, 마륭馬隆이 옛 병법兵法을 체득한 것이 이처럼 깊었습니다.”
原注
靖又對曰
이정李靖이 또다시 대답하였다.
臣討突厥之時 西行數千里하니 若非用正兵이면 安能致遠如此哉잇가
돌궐突厥을 토벌할 적에 서쪽으로 수천 리를 행군하였으니, 만약 정병正兵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이 먼 곳까지 갈 수 있었겠습니까.
偏箱車, 鹿角車二者 用兵之大要
편상거偏箱車녹각거鹿角車의 두 가지는 용병하는 큰 요점입니다.
一則用之而治力하고 一則用之而前拒하고 一則用之而束部伍하여 三者更迭하여 相爲便用하니 斯馬隆所得古人之法深也니이다
한편으로는 이것을 사용하여 힘을 다스리고 한편으로는 이것을 사용하여 앞에서 막고 한편으로는 이것을 사용하여 부대를 단속해서 세 가지를 번갈아 사용하였으니, 마륭馬隆이 옛사람의 병법을 체득함이 이처럼 깊었습니다.”
原注
○愚謂兵法 有奇有正이어늘 今李靖但用正而不用奇者 何哉
○내가 생각하건대, 병법에는 기병奇兵이 있고 정병正兵이 있는데, 지금 이정李靖이 다만 정병正兵을 사용하고 기병奇兵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夫兵行之法 惟先有正이요 至於奇者하여는 臨敵變化而爲之耳 靖非不用奇也
군대를 운용하는 방법은 오직 먼저 정병正兵이 있을 뿐이요, 기병奇兵에 이르러서는 을 마주 대하여 변화시켜 만드는 것이니, 이정李靖기병奇兵을 쓰지 않은 것이 아니다.
但西行數千里 用正兵則部曲有制하여 進止安徐
다만 서쪽으로 수천 리를 행군할 적에 정병正兵을 사용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부대에 통제가 있어서 나아가고 멈춤이 편안하고 침착하였던 것이다.
偏箱鹿角 扞外禦內하여 必無所失이요 且八陣亦有奇兵하니 若與敵相遇하여 進退不獲인댄 非出奇 亦安能取勝哉
편상거偏箱車녹각거鹿角車의 진영은 밖을 막고 안을 호위하여 반드시 실수하는 바가 없을 것이요, 또 팔진八陣에도 기병奇兵이 있었으니, 만약 적과 만나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을 때에 기병奇兵을 출동시키지 않으면 또한 어떻게 승리를 취하겠는가.
故曰 善用兵者 無不正이요 無不奇라하니 後之爲將者 不可泥於用正而不用奇也니라
그러므로 병법에 이르기를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정병正兵을 쓰지 않음이 없고 기병奇兵을 쓰지 않음이 없다.” 하였으니, 후세의 장수들은 정병正兵을 쓰는 데에 집착하여 기병奇兵을 쓰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朕破宋老生할새 初交鋒 義師少却이러니 朕親以鐵騎 自南原馳下하여 橫突之한대 老生兵斷後하여 大潰하여
송노생宋老生을 격파할 적에 처음 교전交戰에 우리 의병義兵이 다소 퇴각하였는데, 이 직접 철기鐵騎를 이끌고 남쪽 언덕에서 달려 내려가 으로 충돌하자, 송노생宋老生의 군대가 뒤가 끊겨서 크게 궤멸하였다.
遂擒之하니 此正兵乎
이에 그를 사로잡았으니, 이것은 정병正兵인가?
奇兵乎
기병奇兵인가?”
原注
太宗問李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물었다.
朕破宋老生於할새 初交鋒刃 義師少却이러니 朕親用鐵騎하여 自南原으로 馳騁而下하여 橫突其陣한대
송노생宋老生곽읍霍邑에서 격파할 적에 처음 교전交戰하여 칼날이 교차하자마자 우리 의병義兵이 조금 퇴각하였는데, 이 직접 철기鐵騎를 이용하여 남쪽 언덕에서 달려 내려가 적의 진영을 으로 충돌하였다.
이에 송노생宋老生의 군대가 후미가 끊겨서 크게 궤멸潰滅되어, 마침내 송노생宋老生을 사로잡았으니, 이것은 정병正兵이 되는가?
爲奇兵乎
기병奇兵이 되는가?”
煬帝十三年 唐公至霍邑하니 代王侑 遣郞將宋老生等하여 拒之하니라
양제煬帝 13년(617)에 당공唐公 이연李淵곽읍霍邑에 이르니, 대왕代王 양유楊侑낭장郎將송노생宋老生 등을 보내어 막았다.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陛下 天縱聖武 非學而能이니이다
폐하陛下는 하늘이 내신 성무聖武이니, 배워서 능하신 분이 아닙니다.
臣按兵法 自黃帝以來 先正而後奇하고 先仁義而後權하니이다
이 살펴보건대, 병법兵法황제黃帝 이래로 정병正兵을 먼저 하고 기병奇兵을 뒤에 하였으며, 인의仁義를 먼저 하고 임기응변과 속임수를 뒤에 하였습니다.
原注
李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陛下天縱聖武之資 非學而能者也니이다
폐하陛下는 하늘이 내신 성무聖武의 자질이시니, 배워서 능한 분이 아닙니다.
臣按兵法 以至於今 必先用正而後奇하고 必先以仁義治之而後 用權變譎詐之術하니이다
이 살펴보건대, 병법兵法헌원軒轅 황제黃帝제후諸侯 중에 황제를 참칭한 자들을 정벌하기 위해 처음 군대를 사용한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먼저 정병正兵을 사용하고 기병奇兵을 뒤에 사용하였으며 반드시 먼저 인의仁義로써 다스린 뒤에 임기응변과 속임수를 썼습니다.”
原注
○愚按 權者 一時之用이니 權而得中이면 卽仁義也 仁義豈有不正者哉
○내가 살펴보건대, (權道)이라는 것은 한때에 사용하는 것인바, 저울질하여(時勢를 참작하여) 을 얻으면 바로 인의仁義이니, 인의仁義가 어찌 바르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至於譎하여는 則詭詐之謂 是也
은 ‘거짓으로 속임’을 이르니, 예컨대 ‘ 문공文公이 속이고 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上古之世 聖帝明王 專用仁義하니 仁義者 治天下之常經也
상고시대에 스러운 황제皇帝와 현명한 이 오로지 인의仁義를 사용하였으니, 인의仁義는 천하를 다스리는 떳떳한 법이다.
所謂 古者以仁爲本하고 以義治之之謂正 是也
이른바 ‘옛날에는 을 근본으로 삼고 로써 다스렸으니, 이를 이라 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權爲聖人處變之道어늘
으로 뜻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으로 구제하였으므로 성인聖人에 대처하는 방도가 되었다.
今李靖以權譎竝言하니 蓋兵家權謀詭詐之術이요 非三代聖人之權道也
그런데 지금 이정李靖이 ‘’과 ‘’을 함께 말하였으니, 이는 병가兵家권모權謀와 속이는 방법이요, 삼대三代 성인聖人권도權道가 아니다.
且霍邑之戰 師以義舉者 正也 建成墜馬하여 右軍少却者 奇也니이다
곽읍霍邑의 전투에 군대가 대의大義로 출동한 것은 정병正兵이요, 건성建成이 말에서 떨어지자 우군右軍이 조금 퇴각한 것은 기병奇兵이었습니다.”
原注
且霍邑 與宋老生戰할새 師以義擧者 得其兵法之正也 建成墜馬하여 右師少却者 合乎兵法之奇也니이다
“또 곽읍霍邑에서 송노생宋老生과 싸울 적에 우리 군대가 대의大義로 출동한 것은 병법兵法정병正兵에 맞고, 건성建成이 말에서 떨어지자 우군右軍이 조금 퇴각한 것은 병법兵法기병奇兵에 맞는 것입니다.”
건성建成신요神堯 고조高祖태자太子인데 뒤에 태종太宗에게 살해되었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彼時少却하여 幾敗大事어늘 曷謂奇耶
“그때 조금 퇴각하여 거의 대사大事를 망칠 뻔하였는데, 어찌하여 기병奇兵이라고 말하는가?”
原注
太宗言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彼時右軍少却하여 幾敗吾之大事어늘 何以謂之奇邪
“그때 우군右軍이 조금 퇴각하여 거의 우리의 대사大事를 망칠 뻔하였는데, 어찌하여 기병奇兵이라고 말하는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凡兵 以前向為正하고 後却為奇니이다
“무릇 군대는 앞으로 향하는 것을 정병正兵이라 하고, 뒤로 퇴각하는 것을 기병奇兵이라 합니다.
且右軍不却이면 則老生安致之來哉잇가
우군右軍이 퇴각하지 않았으면 송노생宋老生이 어찌 싸우러 왔겠습니까.
法曰 利而誘之하고 亂而取之라하니 老生不知兵하고 恃勇急進이라가 不意斷後하여 見擒於陛下하니 此所謂以奇為正也니이다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적에게 이익을 보여주어 유인하고 적이 혼란한 틈을 타서 취한다.’ 하였으니, 송노생宋老生이 병법을 알지 못하면서 용맹을 믿고 급히 전진하였다가 뜻밖에 뒤가 끊겨서 폐하陛下에게 사로잡혔으니, 이것이 이른바 ‘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原注
李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凡兵 前向者爲正이요 後却者爲奇니이다
“무릇 군대는 앞으로 향하는 것을 정병正兵이라 하고, 뒤로 퇴각하는 것을 기병奇兵이라고 합니다.
且右軍初不少却이면 則老生之兵 安能致之而來哉잇가
우군右軍이 당초에 조금 퇴각하지 않았으면 송노생宋老生의 군대를 어찌 유인하여 쳐들어오게 했겠습니까.
兵法曰 以利誘之使來하고 因其亂而取之라하니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이익으로 유인하여 적을 오게 하고, 적이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취한다.’ 하였으니,
宋老生本不知兵하고 倚恃其勇而急進이라가 不料鐵騎自南原馳下하여 橫突其陣하여 兵遂斷後하여 見擒於陛下하니
송노생宋老生이 본래 병법兵法을 알지 못하면서 자신의 용맹을 믿고 급히 전진하다가 폐하陛下철기병鐵騎兵이 남쪽 언덕에서 달려 내려와 측면에서 그의 진영으로 돌진해 올 것을 헤아리지 못하여, 마침내 군대의 후미가 끊겨서 폐하陛下에게 사로잡혔으니,
此所謂以奇爲正也니이다
이것이 이른바 ‘기병奇兵정병正兵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昔春秋時 晉與楚戰할새 胥臣以師犯陳蔡하니 此卽向前爲正也
옛날 춘추시대春秋時代나라가 나라와 싸울 적에 서신胥臣이 군대를 이끌고 두 나라의 군대를 범하였으니, 이는 바로 앞을 향하여 정병正兵으로 삼은 것이다.
狐毛設二旆而退하고 欒枝使輿曳柴僞遁하니 此卽後却爲奇也
호모狐毛가 두 깃발을 설치하고서 후퇴하고 난지欒枝가 병사들로 하여금 수레로 나뭇단을 끌면서 거짓으로 도망하도록 하였으니, 이는 바로 뒤로 퇴각하여 기병奇兵으로 삼은 것이다.
나라 군대가 달려오자, 원진原軫극진郤溱중군中軍공족公族으로 초군楚軍을 가로질러 공격하였고, 호모狐毛호언狐偃상군上軍을 이끌고 나라 장수 자서子西를 협공하여 나라 군대를 크게 패퇴시켰다.
