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讀書者 必端拱危坐
하여 하여 하고 하여 [涵泳者
]
大學及
하여 ,
,
,
之道
에 一一眞知而實踐之
니라
次讀中庸
하여 於
,
,
에 一一玩索而有得焉
이니라
而
에 如近思錄, 家禮, 心經, 二程全書, 朱子大全, 語類
와 及他性理之說
을 宜間間精讀
하여 使義理常常浸灌吾心
하여 無時間斷
하고 而
에 亦讀史書
하여 하여 以長識見
이니
凡讀書
에 하여 하여 然後
에 요 不可貪多務得
하여 忙迫
也
니라
배우는 자는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여 사물에게 이김을 당하지 않게 하고, 반드시 이치를 궁구하여 선을 밝힌 뒤에야 마땅히 실천해야 할 도리가 분명하게 앞에 나타나게 되어서 진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에 들어감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이치를 궁구함은 책을 읽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성현들께서 마음을 쓴 자취와 선과 악 중에서 본받고 경계해야 할 것이 모두 책에 쓰여 있기 때문이다.
[출전] ○ 入道莫先於窮理 窮理莫先乎讀書 : 《주자독서법朱子讀書法》 권일卷一 〈강령綱領〉과 《성리대전서性理大全書》 권사십사卷四十四 〈학이學二‧총론위학지방總論爲學之方〉에 이와 유사한 문장이 보인다. “선생은 일찍이 소를 올려 말하였다. ‘학문하는 방법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이치를 궁구하는 요점은 반드시 책을 읽는 것에 있다.’[先生嘗上䟽曰 爲學之道 莫先於窮理 窮理之要 必在於讀書]”
[해설] 배움의 목적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선을 실천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자면 먼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궁리는 바로 무엇이 선인지를 밝히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나 방법은 대부분 성현들이 남긴 책 속에 있다. 따라서 일상생활 속에서 마땅한 도리가 무엇인지 스스로 찾으려는 노력과 함께 책을 읽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릇 책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히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공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마주하여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극진히 하며 자세히 생각하고 함영涵泳하여,[함영이라는 것은 익숙히 읽고 깊이 생각함을 이른다.]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구해야 하니,
만일 입으로만 읽고 마음에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일 것이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출전] ○ 전심치지專心致志 : 《맹자孟子》 〈고자상告子上〉에 나온다. “혁추奕秋는 온 나라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다. 혁추로 하여금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할 경우, 한 사람은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극진히 하여 오로지 혁추가 하는 말을 듣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비록 혁추의 말을 듣기는 하나 마음 한 구석에 기러기나 고니가 날아오면 활을 당겨 쏘아서 맞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비록 앞의 사람과 더불어 함께 배운다 하더라도 그 사람만 못할 것이다. 이것은 그의 지혜가 앞의 사람만 못해서인가? 그렇지 않다.[奕秋 通國之善奕者也 使奕秋誨二人奕 其一人專心致志 惟奕秋之爲聽 一人雖聽之 一心以爲有鴻鵠將至 思援弓繳而射之 雖與之俱學 弗若之矣 爲是其智弗若與 曰 非然也]”
[해설] 책 속에 담겨 있는 내용은 대부분 성현들이 남겨 놓은 말씀이다. 따라서 책을 대하는 자세도 마치 성현들을 대하듯 엄숙하고 단정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책을 읽는 까닭은 그 속에 담겨 있는 올바른 도리를 알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책의 내용을 암기하거나 그 속에 담긴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숙독하고 깊이 생각하여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비록 아무리 많은 지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참된 배움과는 거리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먼저 《소학小學》을 읽어,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을 사귀는 도리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익혀서 힘써 실행해야 할 것이다.
[출전] ○ 詳玩而力行之 : 《의려집醫閭集》 권일巻一 〈언행록言行録〉에 보인다. 또 말하였다. “주문공朱文公이 《소학小學》에 채집한 것은 정밀하고 순수한 말이니, 자세히 익혀서 힘써 실행할 만한 것이다.[又曰 文公採輯於小學者 精粹之言也 可詳玩而力行之]”
[해설] 《소학小學》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소학은 소자지학小子之學, 또는 소인지학小人之學의 줄임말로 대학大學이 대인지학大人之學을 뜻하는 것과 상대되는 말이다. 곧 《대학大學》은 성인成人의 학문으로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에 관한 내용이 포괄되어 있지만 《소학小學》은 소자 곧 어린이가 익혀야 할 수기修己와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 따라서 《소학小學》에는 물 뿌리고 소제하며, 어른에게 응대하고, 어른 앞에서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灑掃應對進退之節]을 중심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소학小學》의 여러 편 중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입교〉‧〈명륜〉‧〈경신〉의 세 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집중적으로 읽어야 할 대목은 〈명륜〉이라고 할 수 있다. 〈명륜〉은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도리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함께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희는 배우는 사람들에게 《대학大學》을 읽기 전에 반드시 《소학小學》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 이유는 소학의 가르침을 통해서 대학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바탕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곧 《소학小學》을 읽지 않으면 《대학大學》을 공부할 수 있는 기초가 형성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大學》과 《대학혹문大學或問》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자기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도리에 대해 일일이 참되게 알아서 진실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출전] ○ 真知而實踐之 : 《경의고經義考》 권이백오십오卷二百五十五 〈사서四書〉에 보인다. “정 선생은 행의行義가 매우 갖추어졌으니 이는 이른바 ‘참되게 알아서 진실하게 실천한다.’는 것이다.[程先生行義甚備 盖所謂真知而實踐之者]”
[해설] 《대학大學》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서 무엇을 중심으로 학습해야 할지를 밝히고 있다. 《대학大學》은 《중용中庸》과 함께 분량이 《논어論語》나 《맹자孟子》보다 훨씬 적지만 그 내용은 유학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원래 《대학大學》은 증자가 공자의 뜻을 전하고 그것을 다시 증자의 제자가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지금으로서는 정확하게 어느 개인의 저술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학大學》이 그 이전에 형성된 논어나 맹자에 나타난 사상과 일치하는 것은 분명하다.
《대학大學》의 핵심은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이다. 삼강령은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으로 유학이 지향하는 목표를 개인의 영역과 사회 전체의 영역으로 나누어 제시한 것이다. 또 팔조목八條目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앞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개인이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조목을 여덟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따라서 대학을 읽을 때는 삼강령과 팔조목에 해당하는 개념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으로 《논어論語》를 읽어 인仁을 구하고, 참된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고,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생각하고 깊이 체득해야 할 것이다.
