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子武者
는 齊人也
니 以兵法
으로 見於
한대 闔廬曰
孫子分爲二隊하고 以王之寵姬二人으로 各爲隊長하여 皆令持戟하고 令之曰
前하라하면 則視心하고 左하라하면 視左手하고 右하라하면 視右手하고 後하라하면 卽視背하라
約束不明하고 申令不熟은 將之罪也요 旣已明而不如法者는 吏士之罪也라하고
臣旣已受命爲將하니 將在軍엔 君命도 有所不受라하고
於是에 復鼓之하니 婦人左右前後跪起 皆中規矩繩墨하여 無敢出聲이라
西破彊楚
하여 入
하고 北威齊晉
하여 顯名諸侯
는 孫子與有力焉
이라
孫臏
이 으로 俱學兵法
이러니 龐涓旣事魏
하여 得爲惠王將軍
한대 而自以爲能不及孫臏
이라하여 乃陰使召孫臏
하다
臏至에 龐涓恐其賢於己하여 疾之하여 則以法刑斷其兩足而黥之하여 欲隱勿見하다
齊使者如梁하니 孫臏以刑徒陰見하여 說齊使한대 齊使以爲奇하여 竊載하여 與之齊하니 齊將田忌 善而客待之하다
忌
與齊諸公子
로 馳逐重射
러니 孫子見其馬足不甚相遠
하고 馬有上中下輩
라
今以君之下駟로 與彼上駟하고 取君上駟하여 與彼中駟하고 取君中駟하여 與彼下駟하소서
旣馳三輩畢에 而田忌一不勝而再勝하여 卒得王千金하다
於是에 忌進孫子於威王하니 威王問兵法하고 遂以爲師하다
於是에 乃以田忌爲將하고 而孫子爲師하여 居輜車中하여 坐爲計謀하다
夫解雜亂紛糾者
는 不控捲
하고 救鬪者
는 不搏撠
하나니 亢擣虛
하여 形格勢禁
이면 則自爲解耳
니이다
今
趙相攻
에 輕兵銳卒
이 必竭於外
하고 老弱
於內
하리니 君不若引兵疾走大梁
하여 據其街路
하고 衝其方虛
하면 彼必釋趙而自救
하리니 是
는 我一擧解趙之圍而收弊於魏也
니이다
田忌從之하니 魏果去邯鄲하고 與齊戰於桂陵하여 大破梁軍하다
後十三歲에 魏與趙攻韓하니 韓告急於齊라 齊使田忌將而往하여 直走大梁하다
魏將龐涓聞之하고 去韓而歸하니 齊軍旣已過而西矣라
彼
之兵
이 素悍勇而輕齊
하여 齊號爲怯
하니 善戰者
는 因其勢而利導之
라
兵法에 百里而趣利者는 蹶上將하고 五十里而趣利者는 軍半至라하고
使齊軍으로 入魏地하여 爲十萬竈하고 明日에 爲五萬竈하고 又明日에 爲三萬竈하다
孫子
其行
하니 暮當至馬陵
이라 馬陵
은 道陜
하고 而旁多阻隘
하여 可伏兵
이어늘
龐涓果夜至斫木下하여 見白書하고 乃鑽火燭之하여 讀其書未畢에 齊軍萬弩俱發하니 魏軍大亂相失이라
손자孫子인 무武는 제齊나라 사람이니, 병법兵法을 가지고 오왕吳王 합려闔廬를 뵙자, 합려가 묻기를
“그대가 지은 병법兵法 13편篇을 내가 모두 보았으니, 군대의 대오를 점검함에 약간 시험할 수 있겠는가?” 하니,
합려는 이에 허락하고 궁중宮中의 미녀美女를 내어 180명을 얻었다.
손자孫子가 이들을 나누어 두 대오로 만들고 왕王이 총애하는 여자 두 명을 각각 대장隊長으로 삼아 모두 창을 잡게 하고, 명령하기를
“너희들은 너의 심장과 좌ㆍ우의 손과 등을 아는가?”하자,
“앞으로 가라 하면 심장을 보고, 왼쪽으로 가라 하면 왼손을 보고, 오른쪽으로 가라 하면 오른손을 보고, 뒤로 가라 하면 즉시 뒤를 보라.”하니,
손자孫子는 약속(규약)을 이미 편 다음 부월鈇鉞을 진열하고 즉시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 거듭하였다.
이에 북을 쳐서 오른쪽으로 가라 하니, 부인婦人들이 크게 웃기만 하였다.
“약속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을 거듭함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장군의 죄이다.”