此與霍邑之戰同하니 皆以奇爲正也
이는 곽읍霍邑의 전투와 같으니, 모두 기병奇兵정병正兵으로 삼은 것이다.
但狐毛, 欒枝 設奇誘楚人之來하여 而右軍少却하고 建成 墜馬하여 偶合出奇之道耳 向非太宗天授 幾何而不爲老生所勝與
다만, 호모狐毛난지欒枝기병奇兵을 설치해서 나라 군대가 오도록 유인하여 우군右軍이 조금 퇴각하였고, 건성建成은 말에서 떨어져 우연히 기병奇兵을 출동하는 방도方道에 합치되었을 뿐이니, 만일 그때 하늘이 내려준 태종太宗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송노생宋老生에게 패전하지 않았겠는가.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去病 暗與孫吳合이라하니 誠有是夫인저
곽거병霍去病이 은연중 손자孫子오자吳子와 부합했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이러한 경우가 있는가 보다.
當右軍之却也 高祖失色이러니 及朕奮擊하여 反為我利하여 孫吳暗合하니 卿實知言이로다
우군右軍이 퇴각할 적에 고조高祖께서 얼굴이 흙빛이 되셨는데, 이 분발하여 공격해서 도리어 우리의 이익이 되어 손자孫子오자吳子와 은연중 부합하였으니, 은 실로 이치를 아는 말을 하는구나.”
原注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漢武時 이라하니 誠實有此事也
무제武帝 때에 곽거병霍去病이 장수가 되어서 은연중 손자孫子오자吳子와 서로 부합했다고 하였는데, 진실로 이러한 일이 있는 것이다.
夫當其右軍少却하여 高祖失色이러니 及朕以鐵騎 奮而擊之하여 反爲我之所利하여 與孫吳暗合하니 卿實知言이라하니라
우리 우군右軍이 조금 퇴각할 적에 고조高祖께서 얼굴이 흙빛이 되셨는데, 철기鐵騎를 이끌고 분발하여 공격해서 도리어 우리에게 이익이 되어 은연중 손자孫子오자吳子와 부합하였으니, 은 실로 이치를 아는 말을 한다.”
蓋以右軍少却으로 暗合孫吳出奇取勝之法이라
이는 우군右軍이 조금 퇴각한 것이 손자孫子오자吳子기병奇兵을 내어 승리를 취한 법과 은연중 부합한 것이다.
漢武嘗欲敎去病孫吳兵法한대 去病對曰 顧方略如何耳 不至學古兵法也라하더니 凡行軍制勝 多與孫吳暗合이라
무제武帝가 일찍이 곽거병霍去病에게 손자孫子오자吳子의 병법을 가르치려고 하자, 곽거병霍去病이 대답하기를 “장수는 방략方略이 어떠한가를 따질 뿐이니, 굳이 옛 병법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는데, 무릇 군대를 운용하여 승리할 적에는 대부분 손자孫子오자吳子의 병법과 은연중 부합하였다.
霍去病 衛靑子也 年十八 善騎射하여 從大將軍하여姚校尉하여 屢有功하고 後爲驃騎將軍하니라
곽거병霍去病위청衛靑의 누이의 아들이니, 18세에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여, 대장군 위청衛靑을 따라 출전해서 표요교위剽姚校尉가 되어 여러 번 공을 세우고, 뒤에 표기장군驃騎將軍이 되었다.
高祖 唐神堯高祖也
고조高祖나라의 신요神堯 고조高祖이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凡兵却 皆謂之奇乎
“무릇 군대가 퇴각하는 것을 다 기병奇兵이라고 말하는가?”
原注
太宗問李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물었다.
凡兵却 皆可謂之奇否乎
“무릇 군대가 퇴각하는 것을 모두 기병奇兵이라고 이를 수 있는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不然하니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夫兵却 而不齊하고 鼓大小而不應하고 而不一이면 此真敗者也 非奇也니이다
군대가 퇴각할 적에 깃발이 어긋나서 가지런하지 못하고, 북소리가 크고 작아 서로 응하지 못하며, 장수가 호령을 내리는데도 병사들이 시끄럽게 떠들어서 통일되지 못하면, 이것은 참으로 패한 것이지 기병奇兵이 아닙니다.
若旗齊鼓應하고 號令如一이로되 紛紛紜紜이면 雖退走 非敗也 必有奇也니이다
만약 깃발이 가지런하고 북소리가 서로 응하며 호령이 한결같으면서도 군대가 무질서한 듯이 보이면, 적이 비록 후퇴하여 도망하더라도 참으로 패한 것이 아니요 반드시 기병奇兵이 있는 것입니다.
法曰 佯勿追라하고 又曰 能而示之不能이라하니 皆奇之謂也니이다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거짓으로 패주하는 자는 추격하지 말라.’ 하였고, 또 이르기를 ‘능하거든 능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라.’ 하였으니, 모두 기병奇兵을 말한 것입니다.”
原注
靖對太宗曰
이정李靖태종太宗에게 대답하였다.
不然하니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夫兵之却也 旗幟參差而不能齊하고 鼓音大小而不相應하고 而不歸一하면 此乃眞敗也 非所謂奇也니이다
군대가 퇴각할 적에 깃발이 어긋나서 서로 가지런하지 못하고, 북소리가 크고 작아서 서로 응하지 못하며, 장수가 호령을 내리는데도 병사들이 시끄럽게 떠들어서 한결같지 못하면, 이것은 참으로 패한 것이지 이른바 기병奇兵이 아닙니다.
若旗幟齊整하고 鼓聲相應하고 號令如一이로되 紛紛紜紜하여 示之以亂이면 雖退 非眞敗也 必有奇伏也니이다
만약 깃발이 정돈되고 북소리가 서로 응하며 호령이 한결같은데도 군대가 무질서하여 어지러운 것처럼 보이면, 적이 비록 후퇴하더라도 참으로 패한 것이 아니요 반드시 기병奇兵의 매복이 있는 것입니다.”
非奇而何
예컨대, 한신韓信이 거짓으로 패주한 것과 난지欒枝가 거짓으로 도망한 것이 기병奇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在兵法 有曰 佯北者勿追라하고 又曰 將本能而佯示之以不能이라하니 皆奇之謂也니이다
병법兵法에 ‘거짓으로 패주하는 자는 추격하지 말라.’ 하였고, 또 이르기를 ‘장수가 본래 유능하거든, 거짓으로 능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라.’ 하였으니, 모두 기병奇兵을 말한 것입니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霍邑之戰 右軍少却 其天乎인저
곽읍霍邑의 전투에서 우리 우군右軍이 조금 퇴각한 것은 천명天命일 것이다.
老生被擒 其人乎인저
송노생宋老生이 사로잡힌 것은 인사人事일 것이다.”
原注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霍邑之戰 右軍少却 其係之天命乎인저
곽읍霍邑의 전투에서 우리 우군右軍이 조금 퇴각한 것은 천명天命에 관계될 것이다.
老生被擒 其係之人事乎인저
송노생宋老生이 사로잡힌 것은 인사人事에 관계될 것이다.”
言右師偶爾少却하여 而誘老生之來하니 是天命使之也 太宗以鐵騎 自南原馳下하여 橫突之하여 老生兵潰而擒하니 是人力爲之也
우사右師가 우연히 조금 퇴각하여 송노생宋老生이 오도록 유도하였으니, 이것은 천명天命이 그렇게 시킨 것이요, 태종太宗철기鐵騎를 이끌고 남쪽 언덕에서 달려 내려가 측면으로 돌진하여 송노생宋老生의 군대가 궤멸되어 사로잡혔으니, 이것은 인력으로 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靖曰
이정李靖이 말하였다.
若非正兵變為奇하고 奇兵變為正이면 則安能勝哉잇가
“만약 정병正兵을 바꾸어 기병奇兵으로 만들고 기병奇兵을 바꾸어 정병正兵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善用兵者 奇正人而已 變而神之 所以推乎天也니이다
그러므로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기병奇兵정병正兵이 사람에게 달려있을 뿐, 변화하여 신묘神妙하게 하는 것은 하늘에 미루는 것입니다.”
太宗하다
이에 태종太宗이 고개를 끄덕였다.
原注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凡戰 若非正兵或變而爲奇하고 奇兵或變而爲正하여 使敵莫測吾奇正之形이면 則亦安能致勝哉잇가
“전투를 함에 만약 정병正兵을 혹 바꾸어 기병奇兵으로 만들기도 하고 기병奇兵을 혹 바꾸어 정병正兵으로 만들기도 하여, 적으로 하여금 우리의 기병奇兵정병正兵의 형체를 헤아릴 수 없게 하지 않는다면, 또한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善能用兵者 奇正皆在人而已 變化而入於神妙不測 所以推之於天也니이다
그러므로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기병奇兵정병正兵의 운용이 모두 사람에게 달려있을 뿐, 변화하여 신묘神妙해서 측량할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에 미루는 것입니다.”
太宗已知其義하고 遂低首하니라
이에 태종太宗이 그 뜻을 충분히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奇正 素分之歟
기병奇兵정병正兵은 평소에 나누는 것인가?
臨時制之歟
싸울 때에 임박하여 만드는 것인가?”
原注
太宗問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물었다.
奇與正 平日素分之歟
기병奇兵정병正兵은 평소에 미리 나누어두는 것인가?
乃臨時制之歟
아니면 싸울 때에 임하여 만드는 것인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按曹公新書曰 己二而敵一이면 則一術為正하고 一術為奇 己五而敵一이면 則三術為正하고 二術為奇라하니 此言大略니이다
조공曹公(曹操)의 《신서新書》를 살펴보니 이르기를 ‘우리가 2이고 적이 1이면 한 (부대)을 으로 삼고 한 로 삼으며, 우리가 5군이고 적이 1군이면 세 으로 삼고 두 로 삼는다.’ 하였으니, 이것은 대략을 말한 것입니다.
原注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按 有曰 己二軍이요 敵一軍이면 則我以一術爲正하고 以一術爲奇
“신이 조공曹公의 《신서新書》를 살펴보건대, 여기에 이르기를 ‘우리가 2이고 적이 1이면 우리는 한 군대를 정병正兵으로 삼고 한 군대를 기병奇兵으로 삼으며,
己五軍이요 敵一軍이면 則我以三術爲正하고 以二術爲奇라하니 此但言其大略耳
우리가 5군이고 적이 1군이면 우리는 세 군대를 정병正兵으로 삼고 두 군대를 기병奇兵으로 삼는다.’ 하였으니, 이는 다만 그 대략을 말했을 뿐입니다.”
假如己一而敵二 己一而敵五 則以何術爲正하고 以何術爲奇乎잇가
가령 우리가 1군이고 적이 2군이며, 우리가 1군이고 적이 5군이면 무슨 군대를 정병正兵으로 삼고, 무슨 군대를 기병奇兵으로 삼겠는가.
云 曹公但言奇正之大略이요 非奇正之深妙者也라하니라
그러므로 조공曹公은 다만 의 대략을 말했을 뿐이요, 심묘深妙함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唯孫武云 戰勢不過奇正하니 奇正之變 不可勝窮이라
오직 손무孫武가 말하기를 ‘싸우는 형세는 에 지나지 않으니, 의 변화를 이루 다할 수가 없다.
奇正相生 如循環之無端하니 孰能窮之리오하니 斯得之矣
상생相生함은 끝없이 순환하는 것과 같으니, 누가 이것을 다할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 말이 맞습니다.