[출전] ○ 구인求仁 :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나오는 표현이다. “염유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공자)께서 위나라 임금을 도와주시겠습니까?’ 자공이 이렇게 대답했다. ‘알았소. 내가 선생님께 여쭈어 보겠소.’ 자공이 들어가서 이렇게 물었다.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옛날 현인이다.’ 자공이 말했다. ‘원망했습니까?’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인을 추구해서 인을 얻었는데 다시 누구를 원망했겠는가!’ 자공이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께서는 도와주지 않으실 겁니다.’[冉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入曰 伯夷叔齊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曰 夫子不爲也]” 또 《맹자孟子》 〈진심상盡心上〉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 자기 몸에 돌이켜서 진실하다면 즐거움이 이보다 더 큼이 없다. 서恕를 힘써 실천하면 인을 추구함이 이보다 더 가까움이 없다.’[孟子曰 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 强恕而行 求仁莫近焉]”
○ 위기爲己 :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나오는 표현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學問을 하였는데, 지금에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한 학문學問을 한다.’[子曰 古之學者 爲己 今之學者 爲人]”
[해설] 《논어論語》를 읽을 때 무엇을 중심으로 공부해야 할 것인지를 밝히고 있다. 사서 중에서 성립 시기가 가장 이른 《논어論語》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으로 공자의 가르침은 물론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 내용, 공자의 행동거지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읽기에 따라서 《논어論語》를 통해 공자와 제자들의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도 있다. 특히 《논어論語》의 내용은 《대학大學》이나 《중용中庸》에서 추상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막상 《논어論語》를 읽으면서 참으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내용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고 또 워낙 간단한 언급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어論語》를 읽을 때는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개성이나 특징까지 함께 이해하고 또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까지 재구성해 봄으로써 공자 학당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어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논어論語》의 중심 내용은 학學과 인仁이다. 학學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며, 인仁은 그런 배움을 통해 도달해야 할 목적으로 ‘사람다움’을 의미한다. 따라서 학學과 인仁의 대상과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으로 《맹자孟子》를 읽어, 의리와 이익을 분명하게 분별하는 일과,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내용에 대해 일일이 밝게 살펴서 확충해야 할 것이다.
[출전] ○ 遏人欲 存天理 : 《맹자孟子》 〈양혜왕하梁惠王下〉에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자신은 호색하기 때문에 왕도정치를 시행할 수 없다고 하자, 맹자孟子가 호색하는 마음이 왕도정치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부분이 있다. 주희朱熹는 이 부분을 해설하면서 맹자의 이와 같은 대답은 바로 알인욕遏人欲 존천리存天理를 위한 것이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악기를 연주하고 동산을 만들고 유람하는 즐거움과, 용맹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 천리 중에 있는 것이며 인정 속에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천리와 인욕은 함께 움직이지만 실제의 내용은 다르다. 도리를 따라 천하를 위해 공을 추구하는 것은 성현들이 자신의 본성을 극진히 할 수 있는 까닭이고, 욕망을 함부로 부려서 자기만을 위한 사사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없애 버리는 까닭이다. 이 둘 사이는 머리카락 한 올로도 나눌 수 없지만 그 시비와 득실의 결과는 서로간의 차이가 크다. 그 때문에 맹자께서 당시 군주들의 질문에 따라 조짐이 드러나는 즈음에 가려내셨으니 모두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蓋鐘鼓苑囿遊觀之樂 與夫好勇好貨好色之心 皆天理之所有 而人情之所不能無者 然天理人欲 同行異情 循理而公於天下者 聖賢之所以盡其性也 縱欲而私於一己者 衆人之所以滅其天也 二者之間 不能以髮 而其是非得失之歸 相去遠矣 故孟子因時君之問 而剖析於幾微之際 皆所以遏人欲而存天理]”
[해설] 《맹자孟子》의 중심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맹자孟子》는 맹자가 제자들 및 당시의 제후들과 대화한 내용을 중심으로 엮어져 있는데 《논어論語》에 비해 분량도 많고 문장도 길다. 그 때문에 《논어論語》를 고요한 호수에 비유한다면 《맹자孟子》는 마치 격렬하게 흐르는 장강대하長江大河를 보는 것 같아서 분량이 길지만 오히려 《논어論語》보다 읽기가 쉽다. 특히 맹자가 당시의 제후들을 질타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호쾌함마저 느낄 수 있다. 맹자의 대화 상대는 주로 제齊나라 선왕宣王을 비롯한 당시의 제후들과 자신의 제자들이었다. 제후들과의 대화에서 맹자는 주로 왕도정치王道政治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역설했고 제자들과의 대화에서는 주로 성선설性善說을 주제로 논의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은 각각 다른 것이 아니다. 왕도정치의 실현 가능성은 성선설에 근거를 두고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이익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당시의 추세를 거부하고 국가의 구성원들이 인仁과 의義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인정의 실현, 곧 왕도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당시의 급무라고 주장했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사단四端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착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따라서 《맹자孟子》를 읽을 때는 왕도정치와 성선설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으로 《중용中庸》을 읽어, 성정의 올바른 뜻과 미루어 지극히 하는 공부와 천지가 제자리를 얻고 만물이 생육되는 미묘한 이치에 대해 일일이 깊이 음미하고 탐색하여 터득함이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출전] ○ 성정지덕性情之德 : 《중용中庸》 1장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아직 움직이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고 일컫고, 움직여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일컫는다. 중中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의 대본大本이고, 화和라고 하는 것은 천하의 달도達道이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주희는 이 구절의 내용을 이렇게 규정했다. “이 구절은 성과 정의 본질을 말함으로써 〈사람이〉 도道를 떠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此言性情之德 以明道不可離之意]”
○ 推致之功 位育之妙 : 모두 《중용中庸》 1장章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中과 화和를 극진히 하면 천지天地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萬物이 생육生育된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추치지공推致之功이란 치중화致中和를, 위육지묘位育之妙는 천지위언天地位焉 만물육언萬物育焉을 지칭한다.
[해설] 《중용中庸》의 내용과 학습 방법을 밝히고 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공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중용中庸》은 내용은 짧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문헌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용이란 용어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중용中庸의 중中은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아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음을 일컬음이다. 따라서 중中은 최고의 준칙을 의미한다. 또 용庸은 평상平常이라는 뜻으로 평범과 일상을 뜻한다. 이는 인간이 실천해야 할 마땅한 도리, 곧 중도가 일상생활 속에 있는 것이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곧 최고의 도덕 원리라고 할 중용의 도가 결코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중용을 실천하기가 쉽다는 것이 결코 아무런 노력 없이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용의 도를 실천해야 하는 구체적인 시공간은 일상에 지나지 않지만 중용의 도를 실천한다는 것은 인간이 천도의 진실한 운행을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중용中庸》에서는 이처럼 인간 존재의 근거를 천지자연에 두면서 인간과 천지자연의 교감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런 우주적 일체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용中庸》을 읽을 때는 먼저 중中과 용庸의 뜻을 알고 중용의 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것을 토대로 천명天命과 성性, 솔성率性과 도道, 수도修道와 교敎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차분하게 음미해 보는 끈기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시경詩經》을 읽어, 성정의 간사하고 올바름과 선악을 칭찬하고 징계함에 대해 일일이 깊이 생각하여 선한 마음을 감발感發하고 악한 마음을 징계懲戒해야 할 것이다.
