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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武子直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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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地者 謂地之勢有九也
上篇 言地形 乃地理自然之形也 此篇 言九地 因兵所至之地하여 而勢有九等之別也
上篇 蓋言地形之常하고 此篇 蓋言地勢之變이라
篇內 有云九地之變 屈伸之利하니 地形九地所以分而爲二也니라
孫子曰
用兵之法 有散地하고 有輕地하고 有爭地하고 有交地하고하고 有重地하고하고 有圍地하고 有死地하니라
原注
九地之目也
諸侯自戰其地者 爲散地
原注
諸侯自戰於境內之地者 名之爲散地 散地者 以其士卒有內顧之心而易散也
入人之地不深者 爲輕地
原注
去國越境하여 入其地不深者 名之爲輕地 輕地者 言士卒思還하여 難進而輕於退也
我得亦利하고 彼得亦利者 爲爭地
原注
險固之處 我得之亦便利하고 彼得之亦便利하여 皆可以少擊衆하고 以弱擊强 名之爲爭地 爭地者 務在必爭也
我可以往이요 彼可以來者 爲交地
原注
平易之地 我亦可以往이요 彼亦可以來者 名之爲交地 交地者 地有數道하여 往來通達而交錯者也
諸侯之地三屬 先至而得天下之衆者 爲衢地
原注
諸侯之地 三面連屬隣國하여 若先至其衝하여 據其形勢하면 而得天下之衆者 名之爲衢地 衢地者 四面通達 如衢路也
入人之地深하여 背城邑多者 爲重地
原注
入敵人之境已深하고 背彼之城邑已多 名之爲重地 重地者 士卒心專하여 無歸志하여 重於退還也
行山林險阻沮澤 凡難行之道者 爲
原注
山林險阻之地 沮澤卑下之處 凡有難行之道路 名之爲圮地 圮地者 毁壞而不可留止也
所由入者隘하고 所從歸者迂하여 彼寡 可以擊吾之衆者 爲圍地
原注
所由而入者 其形狹隘하고 所從而歸者 其路迂回하여 彼寡 可擊吾之衆者 名之曰圍地 圍地者 前狹後險하여 進退艱難 如被圍者也
疾戰則存하고 不疾戰則亡者 爲死地
原注
山川險遠하여 進退不能하며 糧絶於中하고 敵臨於外하여 疾戰則可以生存이요 不疾戰則必至於危亡者 名之曰死地
死地者 謂陷於死絶之 當倂氣一力而幸其生也
是故 散地則無戰이요
原注
是故 近郊之地 士卒懷土하여 其心易散이면 則無令與戰이니 若敵人深入하여 專志輕鬪어든 吾當集人積穀하고 保城守險하여 使輕兵絶其糧道
彼挑戰不得하고 轉輸不至하여 野無所掠하여 三軍困餒어든 出兵擊之 可以取勝이라
輕地則無止
原注
始入敵境하여 未背險要하고 士卒思還하여 難進易退하면 務在必入호되 無得留止하고 選其精騎하여 密其所伏이라가 敵人若來 則出奇擊之하고 未至則速去之니라
爭地則無攻이요
原注
險固要害 必爭之地 無得攻城延緩하고 當後發先至而據之 是也
昔漢景帝時 吳楚反할새 或說吳王曰 吳多步兵하니 步兵 利險阻하고 漢多車騎하니 車騎 利平地
願大王 所過城邑 勿攻하고 直去하여 疾西據洛陽武庫하여 食敖倉粟하고 阻山河之險하여 以令諸侯
雖無入關이나 天下固已定矣리이다
交地則無絶이요
原注
往來交通之地 不可阻絶其路 當設奇伏하여 示以不能하고 誘之半至하여 襲而擊之 可也
或曰 使部伍聯屬하여 不可斷絶이니 恐敵人乘我也라하니라
衢地則合交
原注
四通之地 當先遣使하여 以厚賂 約和旁國然後 簡兵練卒하여 阻便利而處 則我有外助하고 彼失其援하리니 이면 必然取勝이라
重地則掠이요
原注
深居重地하여 進未有利하고 退復不得이어든 當掠取糧食하고 深壘固軍하여 示敵持久하고 審察虛實하여 出奇取勝이니라
圮地則行이요
原注
圮壞之地 艱阻難處어든 宜速行而去 若卒遇敵人이어든 便當據險守要하고 簡選精兵하여 或分而左하고 或分而右하여 掩其空虛하여 乘其不備라야 乃能勝之니라
圍地則謀
原注
前有强敵하고 後有險阻하여 欲進不能이요 欲退不敢 是爲圍地 難以力勝이요 易以謀取
塞其闕하여 示無所往하고 佯爲寡弱之形이면 敵備我必輕하리니 同心齊力하여 奮勇而前하여 分兵據險하여 鼓譟而出이면 乃能取勝이라
死地則戰이니라
原注
陷之死地어든 當深溝高壘하여 安靜勿動하고 號令三軍하여 示不得已하고
殺牛饗士然後 塞井夷竈하고 幷氣一力하여 以殊死戰이니
此所謂失道而求生者也
曰 困而不謀者하고 窮而不戰者이라하니라
能使敵人으로 前後不相及하고 衆寡不相恃하고 貴賤不相救하고 上下不相收하고 卒離而不集하고 兵合而不齊하니라
原注
古之所謂善能用兵者 衝敵人之中하여 使前與後 不得相及也하고 하며 出其不意하고 掩其無備하여 使貴與賤으로 不得相救援하고 上與下 不得相收斂하여 倉皇散亂하여 不知所禦하여 將吏士卒 不能相赴하여 卒已散而不能復集하고 兵雖合而不能復齊
無備라가 不知所措하여 中軍, 下軍 爭舟濟河하고 上軍固守하여 不能相救하고 士卒散亂하여 終夜有聲 是也
原注
○ 杜牧曰
多設變詐하여 以亂敵人하여 或衝前掩後하고 或驚東擊西하며 或立僞形하고 或張奇勢하여 我則無形以合戰하고 彼則必備而衆分하여 使其怖懾離散하여 上下驚撓하여 不能和合하고 不得聚集이니 此善用兵者也
合於利而動하고 不合於利而止니라
原注
敵雖驚撓 亦觀其合於利 則動以應敵하고 不合於利 則止而不從也
敢問
敵衆整而將來 待之若何
先奪其所愛則聽矣리라
原注
孫子設爲或者之問호되 敵人甚衆하고 其勢又整하여 將來薄我어든 以何法待之
我先奪其所愛 則敵之進退勝敗 皆聽於我矣
所愛 謂或據我便地하고 或掠我饒野하고 或利我糧道 我能堅壁淸野하고 據險守要하면 則彼之進退 唯我是聽이라
兵之情 主速하니 乘人之不及하고 由不虞之道하여 攻其所不戒也니라
原注
舊本 速下 再有一速字하니 謂兵之情 惟主於神速이라
若速則乘人之倉卒하여 使不及爲備하고 行敵人所不虞之道하여 攻敵人所不備之處 則敵驚擾散亂하여 而前後不相及하고 衆寡不相恃也
原注
凡爲客之道 深入重地 心志專一이니 主在散地 不能勝也
此下 皆言深入爲客之道하니라
掠於饒野하여 三軍足食이어든 謹養而勿勞하여 幷氣積力하고 運兵計謀하여 爲不可測이니라
原注
掠於富饒之野하여 使三軍糧食豊足하고 堅壁自守하여 勤撫士卒하여 勿使勞苦하여
氣盛力全然後 하여 一擧而克之 是也
投之無所往이면 死且不北
原注
投之危地하여 左右前後 皆無所往이면 則守戰至死而不奔北也
死焉이면 不得士人盡力이리오
原注
旣殊死戰焉이면 有不得勝之理
同在患難이면 安得不共竭其力이리오
하니 後說 理勝하니라
兵士甚陷則不懼하고 無所往則固하고 深入則拘하고 不得已則鬪니라
原注
凡三軍之士 陷在危亡之地하여 人持必死之心이면 則不畏懼하고 左右前後 皆無所往이면 則人心堅固하고 深入重地 則人心拘於一而不離散하고 勢不得已 則人皆悉力而鬪니라
張預云 走無所適이면 則如拘係也라하니 亦通이라
是故 其兵 不修而戒하며 不求而得하며 不約而親하며 不令而信이니라
原注
以此之故 其兵 不待修整而自然戒懼하며 不待責罰而自得一心하며 不待約束而自然相親하며 不待號令而自然聽信하나니 言兵在死地 上下同心也
張預云 不待求索而得情意라하니 未知是否로라
禁祥去疑 至死無所之니라
原注
禁止妖祥之事하고 絶去疑惑之計 則士卒雖至死 而無他慮也
倘士卒未有必戰之心이면 則亦有假妖祥之言하여 以使衆者 是也
吾士無餘財貨也 無餘命壽也니라
原注
吾士卒無餘財 非憎惡其貨也 謂焚燒棄擲하여 無顧戀之心이요 無餘命 非憎惡其壽也 謂割捨委致하여 無苟生之憂慮 皆不得已也
令發之日 士坐者涕沾襟하고 偃臥者涕交하나니 投之無所往이면 則諸之勇也니라
原注
將戰之日 必先發令하나니 士聞約束하고 欲殊死鬪하여 坐者 垂涕沾襟하고 偃臥者 流涕交頤
頷也
相期必死 皆悲感하고 投之死地而無所往이라 所向 皆有專諸曹劌之勇이라
善用兵者 譬如率然하니 率然者 常山之蛇也
擊其首則尾至하고 擊其尾則首至하고 擊其中則首尾俱至하나니라
原注
善能用兵者 譬如率然之勢하니
速也 言遇擊則速然相應也
率然者 如常山之蛇하여 擊其尾則首應하고 擊其首則尾應하고 擊其中則首尾俱應하나니 所謂四頭八尾觸處爲首
敵衝其中이면 首尾俱救 是也
敢問兵可使如率然乎
原注
孫子又設爲或人之問호되 吾士卒 可使如率然之勢乎 答曰
하다
夫吳人與越人 世爲仇讎하여 相憎惡者也 當其同舟濟水而遇風이면 患難相救 如左右兩手어든 況非仇讎之人 同陷死地 豈不猶率然之勢首尾相應乎
是故 方馬埋輪이라도 不足恃也니라
原注
承上文而言호되 以此之故 雖縛馬埋輪이라도 不足倚恃 得使士卒 一心倂力而取勝이니 必投之無所往然後 如率然之相應也
或曰 方 放字之誤也 言放去其馬하고 埋輪於地하여 轅不得馬而駕하고
車不得輪而馳라도 軍士尙且奔散亂而不一하나니
放馬埋輪之所以不足恃以爲不散之術也라하니라
齊勇若一 政之道也
原注
力之齊 氣之勇 萬人如一 在軍政 得其道也
剛柔皆得 地之理也
原注
剛柔皆得其用者 地勢使之然也 謂陷之死地故 剛柔皆得其用이라
剛柔 猶强弱也 曹公曰 强弱一勢 是也
善用兵者 携手若使一人 不得已也니라
原注
善能用兵者 使三軍之衆으로 如提携一人之手而使之者 乃陷之死地而不得已也
將軍之事 靜以幽하고 正以治니라
原注
將軍之事 在安靜而幽深하여 使人不能測하고 公正而整治하여 使人不敢犯이라
能愚士卒之耳目하여 使之無知하며
原注
能愚其士卒之耳目하여 使之無所知識하고 惟從吾所麾所指 卽所謂
初焉士卒 豈能知之리오
易其事하고 革其謀하여 使人無識하며
原注
改易其所爲之事하고 更變其所發之謀하여 使人無識我造意之端이니
發令治攻具호되 約五日攻西安이라가 至期夜半 勒諸軍하여 取臨하고 하니 初焉衆人 皆無識也니라
易其居하고 迂其途하여 使人不得慮니라
與之期호되 若登高而去其梯하고 帥與之深入諸侯之地호되 而發其機니라
原注
帥與士卒會期 若登數仞之高하고 而下去其梯하여 使不能退하고 帥與士卒深入諸侯之地호되 而發其機謀하여 使之必能勝이니하고 樹伏兵 是也
若驅群羊하여 驅而往하고 驅而來하여 莫知所之니라
原注
譬如牧者之驅群羊하여 驅之而往하고 驅之而來 而羊不知其所之也
三軍之衆 鼓之進則進하고 揮之退則退하나니 皆不知我攻取制勝之端也
聚三軍之衆하여 投之於險이니 將軍之事也
原注
聚吾三軍之衆하여 投之於危險之地하여 而能取勝者 此將軍之事也
九地之變 屈伸之利 人情之理 不可不察也니라
原注
遇九地而處之 有權變之法하니 不可拘泥 可屈則屈하고 可伸則伸하여 當審其所利
人情 甚陷則不懼하고 無所往則固하고 入深則拘하고 不得已則鬪하나니
此皆常理 不可不審察也
凡爲客之道 深則專하고 淺則散이니라
原注
凡爲客之道 入深則士卒心志專一하고 入淺則士卒心志漫散이라
此以下 以九地之變으로 申言爲客之道하니라