安有素分之邪잇가
어찌 평소에 나눌 수가 있겠습니까.
原注
唯孫武子有云 戰勢不過奇正二者하니 奇正之變 不可盡窮焉이라
“오직 손무자孫武子(孫武)가 이르기를 ‘싸우는 형세는 두 가지에 지나지 않는데, 의 변화를 다할 수가 없다.
奇正之變 謂奇或變而爲正하고 正或變而爲奇也
의 변화는 혹 기병奇兵이 변하여 정병正兵이 되고 혹 정병正兵이 변하여 기병奇兵이 되는 것을 이르며,
奇正相生 謂或以奇而生正하고 或以正而生奇하여 如環循轉하여 無有端倪하니 誰能盡之리오하니
상생相生은 혹 기병奇兵으로써 정병正兵을 내고 혹 정병正兵으로써 기병奇兵을 내어 끝없이 순환하여 도는 것과 같음을 이르니, 누가 이것을 다할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斯言 乃得奇正之妙耳
이 말이 바로 의 묘함을 제대로 표현하였습니다.
安有奇正平日素分之理邪잇가
어찌 기병奇兵정병正兵이 평소에 미리 나뉠 리가 있겠습니까.”
若士卒未習吾法하고 偏裨未熟吾令이면 則必為之二術하여 教戰時 各認旗鼓하여 迭相分合이라
만약 병사들이 나의 군법을 익히지 못하고, 편장偏將비장裨將이 나의 명령에 숙달하지 못하면, 반드시 두 군대를 만들어서 전투를 가르칠 적에 각각 해당하는 깃발과 북소리를 알아서 번갈아 서로 나누고 합치게 해야 합니다.
曰分合爲變이라하니 此教戰之術耳니이다
그러므로 병법에 ‘나누고 합치는 것을 변화로 삼는다.’ 하였으니, 이것이 전투를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教閱既成하여 衆知吾法然後 如驅群羊하여 由將所指 孰分奇正之別哉잇가
훈련이 이미 끝나서 병사들이 나의 군법을 안 뒤에는, 양떼를 모는 것처럼 하여 장수가 지시하는 바를 따르게 할 수 있으니, 어찌 기병奇兵정병正兵의 분별을 나누겠습니까.
原注
若士卒未曾閑習吾之軍法하고 偏裨未曾慣熟吾之號令이면 則必爲之二術하여 敎戰之時 各認本隊旗鼓하여 更迭爲分合이라
“만약 병사들이 일찍이 나(장수)의 군법을 익히지 못하고, 편장偏將비장裨將이 일찍이 나의 호령에 익숙하지 못하면, 반드시 두 군대를 만들어서 전투를 가르칠 적에 각각 본대本隊의 깃발과 북소리를 알아서 번갈아 나누고 합치게 해야 합니다.
曰分合爲變이라하니 謂分而合하고 合而分하여 更迭變化 此乃敎戰之術耳니이다
그러므로 병법에 이르기를 ‘나누고 합치는 것으로 변화를 삼는다.’ 하였으니, 나누었다가 합치고 합쳤다가 나누어서 번갈아 변화함을 말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전투를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敎閱旣成之後 衆人皆知吾之軍法然後 如驅群羊하여 或往或來 由將所指 孰能分其奇正之別哉잇가
훈련이 이미 끝나서 병사들이 모두 나의 군법을 안 뒤에는 양떼를 모는 것처럼 하여, 가고 오는 것을 장수가 지시하는 바에 따르게 하여야 하니, 어찌 기병奇兵정병正兵의 분별을 나누겠습니까.”
孫武所謂形人而我無形 此乃奇正之極致
손무孫武가 말한 ‘적에게 형세(형체)를 드러내어 보이되 우리는 실제로 형체가 없게 한다.’는 것이 바로 기병奇兵정병正兵의 극치입니다.
是以 素分者 教閱也 臨時制變者 不可勝窮也니이다
이 때문에 평소 군대를 나누는 것은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이요, 싸울 때에 임박해서 변화하는 것은 이루 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原注
손무孫武가 말한 ‘의 형체를 적에게 보여주되, 우리는 실로 의 형체가 없다.’라는 것이 바로 의 지극한 이치입니다.
是以 奇正素分者 敎閱之法也 或奇而示之正하고 或正而示之奇하여 臨時相變하여 奇正不可勝窮之道也니이다
이 때문에 을 평소 나누는 것은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이요, 혹 기병奇兵이면서 정병正兵인 것처럼 보이고 혹 정병正兵이면서 기병奇兵인 것처럼 보여서, 싸울 때에 서로 변화하여 적으로 하여금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의 다할 수 없는 방도입니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深乎深乎
“깊고 깊다.
曹公必知之矣리라
조공曹公이 반드시 이것을 알았을 것이다.
但新書 所以授諸將而已 非奇正本法이리라
다만 《신서新書》는 여러 장수들에게 가르쳐준 것일 뿐이요, 의 본래 법이 아닐 것이다.”
原注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奇正之法 深遠乎哉
의 법이 심원하다.”
重言深乎深乎者 嘆其奇正之法 不可以淺近求之也
심호심호深乎深乎’라고 거듭 말한 것은 의 법을 가볍게 구할 수 없음을 감탄한 것이다.
奇正之法雖深이나 而曹公必能知之로되 但新書 所以授諸將而已 非論奇正本法也 蓋曹公姦詭하여 不令時人得知奇正之妙耳
의 법이 비록 심오하더라도 조공曹公은 반드시 이것을 알았을 터인데, 다만 《신서新書》는 여러 장수들에게 가르쳐주었을 뿐이요 의 본래 법을 논한 것이 아니니, 조공曹公이 간사하게 속여서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의 묘리를 알지 못하게 한 것이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曹公云 奇兵旁擊이라하니 卿謂若何
조공曹公이 이르기를 ‘기병奇兵이 옆에서 공격한다.’고 하였으니, 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原注
太宗言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曹公註 云 正者 當敵이요 奇者 從旁擊不備也라하니 卿謂其說若何
조공曹公이 《손무자孫武子》의 ‘정병正兵으로 합하고 기병奇兵으로 승리한다.’라는 구절 아래에 ‘정병正兵은 적을 담당하고 기병奇兵은 옆에서 방비하지 않는 적을 공격한다.’라고 하였으니, 은 그 말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按曹公註孫子曰 先出合戰為正이요 後出為奇라하니 此與旁擊之說異焉하니이다
이 살펴보건대, 조공曹公이 《손자孫子》에 하기를 ‘먼저 나와서 적과 교전하는 것이 정병正兵이요 뒤에 나오는 것이 기병奇兵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옆에서 공격한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原注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嘗按曹公註孫子 有云 先出與人合戰者爲正이요 在後出者爲奇라하니 此又與旁擊之說不同焉하니이다
이 일찍이 조공曹公이 《손자孫子》에 한 것을 살펴보니, 이르기를 ‘먼저 나와서 적과 교전하는 것이 정병正兵이요 뒤에서 나오는 것이 기병奇兵이다.’ 하였으니, 이는 또 ‘옆에서 공격한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臣愚 謂 大衆所合 為正이요 將所自出 為奇라하오니 烏有先後旁擊之拘哉잇가
어리석은 은 큰 병력을 회전會戰하는 것이 정병正兵이요, 장군이 직접 데리고 출동하는 것이 기병奇兵이라고 여기니, 어찌 먼저 나오고 뒤에 나옴과 옆에서 공격하는 것에 얽매일 것이 있겠습니까.”
原注
臣愚 謂 大衆與敵所合者 爲正兵이요 大將所自出者 爲奇兵이라하니 烏有先出爲正, 後出爲奇 與從旁擊不備之拘執哉잇가
“어리석은 은 큰 병력이 적과 회전會戰하는 것이 정병正兵이고, 대장이 직접 데리고 출동하는 것이 기병奇兵이라 여기니, 어찌 먼저 출동한 것이 정병이고 뒤에 출동한 것이 기병이며, 옆에서 대비하지 않는 적을 공격한다는 것을 고집할 것이 있겠습니까.”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吾之正 使敵視以為奇하고 吾之奇 使敵視以為正 斯所謂形人者歟인저
“우리의 정병正兵을 적이 보고서 기병奇兵이라고 여기게 하고, 우리의 기병奇兵을 적이 보고서 정병正兵이라고 여기게 하는 것, 이것이 이른바 ‘형체를 남에게 드러내어 보인다.’는 것이리라.
以奇為正하고 以正為奇하여 變化莫測 斯所謂無形者歟인저
기병奇兵정병正兵으로 삼고 정병正兵기병奇兵으로 삼아서 변화하여 측량할 수 없는 것, 이것이 이른바 ‘형체가 없게 한다.’는 것이리라.”
靖再拜曰
이정李靖재배再拜하고 말하였다.
陛下神聖 出古人하시니 非臣所及이니이다
폐하陛下신성神聖함은 옛사람보다 크게 뛰어나시니, 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原注
太宗言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吾之正兵 使敵人視之 反疑以爲奇하고 吾之奇兵 使敵人視之 反疑以爲正 斯孫子所謂形人者歟인저
“우리의 정병正兵을 적이 보고서 도리어 기병奇兵으로 의심하게 하고, 우리의 기병奇兵을 적이 보고서 도리어 정병正兵으로 의심하게 하는 것이 손자孫子가 말한 ‘형체를 남에게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리라.
吾能以奇兵變爲正하고 正兵變爲奇하여 奇正變化 不可測度인저
우리가 기병奇兵정병正兵으로 바꾸고 정병正兵기병奇兵으로 바꿔서 의 변화를 측량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손자孫子가 말한 ‘형체가 없게 한다.’는 것이리라.”
靖再拜而對曰
이정李靖재배再拜하고 대답하였다.
陛下神聖之姿 逈出於古人하시니 非臣所能及也니이다
폐하陛下신성神聖한 자질이 옛사람보다 크게 뛰어나시니, 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原注
○或問 奇何以變而爲正하고 正何以變而爲奇耶 愚謂
○혹자가 “기병奇兵을 어떻게 정병正兵으로 바꾸고, 정병正兵을 어떻게 기병奇兵으로 바꿉니까?” 라고 묻기에 내가 대답하였다.
奇正之道 變化無窮하여 非一言而能盡이라
는 변화가 무궁무진해서 한마디 말로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大衆所合 固爲正이니 正而變爲奇也
큰 병력으로 회전會戰하는 것이 본래 정병正兵이니, 나라가 나라와 싸울 적에 호모狐毛가 두 깃발을 설치하고서 후퇴하고 난지欒枝가 수레로 나뭇단을 끌며 달아난 것은, 정병正兵기병奇兵으로 바꾼 것이다.
장수가 직접 출동한 것이 본래 기병奇兵이니, 예컨대 손빈孫臏나라 지역에 들어가서 군대로 하여금 첫날에는 10만 개의 취사장을 만들게 하고, 다음날에는 5만 개를 만들게 하고, 또 다음날에는 3만 개를 만들게 하였으며, 마릉馬陵에 이르러서 1만 명을 길 좌우에 매복시켜 마침내 방연龐涓을 죽이고 나라 군대를 격파한 것은, 기병奇兵정병正兵으로 바꾼 것이다.
不特此也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凡佚而示之勞하고 飽而示之飢 非變正而爲奇歟
무릇 편안하면서 수고로운 것처럼 보이고, 배부르면서 굶주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정병正兵기병奇兵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겠는가.
