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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武子直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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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軍者 師行之際 必擇其利便之處也
행군行軍이란 군대가 출동하는 즈음에 반드시 그 편리한 곳을 가려 거처(주둔)하는 것이다.
篇中 皆論處軍相敵之事하니 處軍 卽所以行軍也
그러므로 가운데 모두 군대를 주둔하여 서로 대적하는 일을 말하였으니, 군대를 주둔함은 바로 군대를 운용하는 것이다.
이나 不相敵之虛實動靜이면 非惟不可以取勝이요 又恐敵之反來乘我也니라
그러나 적의 허실虛實동정動靜을 살피지 못하면, 다만 승리를 쟁취하지 못할 뿐만이 아니요, 또 적이 도리어 와서 우리의 허점을 틈탈까 두려운 것이다.
孫子曰
손자孫子가 말하였다.
凡處軍相敵
무릇 군대를 주둔시키고 적을 살펴볼 적에
原注
孫子言
손자孫子가 말하였다.
凡處軍之法 有四하고 相敵之法 有三十二하니
무릇 군대를 주둔시키는 방법이 네 가지가 있고 적을 살펴보는 방법이 서른두 가지가 있으니,
下文 自絶山依谷으로 至伏姦之所 皆處軍之法也 自敵近而靜으로 至必謹察之 皆相敵之法也
아래 글에 ‘절산의곡絶山依谷’으로부터 ‘복간지소伏姦之所’까지는 모두 군대를 주둔시키는 방법이고, ‘적근이정敵近而靜’으로부터 ‘필근찰지必謹察之’까지는 모두 적을 살펴보는 방법이다.
絶山依谷하며
험한 산을 지나갈 때에는 골짜기에 의지하며,
原注
經過山險 必依附溪谷而居 一則利水草 一則負險固 但不可當大谷之口而居也
험한 산을 지나갈 때에는 반드시 계곡에 의지하고 붙어 주둔하여야 하니, 한편으로는 물과 풀을 채취하기가 편리하고 한편으로는 험하고 견고한 곳을 등지고 있기 때문인데, 다만 큰 골짜기의 입구를 막고 주둔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마원馬援무도武都강족羌族을 토벌할 적에 편리한 지역을 점거하여 적이 물과 풀을 채취하는 길을 빼앗고 오랑캐들과 싸우지 않자, 오랑캐 군대가 곤궁하여 모두 항복하였으니, 이는 저들이 골짜기에 의지하는 이로움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視生處高하며 戰隆無登이니 處山之軍也
살 곳을 살펴보아 높은 곳에 주둔하며, 적이 높은 곳을 점거하였으면 올라가 싸우지 말아야 하니, 이는 산에 주둔하는 군대이다.
原注
相視生地하여 而處其高陽하며 若敵先據隆高之處어든 不可登升而迎之與戰이니 此三者 處山之軍法也
살 곳을 살펴보아 높은 곳과 양지바른 곳에 주둔하며, 만약 적이 먼저 높은 곳을 점거하였으면 높은 곳에 올라가 적을 맞아 싸우지 말아야 하니, 이 세 가지는 산에 군대를 주둔하는 방법이다.
絶水 必遠水
물을 통과할 적에는 반드시 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原注
軍行過水 必去水稍遠而舍止 一則引敵하여 使半渡而擊之 一則使我進退而無碍
행군하여 물을 통과할 적에는 반드시 물에서 약간 멀리 떨어져 주둔하여야 하니, 한편으로는 적을 유인하여 물을 절반쯤 건너오게 해서 공격하기 위해서이고, 한편으로는 우리 군대가 전진하고 후퇴함에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컨대 나라 장수 곽회郭淮가 물에서 멀리 떨어져 진을 치자, 유소열劉昭烈이 그의 계책을 알고 물을 건너가 싸우지 않은 것이 이것이다.
客絶水而來어든 勿迎之於水內하고 令半濟而擊之利니라
적군이 물을 건너오거든 물가에서 맞아 싸우지 말고, 적군이 물을 절반쯤 건너왔을 때에 공격하면 이롭다.
原注
敵若引兵過水來하여 與我戰이어든 愼勿迎之於水內
적이 만약 병력을 이끌고 물을 건너와서 우리와 싸우려 하거든 부디 물가에서 맞아 싸우지 말아야 한다.
或作하니 水邊也
’자는 혹 ‘’자로 되어있으니, 물가이다.
令其半濟 行列未定하여 首尾不接而擊之 必得其利矣
적들이 물을 절반쯤 건너왔을 때에 항렬行列이 안정되지 못하여 선두와 후미가 연접하지 못하거든, 이때 공격하면 반드시 그 이로움을 얻을 것이다.
하고 하고
薛萬(徹)[均]破建德於范陽
皆用此術也
예컨대 한왕漢王조구曹咎사수汜水에서 격파하고, 공손찬公孫瓚황건적黃巾賊동광東光에서 패퇴시키고, 설만균薛萬均두건덕竇建德범양范陽에서 격파할 적에 모두 이 방법을 사용하였다.
欲戰者 無附水而迎客하며
적과 싸우려 할 경우에는 물에 가까이 붙어서 적을 맞아 싸우지 말며,
原注
我欲與敵戰이면 無近水而迎敵이니 恐敵不肯渡也 我若不欲戰이면 則當阻水拒之하여 使敵不能濟也
우리가 적과 싸우려 하면 물에 가까이 주둔하여 적을 맞아 싸우지 말아야 하니, 이는 적이 물을 건너오려 하지 않을까 염려해서이고, 우리가 만약 적과 싸우고 싶지 않으면 마땅히 물을 가로막고 지켜서 적으로 하여금 물을 건너오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與楚軍으로水而軍할새 處父退舍하여 欲使楚人渡한대 楚人亦退舍하여 欲令晉師渡하여 遂不戰而歸하니 是皆知此術也
예컨대 나라 장수 양처보陽處父나라 군대와 지수泜水를 끼고 진을 쳤을 적에 양처보가 후퇴하여 초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건너오게 하자, 초나라 사람들 또한 후퇴하여 나라 군대로 하여금 건너오게 하려 하다가 마침내 싸우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으니, 이는 모두 이 방법을 안 것이다.
視生處高하고 無迎水流 處水上之軍也
살 곳을 살펴보아 높은 곳에 주둔하고, 물의 하류下流를 맞이하여 주둔하지 말아야 하니, 이는 물가에 군대를 주둔하는 방법이다.
原注
相視生地而處其高陽하고 無迎水之下流 此五者 處水上之軍法也
살 땅을 살펴보아 높고 양지바른 곳에 주둔하고, 물의 하류下流를 맞이하여 주둔하지 말아야 하니, 이 다섯 가지는 물가에 군대를 주둔하는 방법이다.
地卑下 恐爲敵決水以灌我 不可居之 水下流 恐戰有不便하고 兼慮敵投毒於上流
지형地形이 낮으면 적이 상류上流에서 물을 터놓아 우리에게 물을 댈까 두려우므로 주둔해서는 안 되는 것이요, 물의 하류에서는 전투할 적에 불편함이 있을까 염려되고 겸하여 적이 상류에서 독약을 탈까 염려된다.
不可迎之也
그러므로 하류를 맞이하여 주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컨대 사마자어司馬子魚가 전투할 것을 점쳤으나 길하지 못하였는데, 자어子魚가 말하기를 “우리가 상류를 점거하였으니, 무슨 까닭으로 불길하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결전하여 과연 승리하였으니, 이는 군대가 반드시 그 상류에 주둔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絶斥澤이어든 唯亟去勿留
갯벌과 늪지대를 통과하게 되면 오직 빨리 떠나가고 지체하지 말며,
原注
過斥漸洳之地 唯亟去하여 愼勿留止 以其地氣濕潤하고 水草薄惡하여 不可以居也일새라
척로斥鹵(갯벌)와 저습한 늪지대를 통과할 경우에는 오직 빨리 통과하고 부디 지체하지 말아야 하니, 이는 땅기운이 축축하고 물과 풀을 채취하기가 불편하여 군대를 주둔할 수 없기 때문이다.
