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章 第一〉
입지장立志章 제일第一
처음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약하여, 털끝만큼이라도 자신을 작게 여겨서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보통 사람이나 성인이나 그 본성은 마찬가지이다.
비록 기질은 맑고 흐림과 순수하고 잡됨의 차이가 없을 수 없지만, 만약 참되게 알고 실천하여 옛날에 물든 나쁜 습관을 버리고 그 본성의 처음을 회복한다면 털끝만큼도 보태지 않고서 온갖 선이 넉넉히 갖추어질 것이니, 보통 사람들이 어찌 성인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孟子하시되이라하시니 시리오
그 때문에 맹자께서는 모든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고 주장하시되 반드시 요임금과 순임금을 일컬어 실증하시며 “사람은 모두 요임금이나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어찌 나를 속이셨겠는가?
[출전] ○ 孟子道性善 而必稱堯舜 : 《맹자孟子》 〈등문공상滕文公上〉에 나온다. “등문공이 세자가 되어 초나라로 갈 때 송나라에 들러 맹자를 만났다. 맹자께서는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말씀하실 때마다 요임금과 순임금을 칭술하셨다.[滕文公爲世子 將之楚 過宋而見孟子 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
○ 人皆可以爲堯舜 : 《맹자孟子》 〈고자하告子下〉에서 조교와 맹자의 대화에서 나오는 말이다. “조교가 여쭈었다. ‘사람들은 모두 요임금이나 순임금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曹交問曰 人皆可以爲堯舜 有諸 孟子曰 然]”
[해설] 학문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유학의 가르침은 남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 강한 사람을 기르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다. 오히려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서 전체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존립할 수 있는 조화로운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그 때문에 처음 배움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에게 학문의 이로움이나 실용성이 어디에 있다고 유용성을 알려 주기보다는 학문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루어야 할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강조한다. 그 때문에 율곡은 초학자들을 위한 입문서인 이 책의 첫머리에서 “자신의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을 스스로 기약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한 것이다.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성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는 말은 일견 무모할 정도로 이상적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와 같은 오해는 유학에서 이상적 인간상으로 설정한 성인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고, 성인은 본래 타고나는 것이며 배움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공자는 스스로 자신은 ‘나면서부터 도리를 안 생지자生知者가 아니며 옛것을 좋아해서 재빨리 그것을 추구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제자였던 안연은 “순임금이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도 훌륭한 행동을 하면 순임금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나라 때의 주돈이周敦頤는 제자가 배움을 통해서 성인이 될 수 있느냐고 묻자, 배워서 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유학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은 말할 것도 없이 성인이며 그 성인은 누구나 배움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현실 속의 인간이다. 곧 유학의 성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움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인간상임을 밝힌 것이다.
마땅히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 “사람의 본성은 본래 하여 옛날과 지금 지혜롭고 어리석은 차이가 없거늘, 성인은 무슨 연고로 홀로 성인이 되었으며, 나는 무슨 연고로 홀로 중인衆人이 되었는가?
이는 진실로 뜻을 확립하지 못하고 아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지 못함을 말미암은 것일 뿐이다.
뜻을 확립하고 아는 것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을 뿐이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
안연顔淵은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훌륭한 행동을 하는 자는 또한 순임금과 같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나 또한 마땅히 안연이 순임금이 되기를 바란 마음가짐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출전] ○ 顔淵曰~亦若是 : 《맹자孟子》 〈등문공상滕文公上〉에서 맹자가 안연이 한 말을 인용한 구절이다.