非變奇而爲正歟
한신韓信이〉 거짓으로 대장군大將軍의 깃발과 북을 버리고 수상水上의 진영으로 달아난 것이 기병奇兵정병正兵으로 바꾼 것이 아니겠는가.
善用兵者 正亦勝하고 奇亦勝하여 使敵不知我所以制勝之形이니 斯能應變於無窮矣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정병正兵으로도 승리하고 기병奇兵으로도 승리하여, 적으로 하여금 우리가 승리하는 형체를 알지 못하게 하니, 이렇게 하면 무궁한 변화에 능히 응할 수 있게 된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分合為變者 奇正安在
“군대를 나누고 합침을 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 어디에 있는가?”
原注
太宗言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分而合하고 合而分하여 互相更變 奇正之法 安在
“군대를 나누었다가 합치고 합쳤다가 나누어서 서로 번갈아 바꾸는 것은, 의 법이 어디에 있는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善用兵者 無不正이요 無不奇하여 使敵莫測이라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정병正兵 아닌 것이 없고 기병奇兵 아닌 것이 없어서, 적으로 하여금 측량하지 못하게 합니다.
故正亦勝하고 奇亦勝이니이다
그러므로 정병正兵으로도 승리하고 기병奇兵으로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三軍之士 止知其勝하고 莫知其所以勝하나니 非變而通이면 安能至是哉잇가
삼군三軍의 병사들이 다만 그 승리하는 것만 알고 그 승리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니, 변화에 따라 통달하는 자가 아니면 어찌 여기에 이르겠습니까.
分合所出 唯孫武能之 吳起而下 莫可及焉이니이다
나누고 합침을 내는 것은 오직 손무孫武만이 능하였고, 오기吳起 이하는 이에 미칠 수가 없습니다.”
原注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善用兵者 無不是正이요 無不是奇하여 使敵人莫可測量이라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정병正兵 아닌 것이 없고 기병奇兵 아닌 것이 없어서, 적으로 하여금 측량할 수 없게 합니다.
用正兵亦勝하고 奇兵亦勝이니이다
그러므로 정병正兵을 사용하여도 승리하고 기병奇兵을 사용하여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吾三軍之士 止知其破軍殺將而取勝이요 莫知其陰謀秘計所以制勝之道하나니 非分合變化而能通이면 安能至於如此之妙哉잇가
우리 삼군三軍의 병사들이 다만 적군을 격파하고 적장을 죽여서 승리를 취하는 것만 알고, 그 음모와 비밀스러운 계책으로 승리하는 방도를 알지 못하니, 나누고 합침을 자유자재로 변화하여 능통한 자가 아니면 어찌 이와 같이 신묘함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分合所出 唯孫武一人能之 自吳起而下 皆莫可及也니이다
나누고 합침을 내는 것은 오직 손무孫武 한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오기吳起로부터 이하는 모두 미칠 수가 없습니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吳術若何
오기吳起의 방법은 어떠한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請略言之호리이다
이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魏武侯問吳起兩軍相向한대 起曰
나라 무후武侯오기吳起에게 피아彼我의 양군이 서로 대치하는 방법을 묻자, 오기吳起가 대답하기를
使賤而勇者 前擊호되交而北하고 北而勿罰하고 觀敵進取하여
‘신분이 미천하면서 용감한 자로 하여금 앞에서 공격하게 하되, 처음 교전하여 패배하게 하고 패배하여도 벌주지 말고서 적의 진취하는 것을 살펴보아,
一坐一起하여 奔北不追 則敵有謀矣니이다
적이 한 번 앉고 한 번 일어나면서 패하는 우리를 추격하지 않으면 적장에게 지모가 있는 것입니다.
原注
太宗言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吳起之術 如何
오기吳起의 방법은 어떠한가?”
靖答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請大略言之호리이다
이 대략 말씀드리겠습니다.
昔日 魏武侯問於吳起호되 若兩軍相向하여 我欲知其將之能否인댄 當用何術
옛날 나라 무후武侯오기吳起에게 묻기를 ‘만약 피아彼我의 두 군대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데, 내가 적장의 능력 여부를 알고자 하면, 마땅히 무슨 방법을 써야 하는가?’ 하니,
오기吳起가 대답하기를 “하면서 용맹이 있는 자로 하여금 앞을 향하여 공격하게 하되, 처음 교전하여 〈되도록〉 패배하게 하고 패배하여도 벌을 주지 말고서, 적장이 전진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을 살펴보아,
士卒一坐一起하여 皆有節하여 見奔北者라도 不來追逐이면 則敵將有智謀矣니이다
적의 병사들이 한 번 앉고 일어나는 데 모두 절도가 있으면서 패하여 도망하는 우리를 보아도 추격해 오지 않는다면, 적장에게 지모가 있는 것입니다.”
若悉衆追北하여 行止縱橫이면 此敵人不才 擊之勿疑라하니이다
만약 적들이 병력을 총동원하여 패주하는 우리를 추격하는데, 행군하고 멈추는 것이 혼란스러워 질서가 없으면, 이는 적장이 재주가 없는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공격해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臣謂吳術 大率多類此하니 非孫武所謂以正合也니이다
은, 오기吳起의 방법은 대체로 이와 같으니, 손무孫武가 말한 정병正兵으로 회전會戰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原注
若彼悉衆追北하여 行止縱橫不齊 則知敵將無能이니 擊之勿疑也라하니이다
“만약 적들이 병력을 총동원하여 패주하는 우리를 추격함에 행군하고 멈추는 것이 혼란스러워 정돈되지 못했으면 적장의 무능함을 알 수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공격해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臣謂吳起之術 大率多類此하니 非若孫武所謂以正兵合戰之法이니이다
은 생각하건대, 오기吳起의 방법은 대체로 이와 같으니, 손무孫武가 말한 정병正兵으로 합전合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卿舅韓擒武嘗言 卿可與論孫吳라하니 亦奇正之謂乎
의 외숙인 한금무韓擒武가 일찍이 말하기를 ‘과는 함께 《손자孫子》와 《오자吳子》를 논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 또한 기병奇兵정병正兵을 말한 것인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擒武安知奇正之極이리오
한금무韓擒武가 어찌 의 극치를 알겠습니까.
但以奇為奇하고 以正為正耳 曾未知奇正相變하여 循環無窮者也니이다
다만 기병奇兵기병奇兵으로 여기고 정병正兵정병正兵으로 여길 뿐이니, 이 서로 변통해서 순환하여 무궁함을 전혀 모르는 자입니다.”
原注
太宗謂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말하였다.
卿舅曾言 卿可與論孫吳兵法이라하니 亦奇正之謂否乎
의 외숙인 한금무韓擒武가 일찍이 말하기를 ‘과는 함께 《손자孫子》와 《오자吳子》를 논할 수 있다.’ 하였으니, 또한 을 말한 것인가?”
靖答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擒武安知奇正之極致리오
한금무韓擒武가 어찌 의 극치를 알겠습니까.
但以奇爲奇하고 以正爲正하여 曾不知奇而變爲正하고 奇與正相變通 如環循轉하여 無窮盡者也니이다
다만 기병奇兵기병奇兵으로 여기고 정병正兵정병正兵으로 여겨서, 일찍이 기병奇兵이 변하여 정병正兵이 되고 정병正兵이 변하여 기병奇兵이 되어 이 서로 변통하기를 순환하여 돌듯이 해서 무궁무진함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擒武 字子通이니 河東垣人也
한금무韓擒武자통子通이니, 하동河東 원현垣縣 사람이다.
一曰 名擒虎 一曰 初名豹
일설에는 이름을 금호擒虎라 하고, 일설에는 처음 이름을 라 한다 하였다.
隋開皇九年 與賀若弼 率衆滅陳하니 李靖 其甥也
나라 개황開皇 9년(589)에 하약필賀若弼과 함께 병력을 거느리고 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이정李靖은 그의 생질이다.
原注
○愚謂 以奇爲奇하고 以正爲正 如八陣 以天地風雲爲四正하고 以龍虎鳥蛇爲四奇하며
○내가 생각하건대 ‘기병奇兵기병奇兵으로 여기고 정병正兵정병正兵으로 여긴다.’는 것은, 예컨대 팔진八陣사정四正으로 삼고 사기四奇로 삼으며,
六花陣 以中一軍爲奇하고 以外六軍爲正하며 十二將兵 以八軍爲正하고 四軍爲奇하니
육화진六花陣의 가운데에 있는 1기병奇兵으로 삼고 밖에 있는 6정병正兵으로 삼으며, 십이장병十二將兵에 8정병正兵으로 삼고 4기병奇兵으로 삼는 것과 같다.
此等 皆是古人詭其名耳 殊不知善用兵者 無不正이요 無不奇也
이러한 것은 모두 옛사람이 거짓으로 그 이름을 만들었을 뿐이니, 이는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에게는 정병正兵 아님이 없고 기병奇兵 아님이 없음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假若敵來攻 或龍虎鳥蛇四軍이어든 我以天地風雲四軍으로 或驚前而掩後하고 或衝東而擊西하니 以奇爲正而與之合戰이요 以正爲奇하여 左右角之而取勝也
가령 적이 와서 공격할 적에 의 네 (陣)으로 하면, 우리는 의 네 으로써 혹은 적의 앞을 놀라게 하고 혹은 적의 뒤를 습격하며, 혹은 동쪽을 충돌하고 혹은 서쪽을 공격해야 하니, 이것은 기병奇兵정병正兵으로 삼아서 적과 교전하는 방법이요, 정병正兵기병奇兵으로 삼아서 좌우에서 충돌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방법이다.
以此言之하면 奇正循環 豈有窮矣리오
이것으로 말한다면, 의 순환함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古人 臨陳出奇하여 攻人不意하니 斯亦相變之法乎
“옛사람들은 적진을 만나면 기이한 계책을 내어서 적이 예상하지 못한 곳을 공격하였으니, 이 또한 서로 변화시키는 방법인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前代戰鬪 多是以小術而勝無術하고 以片善而勝無善하니 斯安足以論兵法也리오
“고대의 전투는 대부분 작은 계책으로 계책이 없는 자를 이겼고, 조금 우월한 것으로 열등한 자를 이겼으니, 이것으로 어떻게 병법兵法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若謝玄之破苻堅 非謝玄之善也 蓋苻堅之不善也니이다
사현謝玄부견苻堅을 격파한 것은, 사현謝玄이 잘한 것이 아니고 부견苻堅이 잘못한 것입니다.”
原注
太宗問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물었다.
古人臨陳出奇하여 攻敵人之不意하니 斯亦奇正相變之法乎
“옛사람이 적진을 만나면 기이한 계책을 내어서 적이 예상하지 못한 곳을 공격하였으니, 이 또한 을 변화시키는 방법인가?”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前代爲將者 與敵戰闘 多是以己之小術 勝人之無術하고 以己之片善으로 勝人之無善하니 此等以論兵法哉잇가
“전대에 장수가 된 자들이 적과 전투할 적에는, 대부분 자기의 작은 계책으로 계책이 없는 적을 이겼고 자기의 조그마한 우월함으로 열등한 적을 이겼으니, 이러한 것을 가지고 어떻게 병법兵法을 비교하여 논할 수 있겠습니까.
若東晉時 非是謝玄之善이요 蓋苻堅之不善也니이다
동진東晉 때에 사현謝玄부견苻堅비수淝水에서 격파한 것은, 사현謝玄이 잘한 것이 아니고 부견苻堅이 잘못한 것입니다.”
字幼度 謝安之姪也
사현謝玄유도幼度이니, 사안謝安의 조카이다.
