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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武子直解

손무자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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勢者 破敵之勢也 乘敵人有可破之勢하여 奮兵擊之 如破竹하고 하여 而勢不可遏이라
下文 以轉圓石於千仞之山으로 喩其勢之險而不能止也하니라
孫子曰
凡治衆 如治寡 分數 是也
原注
孫子言
凡治衆多之兵 如治寡少之兵者 分數 是也
謂偏裨卒伍之分이요 謂十百千萬之數
各有統制하여 而大將總其綱領이라 治百萬之衆 與治寡同하나니
鬪衆 如鬪寡 形名 是也
原注
鬪衆多之兵 如鬪寡少之兵者 形名 是也
謂旌旗麾幟之形이요 謂金鼓笳笛之名이라
以其言不相聞也 爲之金鼓笳笛하여 使聽之而進止하고 以其視不相見也 爲之旌旗麾幟하여 使視之而左右
鬪百萬之衆 與鬪寡同하니
三軍之衆 可使必受敵而無敗者 奇正 是也
原注
三軍之衆 可使人人必受敵而無敗者 有奇有正 是也
大衆所合 爲正이요 將所自出 爲奇
善戰者 或以奇爲正하고 或以正爲奇하여 使敵莫測하나니 吾三軍所以必受敵而無敗也
兵之所加 如以投卵者 虛實 是也니라
原注
兵之所加 如以礪石投鳥卵之易者 以我之實 擊彼之虛也
礪石也
凡戰者 以正合하고 以奇勝이니라
原注
凡戰者 以正兵合之하고 以奇兵으로 或左或右하여 出其不意而勝之 是也
善出奇者 無窮如天地하고 不竭如江海하니 終而復始 日月 是也 死而更生 四時 是也
原注
善出奇兵者 無窮如天地之久하고 不竭如江海之深하여 旣終而復始 如日月之循環하며 旣死而復生 如四時之往來하나니 皆喩出奇之無窮也
聲不過五로되 五聲之變 不可勝聽也
原注
聲不過宮商角羽五者而已로되 至於五聲之變하여는 不可盡聽也
色不過五로되 五色之變 不可勝觀也
原注
色不過靑赤黃白黑五者而已로되 至於五色之變하여는 不可盡觀也
味不過五로되 五味之變 不可勝嘗也
原注
味不過辛酸醎苦甘五者而已로되 至於五味之變하여는 不可盡嘗也
引此하여 以喩奇正之無窮也
戰勢 不過奇正이나 奇正之變 不可勝窮也니라
原注
戰陣之勢 不過奇與正而已로되 至於奇正權變之道하여는 不可盡窮究也
奇正相生 如循環之無端하니 孰能窮之哉리오
原注
或以奇而生正하고 或以正而生奇하여 奇正相生 如環之循轉하여 無有端倪本末하니 誰能窮之哉리오
激水之疾 至於漂石者 勢也
原注
水性柔弱이로되 險隘之處 激之疾流하여 至於漂轉巨石者 其勢然也
鷙鳥之疾 至於毁折者 節也
原注
鷹鸇之鷙者 擒搏鳥雀之疾 必至於毁折者 其節然也
節者 節量其力하여 必至其處하여 使不失也
善戰者 其勢險하고 其節短이니
原注
善戰者 其勢險하니 勢險則難禦 其節短하니 節短則易勝이니
勢如하고 節如發機니라
弩
原注
勢如引滿之弩 喩其險也 節如發動之機 喩其短也
機者 弩之牙也
紛紛紜紜하여 鬪亂而不可亂이요
原注
紛紛紜紜 亂之貌也
使士卒戰鬪似亂이로되 而實不可亂者 有分數也
하여 形圓而不可敗니라
原注
渾渾沌沌 圓之象也
布陣形圓하여 而敵不可敗者 有形名也之類 隅落鉤連하고 曲折相對하여 擊尾首救하고 擊首尾救하나니 豈可敗乎
亂生於治하고 怯生於勇하고 弱生於强이니
原注
兵治而示之亂 是亂生於治也 兵勇而示之怯 是怯生於勇也 兵强而示之弱 是弱生於强也
治亂 數也 勇怯 勢也 强弱 形也
原注
行伍部曲 各有分數 治能示之亂也 藏鋒畜銳하여 不肯輕出 勇能示之怯也 卑辭屈己하여 見利不爭 强能示之弱也
治而示之亂 有分數者能然이요 勇而示之怯 識兵勢者能然이요 强而示之弱 知軍形者能然이니
善動敵者 形之 敵必從之하고
原注
善能動敵者 示之以形이면 敵必從之하나니 增竈是也
予之 敵必取之하나니
原注
以小利予敵이면 敵必來取之하나니 是也
以利動之하고 以本待之니라
原注
以利動敵而誘之來하고 以本待敵而使之敗 이라
善戰者 求之於勢하고 不責之於人이라
能擇人而任勢하나니
原注
善戰者 求之於兵勢之必勝하고 不責成於不才之人이라