斥鹵 醎地也 東方 謂斥이요 西方 謂鹵
척로斥鹵는 갯벌이니 동방에서는 ‘’이라 하고 서방에서는 ‘’라 한다.
若交軍於斥澤之中이면 必依水草而背衆樹
만약 갯벌과 늪 가운데에서 교전하게 되면 반드시 물과 풀이 좋은 곳을 의지하고 여러 나무를 등지고 있어야 하니.
處斥澤之軍也
이는 갯벌과 늪지대에 군대를 주둔하는 방법이다.
原注
若與敵人으로 交於斥澤之中이어든 必依水草하여 以便樵汲하고 背倚樹木하여 以爲險阻 此二者 處斥澤之軍法也
만약 적과 갯벌과 늪지대의 가운데에서 교전하게 되면 반드시 물과 풀을 채취하기 좋은 곳에 의지하여 나무하고 물 길어오는 데 편리하게 하고, 나무를 등져서 험한 요새로 삼아야 하니, 이 두 가지는 갯벌과 늪지대에 군대를 주둔하는 방법이다.
平陸 處易하고 右背高하며 前死後生이니 處平陸之軍也
평지와 평륙平陸(平原)에서는 평이平易한 곳에 주둔하며, 높은 언덕을 오른쪽과 뒤에 두고, 앞에는 죽을 땅(낮은 곳)을 두고 뒤에는 살 땅(높은 곳)을 두어야 하니, 이는 평지와 평륙平陸에 군대를 주둔하는 방법이다.
原注
平陸之地 處其坦易無坎陷之處하여 使吾軍으로 便於馳突也
평지와 평륙平陸에서는 평탄하여 구덩이가 없는 곳에 주둔해서 우리 군대로 하여금 치달리고 돌격하기에 편리하게 하여야 한다.
右背高阜 所以恃爲形勢也 前低後高 所以便乎奔擊也 此二者 處平陸之軍法也
높은 언덕을 오른쪽에 두고 등 뒤에 두는 것은 믿어서 형세를 삼기 위한 것이요, 앞에 낮은 곳을 두고 뒤에 높은 곳을 두는 것은 달려가 공격하기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 이 두 가지는 평지와 평륙平陸에서 군대를 주둔하는 방법이다.
凡此四軍之利 黃帝之所以勝四帝也니라
무릇 이 네 가지 군대의 편리한 지역은 황제黃帝가 네 제왕帝王과 싸워서 승리한 이유이다.
原注
凡此山水斥澤平陸四軍之便利 黃帝所以取勝於四方諸侯之稱帝者也
무릇 이 산과 물, 척택斥澤(갯벌과 늪)과 평지와 평륙平陸의 네 가지 군대軍隊의 편리한 지역은 황제黃帝가 사방의 제후 중에 제왕이라고 칭한 자를 승리한 이유이다.
諸葛亮曰 山陵之戰 不升其高하고 水上之戰 不逆其流하고 草上之戰 不涉其深하고 平地之戰 不逆其虛하나니 兵之利也라하니라
제갈량諸葛亮이 말하기를 “산릉山陵에서의 전투는 높은 곳에 올라가지 말고, 수상水上에서의 전투는 흐르는 물을 거스르지 말고, 초상草上에서의 전투는 깊은 곳을 건너가지 말고, 평지平地에서의 전투는 그 허한 곳을 맞이하지 말아야 하니, 이는 군대의 이로움이다.” 하였다.
사기史記》의 〈황제기黃帝紀〉에 “황제黃帝염제炎帝판천阪泉에서 싸우고 치우蚩尤탁록涿鹿에서 싸우고 북쪽으로 훈육獯鬻을 쫓아냈다.” 하였으며,
太公亦云 黃帝七十戰而定天下라하니 是所謂四方諸侯之稱帝者也
태공太公 또한 말하기를 “황제黃帝가 70번 싸워 천하를 평정하였다.”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사방 제후가 제왕이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黃帝 이니 以其土德王天下 曰黃帝라하니 兵家之法 所由始也
황제黃帝는 바로 헌원軒轅이니, 토덕土德으로 천하에 노릇 하였으므로 황제黃帝라고 칭한 것이니, 병가兵家의 법이 황제黃帝로부터 시작되었다.
凡軍 好高而惡下하며 貴陽而賤陰이니라
모든 군대는 높은 곳을 좋아하고 낮은 곳을 싫어하며, 양지陽地를 귀하게 여기고 음지陰地를 천하게 여긴다.
原注
凡軍 好處高平而惡居卑下하며 貴面陽方而賤向陰地하니 蓋居高則便於覘望하고 利於馳逐이요 處下則難以爲固하고 易以生疾이라
모든 군대는 높고 평평한 곳에 주둔하는 것을 좋아하고 낮은 곳에 주둔하는 것을 싫어하며, 양지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음지로 향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니, 높은 곳에 주둔하면 적을 관망하기 편리하고 달려가 쫓기에 이로우며, 낮은 곳에 주둔하면 견고히 지키기가 어렵고 질병疾病이 생기기 쉽다.
동쪽과 남쪽은 양지가 되는데 은 살리는 것을 주장하니 이 때문에 귀하게 여기는 것이요, 서쪽과 북쪽은 음지가 되는데 은 죽임을 주장하니 이 때문에 천하게 여기는 것이다.
此以下 統論處軍之法하니라
이 이하는 군대를 주둔하는 방법을 통론하였다.
養生處實하여 軍無百疾이면 是謂必勝이니라
생명을 길러주고 충실한 곳에 주둔하여 군대가 아무런 질병이 없으면 이것을 필승必勝이라 하는 것이다.
原注
養生 謂近水草林木하여 便於牧放樵採 處實 謂居高陽而不處陰下하니 所以軍無病疾而可以必勝也
생명을 길러준다는 것은 물과 풀과 숲에 가까워서 가축을 기르고 방목하며 나무하기에 편리한 곳이요, 충실한 곳에 주둔한다는 것은 높은 곳과 양지바른 곳에 주둔하고 음지와 낮은 곳에 머물지 않음을 이르니, 이 때문에 군대가 질병이 없어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니 是知養生處實之道也 此失養生處實之道也
제갈공명諸葛孔明나라를 정벌할 적에 위수渭水의 남쪽에 군대를 주둔하였으니, 이는 생명을 길러주고 충실한 곳에 주둔하는 방도를 안 것이요, 조조曹操나라를 정벌하고 마원馬援남만南蠻을 정벌할 적에 병사들이 전염병을 앓게 된 것은, 이는 생명을 길러주고 충실한 곳에 주둔하는 방도를 잃은 것이다.
丘陵隄防 必處其陽而右背之
구릉丘陵제방隄防에는 반드시 그 양지바른 곳에 주둔하되, 구릉과 제방을 오른쪽과 등뒤에 두어야 하니,
原注
丘陵隄防之地 必居其顯明向陽之處而右背之하여 以爲固也
구릉과 제방의 지역에는 반드시 밝고 양지바른 곳에 주둔하되, 구릉과 제방을 오른쪽과 등뒤에 두어서 견고함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兵之利 地之助也니라
이는 군대軍隊의 이로움이요 지형地形의 도움이다.
原注
用兵之利 得地之助也
이는 용병用兵의 이로움이요 지형地形의 도움을 얻는 것이다.
上雨水沫至어든 欲涉者 待其定也니라
상류上流에 빗물이 불어나 포말泡沫(거품)이 떠내려오거든 물을 건너려고 하는 자는 수위水位가 안정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原注
上流 有雨水泡沫驟至어든 欲涉者 待其水之定이니 蓋恐有暴水卒至而軍不及備耳
상류에 빗물이 흘러와 포말泡沫이 갑자기 떠내려오거든 물을 건너고자 하는 자는 수위水位가 안정되기를 기다려야 하니, 이는 홍수가 갑자기 몰려와서 군대가 미처 대비하지 못할까 염려해서이다.