太宗顧侍臣하여 檢謝玄傳하여 閱之하고
태종太宗이 시종하는 신하를 돌아보면서, 《진서晉書》 〈사현전謝玄傳〉을 검토하여 살펴보게 하고 말하였다.
曰 苻堅處是不善
부견苻堅의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觀苻堅載記하니 曰 秦諸軍皆潰敗 唯慕容垂一軍獨全이어늘
이 《진서晉書》 〈재기載記〉의 부견苻堅 편을 읽어보니, ‘나라의 제군諸軍이 모두 궤멸하여 패하였고, 오직 모용수慕容垂의 군대만 홀로 온전하였다.
堅以千餘騎赴之러니 垂子寶 勸垂殺堅호되 不果라하니
부견苻堅이 천여 명의 기병騎兵을 거느리고 모용수慕容垂에게 달려갔는데, 모용수慕容垂의 아들 모용보慕容寶모용수慕容垂에게 부견苻堅을 죽이라고 권하였으나 결행하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此有以見秦軍之亂 慕容垂獨全하니 蓋堅為垂所陷 明矣니이다
여기에서 나라 군대가 혼란할 적에 모용수慕容垂의 군대만 온전했음을 알 수 있으니, 이는 부견苻堅모용수慕容垂의 함정에 빠진 것이 분명합니다.
夫為人所陷而欲勝敵이면 不亦難乎잇가
남의 함정에 빠지고서 적을 이기고자 하면 어렵지 않겠습니까.
臣故曰 無術焉 苻堅之類是也라하노이다
그러므로 은 ‘부견苻堅의 부류가 바로 계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原注
太宗聞李靖之言하고 顧左右侍臣하여 使檢謝玄傳하여 閱之하고 問李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의 말을 듣고 좌우에 모시는 신하를 돌아보면서, 《진서晉書》 〈사현전謝玄傳〉을 검토하고 살펴보게 하고서 이정李靖에게 물었다.
苻堅甚處 是不善也
부견苻堅의 어느 곳이 잘하지 못한 것인가?”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觀苻堅 有云 秦諸軍皆潰散敗走하고 唯慕容垂一軍 獨全이라하니 時垂有軍三萬하여 不曾有亡이라
이 《진서晉書》 〈재기載記〉의 부견苻堅 편을 읽어보니, 여기에 이르기를 ‘나라의 여러 군대가 모두 흩어져 궤멸하여 패주하였고, 오직 모용수慕容垂의 군대만 홀로 온전하였으니, 이때에 모용수慕容垂는 3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여 패망하지 않고 있었다.
苻堅只有千餘騎하여 奔赴其營이러니 垂子慕容寶 勸垂殺堅한대 垂曰 彼以赤心投我어늘 若何害之리오
부견苻堅은 천여 명의 기병騎兵만을 거느리고 달아나 그의 진영으로 갔는데, 모용수慕容垂의 아들 모용보慕容寶모용수慕容垂에게 부견苻堅을 죽일 것을 권하였으나 모용수慕容垂가 말하기를 「저가 진심으로 나에게 오니, 어찌 살해할 수 있겠는가.
이리오하니 觀此하면 有以見秦軍之亂 慕容垂獨全者
하늘이 만약 그를 버린다면 어찌 망하지 않음을 염려하겠는가.」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보면 나라 군대가 혼란할 적에 모용수慕容垂의 군대가 홀로 온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蓋垂有貳於堅하여 按兵不動하여 以幸其敗하고 欲乘機以復其國耳 苻堅爲垂所陷也니이다
이는 모용수慕容垂부견苻堅에게 딴마음을 품고 군대를 출동시키지 않아서 그의 패전을 다행으로 여기고 기회를 틈타 자기 나라를 복구하고자 한 것이니, 부견苻堅모용수慕容垂의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夫自己爲人所陷하고 而欲取勝於敵이면 不亦難乎잇가
자기가 남의 함정에 빠지고서 적에게 승리를 취하고자 한다면 어렵지 않겠습니까.
臣故曰 苻堅無術焉이라하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부견苻堅병술兵術(兵略)이 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假使苻堅有術하여 阻淝水而不退하고 命垂等하여 分爲左右二拒하여 一出淝水之上하여 掩晉軍之右하고 一出淝水之下하여 襲晉軍之左하고 堅整中軍하여 伺晉之亂이라가 直渡淝水蹴之이라도 亦不能支어든徒歟
만일 부견苻堅에게 용병술用兵術이 있어서 비수淝水를 막고서 후퇴하지 않은 채, 모용수慕容垂 등에게 명하여 군대를 나누어 좌군左軍우군右軍으로 만들어 두 곳에서 막게 하고, 한 부대는 비수淝水의 상류로 출동하여 나라 군대의 오른쪽을 습격하게 하고, 한 부대는 비수淝水의 하류로 출동하여 나라 군대의 왼쪽을 습격하게 하며, 자신은 중군中軍을 정돈하여 나라 군대의 혼란을 기다리고 있다가 곧바로 비수淝水를 건너가 압박하였더라면, 비록 한신韓信백기白起라도 버티지 못했을 터인데, 하물며 사현謝玄유뇌지劉牢之의 무리이겠는가.
晉兵敗而垂敢爲亂乎
나라 군대가 패하면 모용수慕容垂가 감히 반란을 할 수 있었겠는가.
慕容垂 本燕王皝之子 初名霸러니 後改名垂
모용수慕容垂는 본래 연왕燕王 모용황慕容皝의 아들이니, 처음 이름은 였는데, 뒤에 이름을 로 고쳤다.
封吳王이러니 畏太后可定渾氏而奔秦하니 豈眞爲堅用哉
오왕吳王에 봉해졌는데, 태후太后가정혼씨可定渾氏를 두려워하여 나라로 달아났으니, 어찌 참으로 부견苻堅에게 쓰였겠는가.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孫子謂多算勝少算이라하니 有以知少算勝無算이니 凡事皆然이로다
“《손자孫子》에 이르기를 ‘승산勝算이 많은 자는 승산勝算이 적은 자를 이긴다.’ 하였으므로, 승산勝算이 적은 자가 승산勝算이 없는 자를 이김을 알 수 있으니,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다.”
原注
太宗言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孫子書이라하니 因有以知少算能勝無算也 凡事皆如此耳
“《손자孫子》에 이르기를 ‘승산勝算이 많은 자가 승산勝算이 적은 자를 이긴다.’ 하였으니, 이로써 승산勝算이 적은 자가 승산勝算이 없는 자를 이길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니, 모든 일이 다 이와 같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黃帝兵法 世傳握奇文이라하고 或謂為握機文 何謂也
황제黃帝병법兵法을 세상에서 전하기를 ‘악기문握奇文’이라 하고 혹은 ‘악기문握機文’이라 함은 어째서인가?”
原注
太宗問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물었다.
軒轅黃帝有兵法이어늘 世人相傳하여 爲握奇文이라하고 或人 又謂握機文이라하니 此何謂也
헌원軒轅 황제黃帝가 지은 병법兵法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서로 전하여 ‘악기문握奇文’이라 하고 혹자는 또 ‘악기문握機文’이라 하니, 이는 어째서인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奇音機故 或傳為機하니 其義則一이니이다
이기 때문에 혹 전하여 로 쓰니, 그 뜻은 똑같습니다.
考其辭云 四為正이요 四為奇 餘奇為握機라하니 餘零也 因此音機니이다
그 글을 살펴보면, ‘4가 이 되고 4가 가 되고 남은 것이 악기握機가 된다.’ 하였으며, 는 남은 수이니, 이 을 따라 로 쓴 것입니다.
原注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奇音 此機字故 或者誤傳爲機字하니 其義則一耳니이다
이 이 자이기 때문에 혹자가 잘못 전하여 자로 쓴 것이니, 그 뜻은 똑같습니다.
考其言辭하면 則曰 四爲正이라하니 謂天, 地, 風, 雲四陳也 四爲奇라하니 謂龍, 虎, 鳥, 蛇四陳也
그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4는 이 된다.’ 하였으니 의 4을 이르고, ‘4는 가 된다.’ 하였으니 의 4을 이르며,
餘奇零之兵 大將握之하여 爲中軍이라 爲握機라하니零之兵이니 因此音爲機字니이다
‘나머지 남은 군대를 대장이 장악하여 중군中軍으로 삼으므로 악기握機라 한다.’ 하였으니, 는 남는 군대를 이르는바, 을 따라 자로 쓴 것입니다.”
臣愚謂 兵無不是機 安在乎握而言也리오
어리석은 은 생각하건대 군대는 기모機謀 아닌 것이 없으니, 어찌 잡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當為餘奇則是니이다
는 마땅히 남는 군대[餘奇]가 되는 것이 옳습니다.
夫正兵 受之於君이요 奇兵 將所自出이니이다
정병正兵군주君主에게서 받은 것이고, 기병奇兵은 장수가 직접 출동시킨 것입니다.
法曰 令素行하여 以教其民者 則民服이라하니 此受之於君者也 又曰 兵不豫言하고 君命有所不受라하니 此將所自出者也니이다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명령이 평소에 행해져서 백성을 가르치는 자는 백성들이 복종한다.’ 하였으니, 이는 군주君主에게서 받은 것이요, 또 이르기를 ‘군대는 미리 말하지 않고 군주君主의 명령도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였으니, 이는 장수가 직접 출동시킨 것입니다.
原注
臣愚謂 兵 無不是機謀 機謀安在乎握持而言也리오
“어리석은 은 생각하건대 군대는 기모機謀(機智) 아닌 것이 없으니, 기모機謀를 어찌 잡아 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當爲餘奇之兵 爲是니이다
는 마땅히 남는 군대가 되는 것이 옳습니다.
夫正兵受之於人君 謂國家有征伐之事하여 或十萬, 或二十萬 命將總之而出이니
정병正兵군주君主에게서 받는다.’는 것은, 국가가 정벌할 일이 있어서 혹은 10만, 혹은 20만을 장수에게 명해서 통솔하여 출동함을 이릅니다.
受之於君者 乃正兵也니이다
이는 군주君主에게서 받은 것이 바로 정병正兵인 것입니다.
奇兵將之所自出 謂選精銳하고 簡武勇하여 或掩其前後하고 或襲其左右하며 分合變通 悉聽於將하니 乃奇兵也니이다
기병奇兵은 장수가 직접 낸다.’는 것은, 정예병을 선발하고 무용이 뛰어난 자를 선발하여, 혹은 적의 앞뒤를 습격하고 혹은 적의 좌우를 습격하며, 군대를 나누고 합치고 변통함을 모두 장수의 뜻에 따르는 것을 이르니, 이것이 바로 기병奇兵입니다.
兵法 有曰 令素行以敎其民者 則民服이라하니 此乃受之於君者 卽正兵也니이다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명령이 평소에 행해져서 백성을 가르치는 자는 백성들이 복종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군주君主에게 받은 것이 정병正兵인 것입니다.
又曰 兵事 不豫先言之하고 君之命 將有所不受者 此將之所自出이니 卽奇兵也니이다
또 이르기를 ‘군대의 일은 먼저 말하지 않고 군주君主의 명령도 장수가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였으니, 이는 장수가 직접 출동시킨 것이 바로 기병奇兵인 것입니다.”
凡將 正而無奇 則守將也 奇而無正이면 則鬪將也 奇正皆得 國之輔也
무릇 장수가 정병正兵만 있고 기병奇兵이 없으면 수비하는 장수이고, 기병奇兵만 있고 정병正兵이 없으면 싸우는 장수이니, 을 모두 얻는 것이 국가를 보필하는 것입니다.
