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毛詩正義(1)

모시정의(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모시정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漢毛亨傳하고 鄭玄箋하고 唐孔穎達疏
나라 모형毛亨을 짓고 정현鄭玄을 지었으며 나라 공영달孔穎達를 지었다.
毛詩 二十九卷이요 毛詩古訓傳 三十卷이라
살펴보니,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모시毛詩≫는 29권이고, ≪모시고훈전毛詩古訓傳≫은 30권이다.”라고 하였다.
然但稱毛公이요 不著其名이러니 始云趙人 毛長 傳詩하니 是爲毛詩라하나
그러나 모공毛公이라고만 말하고 이름은 드러내지 않았는데, ≪후한서後漢書유림전儒林傳〉에 비로소 “조인 모장趙人 毛長이 ≪≫의 을 지었으니, 이것이 ≪모시毛詩≫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其長字 不從艸 載毛詩二十卷 漢河間太守毛萇하고 鄭氏하다하니 於是詩傳 始稱毛萇이라
하지만 ‘’자에 가 없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모시毛詩≫ 20권은 하간태수 모장河間太守 毛萇을 짓고, 정씨鄭氏(정현鄭玄)가 을 지었다.” 하였으니, 이 ≪시경詩經≫의 에 비로소 모장毛萇이라고 말하였다.
然鄭玄曰 魯人大毛公 爲訓詁傳於其家어늘 河間獻王 得而獻之하고 以小毛公으로 爲博士하다하고
그러나 정현鄭玄의 ≪시보詩譜≫에는 “노인 대모공魯人 大毛公이 자신의 집에서 ≪훈고전訓詁傳≫을 지었는데, 하간헌왕河間獻王이 그것을 얻어서 바치고 소모공小毛公박사博士로 삼았다.”라고 하고,
陸璣 亦云 孔子刪詩授卜商하고 爲之序하여 以授魯人曾申하고
육기陸璣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서도 “공자孔子산시刪詩하여 복상卜商(자하子夏)에게 전수하고, 복상이 를 지어 노인 증신魯人 曾申에게 전수하고,
授魏人李克하고 授魯人孟仲子하고 仲子 授根牟子하고
증신이 위인 이극魏人 李克에게 전수하고, 이극이 노인 맹중자魯人 孟仲子에게 전수하고, 맹중자는 근모자根牟子에게 전수하고,
根牟子 授趙人荀卿하고 荀卿 授魯國毛亨하고 毛亨 作訓詁傳하여 以授趙國毛萇하니
근모자는 조인 순경趙人 荀卿에게 전수하고, 순경은 노국 모형魯國 毛亨에게 전수하고, 모형이 ≪훈고전訓詁傳≫을 지어 조국 모장趙國 毛萇에게 전수하니,
時人 謂亨爲大毛公이라하고 萇爲小毛公이라하니라
당시 사람들이 모형毛亨대모공大毛公이라 하고, 모장毛萇소모공小毛公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據是二書하면 則作傳者 乃毛亨이요 非毛萇이라
이 두 책을 근거해보면 을 지은 사람은 바로 모형毛亨이지 모장毛萇이 아니다.
故孔氏 毛詩正義에도 亦云 大毛公 爲其傳이어늘 由小毛公而題毛也라하니
그러기에 공씨孔氏(공영달孔穎達)의 ≪모시정의毛詩正義≫에서도 “대모공大毛公(모형毛亨)이 을 지었는데 소모공小毛公(모장毛萇)을 거치면서 모시毛詩라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隋志所云 殊爲舛誤어늘 而流俗沿襲하여 莫之能更이러니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서 말한 것은 매우 잘못되었는데도 세속에서 그대로 답습하여 고치는 자가 없었는데,
朱彝尊 乃以毛詩二十九卷 題毛亨撰이라하고 注曰佚이라하고
주이준朱彝尊이 ≪경의존망고經義存亡考≫에서 비로소 ≪모시毛詩≫ 29권을 “모형찬毛亨撰”이라 쓰고, 에 “없어졌다.” 하고,
毛詩訓故傳三十卷 題毛萇撰하고 注曰存이라하여 意主調停이나 尤爲於古無據
모시훈고전毛詩訓故傳≫ 30권을 “모장찬毛萇撰” 이라 쓰고, 에서 “남아 있다.” 하여 의도적으로 조정調停하였지만 고서古書에는 더욱 근거가 없다.