[해설] 《시경詩經》의 내용과 학습 방법을 밝히고 있다. 시詩는 사람의 마음이 사물에 감동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된 나머지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시詩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小說을 쓸 때에는 독자를 의식하며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신경을 쓰지만, 시詩를 쓸 때에는 표현하는 것이 얼마만큼 본마음인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그만큼 난해하다.
마음의 구조를 보면, 마음의 밑바닥에는 성性(사람에게 국한시킬 때는 인仁)이 있고 마음속에는 성性에서 나온 정情으로 채워져 있다. 성性이 나타난 것이 정情이고 정情이 나타나기 전의 상태가 성性이다. 지하수에서 흘러나온 물로 가득 차 있는 샘에 비유하면 샘은 마음이고 지하수는 성性이며 샘물은 정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샘 자체에 진흙이나 모래가 있어 샘물을 흐리게도 하는 것처럼, 마음 자체에 생각하고 헤아리고 분별하는 기능이 있어서 성性과 정情으로 될 때 영향력을 행사한다. 성性이 정情으로 나타나는 순간 이기적인 생각을 하면 이기적인 정情이 되고, 간사한 생각을 하면 간사한 정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性에서 아무런 오염됨도 없이 깨끗하게 나타난 순정純情을 표현한 것이 시詩라면, 시詩가 되기 위해서는 성性과 정情으로 될 때 간사한 생각이나 이기적인 생각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감동하는 것에는 간사한 생각[邪]도 있고 올바른 생각[正]도 있다. 그러므로 말에 나타나는 것 중에는 옳음[是]과 그름[非]이 있기도 하다. 따라서 혹시라도 감동됨이 잡雜되어 밖으로 표현되는 것 가운데 선택해야 할 것이 있으면 반드시 스스로 돌이켜 생각하고, 간사함과 올바름, 선과 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살펴, 선한 마음과 올바른 마음을 감발하게 하고, 칭찬하며, 간사한 마음과 악한 마음은 징계하고 억제하여 밖으로 표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예경禮經》을 읽어, 천리의 절문과 의칙의 도수에 대해 일일이 강구해서 확립함이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출전] ○ 天理之節文 儀則之度數 : 《예기禮記》 〈악기樂記〉의 주註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예를 행하는 일은 곧 천리의 절문과 인사의 의칙을 이르니, 그것을 행하는 것은 일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行禮之事 即謂天理之節文 人事之儀則 行之 不止一端]”
[해설] 《예경禮經》의 내용과 학습 방법을 밝히고 있다. 《예경禮經》이란 곧 《예기禮記》를 말한다. 《예기禮記》는 주대 말부터 진한시대의 여러 유학자들의 고례古禮에 관한 학설들을 집록한 것으로, 특히 공자와 그의 72제자 및 그 후학들의 언설을 종합한 책이다. 일명 《소대례小戴禮》, 또는 《소대례기小戴禮記》라고 한다. 예경禮經이라고 하지 않고 예기禮記라고 한 것은 예禮에 관한 기록 또는 주석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공자는 삼대三代 이래의 문물제도, 의례, 예절 등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스스로의 책무로 삼았고,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예를 익히고 실천하는 데 역점을 두었는데, 공자 사후 각국으로 흩어진 공자의 가르침을 전파한 제자들이 예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공자의 후학들에 의해 기록된 예설이 늘어나 한대에 이르러서는 2백여 편이나 되었는데, 전한시대 중엽의 유학자인 대덕戴德과 대성戴聖이 흩어져 있는 예설들을 수집‧편찬하였다. 대덕이 수집한 것을 《대대례기大戴禮記》라고 하고 대성이 수집한 것을 《소대례기小戴禮記》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예기禮記》는 《소대례기小戴禮記》이다.
한대의 학자인 정현은 《육례론六禮論》에서 “지금 세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예는 대덕과 대성의 학이다. 대덕은 기記 85편을 전했으니 곧 대대례이고, 대성은 예 49편을 전했으니 곧 예기禮記이다.”라고 하여 《예기禮記》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즉 대덕의 85편은 《대대례기大戴禮記》, 대성의 49편은 《소대례기小戴禮記》로 일컬어지며, 정현이 《주례周禮》‧《의례儀禮》와 함께 《소대례기小戴禮記》에 주석을 붙여 삼례三禮라 칭하게 된 후로 《소대례기小戴禮記》가 《예기禮記》로 행세하게 된 것이다. 《대대례기大戴禮記》는 산일되어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40편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대대례기大戴禮記》 85편에서 49편을 정리 편찬한 것이 《소대례기小戴禮記》인지, 아니면 이 두 《예기禮記》가 각각 별개로 편찬되어 전승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학자들은 대개 후자로 보는 것 같다. 또한 대성이 산삭刪削한 것이 46편이었으며, 그 뒤 한말漢末 마융馬融이 〈월령月令〉‧〈명당위明堂位〉‧〈악기樂記〉 세 편을 보태 49편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예기禮記》는 수많은 주석이 있었지만 그중 정현의 주석이 가장 먼저 권위를 인정받았다. 정현은 《예기禮記》를 주석하면서 원전을 존중했고, 잘못임이 분명한 대목일지라도 원문의 글자를 고치는 법이 없이 주석으로 자세하게 지적해 두는 데 그쳤다.
공영달孔穎達은 당태종의 명을 받아 《오경정의五經正義》를 편수함에 정현의 주를 바탕으로 웅안생熊安生‧황간皇侃의 의소를 참작해 독자적인 정리를 하면서 “예禮는 바로 정학鄭學이다.”고 하였는데, 이후로 《예기禮記》를 정주공소鄭注孔疎라 해서 정현의 주와 공영달의 소가 원전 못지않게 존중되었다.
《예기禮記》는 제도나 의례에 국한되지 않고, 다방면에 걸친 예에 관한 이론을 총망라하고 있어서 사상적으로나 사회사적, 법제사적으로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고대 사회에 있어서 예의 영역은 국가의 통치제도‧사회적 도의 규정‧개인적 수신‧통치 수단‧교화의 방법까지 망라한다.
