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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子髓

손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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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欲興師動인댄 君相 與訏謀於廟堂之上하여 校計彼我之情하여 見勝乃擧
무릇 군대를 일으키고 병력을 동원하려 하면 군주와 정승이 서로 묘당廟堂(朝廷)의 위에서 큰 계책을 세워 피아彼我의 실정을 비교하고 헤아려서 승리를 발견하여야 비로소 군대를 일으킬 수 있다.
有不戰이언정 戰必勝이니 其法則五事七計也
그러므로 싸우지 않을지언정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니, 그 방법은 다섯 가지 일과 일곱 가지 계책이다.
隨其得算多하여 以知勝負
승산勝算을 얻음이 많고 적음에 따라 승부를 알 수 있다.
首始計하니라
그러므로 〈시계始計〉를 맨 앞에 놓은 것이다.
孫子曰
손자孫子가 말하였다.
兵者 國之大事
(전쟁)’이란 국가의 큰일이다.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니라
죽고 삶이 달려 있는 자리이며 나라가 보존되고 멸망하는 갈림길이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옛 책)에 이르기를 “나라의 큰일은 제사와 전쟁에 있다.” 하였고, 오기吳起가 말하기를 “병사들이 싸우는 전장戰塲은 시신이 쌓여 있는 곳이니, 필사必死의 각오로 싸우면 살고 요행으로 살기를 바라면 죽는다.” 하였다.
兵之勝敗 係國存亡이라 須審察也니라
군대의 승패勝敗는 국가의 존망存亡에 관계되므로 모름지기 자세히 살펴야 하는 것이다.
經之以五事하고 校之以計하여 而索其情하나니
그러므로 다섯 가지 일로써 다스리고 계책으로써 비교하여 그 실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如經緯之經이니 彼我未分也 較量也 彼我形也
’은 경위經緯과 같으니 과 우리가 아직 나뉘지 않은 것이요, ‘’는 비교하여 헤아림이니 과 우리가 나타난 것이다.
求也 勝負之情也
’은 찾음이요, ‘’은 승부의 실정이다.
一曰道 二曰天이요 三曰地 四曰將이요 五曰法이라
첫 번째는 요, 두 번째는 천시天時요, 세 번째는 지리地利요, 네 번째는 장수將帥요, 다섯 번째는 법령法令(제도와 호령)이다.
道者 令民與上同意하여 可與之死하고 可與之生하여 而不畏危也
란 백성(병사)들로 하여금 윗사람과 뜻을 함께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살아서 위태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天者 陰陽, 寒暑 時制也
천시天時, 추위와 더위를 때에 따라 제재制裁(조절)하는 것이다.
地者 遠近, 險易, 廣狹, 死生也
지리地利란 거리의 멀고 가까움과 지형의 험하고 평탄함과 넓고 좁음과 죽고 사는 지역이다.
將者 智, 信, 仁, 勇, 嚴也
장수란 지혜와 신의와 인자함과 용맹함과 엄격함이다.
法者 이라
법령法令이란 부곡部曲(部隊)에는 각기 절제節制가 있고, 백관百官은 각기 자기 도리를 따르고, 군용軍用은 오로지 주장하는 자가 있음을 이른다.
凡此五者 將莫不聞이로되 知之者하고 不知者 不勝이라
무릇 이 다섯 가지는 장수가 듣지 못한 자가 없으나, 이것을 아는 자는 승리하고 알지 못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校之以計하여 而索其情이니라
그러므로 계략으로써 비교하여 그 실정을 찾는 것이다.
맹자孟子가 말한 “백성들이 모두 윗사람을 친애親愛하고 어른을 섬긴다.”는 것과, 순경荀卿이 말한 “자제子弟부형父兄을 호위하고 손과 팔이 머리와 눈을 막아낸다.”는 것과 같아서 억지로 힘씀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다.
이라하니 夫然後 可與之生死하여 而不計危亡也
그러므로 《삼략三略》에 이르기를 “지체肢體가 서로 따르듯이 하고 골절骨節이 서로 구원하듯이 해서 천도天道가 자연히 그러하여 그 교묘함이 간격이 없다.” 하였으니, 이렇게 한 뒤에야 병사들과 더불어 생사生死를 함께하여 위태로움과 멸망함을 헤아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時制者 陰陽寒暑 以時制宜也하며 年穀豐登하고 民無夭札也
시제時制, 더위와 추위를 때에 맞춰 알맞게 조절하는 것이니, 날이 개고 비 오는 것이 때에 순하며, 봄과 여름의 펴짐과 가을과 겨울의 쇠잔해짐이 시령時令에 응하며, 곡식이 풍년 들고 백성들이 역병으로 일찍 죽는 일이 없는 것이다.
