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者
에 暴虐
이어늘 이 諫而死
하니 忠臣之節
이 於斯盡矣
로다
임금과 신하는 하늘과 땅처럼 분명히 구분되는 관계이다.
임금은 높고 귀하며 신하는 낮고 천하니 존귀한 이가 비천한 이를 부리고 비천한 이가 존귀한 이를 섬기는 것은 천지간의 어디에나 통용되는 도리이며 예나 지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의리이다.
[해설] 이 부분은 봉건 사회의 신분질서 곧 당시 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던 계급적 질서의 타당성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곧 주자학에서 규정하고 있는 양반兩班과 상인常人이라는 이원적 국가 통치 구조를 정당화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절대군주의 통치권을 강화하고 임금의 명령에 복종하는 일방적인 신하상臣下像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임금의 통치를 보좌하면서 적극적으로 임금의 실정失政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하상을 강조함으로써 권력의 독주를 견제하는 신하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임금은 원元의 도리를 체행體行하여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고 신하는 임금을 도와 착한 일을 아뢰고 부정한 일을 막는 존재이다.
임금과 신하가 만날 때에 각각 자신의 도리를 극진히 하여 함께 공경하여 지극한 정치를 이루어야 한다.
[출전] ○ 同寅協恭 : 《서경書經‧고요모皐陶謨》에서 “하늘이 펼쳐서 법을 두셨으니 우리 오전五典을 바로잡아 다섯 가지를 돈독히 하시며, 하늘이 차례지어서 예禮를 두셨으니 우리 오례五禮로부터 시작하여 다섯 가지를 떳떳하게 하십시오. 군신君臣이 함께 공경하고 화합하여 충衷(五典과 오례五禮를 지칭)을 함께 이루게 하십시오. 하늘이 덕德있는 이에게 명령하시거든 다섯 가지 복식으로 다섯 가지 등급을 표창하시며, 하늘이 죄 있는 이를 토벌하시거든 다섯 가지 형벌로 다섯 가지 등급을 써서 징계하시어 정사를 힘쓰고 힘쓰십시요.[天敍有典 勅我五典 五惇哉 天秩有禮 自我五禮 有庸哉 同寅協恭 和衷哉 天命有德 五服五章哉 天討有罪 五刑五用哉 政事 懋哉懋哉]”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陳善閉邪 : 《맹자孟子‧이루상離婁上》에서 “임금에게 하기 어려운 일로 요구하는 것을 공恭이라 하고, 좋은 일을 아뢰고 부정한 일을 막는 것을 경敬이라 하며, 우리 임금은 요순堯舜의 치도治道를 이룩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임금을 해치는 행위라 일컫는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責難於君謂之恭 陳善閉邪謂之敬 吾君不能謂之賊]
[해설] 앞에서는 임금과 신하의 일반적인 관계를 규정했다면 여기서는 임금과 신하가 상대에게 지켜야 할 도리와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천하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신하뿐 아니라 임금에게도 동일한 정도의 의무이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군주권의 지나친 팽창을 경계하고 있는 내용이다.
만약 혹시라도 임금이면서 임금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며 신하이면서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함께 천하 국가를 다스릴 수 없다.
비록 그렇지만 우리 임금은 훌륭한 정치를 베풀 수 없다고 말하는 이를 임금을 해치는 자라고 하니
[출전] ○ 吾君不能 謂之賊 : 앞의 진선폐사陳善閉邪와 함께 《맹자孟子‧이루상離婁上》에 나온다.
[해설] 앞의 내용에 이어서 임금과 신하가 각각 자신의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천하 국가를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과 신하가 모두 자신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경계하고 있다. 특히 《맹자孟子》의 내용을 인용하여 신하가 자기 임금의 자질을 낮추어 보고 올바른 정치를 포기하는 것은 임금을 해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옛적에 상商나라 임금 주紂가 포학한 짓을 하자 비간比干이 간하다가 목숨을 잃었으니 충신의 절개가 여기서 극진했다.
공자께서는 신하는 임금을 충忠으로 섬겨야 한다고 하셨다.
[출전] ○ 臣事君以忠 : 《논어論語‧팔일八佾》에서 “정공定公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길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신하를 예禮로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충忠으로 섬겨야 합니다.[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고사] ○ 酒池肉林과 炮烙之刑 : 은殷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두루 갖춘 유능한 군주였으나 오만이 지나치고 음락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북방의 나라였던 유소씨有蘇氏를 정벌했을 때 미희 달기妲己를 공물로 헌상받은 뒤부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주왕은 달기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국고를 털어 궁성을 확장하고, 그 곳에 술의 연못과 말린 안주고기를 연이어 걸어놓은 수풀, 곧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고 벌거벗은 남녀들을 뛰놀게 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탕하게 놀았다. 충간하는 자가 있으면 포락지형炮烙之刑으로 다스렸는데 포락지형은 기름칠한 구리 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의 눈을 가린 다음 그 위로 걸어가게 하는 형벌이었다. 뜨겁고 미끄러운 구리 기둥에서 숯불 속으로 떨어져 죽어가는 충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달기는 극도로 즐거워했다고 한다.주왕의 이복형이었던 미자微子는 포락지형을 중지하도록 간했지만 듣지 않자 행방을 감추어 버렸고, 숙부였던 비간比干은 사흘동안 끈질기게 간하다가 심장을 꺼내 죽이는 형을 당했으며, 기자箕子는 거짓 미치광이가 되었다. 《사기史記‧은본기殷本紀》에 나오는 내용이다.
[해설] 신하로서 임금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부분이다. 임금이 실정을 거듭하여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게 되면 목숨을 버려서라도 강직하게 간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예로 비간比干이 주왕에게 간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례를 들고 있다. 녹을 받아 먹었는데 그 나라가 망하면 나라와 함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유학의 출처관出處觀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