《예기禮記》의 최대 가치는 전국시대와 진한연간의 유학의 학술 사상에 관한 매우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는 데에 있다. 특히 《예기禮記》에는 순자荀子 학파의 사상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유학의 기본 사상과 그 변천 과정을 알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논어論語》, 《맹자孟子》, 《순자荀子》 다음으로는 《예기禮記》를 읽어야 할 것이다. 사서 중의 두 책인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이 원래 《예기禮記》의 한 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유학 사상 연구, 또는 예학 연구, 또는 교양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예기禮記》를 읽어야 할 것이다. 다만 《예기禮記》는 분량이 방대하고 잡다한 것들이 섞여 있으므로, 중요한 내용을 갖고 있는 편들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서경書經》을 읽어, 이제二帝와 삼왕三王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대법大經大法에 대해 일일이 요령을 터득하여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출전] ○ 二帝三王 治天下之大經大法 : 《서경집전書經集傳》 서序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아! 서경書經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제二帝‧삼왕三王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대법大經大法이 모두 이 책에 실려 있으니, 식견이 얕은 자가 어찌 깊은 뜻을 다 발명할 수 있겠는가.[嗚呼 書豈易言哉 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 皆載此書 而淺見薄識 豈足以盡發蘊奧]”
[해설] 《서경書經》의 내용과 학습 방법을 밝히고 있다. 《서경書經》은 상고시대 요堯로부터 주대周代에까지 여러 제왕들의 정법상의 발언과 행위를 기록한 책으로, 《시경詩經》과 함께 가장 일찍 경서로서 정착된 문헌으로서 최고의 산문집이다. 선진先秦 때에는 단지 《서書》라고 칭하다가 한대漢代부터는 《상서尙書》라고 칭하였다. ‘서書’는 본래 기록류記錄類의 일반적 호칭이다. 그러나 《논어論語》 〈술이述而〉에서 “공자孔子는 시詩‧서書‧예禮를 강습할 때에는 언제나 아언雅言을 사용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서’는 단지 기록이란 의미가 아니라 선왕先王의 서로서 전승된 귀중한 자료로서 교과의 교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맹자孟子‧순자荀子는 물론 묵가墨家에서도 서를 전거典據로 인용하고 있으나 그 내용이 많지 않고 또한 한초漢初의 《금문상서今文尙書》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어서 서의 본래 모습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상서’라는 명칭이 처음 보이는 문헌은 《묵자墨子》 〈명귀하明鬼下〉이다. 공안국孔安國은 ‘상서’의 명칭에 대하여 “상고上古의 서書를 상서라 한다.”라고 하였고 《위서緯書》 〈선기검璇譏鈐〉에는 “상尙이란 상上이다.”라고 하였으며, 왕숙王肅은 “위에서 하신 말씀을 아래에서 적은 것이므로 상서라고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정현鄭玄은 “공자孔子가 《서》를 편찬하였으므로 이것을 높여 상서라고 한다.”고 하였다. 한편 고대 중국에는 좌우이사左右二史라는 것이 있어서 좌사左史는 왕의 말씀을 기록하고, 우사右史는 그의 행동과 일을 기록하였다. 이로부터 사관史官의 손에 의해서 전승傳承되어 오던 것을 공자가 오래되고 확실하지 않은 기록은 버리고 법도가 될 만한 것 120편을 정리 편찬한 것이 《상서尙書》이고, 후세의 《서경書經》이 된 것이다. 따라서 《서경書經》의 저자는 어디까지나 당시의 사관史官들이며, 공자는 다만 편자編者의 위치를 차지할 뿐이다. 또한 현재의 《서경書經》의 형태로 미루어 볼 때 유가학설儒家學說이 그 주조를 이루고 있는 〈순전舜典〉‧〈익직益稷〉‧〈탕서湯誓〉 등은 후대의 유가儒家에 의해 그 내용이 보충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주장이다.
《서경書經》에는 고대 이상 정치의 진면목과 집권자들의 선행善行‧가언嘉言‧신하들이 군왕에게 충고한 말, 군왕이 신하와 백성들에게 알리는 포고문 또는 서약‧명령 등의 내용이 주로 담겨져 있다.
또한 《서경書經》은 정치와 도덕에 근거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중국 고대 문화의 원류가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경書經》의 일관된 사상으로는 명덕신벌明德愼罰과 애민愛民‧중민重民 사상을 들 수 있는데, 명덕신벌이란 천명의 보존을 위한 군주의 자계自戒로서 후에 《서경書經》의 권위가 확고해지면서 역대 제왕들이 지켜야 할 규범이 되었다. 그리고 애민愛民‧중민重民 사상은 유학의 정치철학으로 확립되어 후세의 제왕상帝王像을 규정하고 위정자의 권력 남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다음에 역경을 읽어, 길흉과 존망, 진퇴와 소장의 기미에 대해 일일이 관찰하여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출전] ○ 吉凶存亡進退消長 : 《역전서易傳序》에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역易에는 성인의 도道가 넷이 있으니, 이것을 써서 말하는 자는 그 말을 숭상하고, 이것을 써서 동動하는 자는 그 변화를 숭상하고, 이것을 써서 기물을 만드는 자는 그 모양을 숭상하고, 이것을 써서 점을 치는 자는 그 점괘를 숭상한다. 길흉吉凶‧소장消長의 이치와 진퇴進退‧존망存亡의 도道가 말에 갖추어져 있으니, 말을 미루어 괘卦를 상고하면 변화를 알 수 있으니, 상象과 점占이 그 가운데에 들어 있다.[易有聖人之道四焉 以言者尙其辭 以動者尙其變 以制器者尙其象 以卜筮者尙其占 吉凶消長之理 進退存亡之道 備於辭 推辭考卦 可以知變 象與占 在其中矣]”
[해설] 《역경易經》의 내용과 학습 방법을 밝히고 있다. 《역경》의 본래 명칭은 《역易》 또는 《주역周易》이다. 유교의 기본 경전인 오경五經의 하나로서 점서占書였던 것이 유교의 경전이 되면서 《역경易經》이 되었다. 《주역周易》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하夏나라 때의 연산역連山易, 은殷나라의 귀장역歸藏易이라는 역서가 있었다고 한다.
역이란 말은 변역變易, 즉 ‘바뀐다’‧‘변한다’는 뜻이며 천지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인데, 역의 의미에 대해서는 고래로 다음의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석척설蜥蜴說로서 역을 도마뱀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로 보는 것이다. 중국 고대인들은 도마뱀이 매일 12번씩 색깔을 바꾼다고 믿었으며 역은 바로 그 변화의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설은 본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시작되어 후대에도 이 설을 지지한 학자가 있었으나, 역의 가르침이 단순히 변화의 이치만을 제시하는가가 문제이므로 설득력이 미흡하다.
