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守叨蒙上恩하야 擢守湘土라 深惟朝廷委寄之重은 非特責以有司常務而已니 布宣德化하고 導迪人心이 實守臣之事라
顧此邦風俗
은 初未詳知
하니 今以天性人倫之大者
와 與夫遷善改過之方
으로 爲爾民告
하고 名之曰諭俗三事
라하야 今具于后
라
一, 古者敎民에 必以孝弟爲本하고 其制刑에 亦以不孝不弟爲先하니 蓋人之爲人이 異乎禽獸者는 以其有父子之恩과 長幼之義也라
詩云 父兮生我하시고 母兮鞠我하시다하고 繼之曰 欲報之德인댄 昊天罔極이삿다한대 此言父母之恩은 與天同大하니 爲人子者 雖竭其力이라도 未足以報也라
今乃有親在而別籍異財하고 親老而供養多闕하며 親疾而求療弗力하고 親歿而安厝弗時하야 不思此身從何而有罔極之報하니 當如是乎아
至於兄弟大倫하얀 古人謂之手足하니 言其同本一體也라 今乃有以唇舌細故而致爭하고 錐刀小故而興訟하야 長不恤幼하고 卑或凌尊하니 同氣之親이 何忍爲此오
潭湘舊俗은 素稱淳厚하니 如前數者는 未必有之라 太守此來에 欲以義理訓民이라 未免預陳勸戒하야 已行下州城十二縣하니 自今民間에 有孝行純至하고 友愛著聞이면 采訪得實하고 具申本州하야 當與優加旌賞하야 以爲風俗之勸이요
或其間有昧於禮法之人이 爲不孝不弟之行이면 鄕里父老 其以太守之言으로 曲加誨論하야 令其悛改라
昔後漢陳元이 爲母所訟에 亭長仇香이 親到其家하야 敎以人倫大義하니 遂爲孝子하고 北史에 淸河之民이 有兄弟爭財者한대 郡守蘇瓊이 告以難得者兄弟요 易得者田宅이라하니 遂感悟息訟하고 同居如初라
況此邦之人은 本來易化하니 以理開曉면 必無不從하리라 若上違太守之訓言하고 下拒父老之忠告면 則是敗常亂俗之民이니 王法所加에 將有不容已者라
一陷刑戮
이면 終身不齒
니 雖悔何及
이리오 爾民其思之
하야 毋忽
注+齒者列也라 言旣以不孝不弟被刑이면 卽是頑惡之人이니 不得與良民竝列也라하라
一, 古人은 於宗族之恩에 百世不絶이니 蓋服屬雖遠이나 本同祖宗하야 血脈相通이라 豈容間隔이리오 至於隣里鄕黨하얀 雖比宗族爲疏나 然其有無相資하고 緩急相倚하며 患難相救하고 疾病相扶持하야 情義所關은 亦爲甚重이라
今人은 於此二者에 往往視以爲輕하야 小有紛爭이면 輒相凌犯하고 詞愬一起면 便爲敵讐하니 有一于斯면 皆非美事라
昔江州陳氏는 累世同居하야 聚族至七百餘口하니 前代嘗加旌表하고 至今稱爲義門이라
吉州孫進士는 以惠施一鄕하야 諸司列奏하야 蒙恩하고 特免文解하니 士夫以爲美談이라
江湖之間에 境土相接하니 豈有江西之人은 能爲義擧어늘 而此獨不能이리오
今請逐處老成賢德之士하노니 交相勸率하야 崇宗族之愛하고 厚隣里之歡하며 時節往來하야 恩愛浹洽하고 小小乖忤를 務相涵容하야 不以輕啓訟端하야 以致結成怨隙이니
若能和叶親族하고 賙濟里閭하야 爲衆論所推면 亦當特加褒異요 如其不體敎訓하야 妄起訟爭이면 懲一戒百하야 所不容已니 爾民其勉之하야 無忽이라
一, 官之與民에 誼同一家하야 休戚利害를 合相體恤이니 爲有司者는 不當以非法擾民하고 爲百姓者는 不當以非理擾官이라
太守는 平時以愛人利物爲心하니 不啻飢渴이라 視事云始에 切切講求하고 已轉牒州縣官하야 各以四事自勉하고 而爲民除其十害라
何謂四事오 律己以廉과 撫民以仁과 存心以公과 蒞事以勤 是也라
何謂十害오 斷獄不公과 聽訟不審과 淹延囚繫와 慘酷用刑과 汎濫追呼와 招引告訐과 重疊催稅와 科罰取財와 縱吏下鄕과 低價買物 是也라
十者有無는 所未詳知나 萬一有之면 當如拯溺救焚하야 不俟終日하야 務令田野安帖하야 愁嘆不生이라