曹操使張遼, 李典, 樂進으로 守合할새 敎之曰 若孫權至어든 張遼, 李典 出戰하고 樂進하라
領兵十萬하여 圍合淝한대 典與遼 將數千人同出하여 果大敗孫權하니
吳人奪氣어늘 還修守備하니 衆心乃安이라
하니 擇人任勢之道也
任勢者 其戰人也 如轉木石이니 木石之性 安則靜하고 危則動하며 方則止하고 圓則行하나니라
原注
任勢者 其與人戰也 如轉木石同하니
木石之性 置之安地則靜하고 置之危地則動하며 方正則止하고 圓斜則行하나니 皆自然之勢也
兵士甚陷則懼하고 無所往則固하고 入深則拘하고 不得已則鬪하나니 亦自然之勢耳
善戰人之勢 如轉圓石於千仞之山者 勢也니라
原注
轉圓石於千仞之山하여 而不可止遏者 由勢使之也 兵在險地而不可制禦者 亦勢使之也
하니 蓋兵威已成 勢如破竹이라
數節之後 迎刃自解하여 不可止也


란 적을 깨뜨리는 기세氣勢이니, 적에게 격파할 만한 기세가 있음을 틈타서 군대를 내어 분격奮擊하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고, 마른 가지를 꺾고 썩은 나무를 줍는 것과 같아서, 기세를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아랫글에 둥근 돌을 천 길의 산에서 굴리는 것을 가지고 그 기세가 험하여 그칠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손자孫子가 말하였다.
무릇 많은 병력을 다스림을 적은 병력을 다스리는 것과 같이 함은 가 이것이요,
原注
손자孫子가 말하였다.
무릇 많은 병력을 다스림을 적은 병력을 다스리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은 가 이것이다.
편비偏裨졸오卒伍의 신분을 이르고, 를 이른다.
각각 통제가 있어서 대장이 그 강령綱領을 총괄하므로 백만의 군대를 다스리기를 적은 병력을 다스리는 것과 같이 하니, 이는 한신韓信이 ‘병력이 많을수록 더욱 좋다.’고 한 이유이다.
많은 병력을 싸우게 하기를 적은 병력을 싸우게 하는 것과 같이 함은 이 이것이요,
原注
많은 병력을 싸우게 하기를 적은 병력을 싸우게 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은 이 이것이다.
정기旌旗휘치麾幟(깃발)의 형상을 이르고, 은 징과 북, 피리와 젓대의 명성名聲(소리)을 이른다.
말이 서로 들리지 않기 때문에 징과 북, 피리와 젓대를 만들어서 병사들로 하여금 이 소리를 듣고서 전진하고 멈추게 하고, 시력視力이 서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기旌旗와 깃발을 만들어서 병사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고 왼쪽으로 가게 하고 오른쪽으로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만의 군대를 싸우게 하기를 적은 군대를 싸우게 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니, 이는 왕전王翦이 60만 대군을 사용하여 나라를 이긴 이유이다.
삼군三軍의 병력을 반드시 적의 침공을 받아도 패함이 없게 하는 것은 이 이것이요,
原注
삼군三軍의 병력을 병사마다 반드시 적의 침공을 받아도 패함이 없게 하는 것은, 가 있고 이 있는 것이 이것이다.
많은 병력을 모으는 것을 이라 하고, 장군이 직접 지휘하여 출동시키는 것을 라 한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혹 기병奇兵정병正兵으로 만들고 혹 정병正兵기병奇兵으로 만들어서 적으로 하여금 측량하지 못하게 하니, 이는 우리 삼군三軍이 반드시 적의 침공을 받아도 패함이 없는 이유이다.