今參稽衆說하여 定作傳者爲毛亨하니 以鄭氏 後漢人이요 陸氏 三國 吳人으로 倂傳授毛詩하니 淵源有自하여 所言必不誣也
이제 여러 학설을 참고하여 을 지은 사람을 모형毛亨으로 확정하니, 이는 정씨鄭氏(정현鄭玄)는 후한後漢 사람이고 육씨陸氏(육기陸璣)는 삼국시대 오三國時代 吳나라 사람으로 모두 ≪모시毛詩≫를 전수하였으니, 전해온 연원淵源이 있어 그들이 한 말은 반드시 거짓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鄭氏 發明毛義하고 自命曰箋이어늘 曰 毛公 嘗爲北海郡守 康成 是此郡人이라 故以爲敬이라하나
정씨鄭氏모씨毛氏의 뜻을 밝히고 스스로 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모공毛公북해군수北海郡守를 지냈으니, 정강성鄭康成은 그 고을 사람이므로 〈이라고 이름하여 모공毛公을〉 존경한 것이다.”라고 하였지만,
推張華所言하면 蓋以爲
장화張華의 말을 따져보면 공부公府에서는 를 사용하고, 군장郡將(군수郡守)은 을 사용하는 의미라는 것이다.
然康成 生於漢末하여 乃修敬於四百年前之太守 殊無所取
그러나 정강성이 한말漢末에 태어나서 400년 전의 태수에게 존경을 표시한 셈이니 전혀 취할만한 이유가 없다.
案說文曰 箋 表識書也라하고 鄭氏云 注詩 宗毛爲主하되
살펴보면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표지서表識書이다.” 하고, 정씨鄭氏는 ≪육예론六藝論≫에서 “를 주석할 때 모전毛傳을 위주로 하되,
毛義若隱略이면 則更表明하고 如有不同이면 卽下己意하여 使可識別注+[原注] 案此論 今佚이니 此據正義所引이라이라하니
모전毛傳의 뜻이 은미하거나 소략하면 더 드러내 밝히고, 나와 다른 부분이 있으면, 아래에 나의 뜻을 붙여 식별識別하게 하였다.”라고 하였으니,注+살펴보면 이 ≪육예론六藝論≫은 지금은 없어졌으니, 이는 ≪모시정의毛詩正義≫에서 인용한 것을 근거로 한 것이다.
然則康成特因毛傳而表識其傍이니 如今人之簽記 積而成帙이라 故謂之箋이니 無容別曲說也
그러고 보면 정강성은 모전毛傳만을 따라 그 곁에다 표지表識한 것이니, 마치 지금 사람들이 찌를 붙여 기록한 것이 쌓여 책이 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이라 한 것이니 별도로 자세한 말이 필요치 않다.