或民間有公共利病
한대 太守所未及知
면 許明白具狀
하야 前來陳述
이라 但不許匿名
하고 實封訐人私過
하야 言而有理
면 卽當詳酌
하야 以次施行
이니 爾民亦宜體太守此意
하야 更相勸戒
하야 非法之事
注+如豪強凶橫이어나 呑謀貧弱이어나 奸狡詐僞어나 欺騙善良이어나 敎唆詞訟이어나 囑公事어나 聚衆闘歐어나 開坊賭博이어나 居停盜賊이어나 屠宰耕牛어나 酤賣私酒어나 興販雜物이니 如此之類 皆係非法이라를 莫妄作
하고 無理之事
注+如事不干己를 輒行告訐이어나 裝撰詞說하야 夾帶虛實이니 如此之類 皆是非理라를 莫妄興
이라
或日前所爲 未免害人이라도 若能幡然悔悟하야 去惡從善을 如湯沃雪이면 舊迹都消라 人誰無過리오마는 改之爲貴니 周處三害도 終爲名賢이라
父老其以此意
로 爲
子弟
하야 反覆解說
하야 必若敎之
니 不悛
이면 則國家有法
하고 官司有刑
이라 太守雖欲從寬
이나 有不可得
하니 爾民其幸聽之
하야 毋忽
하라
右諭俗三事
를 開具在前
이라 太守之於爾民
은 猶父兄之
子弟
니 爲父兄者
는 只欲子弟之無過
하고 爲太守者 亦只欲爾民之無犯
이라 故於到任之初
에 以誠心實意
로 諄諄告諭
라
其不識文義者
는 鄕曲善士 當以俗說爲衆開陳
하야 使之通曉
하야 庶幾人人循理
하고 家家畏法
하야 田里無追呼之擾
하고 公庭無鞭
之聲
이니
民情煕然化爲樂國이면 豈不美哉아 故令榜示하니 各宜知悉하라
當職昨守此州 首末三年이어늘 初無善狀하니 豈謂邦人亮其疏拙하야 旣去之後에 猶不相忘가
當職亦每每稱嘆士風之美民俗之厚 未有如溫陵比者하야 十四五年之間에 雖泉山一草一木이라도 亦時入思念이라
至聞永德二邑之寇難하얀 則爲之悽愴하고 聞歲事不登하야 民生憔悴하얀 則爲之慨嘆이러니 不圖閒散之久에 忽蒙上恩하야 再付郡寄라
疾病衰羸하야 本不欲出이러니 又念泉人相愛之深하니 不忍固辭라
黽勉一行하야 今已到任하니 凡百政事는 悉遵前任日規模하고 及以仁廉公勤四事로 與僚屬更相勸勉하야 期不負邦人屬望之意라
惟士若民은 亦宜各崇禮義하고 各勵廉恥하고 各修孝弟忠信之行하야 使士風之美와 民俗之厚로 有加於往時라 是又區區所望於泉人也라
當職此來에 精力雖非昔比나 然勤民之心을 不敢以衰病或怠하고 倉庫空虛 前所未有나 然恤民之心을 不敢以匱乏而少改니
爾民亦宜體念此意하야 詞訴之可已者는 不必重紊官司하고 賦稅之當輸者는 不必更待催督하야 使當職聽斷之餘에 頗有暇日하고 而官俸兵糧粗免欠闕하야 庶得一意爲爾民思長久之計하고 不爲細故末節所妨이라
當職此來는 非有所貪慕요 惟欲興利除害하야 使此邦復還樂土之舊而已라
比者入境之初에 延訪父老하야 田里利病을 雖已略聞이나 本末曲折은 未能周悉이니 凡士民有知其詳者는 遇見客受詞之日이어든 不惜條陳以告하라 當加斟酌하야 次第施行이라
今後郡政에 或有未合事宜면 亦願指陳毋隱이니 庶幾利日以興하고 害日以除하야 年歲之間에 漸還舊觀이라 此當職垂老復來之本意也라 故玆曉諭하니 各宜知悉하라
나(태수)는 외람되이 성상聖上의 은혜를 입고 발탁되어 상주湘州 지역에 부임하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하건대 조정에서 중임을 맡긴 것은 유사有司의 상무常務를 경책警責하는 일뿐만이 아니니, 덕화德化를 베풀고 민심을 인도하는 것이 실로 수령의 일이다.
돌아보건대 이 지방의 풍속은 애초에 자세히 알지 못하니, 지금 천성과 인륜에 관계된 중대한 것과 개과천선의 방도로 먼저 그대들 백성을 위해 알려주고 이를 풍속에 대해 효유하는 세 가지 일[諭俗三事]이라 명명한 다음 이제 아래에 갖추어 적는다.