去國越境而師者 絶地也
原注
去己之國하고 過人之境하여 而用師者 危絶之地也
或曰 去吾國하고 越吾境하여 初入敵人之地어든 所過關梁津要 使吾踵軍으로 在後告畢書絶者 所以禁人內顧之情하여 而止其還遁之心也
이라하니 是謂絶顧之慮 라하니 絶地之謂
不在九地之列이라하니 未知是否로라
四通者 衢地也 入深者 重地也 入淺者 輕地也 背固前隘者 圍地也 無所往者 死地也
原注
四面通達於旁國者 衢地也 入人之地深者 重地也 入人之地淺者 輕地也 前狹後險하여 受制於人者 圍地也 左右前後 皆無所往者 死地也
專言爲客之道
於九地中 拈出衢重輕圍死五者하여 明之하니라
杜牧, 張預謂九地而止言五事 擧其大略者라하니 非也
是故 散地 吾將一其志하고
原注
守則志一하고 戰則易散이라
散地 吾當集人聚穀하여 一志堅守하고 依險設伏하여 攻其不意也
此下 又以九地 通論主客之道하니라
輕地 吾將使之屬하고
原注
入人之地不深이면 士心不一이니 吾當使密營促隊하여 連屬不絶하여 一以防其逃遁하고 一以備其不虞
爭地 吾將趨其後하고
原注
險阻必爭之地 吾當疾趨其後하여 使首尾俱至
或曰 卽前所謂後人發, 先人至之意라하니라
交地 吾將謹其守하고
原注
往來交通之地 不可阻絶其路 吾當嚴壁謹守하여 以待其來라가 則設伏而擊之
衢地 吾將固其結하고
原注
地通旁國諸侯어든 吾將先以重幣固結之
重地 吾將繼其食하고
原注
深入重地어든 吾將掠於饒野하여 以繼其食하여 使不乏也
圮地 吾將進其途하고
原注
圮壞難行之地 吾將速進其途하여 而無遲留也
圍地 吾將塞其闕하고
原注
旣在圍地 敵開生路以誘我어든 我當自塞之하여 以一士心이니
如爾朱兆等 以二十萬衆으로 圍齊神武於高陵山時 神武有馬二千이요 步不滿三萬이라
死地 吾將示之以不活이니라
原注
旣在死地어든 吾將示士卒以必死하여 令其自奮以求生也
兵之情 圍則禦하고 不得已則鬪하고 過則從이니라
原注
兵之情狀 在圍地 則人人有禦敵制勝之心하고 勢不得已 則人人有奮力戰鬪之志하고 深陷危難之地 則人人從吾之計
或曰 敵兵過我 則自後從之 如從奔無息 是也라하니라
是故 不知諸侯之謀者 不能預交하고 不知山林險阻沮澤之形者 不能行軍하고 不用鄕 不能得地利니라
原注
解見軍爭篇하니라
言知是三者然後 能審九地之利
原注
陽鄭友賢曰
此三法者 皆行師爭利하여 出沒往來, 遲速先後之術也
蓋軍爭之法 專言變迂爲直, 後發先至之爲急也 九地之變 盛言深入利害之爲大也
非此三法이면 安能擧哉리오
爭迂直之變하고 超險阻之地하고 踐敵人之境하고 求不識之路 不用鄕人之習熟者하여 爲之前導 則動而必迷하고 擧而必窮하니 欲爭迂直之勝하고 圖深入之利 安能得其便乎
軍爭, 九地 重言之하니 其有旨哉인저
四五者 一不知 非覇王之兵也니라
原注
言九地之利害 有一不知 非覇王之兵也
長也 言爲天下諸侯之長也 往也 言爲天下之所歸往也
夫覇王之兵 伐大國이면 則其衆不得聚하고 威加於敵이면 則其交不得合이니라
原注
夫覇王之兵 勢力盛强하여 征伐大國이면 則其衆不得會聚하나니하고 是也
威加於敵이면 則其交不得相合하나니하고 是也
是故 不爭天下之交하고 不養天下之權하고 己之私하여 威加於敵이라
其城可拔이요 其國可
니라
原注
承上文而言호되 衆旣不得聚하고 交旣不得合이어든 我當絶其交하고 奪其權하여 得伸己之所欲하여 而威加於敵國이라
其城 可得而拔이요 其國 可得而
張預曰 不爭交援이면 則勢孤而助寡하고 不養權力이면 則人離而國弱하나니
伸一己之私忿하여 暴兵威於敵國이면 則終取敗亡也라하니 其說亦通이라
如吳王夫差 破越於會稽하고 敗齊於艾陵하고 構怨於楚晉하고 爭長於黃池러니 句踐伐之한대 乞師齊楚 不應이라
施無法之賞하고 懸無政之令이니라
原注
施無法之賞者 謂不拘於常法이니 卽所謂法外之賞也 懸無政之令者 謂不執以常政이니 卽所謂政外之令也
原注
○ 鄭友賢曰
常法之賞 不足以愚衆이요 常政之令 不足以惑人이니
賞有時而不拘하고 令有時而不執 此將軍之權也
蓋進有重賞하고 有功必賞者 賞法之常也
政令之常也
或曰 若驅群羊하여 莫知所之
犯三軍之衆 若使一人이니
原注
謂以事干而犯之也 干犯三軍之衆호되 如使一人者 言信賞必罰하여 用衆如寡也
犯之以事 勿告以言하며
原注
干犯以鬪戰之事 勿告以始謀之言이니 人知謀則疑也
犯之以利 勿告以害니라
原注
干犯以利之所當取 勿告以中有所害 人知害則避也
投之亡地然後하고 陷之死地然後이니라
原注
投士卒於亡地然後 人自爲戰而獲存하고 陷士卒於死地然後 人自奮勇而得生하나니
夫衆陷於害然後 能爲勝敗니라
爲兵之事 在順詳敵之意하니라
原注
一本 作佯하니 如韓信佯棄旗鼓走 而趙逐之 是也
幷敵一向하여 千里殺將이니 是謂巧能成事니라
原注
順敵之意 未見敵之隙也
若已見其隙有可攻之勢 則幷力於敵하여 專一以向之하여 雖千里之遠이라도 亦可覆其軍而殺其將이라
始也順之하고 終也殺之하니 此所謂以巧而能成事者也
是故 政擧之日 夷關折符하여 無通其使하고
原注
國家軍政初擧動之日 夷塞關梁하여 毁折符信하고 無通使命이니 恐有智能之士 如之類 見微知著하여 泄我事機하고 測我虛實也
亦有通其使而反爲我利者하니遣之 是也
蓋兵法 有常有變하니 不可執一耳
厲於廊廟之上하여 以誅其事하고
原注
君臣 하여 以責成其事 欲謀不外泄也
敵人開闔入之니라
原注
敵人或開或闔하여 出入無常하여 進退未決이어든 宜速入之니라
先其所愛호되 微與之期하고
原注
先奪敵人之所顧愛倚恃者호되 敵人所愛者 或糧食, 或便地 皆是也
一說 微與之期 謂微露其意하여 與之相期하여 敵欲趨之어든 我乃後發先至 所以使敵先趨者 恐我至而彼不來也라하니라
踐墨隨敵하여 以決戰事하나니
原注
繩墨이니 法度之器
踐履法度하고 隨敵變化하여 形勢無常이라야 乃可以決戰取勝이니 踐墨隨敵 謂不妄動也
是故 始如處女하여 敵人開戶어든 後如脫兎하여 敵不及拒니라
原注
是故 始如處女在閨門之中하여 以示其弱하여 使敵人開啓可攻之門戶 後如脫網之兎하여 以速其勢하여 使敵人不及設備拒我


구지九地란 땅의 형세가 아홉 가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위 편에서 말한 지형은 바로 지리자연의 형세이고, 이 편에서 말한 구지九地는 군대가 이르는 곳에 따라 형세가 아홉 등급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위 편은 지형의 일정함을 말하였고, 이 편은 지형의 변함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편 안에 구지九地의 변화와 굴신屈伸의 이로움을 말한 것이 있으니, 이는 ‘지형地形’과 ‘구지九地’가 나뉘어 두 편이 된 이유이다.
손자孫子가 말하였다.
용병用兵하는 법은 산지散地가 있고 경지輕地가 있고 쟁지爭地가 있고 교지交地가 있고 구지衢地가 있고 중지重地가 있고 비지圮地가 있고 위지圍地가 있고 사지死地가 있다.
原注
이는 아홉 가지 지형地形의 조목이다.
제후諸侯가 자기 지역에서 스스로 싸우는 것을 산지散地라 하고,
原注
제후諸侯가 자기 경내의 지역에서 스스로 싸우는 것을 이름하여 산지散地라 하니, 산지라는 것은 병사들이 안을 돌아보는 마음이 있어서 흩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나라 사람들이 교외에 군대를 주둔했을 적에, 성이 가까운 것을 믿고서 싸울 마음이 없어서 나라에게 패한 것이 이것이다.
남(적)의 지역에 들어가되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경지輕地라 하고,
原注
국도國都를 떠나 국경을 넘어가서 적의 지역에 들어가되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경지輕地라 하니, 경지輕地라는 것은 병사들이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 전진前進하기를 어려워하고 후퇴後退하기를 쉽게 함을 말한 것이다.
우리가 얻어도 이롭고 적이 얻어도 이로운 것을 쟁지爭地라 하고,
原注
험하고 견고한 곳은 우리가 얻어도 편리하고 적이 얻어도 또한 편리하여,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공격하고 약한 병력으로 강한 병력을 공격할 수 있는 곳을 이름하여 쟁지爭地라 하니, 쟁지爭地라는 것은 반드시 다투어야 할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성고成臯의 험함을 태종太宗이 3천 명으로 지키게 해서 두건덕竇建德의 10만 대군을 곤궁하게 만든 것이 이것이다.
우리가 갈 수 있고 적이 올 수 있는 것을 교지交地라 하고,
原注
평이한 땅으로 우리가 갈 수 있고 적이 또한 올 수 있는 것을 이름하여 교지交地라 하니, 교지交地라는 것은 땅에 몇 길이 있어서 왕래가 통달하여 서로 교차되는 것이다.
제후諸侯의 땅이 삼면三面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먼저 이르면 천하의 무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을 구지衢地라 하고,
原注
제후의 땅이 삼면이 이웃 나라와 연접해 있어서 만약 먼저 요충지에 이르러 그 형세를 점거하면 천하의 무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을 이름하여 구지衢地라 하니, 구지衢地라는 것은 사면으로 통달함이 길거리와 같은 것이다.
남의 지역에 깊이 들어가서 적의 성읍城邑을 많이 등지고 있는 것을 중지重地라 하고,
原注
적의 국경에 들어감이 이미 깊고 적의 성읍을 등진 것이 이미 많음을 이름하여 중지重地라 하니, 중지重地라는 것은 병사들의 마음이 전일하여 돌아갈 마음이 없어서 후퇴하고 돌아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이다.
산림山林으로 험하고 막힌 곳과 저습한 늪 지역으로서 모든 행군하기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을 비지圮地라 하고,
原注
산림으로 험하고 막힌 지역과 늪과 못이어서 저습한 곳으로서 모든 행군하기 어려운 도로가 있는 것을 비지圮地라 이름하니, 비지圮地란 무너져서 오랫동안 머물 수 없는 것이다.