둘째, 일월설日月說로서 역易을 일日과 월月의 복합자複合字로 보는 것이다. 이 설 역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근거한 것인데, 일日은 양陽을, 월月은 음陰을 표시하며 따라서 《역易》을 음양소장陰陽消長에 관한 책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일日‧월月의 복합자는 ‘명明’으로 밝혀짐으로써 제3의 설이 출현하게 되었다.
셋째 자의설字意說로서 역을 그 자체에 포함된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역이라는 글자에는 다시 세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첫째, ‘이간易簡’ 또는 ‘간이簡易’로서, 천지의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간단하고 평이하다는 뜻이며, 이것은 단순하고 간편한 변화가 천지의 공덕임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변역變易’으로서 천지 만물은 멈추어 있는 것 같으나 항상 변하고 바뀐다는 뜻으로, 양陽과 음陰의 기운氣運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셋째는 ‘불역不易’으로서 바뀌거나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그 변하는 것은 일정한 항구불변恒久不變의 법칙을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법칙 그 자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자의설에서는 역을 이상의 세 가지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본다. 이것을 맨 처음 제시한 것은 《위서緯書》였는데, 《주역정의周易正義》에서도 이 설을 따르고 있다.
《주역周易》의 전체 구성은 본문에 해당하는 상하上下의 경문과 해설 부분인 십익十翼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하의 경은 다시 64개의 괘사卦辭와 384개의 효사爻辭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의 작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계사전繫辭傳〉에 근거하면 8괘는 상대商代 복희씨伏羲氏가 황하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있는 도형을 보고, 위로는 천문, 아래로는 지리, 중간으로는 만물의 각기 마땅한 바를 살려서 천지 만물의 모든 현상과 형태를 상징한 것이라 한다. 한편 왕필王弼은 복희씨伏羲氏가 황하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있는 도형圖形을 보고 계시啓示를 얻어 천문지리를 살피고 만물의 변화를 고찰하여 처음 8괘를 만들고, 이것을 더 발전시켜 64괘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사마천司馬遷은 복희씨가 8괘를 만들고 문왕文王이 64괘와 괘사‧효사를 만들었다 하였고, 융마融馬는 괘사를 문왕이 만들고 효사는 주공周公이, 십익은 공자孔子가 만들었다고 하여 그 정확한 작자를 밝혀낼 수가 없다.
8괘의 형성 과정은 종래의 학자들에 의하면 복희가 천지간의 모든 사물을 각각 건‧순, 강‧유, 기‧우, 대‧소, 장‧단 등 대립되는 성질을 가진 것을 둘로 나누어 음()과 양(−)으로 나타내었다고 한다. 이 음양은 스스로 한 음양을 낳아 ‘☰’과 ‘☷’을 생성한다. 복희는 전자를 건乾, 후자를 곤坤이라고 명명하였다. 〈설괘전說卦傳〉에 의하면 이 두 괘 중의 각 효爻는 서로를 구하여 6괘를 낳는다. 그것은 마치 건乾[☰-父-天]‧곤坤[☷-母-地] 두 괘로부터 여섯 자녀가 태어남과 같으므로 ‘건곤육자乾坤六子’라고 한다. 즉 태兌[☱-少女-澤]‧이離[☲-中女-火]‧진震[☳-長男-雷]‧손巽[☴-長女-風]‧감坎[☵-中男‧水]‧간艮[☶-少男-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8괘는 각각 자연물을 상징한다. 그러나 8괘만으로는 천하의 모든 사물을 포괄할 수 없기 때문에 8괘를 중첩해서 64괘를 만들고 거기에 괘사와 효사를 붙여 설명한 것이 바로 《주역周易》의 경문經文이다.
《주역周易》은 경문 외에 그 뜻을 해석하고 《주역周易》의 이치를 선양한 십익十翼이 있다. 십익이란 새의 날개처럼 돕고 있는 열 가지 문헌이라는 뜻이다. 십익이라는 명칭은 후한에서 시작되었고, 한대 이전에는 대전大傳이라고 하였다. 십익은 곧 〈단전彖傳(상上‧하下)〉, 〈상전象傳(상上‧하下)〉, 〈계사전繫辭傳(상上‧하下)〉,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을 의미하는데, 〈단전彖傳〉은 괘사를 부연 설명한 것이다. 괘명과 괘사를 괘의 상象과 육효六爻의 구성 등에 입각하여 해석하였다. 〈상전象傳〉은 대상大象과 소상小象이 있다. 대상은 괘 전체의 뜻과 상‧하괘의 배치에 대한 논리에 입각하여 인사人事를 주로 설명하였고, 소상은 각 효의 효사를 부연 설명하였다. 〈계사전繫辭傳〉은 계사를 다시 설명하고 《주역周易》을 일관성 있는 논리로써 해설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계사전繫辭傳〉은 《주역周易》을 해설하기 위한 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주역周易》을 소재로 독자적인 철학을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계사전繫辭傳〉으로 인하여 《주역周易》이 단순한 점서에서 벗어나 철학‧윤리‧수양의 책으로서의 가치성을 보유하게 되었다. 〈문언전文言傳〉은 건‧곤 두 괘에 한하여 미려한 문장으로 괘사와 효사를 설명한 것이다. 〈설괘전說卦傳〉은 괘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해설로서, 8괘가 천지자연의 상징이라는 것과 소성괘‧대성괘로 변화하는 이치의 공적 등을 설명한 것이다. 〈서괘전序卦傳〉은 64괘 배열 순서의 의의를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잡괘전雜卦傳〉은 64괘에서 두 괘를 뽑아내어 서로 비교하여 그 의의와 특징을 상대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십익十翼은 예로부터 공자가 지은 것이라고 믿어져 왔으나. 송의 구양수歐陽脩가 《역동자문易童子問》에서 처음으로 이것을 의심하였고, 청대의 최술이 《수사고신록洙泗考信錄》에서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고 단정하였다. 결국 십익은 한 사람, 한 시대의 작품이 아니라 전국시대 말에서 진‧한대에 이르는 사이의 학자들에 의해서 완성된 작품으로 보인다. 따라서 8괘 이하 십익에 이르기까지 《주역周易》 전체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여러 사람에 의해 증보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복희의 8괘, 하‧은대의 연산역‧귀장역은 모두 점을 치기 위한 것이었으며, 《주역周易》도 여기에 근거하여 발전된 것이므로 그 목적은 본래 복서에 있었다. 따라서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보존될 수 있었는데, 십익, 특히 〈계사전繫辭傳〉이 추가됨으로써 종래의 복서에 철학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주역周易》의 기본 사상은 첫째, 천도天道를 미루어 인사人事를 밝히는 것이다. 《주역周易》의 64괘 384효는 음양의 소장을 통해 자연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인간 세상의 모든 경우를 나타내는 것이다. 중국 고대에는 자연과 인간의 법칙을 구별하지 않고, 인간의 법칙을 자연의 법칙에서 오는 것이므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이 길吉, 거스르는 것이 흉凶이라고 파악하였다. 자연의 변화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으므로 사람은 이것을 인사人事의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 자연의 가르침을 따라야 흉을 피하고 길하게 될 수 있는데, 이것을 《주역周易》에서는 선이라고 하였다. 두 번째 《주역周易》의 기본 사상으로는 중정中正이 있다. 64괘의 각 효사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이 중정이다. 곧 효사에서 길이라고 하는 것은 효가 중정을 얻은 경우이며, 흉이라고 한 것은 대부분 효가 중정을 얻지 못한 경우이다. ‘중中’이란 64괘 각각의 상하 괘에 있어서의 중효中爻를 가리킨다. 따라서 괘 전체의 상은 흉괘凶卦라 하더라도 중효에 속하는 효사에는 흔히 ‘길吉’, ‘회망悔亡’, ‘무구無咎’라는 글귀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아무리 흉하고 험한 상황일지라도 중도中道를 이행하면 화를 면하고 길하게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편 정正은 각 효가 마땅한 위치에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64괘는 모두 6개의 효로 성립하고, 각 효는 음‧양 가운데 하나임은 물론이지만 양효‧음효는 본래 일정한 위치가 있다. 6효를 아래에서부터 순서를 정하여 1‧3‧5는 양이 차지할 자리이며, 2‧4‧6은 음이 차지할 자리이다. 따라서 음‧양이 각각 자기 위치에 있는 경우에 정正을 얻었다고 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정을 잃었다고 하는 것이다. 요컨대 《역》은 자연의 법칙으로서의 천도를 상징화하고, 인간이 이에 순응함을 인도로서 규정하며, 중정한 것을 길이라고 하여 가장 선하다고 보는 것이다.