自鄭箋旣行으로 齊魯韓 遂廢注+[原注] 案此 陸德明之說이라 然箋與傳義 亦時有異同이라
정전鄭箋이 세상에 유행하고 나서부터 제시齊詩, 노시魯詩, 한시 삼가韓詩 三家의 시가 마침내 버림을 받았다. 注+ 살펴보면 이는 육덕명陸德明의 ≪경전석문經典釋文≫의 이다.그러나 의 의미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
作毛詩注 毛詩義駁 毛詩奏事 毛詩問難 諸書하여 以申毛難鄭하고
왕숙王肅은 ≪모시주毛詩注≫, ≪모시의박毛詩義駁≫, ≪모시주사毛詩奏事≫, ≪모시문난毛詩問難≫ 등을 저술하여 모전毛傳을 옳다 하고 정전鄭箋을 힐난하였으며,
歐陽脩 引其釋衛風擊鼓五章하여 謂鄭不如王注+[原注] 見하다이라하고 又作毛詩駁하여 以申鄭難王하고
구양수歐陽脩는 그가 해석한 〈위풍 격고衛風 擊鼓〉 5을 인용하여 “정현鄭玄왕숙王肅만 못하다.” 하고,注+모시본의毛詩本義≫에 보인다. 왕기王基는 또 ≪모시박毛詩駁≫을 지어 정현을 옳다 하고 왕숙을 힐난하였으며,
引其駁芣苢一條하여 謂王不及鄭注+[原注] 見困學記聞하고 亦載經典釋文하다이라하고 晉孫毓 作毛詩異同評하여 復申王說하고 陳統 作難孫氏毛詩評하여 又明鄭義注+[原注] 竝見經典釋文하다
왕응린王應麟은 그가 〈주남 부이周南 芣苢〉를 논박한 한 조목을 인용하여 “왕숙이 정현에 미치지 못한다.” 하고,注+곤학기문困學記聞≫에 보이고, ≪경전석문經典釋文≫에도 실려 있다. 손육孫毓은 ≪모시이동평毛詩異同評≫을 지어 다시 왕숙의 을 옳다 하고, 진통陳統은 ≪난손씨모시평難孫氏毛詩評≫을 지어 또 정현의 뜻을 밝혔다. 注+경전석문經典釋文≫에 같이 보인다.
袒分左右하여 垂敎百年이라가 至唐貞觀十六年하여 命孔穎達等하여 因鄭箋爲正義하니 乃論歸一定하여 無復岐途하니라
서로 편이 나뉘어 백년百年을 내려오다가 당 정관唐 貞觀 16년(642)에 공영달孔穎達 등에게 명하여 정전鄭箋을 따라 정의正義를 만들도록 하니 마침내 논란이 한곳으로 확정되어 다시는 갈림길이 없게 되었다.
毛傳二十九卷 隋志에는 附以鄭箋하여 作二十卷하니 疑爲康成所倂이라
모전毛傳 29권을,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정전鄭箋을 붙여 20권으로 만들었으니, 아마도 정강성鄭康成이 합친 것일 것이다.
穎達等 以疏文繁重으로 又析爲四十卷하니 其書 以劉焯毛詩義疏 劉炫毛詩述義 爲稿本이라
공영달 등孔穎達 等의 글이 번중繁重하다 하여 또 40권으로 나누었는데, 그 책은 유작劉焯의 ≪모시의소毛詩義疏≫와 유현劉炫의 ≪모시술의毛詩述義≫를 고본稿本으로 삼은 것이다.
故能融貫群言하고 包羅古義하여 終唐之世 人無異詞러니
그리하여 수많은 말들을 종합하여 정리하고 고의古義를 빠짐없이 포함하여 의 시대에는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惟王讜唐語林 記劉禹錫聽施士匄講毛詩所說 維鵜在梁, 陟彼岵兮, 勿翦勿拜, 維北有斗四義하되 稱毛未注 然未嘗有所詆排也러니
다만, 왕당王讜의 ≪당어림唐語林≫에 유우석劉禹錫이 〈시사개施士匄에게 나아가〉 시사개施士匄가 ≪모시毛詩≫에서 말한 “유제재량維鵜在梁”, “척피호혜陟彼岵兮”, “물전물배勿翦勿拜”, “유북유두維北有斗”의 네 가지의 뜻에 대하여 강의한 말을 들은 일을 기록하면서, 모씨毛氏하지 못한 것이라 말하고 있으나 비방하거나 배척하지는 않았었는데,
至宋鄭樵하여 恃其才辨하여 無故而發難端하니 南渡諸儒 始以掊擊毛鄭爲能事
정초鄭樵에 이르러서 자신의 말재주를 믿고 까닭 없이 논란의 단서를 일으키니, 남송南宋유자儒者들이 비로소 모전毛傳정전鄭箋을 배격하는 것을 능사能事로 여겼다.