張賁云 此句 當在欲戰者無附水而迎客之下라하니라
장분張賁은 이르기를 “이 는 마땅히 〈위의〉 ‘싸우려 할 경우에는 물에 가까이 붙어서 적을 맞아 싸우지 말라.[欲戰者 無附水而迎客]’ 아래에 있어야 한다.” 하였다.
凡地有絶澗, 天井, 天牢, 天羅, 天陷, 天隙이어든 必亟去之하여 勿近也니라
무릇 땅에 절간絶澗천정天井천뢰天牢천라天羅천함天陷천극天隙이 있으면 반드시 빨리 떠나고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原注
凡遇此六者 名爲六害之地 必亟速去之 若欲舍止라도 亦不可近之也
무릇 이 여섯 가지를 만나면, 여섯 가지의 해로운 지역이라 이름하니, 반드시 빨리 떠나야 하고, 만약 이곳에 머물고자 하더라도 또한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된다.
溪谷深峻하여 不可過者 爲絶澗이요 外高中下하여 衆水所歸者 爲天井이요 山險環繞하여 所入者隘 爲天牢 林木縱橫하고 葭葦隱蔽者 爲天羅 陂池泥濘하여 漸車凝騎者 爲天陷이요 道路狹迫하고 地多坑坎者 爲天隙이라
계곡이 깊고 험준하여 통과할 수 없는 곳을 절간絶澗이라 하고, 밖은 높고 중앙은 낮아서 여러 물이 모여드는 곳을 천정天井이라 하고, 산과 험한 것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들어가는 길이 좁은 곳을 천뢰天牢라 하고, 숲이 종횡縱橫으로 놓여있고 갈대가 우거져 은폐된 곳을 천라天羅라 하고, 늪과 못에 진흙이 있어서 수레가 빠지고 기병騎兵이 달릴 수 없는 곳을 천함天陷이라 하고, 도로가 협착하고 땅에 구덩이가 많은 곳을 천극天隙이라 한다.
吾遠之 敵近之하고 吾迎之 敵背之니라
우리가 이곳을 멀리하면 적이 가까이하고, 우리가 이곳을 맞이하면 적이 등지게 된다.
原注
已上六害之地 吾若遠之 敵必近之하고 吾若向之 敵必背之하나니
이상 여섯 가지 해로운 지역을 우리가 만약 멀리하면 적이 반드시 가까이하고, 우리가 만약 향하면 적이 반드시 등지게 된다.
遠之向之 則吾進止自由 近之背之 則彼擧動有阻 進退自由則有利하고 擧動有阻則多凶이라
우리가 멀리하고 향하면 우리의 전진前進후퇴後退가 자유로울 것이요, 적이 가까이하고 등지면 적의 거동에 장애가 있을 것이니, 전진과 후퇴가 자유로우면 이로움이 있고, 거동에 장애가 있으면 흉함이 많게 된다.
軍旁 有險阻 潢井 林木蒹葭翳薈者어든 必謹覆索之 伏姦之所也니라
군대 부근에 험한 곳과 우물가에 숲과 갈대가 우거진 곳이 있거든 반드시 적이 매복을 설치하였는가 철저히 수색하여야 하니, 이는 적의 복병伏兵과 간사한 자가 숨을 수 있는 곳이다.
原注
軍旁 有險阻丘阜之地 潢井卑下之處 或生林木하고 或産葭葦하여 翳薈蒙蔽어든 必謹覆之索之 此乃伏兵與姦細潛隱之所也
군대 부근에 험한 구릉의 지역과 우물가의 낮은 곳에 혹 숲이 자라고 혹 갈대가 자라서 우거지고 가려진 곳이 있으면 반드시 삼가 적의 매복을 조심하고 또 적의 간첩을 철저히 수색하여야 하니, 이는 바로 적이 매복을 하고 적의 세작細作(첩자)이 몰래 숨어있는 곳이다.
이니 謂設覆以備人也 乃搜索之索이니 謂防人之襲我也
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삼복三覆칠복七覆이라는 말과 같으니 매복을 설치하여 적을 대비함을 이르고, 은 바로 수색搜索한다는 이니, 남이 우리를 습격하는 것을 방비함을 이른다.
伏兵姦細 或掩我不虞하고 或察我動靜이라
복병伏兵과 적의 간사한 세작細作은 혹 우리가 대비하지 않았을 때에 기습하고 혹은 우리의 동정動靜을 정찰한다.
不可不謹也
그러므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此以上 皆論處軍之法하니라
이 이상은 모두 군대를 주둔하는 방법을 논하였다.
敵近而靜者 恃其險也 遠而挑戰者 欲人之進也
적이 가까이 있으면서 조용한 것은 험함을 믿는 것이요, 멀리 있으면서 자주 와서 도전하는 것은 우리가 싸우러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原注
敵去我近而安靜不動者 倚恃其有險阻之固也 敵去我遠하여 來挑戰者 欲誘我進而擊之也
적이 우리와 가까이 있으면서 안정되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험한 지형의 견고함이 있음을 의지하고 믿기 때문이요, 적이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자주 와서 도전하는 것은 우리가 싸우러 나오도록 유인하여 공격하고자 하는 것이다.
울료자尉繚子》에 이르기를 “적이 험한 곳을 나누어 점거한 경우에는 싸우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 적이 도전해오는 경우에는 전력全力을 다해 싸우지 말라.” 하였다.
謂敵旣拒險이어든 我無就與之戰이요 敵來挑戰이어든 我無全氣擊之 卽此義也
적이 이미 험한 곳을 점거하여 막고 있으면 우리가 가서 저들과 싸우지 말아야 하고, 적이 와서 도전하면 우리가 전력을 다해 공격하지 말아야 함을 말한 것이니, 바로 이 뜻이다.
此以下 皆論相敵之法하니라
이 이하는 모두 적을 살펴보는 방법을 논하였다.
其所居易者 利也
적이 평탄한 곳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이익利益으로 유인하기 위한 것이요,
原注
其所居平易之地者 敵人以利誘我也
적이 평탄한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것은 적들이 이익으로써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유소열劉昭烈오반吳班을 보내어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평지에 진영을 세워 육손陸遜과 싸우게 하자, 육손陸遜이 그 계략이 있음을 알고, 제장諸將들의 공격하자는 청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이것이다.
衆樹動者 來也
여러 나무가 움직이는 것은 적이 오는 것이요,
原注
覘見近敵之衆 樹動搖者 是斬木除道而來也
살펴보아서 적의 무리(陣地)와 가까운 곳에 나무가 움직이고 흔들리는 것은, 적이 나무를 베고 길을 닦으면서 싸우러 오는 것이다.
衆草多障者 疑也
여러 가지 초목草木으로 장애물을 많이 만드는 것은 의심하게 하는 것이요,
原注
敵人左右前後 多爲草木障蔽者 設計疑我也 謂或欲退去故 爲障蔽하여 以避我之追하고 或欲襲我故 爲叢聚하여 以張彼之勢
적의 좌우左右전후前後초목草木으로 가려진 곳을 많이 만드는 것은 계략을 써서 우리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니, 혹은 적이 후퇴하여 가고자 하므로 장애물을 만들어서 우리의 추격을 피하려 하고, 혹은 우리를 습격하고자 하므로 여러 가지 초목草木을 모아놓아 저들의 군세軍勢를 떨치려 하는 것이다.
鳥起者 伏也
새가 나는 것은 적의 매복이 있는 것이요,
原注
鳥本平飛하니 至彼하여 忽然高起者 下有伏兵也
새는 본래 평평하게 나는데 저곳에 이르러 갑자기 높이 나는 것은 아래에 복병이 있기 때문이다.
獸駭者 覆也
짐승이 놀라 뛰쳐나오는 것은 적군이 숨어 있는 것이요,
原注
山林草木之中 野獸忽然驚駭而出者 敵必從彼隱覆而來襲我也
산림山林초목草木의 가운데에 야수野獸가 갑자기 놀라 뛰쳐나오는 것은 적이 반드시 저곳에 은밀히 매복하여 있다가 우리를 습격하러 오기 때문이다.