병력을 가하는 곳에 마치 숫돌을 가지고 알을 깨는 것과 같게 하는 것은 허실虛實이 이것이다.
原注
병력을 가하는 곳에 마치 숫돌을 가지고 새 알을 깨는 것처럼 쉽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을 가지고 적의 함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는 숫돌이다.
무릇 전투는 정병正兵으로 교전交戰하고 기병奇兵을 만들어 승리한다.
原注
무릇 전투에는 정병正兵을 가지고 적과 교전交戰하여 싸우고, 기병奇兵을 가지고 혹은 왼쪽으로 출동하고 혹은 오른쪽으로 출동하여 적이 뜻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 승리하는 것이니, 예컨대 정백鄭伯나라 군대를 막을 적에 삼군三軍을 앞에 진열하고 은밀히 복병伏兵으로 그 뒤를 습격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기병奇兵을 잘 출동시키는 자는 무궁무진함이 하늘과 땅과 같고, 다하지 않음이 강과 바다와 같으니, 끝마쳤다가 다시 시작함은 해와 달이 이것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은 사시四時가 이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기병奇兵을 잘 출동시키는 자는 무궁무진함이 하늘과 땅의 오램과 같고, 다하지 않음이 강과 바다의 깊음과 같아서, 이미 끝났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해와 달이 순환하는 것과 같이 하고,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살기를 사시四時가 오고 가는 것과 같이 하니, 이는 모두 기병奇兵을 출동함이 무궁無窮함을 비유한 것이다.
소리는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으나, 다섯 가지 소리의 변화를 이루 다 들을 수 없고,
原注
소리는 이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을 뿐이나, 다섯 가지 소리의 변화함에 이르러서는 이루 다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색깔은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으나, 다섯 가지 색깔의 변화를 이루 다 볼 수 없고,
原注
색깔은 청색靑色적색赤色황색黃色백색白色흑색黑色 이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을 뿐이나, 다섯 가지 색깔의 변화함에 이르러서는 이루 다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맛은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으나, 다섯 가지 맛의 변화를 이루 다 맛볼 수 없고,
原注
맛은 매운맛‧신맛‧짠맛‧쓴맛‧단맛 이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을 뿐이나, 다섯 가지 맛의 변화함에 이르러서는 이루 다 맛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인용하여 기병奇兵정병正兵무궁無窮함을 비유하였다.
싸우는 기세는 기병奇兵정병正兵에 지나지 않으나, 기병奇兵정병正兵의 변화는 이루 다할 수가 없는 것이다.
原注
전진戰陣의 기세는 기병奇兵정병正兵에 지나지 않을 뿐이나, 기병奇兵정병正兵으로 임기응변臨機應變하는 방도에 이르러서는 이루 다 연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병奇兵정병正兵이 서로 낳음은 순환에 끝이 없는 것과 같으니, 누가 능히 이것을 다하겠는가.
原注
혹은 기병奇兵을 가지고 정병正兵을 낳고 혹은 정병正兵을 가지고 기병奇兵을 낳아서, 기병과 정병의 서로 낳음이 고리가 따라 도는 것과 같아서 시작과 끝, 이 없으니, 누가 능히 이것을 다하겠는가.
격동한 물의 빠름이 돌을 표류하게 함에 이르는 것은 기세요,
原注
물의 성질이 부드럽고 약하나 험하게 막혀있는 곳에 격동시키면 빨리 흘러서 큰 돌을 표류하게 함에 이르는 것은 그 기세氣勢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사나운 맹금猛禽들이 빨리 공격함이 새를 훼손하고 꺾음에 이르는 것은 절도이다.
原注
매와 새매의 맹금猛禽들이 새와 참새를 사로잡고 공격함의 빠름이 반드시 새를 훼손하고 꺾음에 이르는 것은 그 절도가 그러한 것이다.
은 그 힘을 절제하고 헤아려서 반드시 그곳에 이르러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투를 잘하는 자는 그 기세氣勢가 험하고 그 이 짧으니,
原注
그러므로 전투를 잘하는 자는 그 기세氣勢가 험하니 기세氣勢가 험하면 막기가 어렵고, 그 이 짧으니 이 짧으면 이기가 쉽다.