《역》의 철학적 성격이 재해석된 것은 송대宋代의 이학理學에 의해서이다. 이학理學에서는 물질 변화의 원리를 이理, 물질을 기氣로 개념 규정하고, 이로써 자연법칙과 인간의 도덕성을 해석하여 중국철학사에 새로운 장을 개척하였고 동시에 역학易學의 범주를 넓혔다. 하도河圖‧낙서洛書의 구체적 해석이 이루어졌고, 역학이 철학적으로 분석된 것은 모두 송대의 이학에 의해서이다.
《주역周易》은 유교의 경전 중에서도 특히 우주철학宇宙哲學을 논하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일본‧베트남 등의 유가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술의 원전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다.
다음으로 《춘추春秋》를 읽어, 성인이 선을 기리고 악을 벌하며, 억양하고 조종하는 은미한 말씀과 오묘한 뜻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연구하여 정확하게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다.
[출전] ○ 상선벌악賞善罰惡 : 《시경詩經》 〈첨피락의瞻彼洛矣‧모서毛序〉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첨피락의瞻彼洛矣는 유왕幽王을 풍자한 시詩이니, 옛날의 명왕明王이 제후諸侯들에게 관작을 명하여 상선벌악賞善罰惡함을 생각한 것이다.[瞻彼洛矣 刺幽王也 思古明王 能爵命諸侯 賞善罰惡焉]”
○ 억양조종抑揚操縱 : 《죽주집竹洲集》‧〈상장남헌서上張南軒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 억양抑揚하고 조종操縱함과 공격하고 탄핵함에 있어서는 혹 가볍게도 하고 혹 무겁게도 하며, 혹 주기도 하고 혹 빼앗기도 하여 하나라도 인정人情에 맞지 않음이 없이 법의法意에 합당해야 한다.[至其抑揚操縱 擊搏彈治 或輕或重 或予或奪 無一焉 不愜於人情 合於法意]”
[해설] 《춘추春秋》의 내용과 학습 방법을 밝히고 있다. 《춘추春秋》는 노魯나라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궁정연대기宮廷年代記에 공자가 독자적인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필삭한 역사서이다. 춘추시대 노魯나라 은공隱公 원년(B.C.722)부터 애공哀公 14년(B.C.481)에 이르는 사이의 중요한 일의 기록을 편년체로 엮어 놓은 것인데, 중국 최초의 편년사이며 간략한 서술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서주西周 금문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초기 산문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문장은 비록 아주 짧지만 자구字句의 운용이나 구성은 《서경書經》보다 훨씬 발전하여 간결하고 평이하다.
춘추春秋라는 말은 춘하추동春夏秋冬에서 하夏는 춘春에 동冬은 추秋에 포함시켜 1년간이라는 뜻으로 연대기를 의미한다.
《춘추春秋》의 경문 속에는 사건이나 인물이 공자의 예절과 명분을 중시하는 정치 이념 아래 비판 또는 평가되고 있다. 또한 《춘추春秋》에는 공자의 미언대의微言大義가 담겨져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이른바 춘추학이 성립되었는데, 단서를 제기한 것은 맹자孟子였다. 그러나 《춘추春秋》를 경經의 권위로 끌어올린 것은 순자荀子에서 비롯된다. 《순자》 〈권학〉에서는 《시경詩經》‧《서경書經》‧《예기禮記》‧《악경樂經》과 함께 오경의 하나로 《춘추春秋》를 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춘추春秋》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만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니라, 사건에 의탁하여 대의명분을 피력한 책이다. 비록 경문 그 자체는 불과 1,800여 조, 16,500여 자字에 지나지 않지만, 공자의 독특한 필법筆法이 경문 전체에 일관하고 있다. 따라서 《춘추春秋》는 경문이 지극히 간절하여 원뜻을 파악하기 쉽지 않았으므로, 전국시대의 공양고公羊高‧곡량적穀梁赤‧좌구명左丘明 3인이 전傳을 지어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들이 지은 《공양전公羊傳》‧《곡량전穀梁傳》‧《좌씨전左氏傳》을 흔히 춘추삼전이라고 한다. 여기에서의 전傳은 해석이라는 뜻인데, 엄밀한 의미에서 경으로서의 《춘추春秋》는 이 경문만을 의미하지만 전의 매개 없이 미언대의를 구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로부터 본래 단행본이었던 《춘추春秋》는 주석서인 삼전의 부속형태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삼전에 수록된 경문의 내용이 서로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공양전公羊傳》은 사회 규범을 가족 도덕의 연장으로 보는 입장에 있으며, 음양오행 사상과 결합하여 춘추의 재이災異 기록이 어떤 특정한 사건의 조짐이나 결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곡량전穀梁傳》은 군신의 대의명분과 천자의 절대성‧신성성을 강조하고, 국가 규범을 가족 도덕으로부터 분리하여 인간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을 법률적인 규범에 두고 있다. 《좌씨전左氏傳》은 역사적인 사실의 기록에 상세하며, 역사의 서술에 있어서 역사란 단순한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가치판단에 의해 기록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여, 주로 예의 규범에 비추어 사건의 옳고 그름을 논정論定하였다. 이러한 《좌씨전》의 역사 평가 방법을 춘추필법이라고 하며, 이러한 방법은 이후 역사 서술의 모범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래로 《좌씨전左氏傳》을 유교의 중요한 경전으로 삼고 애독하였다.