[해설] 이 부분은 사람은 누구나 성인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는 유학의 인간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본문의 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본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성은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을 막론하고 사람이면 누구나 똑같이 타고나는 것이다. 《중용中庸》에서는 ‘하늘이 명령한 것을 이라고 한다.[天命之謂性]’라고 표현했다. 이는 인간 본성의 근거가 에 있음을 밝히면서 동시에 그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완전하다는 것을 규정한 것이다. 곧 인간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서 개조하거나 외부의 강제를 통해서 구속할 필요가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내가 비록 범인에 머무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본성을 이루어 성인이 되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므로 성인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성인이 되는 길은 무엇보다 앎을 분명히 하는 데 있다. 이 내용은 대학에서 인간이 본래 밝은 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인간을 파악한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배고프면 먹고 싶어하고 추우면 따뜻하고 싶어하고 졸리면 자고 싶어하는 여러 가지 욕망과 함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노여워하거나 슬퍼하거나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중용中庸》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모두 절도에 맞는 것[中節]이 라고 한 것처럼 이와 같은 세속적인 감정이나 욕망 자체를 부정적으로 파악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그런 욕망이 절제를 잃고[不中節] 방종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할 뿐이다. 본래 완전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이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추구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유학에서는 그런 부작용이 모두 기질의 영향으로 인해 타고난 착한 본성이 가려졌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기질이 아무리 본성의 완전성을 가린다 하더라도 본성 그 자체는 타고난 그대로 밝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기질만 변화시키면 본래의 성을 회복하여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바꾸어 예쁘게 만들 수 없으며, 체력은 약한 것을 바꾸어 강하게 할 수 없으며, 신체는 짧은 것을 바꾸어 길게 할 수 없다.
이것들은 〈타고나면서부터〉 이미 결정된 분수인지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오직 심지心志만은 어리석은 것을 바꾸어 슬기롭게 할 수 있으며, 불초한 것을 바꾸어 어질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의 허령虛靈한 지각능력은 태어날 때 부여받은 기질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슬기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어짊보다 귀한 것이 없거늘 무엇이 괴로워서 어짊과 지혜로움을 실천하지 아니하여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훼손하는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뜻을 마음속에 보존하여 굳게 지켜 물러서지 않는다면 거의 도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해설] 이 문단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자학적 세계관의 근간을 이루는 이기론理氣論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사람의 본성은 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파악하기 때문에 본성을 두고 말하자면 요순堯舜이나 일반인이나 다를 것이 없다. 는 천지 만물의 동일성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의 재능이나 신체적인 능력 따위는 기질을 받음으로써 형성된다고 파악하는데 는 차별성을 설명하기 위한 범주이다. 그 때문에 사람마다 청탁淸濁의 정도가 다르다. 청기를 받은 사람은 현명하고 탁기를 받은 사람은 어리석다. 그런데 이와 같은 는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있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 있다.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타고난 용모나 신체의 길이 등으로 대부분의 육체적인 능력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적인 능력에 해당하는 은 본래 허령불매虛靈不昧한 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고난 기질의 영향에 완전히 구속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비록 탁기를 타고났다 하더라도 개인의 수양에 따라서 얼마든지 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데 이것이 바로 변화기질론變化氣質論이다. 이 문단의 내용은 바로 이와 같은 주자학적 인간관에 근거하여 변화 기질의 가능성을 밝힘으로써 개인적 수양의 논리적 근거를 확보한 것이다.
自謂立志하되하고 而實無向學之誠故也
무릇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말하되, 곧바로 공부하지 않고 미적거리면서 뒷날을 기다리는 까닭은 말로는 뜻을 세웠다고 하나 실제로는 배움을 향한 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뜻으로 하여금 진실로 배움에 있게 한다면 을 실천하는 일은 자기에게 말미암는 것이어서 〈인을 실천〉하고자 하면 〈인이 곧바로〉 이르게 되니, 어찌 남에게서 구하며 어찌 후일을 기다리겠는가?
입지立志를 중시하는 까닭은 〈입지를 확고히 하면〉 곧바로 공부에 착수하여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염려해서 항상 공부할 것을 생각하여 물러서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혹시라도 뜻이 성실하고 독실하지 못하여 그럭저럭 옛 습관을 답습하면서 세월만 보낸다면 수명을 다하여 세상을 마친들 어찌 성취하는 바가 있겠는가?
[출전] ○ 爲仁由己 欲之則至 : 《논어論語》 〈안연顔淵〉에서 “인을 실천하는 것은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겠는가![爲仁由己 而由人乎哉]”라고 한 대목과, 《논어論語》 〈술이述而〉에서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바라면 인이 이른다[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고 한 대목을 합쳐서 만든 문장이다. 또 《논어집주論語集註》에도 “정자가 말했다. ‘을 실천하는 것은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니 내가 그것을 바라면 인이 이른다. 그러니 어찌 멂이 있겠는가!’[程子曰 爲仁由己 欲之則至 何遠之有]”라고 한 대목이 보인다.