元延祐 科擧條制 詩雖兼用古注疏 其時門戶已成하여 講學者訖不遵用이라
나라 연우연간延祐年間과거조제科擧條制고주소古注疏를 겸용하기는 하였으나 그 때에는 문호門戶가 이미 성립되어 강학하는 자가 준용遵用하지 않았다.
沿及明代하여 胡廣等 竊劉瑾之書하여 作詩經大全하여 著爲令典하니 於是專宗朱傳하여 漢學遂亡이라
명대明代에 내려와서 호광胡廣 등이 유근劉瑾의 책을 절취하여 ≪시경대전詩經大全≫을 만들어 기본 경전으로 삼으니, 이에 주자朱子의 ≪집전集傳≫만을 종주로 하여 한학漢學이 마침내 없어졌다.
然朱子從鄭樵之說하여 不過攻小序耳 至於詩中訓詁하여는 用毛鄭者居多
그러나 주자는 정초의 을 따라 ≪모시毛詩≫의 소서小序를 공격하는 데 불과하였을 뿐이고, 속의 훈고訓詁에 있어서는 대부분 모전毛傳정전鄭箋을 이용하였다.
後儒不考古書하여 不知小序自小序하고 傳箋自傳箋하고 鬨然佐鬭하여 遂倂毛鄭而棄之하니
후세의 유자儒者들이 고서古書를 상고하지 못하여 소서小序는 소서대로의 의미가 있고, 은 전과 전대로의 의미가 있음을 모르고 소란스럽게 다투어 마침내 모전과 정전까지 버렸으니,
是非惟不知毛鄭爲何語 殆倂朱子之傳亦不辨爲何語矣
이는 모전과 정전이 무슨 말인지 모를 뿐만이 아니라 주자의 도 무슨 말인지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我國家經學昌明하여 一洗前明之固陋러니 乾隆四年 皇上特命校刊十三經注疏하여 頒布學宮하시니 鼓篋之儒皆駸駸乎硏求古學이라
우리 국가는 경학經學이 크게 흥성하여 전대 명前代 明의 고루함을 모두 씻어내었는데, 건륭乾隆 4년(1739)에 황상皇上께서 특별히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를 교감 간행하여 학궁學宮에 반포하도록 명하시니, 학문하는 유자儒者들이 모두 고학古學을 연구하는 데 주력하였다.
今特錄其書與小序하여 同冠詩類之首하여 以昭六義淵源 其來有自하니 孔門師授 端緖炳然하여 終不能以他說掩也
이제 그 글과 소서小序를 특별히 기록하여 시류詩類의 앞에 함께 실어 육의六義의 연원이 전해온 바가 있음을 밝히니, 공자孔子 문하의 전수한 단서가 분명하여 전혀 다른 말로 가릴 수 없을 것이다.
역주
역주1 漢書藝文志 : 後漢의 班固(32~92)가 지은 前漢時代 역사서 ≪漢書≫ 10志 중 하나이다. 반고는 전한시대 國家藏書의 풍부함을 기록하기 위하여 소장 서적의 서지사항을 기록하였다.
역주2 後漢書 儒林傳 : 南朝 宋의 史家 范曄(398~445)이 지은 後漢時代 역사서인 ≪後漢書≫의 80列傳 중 하나로 정식 명칭은 儒林列傳이다.
역주3 隋書經籍志 : 唐 魏徵(580~643) 등이 지은 隋의 역사 기록 중 經籍에 관한 기록이다. ≪漢書≫ 〈藝文志〉 이후 가장 풍부한 서적목록으로, 經․史․子․集 四部로 분류되어 있다.
