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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法直解

사마법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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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天子之義者 君道也
君道無所不備로되 而獨以義言者 義主果斷하니 라하니라
又事之大者 非義 不能果斷而裁制하니 此所以獨以義言也
以首有天子之義四字故 하니라
天子之義 必純하여 取法天地하되 而觀於先聖하며
原注
純者 純一而不雜也 天子之義 必純一하여 而取於天地
天地之道 春生而夏長하고 秋收而冬藏하니 天子亦法天地之道하여 仁以愛之하고 義以制之하고 禮以敬之하고 智以別之하여 一寛一猛也
天地之道 陽舒而陰慘하고 陰殺而陽生하니 天子亦法天地之道하여 修德而行政하고 明刑而愼罰하여
又觀先世聖王已往之迹而儀刑之하니
士庶之義 必奉於父母하고 而正於君長이니라
原注
秀民也 衆民也
或曰 士 即古之라하니라
爲士庶之義 內必奉養其父母하고 이라
雖有明君이나 士不先教 不可用也니라
原注
雖有明聖之君이나 而士不先訓教 不可任用也
或曰 士 教民之官也 即以不教民戰이면 是謂棄之
之義也
라하니라
古之敎民 必立貴賤之倫經하여 使不相陵하며
原注
古聖王之敎民 必立貴賤之倫次하여 使知上下之有序하고 定經制하여 使不相侵陵也
하며 材技不相掩하며 勇力不相犯이라
原注
有德義者不得相踰하며 有材技者不得相掩하며 有勇力者不得相犯이라
方同而意和也니라
原注
方者 謂所向 必心同而意和也
一本 方同 作力同하니 未知是否로라
古者 國容 不入軍하고 軍容 不入國하니
原注
하며 揖讓進退하고 升降跪拜하며 此國容也 所以不可入於軍이라
武夫前呵하고 壯士後隨하며 旌旗麾幟 金鼓笳笛 坐作進退 分合解結 此軍容也 所以不可入於國이라
德義不相踰니라
原注
有德義者不得相踰也
上貴不伐之士하니 不伐之士 上之器也니라
原注
在上者 當貴重不誇伐功能之士 不誇伐功能之士 乃在上者之器用也
或曰 上之器 上品之器也라하니라
苟不伐則無求하고 無求則不爭하여
原注
苟不誇伐이면 則無求於人이요 既無求於人이면 則與人無所爭也
異見諸將爭功하면 每屏大樹下하니 得此道矣
國中之聽 必得其情이요
原注
在國中하여 聽斷事務 必要得民之情狀이라
聽訟聽政之聽이니 得其情而斷其是非可否也
軍旅之聽 必得其宜
原注
在軍旅中하여 聽斷事務 必要得其所宜 若不合宜 必有濫賞罰者
材技不相掩이니라
原注
從命이면 爲士上賞이요 犯命이면 爲士上戮이라
原注
聽從命令이면 爲我士者 授之以上賞하고 干犯命令이면 爲我士者 治之以上戮이라
勇力不相犯이니라
原注
有勇力者不得相犯也
既致敎其民然後 謹選而使之하니
原注
然後 謹愼選擇其能者하여 任使之
事極修則百官給矣
原注
事極修整이면 則百官給足矣
敎極省則民興良矣
原注
教極省察이면
則民興良善矣
習貫成則民體俗矣
原注
習貫既成이면
與慣同하니 是也
教化之至也니라
原注
凡此 皆人君敎化之至也
古者 逐奔不遠하고 縱綏不及하니 不遠則難誘 不及則難陷이라
原注
古之戰者 逐人奔敗之兵 不欲甚遠하고 從人退還之兵 不必及之
不遠則難爲彼所誘하니 逐韓信이라가 爲信誘하여 過濰水而敗之 不及則難爲彼所陷이니
涓從孫臏이라가 爲臏算至馬陵而殺之
古之爲將者 所以逐奔不遠而縱綏不及也니라
以禮爲固하고 以仁爲勝하며
原注
以禮爲固者 守之以禮也 以仁爲勝者 戰之以仁也 此皆上古之道
既勝之後 其教이라
是以 君子貴之也니라
原注
既勝敵之後 其敎化 可得而復用이니 君子所以貴之也
有虞氏 戒於國中하니 欲民體其命也
原注
有虞氏 舜也 都虞阪이라
凡有戎事 必告戒於國中하니 欲民體上之命也
夏后氏 誓於軍中하니 欲民先成其慮也
原注
夏后氏 禹之後也 都安邑이라
以其受舜之讓而爲君故 稱曰夏后氏
凡出師征討 誓告於軍中하니 欲民先事而成其思慮也
誓於軍門之外하니 欲民先意以待事也
原注
殷者 湯有天下之號也
凡出師征討 誓告於軍門之外하니 欲民先治勇鋭之意하여 以待戰陣之事也
將交刃而誓之하니 以致民志也
原注
周者 武王有天下之號也
凡出師征討 必待將與敵人交刃之時하여 而誓告之하니
夏后氏 正其德也 未用兵之刃이라
其兵不雜이요
原注
夏后氏하니 是以正其德也 未甞用兵之刃이라
兵器不雜이라
用兵之刃 兵器宜雜이니 雜則難制로되
未用兵之刃故
義也 始用兵之刃矣
原注
殷湯 以義取天下하여 初用兵之刃矣