이상의 오서五書와 오경五經을 돌려 가며 익숙히 읽어 이해하기를 그만두지 않아서 뜻과 이치로 하여금 날로 밝아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송나라의 선현들이 지은 책으로서 이를테면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어류》 및 기타 성리설 같은 책을 마땅히 틈틈이 정독해서 의리로 하여금 항상 내 마음속에 젖어 들어 어느 때고 끊어짐이 없도록 하고, 남은 여가에 또한 역사책을 읽어 고금의 사변을 통달하여 식견을 신장시켜야 할 것이다.
이단이나 잡류로 바르지 못한 책 같은 경우는 잠깐 동안이라도 펼쳐 보아서는 안 된다.
[출전] ○ 여력餘力 : 《논어論語》 〈학이學而〉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제자가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인한 이를 친히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 여력餘力[餘暇]이 있으면 글을 배워야 한다.[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해설] 《근사록近思錄》:1175년 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이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 등 네 학자의 글에서 학문의 중심 문제들과 일상생활에 요긴한 부분들을 뽑아 편집한 책이다. 제목의 ‘근사近思’는 논어論語의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仁은 그 가운데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총 622조의 항목이 14권으로 분류되었는데, 각 권의 편명은 후대의 학자들이 붙인 것이 굳어진 것으로서, 〈도체道體〉‧〈위학爲學〉‧〈치지致知〉‧〈존양存養〉‧〈극기克己〉‧〈가도家道〉‧〈출처出處〉‧〈치체治體〉‧〈치법治法〉‧〈정사政事〉‧〈교학敎學〉‧〈경계警戒〉‧〈변이단辨異端〉‧〈관성현觀聖賢〉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희의 설명에 따르면 학문하는 사람이 그 단서를 구하고, 힘을 쓰며, 자기 몸을 처신하고, 사람을 다스리며, 이단을 구분하고, 성현을 보는 일의 큰 줄기를 다 갖추었다고 한다. 진덕수眞德秀의 《심경心經》과 함께 신유학의 필수 문헌으로 중시되었고, 채모蔡模의 《근사록집주近思錄集註》 등 많은 해설서가 나왔다.
한국에는 고려 말에 신유학이 수입될 때 들어와 1370년(공민왕 19) 진주목사 이인민李仁敏이 4책으로 복간한 바 있으며, 그 책은 지금까지 전해져 보물 제262호와 제1077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세종‧문종대의 경연에서도 이 책을 강론하였지만, 일반 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것은 조선 전기 훈구파의 사장詞章 중심의 학문을 비판하고 신유학의 요체를 깊이 이해하기 시작한 중종대 사림파 단계에 와서였다. 1519년(중종 14) 구례현감 안처순安處順에 의해 목판본이 간행되었다. 《소학》과 함께 중종대 사림파의 상징적인 서적으로 인식되어 기묘사화 후에는 한때 엄격히 금지되기도 하였지만, 이이李珥의 《격몽요결》 단계에 와서는 학자가 《소학》과 사서삼경 및 역사서 등을 읽은 다음에 탐구해야 할 성리서性理書의 하나로 제시되었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학자의 필수 문헌으로 인식되어 수많은 판본이 간행되었으며, 17세기 중반 정엽鄭曄의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18세기 이익李瀷의 《근사록질서近思錄疾書》를 비롯한 많은 해설서가 나왔다.
《가례家禮》 : 고대 중국에서는 예악禮樂으로써 나라를 통치한다고 할 만큼 예禮를 중요시하였다. 모든 제도가 어느 정도 정비된 주周나라 때에 주공周公이 국가 통치의 방편으로서 예법을 제정하였는데, 그 후 역대의 왕조가 이것을 보강하였다. 그러나 이 예법은 ‘치국治國’에 필요한 것일 뿐, 국가 성립의 기본이 되는 가정을 다스리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제가齊家’를 위한 예법이 필요하여 가례家禮를 제정하였다. 주나라 이후 많은 학자들이 가례를 저술하였는데, 송宋나라 때에 이것을 집대성한 것이 《주자가례朱子家禮》이다. 《주자가례朱子家禮》의 편자는 주희朱熹, 즉 주자인데, 이에 대해서는 후세의 학자가 주자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라는 이설이 있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의 학자 유계兪棨가 《가례원류家禮源流》를 저술하였고, 김장생金長生이 《가례집람家禮輯覽》을 지었다. 그런데 《가례원류家禮源流》의 저자에 대해서는, 유계의 초고草稿를 윤선거尹宣擧가 읽어 보던 중 두 사람이 다 죽었으므로, 유계의 손자인 유상기兪相基와 윤선거의 아들인 윤증尹拯이 각기 자기 문중에서 지은 것이라 하여 분규가 일어났다.
이 밖에도 인조仁祖의 증손인 이혁李爀이 편찬한 《사례찬설四禮纂說》이 있고, 영조英祖 때의 이재李縡가 편찬한 《사례편람四禮便覽》, 이것을 고종高宗 때의 황필수黃泌秀‧지송욱池松旭이 증보한 《증보사례편람增補四禮便覽》, 선조宣祖 때의 이항복李恒福이 편찬한 《사례훈몽四禮訓蒙》 등이 있다.
이 책들은 주로 《예기禮記》 또는 《주자가례朱子家禮》를 기준으로 하여, 각 가정의 관례‧혼례‧상례‧제례 등을 규정한 것이다. 나라의 예법과 가례를 존중하는 사상이 조선시대에 더욱 강조되었는데, 이것이 당쟁黨爭과 관련되어 현종顯宗‧숙종肅宗 때 남인南人‧서인西人 사이의 ‘예송禮訟’을 초래하였다.
