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孫武子直解

손무자직해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火攻者 用火攻敵也
傷人害物 莫此爲甚하니 乃國家不得已而用者 火攻 又其不得已者也
曰 明主愼之하고 良將警之라하니 孫武子所以後述之也
孫子曰
凡火攻有五하니 一曰火人이요
火兵(火攻을 맡은 병사)火兵(火攻을 맡은 병사)
二曰火積이요
三曰火輜
原注
三曰 用火焚燒其輜重也
輜重者 隨軍衣糧器仗이니 大車所載者也
四曰火庫
原注
四曰 用火焚燒其府庫也
府庫 所以藏貨財珍寶 及軍裝軍器 亦皆有庫收之
焚之者 使殫財乏用하여 國家貧窘하여 兵無供給也
五曰火隊
原注
五曰 用火焚燒其隊伍하여 使亂而因以擊之也
如今人 用火車火箭之類하여 燒亂隊伍 是也
張預曰 焚其隊仗하여 使兵無戰具라하니라
이나 上文 旣曰火輜 則器械亦在其中矣
若曰隊仗이면 人各執在手하니 豈得焚之리오
行火 必有因이요 煙火 必素具니라
原注
行火 必有所因이니하여 營舍, 茅竹, 積芻, 聚糧 逼近草莽 皆可焚之也
煙火 必當素具 謂蒿艾, 荻葦, 薪芻, 膏油, 火槍, 火箭, 火鎌, 火石之類 皆當預備也
發火有時하고 起火有日하니 時者 天之燥也 日者 月在箕壁翼軫也 凡此四 風起之日也
原注
發火必有時하니 時者 天時之燥乾이면 則火易이요 起火必有日하니 日者 月在이니 此四宿者 風之使也
月宿于此 則風起矣
라하니 陰陽家推步纏次 則知所宿之日이라
凡火攻 必因五火之變而應之
原注
凡火攻之法 必因五火有變亂之形이면 則以兵應之
五火 卽上文火人, 火積, 火輜, 火庫, 火隊也
火發於內 則早應之於外니라
原注
火旣發於內 則兵速應於外하여 內外齊攻이면 敵易驚亂이라
火發而其兵靜者 待而勿攻하고
原注
火雖發이나 而兵靜不亂者 敵有預備 且待其變이요 不可遽攻也
極其火力하여 可從而從之하고 不可從則止니라
原注
待盡其火力하여 若敵擾亂하여 可從則從而攻之 若敵終靜而不擾하여 旣有預備 則不可從이니 當收兵而退也
火可發於外어든 無待於內하고 以時發之니라
原注
若遇敵在荒澤草穢하여 安營立柵이어든 火可發之於外 不必待作於內
但有便이면 卽當應時而發이니 若少遲緩이면 恐敵先自燒斷近營草穢 我起火無益也
火發上風하고 無攻下風이니라
原注
火發上風이어든 當從上風攻之 無攻於火之下風이니 風勢逆하여 恐反爲火所焚也
晝風久 夜風止니라
原注
晝風則久 遇夜乃止
張賁云 久字 古從字之誤也 謂白晝遇風而發火 則當以兵從之 遇夜有風而發火 則止而不從이니 恐彼有伏反乘我也
若作久字 甚無意味라하니라
凡軍 必知有五火之變하여 以數守之니라
原注
凡行軍 必要知五火之變하고 不止用以攻人이요 亦當防人攻我也
以火佐攻者하고 以水佐攻者이니
原注
用火助攻이면 燔灼之威炳然이라 曰明이요 用水助攻이면 浩蕩之勢莫敵이라 曰强이라
可以絶이나 不可以奪이니라
原注
杜牧曰 水 可以絶敵糧道하고 絶敵救援하고 絶敵奔逸하고 絶敵衝擊이요 不可以奪敵之險要積蓄也
張預曰 水 止能隔絶敵軍之前後하여 取一時之勝이라
이나 不若火能焚奪敵之蓄積而使之滅亡也
云 水可以絶이요 火可以擊이라
謂水可以隔絶人之軍이니으로 分而爲二하여 因奮擊大敗之하고
火可以焚奪人之物이니 是也
但不字 爲火字之誤耳라하니 其說 與張預義同이라
一說 以水灌我어든 我可以絶之하고
兵法千變萬化 不可執一也라하니라
而不修其功者이니 命曰니라
原注
夫用水火之助하여 戰而勝하고 攻而取者 亦士卒之用命也
若不修擧其有功而賞之하면 亦有凶咎하니
命之曰 費耗留滯 終不能成事也
言水火之助 雖能破軍敗敵이나 亦當賞士卒之用命者
曰 明主慮之하고 良將修之라하니
原注
曰 明哲之主 當謀慮戰攻之事하고 良能之將 當修擧克捷之功이라
非利不動이요 非得不用이요 非危不戰이니라
原注
非我之所利 不可輕易擧動이요 非得彼之勝이면 不可輕易用兵이요 非至危急之勢 不可輕易與戰이니 言不得已而後用也
兵旣不可輕易어든 而用況水與火乎
主不可以怒而興師 將不可以慍而致戰이니라
原注
人主 不可因怒而興三軍之師 將帥 不可乘慍而致戰爭之事
因怒興師 非爲民也하나니 是也
以慍致戰 非爲國也하나니 是也
怒盛於慍이라 以主言하고 慍小於怒 以將言하니 可以言興師 止可以言戰이라
合於利而動하고 不合於利而止니라
原注
合於利而後하고 不合於利則當止 言不可因怒而用兵也
尉繚子曰 兵起 非可忿也
라하니 卽此義也
怒可以復喜 慍可以復悅이나 亡國 不可以復存이요 死者 不可以復生이니라
原注
主因怒而興師 則國必亡하나니 國已亡이면 安得復存乎
將因慍而致戰이면 則兵必死하나니 兵已死 安得復生乎
兵猶如此어든 況用水火而殘人者乎
孫子所以於火攻篇 拳拳而致戒也니라
曰 明主愼之하고 良將警之라하니 安國全軍之道也니라
原注
曰 明哲之主 愼於用兵하나니 安國之道也 良能之將 戒於輕戰하나니 全軍之道也
原注
○ 愚按 水火之用 古人多出於不得已焉耳
三代之前 聖帝明王 安肯用此하여 以漂流焚蕩하여 使生民麋爛하여 靡有遺哉