塵高而銳者 車來也
먼지가 높으면서 직선으로 올라가는 것은 적의 전거戰車가 오는 것이요,
原注
車馬行疾하고 又轍迹相次而進이라 塵埃高起而銳直者 知其車來也
수레와 말은 행군속도가 빠르고 또 수레바퀴 자국이 서로 나란히 이어져 나오므로 먼지가 높이 일어나고 일직선으로 곧장 올라가는 것이니, 적의 전거戰車가 옴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나라 반당潘黨이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고 사람을 보내서 나라 군대가 옴을 알린 것이 이것이다.
卑而廣者 徒來也
먼지가 낮으면서 넓게 퍼지는 것은 적의 보병步兵이 오는 것이요,
原注
徒步行遲하고 又行列踈遠이라 塵埃低下而廣濶者 知其徒來也
보병步兵은 행군속도가 느리고 또 항렬行列이 듬성듬성 있으므로 먼지가 낮게 일어나고 넓은 것이니, 적의 보병步兵이 옴을 알 수 있는 것이다.
散而條達者 樵採也
먼지가 흩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은 적이 나무를 채취하는 것이요,
原注
樵採 各隨所便이라 塵埃散亂條達者 知其樵採芻薪也
나무를 채취함은 각각 편리함을 따르므로 먼지가 여기저기에서 흩어져 나오는 것이니, 적이 꼴과 나무를 채취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少而往來者 營軍也
먼지가 적게 일어나면서 오가는 것은 적이 군영軍營을 설치하는 것이요,
原注
經營軍壘者 必輕騎四面覘視
군영軍營을 경영하는 자는 반드시 경무장輕武裝기병騎兵으로 사면四面에서 엿본다.
塵埃微少而一往一來也
그러므로 먼지가 적게 일어나면서 한 번 가고 한 번 오는 것이다.
辭卑而益備者 進也
적의 사자使者가 왔을 적에 말이 겸손하면서 더욱 대비對備하는 것은 진격進擊하기 위한 것이요,
原注
使來 言辭卑下而增益守備者 欲驕我而潛進也
적의 사신使臣이 왔을 적에 말을 낮추면서 수비守備를 더욱 증강하는 것은 우리를 교만驕慢에 빠뜨리고 은밀히 진격進擊하려 하는 것이다.
秦間而增壘後 卷甲而趨하고
조사趙奢나라의 간첩을 잘 대접하고 보루를 증축한 뒤에 갑옷을 말아 〈무장을 가볍게 하고〉 급히 달려갔으며,
전단田單이 부녀자들로 하여금 성에 올라가서 항복을 약속하게 하고, 또 나라 장수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 항복하는 날에 처첩妻妾을 사로잡지 말기를 원한다.”고 말하고는 얼마 뒤에 꼬리에 불을 붙인 소떼를 내보내어 출전한 것이 이것이다.
辭强而進驅者 退也
적의 말이 완강하면서 급히 전진前進하는 것은 후퇴後退하기 위한 것이요,
原注
使來 言辭强壯하고 軍又進驅者 欲脅我而潛遁也
적의 사신使臣이 왔을 적에 말을 완강하게 하고 군대가 또 빨리 전진前進하는 것은 우리를 위협하고 은밀히 도망하고자 해서이다.
如吳與晉爭長 吳王 以帶甲二萬으로 去晉軍一里하니 聲動天地
나라가 나라와 맹주盟主패권覇權을 다툴 적에 오왕吳王이 갑옷을 입은 군대 2만 명으로 나라 군대와 1리쯤 떨어져 대치하니, 소리가 천지天地를 진동하였다.
晉使董視之한대 王曰 孤之事君 在今日이요 不得事君 亦在今日이니라
나라가 동갈董褐로 하여금 살펴보게 하였는데, 오왕吳王이 동갈에게 말하기를 “내가 나라 임금을 섬기는 것도 금일에 달려있고 나라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도 금일에 달려있다.” 하였다.
褐歸謂晉君曰 吳王之色 類有大憂하니 吳將毒我
동갈이 돌아와서 나라 군주에게 아뢰기를 “오왕의 얼굴빛에 큰 근심이 있는 듯하니, 오나라가 장차 우리에게 해독을 끼칠 것입니다.
不可與戰이라한대
저들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오나라가 먼저 맹약盟約하도록 허락하니, 오왕吳王회맹會盟을 맺고 마침내 돌아갔다.
秦與晉相拒할새 秦行人 夜戒晉師曰 兩軍之士皆未
나라가 나라와 서로 대치할 적에 나라 행인行人(외교관)이 밤에 나라 군대를 경계하여 말하기를 “두 나라 병사들이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明日 請相見也하노라한대
내일 서로 만나 회전會戰할 것을 청한다.” 하였다.
曰 使者目動而言肆하니 懼我也라하더니 秦果夜遁하니라
유병臾騈이 말하기를 “나라 사신의 눈이 두리번거리고 말을 함부로 하니,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였는데, 나라 군대가 과연 밤중에 도망하였다.
輕車輕車
輕車先出하여 居其側者 陳也
적이 경무장輕武裝전거戰車로 먼저 출동하여 옆에 주둔하는 것은 을 치기 위한 것이요,
原注
輕車先出하여 居於旁側者 將列陳而戰也
적이 경무장한 전차로 먼저 출동하여 옆에 주둔하는 것은 장차 진영陣營을 벌려 싸우려는 것이다.
無約而請和者 謀也
적이 약속이 없으면서 화친和親을 청하는 것은 계략計略이요,
原注
先無期約而驟來請和者 必有奸謀也
적이 먼저 약속이 없으면서 갑자기 와서 화친和親을 청하는 것은 반드시 간사한 계략이 있는 것이다.
將重寶하여 秦將賈孺한대 孺欲和어늘 漢王因其怠而擊之하고
한왕漢王역이기酈食其로 하여금 소중한 보물을 가지고 가서 나라 장수 가유賈孺에게 주자, 가유가 화친하고자 하였으나, 한왕漢王이 그들의 나태한 틈을 타서 공격하였다.
晉將李矩 拒劉暢할새 矩遣使奉牛酒請降하고 潛其精兵하고 見其弱卒한대
나라 장수 이구李矩석륵石勒의 장수 유창劉暢을 막을 적에 이구李矩가 사신을 보내어 소와 술을 올리고 항복할 것을 청하고는, 정예병을 은밀히 숨겨두고 약한 병사만 보여주었다.
유창이 〈이것을 보고 안심하고〉 병사들에게 연향宴享을 베풀어 모두 취하자, 이구李矩가 밤중에 습격하니, 유창이 겨우 자기 몸만 빠져나와 죽음을 면한 것이 이것이다.
奔走而陳兵車者 期也
적이 분주히 병사兵士전거戰車들을 진열하는 것은 싸움을 기약하기 위한 것이요,
原注
往來奔走而陳兵者 期約士卒欲戰也
적이 분주히 왕래하면서 군대를 진열하는 것은 병사들에게 기약하여 싸우고자 하는 것이다.
或曰 立旗爲表하여 與民期於下
혹자는 말하기를 “깃발을 세워 를 만들고 백성들과 함께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奔走以赴之
그러므로 분주히 달려가는 것이다.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전거戰車가 빨리 달려가고 보병步兵이 달려가서 에 이르러 마침내 멈춘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半進半退者 誘也
적이 반쯤 전진前進하고 반쯤 후퇴後退하는 것은 유인誘引하는 것이요,
原注
使士卒 半進半退하여 若亂之狀 是誘我也
적이 병사들로 하여금 반쯤 전진하고 반쯤 후퇴하여 혼란한 모양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우리를 유인하는 것이다.
仗而立者 飢也
적이 병장기兵仗器에 기대서있는 것은 굶주리기 때문이요,
原注
凡人乏食則困이라
사람들은 밥을 먹지 못하면 피곤하다.