主乎天而言故 下文曰 天地孰得고하니라
하늘을 위주하여 말했으므로 아래의 글에 “천시天時지리地利를 누가 얻었는가?”라고 한 것이다.
地形者 兵之助也
지형地形은 군대에 도움이 된다.
料敵制勝 計險易遠近이니 所以無虞 恃此無恐也
그러므로 을 헤아려 승리할 적에 지형의 험하고 평탄함과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계산하는 것이니, 안과 밖에 산하山河가 막고 있음은 근심이 없는 것이요, 한수漢水방성方城은 이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高陽爲生이요 下濕爲死 行軍曰 前死後生 是也
높고 양지바른 곳을 살 땅이라 하고, 낮고 저습한 곳을 죽을 땅이라 하니, 아래 〈행군行軍〉에 “앞에는 죽을 땅을 두고 뒤에는 살 땅을 둔다.”는 것이 이것이다.
將之五德 缺一不可로되 而智尤居先也
장수의 다섯 가지 에 하나만 없어도 불가하나, 지혜가 더욱 앞에 있다.
曲制, 官道, 主用 謂部曲各有節制하고 百官各遵其道하고 軍用專有主者
곡제曲制, 관도官道, 주용主用부곡部曲(部隊)에는 각기 절제節制가 있고 백관百官은 각기 자기 도리道理를 따르고 군용軍用은 오로지 주장하는 자가 있음을 이른다.
(옛 책)에 이르기를 “백관百官이 각자 지위를 상징하는 깃발을 세우고서 여기에 맞게 행동하여 군정軍政이 경계하지 않아도 닦인다.” 하였으며,
삼략三略》에 이르기를 “인자한 자로 하여금 재물을 주관하게 하지 말라.” 하였고,
맹자孟子》에 이르기를 “천시天時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地利인화人和만 못하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적을 포위하여 공격할 적에 반드시 천시天時를 얻을 때가 있다.” 하였으니,
蓋謂 其言如是로되 而此則雨暘災祥之謂
이는 천관天官고허孤虛를 말한 것이므로 그 말이 이와 같으나, 여기서는 날이 개고 비가 오는 것과 재앙과 상서를 말하였다.
先道, 次天, 次地하고 而將與法 又次之하니라
그러므로 맨 앞에 를 말하고, 다음에 하늘(天時)을 말하고, 다음에 땅(地利)을 말하고, 장수와 이 또 그 다음이 된 것이다.
曰 主孰有道 將孰有能이며 天地孰得이며 法令孰行이며 兵衆孰强이며 士卒孰練이며 賞罰孰明고하니 吾以此知勝負矣로라
군주는 누가 더 가 있으며, 장수는 누가 더 재능이 있으며, 천시天時지리地利를 누가 얻었으며, 법령을 누가 더 잘 행하며, 병력은 누가 더 강하며, 사졸士卒은 누가 더 훈련되었으며, 상과 벌은 누가 더 분명한가를 비교하니, 나는 이것을 가지고 승부를 아노라.
此七者 所以校量彼己之孰多也
이 일곱 가지는 적과 우리에게 누가 더 많은가를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하여 用之必勝이어든 留之하고 將不聽吾計하여 用之必敗어든 去之니라
장수가 나(군주)의 계책을 잘 따라서 그를 임용하여 반드시 승리할 경우에는 머물러 있게 하고, 장수가 나의 계책을 따르지 않아서 그를 임용하여 반드시 실패할 경우에는 제거해야 한다.
雖主有道하고 天地得하고 法令行이나 而兵强卒練하고 信賞必罰 在將得其人이라
비록 군주에게 가 있고 천시天時지리地利를 얻고 법령法令이 행해지더라도, 군대가 강하고 사졸士卒이 훈련되고 신상필벌信賞必罰을 내리는 것은 훌륭한 장수를 얻음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일곱 가지로 계산하되 오사五事를 네 가지로 총괄하고 나머지 세 가지는 장군에게 중점을 돌렸다.