들어가는 길이 좁고 따라 돌아오는 길이 우회하여 적의 적은 병력으로 우리의 많은 병력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을 위지圍地라 하고,
原注
경유하여 들어가는 곳은 지형이 협소하고 따라 돌아오는 곳은 길이 우회하여, 적의 적은 병력으로 우리의 많은 병력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을 이름하여 위지圍地라 하니, 위지圍地라는 것은 앞이 좁고 뒤가 험하여 나아가고 물러감이 어려워 포위를 당한 것과 같은 것이다.
급히 싸우면 생존生存하고 급히 싸우지 않으면 망하는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原注
산천山川이 험하고 멀어서 마음대로 전진하고 후퇴할 수가 없으며 식량이 중간에서 끊기고 적이 밖에서 굽어보고 있어, 급히 싸우면 생존할 수 있고 급히 싸우지 않으면 반드시 위태롭고 멸망함에 이르는 것을 이름하여 사지死地라 한다.
사지死地라는 것은 죽을 땅에 빠짐을 이르니, 마땅히 기운을 합하고 힘을 합쳐서 살기를 바라야 한다.
이 때문에 산지散地에서는 싸우지 말아야 하고,
原注
이 때문에 근교近郊의 땅은 병사들이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여 마음이 흩어지기 쉬우면 병사들로 하여금 싸우게 할 수 없으니, 만약 적이 깊이 쳐들어와서 전일한 마음으로 가볍게 싸우거든 우리는 마땅히 병력을 모으고 곡식을 저축하며 을 보수하고 험한 곳을 지키면서, 경무장輕武裝한 군대로 하여금 적의 군량수송로를 끊어야 한다.
그리하여 저들이 도전하여도 싸울 수가 없고 군량 수송이 계속되지 못하여, 들에 노략질할 것이 없어서 삼군三軍이 곤궁하고 굶주리거든, 군대를 출동하여 공격하면 승리할 수 있다.
경지輕地에서는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하고,
原注
처음 적의 국경에 들어가서 험한 요새를 등지지 못하고 병사들이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 전진하기를 어렵게 여기고 후퇴하기를 쉽게 여기면, 되도록 기필코 들어가되 머물러 있지 말고 정예로운 기병騎兵을 선발하여 은밀히 매복하였다가, 적들이 만약 오거든 기병奇兵을 출동시켜 공격하고 적들이 오지 않거든 신속히 떠나야 한다.
쟁지爭地에서는 오랫동안 적을 공격하지 말아야 하고,
原注
지형地形이 험고한 요해처는 반드시 다투어야 할 지역이니, 성을 공격하여 시일을 지체하지 말고 마땅히 뒤늦게 출발하고 먼저 도착하여 점거하여야 하니, 예컨대 조사趙奢가 신속히 1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북산北山을 점령하자, 나라 군대가 뒤늦게 도착하여 산을 다투었으나 올라가지 못한 것이 이것이다.
옛날 경제景帝 때에 나라와 나라가 배반하였는데, 혹자가 오왕吳王에게 설득하기를 “나라는 보병步兵이 많으니 보병은 험하고 막힌 곳이 유리하고, 나라는 전차와 기병騎兵이 많으니 전차와 기병은 평지가 이롭습니다.
원컨대 대왕은 통과하는 성읍城邑을 공격하지 말고 곧바로 가서 급히 서쪽으로 낙양洛陽무고武庫를 점거하여 오창敖倉에 있는 곡식을 먹고 산하山河의 험한 곳을 막고서 제후들에게 명령하소서.
이렇게 하면 비록 관중關中(長安)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천하가 진실로 이미 평정될 것입니다.
만일 대왕이 천천히 행군하여 머물러 성읍을 함락시키려 하다가 나라의 전차와 기병이 도착하여 급히 나라와 나라의 교외로 들어오면 일이 실패할 것입니다.” 하였으나, 오왕吳王이 그 말을 듣지 않다가 과연 패하였으니, 이는 쟁지爭地를 알지 못하고 공격에 힘쓴 잘못이다.
교지交地에서는 길을 끊지 말아야 하고,
原注
왕래하여 교통交通할 수 있는 지역은 그 길을 가로막아 끊지 말고 마땅히 기병奇兵을 매복시켜 무능한 것처럼 적에게 보이고, 적을 유인하여 반쯤 오게 해서 습격하는 것이 좋다.
혹자는 말하기를 “부오部伍로 하여금 연속되어서 단절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적이 우리의 허점을 틈탈까 두려워해서이다.”라고 하였다.
구지衢地에서는 외국과 연합하여 사귀어야 하고,
原注
사방이 통하는 지역은 마땅히 먼저 사신을 보내어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이웃 나라와 화친을 약속한 뒤에 병사들을 선발하여 편리한 곳을 막고 주둔하면, 우리는 밖의 원조가 있고 적은 원조를 잃을 것이니, 좌우에서 기각掎角으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를 취할 것이다.
중지重地에서는 노략질하여야 하고,
原注
중지重地에 깊이 주둔하여 전진하여도 이로움이 있지 못하고 후퇴하여도 다시 얻을 것이 없으면 마땅히 적의 양식을 노략질하여 취하고, 보루를 높이 쌓고 군대를 굳게 주둔하여 적에게 지구전持久戰할 것을 보이고, 적의 허실虛實을 자세히 살펴서 기병奇兵을 출동시켜 승리하여야 한다.
비지圮地에서는 빨리 떠나가야 하고,
原注
무너지는 지역에서 험하고 막혀 주둔하기가 어렵거든 마땅히 속히 떠나야 하니, 만약 갑자기 적을 만나면 마땅히 험한 곳을 점거하고 요해처를 지키고 정예병을 선발하여, 혹은 나누어 왼쪽에 두고 혹은 나누어 오른쪽에 두어서, 적의 허술한 곳을 기습하여 적이 대비하지 않은 곳을 틈타야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위지圍地에서는 도모하여야 하고,
原注
앞에는 강한 적이 있고 뒤에는 험하고 막힌 곳이 있어서 전진하고자 하여도 전진할 수 없고 후퇴하고자 하여도 감히 후퇴할 수 없는 것을 위지圍地라 하니, 이러한 지역에서는 힘으로써 승리하기는 어렵고 지모智謀로써 쉽게 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적이 포위망을 풀어준 곳을 막아서 병사들에게 갈 곳이 없음을 보여주고, 적에게 병력이 적고 약한 모습을 거짓으로 보여주면, 적이 우리를 대함이 반드시 경솔할 것이니, 병사들과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합하여 용맹을 떨쳐 전진해서 병력을 나누어 험한 요해처를 점거하여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출동하면,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사지死地에서는 결사적으로 싸워야 한다.
原注
사지死地에 빠졌으면 마땅히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고서 안정하여 출동하지 말고, 삼군三軍에게 호령해서 부득이함을 보여주며,
소를 잡아 병사들에게 연향燕饗을 베푼 뒤에 우물을 메꾸고 부엌을 부수고서 기운을 합하고 힘을 함께하여 결사적으로 싸워야 하니,
이는 이른바 ‘살 길을 잃었으면서 살 길을 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법에 이르기를 “곤궁하면서 도모하지 않는 자는 끝내 곤궁하고, 곤궁하면서 싸우지 않는 자는 끝내 망한다.”라고 한 것이다.
옛날에 이른바 ‘용병用兵을 잘하는 사람’이란 적으로 하여금 앞뒤가 서로 미치지 못하게 하고, 병력이 많은 부대와 적은 부대가 서로 믿지 못하게 하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서로 구원하지 못하게 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수습하지 못하게 하고, 병사들이 이산하여 모이지 못하게 하고, 병사들이 모여도 정돈되지 못하게 하였다.
原注
옛날에 이른바 용병用兵을 잘하는 사람이란 적군의 가운데를 충돌해서 앞과 뒤로 하여금 서로 미치지 못하게 하고, 적의 형세를 나누어서 병력이 많은 부대와 적은 부대로 하여금 서로 믿지 못하게 하며,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출동하고 적의 대비가 없는 곳을 습격하여 귀한 자와 천한 자로 하여금 서로 구원하지 못하게 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서로 수습하지 못하게 해서, 경황이 없는 가운데 흩어지고 혼란하여 막을 바를 알지 못하여, 장수와 관리와 병사들이 서로 달려가지 못해서 병사들이 이미 흩어져 다시 모이지 못하고, 병사들이 모이더라도 다시 정돈되지 못하게 하였다.
예컨대 나라가 나라 군대를 압박하여 전거戰車가 달려가고 병사들이 달려가자, 나라 장군 순임보荀林父가 대비함이 없다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중군中軍하군下軍은 배를 다투어 황하를 건너가고 상군上軍은 굳게 지켜 서로 구원하지 못하였으며, 병사들이 흩어지고 혼란하여 밤새도록 떠드는 소리가 있었던 것이 이것이다.
原注
두목杜牧이 말하였다.
“속임수를 많이 설치하여 적을 혼란하게 만들어서 혹은 적의 앞쪽을 충돌하고 뒤를 습격하며, 혹은 동쪽을 놀라게 하고 서쪽을 공격하며, 혹은 거짓으로 인형을 세워놓고 혹은 기이한 형세를 펼쳐서, 우리는 형체가 없이 적과 회전會戰하고 적은 반드시 대비하여 병력이 분산되게 만들어서, 적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이산되게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놀라고 소란해서 화합和合하지 못하고 모이지 못하게 하여야 하니, 이는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이다.”
이익利益에 부합하면 출동하고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멈추어야 한다.
原注
적이 비록 놀라고 소요하나 또한 관찰하여 이익에 부합하면 출동하여 적과 대응하고,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중지하고 따르지 말아야 한다.
감히 묻겠습니다.
“적의 병력이 정돈되어 장차 쳐들어오려 하면 어떻게 상대하여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먼저 적이 아끼는 곳을 빼앗으면 우리의 진퇴를 따를 것이다.”
原注
손자孫子가 혹자의 질문을 가설하기를 “적의 병력이 매우 많고 형세가 또한 정돈되어 있으면서 장차 와서 우리를 압박하려 하면 무슨 방법으로 상대하여야 합니까?” 하고는, 대답하였다.
“우리가 먼저 적이 아끼는 곳을 빼앗으면 적의 진퇴進退승부勝負를 모두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끼는 것은 혹은 우리의 편리한 지역을 점거하고 혹은 우리의 풍요로운 들을 노략질하고 혹은 우리의 군량 수송로를 이롭게 함을 이르니, 우리가 성벽을 굳게 지키고 들을 깨끗이 비우고서 험한 곳을 점거하고 요해처를 지키면 적의 진퇴를 오직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군대의 실정은 신속함을 위주로 하니, 신속하면 적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틈을 타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길을 경유하여 적이 경계(수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게 된다.
原注
구본舊本에는 ‘’자 아래에 다시 한 ‘’자가 있으니, 군대의 실정은 오직 신속함을 위주로 함을 이른다.
만약 신속히 하면 적이 창졸간에 경황이 없을 때를 틈타서 적으로 하여금 미처 대비하지 못하게 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행군하여 적이 수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니, 이렇게 하면 적이 놀라고 소요하고 흩어지고 혼란하여 앞과 뒤가 미처 서로 구원하지 못하고 병력이 많은 부대와 적은 부대가 서로 믿지 못할 것이다.
무릇 이 된 방도는 깊이 쳐들어가면 병사들의 마음이 전일해지니, 주인은 이기지 못한다.
原注
무릇 이 된 방도는 중지重地에 깊이 들어가면 병사들의 마음과 뜻이 전일해지니, 주인은 산지散地에 있게 되므로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좌거李左車가 이른바 ‘한신韓信장이張耳국도國都를 떠나 멀리 와서 싸우니, 그 예봉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것이다.
이 아래는 모두 깊이 적지에 쳐들어가서 객이 된 방도를 말하였다.
풍요로운 들에서 노략질하여 삼군三軍의 양식이 풍족하거든, 삼가 병사들을 기르고 수고롭게 하지 말아서 기운을 합하고 힘을 쌓으며 군대를 운용하고 계책을 세워서 적이 측량할 수 없게 하여야 한다.