葛伯 放而不祀어늘 湯使人問之한대 曰 無以供犠牲也로라
湯使人遺之牛羊이러니 葛伯 殺而食之하고 又不以祀어늘
湯使人問之한대 曰 無以供粢盛也로라
湯使人往爲之畊이러니 有童子以黍肉餉이어늘 殺而奪之
力也 盡用兵之刃矣니라
原注
以力取天下하여 盡用兵之刃矣
愚按夏商周三代各以其盛者而言이니 니라
賞於朝하니 貴善也
原注
夏后氏 賞有功者於朝하니 貴人之善也
戮於市하니 威不善也
原注
殷家 戮有罪者於市하니 威人之不善也
賞於朝하고 戮於市하니 勸君子하고 懼小人也
原注
周家 賞有功於朝하고 戮有罪於市하니 勸爲善之君子하고 懼爲惡之小人也
三王 彰其德 一也니라
原注
夏, 商, 周 彰顯其德
不雜則不利하니 長兵以衞하고 短兵以守니라
原注
兵器不雜而用之 則不鋒利
長兵 以之而衞 長兵 戈戟之類 是也
短兵 以之而守 短兵 刀劍之類 是也
太長則難犯이요 太短則不及이며 太輕則銳하니 鋭則易亂이요 太重則鈍하니 鈍則不濟니라
原注
兵器太長이면 則難犯人이요 兵器太短이면 則不及人이라
兵器太輕則銳하니 銳則易至於亂이요 兵器重則鈍하니
戎車 夏后氏曰
原注
戎車 則夏后氏名曰鈎車라하니
原注
殷之車 名曰寅車 先導之以疾也
鈎車, 寅車 未詳其制
周曰 元戎이니 先良也
原注
周之車 名曰 元戎이니 先導之以良也
詩曰
周元戎圖周元戎圖
夏后氏玄首하니 人之執也
原注
夏后氏之旂玄首者 象人之執하니 人首黒故也
當依漢書作勢
하니 天之義也
原注
殷之旂色白 象天之義 天體瑩潔故也
하니 地之道也
原注
周之旂色黃 象地之道
夏后氏以日月하니 尙明也
原注
士卒所戴之章也 是也
夏后氏之章 用日月 尙其明也
以虎하니 尙威也
原注
殷之章 用虎 尙其威猛也
以龍하니 尙文也
原注
周之章用龍
師多務威則民詘하고 小威則民不勝이니라
原注
師旅之中 若多務威 則民心詘而不伸이요 若少務威 則民하여 不能制勝이라
上使民 不得其義하면 百姓不得其敍하고 技用不得其利하고 牛馬不得其任하며
原注
使民 不得合其宜 則百姓不得其倫敍하고 技用不得其所利하고 牛馬不得其任使
有司陵之 此謂多威 多威則民詘이니라
原注
爲有司者 又陵辱之 此所謂多務威也 多務威
上不尊德而任詐慝하고 不尊道而任勇力하며 不貴用命而貴犯命하고 不貴善行而貴暴行하며
原注
在上者 不尊有德之人而任用奸詐邪慝之人하고 不尊有道之人而任用有勇多力之人하며 不貴用命之人而貴犯命之人하고 不貴善行之人而貴暴行之人이라
陵之有司 此謂少威 少威則民不勝이니라
原注
此所謂少威也 少務威 則民力
軍旅 以舒爲主하니 舒則民力足이니라
原注
軍旅 以舒緩爲主하니 舒緩則民力足用이라
古者 師行 日三十里하니 是舒則民力足矣
雖交兵致刃이나 徒不趨하고 車不馳하고 逐奔不踰列이라
是以不亂이니라
原注
雖與敵人交兵致刃이나 徒歩者不趨走하고 御車者不馳驅하고 追逐奔走 不踰行列이라
是以 其軍不亂이라
軍旅之固 不失行列之政하고 不絶人馬之力하며 遲速하여 不過誡命이니라
原注
軍旅之所以固者 不失其行列之政也 不絶其人馬之力也 或遲或速하여 이라
原注
古者 國容不入於軍하고 軍容不入於國이라
軍容入國이면 則民德廢하고
原注
軍容入國이면 則民德廢者 是軍勝於民하고 武勝於文也
國容入軍이면 則民德弱이라
原注
國容入軍이면 則民德弱者 是民逼於軍하고 文逼於武也
在國 言文而語溫하고 在朝 恭以遜하고 修己以待人하며 不召不至하고 不問不言하여 難進易退하나니라
原注
在國 言談文飾而辭語溫和하니 所謂 是也
在朝廷 恭敬而遜順하니 所謂 是也
在軍 抗而立하고 在行 逐而果하며 하며 城上不趨하고 危事不齒하나니라
原注
在行伍中 當馳逐而果決이라
介冑者 不拜하고 在兵車不式 不暇爲儀也
城上不趨走 恐驚人也 危事不啓齒
禮與法 表裏也 文與武 左右也
原注
禮與法 一表一裏也하여 在國尙禮하고 在軍尙法하며 文與武 一左一右也하여 在國尙文하고
古者 賢王 明民之德하고 盡民之善이라
無廢德하고 無簡民하며 賞無所生하고 罰無所試하니라
原注
古者 賢王在上이면 明下民之德而無所隱하고 盡小民之善而無所蔽
無廢墜之德하고 無簡擇之民하니 言德皆可擧而民皆可用也 所謂하고 人人有士子之行 是也
賞無所生 言民皆善也 罰無所用 言民皆不爲惡也
有虞氏 不賞不罰而民可用하니 至德也
原注
有虞氏 舜也 舜之世 不賞不罰而民皆可用者 至德之所致也
賞而不罰하니 至教也
原注
夏后氏 但賞人之善而不用罰하니 教之至也
罰而不賞하니 至威也
原注
殷人 但罰人之惡而不用賞하니 威之至也
以賞罰하니 德衰也
原注
周人 兼用賞罰하니 民德之衰也
賞不踰時 欲民速得爲善之利也
原注
賞人之功 不過其時 欲民速得爲善之利也
罰不遷列 欲民速覩爲不善之害也
原注
罰人之過 不遷移其列 欲民速覩爲不善之害也