하나, 옛날 백성을 가르칠 때 반드시 효제孝弟를 근본으로 삼았고 형벌을 제정할 때도 불효不孝와 부제不弟를 먼저 염두에 두었으니, 대개 사람이 사람 되는 것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은 부자父子간의 은혜와 장유長幼 사이의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육아蓼莪〉에 “아버지시여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시여 나를 길러주셨네.[부혜생아父兮生我 모혜국아母兮鞠我]”라고 하였고, 이어서 “그 은덕을 갚고자 할진댄 하늘처럼 다함이 없도다.[욕보지덕欲報之德 호천망극昊天罔極]”라고 하였는데, 이는 부모의 은혜는 위대함이 하늘과 같으니 자식 된 자가 비록 그 힘을 다하더라도 보답하기에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가 살아 있는데 거처와 재산을 달리하고 부모가 연로한데 자주 봉양을 빠뜨리며, 부모가 병들었는데 치료에 힘쓰지 않고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제때에 안장安葬하지 않아서 누가 이 몸을 낳고 길러주었는지, 그 망극罔極한 은혜에 대한 보답이 있는지를 생각하지 못하니, 이렇게 해서야 되겠는가.
형제간의 큰 인륜에 이르러서는 고인古人이 수족手足과 같다고 하였으니, 근본을 같이하는 하나의 몸[同本一體]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소한 말다툼 때문에 분쟁을 일으키고 작은 이해관계 때문에 소송을 일으켜서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을 돌보지 않고 어린 사람이 혹 어른을 능멸하기도 하니, 친한 동기간에 어찌 차마 이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담주潭州와 상주湘州의 옛 풍습은 평소 순후하다고 칭송되니,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일은 반드시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 왔을 때 의리義理로 백성을 가르치고자 하였기에 미리 개진하여 권계勸戒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미 주성州城의 12현縣에 행하行下하였으니, 지금부터 민간에 효행이 순수하고 지극하거나 우애가 두텁다고 소문난 사람이 있으면 탐문하여 그 실상을 조사하고 본주本州에 갖추어 알려 〈소문이 실정과 부합하면〉 넉넉히 표창과 포상을 더해주어서 풍속을 권면하는 방도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혹 그 사이에 예법禮法에 어두워서 효성스럽지 못하고 우애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향리鄕里의 부로父老들이 태수의 말로써 곡진하게 잘 가르쳐서 개과천선하게 해야 할 것이다.