[해설] 이 문단은 도덕관념과 인간 주체의 관계를 밝히는 내용이다. 이란 유학儒學 사상思想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진 개념이다. 공자孔子를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곧 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공자는 평생 동안 하나만을 주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과 같은 최고의 가치도 개인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 내면화될 때 비로소 가치가 드러날 수 있다. 개인의 성찰과 수양을 강조하는 유학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인을 기대하는 소극적 태도로는 인을 이룰 수 없다고 본다.
유가에서 추구하는 은 사람의 본질, 곧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근거로 인을 실천하는 것은 사람다움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는 “이란 사람의 본질이며 이것을 합쳐서 말하면 이다.[仁也者 人也 合而言之 道也] 《맹자孟子》 〈진심하盡心下〉”라고 하였다. 곧 사람[人]이 사람다움[仁]을 실천하는 것이 유학의 인 셈이다.
역주
역주1 立志 : 〈立志〉에서는 배우는 자들이 먼저 뜻을 세워 스스로 聖人이 될 것을 기약하고, 스스로를 작게 여겨 물러서지 말고 나아갈 것을 강조하였다. 聖人과 衆人의 차이는 氣質의 차이에 의한 것이지, 모두 그 本性은 같은 것이므로, 기질을 변화시키고 본성을 밝게 알아 독실하게 행하면 누구나 聖人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역주2 初學 : 처음 배우는 사람. 곧 初學者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小子 곧 어린 사람을 지칭한다.
역주3 先須立志 : 먼저 반드시 뜻을 세움. 立志는 문자 그대로 뜻을 확립한다는 뜻인데 학문의 목적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바로 뒤에서 말하는 성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須’는 바로 다음 구절의 必과 같은 부사로 ‘반드시’라는 뜻이다.
역주4 必以聖人自期 : 반드시 성인으로 스스로 기약함. 곧 성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는 뜻이다.
역주5 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 :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작게 여기거나 물러 나고 핑계 대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됨. ‘一毫’는 ‘털 한 오라기 만큼’이라는 뜻으로 조금을 나타낸다. ‘自小退託之念’은 ‘自小之念과 退託之念이 합쳐진 것’으로 ‘自小之念’은 ‘스스로의 자질을 낮게 평가하는 것’을 말하며 ‘退託之念’은 ‘물러 나고 핑계 대는 소극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不可는 ‘~할 수 없다, ~해서는 안 된다, 옳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쓰였다. 有는 타동사로 쓰였는데 대상이 되는 목적어가 念이므로 ‘생각을 품는다’는 뜻이다.
역주6 蓋衆人與聖人 : 보통 사람들과 聖人. ‘蓋’는 ‘의미 없이 들어간 發語辭’이므로 해석하지 않는 것이 좋다. 衆人은 많은 수의 사람을 지칭할 때도 있지만 여기서처럼 聖人과 상대하여 쓰일 때는 그저 그런 보통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凡人, 庸人 등과 같은 뜻이다.
역주7 其本性則一也 : 그 本性은 마찬가지임. 곧 보통 사람이나 성인이나 타고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性은 등급의 차별이 없이 동일하다는 뜻. 則은 통상 ‘~하면’으로 조건을 표시하는데 여기서는 ‘그 본성을 두고 말하자면 마찬가지’라는 뜻이므로 아예 주격 조사 ‘~은’, ‘~는’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역주8 氣質 : 앞의 본성과 대비해서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타고나는 차별성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뒤의 淸濁과 粹駁이 그 내용이다.
역주9 不能無淸濁粹駁之異 : 맑고 탁함, 순수하고 잡박함의 차이가 없을 수 없음. 不能無는 ‘없을 수 없다’는 뜻. 異는 殊나 別과 같이 차이를 뜻한다.
역주10 苟能眞知實踐 : 만약 참되게 알아서 실천할 수 있다면. ‘苟’는 ‘若’과 같다.