大捷 不賞하여 上下皆不伐善이니 上苟不伐善이면 則不驕矣 下苟不伐善이면等矣리라
原注
凡有大捷 上下皆不賞이라
上下皆不誇伐其善이라
在上者誠不伐善이면 則不至於驕矣 在下者誠不伐善이면 必亡等矣
上下不伐善 若此 讓之至也니라
原注
上下皆不伐善 如此 相讓之至也
大敗 不誅하여 上下皆以不善在己 上苟以不善在己 必悔其過 下苟以不善在己 必遠其罪
原注
凡有大敗 上下皆不誅責이라
上下皆以不善在己 謂上下皆能自責也
在上者誠以不善在己 必能悔改其過 在下者誠以不善在己 니라
上下分惡 若此 讓之至也니라
原注
上下皆分惡 若此 相讓之至也
古者 戍兵 三年不典 覩民之勞也
原注
古者 戍邊之兵 三年不典하니 猶籍也 是也
古者 戍兵 今年春暮行하여 明年夏代者至하면 一年即還하여 三年 不驗籍而役之
是四人輪番하여 當一戍兵也
三年不典 王者覩民之勞苦也
上下相報若此 和之至也니라
原注
下供上之役하고 上覩下之勞하여 上下相報如此者 和之至也
得意則愷歌 示喜也
原注
戰伐而勝하여 得意而 奏以愷歌者 示喜也
愷歌 軍樂也
偃伯靈臺 答民之勞 示休也니라
原注
偃伯 恐有闕文誤字
文王臺名也 周得天下之後 恐天子之臺 亦曰靈臺
하고 勞還役 恐皆在靈臺之下
答民之勞 所以示休息其民也
或者 又曰 偃 姬字之誤也 偃伯 即文王也
文王時 有靈臺하니 其詩曰 이라하니 即所以答民之勞也라하니 未知孰是로라


천자天子는 반드시 순수하여 천지天地에서 법을 취하되 선성先聖에게서 관찰하며,
사서士庶는 반드시 부모를 받들고 군장君長(군주와 상관)에게서 바로잡는다.
그러므로 비록 현명한 군주가 있더라도 를 미리 가르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것이다.
옛날 백성을 가르칠 적에 반드시 귀천貴賤의 질서와 경제經制(떳떳한 제도)를 세워서 서로 능멸하지 않게 하였으며,
덕의德義를 소유한 자가 서로 넘지 않으며 재기材技(재주와 기예)를 소유한 자가 서로 엄폐하지 않으며 용력勇力를 소유한 자가 서로 범하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향하는 바에 마음이 같고 뜻이 화합한 것이다.
옛날에 국도國都의 용모(禮法)로는 군대에 들어가지 않고, 군대의 용모로는 국도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덕의德義를 소유한 자가 서로 분수를 넘지 않는 것이다.
윗사람은 자랑하지 않는 선비를 귀하게 여겨야 하니, 자랑하지 않는 선비는 윗사람의 기용器用(중요한 쓰임)이다.
〈선비가〉 만일 자랑하지 않으면 바람이 없고, 바람이 없으면 다투지 아니하여,
국중國中에서 다스릴 적에 반드시 그 실정을 알고,
군대에서 다스릴 적에 반드시 그 마땅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재능과 기예를 소유한 자가 서로 엄폐하지 않는 것이다.
명을 따르면 선비 된 자에게 최고의 상을 주고, 명령을 범하면 선비 된 자에게 최고의 벌을 내린다.
그러므로 용력勇力을 소유한 자가 서로 범하지 않는 것이다.
백성들을 지극히 가르친 뒤에 삼가 선발하여 부리니,
일이 지극히 닦이면 백관百官이 넉넉하고,
가르침이 지극히 살펴지면 백성들이 선량한 마음을 흥기시키고,
습관이 이루어지면 백성들이 풍속을 체행體行하니,
교화가 지극한 것이다.
옛날에 도망하는 적을 추격할 적에 멀리 쫓아가지 않고, 고삐를 잡고 후퇴하는 적을 따라잡지 않았으니, 멀리 쫓아가지 않으면 쉽게 유인당하지 않고, 따라잡지 않으면 쉽게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를 견고함으로 삼고 을 승리로 삼으며,
이미 승리한 뒤에는 교화를 다시 쓸 수 있다.
이 때문에 군자가 교화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유우씨有虞氏국중國中(國都)에서 경계하였으니, 백성들이 명령을 체득하게 하려고 한 것이요,
하후씨夏后氏군중軍中에서 맹세하였으니, 백성들이 일에 앞서 사려思慮를 이루게 하려고 한 것이요,
나라는 군문軍門의 밖에서 맹세하였으니, 백성들이 미리 용감한 뜻을 다스려서 일을 기다리게 하려고 한 것이요,
나라는 장차 적과 칼날을 교차하려 할 적에 맹세하였으니, 백성이 필사必死의 각오를 바치게 한 것이다.