예컨대 국의麴義공손찬公孫瓚을 격파할 적에 매복한 군대를 수십 안에서 출동시켰고, 주방周訪두증杜曾을 패퇴시킬 적에 30 밖에서 달려갔으니, 이는 기세氣勢가 험하고 이 짧은 뜻을 얻은 것이다.
기세는 쇠뇌를 가득히 당긴 것과 같이 하고, 기아機牙를 발동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原注
기세가 가득히 당긴 쇠뇌와 같음은 그 험함을 비유한 것이요, 이 발동하는 기아機牙와 같음은 그 짧음을 비유한 것이다.
는 쇠뇌의 기아機牙이다.
분분紛紛하고 어지러운 것처럼 하여 어지럽게 싸우되 어지럽힐 수가 없고,
原注
분분紛紛하고 운운紜紜함은 어지러운 모습이다.
병사들로 하여금 전투할 적에 겉은 어지러운 듯하나 실제는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은 가 있기 때문이다.
혼혼渾渾하고 돈돈沌沌하여 형체가 둥그나 패퇴시킬 수가 없다.
原注
혼혼渾渾돈돈沌沌은 둥근 형상이다.
포진한 형세가 둥근데 적이 패퇴시킬 수 없는 것은 이 있기 때문이니, 예컨대 팔진八陣육화진六花陣 따위의 귀퉁이를 서로 연결하고 굽은 것과 꺾인 부분이 서로 상대하여 꼬리를 치면 머리가 구원하고 머리를 치면 꼬리가 구원하니, 어찌 패퇴시킬 수 있겠는가.
혼란(문란)함은 다스림에서 생겨야 하고, 겁냄은 용맹에서 생겨야 하고, 약함은 강함에서 생겨야 하니,
原注
군대가 다스려졌는데도 혼란한 것처럼 보임은 이는 혼란함이 다스림에서 생겨난 것이요, 군대가 용감한데도 겁내는 것처럼 보임은 이는 겁냄이 용맹에서 생겨난 것이요, 군대가 강한데도 약한 것처럼 보임은 이는 약함이 강함에서 생겨난 것이다.
다스림과 혼란함은 이고, 용맹과 겁냄은 기세이고, 강함과 약함은 형세이다.
原注
항오行伍부곡部曲이 각각 분수分數가 있음은 잘 다스려졌으면서 혼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요, 칼날을 감추고 예기銳氣를 쌓아서 가볍게 출동하지 않음은 용맹하면서 겁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요, 말을 낮추고 자기 몸을 굽혀서 이익을 보고도 다투지 않음은 강하면서도 약함을 보이는 것이다.
다스려졌으면서도 혼란함을 보임은 분수分數가 있는 자가 이렇게 할 수 있고, 용맹하면서도 겁내는 것처럼 보임은 병세兵勢를 아는 자가 이렇게 할 수 있고, 강하면서도 약함을 보임은 군형軍形을 아는 자가 이렇게 할 수 있다.
예컨대 한신韓信이 거짓으로 대장군의 깃발과 북을 버려 어지러운 것처럼 보여서, 이로써 용저龍且를 목 베었고, 손빈孫臏이 군대로 하여금 아궁이 수를 줄여 겁내는 것처럼 보여서 방연龐涓을 격파하였고, 흉노匈奴가 건장한 병사들을 감춰두어 약함을 보여서 고조高祖를 포위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적을 잘 움직이게 하는 자는 나타나면 적이 반드시 따라오고,
原注
그러므로 적을 잘 움직이게 하는 자는 형세를 보여주면 적이 반드시 따라오니, 혹 강하면서도 약한 형세를 보임은 손빈孫臏이 아궁이 수를 줄인 것이 이것이요, 혹 약하면서도 강한 형세를 보임은 우후虞詡가 아궁이 수를 더 늘린 것이 이것이다.
주면 적이 반드시 취하나니,
原注
작은 이익을 적에게 주면 적이 반드시 와서 취하니, 예컨대 이목李牧이 작은 이익을 가지고 오랑캐 사람들을 유인하여 격파한 것이 이것이다.
이익을 가지고 움직이고 근본을 가지고 대비한다.