論者謂 火攻爲孫子之下策이라
이나 自戰國以來 詭詐相尙하여 而用之者多矣
하고 以鷄數百으로 連以長繩하여 繫火於足하여 以燒羌衆하고 하고 後周時 하고 後漢時 하니 此皆以火而取勝者也
但水火之害 酷烈慘毒하니 賢將之所深愼也
孫子曰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하니 以此言之컨대 火攻 但示人不可不知 非專恃此以爲勝也니라


화공火攻이란 불을 사용하여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사람을 상하게 하고 물건을 해치는 것이 이 화공보다 더 심한 것이 없으니, 전쟁은 바로 국가가 부득이하여 사용하는 것이요, 또한 화공은 전쟁에서 부득이한 경우에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삼가고, 훌륭한 장수는 경계한다.” 하였으니, 이는 손무자孫武子가 책의 끝에 이것을 서술한 이유이다.
손자孫子가 말하였다.
무릇 화공火攻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사람을 불태우는 것이요,
原注
손자孫子가 말하였다.
무릇 화공火攻하는 법이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첫 번째는 불을 사용하여 사람을 불태우는 것이다.
예컨대, 육손陸遜이 병사들에게 명하여 각각 한 묶음의 띠풀을 갖게 하여 화공으로 촉한蜀漢의 군대 40여 진영을 함락하고 촉한蜀漢의 장수 장남張南풍습馮習 등을 목 베자 소열황제昭烈皇帝가 도망하였으며, 황개黃蓋가 배에 건조한 갈대와 마른 나무 섶을 싣고 가서 나라 군대를 불태우자 조조曹操가 패하여 달아난 것이 이것이다.
두 번째는 적이 저축해놓은 곳을 불태우는 것이요,
原注
두 번째는 화공火攻을 사용하여 적이 저축해놓은 것을 불태워서 적으로 하여금 꼴과 식량이 부족하게 하는 것이다.
나라가 유가劉賈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백마진白馬津을 건너가서 나라 땅에 들어가 그 저축해놓은 것들을 불태워서 나라의 기업基業을 깨뜨리니 나라 군대가 식량이 궁핍하였으며, 문제文帝고경高熲의 계책을 따라 사람을 보내어 바람결을 따라 불을 놓아서 나라가 저축해놓은 식량과 마초馬草를 불태우니, 나라 사람들이 더욱 피폐한 것이 이것이다.
세 번째는 적의 치중輜重을 불태우는 것이요,
原注
세 번째는 화공火攻을 사용하여 적의 치중輜重을 불태우는 것이다.
치중이란 군대에 수반되는 의복과 식량과 병기와 의장이니, 큰 수레에 싣는 것이다.
예컨대 조조曹操허유許攸의 계책을 따라 원소袁紹치중거輜重車 1만여 대를 불태운 것이 이것이다.
네 번째는 적의 창고를 불태우는 것이요,
原注
네 번째는 화공火攻을 사용하여 적의 부고府庫를 불태우는 것이다.
부고府庫재화財貨와 진귀한 보물을 보관하는 곳이요, 군대의 장비와 병기 또한 모두 창고에 거두어 보관한다.
불태운다는 것은 재물이 고갈되어 재정이 궁핍해서 국가가 가난하고 곤궁하여 군대가 군수물자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적의 대오隊伍를 불태우는 것이다.
原注
다섯 번째는 화공火攻을 사용하여 적의 대오를 불태워서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 틈을 타서 공격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금 사람들이 화거火車와 불화살을 사용하여 적의 대오를 불태워서 혼란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火車火車
火箭火箭
장예張預는 말하기를 “적의 부대의 장비(병기)를 불태워서 적군들로 하여금 전쟁하는 도구를 없게 만드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윗글에 “이미 치중거輜重車를 불태운다.”라고 말하였으면, 병기 또한 그 가운데 들어있는 것이다.
만약 적의 부대의 의장儀仗이라고 말한다면, 사람마다 각각 손에 잡고 있으니, 어떻게 불태울 수 있겠는가.
화공火攻을 행할 적에는 반드시 기회를 인함이 있어야 하고, 불을 놓는 도구를 반드시 평소에 장만해두어야 한다.
原注
화공을 행할 적에는 반드시 기회를 인함이 있어야 하니, 예컨대 날씨가 가물어 건조하며 바람결이 순하고 편리함으로 인하여 적의 군영과 막사, 띠풀과 대나무, 쌓아놓은 꼴과 모아놓은 군량 중에 풀 섶에 가까운 것들을 모두 불태울 수 있음을 이른 것이다.