是故 握機握奇 本無二法이요 在學者兼通而已니이다
이 때문에 ‘악기握機’와 ‘악기握奇’가 본래 두 방법이 없고, 배우는 자가 겸하여 통달함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原注
凡爲將者 但知守正而無奇 則守將也 但知用奇而無正이면 則闘將也 奇正皆得其法 爲國家輔佐之臣也니이다
“무릇 장수가 된 자가 다만 정병正兵을 지킬 줄만 알고 기병奇兵이 없으면 수비하는 장수이고, 다만 기병奇兵을 쓸 줄만 알고 정병正兵이 없으면 싸우는 장수이니, 이 모두 그 법을 얻어야 국가를 보필하는 신하가 되는 것입니다.
是故 握機與握奇 本無二法이요 在學者兼通而已니이다
이 때문에 ‘악기握機’와 ‘악기握奇’가 본래 두 방법이 없고, 배우는 자가 겸하여 통달함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陳數有九 中心零者 大將握之하여 四面八向 皆取準焉이라
의 수가 아홉 가지인데 중심에 남은 곳을 대장大將이 장악하여 사면四面팔향八向이 모두 기준을 취한다.
陳間容陳하고 隊間容隊하며 以前為後하고 以後為前하여 進無速奔하고 退無遽走하여 四頭八尾 觸處為首하여 敵衝其中이면 兩頭皆救하여 數起於五而終於八하니 此何謂也
사이에 을 용납하고 부대 사이에 부대를 용납하며, 앞을 뒤로 만들고 뒤를 앞으로 만들어서, 나아갈 적에 속히 달려감이 없고 후퇴할 적에 빨리 도망함이 없어서, 네 머리와 여덟 꼬리가 닿는 곳이 머리가 되어 적이 그 중앙을 충돌하면 양 머리가 모두 구원해서, 수가 다섯에서 시작되어 여덟에서 끝나니, 이것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原注
太宗問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물었다.
의 수가 아홉 가지가 있는데, 밖에는 사정四正사기四奇가 있고, 중심(중앙)에 남는 곳을 대장大將이 총괄하여, 사면四面과 여덟 방향이 모두 기준을 여기에서 취한다.
陳間容陳者 大陳包小陳也 隊間容隊者 大隊包小隊也
사이에 을 용납한다.’는 것은 큰 이 작은 을 포함하는 것이요, ‘부대 사이에 부대를 용납한다.’는 것은 큰 부대가 작은 부대를 포함하는 것이다.
或以前爲後하고 或以後爲前하니 謂平時以南向者爲前하고 以北向者爲後 若回軍轉陳이면 則北向者爲前하고 南向者爲後 不言左右者 擧一端言也
혹은 앞을 뒤로 만들고 혹은 뒤를 앞으로 만드니, 이는 평상시에 남쪽을 향하는 것을 앞으로 삼고 북쪽을 향하는 것을 뒤로 삼으나, 만약 군대를 돌리고 진영을 바꾸면 북쪽을 향하던 군대가 앞이 되고 남쪽을 향하던 군대가 뒤가 됨을 말한 것이니, 를 말하지 않은 것은 한 가지만 들어 말한 것이다.
若東行則東向者爲前하고 西向者爲後 西行則西向者爲前하고 東向者爲後
만약 동쪽으로 가게 되면 동쪽을 향하는 군대가 앞이 되고 서쪽을 향하는 군대가 뒤가 되며, 서쪽으로 가게 되면 서쪽을 향하는 군대가 앞이 되고 동쪽을 향하는 군대가 뒤가 되는 것이다.
惟其有分數也故 進無速奔하고 惟其有節制也故 退無遽走하니 言進退齊一也
오직 분수分數가 있기 때문에 나아가더라도 속히 달려감이 없고, 오직 절제가 있기 때문에 후퇴하더라도 급히 패주함이 없으니, 전진과 후퇴가 가지런하고 똑같음을 말한 것이다.
四頭者 四正四奇 皆可爲首也 八尾者 謂九軍 敵或攻其一則首也 餘八軍爲尾矣
사두四頭사정四正사기四奇가 모두 머리가 될 수 있는 것이요, 팔미八尾구군九軍 가운데 적이 혹 그 하나를 공격하면 그곳이 머리가 되니, 나머지 여덟 군대가 꼬리가 되는 것이다.
觸處爲首者 謂敵來攻處 便爲首也 敵若衝擊其中이면 則兩頭皆救하니 常山蛇勢也
‘닿는 곳이 머리가 된다.’는 것은 적이 와서 공격하는 곳이 바로 머리가 됨을 이르니, 적이 만약 그 중앙을 충돌하여 공격하면 양 머리가 모두 구원하는바, 이것은 상산常山에 있는 뱀의 형세이다.
數起於五者 五爲陳法也 數終於八者 四面八軍也 此法 何謂也
‘수가 다섯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다섯은 진법陣法이 되고, ‘수가 여덟에서 끝난다.’는 것은 사면四面팔군八軍이니, 이 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諸葛亮以石縱橫하여 布為八行하니 方陳之法 卽此圖也니이다
제갈량諸葛亮이 돌을 가지고 종횡縱橫으로 포진布陣하여 여덟 줄을 만들었으니, 방진方陣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臣嘗教閱 必先此陳하니 世所傳握機文 蓋得其粗也니이다
이 일찍이 병사들을 가르치고 사열할 적에 반드시 이 진법을 먼저 사용하였으니, 세상에서 전하는 악기문握機文은 그 대략을 얻은 것입니다.”
原注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諸葛亮魚復江八陣圖諸葛亮魚復江八陣圖
諸葛亮 於魚腹平沙之上 以石縱橫하여 布爲八行하니 黃帝九軍方陳之法 卽此圖也 蓋諸葛 變而爲縱橫八行耳니이다
제갈량諸葛亮어복포魚腹浦의 평평한 백사장 위에 돌을 종횡縱橫으로 펼쳐서 여덟 줄을 만들었으니, 황제黃帝구군방진九軍方陣이 바로 이 그림이니, 제갈량諸葛亮이 변화시켜 종횡으로 여덟 줄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縱橫八行者 謂四面視之 皆成八行하여 八八六十四小方陳이니 卽所謂陳間容陳하여 四頭八尾者也
종횡으로 여덟 줄이라는 것은 사면四面에서 보면 모두 여덟 줄을 이루어서 여덟에 여덟을 곱하여 예순네 개의 작은 방진方陣이 됨을 이르니, 바로 이른바 사이에 을 용납하여 사두四頭, 팔미八尾가 된다는 것이다.
臣嘗敎閱士卒 必先用此陳하니 世人所傳握機文 蓋得其粗者耳니이다
이 일찍이 병사들을 가르치고 사열할 적에 반드시 먼저 이 진법을 사용하였으니, 세상 사람들이 전하는 악기문握機文은 그 대략을 얻었을 뿐입니다.”
八行 卽六十四魁 八八爲行也
여덟 줄은 바로 64(두목)이니, 여덟에 여덟으로 줄을 삼은 것이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天地風雲 龍虎鳥蛇斯八陳 何義也
팔진八陣은 어떠한 뜻인가?”
原注
太宗問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물었다.
天地風雲龍虎鳥蛇此八陣 取何義也
의 여덟 은 어떤 뜻을 취하였는가?”
蓋八陳 各一陳也
팔진八陣사방四方사유四維의 각각 한 인 것이다.
以乾爲天陣하고 以坤爲地陣하고 以巽爲風陣하고 以艮爲雲陣하며 以東爲龍陣하니 卽左靑龍也 以西爲虎陣하니 卽右白虎也 以南爲鳥陣하니 卽前朱雀也 以北爲蛇陣하니 卽後玄武也
천진天陣으로 삼고, 지진地陣으로 삼고, 풍진風陣으로 삼고, 운진雲陣으로 삼으며, 동쪽을 용진龍陣이라 하니 바로 좌청룡左靑龍이고, 서쪽을 호진虎陣이라 하니 바로 우백호右白虎이고, 남쪽을 조진鳥陣이라 하니 바로 전주작前朱雀이고, 북쪽을 사진蛇陣이라 하니 바로 후현무後玄武이다.
靖曰
이정李靖이 말하였다.
傳之者 誤也니이다
“전한 자가 잘못 전한 것입니다.
古人秘藏此法이라 詭設八名耳니이다
옛사람들이 이 진법陣法을 은밀히 숨겼기 때문에 허구로 여덟 가지 이름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八陣 本一也 分為八焉이라
팔진八陣은 본래 하나인데 나누어 여덟 개를 만든 것입니다.
若天地者 本乎旗號하고 風雲者 本乎旛名이요 龍虎鳥蛇 本乎隊伍之別이어늘 後世誤傳이니이다
로 말하면 의 이름에서 근본하였고, 으로 말하면 의 이름에서 근본하였고, , 대오隊伍의 분별에 근본한 것인데, 후세에 잘못 전해진 것입니다.
詭設物象이면 何止八而已乎잇가
속여서 물상物象을 만들기로 말하면 어찌 이 여덟 가지에만 그칠 뿐이겠습니까.”
原注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世人傳之者 差誤也니이다
“세상 사람들이 전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古人秘藏此法故 詭設天地風雲龍虎鳥蛇八名耳 八陳 本一陣也 分爲之八焉이니이다
옛사람들은 이 방법을 은밀히 숨겼기 때문에 허구로 의 여덟 가지 이름을 만들었을 뿐이니, 팔진八陣은 본래 한 인데 나누어 여덟 개를 만든 것입니다.
若天地者 本乎旗之號하고 風雲者 本乎旛之名이라
로 말하면 의 이름에서 근본하였고, (펄럭이는 깃발)의 이름에서 근본하였습니다.”
天取其高而能하고 地取其厚而能載
하늘에서는 높아서 능히 〈물건을〉 덮어줌을 취하였고, 땅에서는 두터워서 능히 〈만물을〉 실을 수 있음을 취하였다.
以爲旗之號하여 使爲將者 亦法天地之所以高厚焉이요
그러므로 〈를 가지고〉 의 칭호로 삼아서 장수가 된 자로 하여금 하늘과 땅의 높고 두터움을 본받게 한 것이다.
風取其動作之象하고 雲取其卷舒之勢 以爲旛之名하여 使爲將者 亦效風雲之所以變化焉이니 非二陳似乎風雲也
바람에서는 동작하는 을 취하였고 구름에서는 걷혔다 펼쳤다 하는 형세를 취하였으므로 의 이름으로 삼아서 장수가 된 자로 하여금 바람과 구름이 변화하는 바를 본받게 한 것이니, 두 이 바람‧구름과 유사한 것은 아니다.
龍虎鳥蛇者 本乎隊伍之別이라
대오隊伍의 분별에 근본하였습니다.”
龍取其騰躍이요 虎取其威猛이요 鳥取其迅疾이요 蛇取其能扞外而禦內焉하니
은 뛰어오름을 취하였고, 범은 위엄 있고 용맹함을 취하였고, 새는 빠름을 취하였고, 뱀은 밖을 막고 안을 방비함을 취하였다.
蓋欲使隊伍士卒 亦效龍虎鳥蛇之騰躍威猛迅疾 及能扞外而禦內也 非二陳似乎龍虎而二陳似乎鳥蛇也
이는 대오의 병사들로 하여금 또한 용과 범과 새와 뱀의 뛰어오르고 위엄이 있고 용맹이 있고 빠름과, 또 밖을 막고 안을 방비하는 것을 본받게 한 것이니, 두 진이 용과 범과 유사하고 두 진이 새와 뱀과 유사한 것은 아니다.