原注
풍요로운 들에서 노략질하여 삼군으로 하여금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는, 성벽을 스스로 굳게 지키면서 병사들을 부지런히 어루만져 수고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기운이 왕성하고 힘이 온전한 뒤에 우리 군대를 운용하여 적이 측량할 수 없는 계책을 세워서 일거에 이겨야 하니, 왕전王翦나라를 정벌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도망갈 곳이 없는 곳으로 병력을 투입하면 죽어도 패주하지 않으니,
原注
위태로운 지역으로 병력을 투입하여 전후좌우前後左右에 모두 갈 곳이 없게 하면, 병사들이 끝까지 지키고 싸워서 죽음에 이르도록 도망하지 않게 된다.
죽을 각오로 싸운다면 병사들이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原注
이미 결사적으로 싸운다면 승리할 수 없는 이치가 있겠는가?
똑같이 환란에 처해 있으면 어찌 그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설에 “이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또 어찌 병사들이 힘을 다함을 얻지 못하겠는가?” 하였으니, 그 뜻이 또한 통한다.
다만 앞의 은 두 구절句節로 읽고 뒤의 은 한 구절로 읽는데, 뒤의 설이 논리가 낫다.
병사들이 위급한 지역에 깊이 빠져있으면 두려워하지 않고, 갈 곳이 없으면 견고해지고, 깊이 쳐들어가면 구속되고, 부득이하면 싸운다.
原注
무릇 삼군의 병사들이 위태롭고 멸망할 땅에 빠져있어서 사람마다 필사의 각오를 갖게 되면 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좌우左右전후前後에 갈 곳이 없으면 병사들의 마음이 견고해지고, 중지重地에 깊이 들어가면 인심人心이 한 곳에 얽매여서 이산되지 않고, 형세가 부득이하면 병사들이 모두 힘을 다하여 결사적으로 싸운다.
장예張預가 말하기를 “도망함에 갈 곳이 없으면 매어둔 것과 같다.” 하니, 또한 통한다.
이 때문에 군대가 정돈하지 않아도 경계가 철저하며, 구하지 않아도 마음이 얻어지며, 약속하지 않아도 친해지며, 호령하지 않아도 믿는 것이다.
原注
이러한 이유로 병사들이 닦고 정돈하지 않아도 자연히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꾸짖고 벌주지 않아도 자연히 한마음이 되며,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히 서로 친애하며, 호령하지 않아도 자연히 따르고 믿는 것이니, 이는 병사들이 사지死地에 있으면 상하上下가 마음을 같이함을 말한 것이다.
장예張預가 말하기를 “구하고 찾지 않아도 병사들의 정의情意를 얻는다.” 하였으니, 옳은지 모르겠다.
요망함을 금지하고 의심스러운 계책을 제거하면, 병사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딴생각이 없게 된다.
原注
요망한 일을 금지하고 의혹스러운 계책을 끊어버리면, 병사들이 비록 죽음에 이르더라도 딴생각이 없게 된다.
혹 병사들이 기필코 싸우려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또한 요망한 말을 가탁하여 병사들을 부리는 경우가 있으니, 예컨대 전단田單이 한 병졸을 신사神師로 만들어서 나라를 격파한 것이 이것이다.
우리 병사들이 남긴 재물이 없는 것은 재물을 싫어해서가 아니요, 남긴 목숨이 없는 것은 장수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原注
우리 병사들이 남긴 재물이 없는 것은 재화財貨를 싫어해서가 아니요 이것을 불태우고 버려서 돌아보고 연연해하는 마음이 없음을 이른 것이며, 남긴 목숨이 없음은 장수를 싫어해서가 아니요 목숨을 버리고 바쳐서 구차히 살려는 근심이 없는 것이니, 이는 모두 부득이한 것이다.
출전 명령이 내리는 날에 병사들 중에 〈출전하지 못하고〉 앉아 있는 자들은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병으로 누워있는 자들은 눈물이 흘러 턱으로 내려가게 하여야 하니, 병력을 투입하여 갈 곳이 없게 만들면, 이것은 전제專諸조말曹沫의 용맹인 것이다.
原注
장차 전투하려는 날에 반드시 먼저 명령을 내리니, 병사들이 전투하는 약속(규정)을 듣고는 결사적으로 싸우고자 하여, 〈출전하지 못하고〉 앉아있는 자들은 눈물을 떨구어 옷깃을 적시고 병으로 누워있는 자들은 눈물이 턱까지 흘러내리는 것이다.
는 턱이다.
병사들이 서로 필사적으로 싸울 것을 기약하기 때문에 모두 슬픈 감회를 품고 죽을 땅으로 투입되어 갈 곳이 없으므로, 향하는 곳에 모두 전제專諸조말曹沫의 용맹이 있게 되는 것이다.
전제專諸나라 공자公子 오왕吳王 를 찔러 죽이게 한 자이다.
’자는 마땅히 ‘’자가 되어야 하니, 조말曹沫은 용력으로 장공莊公을 섬겨서 비수匕首를 잡고 환공桓公을 위협한 자이니, 조귀曹劌로 말하면 바로 지혜로운 선비요 용사勇士가 아니다.
그러므로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비유하건대 솔연率然과 같이 하니, 솔연이란 상산常山의 뱀이다.
그의 머리를 치면 꼬리가 이르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이르고, 중간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이른다.
常山蛇首尾相救圖常山蛇首尾相救圖
常山蛇陣圖常山蛇陣圖
原注
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자는 비유하건대 솔연率然의 형세와 같이 한다.
은 빠르다는 뜻이니, 공격을 만나면 신속히 서로 대응함을 말한 것이다.
옛날에 제갈량諸葛亮어복포魚腹浦의 평평한 모래 위에 돌을 쌓아 무늬를 만들어서 을 모두 여덟으로 만들었는데, 나라 환온桓溫이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상산常山에 있는 뱀의 형세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구군九軍진법陣法이다.
그러므로 솔연率然이라는 것은 상산의 뱀과 같아 그 꼬리를 치면 머리가 응하고 머리를 치면 꼬리가 응하고 중앙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응하니, 이른바 ‘네 머리와 여덟 꼬리가 닿는 곳마다 머리가 된다.
적이 그 중앙을 충돌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구원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감히 묻겠습니다. “군대를 솔연率然이라는 뱀과 같게 할 수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가능하니, 나라 사람은 나라 사람과 서로 미워하나 한 배를 타고 물을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서로 구원함이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구원해주듯이 한다.”
原注
손자孫子가 또 혹자의 질문을 가설하여 말하기를 “우리의 병사들을 솔연의 형세와 같이 할 수 있습니까?” 하자, 대답하였다.
“가능하다.
나라 사람과 나라 사람은 대대로 원수가 되어서 서로 미워하는 자들이지만, 한 배를 타고 물을 건너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면, 환란에 서로 구원하는 것을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구원하는 것과 같이 하니, 더구나 원수가 아닌 사람이 함께 사지死地에 빠지면 어찌 솔연의 형세가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응하는 것처럼 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말을 묶어놓고 수레바퀴를 땅속에 묻어두더라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原注
윗글을 이어 말하기를 “이 때문에 비록 말을 묶어놓고 수레바퀴를 땅속에 묻어두더라도 의지하고 믿을 것이 못 되며, 병사들로 하여금 한마음이 되고 힘을 합하게 하여야 승리할 수 있으니, 반드시 병사들을 사지死地로 투입하여 갈 곳이 없게 한 뒤에야 솔연率然의 몸이 서로 응하는 것처럼 할 수 있다.” 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자는 ‘’자의 오자이니, 말을 풀어놓아 보내고 수레바퀴를 땅속에 묻어놓아서 멍에를 말에 채울 수 없고 수
레를 바퀴로 달릴 수 없게 하더라도 병사들이 오히려 달아나고 도망하며 흩어지고 어지러워 한결같지 못하니,
이는 말을 풀어놓아 보내고 수레바퀴를 땅속에 묻어놓는 것이, 믿고 흩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가지런함과 용맹함을 하나로 하는 것이 군정軍政이고
原注
힘의 가지런함과 기운의 용맹함이 만 명이 똑같이 만듦은 군정軍政에 있어서 그 를 얻은 것이다.
한 자와 유약柔弱한 자가 모두 쓰임을 얻는 것은 땅의 이치이다.
原注
한 자와 유약柔弱한 자가 모두 그 쓰임을 얻는 것은 지세地勢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니, 병사들을 사지死地에 빠뜨리기 때문에 한 자와 유약柔弱한 자가 모두 그 쓰임을 얻음을 말한 것이다.
강유剛柔강약强弱과 같으니, 조공曹公(曹操)이 “강약强弱이 한 형세이다.”라고 말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가 한 사람의 손을 잡아서 부리는 것과 같이 함은 부득이하게 하기 때문이다.
原注
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자는 삼군三軍의 무리로 하여금 한 사람의 손을 잡아서 부리는 것과 같이 하니, 이는 바로 장병들을 사지에 빠뜨려서 부득이하게 하기 때문이다.
장군將軍의 일은 고요하고 그윽하며 공정하고 다스려져야 한다.
原注
장군將軍의 일은 안정되고 그윽하고 깊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측량하지 못하게 하고 공정하고 정돈되게 다스려서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범하지 못하게 함에 달린 것이다.
병사들의 귀와 눈을 어리석게 만들어서 알지 못하게 하며,
原注
병사들의 귀와 눈을 어리석게 만들어서 아는 바가 없고 오직 내(장수)가 지휘하는 바와 가리키는 바를 따르게 하여야 하니, 바로 이른바 ‘백성들로 하여금 따르게만 하고 알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신韓信나라를 격파하고 이소李愬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을 적에, 처음에 병사들이 어찌 그것을 알았겠는가.
그 일을 바꾸고 그 계책을 바꾸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며,
原注
장수가 자신이 하는 바의 일을 바꾸고 자신이 낸 계책을 변경하여서, 사람(병사)들로 하여금 자신이 생각하는 단서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경엄耿弇이 명령하여 공격하는 도구를 다스리게 하되, 5일에 서안西安을 공격하기로 약속하였다가 기약한 날짜의 한밤중이 되자, 여러 군대에게 명하여 임치臨淄를 습격하게 하여 점령하였고, 배행검裴行儉이 진영을 마련한 뒤에 갑자기 병사들로 하여금 높은 언덕으로 옮겨가게 하였으니, 처음에 사람들이 모두 이것을 알지 못하였다.
주둔하는 지역을 바꾸고 길을 우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수 없게 하여야 한다.
原注
주둔하는 지역을 바꾸어 혹은 험한 곳을 버리고 평탄한 곳으로 나아가며, 혹은 편안한 곳을 버리고 위태로운 곳으로 따르게 하며, 경유하는 길을 우회하여 가까운 길을 버리고 먼 곳으로 나아가며, 혹은 평지를 버리고 좁은 길로 나아가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장수 자신이 생각하던 바의 계책을 알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예컨대 한신韓信이 1만 명의 병력으로 나가 배수진背水陣을 치게 하자 나라 병사들이 모두 비웃었고, 등애鄧艾음평陰平으로 달려갈 적에 사람들의 마음이 기뻐하지 않았으니, 처음에 사람들이 어찌 자신(장수)의 생각을 알 수 있었겠는가.
장수가 병사들과 기약하기를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하고 사다리를 제거하듯이 하고, 장수가 병사들과 함께 제후諸侯의 땅에 깊이 쳐들어가되 기지機智를 발동하여야 한다.
原注
장수가 병사들과 약속하기를 몇 길의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하고 아래에 있는 사다리를 제거해서 병사들로 하여금 후퇴하지 못하게 하고, 장수가 병사들과 함께 제후의 땅에 깊이 들어가되, 기지機智를 내어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여야 하니, 예컨대 항우項羽가 배를 침몰시키고 밥을 짓는 시루를 깨뜨렸으며, 손빈孫臏이 나무를 깎아 글씨를 써놓고 군대를 매복시킨 것이 이것이다.
여러 양떼를 몰듯이 하여 몰고 가고 몰고 와서, 가는 곳을 알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原注
비유하건대 목동牧童이 여러 양떼를 몰듯이 하여, 몰고 가고 몰고 옴에 양들이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삼군三軍의 무리를 장수가 북을 쳐서 전진하게 하면 전진하고, 깃발을 휘둘러 후퇴하게 하면 후퇴하여, 삼군의 무리가 모두 내(장수)가 적을 공격하고 성읍城邑을 점령하여 승리하는 단서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삼군三軍의 무리를 모아서 위험한 곳으로 투입하니, 이는 장군의 일이다.