所以審愼於置將也
이 때문에 장수를 임명함에 삼가고 신중히 하는 것이다.
苟或傲狠自用하여 剛不可使 則必得算少하여 而勝不在我
만일 혹시라도 장수가 오만하고 난폭하며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해서, 장수가 강하여 임금이 부릴 수 없으면 반드시 승산이 적어서 승리가 우리에게 있지 못하게 된다.
申戒勿用也
그러므로 쓰지 말라고 거듭 경계한 것이다.
計利以聽이어든 乃爲之勢하여 以佐其外
계산하여 우리가 이롭고 장수가 또 나를 믿고 따르거든 마침내 를 만들어 그 밖을 도와야 한다.
勢者 因利而制權也
라는 것은 이로움을 따라 권변權變(임기응변)을 만드는 것이다.
兵者 詭道也
이라는 것은 속이는 방도이다.
能而示之不能하고 用而示之不用하며 近而示之遠하고 遠而示之近하며 利而誘之하고 亂而取之하며 實而備之하고 强而避之하며 怒而撓之하고 卑而驕之하며 佚而勞之하고 親而離之하며 攻其無備하고 出其不意
그러므로 능하면 능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고 유능한 사람을 등용하면 등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가까이하려 하면 멀리할 것처럼 보이고, 멀리하려 하면 가까이할 것처럼 보이며, 이익으로 적을 유인하고 적을 혼란하게 만들어 취하며, 적이 견실堅實하면 대비하고 적이 강하면 피하며, 적장을 노하게 하여 흔들리게 하고 말을 낮추어 적장이 교만하게 하며, 적이 편안하면 수고롭게 하고 적이 상하 간에 친하면 이간질하며, 적이 대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출동해야 한다.
兵家之勝이니 不可先傳也니라
이는 병가兵家의 승리하는 방도이니, 미리 전(누설)해서는 안 된다.
計利以聽 言校計旣利而將又聽從也
‘계산하여 우리가 이롭고 장수가 또 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헤아리고 비교하여 이미 이롭고 장수가 또 군주의 말을 잘 따름을 말한 것이다.
謂能而示之不能以下十四條
’는 ‘능하면 능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 이하의 14가지 조항이다.
皆因利制權之事 皆佐其外之事
이는 모두 ‘이로움을 따라 권변權變을 만듦’을 말한 것인데, 모두 그 ‘밖’의 일을 돕는 것이다.
謂將得專制之外也
’는 장수가 밖에서 전제專制하게 함을 이른다.
能而示之不能이니 以其無名也 用而示之不用
‘능하면 능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손권孫權육손陸遜에게 육구陸口를 맡긴 것과 같으니, 그가 명성이 없었기 때문이요, ‘유능한 사람을 등용하면 등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나라가 백기白起를 등용하면서 누설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과 같은 것이다.
遠近 互形하니 或攻伐之地 或興師之期也
멀고 가까움은 상대적으로 나타낸 것이니, 혹은 공격하고 정벌하는 지역이고 혹은 군대를 일으키는 시기이다.
利而誘之也 亂而取之也
지백智伯숙요夙繇에게 을 보내면서 병사를 뒤따르게 한 것은 ‘이익으로 적을 유인한 것’이요, 나라가 자지子之의 혼란으로 인하여 나라를 점령한 것은 ‘적을 혼란하게 하여 취한 것’이다.
實而備之也 强而避之也
수후隨侯계량季梁의 말을 듣고 정사를 잘 닦은 것은 ‘적이 견실堅實하면 대비한 것’이고, 구천句踐나라를 섬긴 것은 ‘적이 강하면 피한 것’이다.
怒而撓之也 卑而驕之也
나라가 완춘宛春을 구속한 것은 ‘적장을 노하게 하여 흔들리게 한 것’이고, 고조高祖이밀李密을 항복시킨 것은 ‘자신을 낮추어 적장이 교만하게 한 것’이다.
佚而勞之也 親而離之也
나라가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나라를 수고롭게 한 것은 ‘적이 편안하면 수고롭게 한 것’이고, 나라가 진평陳平에게 맡겨서 나라의 군주君主와 신하를 이간질시킨 것은 ‘적이 상하 간에 친하거든 이간질시킨다는 것’이다.