原注
이익을 가지고 적을 유인하여 오게 하고, 근본을 가지고 적을 대비하여 패하게 하는 것이니, 근본은 나의 보병步兵기병騎兵이 혹 정병正兵이 되고 혹 기병奇兵이 되어서, 힘씀이 필승必勝함에 있음을 이른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형세에서 찾고 사람에게서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사람을 가려 쓰고 기세에 맡기는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병세兵勢의 필승에서 찾고, 재주 없는 사람에게서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재주 있는 사람을 가려서 기세를 맡기는 것이다.
조조曹操장료張遼, 이전李典, 악진樂進으로 하여금 합비合淝를 지키게 할 적에 당부하기를 “만약 손권孫權의 군대가 오거든 장료張遼이전李典은 나가 싸우고 악진樂進은 수비하라.” 하였다.
손권孫權이 십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합비合淝를 포위하자, 이전李典장료張遼와 함께 수천 명을 거느리고 함께 출전하여 과연 손권孫權을 대패시켰다.
이에 나라 병사의 사기士氣가 저하되자 장료張遼는 돌아와서 수비를 닦으니, 병사들의 마음이 비로소 안정되었다.
손권孫權이 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물러갔으니, 이는 사람을 가려 쓰고 기세에 맡긴 방도이다.
기세氣勢에 맡기는 자는 병사들을 싸우게 함이 나무와 돌을 굴리는 것과 같으니, 나무와 돌의 성질은 편안하면 고요하고 위태로우면 움직이며 네모나면 그치고 둥글면 굴러간다.
原注
기세氣勢에 맡기는 자는 적과 싸울 적에 나무와 돌을 굴리는 것과 같다.
나무와 돌의 성질은 편안한 자리에 놓으면 고요하고 위태로운 자리에 놓으면 움직이며, 네모나면 멈추고 둥글거나 기울면 굴러가니, 이는 모두 자연의 기세이다.
그러므로 병사들은 매우 위태로운 경지에 빠지면 두려워하고 갈 곳이 없으면 견고해지고 깊은 곳에 들어가면 구속되고 부득이하면 싸우는 것이니, 또한 자연의 기세이다.
그러므로 적과 잘 싸우는 사람의 형세가 둥근 돌을 천 길의 산 위에서 굴리는 것과 같은 것은 기세 때문이다.
原注
둥근 돌을 천 길의 산 위에서 굴려서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은 기세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요, 군대가 험한 곳에 있으면서 제재할 수 없는 것은 또한 기세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옛날에 악의樂毅제서濟西의 한 전투에 의하여 강한 나라를 겸병하였으니, 군대의 위엄이 이미 이루어짐에 기세가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몇 마디를 쪼갠 뒤에는 칼날을 맞으면 저절로 풀리는 것과 같아서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역주
역주1 如摧枯拉朽 : 랍후
역주2 韓信所以多多而益善 : 韓信(?〜B.C. 196)은 漢나라의 개국공신으로 楚王에 봉해졌으나 高祖의 의심을 받아 長安으로 압송되었다가 풀려나 淮陰侯로 강등되었다.
어느 날 高祖가 마음을 열고 韓信과 함께 將帥들의 능력의 고하와 장단점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는데, 高祖가 “내가 만일 장군으로 출전한다면 그 재능이 몇 명의 병사들을 거느릴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韓信이 “폐하께서는 10만 정도라면 무리 없이 통솔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高祖가 다시 “그렇다면 公은 몇 명이나 거느릴 수 있는가.”라고 묻자, 韓信은 “臣은 多多益善이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였다.
高祖가 웃으면서 “그렇다면 어째서 公은 나에게 사로잡힌 것인가.” 하니, 韓信이 “폐하께서는 비록 병사를 많이 거느릴 수 있는 재능은 부족하시지만, 장군을 거느릴 수 있는 재능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폐하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더구나 폐하는 하늘의 도움을 받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史記 권92 淮陰侯列傳》
역주3 王翦所以用六十萬而勝楚 : 이 내용은 134쪽 주 2) 참조.