原注
우리 삼군의 병력을 모아서 위험한 땅으로 투입하여 승리를 쟁취하니, 이는 장군의 일이다.
장수는 구지九地의 변통과 굴신屈伸의 이익과 인정人情의 이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原注
구지九地를 만나 주둔함에 임기응변臨機應變하여 변통하는 법이 있으니, 한 가지에 구속되고 빠져서는 안 되며, 굽힐 수 있으면 굽히고 펼 수 있으면 펴서 마땅히 그 이로운 바를 살펴야 한다.
인정人情은 매우 위험한 곳에 빠지면 두려워하지 않고, 갈 곳이 없으면 전투할 마음이 견고해지고, 적지에 깊이 들어가면 구속되고, 부득이하면 필사적으로 싸운다.
이는 모두 떳떳한 이치이니,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무릇 이 되어 싸우는 방도는 적지에 깊이 들어가면 병사들의 마음이 전일해지고, 얕게 들어가면 마음이 흩어진다.
原注
무릇 객이 되어 싸우는 방도는 적지에 깊이 들어가면 병사들의 마음과 뜻이 전일해지고, 얕게 들어가면 병사들의 마음과 뜻이 산만해진다.
이 이하는 구지九地의 변통을 가지고 객이 된 방도를 거듭 말하였다.
국도國都를 떠나 적의 국경을 넘어 군대를 운용하는 것은 끊긴 땅이요,
原注
자기의 국도國都를 떠나 남의 국경을 지나가서 군대를 운용하는 것은 위태롭고 끊긴 땅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자신의 국도를 떠나고 자신의 국경을 넘어가서 처음 적의 땅에 들어갔으면, 지나가는 곳의 관문關門교량橋梁과 나루터와 요해처에 우리의 후미에 있는 군대로 하여금 소식을 전하는 것을 그치고 편지를 소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병사들이 안을 돌아보는 을 금하여서 그 돌아가고 도망하려는 마음을 중지하는 것이다.
사마법司馬法》에 이르기를 “서신書信친족親族의 왕래를 끊는다.” 하였으니 이는 돌아보는 생각을 끊음을 이르고, 《울료자尉繚子》에 “집으로 돌아가는 자가 있으면 주벌誅罰한다.” 하였으니 이는 땅을 끊음을 이른다.
그러므로 절지絶地구지九地의 대열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라고 하니, 옳은지는 모르겠다.
사방으로 통하는 곳은 구지衢地이고, 깊숙이 들어간 것은 중지重地이고, 얕게 들어간 것은 경지輕地이고, 뒤에 산이 있고 앞이 좁은 것은 위지圍地이고, 갈 곳이 없는 것은 사지死地이다.
原注
사면이 이웃 나라와 통달할 수 있는 것은 구지衢地이고, 남의 땅에 깊이 들어간 것은 중지重地이고, 남의 땅에 얕게 들어간 것은 경지輕地이고, 앞은 좁고 뒤는 험하여 남에게 제재를 받는 것은 위지圍地이고, 좌우左右전후前後에 모두 갈 곳이 없는 것은 사지死地이다.
이는 객이 되어 싸우는 방도를 오로지 말하였다.
그러므로 구지九地 가운데에 구지衢地중지重地경지輕地위지圍地사지死地 다섯 가지만을 도출하여 밝힌 것이다.
두목杜牧장예張預가 “구지九地에 다만 다섯 가지의 일을 말한 것은 그 대략을 든 것이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이 때문에 산지散地에서는 내가 장차 병사들의 마음을 통일시켜야 하고,
原注
산지散地에서는〉 지키면 마음이 전일해지고 싸우면 흩어지기 쉽다.
그러므로 산지散地에서는 내(장수)가 마땅히 병사들을 모으고 곡식을 저축하여 한마음으로 굳게 지키고, 험한 곳에 의지하고 매복을 설치하여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을 공격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아래는 또 구지九地를 가지고 주인과 의 방도를 통론하였다.
경지輕地에서는 내가 장차 병사들로 하여금 연속되게 하여야 하고,
原注
적의 땅에 들어간 것이 깊지 않으면 병사들의 마음이 통일되지 못하니, 내가 마땅히 진영을 빽빽이 진열하고 부대를 조밀하게 배치해서 연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해서, 한편으로는 병사들의 달아남을 방지하고 한편으로는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을 대비하는 것이다.
쟁지爭地에서는 내가 장차 그 뒤로 달려가고,
原注
험하고 막혀서 반드시 다투어야 할 쟁지爭地에서는 내가 마땅히 빨리 그 뒤로 달려가서 머리와 꼬리가 함께 이르게 하여야 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는 바로 앞에서 말한 남보다 뒤늦게 출발하여 남보다 먼저 도착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교지交地에서는 내가 장차 수비를 철저히 하고,
原注
왕래하여 교통하는 교지交地에서는 도로를 차단해서는 안 되고, 내가 마땅히 성벽을 엄격히 통제하고 삼가 지켜서 적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매복을 설치하여 공격하여야 한다.
구지衢地에서는 내가 장차 외국과의 결속을 견고히 하여야 하고,
原注
땅이 이웃 나라 제후와 통하면 내가 장차 먼저 많은 폐백을 가지고 이웃 나라와 굳게 결속해야 한다.
중지重地에서는 내가 장차 군량軍糧을 계속하여야 하고,
原注
중지重地에 깊이 들어가면 내가 장차 풍요로운 들에서 노략질하여 양식을 계속 조달해서 궁핍하지 않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비지圮地에서는 내가 장차 그 길에서 빨리 진출하여야 하고,
原注
무너져서 행군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내가 장차 그 길에서 빨리 진출하여 지체함이 없어야 한다.
위지圍地에서는 내가 장차 그 빈 곳을 막아야 하고,
原注
위지圍地에 있을 때에 적이 살 길을 열어주어 우리를 유인하거든 우리가 스스로 막아서 병사들의 마음을 통일시켜야 한다.
이주조爾朱兆 등이 20만의 병력으로 북제北齊 신무제神武帝고릉산高陵山에서 포위했을 적에 신무제는 말이 겨우 2천 필이었고 보병이 채 3만 명이 못 되었다.
이주조爾朱兆 등이 포위하였으나 완전히 포위하지 않자, 신무제가 소와 당나귀를 연결하여 스스로 탈출할 길을 막으니, 이에 장병들이 결사적으로 싸워서 사면으로 분격奮擊하여 이주조 등을 대파한 것이 이것이다.
사지死地에서는 내가 장차 병사들에게 살지 못할 것을 보여야 한다.
原注
이미 사지死地에 있으면 내가 장차 병사들에게 반드시 죽을 것임을 보여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분발하여 살기를 구하게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군대의 정상情狀이, 포위되면 적을 막고, 부득이하면 싸우고, 위험이 심하면 장수의 계책을 따르는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군대의 정상情狀이 포위된 땅에 있으면 사람마다 적을 막아 승리하려는 마음이 있게 되고, 형세가 부득이하면 사람마다 힘을 내어 용감히 싸우려는 생각이 있게 되고, 위태롭고 어려운 지역에 깊이 빠지면 사람마다 장수의 계책을 따르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적군이 우리를 지나가면 뒤를 따라 공격하여야 하니, ‘패배하는 적을 따르되 쉬지 말라.’ 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라고 한다.
이 때문에 제후諸侯의 계책을 알지 못하는 자는 미리 사귀지 못하고, 산림山林과 험하고 막힘과 못과 늪의 지형을 알지 못하는 자는 군대를 출동하지 못하고, 향도鄕道를 사용하지 않는 자는 지리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原注
산림山林험조險阻, 저택沮澤에 대한〉 해석이 〈군쟁軍爭〉篇에 보인다.
이는 이 세 가지를 안 뒤에야 구지九地의 이로움을 살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原注
형양滎陽 정우현鄭友賢이 말하였다.
“이 세 가지 법은 모두 군대를 출동하여 이익을 다투면서, 출몰하고 왕래하며 더디고 빠르고 먼저 하고 뒤에 하는 방법이다.
군쟁軍爭’의 법은 우회함을 변하여 곧음을 만들고 뒤늦게 출발하여 먼저 도착하는 것이 급함을 오로지 말하였고, ‘구지九地’의 변통은 적지에 깊숙이 들어감이 이롭고 해로움의 큼이 됨을 극진히 말하였다.
이 세 가지 법이 아니면 어떻게 조처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회와 곧음의 변통을 다투고 험하게 막힌 땅을 뛰어넘고, 적의 국경을 밟고 알지 못하는 길을 갈 적에 그 지방 사람 중에 길(지리)에 익숙한 자를 사용하여 선도로 삼지 않으면, 출동함에 반드시 혼미하고 조처함에 반드시 곤궁하니, 우회와 곧음의 좋음을 다투고 깊숙이 들어가는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나, 어찌 그 편리함을 얻겠는가.
군쟁軍爭’과 ‘구지九地’에서 거듭 이것을 말하였으니,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네 가지와 다섯 가지 중에 하나도 알지 못하면 패자覇者왕자王者의 군대가 아니다.
原注
네 가지와 다섯 가지는 구지九地를 이른다.
구지九地의 이롭고 해로운 것 중에 한 가지라도 알지 못함이 있으면 패자覇者왕자王者의 군대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는 우두머리니 천하 제후의 우두머리가 됨을 말하고, 은 〈사람들이 귀의하여〉 감이니 천하 사람들의 귀결처가 됨을 말한 것이다.
패자覇者왕자王者의 군대는 큰 나라를 정벌하면 적의 무리가 모일 수 없고, 위엄을 적에게 가하면 적의 사귐(외교)이 합할 수 없는 것이다.
原注
패자覇者왕자王者의 군대는 세력이 강성해서 큰 나라를 정벌하면 적의 병력이 모일 수 없으니, 예컨대 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자 여러 오랑캐들이 모두 흩어졌고, 나라가 (殷)나라를 정벌하자 나라의 앞에 있던 부대들이 창을 거꾸로 돌려서 자기 병사들의 후미를 공격한 것이 이것이다.
위엄을 적에게 가하면 적의 사귐이 서로 합할 수 없으니, 예컨대 나라 사람들이 나라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나라를 배반하였고, 큰 나라가 그 힘을 두려워하여 나라로 돌아온 것이 이것이다.
이 때문에 천하의 사귐을 다투지 못하게 하고 천하의 권세를 기르지 못하게 하고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펴서 위엄을 적에게 가한다.
그러므로 그 성을 함락할 수 있고, 그 나라를 격파할 수 있는 것이다.
原注
이는 윗글을 이어 말하기를 “적의 무리(병사)가 이미 모일 수 없고 사귐이 이미 합할 수가 없거든, 내가 마땅히 적의 사귐을 끊고 적의 권세를 빼앗고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펴 위엄을 적국에게 가한다.
그러므로 그 성을 함락시킬 수 있고 그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장예張預가 말하기를 “사귐과 지원을 다투지 못하게 하면 형세가 외로워 도와주는 이가 적고, 권력을 기르지 못하게 하면 사람들이 이반하여 나라가 약해지니,
자기 한 사람의 사사로운 분노를 펴서 군대의 위엄을 적국에게 가하면 끝내 적국이 패망하게 된다.” 하였으니, 그 말이 또한 통한다.
예컨대 오왕吳王 부차夫差나라를 회계會稽에서 격파하고 나라를 애릉艾陵에서 패퇴시키고 나라와 나라에 원한을 맺고 패권을 황지黃池에서 다투었는데, 월왕越王 구천句踐나라를 정벌하자 부차夫差나라와 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나라는 백성들이 피폐하고 병기가 둔해져서 나라에게 멸망을 당한 것이 이것이다.
에 없는 을 시행하고, 정사政事가 없는 명령命令을 매달아놓아야 한다.
原注
법에 없는 을 시행한다는 것은 일정한 법에 구애되지 않음을 이르니, 바로 이른바 ‘법 밖의 상’이라는 것이요, 정사政事가 없는 명령을 매달아놓는다는 것은 일정한 정사를 고집하지 않음을 이르니, 바로 이른바 ‘정사 밖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原注
정우현鄭友賢이 말하였다.