불을 놓는 도구를 마땅히 평소 마련해두어야 하니, 쑥과 갈대와 나무 섶과 마른 꼴과 기름과 불창과 불화살과 불낫과 화석火石(火砲) 같은 따위를 모두 마땅히 미리 장만해두어야 함을 이른다.
불을 놓는 것이 때가 있고 불을 일으키는 것이 날짜가 있으니, 때는 날씨가 건조한 것이요, 날짜는 달이 기수箕宿벽수壁宿익수翼宿진수軫宿에 있는 것이니, 무릇 이 네 별은 바람이 일어나는 날짜이다.
原注
불을 놓는 것이 반드시 때가 있으니 때라는 것은 날씨가 건조하면 불이 타오르기가 쉬운 것이요, 불을 일으키는 것이 반드시 날짜가 있으니 날짜라는 것은 달이 수표水豹기수箕宿, 수유水貐벽수壁宿, 화사火蛇익수翼宿, 수인水蚓진수軫宿에 있는 날짜이니, 이 네 별은 바람의 사자使者이다.
달이 이 별에 머물면 바람이 일어난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에 이르기를 “별은 바람을 좋아하는 것이 있고 비를 좋아하는 것이 있다.” 하였으니, 음양가陰陽家에서 달과 별자리의 운행을 추측하면 달이 머무르는 날짜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무릇 화공火攻할 적에는 반드시 다섯 가지 불을 놓는 변화에 따라 응하여야 하니,
原注
무릇 화공火攻하는 방법은 반드시 다섯 가지 불을 놓음에 변환하는 형체가 있음을 이용하여야 하니, 군대로써 응하여야 한다.
다섯 가지 불놓는 것은 바로 윗글에 사람을 불태우고, 쌓아놓은 노적을 불태우고, 치중거輜重車를 불태우고, 창고를 불태우고, 대오隊伍를 불태운다는 것이다.
불이 안에서 일어나면 즉시 밖에서 호응하여야 한다.
原注
불이 안에서 일어나면 병사들이 신속히 밖에서 호응하여, 안과 밖에서 일제히 공격하면 적이 놀라고 혼란해지기가 쉽다.
불이 타고 있는데도 적이 조용하면 기다리고 공격하지 말고,
原注
불이 비록 타고 있으나 적군들이 조용하고 어지럽지 않은 것은 적이 미리 대비함이 있는 것이니, 우선 그 변화를 기다릴 것이요 급히 공격해서는 안 된다.
화력火力이 극도로 일어나도록 하고서, 따라서 싸울 만하면 싸우고, 따라서 싸울 만하지 않으면 중지하여야 한다.
原注
화력火力이 극도로 치솟기를 기다려서, 만약 적이 소란하여 따라 공격할 만하면 따라 공격하고, 만약 적이 끝내 조용하고 소란하지 않아 이미 대비함이 있으면 따라 싸워서는 안 되니 마땅히 군대를 거두어 후퇴하여야 한다.
불을 밖에서 일으킬 수 있으면, 굳이 안에서 기다리지 말고 제때에 불을 놓아야 한다.
原注
만약 적이 우거진 늪과 무성한 풀 속에다가 진영을 설치하고 목책을 세웠으면, 불을 밖에서 놓을 수 있고 굳이 안에서 일어나기를 기다릴 것이 없다.
다만 편리한 기회가 있으면 즉시 제때에 불을 놓아야 하니, 만약 조금이라도 지체하여 늦으면 적이 먼저 진영에 가까운 풀더미를 스스로 불태워 차단할까 두려우니, 이렇게 되면 우리가 불을 놓아도 유익함이 없다.
나라 이릉李陵흉노匈奴를 정벌하다가 패전하고 선우單于에게 쫓겨 큰 늪에 이르렀는데, 흉노匈奴가 위에서 바람 부는 것을 틈타 불을 놓자, 이릉李陵 또한 먼저 불을 놓아 갈대숲을 불태워 끊어서, 마침내 불타오르는 형세를 차단하였으며, 황건적黃巾賊장각張角황보숭皇甫嵩장사長社에서 포위하였는데, 적들이 풀에 의지하여 진영을 설치하고 있었다.
황보숭皇甫嵩이 사람을 시켜 몰래 나가서 포위한 밖에서 불을 놓자, 위에서 횃불을 들어 대응하므로, 황보숭이 인하여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적진에 달려가니, 적들이 놀라고 혼란하여 패주한 것이 이것이다.
바람이 부는 위쪽으로 불을 놓아야 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아래쪽으로 불을 놓아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
原注
불이 일어나 바람이 위로 불거든 마땅히 〈낮은 지역에서〉 바람이 부는 위쪽으로 불을 놓아 공격할 것이요, 〈높은 지역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아래쪽으로 불을 놓아 공격하지 말아야 하니, 풍세風勢가 역으로 불어서 도리어 우리 군대가 불에 탈까 염려해서이다.
낮 바람이 오래 불면 밤바람은 그치게 된다.
原注
낮 바람이 오래 불 경우 밤을 만나면 마침내 중지한다.
장분張賁은 이르기를 “‘’자는 옛 ‘인인人人(從)’자의 오자誤字이니, 대낮에 바람을 만나 불을 놓았으면 마땅히 병사를 이끌고 적을 쫓아 싸울 것이요, 밤에 바람이 있어 불을 놓았으면 중지하고 적을 따라가지 말아야 하니, 적에게 복병이 있어 우리의 허점을 틈탈까 두려워해서이다.