하고 還襲虞 攻無備也 出不意也
나라가 나라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라를 습격한 것은 ‘적이 대비가 없는 것을 공격한 것’이고, 나라가 잔도棧道를 불태워 동쪽으로 진출할 뜻이 없음을 보이고 한신韓信을 보내어 삼진三秦을 평정한 것은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출동한 것’이다.
凡此 皆君主爲之勢也 皆詭道也 勝由詭立이라
무릇 이것은 다 군주가 를 만드는 것으로 모두 속임수이니, 승리는 속임수로 말미암아 확립된다.
不可泄也
그러므로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夫未戰而廟算勝者 得算多也 未戰而廟算不勝者 得算少也
싸우기 전에 묘당廟堂에서 계산하여 우세한 자는 승산을 얻음이 많은 것이요, 싸우기 전에 묘당에서 계산하여 우세하지 않은 자는 승산을 얻음이 적은 것이다.
多算이면하고 少算이면 不勝이어든 而況於無算乎
승산이 많으면 이기고 승산이 적으면 이기지 못하는데, 하물며 승산이 없음에랴.
하면 勝負見矣로라
내가 이것을 가지고 관찰하면 이기고 지는 형세가 나타난다.
尉子曰 라하고 又曰 이라하니 多算之謂也
울료자尉繚子가 말하기를 “갑옷을 꺼내어 햇볕에 말리지 않고도 승리하는 것은 군주가 승리하는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군대가 조정朝廷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승산이 많음을 이른 것이다.
이정李靖이 말하기를 “고대의 전투는 대부분 작은 계책으로 계책이 없는 자를 이겼고, 조금 잘하는 것으로 잘하지 못하는 자를 이겼다.” 하였으니, 이것은 계책이 적음과 계책이 없음을 이른 것이다.
역주
역주1 (象)[衆] : 저본에는 ‘象’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에 맞게 ‘衆’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小)[少] : 저본에는 ‘小’로 되어있으나 문맥에 맞게 ‘少’로 바로잡았다.
역주3 傳曰……在祀與戎 : 이 구절은 《春秋左氏傳》 成公 13년 3월 조에 보인다.
역주4 吳起曰……倖生則死 : 이 구절은 《吳子》 〈治兵〉에 보인다.
역주5 曲制官道主用 : 劉寅은 《孫武子直解》에서 張預의 설을 채택하여 이 구절을 “法令이란 部曲(부대)과 節制(통제)와 관작을 맡김과 군량 수송로와 군수물자를 주관함과 사용할 물건을 계산함이다.[法者 曲, 制, 官, 道, 主, 用]”라고 해석하여 여섯 가지로 보았으나, 저자는 이를 아래 附錄에서 비판하고 세 가지로 해석하였는바, 이는 曹操의 설을 일부 수용한 것이다.
역주6 孟子所謂民皆親上事長 : 《孟子》 〈梁惠王 上〉의 “왕께서 만일 仁政을 백성들에게 베풀어 형벌을 줄이고 세금을 적게 거두신다면, 백성들이 깊이 밭을 갈고 잘 김매고, 장성한 자들이 한가한 날로써(여가를 이용하여) 孝悌와 忠信을 닦아서, 들어가서는 父兄을 섬기고 나가서는 長上을 섬길 것입니다.[王如施仁政於民 省刑罰 薄稅斂 深耕易耨 壯者以暇日 修其孝悌忠信 入以事其父兄 出以事其長上]”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7 荀卿所謂子弟衛父兄 手臂捍頭目 : 《荀子》 〈議兵〉의 “신하와 군주, 아랫사람과 윗사람의 관계는 마치 자식이 부모를 섬기고 아우가 형을 섬기는 것과 같고, 마치 손과 팔이 머리와 눈을 막아내고 가슴과 배를 감싸 보호하는 것과 같다.[臣之於君也 下之於上也 若子之事父 弟之事兄 若手臂之扞頭目而覆胸腹也]”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8 三略曰……其巧無間 : 이 구절은 《三略》 〈上略〉에 보인다.