옛날 후한後漢의 진원陳元이 그 어미에 의해 〈효성스럽지 못하다고〉 고발告發되었을 때 정장亭長인 구향仇香이 직접 그 집에 찾아가 인륜人倫과 대의大義로 가르치니 마침내 진원이 효자가 되었고, ≪북사北史≫ 〈순리열전循吏列傳〉에 수隋나라 청하淸河의 백성 가운데 형제간에 재산을 다투는 자들이 있었는데, 군수郡守인 소경蘇瓊이 ‘얻기 어려운 것이 형제이고 얻기 쉬운 것은 전택田宅이다.’라는 말로 고해주니 마침내 감오感悟하여 송사訟事를 그만두고 한 집에서 살면서 처음처럼 우애롭게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더구나 이 지방 사람들은 본래 교화하기 쉬우니, 이치로 개도開導하면 반드시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만일 위로 태수의 가르침을 어기고 아래로 부로父老들의 충고를 거부한다면 이는 상도常道를 무너뜨리고 풍속을 어지럽히는 백성이니, 부득이 국법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한 번 형벌에 빠지게 되면 종신토록 양민들과 함께하지 못할 것이니, 비록 후회해도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그대 백성들은 이것을 생각하여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注+① 齒란 班列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이미 不孝와 不弟로 형벌을 받았으면 곧 이는 완악한 사람이니, 양민과 같은 반열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
고인古人은
종족宗族의 은혜를
백대百代가 지나도록 끊지 않았으니, 대개
은 비록 멀어도 원래
조종祖宗이 같아서
혈맥血脈이
상통相通하기 때문이다. 어찌
간극間隙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인리隣里와
향당鄕黨에 이르러서는 비록 종족에 비하여 소원하지만 그러나 〈재물이〉 있고 없고에 따라 서로
자뢰資賴하고 위급할 때 서로 의지하며
환난患難을 만나면 서로 구제하고
질병疾病이 있을 때 서로
부지扶持하는 등
정의情義에 관계된 바는 또한 매우 친밀하였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이 두 가지 경우에 대해 왕왕 가볍게 보아서 조금만 분쟁紛爭이 있으면 번번이 서로 업신여기고 소송訴訟이 한 번 일어나면 문득 원수가 되니, 이 가운데 한 가지만 있어도 모두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옛날 강주江州의 진씨陳氏는 여러 대代가 함께 살아서 종족이 모이면 칠백여 명에 이르렀으니, 전대前代에서 일찍이 정표旌表를 더하였고 지금까지도 의문義門이라 칭송된다.
또
길주吉州의
손진사孫進士는 고을에 은혜를 베풀었기에 여러
관사官司에서 계속
상주上奏하여 은혜를 입고 특별히
가 면제되었으니, 사대부들이 미담으로 여기고 있다.
강호江湖의 사이에 경계와 지역이 인접해 있으니, 어찌 강서江西의 사람들은 능히 의로운 일을 하는데 이곳만 유독 그렇게 할 수 없겠는가.
이제 도처의 노성老成하고 어진 덕을 지닌 선비들에게 청하노니, 서로 권면하고 솔선하여 종족 간의 우애를 숭상하고 이웃 간의 즐거움을 두터이 하며 시절時節로 왕래往來하여 은애恩愛하는 마음이 가슴속에 무젖게 하고 사소한 과오를 힘써 서로 포용해야 하고, 경솔하게 쟁송爭訟의 단서를 열어 원한을 맺는 데 이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친족 간에 화합하고 이웃 간에 구휼하여 중론衆論의 추중推重을 받는다면 또한 특별히 포상하는 은혜를 더할 것이고, 만일 이 교훈을 체득體得하지 못하여 망령되이 쟁송을 일으킨다면 일벌백계로 다스려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 백성들은 면려하여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 관사官司는 백성과 마땅히 일가一家가 되어서 휴척休戚과 이해利害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보살펴야 하니, 유사有司는 법에 어긋나는 일로 백성을 동요하게 해서는 안 되고 백성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로 관사官司를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평소 백성을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기갈飢渴에 대한 일을 근심할 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정사政事를 시작할 때 절실하게 강구하고 이미 주현州縣의 관리에게 첩문牒文으로 전달하여 각각 사사四事를 스스로 면려하고 백성을 위해 십해十害를 없애도록 하였다.