倚兵仗而立者 知其三軍之飢也
그러므로 병장기에 기대서는 것이니, 적의 삼군三軍이 굶주림을 알 수 있는 것이다.
汲而先飮者 渴也
적이 물을 길어 먼저 마시는 것은 목마르기 때문이요,
原注
凡汲水 先取而飮者 知三軍之士皆渴也
무릇 적의 병사들이 물을 길어갈 적에 먼저 물을 떠서 마시는 것은, 삼군三軍의 병사들이 모두 목마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見利而不知進者 勞也
적이 이로움을 보고도 진격할 줄을 모르는 것은 수고롭기 때문이요,
原注
士卒見利而不前進者 知三軍之衆皆勞也
적의 병사들이 이로움을 보고도 전진하지 않는 것은, 삼군三軍의 무리가 모두 피로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鳥集者 虛也
적의 진영陣營에 새가 모이는 것은 진영이 빈 것이요,
原注
鳥集營壘之上이면 知其空虛無人하고 乃留形而遁去也
새들이 적의 진영陣營보루堡壘의 위에 모였으면, 적의 진영이 텅 비어 사람이 없는데도 사람의 모습을 남겨두고 도망갔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가 나라를 정벌할 적에 정나라 사람들이 장차 도망하려 하였는데, 첩자가 보고하기를 “초나라 막사에 까마귀가 앉아있으니, 초나라 군대가 도망간 것이다.” 하였고,
라하니 此皆見鳥集而知其虛也
나라가 나라를 정벌할 적에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성 위에 새가 있으니, 나라 군대가 도망간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모두 새가 진영에 모여 앉은 것을 보고 그 진영이 비었음을 안 것이다.
夜呼者 恐也
적이 밤중에 함성을 지르는 것은 두려워하기 때문이요,
原注
士卒遇夜喧呼者 將無膽勇而士卒恐懼也
적의 병사들이 밤중에 함성을 지르며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적의 장수가 담력과 용맹이 없어서 적의 병사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라 군대가 나라와 싸워 패하고는 밤새도록 병사들이 떠드는 소리가 있었던 것이 이것이다.
軍擾者 將不重也
적의 병사들이 소요騷擾하는 것은 적의 장수가 후중厚重하지 못해서요,
原注
軍士擾亂者 將不持重也 將能持重이면 軍自不擾亂矣
적의 병사들이 소요騷擾하고 혼란한 것은 장수가 후중厚重함을 지키지 못해서이니, 장수가 후중함을 지키면 병사들이 저절로 소요하거나 혼란하지 않게 된다.
주아부周亞夫의 군중에서 밤중에 놀라 장막 아래까지 소란하였으나, 주아부周亞夫가 굳게 누워서 일어나지 않았는데 잠시 후에 진정되었고, 장료張遼장사長社에 주둔할 적에 밤중에 군중이 갑자기 소란하였으나, 장료가 진영 가운데 서있자 잠시 후에 진정되었으니, 이는 장수가 능히 후중함을 지킨 것이다.
旌旗動者 亂也
적의 깃발이 움직이는 것은 적의 대오隊伍가 혼란스러운 것이요,
原注
旌旗動搖無定 是軍之部伍亂也
적의 깃발이 흔들리고 진정되지 못하는 것은 적군敵軍의 대오가 혼란한 것이다.
吏怒者 倦也
적의 관리官吏가 노여워하는 것은 적이 지쳐있는 것이요,
原注
將吏忿怒者 知其人情疲倦也 人情疲倦이면 吏不能使
적의 장수將帥관리官吏가 분노하는 것은, 적의 인정人情이 피곤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니, 인정이 피곤하면 관리가 부릴 수 없다.
多忿怒
그러므로 분노를 많이 내는 것이다.
殺馬肉食者 軍無糧也
적이 말을 잡아 말고기를 먹는 것은 군대에 양식이 없는 것이요,
原注
所以乘之而戰也어늘 今殺而食之者 知其軍之無糧也
말은 타고 싸우는 것인데, 이제 말을 잡아먹는 것은, 적의 군대에 양식이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不返其舍者 窮寇也
취사도구를 매달아놓고 자기의 숙소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궁지에 몰려있는 적이요,
原注
炊器也
는 취사하는 그릇이다.
懸缻於外하여 示不復炊하고 暴露於外하여 不復返舍者 窮寇也 凡焚舟破釜하여 欲決一戰者 皆窮寇耳
취사도구를 밖에 매달아놓아 다시 밥을 짓지 않을 것을 보이고 밖에서 노숙하며 다시 막사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궁지에 몰려있는 적이니, 무릇 배를 불태우고 가마솥을 깨뜨려서 한번 결사적으로 싸우고자 하는 자는 모두 궁지에 몰린 적이다.
原注
○ 一本 作粟馬肉食하고 軍無懸缻하며 不返其舍者 窮寇也
일본一本에는 “말에게 곡식을 먹이고 병사들에게 고기를 먹이며, 군대에 취사도구를 매달아놓지 않고 자기 막사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궁지에 몰린 적이다.
粟馬 謂以糧穀秣馬 肉食 謂殺牛馬饗士 軍無懸缻 悉破之하여 示不復炊 不返其舍 晝夜結部伍 是皆窮寇
‘말에게 곡식을 먹인다.’는 것은 양식과 곡식을 말에게 먹임을 이르고, ‘병사들에게 고기를 먹인다.’는 것은 소와 말을 잡아 병사들에게 먹임을 이르고, ‘군대에 취사도구를 매달아놓지 않는다.’는 것은 취사도구를 모두 깨뜨려서 다시는 밥을 짓지 않음을 보이는 것이고, ‘자기 막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밤낮으로 대오를 결속시키는 것이니, 이는 모두 궁지에 몰린 적이다.
必欲決一戰耳라하니 未知是否로라
반드시 한번 결사적으로 싸우고자 하는 것이다.” 하니, 옳은지 모르겠다.
諄諄翕翕하여 徐與人言者 失衆也
적장이 간곡하고 화합하여 천천히 병사들과 말하는 것은 병사들의 마음을 잃은 것이요,
原注
諄諄者 懇至之貌 翕翕者 和合之貌 懇至和合하여 徐緩而與人言者 失衆心也
순순諄諄은 간곡한 모양이요 흡흡翕翕은 화합한 모양이니, 적장이 간곡하고 화합하면서 천천히 병사들과 말하는 것은 병사들의 마음을 잃은 것이다.
賞者 窘也
적장이 자주 을 내리는 것은 군색窘塞한 것이요,
原注
頻數而賞者 恐其勢力窮窘而離去也
적장이 자주 상을 내리는 것은 세력이 궁핍하여 병사들이 배반하고 떠나감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數罰者 困也
적장이 자주 을 주는 것은 곤궁한 것이요,
原注
頻數而罰者 謂人力困弊하여 數罰以勵之也
적장이 자주 벌을 주는 것은 인력이 곤궁하고 피폐하여 자주 벌을 주어서 독려함을 이른다.
先暴而後畏其衆者 不精之至也
먼저 병사들을 포학하게 대하다가 뒤에 두려워하는 것은 정밀精密하지 못함이 지극한 것이요,
原注
先暴刻御下라가 後畏其人衆而叛者 威信不精之至也
먼저는 포학함과 각박함으로 아랫사람을 다스리다가 뒤에는 병사들이 배반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위엄威嚴신의信義가 정밀하지 못함이 지극한 것이다.
一說 先輕敵而後畏其衆 是料敵不精之至也라하니 未知是否로라
일설에 “먼저 적을 가볍게 여기다가 뒤에 적군을 두려워함은 적을 헤아림이 정밀하지 못함이 지극한 것이다.” 라고 하니, 옳은지 모르겠다.
來委謝者 欲休息也니라
적이 와서 사례하는 것은 휴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原注
以所親愛 來委質爲謝者 是勢力窮極하여 求欲休兵息戰也
적이 우리와 친근한 사람을 보내와서 폐백을 바치고 사례하는 것은, 세력이 궁극窮極하여 군대를 쉬고 전투를 중지하고자 해서이다.