“일정한 은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 수가 없고, 일정한 정사政事명령命令은 사람들을 의혹하게 만들 수가 없다.
상은 때로 일반 규칙을 구애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명령은 때로 일정함을 고집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장군의 권변權變이다.
전진하면 중한 상이 있고 공이 있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는 것은, 상을 주는 일정한 법이다.
그런데 오자吳子가 적을 시험할 적에 패한 자에게도 상을 내렸고, 마륭馬隆이 병사들을 모집할 적에 싸우기 전에 먼저 상을 내렸으니, 이는 법에 없는 상인 것이다.
〈정사와 명령을 내릴 적에〉 보다 3일을 먼저 하고 보다 3일을 뒤에 하며,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 거듭함은 정사와 명령의 일정함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양떼를 몰듯이 하여 갈 곳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소李愬오원제吳元濟를 습격할 적에 처음 출동할 때 사람들이 향할 곳을 묻자, 이소李愬는 ‘동쪽 60리 지점에 주둔한다.’라고 대답하였는데, 장시촌張柴村에 이르러 여러 장수들이 주둔할 곳을 묻자, 이소李愬는 ‘곧장 채주성蔡州城으로 쳐들어간다.’ 하였으니, 이것이 정사가 없는 명령인 것이다.” 하였다.
삼군三軍의 무리를 범하되 한 사람을 부리듯이 하여야 하니,
原注
은 일로써 요구하여 범함을 이르니, 삼군三軍의 무리를 범하되 한 사람을 부리는 것과 같이 한다는 것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을 하여 많은 사람 쓰기를 적은 사람 쓰는 것처럼 함을 말한 것이다.
일로써 범할 적에 처음에 계책한 말을 일러주지 말며,
原注
전투하는 일을 요구하여 범할 적에 처음에 계책한 말을 일러주지 말아야 하니, 사람들이 계책을 알면 의심한다.
이익利益으로써 범할 적에 병사들에게 해로움을 말해주지 말아야 한다.
原注
마땅히 취하여야 할 이로움을 범할 적에 이 가운데 해로운 것이 있음을 말해주지 말아야 하니, 사람들이 해로움을 알면 피한다.
병사들을 망할 땅에 투입한 뒤에야 생존하고, 죽을 땅에 빠뜨린 뒤에야 살아난다.
原注
병사들을 망할 땅에 투입한 뒤에야 사람(장병)들이 각자 강력히 싸워서 생존함을 얻고, 병사들을 죽을 땅에 빠뜨린 뒤에야 사람들이 각자 용맹을 떨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항우項羽가 배를 침몰시키고 밥을 짓는 시루를 깨뜨려서 반드시 죽을 것을 보이자, 병사 한 명이 적군 백 명을 당하지 않는 자가 없어서 마침내 나라 장수를 사로잡았으며, 한신韓信이 1만 명의 병력으로 하여금 나아가 배수진背水陣을 치게 하고, 거짓으로 장군의 깃발과 북을 버리고 물가에 주둔해 있는 군대로 달려가자, 물가에 주둔해 있던 장병들이 결사적으로 싸워서 마침내 나라 군대를 격파하였으니, 모두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병사들은 해로운 곳에 빠진 뒤에야 승리하여 적을 패퇴시킬 수 있는 것이다.
原注
삼군三軍의 무리가 환해患害의 땅에 빠진 뒤에야 우리의 승리를 만들어, 적을 패퇴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를 출동하는 일은 적의 뜻을 순종하여 자세히 살핌에 달린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군대를 출동하는 일은 적의 뜻을 순종하고 자세히 살핌에 달렸으니, 적이 전진하고자 하면 유인하여 나오게 하고, 적이 후퇴하고자 하면 느슨히 풀어주어 후퇴하게 하며, 강함으로써 우리를 능멸하거든 우리가 우선 겁냄을 보여주어 교만하게 만들어, 그 뜻을 받들고 순종하면서 계책을 써서 취하여야 하니, 예컨대 동호東胡가 천리마를 묵특冒頓에게 요구하자 묵특이 이것을 주었고, 또 연지閼氏를 요청하자 묵특이 또한 연지를 주었다.
이에 동호東胡가 교만에 빠져 대비하지 않으므로 묵특이 마침내 동호를 멸망시켰다.
일본一本에는 ‘’자가 ‘’자로 되어있으니, 한신韓信이 거짓으로 대장의 깃발과 북을 버리고 도망하자 나라 군대가 추격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힘을 합하여 전일專一하게 향해서 천 리를 달려가 적장을 죽이니, 이것을 일러 ‘공교로워 능히 일을 이룬다.’라고 하는 것이다.
原注
적의 뜻에 순종함은 아직 적의 틈을 보지 못한 경우이다.
만약 적에게 공격할 만한 형세가 있는 틈을 보았으면, 힘을 합하여 전일하게 적에게 향해서 비록 천 리 멀리 있더라도 또한 적의 군대를 전복하고 적장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순종하고 끝에는 죽이니, 이것이 이른바 ‘공교로움으로써 능히 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정軍政을 거행하는 날에 관문關門을 없애고 부신符信을 꺾어버려서 적의 사자使者가 왕래하지 못하게 하고,
原注
국가에서 군대의 정사를 처음 거행하는 날에 관문關門교량橋梁을 막고 부신符信을 부수고 꺾어서 사자使者가 통래할 수 없게 하여야 하니, 이는 지모와 재능이 있는 선비로서 장맹담張孟談누경婁敬과 같은 무리가 은미함을 보고 드러남을 알아서 우리의 기밀을 누설하고 우리의 허실을 헤아릴까 염려해서이다.
또한 적의 사자가 통래하여 도리어 우리에게 이로움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 예컨대 첩보를 수집하는 나라의 사신이 나라에 들어오자 조사趙奢가 잘 대접하여 보낸 것이 이것이다.
병법兵法은 일정한 법이 있고 변화하는 법이 있으니, 한 가지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낭묘廊廟(朝廷)의 위에서 엄격히 통제하여 그 일을 성공시키고,
原注
군주와 신하가 낭묘廊廟의 위에서 엄격히 하고 힘을 써서 책임지고 그 일이 성공하도록 해야 하니, 계책이 밖으로 누설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적들이 성문을 열고 닫을 적에 반드시 빨리 쳐들어가야 한다.
原注
적들이 혹 성문을 열고 혹 닫아서 출입이 무상無常하여 진퇴進退를 결정짓지 않았으면, 마땅히 신속히 들어가야 한다.
적이 아끼는 곳을 먼저 빼앗되 더불어 기약하지 말고,
原注
적이 돌아보고 아끼고 의지하고 믿는 곳을 먼저 빼앗되 더불어 기약하지 말아야 하니, 적이 아끼는 것은 혹은 군량軍糧 혹은 편리한 지역이 모두 이것이다.
일설一說에 “‘미여지기微與之期’는 은미하게 그 뜻을 노출시켜 더불어 서로 기약해서 적이 달려오고자 하면 우리가 마침내 뒤늦게 출발하고 먼저 도착하는 것이니, 적으로 하여금 먼저 달려오게 하는 것은 우리가 먼저 가면 적이 오지 않을까 염려해서이다.”라고 하였다.
법도法度를 실천하고 적을 따라 전투하는 일을 결정하여야 한다.
原注
승묵繩墨(먹줄)이니, 법도의 기구이다.
법도를 실천하고 적의 변화에 따라서 형세가 일정함이 없어야 비로소 결전決戰하여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니, 법도를 실천하고 적의 변화에 따름은 망령되이 출동하지 않음을 이른다.
이 때문에 처음엔 처녀와 같이 행동하여, 적들이 문을 열어놓거든 뒤에는 그물을 빠져나가는 토끼와 같이 하여 적이 미처 막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原注
이 때문에 처음에는 규문閨門 안에 있는 처녀와 같이 행동하여 그 약함을 보여주어서 적으로 하여금 공격할 수 있는 문호門戶를 열어놓게 하고, 뒤에는 그물을 빠져나가는 토끼와 같이 행동하여 그 형세를 신속히 해서 적으로 하여금 미처 대비하여 우리를 막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단田單즉묵卽墨을 지킬 적에 꼬리에 불을 붙인 소의 형세를 타서 기겁騎劫을 격파하고 나라의 70여 성읍을 회복한 것이 이것이다.


역주
역주1 : 구
역주2 : 비
역주3 鄭人軍於郊……爲楚所敗 : 明末淸初 때 학자 朱鶴齡(1606~1683)이 지은 《讀左日鈔》에 의하면 “鄭人은 ‘鄖人’의 誤記이다.” 하였다.
《春秋左氏傳》 桓公 11년에 “鄖나라 사람들이 蒲騷에 주둔하고 隋ㆍ絞ㆍ州ㆍ蓼 네 邑과 연합하여 楚軍을 공격하려 하니, 莫敖로 있던 屈瑕가 이를 염려하자, 鬪廉이 말하기를 ‘鄖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 근교에 주둔하였으므로 반드시 경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날마다 네 邑의 군대가 오기를 바랄 것이니, 君께서는 郊郢에 주둔해서 네 邑의 군대를 막으십시오. 저는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가서 밤에 鄖나라를 공격하겠습니다. 鄖나라는 네 읍의 군대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고 또 그 城이 가까이 있음을 믿고서 싸우려는 뜻이 없을 것이니, 만약 鄖나라의 군대를 패배시킨다면 네 읍의 군대도 반드시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계책을 따라 鄖나라 군대를 蒲騷에서 격파하였다”라고 보인다.
역주4 成臯之險……坐困建德十萬之衆 : 成臯는 河南省에 있는 地名으로 지형이 험고하여 전략적으로 요충지였다. 唐 太宗이 隋나라 말기 鄭王 王世充을 토벌할 적에 夏王 竇建德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합세하여 저항하니, 諸將들은 모두 “잠시 退軍하여 적의 형세를 관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薛收는 건의하기를 “지금 군대를 나누어 진영을 굳게 지키고 王世充이 와서 도전하더라도 삼가 출병하지 말아야 합니다. 秦王(唐 太宗)께서 친히 용맹하고 정예로운 병사들을 거느리고 成臯의 험준한 지역을 선점하여 병사들을 훈련시키면서 저들의 피폐한 병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당당한 기세로 맞아 싸우면 한 번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으니, 竇建德은 즉시 격파되고 王世充은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唐 太宗이 이를 받아들여 마침내 竇建德을 사로잡았다. 《舊唐書 권73 薛收列傳》
역주5 : 비
역주6 (心)[地] : 저본의 ‘心’은 明本에 의거하여 ‘地’로 바로잡았다.
역주7 趙奢速發萬人……爭山不得上 : 秦나라가 韓나라의 閼與를 포위 공격하자, 趙나라의 장군 趙奢가 구원병을 이끌고 출동하였는데, 趙奢가 먼저 北山을 점거하여 秦軍을 대파하고 閼與를 구원하였다. 자세한 과정과 戰術은 83쪽 주 1) 참조.
역주8 漢景帝時……果敗 : 이 내용은 《史記》 권106 〈吳王濞列傳〉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9 左右掎(기)角 : ‘掎角’은 犄角으로도 표기하는바, 사슴을 잡을 때 앞쪽에선 뿔을 잡고 뒤쪽에선 다리를 붙잡는 형세로, 전쟁에 앞뒤에서 협공함을 이른다. 《春秋左氏傳》 襄公 14년에 “비유하면 사슴을 잡는데 晉나라 사람은 뿔을 잡고 諸戎은 다리를 잡고서 晉나라 사람과 함께 쓰러뜨리는 것과 같다.”라고 보인다.
역주10 : 기
역주11 古之所謂善用兵者 : 《孫子髓》에 “이 節이 윗장을 잇지 않고 특별히 따로 의논을 세운 것은 어째서인가? 이는 아랫글에 곧바로 死地와 잇지 않고, 여러 가지 주인이 되고 客이 되는 수많은 句語를 가지고 차례로 말하였기 때문에 다만 ‘善用兵’을 가지고 단서를 바꾼 것이다.” 하였다.