역주11 去其舊染而復其性初 : 지난날 오염된 것을 제거하여 性의 처음 상태를 회복함. ‘舊染’은 ‘舊習之染’의 줄임말. ‘復其性初’는 ‘본성의 처음 상태’, 곧 純善無惡한 본래의 상태를 회복한다는 뜻으로 줄여서 復性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역주12 不增毫末而萬善具足矣 : 털끝만큼도 보태지 않고 온갖 善이 충분히 갖추어짐. ‘毫末’은 ‘털끝만큼’ 곧 ‘조금’이라는 의미. 인간 본성의 완전성을 강조하는 표현.
역주13 以聖人自期 : 성인으로 스스로 기약함. 곧 스스로 성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는 뜻.
역주14 豈可不~乎 :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주15 道性善 : 성선을 말함.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고 주장함. 이때 ‘道’는 ‘말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역주16 必稱堯舜以實之 : 반드시 堯임금과 舜임금을 일컬어 그 사실을 實證함. ‘稱’은 ‘稱述’의 뜻이고 ‘之’는 ‘대명사’로 앞 구절에 나온 ‘性善’을 지칭한다.
역주17 人皆可以爲堯舜 : 사람들은 모두 요순이 될 수 있음. 곧 누구나 성인이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뜻.
역주18 豈欺我哉 : 어찌 나를 속이셨겠는가!
역주19 當常自奮發曰 : 마땅히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 이렇게 말해야 함. 여기서 ‘曰’은 반드시 말한다는 뜻이 아니라 ‘생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다짐하는 의미이다.
역주20 人性本善 : 인간의 성은 본래 착함.
역주21 無古今智愚之殊 : 고금과 지우의 차이가 없음. 곧 옛사람은 착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든가, 지혜로운 사람의 본성은 착한데 어리석은 사람의 본성은 착하지 않다든지 하는 차이가 없이 모든 사람의 본성은 다 동일하다는 뜻이다. ‘殊’는 ‘異’와 같다.
역주22 何故獨爲聖人 : 무슨 까닭으로 홀로 성인이 되었는가? ‘何故’는 ‘성인이 될 수 있는 근거 또는 이유’를 나타낸다.
역주23 我則何故獨爲衆人耶 : 나는 무슨 까닭으로 홀로 보통 사람이 되었는가? 여기서 ‘何故’는 ‘보통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근거 또는 이유’를 나타내는데 뒤의 志不立, 知不明, 行不篤이 구체적인 내용에 해당한다. 則은 보통 ‘~하면’에 해당하는 조건을 표시하지만 여기서는 주격 조사 ‘~은, ~는’에 해당한다. ‘耶’는 원래 ‘邪’ 字인데 여기서는 의문형 종결사로 쓰였다.
역주24 良由 : 진실로 ~을 말미암음.
역주25 志不立 知不明 行不篤 : 뜻을 확립하지 못하고 아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지 못함. 이 세 가지는 모두 보통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 해당한다.
역주26 志之立 知之明 行之篤 : 뜻을 확립하고, 앎을 분명히 하며, 행실을 돈독히 함.
역주27 皆在我耳 : 모두 나에게 달려 있을 뿐임. 앞의 세 가지 일, 곧 뜻을 확립하고, 앎을 분명히 하며, 행실을 돈독히 하는 일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다는 뜻으로 도덕의 실천 여부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을 뿐임을 강조한 내용이다. ‘耳’는 단정형 종결사로 ‘~일 뿐’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무난하다.
역주28 豈可他求哉 : 어찌 다른 데서 구할 수 있겠는가? 앞의 내용에 이어 도덕을 실천하느냐 마느냐는 오직 나에게 달려 있을 뿐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
역주29 舜何人也 予何人也 : 舜임금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 순임금은 성인이고 나는 보통 사람이지만 똑같이 착한 본성을 타고난 동등한 존재라는 뜻. 곧 순임금도 사람이고 자신도 사람이므로 자신도 순임금과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자신하는 표현이다.
역주30 有爲者 亦若是 : 훌륭한 행위를 하는 이는 또한 이와 같음. ‘有爲’는 때에 따라 자연스러운 행위를 뜻하는 無爲와 상대되는 말로 억지로 하는 일, 인위적인 조작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儒家의 문헌에서는 대부분 훌륭한 행위, 훌륭한 정치를 나타낸다. 是는 순임금을 지칭하는 대명사.