바로 윗글에 ‘적을 따라 공격할 만하면 따라 공격하고, 따라 공격할 만하지 않으면 중지하여야 한다.’는 뜻이니, 만약 ‘’자로 보면 매우 의미가 없다.” 하였다.
모든 군대는 반드시 다섯 가지 불의 변화가 있음을 알아서, 도수度數로써 잘 지켜야 한다.
原注
무릇 군대를 출동할 적에는 반드시 다섯 가지 불의 변화를 알고 네 별의 운행하는 도수度數를 추측하여 엄하게 수비하여야 하니, 다만 화공火攻을 사용하여 남을 공격할 뿐만이 아니요 또한 마땅히 남이 우리를 불로 공격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로써 공격을 돕는 것을 이라 하고, 물로써 공격을 돕는 것을 이라 한다.
原注
불을 사용하여 공격을 도우면 불타는 위세가 밝으므로 이라 하고, 물을 사용하여 공격을 도우면 호탕한 형세가 대적할 수 없으므로 이라 하는 것이다.
수공水攻은 적의 길을 끊을 수 있으나, 적의 식량을 빼앗을 수는 없다.
原注
두목杜牧은 말하기를 “수공水攻은 적의 군량 수송로를 끊고 적의 구원을 끊고 적의 도망함을 끊고 적의 공격을 끊을 수는 있지만, 적의 험한 요새지와 저축해놓은 식량과 마초馬草를 빼앗을 수는 없다.” 하였고,
장예張預는 말하기를 “수공水攻은 다만 적군의 앞뒤를 막고 끊어서 한때의 승리를 취할 뿐이다.
그러나 불이 적의 저축해놓은 것을 불태우고 빼앗아서 적을 멸망시키는 것만은 못하다.” 하였다.
장분張賁은 말하기를 “물(水攻)은 적의 길을 끊을 수 있고 불(火攻)은 적을 공격할 수 있다.
물은 적의 군대를 막고 끊을 수 있으니, 한신韓信이 포대에 흙을 담아 물을 막아놓았다가 이것을 터놓자 물이 크게 흘러내려 용저龍且의 군대로 하여금 나누어져 둘이 되게 하고, 인하여 맹공을 가하여 대파하였다.
불은 적의 물건을 불태우고 빼앗을 수 있으니, 예컨대 조공曹公(曹操)이 원소袁紹치중거輜重車를 불태워서 원소가 이로 인해 패망한 것 같은 것이 이것이다.
다만 ‘’자는 ‘’자의 오자誤字이다.” 하였으니, 그 말이 장예와 뜻이 같다.
일설一說에는 “적이 우리 진영에 물을 대거든 우리가 끊을 수 있으니, 예컨대 지백智伯조양자趙襄子진양晉陽에서 포위하고 물을 대자, 조양자趙襄子가 밤중에 제방을 지키는 관리를 죽이고 물을 터놓아 도리어 지백智伯의 군대에 물을 댄 것과 같다.
적이 불을 가지고 우리를 불태우거든 우리가 빼앗을 수 있으니, 선우單于가 불을 놓아 이릉李陵을 큰 늪에서 불태우자, 이릉李陵이 먼저 불을 놓아서 주위의 갈대를 태워버려 불이 일어나는 형세를 빼앗은 것과 같으니,
병법의 천변만화는 한 가지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싸워서 승리하고 공격하여 점령하면서도 공이 있는 자에게 주지 않는 것은 흉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비류費留라 한다.
原注
수공水攻화공火攻의 도움을 사용하여 싸워서 승리하고 공격하여 점령한 것은 또한 병사들이 장수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다.
만약 그 가운데 공로가 있는 자를 들어 을 주지 않으면 또한 흉함이 있다.
이것을 이름하여 ‘재물을 써야 할 것을 아껴서 남겨놓다.[費耗留滯]’라고 하니, 이렇게 하면 끝내 일을 이루지 못한다.
수공水攻화공火攻의 도움으로 비록 적군을 격파하고 적군을 패주시켰으나, 또한 마땅히 장수의 명령을 따른 병졸들에게 상을 주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현명한 군주는 깊이 사려하고, 훌륭한 장수는 닦고 거행한다.” 하였으니,
原注
그러므로 말하기를 “명철한 군주는 전쟁하고 공격하는 일을 모의하고 생각하며, 어질고 유능한 장수는 승리하는 일을 닦고 거행한다.”라고 한 것이다.
이로운 경우가 아니면 거동하지 말고,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용병用兵하지 말고, 위태로운 경우가 아니면 싸우지 말아야 한다.
原注
우리가 이로운 경우가 아니면 가볍게 거동擧動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적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가볍게 용병用兵해서는 안 되고, 지극히 위급한 형세가 아니면 가볍게 적과 싸워서는 안 되니, 부득이한 뒤에 싸워야 함을 말한 것이다.
군대도 이미 가볍게 쓸 수 없는데, 하물며 수공水攻화공火攻을 사용함에 있어서랴.
군주君主는 노여움 때문에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將帥는 서운함 때문에 싸워서는 안 된다.
原注
군주는 노여움으로 인하여 삼군三軍의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는 서운한 감정으로 인하여 전쟁하는 일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노여움으로 인하여 군대를 일으킴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망하니, 예컨대 식후息侯정백鄭伯과 어긋나는 말이 있음으로 인하여 나라를 정벌하자, 군자君子가 이로써 나라가 장차 망할 줄을 안 것이 이것이다.