兵怒而相迎하여 久而不合하고 又不相去어든 必謹察之니라
적군이 분노하며 서로 대치해서 오랫동안 교전하지 않고 또 서로 떠나지 않으면 반드시 삼가 살펴야 한다.
原注
兵以忿怒而相迎하여 旣久而不合戰하고 又不相解去 必謹伺察之 恐有奇伏也
적군이 분노로써 서로 맞아 대치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교전交戰하지 않고 또 군대를 해산하여 떠나가지 않으면 반드시 조심하여 살펴야 하니, 이는 적이 기병奇兵을 매복해두었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非貴益多 惟無武進이니 足以倂力하여 料敵取人而已니라
군대는 병력兵力이 더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무용武勇만으로 경솔하게 진격하지 말아야 하니, 충분히 힘을 길러서 적을 헤아려 적에게서 승리를 취할 뿐이다.
原注
非貴益之以多 若勢力旣均이어든 惟無剛武而輕進이니 但厮養足用하여 料敵之虛實而取勝於人而已
군대는 병력을 많이 증가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만약 세력이 이미 비슷하면 오직 강함과 무용武勇으로 가볍게 전진하지 말아야 하니, 다만 지위가 낮은 장병들에게도 재물을 충분히 주면서 적의 허실虛實을 헤아려 적에게서 승리를 취할 뿐이다.
舊本 雖作惟하니 今從之하노라
구본舊本에는 ‘’자가 ‘’자로 되어있으니, 이제 이를 따른다.
夫惟無慮而易於敵者 必擒於人이니라
깊은 생각이 없이 적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반드시 적에게 사로잡힌다.
原注
惟無深謀遠慮而輕易敵人者 必見擒於人하나니
깊은 계책과 먼 사려가 없이 가볍게 남을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적에게 사로잡힌다.
나라가 나라와 싸울 적에 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내가 우선 이들을 다 쓸어버리고 아침밥을 먹겠다.” 하고는 말에 갑옷을 입히지 않고 달려갔다가 나라에게 패하였으니, 이는 적을 깔보아 무용武勇으로 진격한 것이다.
卒未親附而罰之 則不服이니 不服이면 則難用也니라
병사들이 친히 따르지 않는데 벌을 주면 복종하지 않으니, 복종하지 않으면 쓰기가 어렵다.
原注
驟居將帥하여 恩信未施하여 卒未親附어늘 遽以刑罰齊之 則人心不服이니 人心不服이면 則難於使用이라
갑자기 장수의 지위에 올라 은혜恩惠신의信義가 베풀어지지 않아서 장병들이 친하게 따르지 않는데, 급히 형벌刑罰로써 통일하려 하면 인심人心이 복종하지 않으니, 인심이 복종하지 않으면 장병들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曰 臣素卑賤하여 士卒未附하고 百姓不信이라하고 是也
그러므로 전양저田穰苴가 말하기를 “이 평소 신분이 낮고 천하여 병사들이 따르지 않고 백성들이 믿지 않는다.” 하였고, 나라 오참伍參이 말하기를 “나라의 국정에 종사하는 자들이 새로 등용되어 명령을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卒已親附而罰不行이면 則不可用也니라
병사들이 친히 따르지만 형벌刑罰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면 병사들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原注
恩信素洽하여 士心親附로되 而法令不行이면 則驕而不可使用也
은혜와 신의가 평소에 흡족하여 장병들의 마음이 친히 따르지만, 장수가 법령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면 장병들이 교만하여 전투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令之以文하고 齊之以武 是謂必取니라
그러므로 문덕文德으로 명령하고 무용武勇으로 통일시키면, 이것을 일러 반드시 취한다고 하는 것이다.
原注
令之以文而親附之하고 齊之以武而整肅之하여 恩威相兼이라
그러므로 문덕으로써 명령하여 친히 따르게 하고 무용으로써 가지런히 하여 엄하게 정돈시켜서 은혜恩惠위엄威嚴을 겸하여야 한다.
是以 必能取勝이라
이 때문에 반드시 승리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
令素行하여 以敎其民이면 則民服하고 令素不行하여 以敎其民이면 則民不服이니 令素行者 與衆相得也니라
명령이 평소 행해져서 백성(병사)들을 가르치면 백성들이 복종하고, 명령이 평소 행해지지 못하고서 백성들을 가르치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으니, 명령이 평소 행해진 자(장수)는 병사들과 서로 마음이 맞는다.
原注
令素行於下하여 以之敎民이면 則民心自服하고 令素不行於下하여 以之敎民이면 則民心不服이라
명령이 평소 아랫사람들에게 행해져서 이로써 백성들을 가르치면 백성들 마음이 저절로 복종하고, 명령이 평소 아랫사람들에게 행해지지 못하였는데 이로써 백성들을 가르치면 백성들의 마음이 복종하지 않는다.
令素行者 上以信使民하고 民以信事上하나니 上下相得也
명령이 평소 행해진 자는 윗사람이 신의信義로써 백성을 부리고 백성이 신의로써 윗사람을 섬기니, 이는 상하上下가 서로 마음이 맞는 것이다.
論行軍이로되 而篇末 以恩威言之者 蓋恩以附之하고 威以齊之하여 剛柔兼得하고 恩威竝著然後 行軍而能制勝矣일새니라
행군行軍(군대의 출동)을 논하면서 끝에 은혜와 위엄을 가지고 말한 것은, 은혜로써 병사들을 따르게 하고 위엄으로써 병사들을 통일시켜서 가 겸하여 얻어지고 은혜와 위엄이 아울러 드러난 뒤에 군대를 출동하여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馬援討武都羌……羌衆窮困悉降 : 馬援(B.C. 14〜A.D. 49)은 光武帝 建武 13년(A.D. 37)에 武都의 參狼羌이 武都 변방의 여러 종족과 함께 침략하여 수령을 살해하자, 馬援이 4천여 병력을 거느리고 이들을 공격하였다. 馬援 軍이 氐道縣에 이르자 羌族들은 산 위에 주둔해 있었는데, 馬援은 편리한 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싸우지 않은 채, 적이 물과 풀을 구하는 길을 봉쇄하였다. 오랑캐는 마침내 곤궁하여 추장이 수십만 호를 거느리고 국경 밖으로 나가니, 여러 종족 만여 명이 모두 항복하였다. 이에 隴右 지방이 평정되었다. 《後漢書 권24 馬援列傳》
역주2 魏將郭淮……知其計而不渡 : 郭淮(?〜255)는 後漢 말기 曹操의 막하 장수이고, 劉昭烈은 蜀漢의 昭烈皇帝인 劉備를 가리킨다. 郭淮가 丞相 曹操의 兵曹議令史로 曹操를 따라 漢中에 갔을 적에 蜀漢의 劉備와 漢水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다. 이때 郭淮의 여러 장수들은 衆寡不敵이라 하여 물가에 의지해 陣을 쳐서 막자고 하였다.
그러나 郭淮는 “이것은 아군이 약한 것을 적에게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적을 꺾을 수 없으니, 좋은 계책이 아니다. 물가에서 멀리 떨어져 陣營을 설치하고 적을 끌어들여 적이 반쯤 건넌 뒤에 공격하면 敵軍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물가에서 멀리 진영을 설치하자, 劉備는 의심하여 감히 도하하지 못하였다. 《三國志 권26 郭淮傳》
역주3 : 예
역주4 漢王破曹咎於汜水 : 漢 高祖 4년(B.C. 203), 項羽가 魏나라 지역을 평정하러 가면서 大司馬인 海春侯 曹咎에게 당부하기를 “삼가 이곳 成皐를 지켜라. 만약 漢軍이 도전해 오더라도 절대로 교전하지 말고 저들로 하여금 東進하지 못하게만 하라. 내가 15일 후면 반드시 魏나라를 평정하고 돌아와 다시 장군과 함께 합류할 것이다.” 하였다.