라 하고, 다시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 거듭하고서 북을 쳐 왼쪽으로 가게 하였으나, 부인婦人들이 다시 크게 웃기만 하였다.
“약속이 분명하지 못하고 명령을 거듭함이 익숙하지 못한 것은 장수의 죄이지만, 이미 분명한데도 법法대로 따르지 않는 것은 관리와 병사들의 죄이다.”
라 하고, 이에 좌우의 대장隊長을 목 베고자 하였다.
오왕吳王이 대臺 위에서 이것을 구경하다가 손자孫子가 장차 총애하는 여인의 목을 베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과인寡人은 이미 장군將軍이 용병用兵을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인寡人은 이 두 여인이 아니면 음식을 먹어도 입맛이 없으니, 목을 베지 말기를 원한다.”라고 하였다.
“신臣은 이미 명령을 받아 장수가 되었으니, 장수가 군중에 있을 적에는 군주의 명령도 받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하고,
마침내 대장隊長 두 사람을 목 베어 조리돌리고 그다음 사람을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다시 북을 치니, 부인婦人들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고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무릎 꿇고 일어남에 모두 규칙과 법도에 맞아서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이에 손자孫子가 사람을 시켜서 왕에게 보고하기를
“군대가 이미 정돈되었으니, 왕王께서는 한번 내려오셔서 살펴보십시오.
오직 왕王이 쓰시고자 하시는 대로 쓸 수 있으니, 비록 물과 불에 뛰어들게 하더라도 가능할 것입니다.”하였다.
과인寡人은 내려가서 보고 싶지 않다.”라고 하니,
“왕께서는 다만 그 말만 좋아하시고 그 실제를 쓰지 못하십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합려는 손자孫子가 용병用兵을 잘한다는 것을 알고 마침내 그를 장수로 삼았다.
그리하여 서쪽으로 강한 초楚나라를 격파하여 수도인 영郢 땅으로 쳐들어가고 북쪽으로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위협하여 제후諸侯들에게 이름을 드러내었으니, 여기에는 손자孫子의 공이 크게 있었다.
손무孫武가 이미 죽은 백여 년 뒤에 손빈孫臏이 있었다.
손빈孫臏은 아阿 땅과 견鄄 땅의 사이에서 출생하였으니, 손빈孫臏 또한 손무孫武의 후세 자손이다.
손빈孫臏은 일찍이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兵法을 배웠는데, 방연龐涓이 위魏나라에서 벼슬하여 혜왕惠王의 장군將軍이 되자, 스스로 재능이 손빈孫臏만 못하다 하여 마침내 은밀히 사람을 시켜 손빈孫臏을 불렀다.
손빈孫臏이 오자 방연龐涓은 그가 자기보다 나음을 두려워하고 미워해서 법法으로 얽어 형벌하여 두 발을 자르고 자자刺字해서 손빈孫臏이 숨고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자 하였다.
제齊나라의 사신이 양梁(魏)나라에 갔는데, 손빈孫臏이 형벌을 받은 죄인으로서 은밀히 제齊나라 사신을 만나 설득하자 제齊나라 사신은 기이하게 여기고 몰래 태워 제齊나라로 오니, 제齊나라 장군 전기田忌가 그를 잘 대우하여 손님으로 대접하였다.
전기田忌는 자주 제齊나라의 공자公子들과 말을 달리고 활쏘기하는 것을 소중히 여겼는데, 손자孫子가 보니, 경주하는 말[馬]의 발이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으며, 말에는 상등ㆍ중등ㆍ하등의 세 무리가 있었다.
“군君(田忌)께서는 오직 활쏘기를 소중하게 여기니, 신臣이 군君으로 하여금 경주에서 이기게 하겠습니다.”하였다.
전기田忌가 그 말을 믿고서 왕王과 여러 공자公子들과 함께 천금千金을 걸고 말을 달려 활쏘기를 하였다.
과녁에 쏠 때를 당하자, 손자孫子가 전기田忌에게 말하기를
“지금 군君의 하등의 말을 가지고 저들의 상등의 말과 겨루고, 군君의 상등의 말을 가지고 저들의 중등의 말과 겨루고, 군君의 중등의 말을 가지고 저들의 하등의 말과 겨루십시오.”하였다.
이미 세 무리가 달려 경주가 끝나자, 전기田忌가 한 번 지고 두 번 이겨서 끝내 왕王의 천금千金을 얻었다.
이에 전기田忌는 손자孫子를 위왕威王에게 천거하니, 위왕威王은 그에게 병법兵法을 묻고 마침내 스승으로 삼았다.