무엇을 사사四事라 이르는가? 청렴함으로 몸을 다스리는 것, 인仁으로 백성을 어루만지는 것, 마음을 공정하게 가지는 것, 일에 임하여 부지런한 것이 이것이다.
무엇을 십해十害라 이르는가? 송옥訟獄을 판단함에 공정하지 못한 것, 송사訟事를 처리함에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것, 구금 기간을 지연시키는 것, 참혹하게 용형用刑하는 것, 추호追呼를 지나치게 남용하는 것, 고발하기를 종용하는 것, 중첩하여 납세를 독촉하는 것, 벌금을 부과하여 재물을 착취하는 것, 아전들을 풀어 시골에 내려보내는 것,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이것이다.
십해十害의 유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만일 있다면 마땅히 물에 빠진 자를 건지고 불에 타는 자를 구하듯이 하여 하루가 다 가기를 기다리지 않아서, 백성들로 하여금
전야田野에 안주하게 해서 근심과 탄식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에 힘쓸 것이다.
周處擊蛟圖
혹 민간에 태수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공공公共의
이병利病이 있으면 분명하게
봉장封狀을 갖추어 앞으로 와서 진술하게 하되 다만 익명을 허락하지 않고 고발당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잘못을 사실대로 봉장하게 해서 그 말에 일리가 있으면 곧 자세히 참작하여 차례대로 시행할 것이니, 그대 백성들도 나의 이런 뜻을 잘 알아서 다시 서로 권면하고 경계해서 법에 어긋나는 일을
注+① 예컨대 세력이 강성함을 믿고 전횡하거나, 가난한 사람의 재물을 탈취하거나, 교활하게 속임수를 쓰거나, 선량한 사람을 속여 재물을 편취하거나, 詞訟를 교사하거나, 公事를 청탁하거나, 사람들을 모아 싸움을 붙이거나, 도박장을 열거나, 도적을 숨겨주거나, 밭 가는 소를 도살하거나, 密酒를 사고팔거나, 雜物을 흥정하여 판매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종류가 모두 非法에 관계된다. 망령되이 행하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注+② 예컨대 자기와 관계없는 일을 문득 發告하거나, 말을 꾸며내어 虛實을 협잡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종류가 모두 非理이다. 망령되이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혹 일전에 행한 일이 사람을 해치는 것을 면하지 못했더라도 만일 흔쾌히 후회하고 깨우쳐서 뜨거운 물에 눈이 녹듯이
악惡을 버리고
선善을 따른다면 예전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사람이 누가 과오가 없겠는가마는 과오를 고치는 것이 귀하니, 세 가지 해악[
삼해三害] 가운데 하나였던
도 〈예전의 허물을 고치고〉 마침내
명현名賢이 되었다.
부로父老들은 이 뜻으로 향려鄕閭의 자제子弟들을 위해 반복 해설하여 반드시 이처럼 가르쳐야 하니, 만일 과오를 고치지 않는다면 나라에서는 국법으로 다스리고 관사官司에서는 형벌로 다스릴 것이다. 내가 비록 관용을 베풀고자 해도 부득이한 경우가 있으니, 그대 백성들은 부디 잘 알아들어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상 풍속에 대해 효유하는 세 가지 일을 자세히 갖추어 앞에 붙였다. 태수와 백성의 관계는 부형父兄과 자제子弟의 관계와 같으니, 부형 된 사람은 단지 자제들에게 과실이 없게 하고자 하고, 태수 된 사람 역시 단지 백성들이 죄를 범하는 일이 없게 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처음 도임到任했을 때 정성스런 마음과 진실한 뜻으로 간곡하게 고유告諭하였다.