하후씨夏后氏는 덕을 바르게 하였고 군대의 병기인 칼날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병기를 뒤섞어 쓰지 않았고,
나라는 를 주장하였으니, 처음으로 병기의 칼날을 사용하였고,
나라는 무력武力을 주장하였으니, 병기의 칼날을 모두 사용하였다.
나라는 조정에서 상을 주었으니 선인善人을 귀하게 여긴 것이요,
나라는 시장에서 죽였으니 하지 못한 자를 두려워하게 한 것이요,
나라는 조정에서 상을 주고 시장에서 죄인을 죽였으니, 군자를 권면하고 소인을 두려워하게 한 것이다.
삼왕三王이 그 을 밝힘은 똑같다.
병기를 뒤섞어 쓰지 않으면 이롭지 못하니, 긴 병기로써 호위하고 짧은 병기로써 지킨다.
병기가 너무 길면 범하기 어렵고 너무 짧으면 미치지 못하며, 너무 가벼우면 빠르니 빠르면 혼란하기 쉽고, 너무 무거우면 둔하니 둔하면 일을 이루지 못한다.
융거戎車는, 하후씨夏后氏구거鈎車라 하였으니 바르게 나아가도록 선도한 것이요,
나라는 인거寅車라 하였으니 빠르게 나아가도록 선도한 것이요,
나라는 원융元戎이라 하였으니 양호하게 작전이 진행되도록 선도한 것이다.
는, 하후씨夏后氏는 〈의〉 머리(윗부분)를 검게 하였으니 사람의 형세를 의거한 것이요,
나라는 백색을 사용하였으니 하늘의 뜻이요,
나라는 황색을 사용하였으니 땅의 이다.
휘장은, 하후씨夏后氏는 해와 달을 사용하였으니 밝음을 숭상한 것이요,
나라는 범을 사용하였으니 위엄을 숭상한 것이요,
나라는 용을 사용하였으니 문채文彩를 숭상한 것이다.
군대가 위엄을 힘씀이 많으면 백성들(병사들)이 위축되고, 군대가 위엄이 적으면 백성들을 이겨내지 못한다.
윗사람이 백성을 부릴 적에 마땅함을 얻지 못하면 백성들이 적절한 차례를 얻지 못하고 기용技用이 적절한 이로움을 얻지 못하고 소와 말이 적절한 부림을 얻지 못하며,
유사有司(관리)가 백성들을 능멸하면 이것을 ‘위엄이 많다.’라고 하는 것이니, 위엄이 많으면 백성들이 위축된다.
윗사람이 을 높이지 않고 간사하거나 사특한 자에게 맡기며, 도를 높이지 않고 용력勇力이 있는 자에게 맡기며, 명령을 따르는 자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명령을 범하는 자를 귀하게 여기며, 선행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폭행을 귀하게 여기며,
백성들이 유사有司를 능멸하면 이것을 ‘위엄이 적다.’라고 하는 것이니, 위엄이 적으면 백성을 이겨내지 못한다.
군대는 느림을 위주하니, 느리면 군사들의 힘이 충분해진다.
비록 〈전투가 벌어져〉 병기가 교차되고 칼날이 부딪치더라도 보병이 급히 달려가지 않고 수레가 치달리지 않으며, 도망하는 적을 추격할 적에 항렬을 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혼란하지 않은 것이다.
군대의 견고함을 유지하는 방도는 항렬의 정사政事(명령)를 잃지 않게 하고 사람과 말의 힘을 끊어지도록 부리지 않게 하며, 혹은 느리고 혹은 빨리하여 장수의 경계하는 명령을 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옛날에 국도國都(조정)의 용모(예법)로는 군대에 들어가지 않고, 군대의 용모로는 국도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군대의 용모로 국도에 들어가면 백성들의 덕이 폐해지고,
국도의 용모로 군대에 들어가면 백성들의 덕이 약해진다.
그러므로 국도에 있을 적에는 말이 문채 나고 말소리가 온화하며, 조정에 있을 적에는 용모가 공손하고 사양하고 몸을 닦아 남을 대하며, 군주가 부르지 않으면 가지 않고 군주가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서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물러가는 것을 쉽게 여기는 것이다.
군중에 있을 적에는 말을 크게 하고 꼿꼿하게 서며, 항렬行列에 있을 적에는 달려가서 과감히 결단하며, 갑옷을 입은 자는 절하지 않고 병거兵車에서는 경례하지 않으며, 위에서는 달려가지 않고 위태로운 일을 만나면 웃어서 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은 겉과 속이요, 는 왼쪽과 오른쪽인 것이다.
옛날에 현명한 왕은 백성들의 을 밝히고 백성들 중에 한 자를 다 등용하였다.
그러므로 버려진 이 없고 특별히 선발할 백성이 없었으며, 을 쓸 곳이 없고 을 시험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유우씨有虞氏을 주지 않고 을 주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을 쓸 수 있었으니 지극한 이요,
나라는 을 주고 을 주지 않았으니 지극한 가르침이요,
나라는 을 주고 을 주지 않았으니 지극히 위엄스러운 것이요,
나라는 을 사용하였으니 이 쇠한 것이다.