역주9 雨暘時若 舒慘應令 : 若은 順의 뜻이고, 舒慘은 陽인 봄과 여름에 만물이 펴지고 陰인 가을과 겨울에 만물이 쇠잔해짐을 이른다. 張衡의 〈西京賦〉에 “대저 사람은 陽의 때에는 펴지고 陰의 때에는 쇠잔해진다.” 하였는데, 薛綜이 “陽은 봄과 여름을 이르고 陰은 가을과 겨울을 이른다.”라고 주한 데서 유래하였다. 令은 時令(節氣)을 이른다.
역주10 表裏山河 : 이 구절은 《春秋左氏傳》 僖公 28년 조에 “임금께서는 싸우소서. 싸워서 승리하면 반드시 諸侯를 얻을 것이고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안과 밖에 山河가 막고 있으니, 반드시 폐해가 없을 것입니다.[戰也 戰而捷 必得諸侯 若其不捷 表裏山河 必無害也]”라고 보인다.
역주11 漢水方城 : 漢水는 武都에서 發源해서 長江으로 들어가는 강인데 楚나라 수도인 郢 땅 옆을 흐르고, 方城은 郢 땅 근처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楚나라 屈完이 齊 桓公에게 “齊侯께서 만약 무력을 사용하신다면 우리 楚나라는 方城山을 城으로 삼고 漢水를 해자로 삼을 것이니, 齊나라 군대가 아무리 많아도 사용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4년》
역주12 百官象物而動 軍政不戒而修 : 이 구절은 《春秋左氏傳》 宣公 12년 조에 보이는데, 杜預의 註에 “物은 類와 같다.” 하였고, 朱申의 附註에 “物은 깃발이니, 百官이 각각 깃발을 상징해 행동하는 것이다.” 하였다.
역주13 三略曰 無使仁者主財 : 이 내용은 《三略》 〈中略〉에 보인다.
역주14 孟子曰……必有得天時 : 이 내용은 모두 《孟子》 〈公孫丑 下〉에 보인다.
역주15 天官孤虛 : ‘天官’은 時日의 支干(干支)과 孤虛와 旺相을 이르는바, 《尉繚子》에 〈天官〉이 있다. 孤虛는 日辰이 완전하지 않음을 이르는바, 예를 들면 甲子日로부터 癸酉日의 10일간에는, 地支 중 戌과 亥가 빠지므로 戌과 亥는 孤가 되고, 戌과 亥의 반대 방향인 辰과 巳는 虛가 되는 따위이다.
역주16 將聽吾計 : 劉寅의 《孫武子直解》에는 ‘將’을 裨將으로, ‘吾’를 將帥로 해석하였으나, 저자는 이를 附錄에서 비판하였다.
역주17 以七計之……歸重於將 : 일곱 가지란 바로 앞에 말한 主有道, 將有能, 天地得, 法令行, 兵衆强, 士卒練, 賞罰明을 이르고, 五事는 道, 天, 地, 將, 法의 다섯 가지 일이다. 일곱 가지 계산 가운데 兵衆强, 士卒練, 賞罰明은 장수의 책임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8 孫權之任陸遜 : 三國시대에 吳나라의 장수 呂蒙이 魯肅을 대신하여, 關羽가 수비하고 있는 荊州의 접경지대인 陸口에 부임하자, 關羽는 呂蒙을 경계하여 魏나라의 樊城을 공격하면서도 많은 병력을 잔류시켜 公安과 南郡을 방비하게 하였다. 이에 呂蒙은 孫權에게 關羽를 방심하게 하기 위해 자신을 도성인 建業으로 소환할 것을 청원하자, 孫權은 공개적으로 呂蒙을 도성으로 불러들이고 陸口의 守將을 나이 어린 陸遜으로 교체하였다. 陸遜은 關羽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의 공로와 훌륭한 덕을 칭송하고 스스로 의탁하려는 뜻을 표명하니, 關羽가 안심하고 차츰 수비병을 철수하여 樊城으로 집결하였다. 이에 呂蒙은 장사꾼으로 위장한 배에 정예병을 숨겨 關羽가 설치해둔 강변의 초소와 망루들을 기습 점거하였다. 關羽는 吳軍에게 公安과 南郡을 빼앗기고 마침내는 荊州 전역을 잃게 되었다. 《三國志 권54 呂蒙列傳》