장수가 서운한 감정으로 인하여 싸우는 것은 국가를 위하는 일이 아니므로 패하니, 예컨대 요양姚襄부황미苻黃眉가 마침내 보루를 압박하여 진을 친 것을 서운해하다가 부황미苻黃眉에게 패한 것이 이것이다.
노여움은 서운함보다 더 크므로 군주로써 말하였고, 서운함은 노여움보다 작으므로 장수로써 말하였으니, 군주로는 군대를 일으키는 일을 말할 수 있고 장수로는 다만 싸움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익에 부합하면 출동하고,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중지하여야 한다.
原注
이익에 부합한 뒤에 출동하고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중지하여야 하니, 노여움으로 인하여 용병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울료자尉繚子》에 이르기를 “군대를 일으킴은 분노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승리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면 군대를 일으키고 승리할 수 없으면 중지하여야 한다.” 하였으니, 바로 이 뜻이다.
노여움은 다시 기뻐할 수 있고 서운함은 다시 기쁠 수 있으나, 망한 나라는 다시 보존할 수 없고 죽은 병사들은 다시 살릴 수 없는 것이다.
原注
군주의 노여움은 다시 기쁘게 할 수 있으니 기뻐함은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요, 장수의 서운함은 다시 기쁘게 할 수 있으니 기쁨은 마음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군주가 노여움으로 인하여 군대를 일으키면 나라가 반드시 망하니, 나라가 이미 망하면 어떻게 다시 보존할 수 있겠는가.
장수가 서운함으로 인하여 싸우면 병사들이 반드시 죽으니, 병사들이 이미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릴 수 있겠는가?
군대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수공水攻화공火攻을 사용하여 사람을 잔인하게 죽임에 있어서랴.
이는 손자孫子가 이 〈화공火攻〉篇에서 간곡하고 극진하게 경계한 이유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현명한 군주君主는 삼가고 어진 장수將帥는 경계한다.” 하였으니, 이는 나라를 편안히 하고 군대를 온전히 하는 방도이다.
原注
그러므로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명철한 군주는 용병을 삼가니, 이는 나라를 편안히 하는 갈림길이요, 어질고 유능한 장수는 가볍게 싸우는 것을 경계하니, 이는 군대를 온전히 하는 방도이다.”라고 한 것이다.
原注
○ 내가 살펴보건대 수공水攻화공火攻을 사용함은 옛사람들이 대부분 부득이한 처지에서 나왔다.
삼대三代 이전에는 성스러운 황제와 현명한 왕이 어찌 즐겨 이것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표류하고 불태워서 인민人民들로 하여금 문드러지고 떠내려가서 남은 무리가 없게 하였겠는가.
하는 자가 이르기를 “화공은 손자孫子하책下策이 된다.” 하였다.
그러나 전국시대 이후로 속임수를 숭상하여 이것을 사용한 자들이 많았다.
육손陸遜은 적의 진영에 불을 질렀고, 황개黃蓋는 적의 배에 불을 질렀고, 강유江逌는 닭 수백 마리에 긴 노끈을 연결하여 불을 닭발에 매달아서 오랑캐 무리들을 태웠고, 전단田單은 소 수천 마리에 오채五彩와 용의 무늬를 입히고 칼날을 소의 뿔에 묶은 다음 횃불을 소의 꼬리에 매달아서 기겁騎劫을 불태웠고, 후주後周 때에 단소段韶는 불에 달군 쇠뇌로 백곡柏谷을 공격하여 격파하였고, 후한後漢 때에 황보숭皇甫嵩은 불을 놓아 황건적黃巾賊을 공격하여 격파하였으니, 이는 모두 불로써 승리를 취한 경우이다.
한신韓信은 흙을 포대에 담아 강물을 막아놓았다가 이것을 터놓아서 나라의 용저龍且를 목 베었고, 조공曹公(曹操)은 기수沂水사수泗水를 끌어들여서 여포呂布의 군대에 물을 대었고, 나라 장수 장소달章昭達은 폭우로 갑자기 물이 불어난 틈을 타서 목선木船을 많이 띄워 진보응陳寶應목책木柵을 충돌하여 성공하였고, 태종太宗낙수洛水의 상류에 제방을 쌓아 물을 얕게 하고서 유흑달劉黑闥을 유인하여 절반쯤 건너오자 마침내 격파하여 멸망시켰으니, 이는 모두 물을 이용하여 승리한 경우이다.
다만 수공水攻화공火攻의 폐해가 혹독하고 참혹하니, 이는 어진 장수가 매우 신중히 여기는 바이다.
손자孫子가 말하기를 “싸우지 않고서 남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싸움을 잘하는 중의 잘하는 자이다.” 하였으니,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화공은 다만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됨을 보여줬을 뿐이니, 오로지 이것만을 믿어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역주
역주1 陸遜勑兵士……而昭烈遁走 : 蜀漢 章武 1년(221)에 劉備가 대군을 이끌고 吳나라를 공격하였다가, 吳나라 陸遜에게 火攻을 당하여 대패한 일로 자세한 내용은 184쪽 주 2) 참조.
역주2 黃蓋以舟載燥荻枯柴……而曹操敗北 : 黃蓋는 三國時代 吳나라의 장군이다. 後漢 獻帝 建安 13년(208), 漢나라 丞相 曹操가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남방에서 할거하고 있는 劉備와 孫權을 정벌하고자 南征하였다. 曹操는 한겨울인 12월에 赤壁江에 이르러 周瑜가 거느리는 吳軍과 대치하였다.