이 때를 넘기지 않는 것은 백성들이 을 행한 이로움을 속히 얻게 하려고 해서요,
을 줄 적에 대열을 옮기지 않고 〈즉석에서 처벌하는 것은〉 백성들이 불선不善을 행한 해로움을 속히 보게 하려고 해서이다.
큰 승리에는 을 주지 않아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모두 자신의 (善)을 자랑하지 않아야 하니, 윗사람이 만약 자신의 을 자랑하지 않으면 교만하지 않고, 아랫사람이 만약 자신의 을 자랑하지 않으면 반드시 피아彼我의 등급이 없을 것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자신의 을 자랑하지 않음이 이와 같다면 사양함이 지극한 것이다.
큰 패전에는 벌을 주지 아니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모두 잘못을 자신에게 있다고 여겨야 하니, 윗사람이 만약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면 반드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것이요, 아랫사람이 만약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면 반드시 죄를 멀리할 것이니,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잘못)을 분담함이 이와 같다면 사양함이 지극한 것이다.
옛날에 변경을 수비하는 병사를 3년 동안 다시 군적軍籍에 올리지 않은 것은 백성들의 수고로움을 보아서이니,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보답함이 이와 같다면 화합和合함이 지극한 것이다.
승리하여 뜻을 얻으면 개선가凱旋歌를 부름은 기쁨을 보이는 것이요,
언백偃伯영대靈臺는 백성들의 수고로움에 보답하는 것이니, 휴식을 보이는 것이다.


역주
역주1 書曰 以義制事 : 이 내용은 《書經》 〈商書 仲虺之誥〉에 보인다.
역주2 以名篇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병사들을 교습하는 일을 말한 것이다.[此言敎習士衆之事]”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3 (致)[效] : 저본의 ‘致’는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效’로 바로잡았다.
역주4 一張一弛 : 張은 활시위를 조이는 것이고 弛는 활시위를 풀어놓는 것으로, 《禮記》 〈雜記 下〉의 “활을 조이기만 하고 풀어놓지 않으면 文王과 武王도 다스리지 못하고, 풀어놓기만 하고 조이지 않으면 文王과 武王은 이렇게 하지 않으니, 한 번 조이고 한 번 풀어놓는 것이 문왕과 무왕의 도이다.[張而不弛 文武弗能也 弛而不張 文武弗爲也 一張一弛 文武之道也]”라고 한 내용을 인용한 것인데, 정치 역시 백성들이 해이해졌으면 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통제가 잘되면 느슨하게 풀어줌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5 此天子之義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것을 말하여 아랫글의 士庶의 義를 일으켰다.[言此以起下文士庶之義]”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6 上士中士下士 : 士의 세 등급으로, 《孟子》 〈萬章 下〉에 “君이 한 位요, 卿이 한 位요, 大夫가 한 位요, 上士가 한 位요, 中士가 한 位요, 下士가 한 位이니, 모두 여섯 등급이다.[君一位 卿一位 大夫一位 上士一位 中士一位 下士一位 凡六等]”라고 보인다. 士는 大夫 아래의 계급인바, 조선조의 郎官이 이에 해당된다.
역주7 上必取正於君長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一說에는 이르기를 ‘奉은 가르침을 받드는 것이다.’ 하였다.[一云 奉 奉敎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8 不教民戰 是謂棄之 : 이 내용은 《論語》 〈子路〉에 보인다.
역주9 是謂棄之之義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用은 사용하여 싸우는 것이다.[用 用以戰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10 德義不相踰 : 漢文大系本의 頭註에는 “德義가 각기 분수가 행해져 서로 넘지 않는 것이다.” 하였으니 역시 분명하지 않다. 바로 이어진 ‘材技不相掩 勇力不相犯’의 문장으로 보아 일반인과 軍中에 德義를 소유한 자가 분수를 지켜 상대방을 존경해서 서로 넘지 않음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11 向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세 가지는 모두 귀천 간에 서로 능멸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니, 오직 백성을 가르치기를 이렇게 하기 때문에[三者 皆貴賤不相陵之事 惟敎民之如此]”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으며, 다음 내용에 ‘謂’자가 없다.
역주12 天子穆穆……士子蹌蹌 : 이 내용은 《禮記》 〈曲禮〉에 보이는데, 陳澔의 《禮記集說》에 “穆穆은 그윽하고 깊고 화목하고 공경하는 모습이고, 皇皇은 웅장하고 顯明한 모습이고, 濟濟는 정돈되고 꾸미고 가지런하고 한결같은 모습이고, 蹌蹌은 나래를 펴고 드날리는 모양이다.” 하였다.
역주13 周旋中規 折旋中矩 : ‘周旋中規’는 둥글게 걸으면 원형인 規(걸음쇠)의 표준에 부합하는 것이며, ‘折旋中矩’는 꺾어 들면 矩(曲尺)의 표준에 맞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고대에 禮를 행할 적에 進退하고 揖讓하는 동작이다.