項羽가 떠나자, 漢軍이 계속해서 楚軍에 도발했으나 楚軍은 출동하지 않았다. 漢나라 측에서는 병사들을 시켜 며칠 동안 曹咎를 욕하니, 曹咎는 크게 노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汜水를 건넜다. 장병들이 반쯤 건넜을 때 漢軍이 공격하여 대파하니, 大司馬 曹咎와 長史 司馬欣은 모두 汜水에서 자결하였다. 《史記 권8 高祖本紀》
역주5 公孫瓚敗黃巾賊於東光 : 公孫瓚(?〜199)은 後漢 말기 혼란기에 勃海 일대에 할거한 軍閥이다. 後漢 獻帝 初平 2년(191)년에 靑州의 黃巾賊이 勃海 지방을 침략하자, 公孫瓚이 東光에서 이들과 싸워 대파하였다. 東光은 河北省 滄州縣 서남쪽에 있다. 《後漢書 권9 孝獻帝紀》
역주6 薛萬(徹)[均]破竇(두)建德於范陽 : 竇建德은 隋나라 말기에 봉기하여 夏王을 칭한 軍閥이고, 薛萬均(?〜641)은 唐나라 초기의 명장이다. 唐 高祖 武德 연간에 薛萬均은 羅藝와 함께 范陽城에 의거하여 幽燕 일대를 지키고 있었는데, 竇建德이 10만 대군으로 范陽을 공격해 왔다. 薛萬均은 “衆寡不敵이니 마땅히 계략으로 승리해야 한다.” 하고, 羅藝에게 노약한 병사들을 거느리고 물을 막아서 적을 유인하게 한 다음, 자신은 정예 기병 100여 명을 거느리고 城 왼편에 매복하였다가 竇建德의 군대가 물을 건너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新唐書 권94 薛萬均列傳》
저본의 ‘徹’은 《新唐書》에 의거하여 ‘均’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 : 두
역주8 晉將陽處父(보)與楚軍……遂不戰而歸 : B.C. 627년, 晉나라 장수 陽處父가 蔡나라를 침략하자, 楚나라 장수 子上이 蔡나라를 구원하여 晉軍과 泜水를 끼고 대치하였다. 陽處父는 楚軍이 決戰하려 하지 않자, 子上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대가 만약 싸우고자 한다면 그대가 물을 건널 수 있도록 내가 30리를 후퇴하겠다. 시기는 그대가 정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물을 건널 수 있도록 물러나 달라. 군대를 오래 주둔시켜 物資를 허비하는 것은 그대 또한 이로움이 없을 것이다.”라고 통보하고 回信을 기다렸다.
子上이 도하하려 하자, 大孫伯이 말하기를 “안 됩니다. 晉나라 사람들은 신의가 없으니, 우리가 반쯤 건넜을 때 우리를 공격한다면 후회막급일 것입니다. 晉軍이 건너도록 우리가 물러나주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이에 子上이 30리를 퇴각하였다. 그러자 陽處父는 “楚軍이 도망갔다.”라고 선포하고는 싸우지 않고 돌아가니, 楚軍 또한 돌아갔다. 楚나라의 太子 商臣은 子上을 참소하기를 “晉나라의 뇌물을 받아먹고 싸움을 회피했으니 이는 楚나라의 수치입니다. 죄가 막대합니다.” 하니, 楚王이 子上을 죽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33년》
역주9 : 보
역주10 : 저
역주11 司馬子魚……遂決戰果勝 : 子魚는 楚나라의 公子 魴이다. B.C. 525년에 吳나라가 楚나라를 정벌하였는데, 楚나라 陽匄가 令尹이 되어 전쟁의 길흉을 점쳤는데 불길한 점괘가 나왔다. 司馬인 子魚가 말하기를 “우리가 上流를 점거하였으니, 무슨 까닭으로 불길하겠는가. 본래 우리 楚나라의 舊例에는 司馬가 점을 쳤으니, 내가 다시 점을 치겠다.” 하고, 거북에게 명하기를 “내가 나의 私兵을 거느리고 나가 싸우다가 죽거든, 楚軍이 그 뒤를 이어 진격하여 大勝하기를 바란다.” 하고 점을 쳤는데, 과연 그대로 길한 점괘가 나왔다. 이에 長岸에서 교전하다가 子魚는 먼저 전사하였으나, 楚軍이 그 뒤를 이어 진격하여 吳軍을 대패시켰다. 《春秋左氏傳 昭公 17년》
역주12 : 로
역주13 史記黃帝紀云……北逐獯鬻(훈육) : 炎帝는 神農氏의 후손이라 하는데, 黃帝가 阪泉의 들에서 세 번 싸워 물리치고, 蚩尤는 당시 軍閥로 머리가 구리로 되어있고 이마가 쇠로 되어있으며 불을 뿜어내는 전설적인 인물인데, 黃帝가 指南車를 만들어 涿鹿에서 싸워 물리쳤다 한다. 獯鬻은 북쪽 匈奴의 별칭이다.
역주14 : 치
역주15 北逐獯鬻 : 훈육
역주16 卽軒轅 : 헌원
역주17 東南爲陽……陰主殺 : 陰陽五行說에 있어 봄은 東이고 여름은 南이고 가을은 西이고 겨울은 北인데, 봄과 여름은 萬物을 자라게 하고 가을과 겨울은 萬物을 죽이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18 諸葛孔明……屯兵渭南 : 諸葛亮이 建興 12년(234)에 병력을 총동원하여 斜谷으로 진출해서 五丈原을 점거하고 司馬懿와 渭水 유역에서 대치하였는데, 이 때 諸葛亮은 渭水 남쪽에 주둔하였다. 《三國志 권35 諸葛亮傳》
역주19 曹操伐吳……士衆疾疫 : 後漢 獻帝 建安 13년(208) 7월, 曹操가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南征하여, 9월에 新野를 점령하고 劉備를 夏口로 패주시킨 다음 江陵으로 진군하여 한겨울인 12월에 赤壁江에 이르러 孫權과 劉備의 연합군과 대치하였다. 이때 전염병이 크게 유행해서 장병들이 많이 죽어 사기가 크게 떨어진 채로 孫權과 劉備의 연합군에게 火攻을 당하여 대패하고 회군하니, 이를 赤壁大戰이라 하는바, 이로 인해 魏‧吳‧蜀漢의 삼국시대가 정립하게 되었다. 《三國志 권1 武帝紀》, 《三國志 권1 武帝紀》
建武 23년(47), 馬援이 남방의 武陵蠻을 토벌하러 출정하였다가 험로에 막혀 진격하지 못하고 熱病 환자가 속출하여 고전하다가 많은 병사를 잃고 자신도 진중에서 병들어 죽었다. 자세한 내용은 66쪽 주 7)과 231쪽 주 2) 참조.
역주20 春秋左傳 三覆七覆 : 三覆은 앞과 뒤, 중앙의 세 곳에 병력을 나누어 伏兵을 설치하는 것이며, 七覆은 일곱 곳에 伏兵을 설치하는 것으로, 모두 《春秋左氏傳》에 보인다.