《심경心經》 : 중국 송대宋代의 진덕수眞德秀가 선대先代 유가서儒家書에서 심학心學에 관계되는 여러 성현의 격언을 순차적으로 모아서 찬한 성리서性理書이다. 심경은 이후 중국 명대明代 정민정程敏政이 주를 달았는데, 이를 《심경부주心經附註》라 한다. 퇴계 이황은 이 《심경부주》로부터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는데, 퇴계가 심경을 존중하여 왕王의 심법心法으로 중요시한 후, 조정에서도 책의 간행 보급에 대한 논의가 일었으며, 심경을 경연經筵에서 강講할 것을 건의하였고, 효종조孝宗朝에는 《근사록》과 함께 조정의 경연 과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정전서二程全書》 : 주희朱熹가 집록, 선별, 편차 작업을 해 두었던 것을 1606년 명나라 학자 서필달徐必達이 교정하여 간행한 것으로 총 6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머리에 서필달이 쓴 서문이 있고, 책 끝에 1246년 이습지李襲之가 쓴 발문과 1248년 장기張玘가 쓴 발문이 있다. 이정전서二程全書는 《이정유서二程遺書》(25권), 《부록附錄》(1권), 《이정외서二程外書》(10권), 《이정수언二程粹言》(2권), 《역전易傳》(4권), 《경설經說》(8권), 《이정문집二程文集》(13권), 《유문遺文》(1권), 《속부록續附錄》(1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이정문집二程文集》은 송나라 유학자 호안국胡安國이 정호의 문집인 《명도집明道集》과 정이의 문집인 《이천집伊川集》을 합쳐 편집하고 주희가 교정한 책이며, 《이정유서二程遺書》‧《이정외서二程外書》는 정호‧정이의 문인들이 기록한 글을 주희가 편집하여 만든 책이다. 《이정수언二程粹言》은 정호‧정이의 언설 중 주요한 것을 간추려 송나라 유학자 양시楊時가 편집하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全》과 함께 유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했던 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간행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68권 15책 목판본이 규장각 도서에 있다.
《주자대전朱子大全》 : 중국中國 남송南宋 때의 유학자儒學者 주희朱熹의 문집文集으로 목판본木板本. 본편 100권, 별집 11권, 속집 10권으로 되어 있다. 《회암선생주문공문집晦庵先生朱文公文集》, 《주자문집朱子文集》‧《주자문집대전朱子文集大全》이라고도 한다. 저자가 일생을 두고 저작한 모든 학설을 주로 하고 여러 학자들의 질의質疑에 대해 회답한 편지들과 시詩‧기記‧명銘‧비문碑文‧묘지墓誌 등 문예에 관한 저작들을 함께 모은 방대한 저작이다. 주희 사후 그의 문인門人들이 편찬한 것으로, 본편 100권은 보존되어 오던 것을 모은 것이고, 별집 11권은 그의 문인 여사로餘思魯가 모은 것인데, 속집 10권은 누구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것들을 모아 완전히 편찬한 것은 송宋 도종度宗 함순咸淳 원년(1165)이며 저자의 후손 옥玉이 교정하여 《주자대전집朱子大全集》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본서의 별집 다음에 있는 유집遺集 2권은 1771년(영조 47) 본서를 간행할 때 저자의 시문 중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 우리나라에서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부록附錄 12권에는 도통원류道統源流, 세계원류世系源流, 부사유언父師遺言, 유상遺像, 송사본전宋史本傳, 문인서술門人敍述, 제문祭文, 행장行狀, 연보원본年譜原本, 연보별본年譜別本, 택사서원정방宅祠書院亭坊, 사원기제祠院記題, 제편서발諸編序跋, 편저서목編著書目, 묵적유기墨蹟類記, 제명록題名錄, 당금록黨禁錄, 변무록辯誣錄 등 저자에 관한 후인들의 문장이 실려 있다.
《주자대전朱子大全》은 우리나라에서는 1543년(중종 38)에 이미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적이 있고, 1575년(선조 8)에도 역시 을해자로 간행하였으며, 그 뒤 각 지방에서도 몇 번 간행한 적이 있다. 비록 후기의 지방간본地方刊本이긴 하지만 ‘만기萬機’, ‘홍재弘齋’라는 정조의 인기印記가 있어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 등 《주자대전朱子大全》의 주석서가 여러 편 편찬되었다.
《주자어류朱子語類》 : 정식 명칭은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이나 일반적으로는 《주자어류朱子語類》라고 한다. 전 140권. 중국 남송南宋의 주자학자 여정덕黎靖德이 편찬하였으며, 같은 이름의 책이 몇 종류 있으나 여정덕의 편찬으로 된 이 책이 가장 많이 알려졌다.
내용은 주자와 문인 사이에 행하여진 문답의 기록을 분류‧편찬한 것으로 100명이 넘는 기록을 모았다. 주자의 사상을 아는 데 중요한 문헌이나 주자의 설과 모순되는 대목도 적지 않다. 문인들에 의한 이런 종류의 책은 주자가 죽은 후 11∼12년이 경과하여 나오기 시작하였다. 《주자어록》‧《주자어속록》 등이 그것이며, 황사의黃士毅 편찬의 《주자어류朱子語類》는 이 책의 선구적인 체재를 갖춘 것이다. 그 밖에 《주자어속류》‧《주자어류대전》 등 많은 어류가 있다.
무릇 책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한 책을 익숙히 읽어서 의미를 다 깨달아 꿰뚫어 통달하고 의심스러운 것이 없어진 뒤에야 비로소 다시 다른 책을 읽을 것이요, 많이 읽기를 탐내고 얻기를 힘써서 바삐 섭렵해서는 안 된다.
[해설] 독서의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독서법에는 다독, 속독, 정독 따위가 있다. 물론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다. 소설이나 수필 같은 경우에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책을 섭렵할 수 있고, 또 교양서적을 읽는 데 있어서는 시간이 없는 경우라든가, 아니면 다른 전공 서적에 있어서도 우리는 꼭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 읽는 경우가 흔히 있다. 어쩌면 그렇게 읽기를 강요받아 왔는지, 아니면 훈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체로 초‧중‧고등학교까지의 과정 동안 우리는 성적이나 입시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을 했을 뿐 폭넓은 학문에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학에서 말하는 독서란 단순히 글을 읽는다거나, 책 속에 들어 있는 단편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오서五書‧오경五經과 같은 경서經書라든가 그 외의 기타 성리서性理書 등과 같은 서적은 딱히 어느 한 부분이 좋다든가 일상생활에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책들은 전반에 걸쳐 성인들의 삶의 지혜가 들어 있고, 개인의 덕성을 함양하기 위한 지혜가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혼란과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 규범이 있으며, 정치, 경제 등에 대한 종합적인 내용과 철학이 들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경전經典은 항상 내용을 깊이 완미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通讀을 해야 한다. 그래야 거기에 들어 있는 모든 내용이 나의 것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독서를 많이 할수록 좋다고 해서, 아무 책이나 가리지 않고 많이 읽는 태도라든가, 아니면 책의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 책을 섭렵하는 자세는 오히려 학문하는 태도로서는 지양해야 할 자세인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항상 책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개인의 인격 완성은 물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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