역주14 馮(풍)異見諸將爭功 每屏大樹下 : 馮異(?〜B.C. 34)는 後漢 光武帝 때의 명장으로 자가 公孫이다. 사람됨이 겸손하여 자신의 功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다른 장수들이 모여 앉아 戰功을 자랑하면 사람들을 피하여 홀로 나무 아래에 앉아 적을 무찌를 대책을 궁리하였다. 이 때문에 大樹將軍이란 별호를 얻었다. 《後漢書 권47 馮異傳》
역주15 : 풍
역주16 [聽] : 저본에는 ‘聽’이 없으나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7 有材技者 不得相掩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一說에 ‘능히 자랑하지 않을 수 있으면 바람이 없고 다투지 않아 國中과 軍中의 일을 다스려 결단함에 모두 그 마땅한 바를 얻는다. 그러므로 재능과 기예가 있는 자들을 능히 들어 쓸 수가 있는 것이니, 서로 엄폐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一說 能不伐則無求而不爭 其聽斷國中軍中之事 皆得其當 故有材技者 能擧用之 不相掩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18 既推致教道於民 : 漢文大系本에는 이 내용 대신 “가르치는 道를 미루어 지극히 한 뒤에 백성들이 모두 하나의 道에 귀결되는 것이다.[既推致之教道 其民盡歸一轍]”로 되어있다.
역주19 民體風俗矣 : 漢文大系本에는 이 내용 대신 “백성들이 모두 체행하고 모방하여 힘써 행해서 자연히 풍속을 이루는 것이다.[民皆體倣力行 自然成俗矣]”라고 되어있다.
역주20 習貫如自然 : 이 내용은 《孔子家語》 〈七十二弟子解〉의 “어려서 이루면 천성과 같고 습관이 되면 자연과 같다.[少成則若性也 習慣若自然也]”라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21 龍且(저)逐韓信……過濰水而敗之 : 龍且는 楚나라 項羽의 막하 장수이다. B.C. 205년, 漢나라의 韓信이 齊나라를 공격하여 臨淄를 함락시키고 齊王을 추격하자, 項羽가 龍且로 하여금 齊나라를 구원하게 하여, 濰水를 끼고 서로 대치하였다. 龍且는 평소 韓信을 輕視하여 전면전으로 韓信 軍을 섬멸하고자 하였다. 韓信이 밤중에 사람을 시켜 1만여 개의 포대를 만들어 江의 상류를 막아놓고는 군대를 이끌고 강을 반쯤 건너 공격하다가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후퇴하였다. 龍且가 기뻐하면서 “韓信이 겁쟁이인 것은 내가 평소에 알고 있었다.”라고 하며, 공격 명령을 내려 추격하게 하였다. 韓信이 사람을 시켜 막아놓았던 물을 트니, 龍且 軍이 대혼란에 빠졌다. 이에 韓信이 반격을 가하여 龍且를 죽이고 楚軍을 대파하였다. 《史記 권93 淮陰侯列傳》
역주22 : 저
역주23 : 龎(방)涓從孫臏 爲臏算至馬陵而殺之: 龎涓은 전국시대 魏나라의 장수이고, 孫臏은 齊나라 출신의 장군이자 兵法家이다. 龐涓과 孫臏은 함께 鬼谷子에게 병법을 배웠는데, 龐涓이 먼저 魏나라에서 장수로 등용되자, 孫臏의 재능을 시기하고 죄를 가하여 발을 자르게 해서 이후 두 사람은 원수지간이 되었다.
B.C. 341년, 魏나라가 趙나라와 연합하여 韓나라를 공격하자, 韓나라가 齊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니, 齊나라는 田忌를 장수로 삼고 孫臏을 軍師로 삼아 韓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이때 孫臏은 魏나라 군대가 사납고 용맹하여 齊軍을 경시하고 있음을 알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齊軍으로 하여금 魏나라 땅에 들어가 첫날에는 10만 개의 취사장을 만들게 하고, 다음 날에는 5만 개, 또 다음 날에는 3만 개로 차츰 줄여서, 적에게 아군이 약하여 도망자가 속출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에 龐涓은 사흘 만에 齊나라의 수많은 병사가 이탈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소수의 경무장한 기병만 거느리고 행군 속도를 배가하여 齊軍의 뒤를 추격하다가, 馬陵에서 齊軍의 매복공격에 빠져 큰 타격을 입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니, 齊나라는 이로 인하여 승세를 타고 魏나라 군대를 대파하였다. 《史記 권65 孫子列傳》
역주24 : 방
역주25 神武不殺 : 神武는 威武가 신묘하여 적에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굴복시킴을 이른다. 《周易》 〈繫辭 上〉에 “옛날의 聦明하고 叡智하며 神武하고 죽이지 않는 자일 것이다.[古之聦明叡知神武而不殺者夫]”라고 보인다.
역주26 : 복
역주27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옛날에 용병하는 방도이니[古者用兵之道]”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28 用致民必死之志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상은 고대의 군대에 맹세한 일을 논한 것이다.[此上 論古者誓師之事]”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29 揖讓有天下 : 揖讓은 禪讓으로 어진 이에게 帝位를 양위함을 이른다. 禹王이 舜임금에게서 제위를 선양 받아 夏나라 왕조가 성립되었으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30 兵器不雜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正은 盛함이니, 그 德이 성대하다고 말한 것과 같다.[正 盛也 猶言其德盛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31 葛伯放而不祀……十一征而無敵於天下 : 이 내용은 《孟子》 〈滕文公 下〉에 자세히 보이는데, ‘自葛載’의 載는 시작하다의 뜻이다.
역주32 革車三百輛 虎賁三千人 : 革車는 兵車이고 虎賁은 용사로, 이 내용은 《孟子》 〈盡心 下〉에 보인다.