其以天地風雲龍虎鳥蛇 分爲八陳 乃後世之人 誤傳之耳니이다
를 가지고 나누어 팔진八陣을 만든 것은 바로 후세의 사람들이 잘못 전한 것일 뿐입니다.
若云詭設物象이라하면 豈止八者而已乎잇가
만약 속여서 물상物象을 만들었다고 하면 어찌 여덟 가지에 그칠 뿐이겠습니까.”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數起於五而終於八 則非設象이요 實古陳也 卿試陳之하라
“수가 다섯에서 시작되어 여덟에서 끝남은 을 만든 것이 아니요 실로 옛 진법陣法이니, 은 한번 말해보라.”
原注
太宗問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물었다.
陳數起於五而終於八 則非若天, 地, 風, 雲, 龍, 虎, 鳥, 蛇之設象이요 實古陳法也 卿試爲我陳之하라
의 수가 다섯에서 시작되어 여덟에서 끝남은 을 만든 것이 아니요 실로 옛날 진법陣法이니, 은 한번 나에게 이것을 자세히 말해보라.”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按黃帝始立丘井之法하여 因以制兵이라
이 살펴보건대, 황제黃帝가 처음으로 구정丘井을 확립하고 하여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井分四道하여 八家處之하니 其形井字 方九焉이라
그러므로 은 네 길로 나누어서 여덟 집이 거처하게 한 것이니, 그 모습이 정자井字이고 개방開方이 아홉입니다.
五為陳法하고 四為閑地하니 此所謂數起於五也니이다
이 중에 다섯은 진법陣法이 되고 넷은 공한지空閑地가 되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수가 다섯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原注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按軒轅時 始立丘井之法하여 八家爲井하고 十六井爲丘하여 因以制爲兵法이라
이 살펴보건대, 헌원軒轅 황제黃帝 때에 처음으로 구정丘井을 만들어서 여덟 집을 으로 삼고 16로 만들고 인하여 병법으로 만들었습니다.
一井分爲四道하여 八家共處之하니 其形 似一井字 則九焉이라
그러므로 한 을 나누어 네 길을 만들어서 여덟 집이 함께 거처하게 하였으니, 그 모습이 한 정자井字와 같고 개방開方은 아홉이었습니다.
以前後左右中五處 爲陳法하고 以四隅四處 爲閑地하니 此所謂陳數始起於五也니이다
전‧후‧좌‧우와 중앙의 다섯 곳으로 진법陣法을 만들고, 귀퉁이의 네 곳으로 공한지空閑地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의 수가 처음 5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蓋黃帝初時 人民尙少 止用五爲陳也
황제黃帝의 초기에는 인민人民이 아직 적었으므로 다만 다섯을 사용하여 으로 삼은 것이다.
虛其中하여 大將居之하고 環其四面하여 諸部連繞하니 此所謂終於八也니이다
그 가운데를 비워 대장이 거처하고, 그 사면을 빙 둘러 여러 부대가 연결하여 둘러싸니, 이것이 이른바 ‘여덟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原注
虛其中軍하여 大將居之 卽中心零者 大將握之하여 四面八向 皆取準焉者也
“중군을 비워서 대장이 거주한다는 것은, 바로 중심의 남은 곳을 대장이 장악하여 사면과 여덟 방향이 모두 기준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環其四面하여 諸部連繞 卽左右前後及四維 通爲八陳이니 此所謂數終於八也니이다
사면을 빙 둘러 여러 부대가 연결하여 둘러싼다는 것은, 바로 및 네 모퉁이를 통하여 팔진八陣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수가 여덟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蓋後來 人民衆多하고 土地廣大 故用八者하여 皆爲陳耳
후대後代에 이르러는 인민이 많아지고 토지가 넓어졌기 때문에 여덟 가지를 사용하여 모두 으로 삼은 것이다.
及乎變化制敵하여는 則紛紛紜紜하여 鬪亂而法不亂하고 混混沌沌하여 形圓而勢不散하니 此所謂散而成八하고 復而為一者也니이다
변화시켜 적을 제압하는 것에 이르면, 어지럽고 어지러워서 혼란하게 싸우나 법이 혼란하지 않고, 뒤섞이고 뒤섞여서 형체가 둥글지만 형세가 흩어지지 않으니, 이것이 이른바 ‘흩어지면 여덟이 되고 다시 돌아오면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原注
及乎變化奇正以制敵이면 則紛紛紜紜하여 闘時似亂이나 而其法不亂하고 混混沌沌하면 形如轉環이나 而其勢不散하니
을 변화하여 적을 제압함에 이르면, 어지럽고 어지러워서 싸울 때에 혼란한 것처럼 보이나 그 법이 혼란하지 않고, 뒤섞이고 뒤섞여서 모습이 고리를 도는 것과 같으나 그 형세가 흩어지지 않으니,
此所謂散而分之하여 而成八小陣하고 復而合之하면 則爲一大陣也니이다
이것이 이른바 ‘흩어져서 나뉘면 여덟 개의 작은 을 이루고 다시 합치면 하나의 큰 이 된다.’는 것입니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深乎
“심오하도다.
黃帝之制兵也
황제黃帝병법兵法을 만듦이여.
後世雖有天智神略이라도 莫能出其閫閾이니 降此 孰有繼之者乎
후세에 비록 하늘의 지혜와 신묘한 지략이 있더라도 그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으니, 이 뒤로는 누가 이것을 계승한 자가 있는가?”
原注
太宗聞靖之言하고
태종太宗이정李靖의 말을 듣고 말하였다.
曰 深遠乎哉
“심오하고 원대하도다.
黃帝之制兵法也
황제黃帝병법兵法을 만듦이여.
後世之人 雖有天智神略之妙라도 莫能出其閫閾之外 降此以往으로 誰有能繼其法者乎
후세의 사람이 비록 하늘의 지혜와 신묘한 지략의 묘함이 있더라도 그 영역의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으니, 이 뒤로는 그 병법을 계승한 자가 누가 있는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周之始興 則太公實繕其法하니 始於岐都하여 以建井畝하여 戎車三百輛 虎賁三百人으로 以立軍制하고 六步七步 六伐七伐 以教戰法하여 陳師牧野하니이다
나라가 처음 일어날 적에 태공太公이 실로 그 을 닦았으니, 기도岐都에서 시작하여 정묘井畝의 제도를 세워서 융거戎車 300호분虎賁(호랑이처럼 용감한 군사) 300명으로 군제軍制를 세우고, 6와 7, 6과 7로 전투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목야牧野에 군대를 펼쳤습니다.
太公 以百夫制師하여 以成武功하여 以四萬五千人으로 勝紂七十萬衆하니이다
태공太公은 100로 군대를 만들어서 무공武功을 이루어 4만 5,000명을 가지고 주왕紂王의 70만 군대를 이겼습니다.
原注
靖對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周家初興 則太公望 實繕修其法하니 始於岐都하여 以建立井畝之制하니이다
나라가 처음 흥왕興旺할 적에 태공망太公望이 실로 그 을 닦았으니, 기도岐都에서 시작하여 정묘井畝의 제도를 세웠습니다.”
始祖后稷 封於邰러니 十三世王徙居岐山之陽하여 建都於周原之上하니 是曰 岐都
나라의 시조 후직后稷 땅에 봉해졌는데, 13태왕太王이 옮겨 기산岐山의 남쪽에 거주하여 주원周原의 위에 도읍을 세우니, 이것을 ‘기도岐都’라 하였다.
十五世 而文王以太公望爲師하여 備戎車三百輛 虎賁之士三百人하여 以立軍之制度하고 不愆於 乃止齊焉하여 以敎戰陳之法하여 陳師商郊牧野하니이다
“15문왕文王태공망太公望을 스승으로 삼아서 융거戎車 300호분虎賁의 장사 300명을 구비해서 군대의 제도를 세우고, 6와 7, 6과 7을 넘지 아니하여, 마침내 멈추어 정제整齊(정돈)해서 싸우고 치는 방법을 가르쳐, 나라의 교외인 목야牧野에 군대를 진열하였습니다.
太公 以百夫 致師旅必戰之心하여 而成就武功하여 用四萬五千人하여 勝紂七十萬衆하니이다
태공太公은 100명의 장사로써 군사들이 필전必戰의 각오를 이루게 해서 무공武功을 성취하여, 4만 5,000명을 가지고 주왕紂王의 70만 군대를 이겼습니다.”
尙書小序云 戎車三輛 虎賁三百人이라한대 注云 虎賁 百夫之長也라하고
상서尙書》의 〈소서小序〉에 “융거戎車 3호분虎賁 300명”이라 하였는데, 에 이르기를 “호분虎賁은 100의 우두머리이다.” 하였다.
孟子云 革車三百輛이요 虎賁三千人이라하여 二說不同하니 後詳辯之하노라
그리고 《맹자孟子》 〈진심盡心 〉에 이르기를 “혁거革車가 300이고 호분虎賁이 3,000명이다.”라고 하여 두 설이 똑같지 않은바, 뒤에 자세히 분변하였다.
周司馬法 本太公者也
나라의 사마법司馬法태공太公에게서 근본한 것입니다.
太公既沒 齊人得其遺法하여 至桓公하여 霸天下하고 任管仲하여 復修太公法하여 謂之節制之師라하니 諸侯畢服하니이다
태공太公이 별세하자, 나라 사람들이 그 남은 을 얻어서 환공桓公에 이르러 천하天下패자霸者가 되고 관중管仲을 등용하여 다시 태공太公병법兵法을 닦아서 이것을 ‘절제節制의 군대’라 일렀으니, 제후諸侯들이 모두 복종하였습니다.”
原注
周大司馬之法 本於太公者也
나라 대사마大司馬태공太公에게서 근본한 것입니다.
太公旣沒之後 子伋爲齊侯 齊人得遺法이라
태공太公이 이미 별세한 뒤에 아들 나라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그 남은 을 얻은 것입니다.
至桓公하여 霸長天下하고 任用管仲爲相하여 復繕修太公兵法하여 謂之이라하니 天下諸侯 因此皆服이니이다
환공桓公에 이르러 천하天下패자霸者가 되고 관중管仲을 등용하여 정승으로 삼아서 다시 태공太公병법兵法을 닦아 이것을 ‘절제節制의 군대’라 이르니, 천하의 제후諸侯가 이로 인하여 모두 복종하였습니다.”
節制者 兵不大勝하고 亦不大敗하니 言其有節制
절제節制하면 군대가 크게 승리하지도 않고 또한 패하지도 않으니, 그 절제節制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儒者多言管仲霸臣而已라하니 殊不知兵法乃本於王制也
유자儒者들은 대부분 ‘관중管仲패자霸者의 신하일 뿐이다.’라고 말하니, 이는 병법兵法이 바로 왕자王者의 제도에서 근본함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諸葛亮 王佐之才로되 自比管樂하니 以此 知管仲亦王佐也
제갈량諸葛亮왕자王者를 보좌할 만한 재주가 있었는데, 스스로 관중管仲악의樂毅에 자신을 견주었으니, 이로써 관중管仲 또한 왕자王者를 보좌할 만한 인물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但周衰하여 時王不能用故 假齊興師爾니라
다만 나라가 쇠하여 당시 이 등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라를 빌려 군대를 일으켰을 뿐이다.”