역주12 分敵人之勢……不得相恃也 : 《孫子髓》에는 본문의 ‘衆寡不相恃’를 “모이면 흩어질 수 없고 흩어지면 모일 수 없는 것이다.” 하고, 이는 다만 “분산과 합침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只當以分合言]” 하였다.
역주13 楚薄晉兵……終夜有聲 : B.C. 597년 6월, 楚나라 군대와 晉나라 군대가 격전을 벌였는데, 楚軍이 晉軍을 압박하여 戰車와 병사들이 달려오자, 晉나라 장군 荀林父가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中軍과 下軍은 배를 다투어 黃河를 건너가고 上軍은 굳게 지켜 서로 구원하지 못하였다. 황혼 무렵에 이르러 승리한 楚나라 군대가 邲邑에 주둔하였다. 晉나라의 패잔병들은 혼란에 빠져 軍容을 이루지 못하고 밤에 황하를 건너는데, 밤새도록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春秋左氏傳 宣公 12년》
역주14 : 보
역주15 爲客之道……主人不克 : 적지에 깊숙하게 들어가 싸우는 것을 客이라 하고, 자기 지역에서 싸우는 것을 主人이라고 하는바, 자기 지역에서 싸우면 병사들이 도망할 마음을 갖게 되어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역주16 李左車……不可當 : 이 사례는 漢나라의 將軍인 韓信이 張耳와 함께 수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趙나라를 공격할 적에, 廣武君 李左車가 趙王 歇과 成安君 陳餘에게 올린 계책이다. 자세한 내용은 79쪽 주 1) 참조.
역주17 運用吾兵 爲不可測度之計謀 : 《孫子髓》에는 본문의 ‘運兵計謀 爲不可測’을 “자기의 장병들로 하여금 자신(대장)의 계책을 측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使自己士卒 不測吾計]” 하였다.
역주18 王翦伐荊 : 王翦은 戰國時代 秦나라의 장군이고 荊은 楚나라를 이른다. 秦나라 장수 李信과 蒙恬이 20만 명을 거느리고 楚나라를 정벌하다가 楚軍의 역습을 받고 대패하자, 秦始皇은 王翦에게 60만 대군을 주어 楚나라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楚나라에서는 전국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秦軍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王翦은 楚나라 지경에 이르러 堡壘를 굳게 쌓아 진지를 지킬 뿐, 일체 싸우려 하지 않았다. 楚軍이 자주 도전하였으나 끝내 출병하지 않고 매일 병사들을 편히 쉬게 하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넉넉히 보급하였으며 때로는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여 사기를 북돋기도 하였다. 楚軍은 계속하여 도전하였으나 끝내 秦軍이 출병하지 않자 동쪽으로 군대를 철수시키기 시작하였다. 王翦은 비로소 전군을 이끌고 楚軍을 추격하여 대파하였다. 《史記 권73 王翦列傳》
역주19 一說……其義亦通 : 이 경우는 焉을 어조사로 보지 않고 ‘어찌’로 해석하여 ‘死하니 焉不得士人盡力이리오’로 읽어야 한다.
역주20 前說……作一句讀 : 焉을 어조사로 보아 ‘死焉이면 不得士人盡力이리오’로 읽으면 두 구절이 되고, 焉을 부사인 ‘어찌’로 해석하면 한 문장이 되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21 田單以一卒爲神師 而破燕 : 神師는 神明스러운 스승을 가리킨다. 본문의 내용은 齊軍이 卽墨에서 燕軍에 포위되어 농성전을 벌일 적에 齊나라 장수 田單이 쓴 심리전의 일종이다. 자세한 내용은 81쪽 주 3) 참조.
역주22 : 오
역주23 : 오
역주24 : 이
역주25 : 귀
역주26 專諸……使刺吳王僚者 : 專諸는 春秋時代 吳나라의 刺客이고, 公子 光은 뒤에 吳王이 된 闔閭이다. 楚나라에서 吳나라로 망명한 伍子胥(伍員)가 專諸의 賢能함을 알고 이를 吳나라의 公子 光에게 천거하였다. 公子 光은 吳王 餘祭의 아들인데, 吳나라의 王位가 숙부인 夷昧를 거쳐서 그 아들인 僚에게 돌아가자, 자신이 바로 吳나라의 적법한 왕위 계승자라는 생각으로 吳王 僚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吳王 僚가 公子 光의 저택을 방문했을 적에 吳王 僚의 측근 심복들이 긴 칼로 무장하고 삼엄한 경계를 펼쳤으나, 專諸는 대담무쌍하게 생선 요리의 뱃속에 비수를 숨기고 이를 吳王 僚에게 바치다가 비수를 꺼내 吳王을 찔러 죽인 다음, 호위무사들의 공격을 받고 비장하게 최후를 마쳤다. 이에 公子 光이 매복시켜 두었던 甲士들을 내보내어 吳王 僚의 호위무사들을 제압한 후 吳王의 자리에 올랐다. 《史記 권86 刺客列傳》
역주27 劌 當作沫 : 이는 張預의 註를 따른 것이나, 《孫子髓》에는 이를 따르지 않고 본래대로 두었다.
역주28 曹沫……執匕首以劫齊桓公者 : 曹沫은 춘추시대 魯나라 장수로 《春秋左氏傳》에는 曹劇으로 표기되어 있다. 齊 桓公이 즉위한 뒤에 魯나라는 齊나라와 세 번 전쟁하였는데, 魯나라 曹沫이 지휘한 군대가 모두 패하여 적지 않은 영토를 빼앗겼다.
桓公 5년에 다시 싸워 魯나라 군대가 대패하자, 魯 莊公이 마침내 遂邑을 바치는 조건으로 강화를 청하였다. 이에 양국은 柯 땅에서 회맹하였는데, 회맹의 자리에서 曹沫이 비수를 들고 단상으로 올라가 桓公에게 강화의 조건으로 빼앗은 땅을 돌려달라고 위협하자, 桓公은 위협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땅을 돌려줄 것을 허락하였다.
曹沫이 물러가자, 桓公이 노하여 曹沫을 죽이고 회맹을 파기하려 하였으나, 管仲이 말하기를 “曹沫이 위협하자 허락하시고는 신의를 곧바로 저버리고 죽이신다면, 마음은 다소 후련하시겠지만 제후들에게 信義를 얻지 못하여 천하의 협조를 잃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桓公이 管仲의 말을 따라 약속을 지켜 빼앗았던 땅을 돌려주고 맹약을 실천하였다. 《史記 권32 齊太公世家》
柯는 지명으로 지금의 河南省 黃縣의 경내에 있었다.
역주29 諸葛亮……常山蛇勢 : 이 내용은 《晉書》 권98 〈桓溫列傳〉에 그대로 보이며, 《李衛公問對》 上에도 보인다.
역주30 吳人與越人相惡也……其相救也如左右手 : 전국시대 말기에 韓나라와 魏나라가 틈이 벌어져 불화하자, 子順이 韓王에게 말하기를 “吳나라와 越나라 사람은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가다가 중류에서 풍파를 만나면 그 서로 돕고 구원하는 것이 마치 왼손과 바른손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 이는 환란을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韓나라와 魏나라가 만난 환란에 대해 근심하지 않음이 吳나라와 越나라의 뱃사람만도 못합니다.” 하니, 韓王이 좋다고 하였다. 《孔叢子 제15 論勢》
子順은 孔子의 6世孫인 孔斌이다.
역주31 : 배
역주32 可使由之 不可使知之 : 《論語》 〈泰伯〉에 보이는 孔子의 말인데, 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백성들은 윗사람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따르게만 하여야 하고 깊은 뜻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愚民 정책을 써야 한다는 의미인바, 여기서도 이 해석을 따른 것이다. 또 하나는 ‘백성은 도리를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깊은 이치를 다 알게 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程子와 朱子는 뒤의 설을 따랐다.
역주33 韓信破趙 李愬擒吳元濟 : 韓信이 趙나라를 격파할 때의 사례는 79쪽 주 1)에 보인다.
李愬(773〜820)는 唐나라 중엽 德宗ㆍ憲宗 때의 명장이다. 憲宗 元和 10년(815)에 淮西節度使 吳元濟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3년이 지나도록 평정하지 못하였다. 817년 7월, 조정에서는 裴度를 淮西招討使로 삼아 토벌하도록 하였는데, 叛軍은 정예군을 총동원하여 陳許節度使 李光顔을 저지하였다. 이에 李愬는 叛軍의 본거지인 蔡州의 대비가 허약함을 틈타서 이를 급습하려 하였다.
李愬 軍이 처음에 文城柵을 출발할 적에 병사들이 어디로 가는가를 묻자, 李愬는 “동쪽으로 60리 가서 머문다.” 하고는 적의 경내 깊숙이 위치한 張柴砦까지 강행군을 하였다. 李愬는 여기에서 잠시 軍士들을 쉬게 한 다음 군장을 정비하고 다시 출발하였다. 이날은 눈비가 내리면서 세찬 바람이 불어서 말이 추위에 떨어 달리지를 못하였고, 병사들은 추위에 고통을 받아 창을 잡고 얼어 죽은 자가 10분의 2, 3에 달하는데도 빠른 속도로 행군을 계속하여 蔡州城을 기습 점령하고 반군의 괴수 吳元濟를 사로잡아 난이 평정되었다. 《舊唐書 권133 李愬傳》
역주34 耿弇(경감)……取臨淄(치) : 耿弇(3〜58)은 後漢 光武帝 때의 名將이다. 耿弇이 齊나라 張步의 아우 張藍을 패주시키고 臨淄를 점령했던 사건은 174쪽 주 1) 참조.
역주35 耿弇 : 경감
역주36 : 치
역주37 裴行儉……忽使移就崇岡 : 裴行儉(619〜682)은 唐 高宗의 명신이다. 高宗 調露 1년(679)에 突厥의 阿史德溫傅가 반란을 일으켜 都護 蕭嗣業을 패주시키자, 조정에서는 裴行儉을 定襄道行軍大總管으로 임명하여 대군을 이끌고 반군을 토벌하게 하였다. 朔州에 이르러 반군과 싸울 적에 하루는 장병들이 이미 진영을 구축하였는데, 裴行儉이 급히 높은 언덕으로 진영을 옮기라고 명령하였다. 막하의 장수들이 모두 반대하였으나 裴行儉은 물리치고 재촉하여 진영을 옮기도록 하였다.
이날 밤에 폭우가 갑자기 몰려와, 전날에 진영을 설치했던 곳이 모두 한 길이 넘는 깊이로 침수되니, 장병들이 裴行儉의 慧眼에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적들이 黑山에서 항거하여 싸웠으나 裴行儉이 모두 승리하니, 전후에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舊唐書 권84 裴行儉列傳》
역주38 改易其所居之地……使人不曉吾所慮之謀 : 《孫子髓》에는 본문의 ‘易其居 迂其途’를 “그 거처를 바꾸는 것은 경계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요, 그 길을 우회하는 것은 적을 속이기 위한 것이다.[易其居 所以警也 迂其途 所以詭也]” 하였다.
역주39 韓信……而趙軍皆笑 : 韓信이 背水陣을 쳐서 趙나라 군대를 대파한 일은 79쪽 주 1) 참조.
역주40 鄧艾走陰平……而衆心不說 : 景元 4년(263) 魏나라 征西將軍 鄧艾가 陰平에서 景穀의 길을 따라 사람이 없는 땅 700리를 은밀히 행군하여 蜀漢을 기습 공격하였는바, 자세한 내용은 96쪽 주 2) 참조.
역주41 : 수
역주42 項羽沈船破甑 : 秦나라 말기에, 楚 懷王이 宋義로 하여금 秦軍에 포위된 趙나라를 구원하게 하였으나, 宋義는 46일을 지체하고 진격하지 않았다. 이에 項羽는 새벽에 宋義의 막사로 가서 그를 죽이고 자신이 大將軍이 되어 병권을 장악하였다. 項羽는 출전하면서 타고 온 배를 부수고 취사도구인 시루를 깨뜨려 병사들에게 필사의 각오를 보여준 다음, 秦軍과 싸워 이를 대파하고 秦將 王離를 사로잡았다. 《史記 권7 項羽本紀》
역주43 孫臏斫(작)樹伏兵 : B.C. 341년, 孫臏이 齊軍의 軍師가 되어 龐涓이 이끄는 魏軍과 싸울 적에 길이 좁은 馬陵에 弩手를 매복시키고 龐涓을 속여 죽음에 빠뜨린 계책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孫子本傳〉 참조.