역주4 詩譜 : 後漢 鄭玄의 저작으로 ≪尙書≫, ≪春秋≫, ≪史記≫ 등에서 관련이 있는 史料를 기재하고 분별하여 ≪詩經≫의 15國風과 2雅와 3頌이 저술된 지역과 시기, 역사적인 배경 등을 설명하고, 아울러 ≪詩經≫의 각 부분과 시대의 정치, 풍토 인정의 관계를 제시하였다. 孔穎達이 ≪毛詩正義≫를 편찬하면서 ≪詩譜≫의 글을 각 부분의 첫머리에다 배치하였는데, 單行本은 失傳되었다고 전한다.
역주5 毛詩草木蟲魚疏 : 三國時代 吳의 학자 陸璣가 지은 책으로, 정식 명칭은 ≪毛詩草木鳥獸蟲魚疏≫이다. 草本植物 80종, 木本植物 34종, 鳥類 23종, 獸類 9종, 魚類 10종, 蟲類 18종 등에 대한 명칭과 지방에 따라 달리 부르는 이름, 모양과 생태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역주6 經義考 : 淸代의 학자 朱彝尊(1629~1709)이 지은 책으로, 역대 전해오는 경적의 현존 여부를 조사 연구하여 기록한 300권의 저술이다. 정식 명칭은 ≪經義存亡考≫이다.
역주7 博物志 : 西晉의 張華(232~300)가 편찬한 책으로, 산천과 지리에 대한 지식과 역사인물에 대한 傳說, 기괴한 草木과 蟲魚, 鳥獸에 대한 묘사, 神仙 方術 등 다양한 내용을 古籍에서 찾아 수록하였다.
역주8 公府用記 郡將用箋之意 : 중앙 관서에서 사용하는 문서를 記라 하고 지방관이 사용하는 문서를 箋이라 한 것과 같은 의미로, 鄭玄이 毛氏의 글에 대하여 자신이 지은 글을 ‘箋’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역주9 六藝論 : 정현이 지은 經에 관한 책으로 지금은 散佚되었다. 淸代 馬國翰의 ≪玉函山房輯佚書≫, 袁鈞의 ≪鄭氏佚書≫에 輯本이 있다.
역주10 三家 : 秦의 焚書 후 後漢 때 三家가 學官을 설치하여 교육하였는데, 齊의 轅固가 전수한 齊詩, 魯의 申培가 전수한 魯詩, 燕의 韓嬰이 전수한 韓詩를 말한다. 여기에 毛詩를 합하면 四家라 한다.
역주11 經典釋文 : 唐의 陸德明(550~630)이 경서를 읽을 때의 字典으로 지은 책으로 30권이다. ≪周易≫, ≪尙書≫, ≪毛詩≫, ≪春秋三傳≫, ≪論語≫, ≪孝經≫, ≪莊子≫ 등의 古代 音訓을 밝히고 있다.
역주12 王肅 : 三國時代 曹魏의 經學家이다. 저술 중에 ≪周易王氏注≫, ≪禮記王氏注≫, ≪尙書王氏注≫ 각 2권, ≪周易王氏音≫, ≪毛詩義駁≫, ≪毛詩奏事≫, ≪毛詩問難≫, ≪喪服經傳王氏注≫, ≪王氏喪服要記≫, ≪春秋左傳王氏注≫, ≪論語王氏義說≫, ≪孝經王氏解≫, ≪毛詩王氏注≫ 4권 등 많은 저작을 남겼다.
역주13 詩本義 : 宋의 歐陽脩(1007~1072)가 지은 ≪毛詩本義≫를 말한다.
역주14 王基 : 三國時代 曹魏의 문무겸비한 장수이다.
역주15 王應麟 : 南宋 말의 학자로, 類書인 ≪玉海≫를 비롯하여 필기류인 ≪困學紀聞≫과 ≪漢制考≫, ≪通鑑地理通釋≫ 등 歷史地理學에 관한 저술이 있다.

모시정의(1) 책은 2019.10.3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