이때 周瑜는 火攻으로 曹操의 船團을 공격하기 위해 部將 黃蓋를 거짓으로 매질하여, 黃蓋로 하여금 조조에게 투항하겠다는 서신을 보내게 하였다. 투항하기로 약조한 날이 되자, 黃蓋는 전함 수십 척에 섶을 가득 채우고 그 안에 기름을 부어 천막으로 덮은 뒤에 배 위에 牙旗를 세우고 曹操의 船團을 향하여 나아갔다. 曹操 軍은 이 전함들이 黃蓋가 항복해 오는 것이라고 여겨 방심하고 있었는데, 黃蓋가 戰艦에 불을 붙이고 曹操의 船團으로 돌진하니, 曹操의 모든 전함이 불타고, 때마침 세차게 부는 바람을 타고 江岸의 진영에까지 옮겨붙어 曹操 軍이 대혼란에 빠졌다. 이 틈을 타 劉備와 총공격을 감행하여 曹操 軍을 대파하였다. 《三國志 권54 周瑜列傳》
역주3 漢使劉賈……楚軍乏食 : 劉賈는 漢 高祖(劉邦)의 從兄이다. 劉邦이 成臯에서 項羽에게 패하고 修武에 군대를 주둔하고 있을 적에 劉賈에게 보병 2만과 騎兵 수백 명을 거느리고 楚나라를 공격하게 하자, 劉賈는 白馬津을 건너 楚나라 지역으로 들어가서 楚나라의 창고를 불태워 楚軍의 식량과 馬草를 궁핍하게 하였다. 劉賈는 뒤에 荊王에 봉해졌다. 《史記 권51 荊燕世家》
역주4 隋文帝……陳人益弊 : 이 내용은 170쪽 위의 단락 주 1) 참조.
역주5 曹操從許攸之計 萬餘輛 : 許攸(?〜204)는 三國時代 군벌인 袁紹의 謀士였다가 曹操에게 투항한 인물이다. 後漢 獻帝 建安 5년(200), 河北 지역에 할거하고 있던 軍閥 袁紹가 대군을 이끌고 曹操를 공격하자, 兩軍은 官渡에서 격돌하였는데, 전황이 교착 상태에 빠져 지구전의 양상이 되어 曹操 軍에 매우 불리하였다. 이때 袁紹의 모사인 許攸가 袁紹를 배반하고 曹操에게 투항하여, 원소의 군량이 烏巢에 있고 이를 淳于瓊이 지키고 있으니 이곳을 치라는 계책을 알리자, 조조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烏巢를 공격하여 淳于瓊을 죽이고 袁紹의 輜重車 1만여 대를 불태웠다. 이 싸움으로 曹操는 승기를 잡고 마침내 袁紹를 패망시켰다. 《三國志 권1 武帝紀》
역주6 因天時燥旱 風勢順便 : 《孫子髓》에는 “因은 內應을 이른다.” 하였다.
역주7 宿 : 수
역주8 : 燃과 같다.
역주9 箕水豹……軫水蚓 : 이들은 모두 28宿에 속한 별들로, 水豹인 箕宿는 東方 靑龍 7宿, 水貐인 壁宿는 北方 玄武 7宿, 火蛇인 翼宿와 水蚓인 軫宿는 南方 朱雀 7宿에 속한다.
역주10 洪範云……星有好雨 : 이 구절은 《書經》 〈周書 洪範〉에 그대로 보이는데, 蔡沈은 《集傳》에서 “바람을 좋아하는 것은 箕星이고, 비를 좋아하는 것은 畢星이다. 《漢志》에 ‘軫星 또한 비를 좋아한다.’ 하였으니, 짐작하건대 별은 모두 좋아하는 것이 있는 듯하다.”라고 註하였다. 箕宿는 바로 箕星이다.
역주11 李陵征匈奴……遂絶火勢 : 李陵(?〜B.C. 74)은 前漢 武帝 때의 장군이었다가 匈奴에 투항하여 匈奴의 제후가 된 인물이다. 이 내용은 《漢書》 〈李陵傳〉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12 黃巾賊張角……賊驚亂敗走 : 皇甫嵩은 後漢 말기의 武將이다. 後漢 靈帝 中平 1년(184) 黃巾賊의 난이 일어나자, 皇甫嵩을 左中郞將으로 삼아 右中郞將 朱儁과 함께 4만여 명의 병력으로 潁川의 黃巾賊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朱儁이 黃巾賊 괴수 波才와 싸우다가 패주하자, 皇甫嵩은 그대로 진격하여 長社를 지켰다. 波才가 대병을 이끌고 長社를 포위하자, 皇甫嵩은 병력이 적었으므로 병사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皇甫嵩은 병사들에게 “兵法은 奇變에 있는 것이지 병력의 多寡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적이 숲에 의지하여 진영을 설치하고 있으니 바람을 따라 한밤중에 불을 지르면 반드시 크게 놀라 혼란해질 것이다. 그때 우리가 出兵하여 사면에서 협공하면 田單이 火攻을 통해서 얻은 공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훈시하여 사기를 고취시켰는데, 그날 마침 큰 바람이 일자, 皇甫嵩은 병사들에게 모두 횃불 한 묶음씩을 가지고 城에 오르게 하고, 날랜 병사들을 시켜 성 밖으로 빠져나가 불을 지르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하였으며, 城 위에서 횃불을 들어 이에 호응하도록 하였다. 皇甫嵩이 북을 치며 적진을 향해 내달으니, 적이 놀라고 혼란하여 달아났다. 때마침 황제가 보낸 騎都尉 曹操가 군대를 거느리고 당도하여 합세해서 다시 싸워 적을 대파하였다. 《後漢書 권71 皇甫嵩列傳》
역주13 : 숭
역주14 張賁云……不可從而止之義 : 張賁는 ‘久’자를 ‘從’자의 오기로 보아 ‘晝風은 從하고 夜風은 止니라.’라고 풀이하여, “낮에 바람이 불면 적에게 불을 놓아 따라서 싸우고, 밤에 바람이 불면 따라서 싸우지 말아야 한다.”라고 해석한 것이다.