역주4 : 하
역주5 鄭伯禦燕師……以潛軍襲其後 : B.C. 718년, 鄭나라 사람이 衛나라의 牧 지방을 침공하여 東門의 전쟁을 보복하니, 衛나라 사람은 燕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鄭나라를 공격하였다. 鄭나라의 祭足‧原繁‧洩駕가 三軍을 거느리고 연군의 전면을 공격하는 한편, 曼伯과 子元으로 하여금 은밀히 制 지역의 군대를 이동하여 후면을 공격하게 하였다. 燕나라 사람들은 앞에 있는 鄭나라의 三軍만을 대비하였을 뿐, 배후의 制人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다. 6월에 鄭나라의 두 公子가 制人을 거느리고 燕나라 군대를 北制에서 격파하였다. 《春秋左氏傳 隱公 5년》
역주6 : 치
역주7 麴義破公孫瓚……發伏於數十步之內 : 麴義(?〜191)는 後漢 말기 군벌 袁紹의 막하 장수이며, 公孫瓚(?〜199)은 北平 일대를 거점으로 활약한 군벌이다.
公孫瓚이 劉虞를 죽이고 幽州 땅을 차지한 다음 기고만장하여 자신의 재주와 힘을 믿고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으며, 명망과 재주가 있는 자들을 살해하거나 핍박하였다. 後漢 獻帝 興平 2년(194)에 袁紹가 10만 대군을 모아 公孫瓚을 공격하였는데, 袁紹는 부장인 麴義에게 명령하여 强弩 1천 개로 무장한 精兵 800명을 선봉으로 삼아 전면에 배치시키고 袁紹 자신은 步兵 수만 명을 거느리고 후방에 布陣하였다. 公孫瓚은 麴義의 병사가 적은 것을 보고 輕視하여 騎兵을 풀어 돌진하게 하였다. 麴義의 병사들은 모두 방패 밑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적이 수십 보의 지근거리에 이르자 일제히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곧장 공격하고 强弩를 우레처럼 쏘아대니, 公孫瓚의 步兵과 騎兵이 놀라 달아나서 대패하였다. 《三國志 권6 董二袁劉傳 英雄記》
역주8 周訪敗杜曾 奔赴於三十步之外 : 周訪(260〜320)은 南北朝時代 晉나라의 장수이다. 杜曾(?〜319)은 晉나라 新野 사람으로 처음에 鎭南將軍이 되었는데, 용맹이 뛰어나 永嘉 연간 後趙 石勒의 난리에 오랑캐를 무찌르고 군대를 모아 군벌이 되었다.
晉나라의 재상 王敦이 周訪으로 하여금 杜曾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周訪은 將軍 李恆의 左翼軍과 許朝의 右翼軍을 전면으로 내보낸 다음, 자신은 中軍을 거느리고 후방을 지켰다. 杜曾이 선봉에 선 周訪의 左翼軍과 右翼軍을 공격하는 사이, 周訪은 杜曾을 두려워하는 병사들을 위하여, 꿩 사냥을 하면서 병사들을 안심시켰다. 周訪은 병사들에게 1軍이 패하면 북을 세 번 울리고 2軍이 모두 패하면 북을 여섯 번 울리라고 명령하고, 후퇴하는 부대가 있으면 가차 없이 다시 진격하여 싸울 것을 명하였다. 兩軍이 사력을 다해 이른 아침부터 申時(오후 3~5시)까지 격전을 벌였으나, 周訪의 左‧右 兩翼軍이 모두 패하여 戰鼓가 여섯 번이 울렸다.
周訪은 북소리를 듣자, 정예군 800명을 선발하여 직접 술을 따라주어 사기를 끌어올리고, 자신이 지휘하여 일사분란하게 대형을 유지하게 하였다. 적이 30보의 지근거리에 이르자, 周訪이 친히 북을 울려 공격의 신호를 보내니, 將兵들이 일제히 달려 나가 혼란에 빠진 杜曾 軍을 크게 무찔러 1천여 명을 죽이고 杜曾을 참살하였다. 《晉書 권58 周訪列傳》
역주9 : 확
역주10 紛紛紜紜……渾渾沌沌 : 《孫子髓》에는 “紛紜은 어지러운 모양이고, 渾沌은 머리와 꼬리가 없는 것이다.[紛紜 亂貌 渾沌 無頭眉也]” 하였으며, 또 “紛紜은 勢이고, 渾沌은 形이다.” 하였다.