문의文義를 이해하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향곡鄕曲의 선사善士들이 시속時俗의 말로 중인衆人을 위해 개진開陳하여 잘 이해하게 해서, 사람마다 이치를 따르고 집집마다 법을 두려워하여 전리田里에는 추호追呼하는 소란이 없고 공정公庭에는 편복鞭扑의 소리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변화하여 낙국樂國이 되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방문榜文으로 게시揭示하게 하였으니 각기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내(당직當職)가 지난번에 이 주州를 다스린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3년이었는데 애초에 좋은 모습이 없었으니, 어찌 고을 사람들이 그 어리석고 우둔함을 미더워 해서 이미 떠난 후에도 오히려 서로 잊지 못하리라고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나 또한 늘 아름다운
사풍士風과 두터운
민속民俗이
과 비견될 만한 곳이 없음을
칭탄稱歎하여, 14~5년 사이에 비록 산천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또한 때로 잊은 적이 없었다.
영주永州와 덕주德州 두 곳에 도적의 난리가 있다는 말을 듣기에 이르러서는 처창悽愴한 생각이 들었고, 농사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초췌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개탄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한가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임금의 은혜를 입고 다시 군수로 부임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질병으로 쇠약해져서 원래는 출사하고자 하지 않았는데 천주泉州 백성들이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생각하니, 차마 굳이 사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길을 떠나 지금 도임到任하였으니, 모든 정사는 다 전에 군수로 있던 날의 규모規模를 준용하고 인仁으로 백성을 어루만지고[요속僚屬들과 다시 서로 권면하여 고을 사람들이 기대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으려 기약한다.
오직 사대부와 백성들은 또한 마땅히 각각 예의를 숭상하고 각기 염치를 면려하며 각각 효제孝弟와 충신忠信의 행실을 닦아서 아름다운 사풍士風과 두터운 민속民俗이 지난번보다 더 나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또한 내가 천주泉州의 백성들에게 바라는 바이다.
내가 지금 도임함에 정력은 비록 옛날과 비할 바 아니지만 그러나 백성을 위해 부지런한 마음을 감히 쇠약하고 병든 것 때문에 혹 나태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창고가 텅 빈 것이 전에 없던 일이지만 그러나 백성을 구휼하는 마음을 감히 물자가 부족하다는 것 때문에 조금이라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 백성들도 또한 마땅히 이 뜻을 체념體念해서 〈사정事情에 따라〉 그만둘 만한 소송은 굳이 관사官司를 거듭 번거롭게 하지 말고 마땅히 납부해야 하는 부세賦稅는 굳이 독촉하기를 다시 기다리지 말아서 나로 하여금 송사를 다스리는 나머지에 자못 한가한 날이 있게 하고, 관봉조官俸粗와 병량조兵糧粗가 흠축欠縮나는 것을 면하게 해서 거의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대 백성들을 위해 장구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하고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 때문에 방해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곳에 도임한 것은 탐모貪慕하는 바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이로움이 생기게 하고 해로움을 제거해서 이 지방으로 하여금 다시 예전처럼 낙토樂土가 되게 하려는 생각뿐이다.
근래 처음 경내에 들어왔을 때 부로父老들을 맞아들여 전리田里의 이병利病에 대해 비록 대략 들었지만 본말本末의 곡절은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으니, 무릇 사대부와 백성 가운데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객客을 인접引接하여 사송詞訟을 받는 날이 되거든 아끼지 말고 낱낱이 고하도록 하라. 마땅히 더욱 참작하여 차례차례 시행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후로 군정郡政 가운데 혹 사의事宜에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또한 지적해 말해주어 숨기지 않기를 원하노니, 그렇게 하면 거의 이로움이 날로 생기고 해로움이 날로 제거되어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점점 옛 모습을 회복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노년에 다시 도임한 본래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에 효유曉諭하는 것이니, 각각 잘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