역주19 秦用白起而戒勿泄也 : 戰國시대인 B.C. 260년에 秦나라 장수 王齕이 趙나라를 공격하였으나 趙나라의 명장 廉頗의 수비 전술에 막혀 승기를 잡지 못하였다. 이에 應侯(范睢)가 趙나라에 첩자를 보내 “秦나라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馬服君(趙奢)의 아들 趙括이 장수가 되는 것일 뿐이니, 廉頗는 상대하기 쉽고 장차 항복할 것이다.”라고 반간계를 퍼뜨렸다. 趙王은 이에 속아 廉頗 대신 趙括을 장수로 임명하여 秦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秦王은 이 소식을 듣자 백전노장인 武安君 白起를 上將軍으로 삼고, 군중에 “武安君이 장수가 된 것을 감히 누설하는 자가 있으면 斬刑에 처하겠다.”는 영을 내렸다. 秦軍을 얕잡아본 趙括은 출병하여 秦軍을 공격하다가 거짓으로 敗走하는 秦軍의 계략에 빠져 전사하였고, 趙軍 40만은 포로가 되어 모두 구덩이에 매몰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史記 권73 白起列傳》
역주20 智伯 遺夙繇鍾而以兵隨之 : 智伯은 춘추시대 晉나라의 대부인 智襄子(智瑤)이고 夙繇는 晉나라 근처에 있던 戎族의 나라로 厹由 혹은 仇繇로도 불린다. 智伯이 夙繇를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지형이 험하여 공격하기가 어렵자, 큰 鍾을 주조하여 이를 선물로 보내면서 병사를 딸려 보내니, 夙繇의 군주가 종을 탐내 이를 받아들였다가 마침내 멸망을 당하였다. 《吕氏春秋 권15 慎大覽》
역주21 齊因子之之亂而取燕 : 燕王 噲가 정승인 子之에게 나라를 선양하자 燕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는데, 齊나라가 이 틈을 타 공격하니, 燕나라 士卒들은 싸우지도 않고 城門을 닫지도 않았다. 이에 齊나라가 燕나라를 점령하였다. 《史記 권34 燕召公世家》
역주22 隨侯聽季梁而修政 : 隨侯는 춘추시대 隨나라 군주로 姬姓이고 侯爵이며 季梁은 隨나라의 어진 大夫이다. B.C. 706년 楚 武王이 隨나라를 침공하다가 隨나라 군대를 유인하기 위해 철수하자 隨侯가 이를 공격하려 하니, 季梁이 이를 만류하며 정치를 닦고 형제의 나라들을 친애할 것을 건의하였다. 隨侯가 이를 받아들여 정치를 닦으니, 과연 楚나라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春秋左氏傳 桓公 6년》
역주23 句踐事吳 : B.C. 495년 越王 句踐이 숙적인 吳王 夫差와 夫椒에서 싸워 크게 패하고 會稽山에서 농성하다가 吳나라에 항복하여 나라를 바치고 臣妾이 될 것을 간청하면서 吳나라의 太宰 伯嚭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니, 伯嚭가 夫差를 설득하여 결국 越나라는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후 句踐은 복수를 위해 臥薪嘗膽하여 10년 동안 范蠡‧文種과 함께 백성을 기르고 재정을 모아 부국강병을 이룩하고, 마침내 吳나라를 대파하여 夫差를 자살하게 함으로써 복수에 성공하였다. 《史記 권41 越王句踐世家》
역주24 晉拘宛春 : B.C. 633년에 楚나라가 晉나라의 동맹국인 宋나라를 포위 공격하자, 晉 文公은 楚나라와 친한 衛나라를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다음 해 晉나라와 楚나라가 城濮에서 결전을 하게 되었는데, 楚王은 晉나라와의 전쟁을 회피하려 하였으나 令尹 子玉이 기어이 싸울 것을 청하니, 楚王은 병력을 조금만 주었다. 子玉은 大夫인 宛春을 晉 文公에게 사신으로 보내어 “晉나라에서 衛나라 임금을 復位시키고 曹나라를 봉해주면 저희도 宋나라의 포위를 풀겠습니다.”라고 하였다. 晉나라의 子犯(狐偃)은 “子玉이 무례합니다. 군주(文公)는 한 가지를 취하려 하고 신하(子玉)는 둘을 취하려 하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공격해야 합니다.” 하였는데, 先軫의 계책을 따라 宛春을 구류하고 또 은밀히 曹나라와 衛나라의 임금을 복위시킬 것을 허락하였다. 이로 인해 子玉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출전하였다가 대패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27년》