역주11 八陣六花 : 八陣은 여덟 가지 陣이란 말로 그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첫 번째는 《雜兵書》에 보이는 ‘方陣‧圓陣‧牝陣‧牡陣‧衝陣‧輪陣‧浮沮陣‧雁行陣’의 八陣이라는 설이고, 두 번째는 唐나라 李筌의 《神機制敵太白陰經》 〈陣圖〉에 보이는 ‘天‧地‧風‧雲의 四正과 龍‧虎‧鳥‧蛇의 四奇’의 八陣이라는 설이며, 세 번째는 《小學紺珠》에 보이는 諸葛亮의 ‘洞當‧中黃‧龍騰‧鳥飛‧折衝‧虎翼‧握機‧衡’의 八陣이라는 설이다.
六花 역시 陣法으로 唐나라 李靖이 諸葛亮의 八陣法을 본받아 만든 것으로, 太宗이 六花陣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를 물으니, 李靖이 대답하기를 “신이 본받은 것은 諸葛亮의 八陣法입니다. 大陣 속에 小陣이 들어있고, 大營 속에 小營이 들어있으며, 진영의 정면과 모퉁이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빈틈이 없고, 진영간의 질서가 정연합니다. 옛 八陣圖의 진법이 이러하므로, 신은 그에 따른 것입니다. 외면의 6軍은 方陣을 이루고, 내부의 1군은 圓陣을 이루어, 마치 여섯 갈래로 갈라진 꽃모양과 같다 하여, 세간에서 六花陣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李衛公問對 中》
역주12 韓信……以斬龍且(저) : B.C. 205년, 漢나라의 장군 韓信이 濰水에서 楚나라 장수 龍且를 水攻으로 궤멸시킨 사건으로 자세한 내용은 82쪽 주 4) 참조.
‘대장군의 깃발과 북을 거짓으로 버리고 혼란에 빠진 것처럼 보인 것’은 韓信이 趙나라의 成安君 陳餘와 背水陣을 치고 싸울 때의 일이나, 여기서는 싸움의 초기에 강을 건너 공격하다가 패배를 가장하여 楚軍을 유인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原文에 없는 말을 첨부한 것으로 보인다. 《史記 권92 淮陰侯列傳》
역주13 : 저
역주14 孫臏……以破龐涓 : B.C. 341년, 魏나라가 趙나라와 연합하여 韓나라를 공격하자, 韓나라는 齊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齊나라는 田忌를 장수로 삼고 孫臏을 軍師로 삼아 韓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이 싸움에서 孫臏은 아궁이 수를 줄이는 계책을 써서 龐涓으로 하여금 방심하게 하여 전쟁에 승리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80쪽 주 2) 참조.
역주15 匈奴……以圍漢高 : B.C. 200년, 韓王 信이 匈奴와 내통하여 漢나라를 치려 한다는 보고를 받은 漢 高祖는 匈奴에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어 그 실정을 탐지하고자 하였다. 匈奴는 그들의 건장한 병사들과 살진 牛馬를 숨기고 노약자와 여윈 가축들만 보이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匈奴에 갔다 온 자들이 모두 제대로 실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흉노를 경시하여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高祖가 다시 劉敬을 匈奴에 사신으로 보내어 실정을 탐지하도록 하였는데, 劉敬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신이 匈奴에 도착하니, 여위고 지친 노약자만 눈에 띄었습니다. 이는 틀림없이 저들이 일부러 약한 체하여 우리를 방심시켜 놓고 奇兵으로 승리를 취하려는 계략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匈奴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라고 하였다.
劉敬의 보고가 과장되었다고 여긴 高祖는 劉敬을 廣武의 감옥에 가두고서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匈奴를 정벌하였는데, 平城에 이르러 匈奴의 기습을 받고 본진과 떨어진 채 白登山에서 포위되었다. 高祖는 冒頓單于의 왕후인 閼氏에게 후한 뇌물을 주고 겨우 포위망을 빠져나와 匈奴와 화친하였다. 《史記 권99 劉敬列傳》
역주16 或强而示以形之弱……虞詡(후)增竈 : 虞詡는 後漢 安帝, 順帝 때의 名將이다. 虞詡가 武都太守 시절, 羌族의 大軍이 변경을 침범하였는데, 현저한 병력의 열세로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때 虞詡는 구원병이 온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병사들로 하여금 아궁이의 수를 매일 갑절로 늘리게 하여 구원병이 계속 오는 것처럼 위장하니, 羌族들은 감히 공격하지 못하였다.