역주33 會於孟津者八百 : 孟津은 河南省 孟縣 남쪽에 있는 나루로, 周 武王이 이곳에서 제후들과 회맹하고 황하를 건너 殷나라 紂王을 공격하였다. 《書經 周書 武成》
역주34 鷹揚之將 以百夫致師 : 鷹揚之將은 매처럼 높이 날아 적을 공격하는 장수로 姜太公을 가리키며, 百夫는 100명의 장사를 이르고, 致師는 적에게 도전함을 이른다.
역주35 非殷無德而周不義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삼대의 用兵이 똑같지 않음을 논한 것이다.[此 論三代用兵之不同]”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36 三王 : 夏나라의 禹王, 商나라의 湯王, 周나라의 文王‧武王을 이른다.
역주37 則一而已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삼대의 형벌과 상을 논한 것이다.[此 論三代之刑賞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38 (長)[太] : 저본의 ‘長’은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太’로 바로잡았다.
역주39 鈍則不能濟事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병기에 대해 널리 논한 것이다.[此 泛論兵器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40 鈎車 先正也 : 鉤車는 수레의 앞 난간이 굽은 것으로 《禮記》 〈明堂位〉에 “鸞車는 有虞氏의 수레이고 鉤車는 夏后氏의 수레이다.[鸞車 有虞氏之路也 鉤車 夏后氏之路也]”라고 보이는데, 陳澔의 《禮記集說》에 “路는 輅(수레)와 같다. 鉤는 굽음이니, 수레의 牀(판자)을 輿라 이르는데 輿의 앞 난간이 굽었으므로 鉤車라 이름했다.[路 與輅同 鉤 曲也 車床謂之輿 輿之前闌曲 故名鉤車]”라고 보인다. 《詩經》 〈小雅 六月〉에 “元戎 10乘으로 먼저 선도하여 길을 떠난다.[元戎十乘 以先啓行]” 하였는데, 《集傳》에 “夏后氏는 수레 이름을 鉤車라 하였으니, 바르게 선도하는 것이요, 殷나라는 寅車라 하였으니, 빠르게 선도하는 것이다.[夏后氏曰鉤車 先正也 殷曰寅車 先疾也]”라고 보인다. 鉤車는 軥車로도 표기한다.
역주41 先導之以正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先은 一本에는 尙(높임)으로 되어있다.[先 一作尙]”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42 寅車 先疾也 : 《詩經》 〈小雅 六月〉 ‘元戎十乘’의 《箋》에 “寅은 나아감이다. 鈎車와 寅車, 元戎은 모두 앞장서서 길을 열어 적진을 돌격하는 선두이니, 그 제도의 같고 다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寅 進也 二者及元戎 皆可以先前啓突敵陣之前行 其制之同異未聞]” 하였다.
역주43 元戎十乗 以先啓行 : 이 내용은 《詩經》 〈小雅 六月〉에 보이는데, 朱子는 《集傳》에서 “元은 큼이고 戎은 戎車이다.”라고 주하였다.
역주44 是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삼대의 융거에 대해 논한 것이다.[此 論三代之戎車]”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45 : 기
역주46 (曲禮)[周禮]謂(蛟)[交]龍爲旂 : 《禮記》 〈曲禮〉에는 이 내용이 보이지 않고 《周禮》 〈天官 司常〉에 “日月爲常 交龍爲旂”라고 보이므로 바로잡았다. 交龍은 두 마리의 龍이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인데, 이를 赤色으로 그린 것이다.
역주47 地之體黃故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삼대의 旂의 색깔을 논한 것이다.[此 論三代之旂色]”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48 尉繚子所謂卒有五章 : 이 내용은 《尉繚子》 〈經卒令〉에 보인다.
역주49 尙其文彩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三代의 章飾을 논한 것이다.[此 論三代之章飾]”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50 (力)[心驕橫] : 저본의 ‘力’을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心驕橫’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1 在上者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정령이 까다롭고 번거로워[政令苛煩]”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52 則民心詘而不伸矣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상은 위엄이 많은 폐해를 말한 것이다.[此上 言多威之弊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53 又凌辱其有司 : 漢文大系本에는 이 내용 대신 “윗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유사를 능멸하고 업신여긴다.[旣不畏上 必陵侮其有司]”라고 되어있다.
역주54 不能制勝矣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위엄이 적은 폐해를 논한 것이다.[此 論少威之弊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55 不過越將之誡命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군대를 포진할 적에 군대를 견고하게 하는 절도를 논한 것이다.[此 論陳師固軍之節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56 國容……不入國 : 軍容은 軍中의 위엄 있는 모습이고, 國容은 조정의 겸손하고 온화한 모습을 의미한다.
역주57 與上大夫言 誾誾如也 : 誾誾은 온화하게 말하는 모습이다. 이 내용은 孔子가 朝廷에서 말씀하시는 태도에 대한 것으로, 《論語》 〈鄕黨〉에 보인다.
역주58 舜命九官 濟濟相讓 : 이 내용은 《漢書》 〈劉向傳〉에 “舜임금이 九官을 명함에 濟濟하여 서로 사양해서 화목함이 지극하였다.[舜命九官 濟濟相讓 和之至也]”라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九官은 舜임금 때의 아홉 大臣의 지위로 司空, 后稷, 司徒, 士師, 共工, 虞, 秩宗, 典樂, 納言 등을 이르며, 濟濟는 정돈되고 아름다운 모양이다.
역주59 君不召不至 君不問不言 : 漢文大系本에는 이 내용 대신 “군주가 부르지 않으면 감히 제멋대로 군주의 앞에 가지 않고, 군주가 묻지 않으면 감히 함부로 國政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君不召 不敢擅至君前 不問 不敢妄言國政]”라고 되어있다.