역주25 唐高祖下李密 : 隋 恭帝 말년에 천하가 혼란에 빠져 군웅들이 각축하였는데, 唐公 李淵과 魏公 李密이 그중 가장 강성하였다. 義寧 원년(617) 7월에 李淵이 李密과 연합하기 위해 편지를 보내 초청하자, 李密은 군대의 강성함을 믿고 스스로 盟主가 되고자 하여 李淵에게 호언장담의 편지를 보냈다. 李淵은 “李密이 自尊妄大하나, 우리가 현재 關中(長安)에 일이 많은 상황에서 이를 갑자기 끊어버리면 바로 또다시 하나의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을 낮추어 추켜주고 칭찬하여 그 뜻을 교만하게 해서 그로 하여금 成皐의 길을 막고 東都(洛陽)의 병사를 묶어두게 하면 우리는 西征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關中이 평정되기를 기다려 서서히 漁夫之利를 거두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고는 李密에게 겸손한 답장을 보내었다. 李密은 이 편지를 받고 매우 기뻐하여 말하기를 “唐公(李淵)의 추대를 받았으니, 천하를 평정하고 말 것도 없다.”라고 하였다. 그 후 李密은 唐나라에 귀부하였으나 끝내 만족할 줄 모르고 다시 반란을 도모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資治通鑑 권184 唐紀 恭皇帝》
역주26 吳分三軍肄楚 : 이 내용은 본서 97쪽 주 1)에 보인다.
역주27 漢委陳平 間楚君臣 : ‘楚나라의 군주와 신하’는 項羽와 范增으로, 漢 高祖가 項羽와 패권을 다툴 적에, 項羽의 軍師인 范增을 제거하기 위해 陳平이 획책한 反間計이다. 高祖가 滎陽城에서 포위되어 위태롭게 되자 項羽와 화친을 도모하였는데, 范增이 이를 반대하였다. 이때 漢나라의 상황을 살피고자 項羽가 사신을 보냈는데, 陳平이 성찬을 장만하여 사신에게 올리다가 사신을 보고는 거짓으로 놀란 체하며 말하기를 “나는 亞父(范增)의 사신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보니 바로 項王의 사신이다.” 하고는 도로 가져가게 하고, 다시 나쁜 음식을 차려 楚나라의 사신에게 올렸다. 楚나라의 사신이 돌아가 項羽에게 이 사실을 아뢰니, 項羽가 이로 말미암아 范增을 크게 의심하여 둘의 사이가 갈라지게 되었다. 《史記 권56 陳丞相世家》
역주28 晉滅虢(괵) 還襲虞 : 춘추시대 강대국인 晉나라가 虢나라를 점령하고자 하였으나 虞나라에게 길을 빌리지 않으면 정벌하러 갈 수가 없었다. 이에 대부 荀息이 계책을 내어 虞公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고 길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자 虞公이 이를 허락하였다. 이에 晉나라는 길을 빌려 虢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虞나라까지 멸망시켰다. 《春秋左氏傳 僖公 20년》
역주29 : 괵
역주30 漢燒棧道……定三秦 : 項羽가 秦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劉邦을 경계하여 벽지인 巴‧蜀과 漢中을 주어 漢王으로 삼았는데, 제후들이 각자의 봉지로 갈 적에 張良이 漢王에게 漢中으로 들어가면서 지나가는 곳의 잔도를 태워 제후들의 침략에 대비하고 項羽에게 동쪽으로 진출할 뜻이 없음을 보이게 하였다. 漢王은 張良의 계책을 따르고, 大將 韓信에게 故道를 따라 관중으로 나와 三秦을 멸망시키게 하였다. 《漢書 권1 高帝紀》
역주31 吾(於)[以]此觀之 : 저본에는 ‘於’로 되어있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以’로 바로잡았다.
역주32 不暴甲而勝者 主勝也 : 이 내용은 《尉繚子》 〈兵談〉에 보인다.
역주33 兵有勝于朝廷 : 이 내용은 《尉繚子》 〈攻權〉에 “兵有勝於朝廷”이라고 보인다.
역주34 李靖曰……片善勝無善 : 이 내용은 《李衛公問對》 〈上卷〉에 보인다.

손자수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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