역주15 推四星之度數 嚴爲守備 : 《孫子髓》에는 본문의 ‘以數守之’에 대하여 “數는 바로 하늘의 날씨가 건조함과 달의 별자리이고, 守는 待와 같다.” 하였다.
역주16 張(預)[賁] : 張預의 註에는 이 내용이 그대로 보이지 않으며, 뒤에도 ‘其說 與張預義同’이라 하였으므로, 張賁으로 바로잡았다. 다만 劉寅이 인용한 張賁의 說은 지금 참고할 수 없다.
역주17 韓信決壅囊……因奮擊大敗之 : 이 내용은 82쪽 주 4)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8 : 저
역주19 曹公焚袁紹輜重 紹因以敗亡 : 曹公은 曹操를 이른다. 이 내용은 335쪽 주 1) 참조.
역주20 智伯灌趙襄子於晉陽……反灌智伯 : 이 내용은 329쪽 주 1) 참조.
역주21 單于縱火……奪其火勢 : 이 내용은 《漢書》 〈李陵傳〉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22 夫戰勝攻取 : 《孫子髓》에는 여기서부터 ‘良將修之’까지를 한 단락으로, ‘非利不動’ 이하를 한 단락으로 보고, “이 아래 두 節은 마땅히 위의 火攻과는 연관되지 않아 따로 한 단락이 된다. 〈軍爭〉篇 이하는 글(문장)이 연결되지 않으나 매번 빌려 연결하거나 비슷한 종류끼리 붙인 것이 많은데, 오직 이 두 단락은 빌린 것도 아니고 같은 종류도 아니면서 한갓(공연히) 서로 붙인 것이다.[此下二節 當不涉火攻 而各自爲段 軍爭以下 文雖不屬 而每多借接類附 惟此二段 非借非類 徒然相附者也]” 하였다.
역주23 費留 : 비용을 쓰는 것을 애석히 여겨 제때에 論功行賞을 하지 않는 것이다. 曹操의 注에 “費留는 물이 머무르고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다. 賞은 하루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費留 若水之留不復還也 賞善不踰日也]”라고 하였다. 《孫子髓》에는 “費留란 날짜를 허비하고 시간을 지체함을 이른다.[費留者 費日留時之謂也]” 하여, 費와 留를 모두 즉시 賞을 내리지 않고 時日을 허비하고 지체하는 것으로 보았다.
역주24 息侯與鄭伯有違言……君子是以知息之將亡 : 이 내용은 130쪽 주 1) 참조.
역주25 姚襄怒苻黃眉乃壓壘而陳 爲黃眉所敗 : 姚襄(331〜357)은 五胡十六國時代 羌族의 首長으로, 뒤에 後秦을 창건한 武昭帝 姚萇의 형이다. 姚襄이 東晉의 穆帝 升平 1년(357)에 前秦의 도성인 關中(長安)을 공략하자, 前秦의 苻生이 대장군 苻黃眉에게 步兵과 騎兵 1만 5천을 거느리고 이를 막게 하였다.
姚襄이 城을 굳게 지키고 출전하지 않자, 鄧羌이 苻黃眉에게 계책을 내기를 “姚襄은 東晉의 桓溫과 張平에게 패하여 銳氣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성품이 강하고 사나우니, 만약 우리가 북 치고 함성을 지르며 보루로 쳐들어가면 姚襄은 반드시 출전할 것이니, 一戰에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고, 3천의 騎兵을 거느리고 姚襄의 진영을 압박하여 陣營을 설치하였다.
姚襄이 노하여 전군을 이끌고 출격하자 鄧羌이 거짓 패하여 도망하니, 姚襄이 추격하였다. 三原에 이르러 鄧羌이 반격하고 苻黃眉가 대군을 이끌고 와서 협공하니, 姚襄 軍이 대패하고 姚襄은 생포되어 참수되었다. 《資治通鑑 권100 晉紀 孝宗穆皇帝》
역주26 尉繚子曰……不勝則止 : 이 내용은 《尉繚子》 〈兵談〉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27 主怒……可以復悅 : 본문의 ‘主怒’와 ‘將慍’에 대하여 《孫子髓》에는 “互文이다.” 하였다. 互文이란 똑같은 내용이 중복될 경우 두 번 다 쓰지 않고 각각 한 가지씩만 씀을 이르는바, 곧 ‘怒’와 ‘慍’을 군주와 장수에게 모두 해당시킨 것이다.
역주28 : 혈
역주29 陸遜 火其營 : 이 내용은 184쪽 주 2) 참조.