原注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儒者多言管仲乃霸者之臣而己 殊不知兵法 起自井田하여 本於王者之制也
유자儒者들은 대부분 ‘관중管仲은 바로 패자霸者의 신하일 뿐이다.’라고 말하니, 이는 병법兵法정전井田에서 시작되어 왕자王者의 제도에 근본함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촉한蜀漢제갈량諸葛亮왕자王者를 보좌할 만한 재주가 있었는데, 남양南陽에 있을 때에 자신을 관중管仲악의樂毅에 견주었으니, 이로써 관중管仲 또한 왕자王者의 보좌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但周室衰微하여 時王不能任用이라 假齊桓公하여 興師以匡正天下者也
다만 나라가 쇠약하여 당시 이 임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환공桓公을 빌려서 군대를 일으켜 천하天下를 바로잡은 것이다.”
樂毅 魏人이니 樂羊之後 居靈壽러니 聞燕昭王賢하고 乃歸之한대 王以爲亞卿하다
악의樂毅나라 사람이니, 악양樂羊의 후손으로 영수靈壽에 살고 있었는데, 소왕昭王이 어질다는 말을 듣고 귀의하자, 소왕昭王아경亞卿으로 삼았다.
後破齊有功하여 封昌國君이러니 昭王崩하고 子惠王立하여 疑之어늘 遂西走趙하니 趙封毅於觀津하고 號曰 望諸君이라하니라
뒤에 나라를 격파하여 공을 세우고 창국공昌國公에 봉해졌는데, 소왕昭王이 죽고 아들 혜왕惠王이 즉위하여 악의樂毅를 의심하자, 마침내 서쪽 나라로 도망하니, 나라는 악의樂毅관진觀津에 봉하고 이름을 망제군望諸君이라 하였다.
靖再拜曰
이정李靖재배再拜하고 말하였다.
陛下神聖하사 知人如此하시니 老臣雖死昔賢也니이다
폐하陛下께서 신성神聖하셔서 사람을 이처럼 알아보시니, 늙은 이 비록 죽더라도 옛 현인賢人에게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臣請言管仲制齊之法하리이다
관중管仲나라를 통제한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三分齊國하여 以為三軍호되 五家為軌故 五人為伍하고 十軌為里故 五十人為小戎하고 四里為連故 二百人為卒하고 十連為鄉故 二千人為旅하고 五鄉一師故 萬人為軍하니
나라를 3등분하여 삼군三軍으로 만들었는데, 다섯 집을 로 만들었기 때문에 다섯 사람을 로 삼았고, 10로 만들었기 때문에 50명을 소융小戎으로 삼았고, 4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200명을 로 삼았고, 10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2,000명을 로 삼았고, 5을 1로 만들었기 때문에 1만 명을 으로 삼았습니다.
亦由司馬法一師五旅 一旅五卒之義焉이니 其實 皆得太公之遺法이니이다
사마법司馬法》에 1는 5이고 1는 5인 뜻과도 같으니, 그 실제는 모두 태공太公의 남은 을 얻은 것입니다.”
原注
靖再拜하고 起而言曰
이정李靖재배再拜하고 일어나 말하였다.
陛下神聖하사 知人如此之明하시니 老臣雖死 無媿古昔賢者니이다
폐하陛下께서 신성神聖하여 사람을 알아보심이 이처럼 명철하시니, 늙은 이 비록 죽더라도 옛날 현자賢者에게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臣請言管仲當時制齊之法하리이다
관중管仲이 당시에 나라를 통제한 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三分齊國之民하여 以爲三軍호되
나라의 백성을 3등분하여 3으로 만들었습니다.”
古者 大國三軍이요 次國二軍이요 小國一軍이니 大國也故 爲三軍이라
옛날에 대국大國은 3이고 다음 나라는 2이고 작은 나라는 1이었는데, 나라는 대국大國이기 때문에 3을 만든 것이다.
民以五家爲一軌故 兵以五人爲一伍하고 十軌爲一里하니 十軌 五十家也故 兵以五十人爲一小戎하고 四里爲一連하니 四里 二百家也故 兵以二百人爲一卒하고 十連爲一鄕하니 十連 二千家也故 兵以二千人爲一旅하고 五鄕爲一師하니 五鄕 一萬家也故 兵以萬人爲一軍하니 니이다
“백성은 다섯 집을 1로 만들었기 때문에 군대는 다섯 명을 1로 만들었고, 10를 1로 만들었으니 10는 50가호이므로 군대는 50명을 1소융小戎으로 만들었고, 4를 1으로 만들었으니 4는 200가호이므로 군대는 200명을 1로 만들었고, 10을 1으로 만들었으니 10은 2,000가호이므로 군대는 2,000명을 1로 만들었고, 5을 1로 만들었으니 5은 1만 가호이므로 군대는 1만 명으로 1을 만들었으니, 또한 옛사람의 《사마법司馬法》에 1를 5로 나누고 1를 5로 나눈 뜻을 따른 것이니, 그 실제는 모두 태공망太公望의 남은 을 얻은 것입니다.”
周制 二十五家爲一里하고 五百家爲一黨하고 萬二千五百家爲一鄕하니 其兵制 則以五人爲伍하고 十人爲什하고 百人爲卒하고 五百人爲旅하고 萬二千五百人爲軍하여 其數爲異耳
나라 제도는 25를 1로 만들고, 500를 1으로 만들고, 1만 2,500를 1으로 만들었으니, 그 군제軍制는 5명을 로 삼고 10명을 으로 삼고 100명을 로 삼고 500명을 로 삼고 1만 2,500명을 으로 삼아서, 그 수가 다를 뿐이다.
原注
○愚謂管仲 孔子稱其器小어시늘 而太宗, 李靖 皆以爲王佐 何也
○내가 생각하건대, 관중管仲증서曾西도 되려고 하지 않은 자였고, 공자孔子께서도 ‘그의 그릇이 작다.’고 하셨는데, 태종太宗이정李靖이 모두 관중管仲을 칭찬하여 ‘왕자王者의 보좌’라 한 것은 어째서인가?
夫管仲 尊周室하고 攘夷狄하며 九合一匡하여 功實不小
관중管仲나라 왕실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쳤으며, 제후諸侯들을 규합하여 한 번 천하를 바로잡아서 이 실로 적지 않았다.
以其有仁者之功也
중니仲尼께서 ‘누가 그의 만 하겠는가.’라고 두 번 말씀하여 인정하심은, 관중管仲에게 인자仁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나 其局量褊淺하고 規模狹隘하여 不能正心修身以致君於王道하고 大抵多以權謀馭下하여 爲侈已甚하니 此孔子所以譏其器小與不知禮也
그러나 국량局量이 좁고 규모가 협소해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아 군주君主왕도王道에 이르게 하지 못하였고, 대부분 권모술수權謀術數로 아랫사람들을 통솔해서 삼귀대三歸臺를 두고 반점反坫을 두어 사치가 매우 심하였으니, 이는 공자孔子께서 그의 그릇이 작음과 를 알지 못함을 비판하신 이유이다.
假使時王任之라도 其功烈 亦不過如此리라
가령 당시의 이 그를 신임했더라도 그 공렬功烈이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之世 道學不明하여 雖以太宗之賢으로도 亦不過假仁義而已 李靖輩又安識王佐哉
이당李唐세대世代도학道學이 밝지 못해서 비록 태종太宗과 같이 어진 군주君主로도 인의仁義를 빌리는 데 불과하였을 뿐이니, 이정李靖의 무리가 또 어떻게 왕도王道를 알았겠는가.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司馬法 人言穰苴所述이라하니 是歟
“《사마법司馬法》을 사람들이 모두 ‘양저穰苴가 저술한 것이다.’라고 하니, 맞는가?
否也
맞지 않는가?”
原注
太宗問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물었다.
司馬法 世人 皆言司馬穰苴所述이라하니 是歟
“《사마법司馬法》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마양저司馬穰苴가 저술한 것이다.’라고 하니, 맞는가?
否也
맞지 않는가?”
靖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按史記穰苴傳컨대 齊景公時 穰苴善用兵하여 敗燕晉之師한대 景公尊為司馬之官이라
“《사기史記》 〈사마양저열전司馬穰苴列傳〉을 살펴보면 ‘ 경공景公 때에 양저穰苴용병用兵을 잘하여 나라와 나라의 군대를 패퇴시키자, 경공景公이 높여서 사마司馬의 벼슬을 시켰다.
由是 稱司馬穰苴하고 子孫號司馬氏라하니이다
이 때문에 사마양저司馬穰苴라 칭하였고, 자손子孫들이 사마씨司馬氏라고 불렀다.’ 하였습니다.
原注
靖答曰
이정李靖이 대답하였다.
臣按史記穰苴傳컨대 齊景公時 田穰苴善能用兵하여 敗燕晉二國之師한대 景公尊穰苴하여 爲司馬之官하니
이 《사기史記》 〈사마양저열전司馬穰苴列傳〉을 살펴보건대, ‘ 경공景公 때에 양저穰苴용병用兵을 잘하여 두 나라의 군대를 패퇴시키자, 경공景公양저穰苴를 높여 사마司馬 벼슬을 시키니,
由是 稱爲司馬穰苴하고 其子孫因號司馬氏하니이다
이로 말미암아 사마양저司馬穰苴라 칭하였고, 그 자손子孫들이 인하여 사마씨司馬氏라고 칭하였다.’ 하였습니다.”
穰苴 之苗裔也
양저穰苴전완田完의 후손이다.
至齊威王하여 追論古司馬法하고 又述穰苴所學하여 遂有司馬穰苴書數十篇하니 今世所傳兵家者流 又分權謀形勢陰陽技巧四種하니 皆出司馬法也니이다
위왕威王 때에 이르러서 옛 사마법司馬法추론追論하고 또 양저穰苴가 배운 것을 기술하여 마침내 《사마양저司馬穰苴》라는 책 수십 편이 있게 되었으니, 지금 세상에 전하는 병가자兵家者이고, 또 권모權謀형세形勢음양陰陽기교技巧의 네 종류로 나누었으니, 이는 모두 《사마법司馬法》에서 나온 것입니다.”
原注
至齊威王時하여 追論古司馬法하여 方成其書할새 又述田穰苴所學하여 遂有司馬穰苴書하니 凡數十篇이니 卽今世所傳兵家者流니이다
위왕威王 때에 이르러서 옛 《사마법司馬法》을 추론追論하여 이 책을 만들 적에, 또 전양저田穰苴가 배운 것을 기술하여 마침내 《사마양저司馬穰苴》라는 책이 있게 되었으니, 모두 수십 편으로 바로 지금 세상에 전하는 병가자兵家者입니다.
書內 又分權謀者 權變機謀 形勢 陰陽者 天時之順逆也 技巧者 攻守之用也니이다
이 책 안에 또 나누어진 권모權謀권변權變기모機謀이고, 형세形勢피차彼此강약强弱이고, 음양陰陽천시天時하고 거슬림이고, 기교技巧는 공격과 수비의 쓰임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太宗曰
태종太宗이 말하였다.
漢張良韓信 序次兵法 凡百八十二家
나라 장량張良한신韓信병법兵法을 차례로 나열한 것이 모두 182이다.
刪取要用하여 定著三十五家러니 今失其傳 何也
산삭刪削하고 중요한 것만 취하여 35를 저술하였는데, 지금 실전失傳된 것은 어째서인가?”
原注
太宗問靖曰
태종太宗이정李靖에게 물었다.
漢張良 與韓信으로 序次古兵法 凡一百八十二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