역주31 我亦當以顔之希舜爲法 : 나 또한 마땅히 안연이 순임금과 같이 되기를 바란 것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顔之希舜은 顔淵이 순임금처럼 되기를 希求한 태도‧마음가짐을 의미하며 ‘以A爲B’는 ‘A를 B로 삼다. A를 B로 여기다.’는 뜻. 希는 求와 같은 뜻으로 ‘~을 바라다, ~을 찾다’는 뜻이다. 法은 본보기.
역주32 人之容貌 : 사람의 용모. 容貌는 원래 ‘容’은 ‘얼굴’, ‘貌’는 ‘몸 전체’를 나타내지만 여기서는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의미한다.
역주33 不可變醜爲姸 : 추한 것을 바꾸어서 예쁘게 만들 수 없음. 곧 한번 타고난 얼굴 생김새를 인위적인 노력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말. ‘不可’는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34 膂力 :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힘. 곧 육체적인 힘, 체력을 의미한다.
역주35 不可變弱爲强 : 약한 것을 바꾸어서 강하게 만들 수 없음.
역주36 身體 : 여기서는 몸의 길이, 곧 키[身長]를 의미한다.
역주37 不可變短爲長 : 짧은 것을 바꾸어 길게 만들 수 없음. 인위적으로 키를 크게 하거나 작게 할 수 없다는 뜻.
역주38 此則已定之分 : 이것들은 이미 결정된 분수임. 곧 앞의 용모, 여력, 신장 등은 타고나면서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뜻.
역주39 不可改也 : 고칠 수 없음. 인위적인 노력으로 바꿀 수 없다는 뜻.
역주40 惟有心志 : 오직 心志만은. 有는 의미 없이 들어간 것이므로 해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역주41 可以變愚爲智 : 어리석은 것을 바꾸어서 지혜롭게 만들 수 있음. 곧 인간의 마음만은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 可以는 有以와 같이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가능을 나타낸다.
역주42 變不肖爲賢 : 不肖한 것은 바꾸어 어질게 만들 수 있음. 不肖는 닮지 못했다는 뜻으로 자식이 아버지를 닮지 못한 경우를 일컫는데 보통 자신을 낮출 때 쓰는 표현이다. 앞의 愚와 智는 지능이 높고 낮음을 나타낸 것이고, 여기의 不肖와 賢은 도덕적 능력의 높낮이를 표시하지만 거의 구분 없이 쓰인다.
역주43 此則心之虛靈 不拘於稟受故也 : 이것은 마음의 虛靈함이 稟受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虛靈’은 ‘사람의 知覺 능력’을 표현한 것이고 ‘稟受’는 ‘氣質之稟’으로 ‘사람이 부여받은 기질’을 뜻한다. 此는 인간의 용모나 여력, 신장은 바꿀 수 없지만 인간의 심지는 바꿀 수 있는 이유, 근거를 지칭하는 대명사이다. 마음의 虛靈함이란 마음의 지각 활동을 의미하는데 구체적인 모습이 없다는 점에서 ‘虛’라고 표현했고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靈明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에서 ‘靈’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稟受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기질로서 本性과는 달리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어짊과 불초함의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마음은 이런 차이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不拘라고 표현한 것이다.
역주44 莫美於智 莫貴於賢 : 지혜로움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고 어짊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 於는 비교를 나타내는 조사로 ‘~보다 더’에 해당한다. 지혜롭고 어진 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뜻. ‘莫+A(형용사)+於+B’의 형태로 구성된 문장은 ‘B보다 더 A한 것은 없다’라고 해석하며 최상급 문장이 된다.
역주45 何苦而不爲賢智 : 무엇이 괴로워서 어짊과 지혜로움을 실천하지 아니하여. 賢과 智는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心志를 어질고 지혜롭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역주46 虧損天所賦之本性乎 :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훼손하는가?
역주47 人存此志 : 사람이 이 뜻을 보존함. 此志는 자신의 심지를 어질고 지혜롭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存은 操存의 뜻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붙잡아 둔다는 뜻이다.