그 후에 위魏가 조趙나라를 정벌하니, 조趙나라가 위급하여 제齊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제齊 위왕威王이 손빈孫臏을 장수로 삼고자 하였으나 손빈孫臏은 사양하며 말하기를
“형벌을 받은 사람은 안 됩니다.”라고 하니,
이에 전기田忌를 장수로 삼고 손자孫子를 군사軍師로 삼아 치중거輜重車(짐수레) 안에 앉아서 계책을 세우게 하였다.
전기田忌가 군대를 이끌고 조趙나라에 가려고 하자, 손자孫子가 말하기를
“잡란함과 분규를 해결하는 자는 주먹으로 치지 않고, 싸움을 말리는 자는 창을 들고 찌르지 않으니, 적의 요해처를 공격하고 빈 곳으로 쳐들어가서 저들의 형세가 막히고 억제되면 조趙나라의 위급함이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지금 위魏나라와 조趙나라가 서로 공격함에 경무장한 군대와 정예병은 반드시 모두 밖에 있고 노약자들은 안(수도)에서 피폐해 있을 것이니, 군君이 만약 군대를 이끌고 빨리 위魏나라의 수도인 대량大梁으로 달려가서 길거리를 점거하고 빈 곳을 치면 저들은 반드시 조趙나라를 버리고 스스로 수도를 구원하러 올 것이니, 이는 우리가 한번에 조趙나라의 포위를 풀고 위魏나라를 피폐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두는 것입니다.”하였다.
전기田忌가 그의 말을 따르니, 위魏나라가 과연 조趙나라의 수도인 한단邯鄲을 버리고 제齊나라 군대와 계릉桂陵에서 싸웠는데, 제齊나라 군대가 위魏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다.
13년 뒤에 위魏나라와 조趙나라가 한韓나라를 공격하자, 한韓나라가 위급함을 제齊나라에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니, 제齊나라에서는 전기田忌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곧바로 대량大梁으로 달려가게 하였다.
위魏나라 장수 방연龐涓은 이 소식을 듣고 한韓나라를 버리고 돌아오니, 제齊나라 군대가 이미 서쪽으로 간 뒤였다.
“저 삼진三晉의 군사들이 평소 사납고 용감하여 제齊나라를 경시해서 제齊나라 사람들을 겁쟁이라고 하니, 전투를 잘하는 자는 그 형세를 따라 이롭게 인도합니다.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100리에 이익을 쫓아 달려가는 군대는 상장군上將軍이 쓰러지고 50리에 이익을 쫓아 달려가는 군대는 군대가 절반만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齊나라 군대로 하여금 위魏나라 땅에 들어가서 첫날에는 10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고, 다음날에는 5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고, 또 다음날에는 3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였다.
방연龐涓은 추격한 지 3일 만에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내 참으로 제齊나라 군사들이 겁내는 줄 알겠다.
우리 땅에 들어온 지 3일 만에 도망한 병사들이 반을 넘는다.”하고,
마침내 보병步兵을 버리고 경무장한 정예병과 함께 하루에 이틀 동안 갈 노정을 치달려 추격하였다.
손자孫子가 그들의 행군 속도를 헤아려보니, 저물녘에 마릉馬陵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마릉馬陵은 길이 좁고 옆에 좁은 곳이 많아서 군대를 매복할 만하였다.
이에 큰 나무를 깎아서 하얗게 만들고 여기에 글을 쓰기를 ‘방연龐涓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龐涓死于此樹之下]’라고 하였다.
이에 제齊나라 군사 중에 활을 잘 쏘는 자들로 하여금 만 개의 쇠뇌[弩]를 가지고 길 좌우에 매복시키고, 약속하기를
“밤중에 불이 들어올려지는 것을 보거든 일제히 발사하라.”하였다.
방연龐涓이 과연 밤중에 나무를 깎아놓은 아래에 이르러서 하얗게 깎인 나무에 글씨가 쓰여있는 것을 보고 마침내 부싯돌을 쳐서 불을 밝혀 그 글을 보았는데, 미쳐 그 글을 다 읽기도 전에 제齊나라 군대가 만 개의 쇠뇌를 함께 발사하니, 위魏나라 군대가 크게 혼란하여 서로 앞뒤를 잃었다.
방연龐涓은 스스로 지혜가 다하고 군대가 패할 줄을 알아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찌르며 말하기를
“마침내 애송이가 명성을 이루게 되었구나.”라고 하였다.
제齊나라가 이로 인하여 승세를 타 위魏나라 군대를 모두 격파하고 위魏나라 태자太子 신申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손빈孫臏이 이로써 천하에 이름을 드러내서 대대로 그 병법兵法을 전하였다.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