역주60 難進而易退……一辭而退 : 이 내용은 《禮記》 〈表記〉에 “군주를 섬기되 나아가기를 어렵게 여기고 물러가기를 쉽게 여기면 벼슬자리가 질서가 있고, 나아가기를 쉽게 여기고 물러가기를 어렵게 여기면 벼슬자리가 혼란하다. 그러므로 君子가 세 번 揖하고서 나아가고 한 번 사양하고서 물러가는 것은 혼란을 멀리하려고 해서이다.[事君 難進而易退 則位有序 易進而難退 則亂也 故君子三揖而進 一辭而退 以遠亂也]”라고 보인다.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國都의 용모에 대해 말한 것이다.[此 言國容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61 介者不拜 兵車不式 : 이 내용은 《禮記》 〈曲禮 上〉의 “갑옷 입은 자가 절하지 않는 것은 절을 할 때 蓌拜(절함에 방해됨)가 되기 때문이다.[介者不拜 爲其拜而蓌拜]”라는 내용과 “兵車에서는 式(경례)을 하지 않으며, 武車에는 깃발을 늘어뜨리고 德車에는 깃발을 묶어둔다.[兵車不式 武車綏旌 德車結旌]”라는 내용을 각각 인용한 것이다.
역주62 周亞夫屯軍細柳……不聞天子詔 : 周亞夫(B.C. 199~B.C. 143)는 前漢 초기의 명장이다. 文帝 後元 6년(B.C. 158)에 匈奴가 변경에 대거 침입하자, 文帝는 宗正 劉禮와 祝茲侯 徐厲와 河內守 周亞夫를 將軍으로 삼아 각각 霸上, 棘門, 細柳에 주둔하여 匈奴를 방비하게 하였다. 文帝가 몸소 군대를 위로하기 위해 霸上과 棘門의 진영에 이르러는 곧바로 營門(軍門)으로 들어갔으며, 이 두 진영에서는 장수가 말에서 내려 天子를 맞이하고 전송하였다. 그러나 細柳에 있는 周亞夫 軍의 진영에 이르러는 병사와 장교들이 갑옷을 입고 병기를 번득이며 弓弩를 시위에 걸고서 御駕의 先驅가 營門에 당도했는데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先驅가 “天子의 행차가 당도하셨다.”라고 소리치니, 軍門을 수비하는 都尉가 말하기를 “將軍께서 명령하시기를 ‘軍中에서는 다만 將軍의 명령을 듣고 天子의 詔命을 듣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史記 권57 絳侯周勃世家》
역주63 恐惑衆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이는 軍隊의 용모에 대해 말한 것이다.[此 言軍容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64 在軍尙武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겉과 속은 각각 그 쓰임이 있음을 말한 것이고, 왼쪽과 오른쪽은 각각 먼저 하는 바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表裏 言各有其用也 左右 言各有所先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65 比屋可封 : 堯‧舜시대에는 교화가 천하에 두루 미쳐 풍속이 순후해서 집집마다 모두 제후에 봉해질 만큼 덕행이 뛰어난 인물이 많음을 말한 것이다. 《漢書》 〈王莽傳〉에 “堯‧舜시대에는 집집마다 다 봉해주어도 되었다.”라고 하였으며, 《論衡》 〈率性〉에는 “堯‧舜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다 봉하여도 되었고, 桀‧紂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다 죽여도 되었다.”라고 보인다.
역주66 : 무
역주67 言無彼我之分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一說에는 이르기를 ‘無等은 등급을 따져 올라가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하였다.[一云 無等 是無等而欲上之心也]”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68 必能遠離其罪 : 漢文大系本에는 이 아래에 “능히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새롭게 하여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남을 허물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옛날 상벌을 내리지 않음이 이와 같음을 논한 것이다.[能自新而不諉咎矣 此 論古之不加賞罰者如此]”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역주69 役不再籍 : 이 내용은 《孫子》 〈作戰〉에 보인다.
역주70 : 선
역주71 偃伯……即偃武也 : 漢文大系本에는 이 내용 대신에 “伯은 霸와 같으니, 패자가 무력을 쓰는 일을 그치고 백성과 靈臺 위에서 함께 즐기는 것은 군대를 휴식시키고 무력의 일을 그침을 보이는 것이다.[伯霸同 偃息伯者 用武之事 而相與同樂於靈臺之上 示休兵息武也]”라고 되어있다.
역주72 靈臺 : 周 文王이 天象을 관측하기 위해 세운 臺의 이름으로 《詩經》 〈大雅 靈臺〉는 이를 읊은 詩이다.
역주73 國之有臺……節勞佚 : 이 내용은 朱子의 《詩經集傳》 〈大雅 靈臺〉의 주석에 보인다.
역주74 凡勞還帥 : 선수
역주75 經始勿亟 : 靈臺를 지을 적에 文王이 백성들에게 급히 서둘지 말라고 경계한 것으로 《詩經》 〈大雅 靈臺〉에 다음과 같이 보인다. “靈臺를 처음 시작하여 경영하니, 庶民들이 와서 일하여 하루가 못 되어 완성하였네. 文王이 백성들에게 너무 서둘지 말라고 경계하셨으나 庶民들은 자식이 아버지 일에 달려오듯 하였네.[經始靈臺 經之營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亟 庶民子來]”

사마법직해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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