역주48 堅固不退 : 굳게 지켜서 물러서지 않음. 堅固는 견고하게 지킨다는 뜻.
역주49 庶幾乎道矣 : 道에 가까울 것이다. 庶幾는 ‘거의 ~할 것이다’, 부디 ~하기 바란다’ 등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거의 ~에 가깝다’는 뜻으로 쓰였다. 道는 자신을 수양하는 올바른 방법을 나타낸다.
역주50 凡人 : 무릇 사람이. 凡은 문장 전체를 수식하는 부사로 쓰였으므로 보통 사람이란 뜻의 凡人으로 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역주51 不卽用功 : 곧장 공부하지 않음. 卽은 부사로 ‘곧장, 곧바로’의 뜻. 用功은 원래는 힘을 쓰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공부하다는 뜻.
역주52 遲回等待者 : 머뭇거리면서 훗날만 기다림. ‘遲’는 ‘느리고 게으른 모양’, ‘回’는 ‘목적지를 향해 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한다’는 뜻이다. 等과 待는 모두 기다린다는 뜻인데 여기서 기다리는 대상은 배움의 동기가 될 만한 특별한 계기를 뜻한다.
역주53 名爲立志 : 말로는 뜻을 세웠다고 함. 爲는 立을 돕는 보조 동사. 名은 뒤의 實과 대비되는 말로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뜻에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역주54 苟使吾志 : 만약 내 뜻으로 하여금. ‘苟’는 ‘若’과 같다.
역주55 誠在於學 : 정말 배움에 있게 한다면. 誠은 일반적으로 앞의 苟와 같이 만약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정말 ~한다면’, ‘진실로 ~한다면’으로 좀 더 간곡한 뜻으로 쓰였다.
역주56 爲仁由己 欲之則至 : 仁을 실천하는 것은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니 내가 그것을 바라면 인이 이른다. 인을 실천하느냐 마느냐는 나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진정으로 仁을 바라면 인이 나에게 온다는 뜻으로 도덕 실천의 주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며 그것을 이루는 일도 매우 신속하고 쉬움을 강조한 내용이다. 欲之의 之는 인을 지칭한다.
역주57 何求於人 : 어찌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겠는가? 나 자신이 실천의 주체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역주58 何待於後哉 : 어찌 훗날을 기다리겠는가. 지금 실천하면 곧바로 仁을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역주59 所貴乎立志者 : 立志를 중시하는 까닭은. 所以貴乎立志者의 줄임말.
역주60 卽下工夫 : 곧장 공부에 착수함. 下는 下手로 어떤 일에 손을 대다는 뜻으로 著手와 같은 뜻이다.
역주61 猶恐不及 : 여전히 미치지 못할까 염려함.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간절함을 비유한 표현이다. ‘猶’는 ‘오히려’, ‘여전히’라는 뜻이고 ‘恐’은 ‘아마도’와 같이 부사로 쓰일 때도 있지만 여기서는 ‘염려하다’, ‘두려워하다’는 뜻으로 동사이다.
역주62 念念不退故也 : 생각마다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입지를 확고히 하면 항상 공부에 매진할 것을 생각하여 조금도 물러서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역주63 如或志不誠篤 : 만약 혹시라도 뜻이 誠篤(참되고 돈독함)치 못하면. 如或은 苟或과 같고, ‘만약 혹시라도’라고 해석한다.
역주64 因循度日 : 그럭저럭 답습하면서 날만 보냄. 因과 循은 모두 따른다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因循’이라고 하면 ‘그럭저럭’의 뜻으로 해석한다. 여기서는 공부하지 않고 게을렀던 지난날의 타성을 그대로 따른다는 뜻이다. 度는 보낸다는 뜻이다.
역주65 窮年沒世 : 나이를 다하여 세상에서 사라짐. ‘窮年’은 ‘수명을 다한다’는 뜻이고 ‘沒世’는 ‘죽음’을 의미하는데 기본적으로는 같은 뜻이다.
역주66 豈有所成就哉 : 어찌 성취할 바가 있겠는가! 豈는 의문사. 哉는 감탄형 종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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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지장 제1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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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입지장 제1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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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입지장 제1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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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입지장 제1 546

격몽요결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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