역주44 : 작
역주45 司馬法曰 書親絶 : 이 내용은 《司馬法》 〈用衆〉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46 尉繚子曰……誅之 : 이 내용은 《尉繚子》 〈踵軍令〉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47 爾朱兆等……大破兆等 : 爾朱兆(?〜533)는 南北朝時代 北魏의 權臣이고, 神武는 高歡(496〜547)으로 뒤에 아들 高洋이 北齊를 창건하여 神武帝로 추존되었다.
爾朱兆가 孝莊帝를 시해하자 神武帝가 河北에서 義兵을 일으켰다. 爾朱兆가 이를 토벌하고자 爾朱天光 등과 함께 鄴 땅 남쪽에 모였는데, 병력이 모두 20만으로 병사와 戰馬가 정예롭고 강성하였다. 이때 神武帝는 戰馬가 2천 필이 채 못 되고 步卒은 3만 명에 미치지 못하였다. 양군이 韓陵山에서 격돌하였는데 爾朱兆의 大軍이 神武帝를 포위하고 포위망에 빈틈을 보여주어 탈출하게 하였으나, 神武帝는 오히려 圓陣을 만들고 소와 당나귀를 연결하여 스스로 탈출할 길을 막으니, 장병들이 결사적으로 싸워서 사면으로 奮擊하여 爾朱兆의 대군을 대파하였다. 《通典 권160 兵典》
역주48 : 導와 같다.
역주49 : 형
역주50 四五 謂九地也 : 《直解》에는 넷과 다섯을 합하여 九地가 되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孫子髓》에는 “四五는 의심컨대 빠진 글이나 誤字가 있는 듯하니, 억지로 해석할 수 없다.” 하였다.
역주51 楚伐庸 而群蠻皆散 : B.C. 611년, 楚나라에 큰 기근이 들자, 庸나라에서는 여러 오랑캐를 이끌고 楚나라를 배반하였고, 麇나라에서는 百濮을 거느리고 選에 모여 楚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楚나라는 遷都할 것을 의논하였는데, 蔿賈가 이를 반대하고 군대를 거느리고 출병하니, 百濮은 해산하고 돌아갔다. 楚軍은 이에 庸나라로 진군하여 교전하였는데, 楚軍은 일곱 번 거짓으로 패주하여 강성한 庸軍을 교만하게 만든 다음 일거에 공격하여 庸軍을 대파하고 마침내 庸나라를 멸망시켰다. 《春秋左氏傳 文公 12년》
역주52 周伐商 而前徒倒戈 : 周 武王이 殷나라 紂王과 싸울 적에 殷나라의 선두부대가 창을 거꾸로 돌려 후미를 공격하여 살상한 일로, 《書經》 〈周書 武成〉에 “군대가 孟津을 건너가 癸亥日에 商나라 郊에 진을 치고서 하늘의 아름다운 命을 기다렸는데, 甲子日 昧爽에 受가 그 군대를 숲처럼 많이 거느리고 牧野에 모였으나, 그들은 우리 군대에 대적하는 자가 없고, 앞에 있는 무리들이 창을 거꾸로 들어 뒤에서 공격하여 스스로 패해서 피가 흘러 방패가 떠다녀, 한 번 戎衣를 입음에 天下가 크게 안정되었다.”라고 보인다. 昧爽은 새벽 먼동이 틀 무렵이며, 受는 紂王의 이름이다.
역주53 鄭人畏晉威而叛楚 : 春秋時代 鄭나라는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인 晉나라와 楚나라 사이에 끼여 있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여러 번 盟主國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어느 때에는 楚나라의 위엄에 눌려 晉나라를 배반하고 어느 때에는 晉나라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楚나라를 배반하였는바, 여기서 말한 일이 어느 때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역주54 大邦畏其力而歸周 : 殷나라 말기 周 文王이 天命을 받아 나라를 크게 일으키니, 큰 제후국들이 두려워하여 歸附한 일로, 《書經》 〈周書 武成〉에 “우리 文考이신 文王께서 능히 功을 이룩하시어 크게 天命에 응하여 四方의 中夏를 어루만지시니, 큰 나라는 그 힘을 두려워하고 작은 나라는 그 德을 그리워한 지가 9년이었다.”라고 보인다.
역주55 : 伸과 같다.
역주56 隳(휴) : 墮와 같다.
역주57 : 휴
역주58 : 휴
역주59 吳王夫差……爲越所滅 : 春秋時代 B.C. 495년에 吳王 夫差가 정예군을 총동원하여 越나라를 쳐서 夫椒에서 격파하자, 越王 句踐이 會稽에서 吳나라에 항복하여 나라를 바치고 臣妾이 될 것을 간청하니, 夫差가 이를 허락하였다. 吳王 夫差는 覇者가 되고자 하여, B.C. 490년에 景公이 죽은 틈을 타 齊나라를 쳐서 艾陵에서 齊軍을 격파하고, B.C. 483년에 黃池에서 諸侯들을 소집하였는데, 越王 句踐이 이 틈을 타 吳나라를 쳐서 太子를 사로잡고 吳의 수도로 진격하였다.
吳王 夫差는 군대를 이끌고 황급히 귀국하여 越나라와 강화를 맺었으나 6년 뒤인 B.C.477년, 越王 句踐이 또다시 吳나라를 쳐서 이듬해에 수도를 포위하자, 吳王은 齊나라와 楚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그동안 吳나라의 압박에 시달리던 두 나라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고립무원의 궁지에 빠진 吳나라는 마침내 越軍에게 패배하고, 吳王 夫差가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함으로써 吳나라는 마침내 멸망하였다. 《史記 권31 吳太伯世家》, 《史記 권41 越王句踐世家》
역주60 吳子嘗敵……未戰先賞 : 吳子는 吳起를 가리키나, 이 사례는 典據가 확실하지 않다. 馬隆은 西晉 武帝 때의 명장으로 지혜와 용맹이 뛰어나고 명예와 절개를 세우기 좋아하였다. 西晉 武帝 泰始 5년(270), 涼州 지역의 羌族 禿髮樹機能이 배반하여 河西 지역이 단절되자, 자청하여 勇士 3,500명을 모집하여 이들에게 賞金과 벼슬을 내리고 출전하여 마침내 서쪽 지역을 평정하고 武帝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다. 《晉書 권57 馬隆列傳》
역주61 先庚後甲 : 백성들이 새로운 명령을 숙지할 수 있도록 전후로 충분히 알리는 것을 말한다. 《周易》 巽卦 九五 爻辭에 “일을 변경하기에 앞서 3일 동안 알리고, 일을 변경한 뒤에 3일 동안 알린다.[先庚三日 後庚三日]” 하였고, 蠱卦 卦辭에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3일 동안 그 이유를 궁구하고, 일이 시작된 뒤에는 앞일을 3일 동안 생각한다.[先甲三日 後甲三日]”라고 하였다.
역주62 三令五申 :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을 거듭하여 경계한다는 뜻으로, 정사와 명령을 펼 적에 되풀이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거듭 경계해서 숙지시킴을 이른다. 孫武가 吳王 闔閭와 처음 만나, 闔閭의 궁녀들을 훈련시켜 陣法을 시범 보일 적에, 斧鉞을 설치해놓고 軍令에 대해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을 거듭하여 숙지시킨 다음 군령을 어긴 궁녀 두 명을 처벌하여 기강을 세웠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권65 孫子吳起列傳》
역주63 李愬襲元濟……入蔡州 : 이 내용은 311쪽 주 2) 참조.
역주64 項羽沈船破甑……遂虜秦將 : 秦나라 장수는 王離를 이르며, 이 내용은 314쪽 주 1) 참조.
역주65 韓信使萬人背水陣……遂破趙軍 : 이 내용은 79쪽 주 1) 참조.
역주66 夫三軍之衆……能爲我之勝而制敵之敗也 : 《孫子髓》에는 ‘害’를 ‘利害’로 보아, “만약 장수가 이롭고 해로움을 함께 계산하여 장병들에게 자세히 일러주면 누가 기꺼이 모험하고 죽을 곳으로 나아가겠는가.[若幷計利害 告戒諄複 則孰肯冒死就險哉]” 하였다.
역주67 在順詳敵人之意……設計取之 : 《孫子髓》에는 舊註에 順詳의 詳을 ‘자세히 살피는 것’으로 해석한 것을 비판하고, “順은 받들어 순종함이요, 詳은 거짓[佯]이니, 詳과 佯은 古字에 통용되었다. 이는 敵이 우리를 形으로 속이거든, 우리가 겉으로 적의 속임수를 받들어 순종하여 거짓으로 어리석어 속는 것처럼 함을 이른다.[謂敵詐我以形 我外示將順 佯若被愚]” 하였다.
역주68 東胡求千里馬於冒頓 : 묵특
역주69 又求閼氏 : 연지
역주70 東胡求千里馬於冒頓(묵특)……遂滅其國 : 이 내용은 91쪽 주 1) 참조.
역주71 張孟談婁敬 : 張孟談은 春秋時代 말기의 辯士이다. 晉나라의 智伯 瑤가 卿을 세습한 다음 韓氏와 魏氏에게 땅을 떼어달라고 요구하여 뜻대로 되자 趙襄子에게도 땅을 떼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趙襄子가 이를 거절하자 智伯 瑤가 韓氏와 魏氏와 함께 趙襄子를 공격하니 趙襄子는 晉陽으로 도망하였다. 晉陽城의 백성과 병사들은 趙氏를 배반하지 않고 함께 저항하였으나, 水攻을 당하여 성이 침몰될 위기에 처하자, 趙襄子는 辯士 張孟談을 城 밖으로 내보내어 은밀히 韓氏와 魏氏를 만나게 하였다.
張孟談이 “제가 들으니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智氏가 두 분과 함께 우리 趙氏를 공격하고 있으나, 우리 趙氏가 망하면 그다음에는 韓氏와 魏氏가 망할 것입니다.”라고 설득하자, 韓氏와 趙氏가 張孟談과 밀약을 맺고 함께 智伯 瑤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趙襄子는 밤에 은밀히 군대를 내보내어 강물의 제방을 지키고 있는 智伯 瑤의 병사들을 죽이고 물길을 되돌려 智伯 瑤의 군중으로 주입하였다. 智伯 瑤의 진영은 갑자기 밀려드는 물길에 놀라 큰 혼란에 빠졌는데, 이때 趙襄子가 韓氏ㆍ魏氏와 함께 협공하여 智氏를 멸망시켜 버렸다. 《資治通鑑 권1 周紀 河圖篇》
婁敬은 漢 高祖 때의 謀士로 수도를 長安으로 정하는 데 功을 세워 劉氏를 하사받아 劉敬이 되었다. 劉敬은 匈奴에 사신 가서, 匈奴가 스스로를 약하게 보여 漢나라를 방심시키려는 계략을 간파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161쪽 주 3) 참조.
역주72 秦間使入趙 而趙奢善食(사)遣之 : 趙奢가 秦軍에 포위된 韓나라의 閼與를 구원할 때의 일로, 83쪽 주 1) 참조.
역주73 : 사
역주74 嚴厲於廊廟之上 : 《孫子髓》에는 舊註에 勵를 嚴과 惕(두려움, 조심함)으로 해석한 것을 비판하고 “勵는 磨礪(갈고 닦음)이다.” 하였다.
역주75 : 극
역주76 無與之相期也 : 《直解》에는 본문의 微를 無로 訓하여 ‘더불어 서로 기약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孫子髓》에는 “微는 潛(은밀히)이니, 은밀히 가서 시기에 맞추어 달려가는 것이다.[潛往赴機也]” 하고, “劉寅은 ‘더불어 서로 기약하지 않은 것이다.’ 하였는데, 期는 남과 기다려 만난다는 말이다. 이때에 적과 더불어 기약하는가? 우리 士卒들과 기약하는가? 아니면 내응한 기약을 이르는가?”라고 반문하였다.
역주77 田單守卽墨……復齊七十餘城 : 이 내용은 81쪽 주 3) 참조.

손무자직해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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