역주30 黃蓋 火其舟 : 이 내용은 334쪽 주 2) 참조.
역주31 江逌(유)……以燒羌衆 : 江逌는 南北朝時代 東晉의 장수이다. 東晉의 中軍將軍 殷浩가 장차 前秦을 정벌하려고 하였는데, 羌族과 丁零이 배반하자 殷浩의 全軍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羌族의 首長 姚襄이 殷浩의 진영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진영을 설치하여 殷浩를 압박하자, 江逌로 하여금 이를 공격하게 하였다.
江逌는 進軍하여 姚襄의 진영에 이르러 장교들에게 “지금 우리 군이 정예병이나, 병력이 羌族보다 적고 저들의 참호와 성채가 견고하여 힘으로 다투기가 어려우니, 마땅히 계략을 써야 한다.”라고 하고, 수백 마리의 닭을 긴 줄로 연결하여 닭발에 불을 붙여 姚襄의 진영으로 흩어 보냈다. 姚襄의 진영에 불이 붙어 혼란에 빠지자, 곧바로 공격하여 姚襄 軍을 대파하였다. 《晉書 권83 江逌列傳》
역주32 : 유
역주33 田單……以焚騎劫 : 이 내용은 81쪽 주 3) 참조.
역주34 段韶……攻破柏谷 : 段韶(?〜571)는 南北朝時代 北齊의 장수이다. 北齊 後主 武平 2년(571) 北周軍이 침범해 오자, 段韶와 右丞相 斛律光, 太尉 蘭陵王 長恭이 이를 막기 위하여 서쪽 변경의 柏谷城에 이르렀는데, 柏谷城은 石城이 천 길이나 되는 천혜의 요새로 北齊軍은 감히 이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段韶가 “汾河 북쪽과 黃河 동쪽은 형세로 보아 우리나라의 소유여야 하니, 만약 柏谷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사람의 고질병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생각하건대 저들의 구원병은 남쪽 길로 올 수밖에 없으니, 지금 이 길을 끊으면 구원병이 올 수 없을 것이다. 또 城의 형세가 비록 높다 하나 그 안이 매우 좁으니, 火弩로 집중 공격하면 하루아침에 함락시킬 수 있다.”라고 계책을 내었다. 北齊軍이 이 계책에 따라 북을 치면서 공격하여 城을 함락시키고 北周의 薛敬禮를 사로잡고 다수의 적을 포로로 잡았다. 《北齊書 권16 段韶列傳》
역주35 皇甫嵩……攻破黃巾 : 이 내용은 339쪽 주 2) 참조.
역주36 韓信……以斬龍且 : 이 내용은 82쪽 주 4) 참조.
역주37 曹公……以灌呂布 : 曹公은 曹操를 이른다. 後漢 獻帝 建安 4년(199) 曹操가 呂布를 정벌하기 위해 下邳에 이르렀는데, 呂布가 물러나 城을 굳게 지키니, 曹操는 공격을 계속하였으나 城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여러 차례의 전투에 병사들이 극도로 지치자 曹操는 攻城을 포기하고 회군하려 하였다.
이때 荀攸와 郭嘉가 말하기를 “呂布는 용감하나 꾀가 없고 지금 세 번 싸워서 모두 패배하여 그 銳氣가 꺾여있습니다. 三軍은 장수를 주인으로 삼는 것인데 주인이 쇠하면 병사들은 분발하여 싸울 마음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謀士 陳宮은 지혜는 있으나 결단이 느립니다. 지금 呂布의 銳氣가 미처 회복되지 않고 陳宮의 계책이 미처 정해지기 전에 나아가 급히 공격하면 呂布를 패망시킬 수 있습니다.” 하였다. 이에 沂水와 泗水의 물길을 끌어다가 城에 주입시킨 결과, 城이 무너지고 呂布가 사로잡혔다. 《三國志 권10 荀攸傳》
역주38 陳將章昭達……而得以成功 : 章昭達은 南北朝時代 陳나라의 장수이다. 陳 文帝 天嘉 4년(563), 陳寶應이 周迪과 함께 臨川을 침범하자, 陳 文帝는 章昭達을 都督으로 삼아 周迪을 토벌하게 하였다. 周迪이 패주하자, 章昭達이 五嶺을 넘어 陳寶應을 토벌하였는데, 상류를 점거하고 뗏목을 만들어 적의 水柵에 부딪쳐서 충격을 가하고, 다시 出兵하여 적의 步軍을 공격하였다. 때마침 文帝가 보낸 余孝頃의 군대가 적시에 이르러 힘을 합해 승세를 타고 공격하여 마침내 陳寶應을 사로잡고 閩中 지방을 평정하였다. 《南史 권66 章昭達列傳》
역주39 唐太宗……半渡而遂以破滅 : 唐 高祖 武德 5년(622), 太宗이 華北 지역의 劉黑闥을 토벌하였는데, 몰래 사람을 보내 洛水 상류에 둑을 쌓아 水位를 낮추고, 劉黑闥의 군을 유인하여 강을 건너오게 하였다. 劉黑闥 軍이 강을 건너오자, 둑을 터놓으니 물이 크게 밀려와 적군이 크게 혼란에 빠졌다. 太宗이 劉黑闥 軍을 대파하니, 劉黑闥은 200여 騎兵과 함께 북쪽의 突厥로 도주하였으며, 나머지 병력은 모두 사로잡혀 華北 지역이 평정되었다. 《舊唐書 권2 太宗本紀》

손무자직해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