혹자가 묻기를 “옛날 孫臏은 龐涓과 싸울 적에 아궁이 수를 날마다 줄였는데 그대는 그 수를 날마다 늘렸으며, 兵法에는 ‘하루에 30리를 행군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그대는 하루에 200리를 행군하니, 이는 어째서인가?” 하니, 虞詡는 대답하기를 “빠르게 행군한 것은 오랑캐들이 우리의 위치를 헤아리지 못하여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병법을 지켜 우리가 천천히 행군하였으면 저들의 대군에게 따라잡혀 포위되었을 것이다. 아궁이의 숫자를 속이되 孫臏은 약한 것처럼 보이고자 하였고, 나는 강한 것처럼 보이고자 하였으니, 이는 그 형세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권88 虞詡傳》
역주17 : 후
역주18 李牧以小利誘胡人而破之 : 李牧(?〜B.C. 236)이 작은 이익을 가지고 오랑캐 사람들을 유인하여 격파한 계략은 87쪽 주 1) 참조.
역주19 本謂吾之步騎……務在必勝 : 《孫子髓》에는 원문의 ‘以本待之’를 治‧勇‧强의 근본을 가지고 대기하는 것으로 보고, “舊註에 本을 正兵이라 하였으니, 형체를 속여 敵을 오게 하면서 正兵으로 대기하는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비판하였다.
역주20 求之於兵勢之必勝……而任之以勢 : 《孫子髓》에는 “재주가 없는 사람에게 중대한 일을 이루기를 바라면 또한 그 임무를 감당해내지 못하므로 바라지 않는 것이다.[不才之人 責成重事 不能勝任 故不責]”라고 한 蕭吉의 말을 비판하고, “勢에서 구하면 병사들을 똑같이 용감하게 만드니, 어찌 사람마다 책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또한 달리 공교로운 방법이 없고 다만 사람의 所長을 가려서 그 자연의 勢에 맡길 뿐이다.[求之於勢 則齊勇若一 安得人人而責之哉 然亦無他謬巧也 但能擇人所長 任其自然之勢而已]” 하였다.
역주21 : 비
역주22 曹操使張遼……權攻城不拔而退 : 赤壁大戰에서 대패한 曹操가 許昌으로 돌아가면서 張遼‧樂進‧李典 등에게 7천여 명의 병력을 주어 合淝를 방어하게 하였는데, 曹操는 떠날 적에 만약 孫權의 군대가 오거든 뜯어보라며 편지 한 통을 남겼다. 孫權이 1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合淝를 포위하자 曹操의 편지를 개봉하였는데, 여기에 ‘張遼와 李典은 나가 싸우고 樂進은 수비하라.’고 쓰여 있었다.
이에 용기백배한 張遼가 李典과 함께 결사대를 뽑아 함께 적진으로 뛰어들어 수십 명을 죽이고 두 장수를 목 베고 별안간에 孫權의 陣前에 이르렀다. 불의에 기습을 받은 孫權과 그의 부하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높은 언덕에 올라가 가까스로 방어하였다. 張遼는 孫權을 겁쟁이라고 꾸짖고, 군대를 거느리고 성으로 돌아가니, 모든 장병들이 사기가 충천하여 한마음으로 城을 지켜, 孫權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孫權은 合淝城을 공격한 지 10여 일이 되었으나 성을 함락할 수 없자, 마침내 병력을 이끌고 철수하였다. 《三國志 권17 張遼傳》
역주23 樂毅藉濟西一戰 能倂强齊 : 당시 齊나라가 강성하여 列國을 압박하자, 燕 昭王을 중심으로 趙‧楚‧韓‧魏‧燕의 5국이 서로 연합하였는데, B.C. 284년, 樂毅를 上將軍으로 삼아 연합군을 총 지휘하여 齊나라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에 樂毅는 연합군을 거느리고 齊나라에 쳐들어가서 濟西의 싸움에서 湣王이 지휘하는 齊軍을 대파하였다. 趙‧楚‧韓‧魏의 군대가 본국으로 귀환하였으나, 樂毅는 破竹의 氣勢로 齊나라 경내로 진군을 거듭하여, 齊나라의 70여 城邑을 항복받아 모두 燕나라의 郡縣으로 편입시켰다. 《史記 권80 樂毅列傳》

손무자직해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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