B.C. 714년에 北戎이 鄭나라를 침략하자, 鄭伯이 출전하였는데, 公子 突이 계책을 내기를 “용감하기만 하고 이기려는 강한 의지가 없는 戰士를 시켜 敵을 시험해보고는 속히 후퇴하게 하시고, 君께서는 세 곳에 군대를 매복하고서 적을 기다리소서. 北戎의 군대는 탐욕스러워 서로 구원하지 않습니다. 전면에 있는 자가 노획할 것을 보면 반드시 힘을 다하여 전진하고, 전진하다가 伏兵을 만나면 반드시 신속히 도망갈 것입니다. 後軍이 구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통쾌하게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鄭伯이 이 계책을 따라 대승을 거두었다. 《春秋左氏傳 隱公 9년》
B.C. 597년에 晉나라와 楚나라가 邲에서 會戰하였는데, 晉나라 士季가 鞏朔과 韓穿으로 하여금 敖山 앞 일곱 곳에 伏兵을 설치하였으므로 上軍이 패하지 않았다. 《春秋左氏傳 宣公 12년》
역주21 : 삭
역주22 分險者……無全氣 : 이 내용은 《尉繚子》 〈攻權〉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23 劉昭烈遣吳班……不聽諸將擊之 : 蜀漢 章武 2년(222)에 劉備가 大軍을 이끌고 와서 吳나라를 공격하면서, 먼저 吳班을 보내어 수천 명의 병력으로 평지에 진영을 세우고 도전하게 하였다. 吳나라의 諸將들이 모두 이를 공격하려 하였으나, 陸遜은 말하기를 “여기에는 반드시 적의 속임수가 있을 것이다. 좀 더 두고보자.”고 하였는데, 뒤에 확인해보니, 과연 蜀漢의 복병이 숨어있었다. 《三國志 권58 陸遜傳》
역주24 楚潘黨望塵 使騁而告晉兵之來 : B.C. 597년 6월, 晉나라와 楚나라가 邲에서 會戰할 적에, 晉나라 장수 趙旃이 밤에 楚軍의 陣營으로 가서 자신은 軍門 밖에 자리를 펴 앉고, 부하들만 楚軍의 軍門 안으로 쳐들어가게 하였다. 楚王이 노여워 左廣을 이끌고 趙旃을 추격하니, 趙旃이 수레를 버리고 숲 속으로 달아났다. 楚王도 수레에서 내려 추격해서 격투를 벌이자, 晉軍이 이를 보고 兵車를 보내었다. 楚나라의 潘黨이 멀리서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사람을 급히 보내어, “晉軍이 온다.”고 알리니, 楚나라 사람들도 王이 晉軍의 포위망에 빠져들 것을 우려하여 마침내 나와서 陣을 쳤다. 《春秋左氏傳 宣公 12년》
左廣은 戰車 15乘으로 이루어진 楚王의 親衛隊인바, 楚王은 총 30乘의 戰車로 親衛隊를 만들고 이를 左右廣으로 나누었다.
역주25 趙奢善食(사)秦間而增壘後 卷甲而趨 : B.C. 270년에 秦나라가 韓나라를 치기 위해 閼與로 진군해 오자, 趙王은 趙奢를 將軍으로 임명하여 군대를 파견하였는데, 趙奢가 秦軍을 대파하고 閼與를 구원하였다. 자세한 과정과 戰術에 대해서는 83쪽 주 1) 참조.
역주26 : 사
역주27 田單使女子……後收火牛出戰 : B.C. 279년, 齊軍이 卽墨에서 燕軍에 포위되어 농성전을 벌일 적에 田單은 무장한 병사들을 모두 숨겨두고 노약자와 부녀자들만 城 위에 올려보낸 다음, 使者를 燕軍의 陣中으로 보내어 항복을 약속하게 하고, 燕나라 장수에게 편지를 보내어 城이 항복하는 날에 妻妾을 사로잡지 말기를 원한다고 말하여 그들을 방심하도록 하였다. 자세한 과정과 戰術은 81쪽 주 3) 참조.
역주28 : 갈
역주29 吳與晉爭長……吳王旣會遂還 : 이 내용은 《國語》 권19 〈吳語〉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30 : 은
역주31 秦與晉相拒……秦果夜遁 :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文公 13년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32 臾騈 : 유병
역주33 漢王……漢王因其怠而擊之 : B.C. 207년, 漢王(劉邦)이 軍隊를 이끌고 秦나라 수도 咸陽으로 진격할 적에 병사 2만 명으로 嶢關에 진영을 설치하니, 張良이 말하기를 “臣이 들으니 秦軍의 장수 賈孺는 이익에 쉽게 움직인다고 하니, 우선 堡壘에 머무신 채 여러 산에 旗幟를 증설하여 疑兵을 만들어 적을 의혹에 빠지게 하면서, 酈食其로 하여금 소중한 보물을 가지고 가서 주도록 하십시오.” 하였다. 賈孺가 과연 秦나라를 배반하고 沛公과 화친하여 함께 서쪽으로 咸陽을 습격하려 하였으나, 漢王은 賈孺의 군대가 따르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화친을 받아들이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여 大破하였다. 《史記 권55 留侯世家》
역주34 使酈食其 : 역이기
역주35 : 담
역주36 晉將李矩……暢僅以身免 : 이 내용은 《晉書》 권63 〈李矩列傳〉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37 車驟徒趨 至表乃止 : 이 내용은 《周禮》 〈夏官 司馬〉에 “中冬에 大閱을 가르치는데, 먼저 여러 官吏들과 기약하고 뭇 백성을 警戒하여 戰法을 훈련한다.……中軍이 작은 북으로 令鼓를 치는데, 鼓手는 모두 세 번을 친다. 司馬가 방울을 흔들면 뭇 관리들은 기를 세우며, 戰車와 步兵은 모두 북을 치며 행군한다. 방울이 울리면 전차와 보병은 모두 나아가 表(표시물)에 이르러 마침내 멈춘다. 세 번 북을 치고 방울을 흔들면 뭇 관리들은 기를 눕히고 전차와 보병은 모두 앉는다. 다시 세 번 북을 치고 방울을 흔들면 기를 세우며, 전차와 보병이 모두 일어나 북을 치며 행군한다. 방울이 울리면 전차가 빨리 달려가고 보병이 달려가서 表에 이르러 마침내 멈춘다.[中冬敎大閱 前期群吏 戒衆庶修戰法……中軍以鼙令鼓 鼓人皆三鼓 司馬振鐸 群吏作旗 車徒皆作鼓行 鳴鐲 車徒皆行 及表乃止 三鼓摝鐸 群吏弊旗 車徒皆坐 又三鼓振鐸 作旗 車徒皆作鼓進 鳴鐲 車驟徒趨 及表乃止]”라고 보인다.
역주38 楚伐鄭……楚兵去矣 :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莊公 28년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39 晉伐齊……齊師遁矣 :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襄公 18년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40 晉軍與楚戰而敗 終夜有聲 :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宣公 12년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41 周亞夫軍中夜驚……俄頃而定 : 景帝 3년(B.C. 154)에 吳나라와 楚나라가 반란을 일으키자 周亞夫는 이들을 평정하기 위해 출전하였는데, 한밤중에 軍中이 놀라 내부에서 서로 공격하여 소란이 일어났다. 周亞夫가 태연히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얼마 안 되어 소란이 진정되었다.
역주42 張遼屯長社……有頃卽定 : 張遼(169〜222)는 曹操의 막하에 있던 명장으로, 이 내용은 215쪽 주 2)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43 : 缶와 같다.
역주44 : 삭
역주45 齊與晉戰……爲晉所敗 : 《春秋左氏傳》 成公 2년에 보이는바, ‘吾姑翦此而朝食’은 당시 晉나라의 郤克이 제후들과 연합하여 齊나라를 공격하자, 齊 頃公이 출전하여 한 말이다.
역주46 田穰苴(양저)曰……百姓不信 : 晉나라와 燕나라가 연합하여 齊나라를 침공하자, 景公이 미천한 田穰苴를 大將으로 기용하였는데, 田穰苴가 景公이 총애하는 신하를 監軍으로 삼아 데려가게 해달라며 아뢴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73쪽 주 2) 참조. 田穰苴는 대대로 大司馬가 되어 司馬氏의 시조가 되었으므로 司馬穰苴라고 칭하는바, 그에 대한 열전이 《史記》 권64에 실려있다.
역주47 田穰苴 : 양저
역주48 楚伍參曰……未能行令 : B.C. 597년 楚나라가 鄭나라를 정벌하자, 晉나라가 鄭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군대를 출동시켰다. 晉나라 군대가 黃河를 건너자, 당시 楚나라의 令尹 孫叔敖는 싸울 뜻이 없어 군대를 還軍시키려 하였는데, 晉나라와의 전쟁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伍參이 楚나라 군주에게 晉나라와 싸워야 한다고 설득하며 한 말이다. 《春秋左氏傳》 宣公 12년에 보인다.

손무자직해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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