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用兵之法은 馳車千駟와 革車千乘과 帶甲十萬이라
原注
凡用兵之法
은 馳騁之車一千駟
니 一車
에 하여 凡四馬
라 故曰駟
요 以皮縵其輪
하고 籠其轂
하여 而號爲革車者 又一千乘
이니 卽駟也
라
古者에 每兵車一乘에 甲士三人이요 步卒七十二人이요 又二十五人이 將重車在後하니 凡百人也라
計兵車一千駟와 重車一千輛하면 帶甲者共一十萬衆也라
原注
○ 按周家井田之制에 八家爲井이요 四井爲邑이요 四邑爲丘요 四丘爲甸이니
甸一十六井에 出戎馬四匹과 牛一十六頭와 兵車一乘과 重車一輛과 甲士三人과 步卒七十二人과 將重車者二十五人하나니 是止有兵車重車라
兵車
는 一曰小戎
이요 一曰 革車
니 이라하니 是革車
는 卽兵車也
요
이라하니 是小戎
은 卽革車也
니 以之而戰
이면 則曰攻車
라
其重車는 卽輜重之車니 載衣糧器仗者니 下文丘車是也라
蓋井田之制는 驗丘畝하여 出牛而駕大車하니 是以載輜重耳요 下營에 以之爲守라 故曰守車라
하며 下文
에 又以馳車爲攻城之輕車
하고 丘牛
를 解爲大牛
하고 大車
를 解爲長轂之車
오
若依此說이면 則武王革車三百輛은 當時止載衣糧器械리니 孟子何必言之시리오
大車를 作長轂車하면 而小戎文茵暢轂은 則又皆非也라
吾意古者車戰에 只有革車하니 革車는 卽長轂車也라
若載衣糧器仗
이면 則有丘牛大車
하니 止則因用以守
하고 別有輕車
하니 或馳之
하여 以陷堅陳
하고 邀强敵
하고 遮走
하며 攻城
에 又別有所謂衝車, 臨車,
等車
하니 乃國家預爲之備
요 非出於井田之賦
라
不然이면 革車千乘에 旣用馬四千匹하고 而馳車에 又用四千匹하니 丘牛를 又將何所用哉아
千里饋糧에 內外之費와 賓客之用과 膠漆之材와 車甲之奉이 日費千金이니 然後에 十萬之師를 擧矣라
原注
饋送糧食於千里之外
하면 內而國家
와 外而軍前
에 皆有所費
하고 接待賓客
에 皆有所用
하고 與夫膠漆所用之材
와 車甲所奉之物
이 計一日之內
에 이니 然後
에 十萬之師
를 方可得而擧矣
라
原注
其用戰也 貴在速而必勝하니 若相持日久면 則鈍吾之兵鋒하고 挫吾之銳氣라
原注
若
陽
하여 久而不下
어늘 張巡, 許遠
이 設奇
하여 殺賊甚衆
하니 後雖城陷
이나 而子奇, 令狐之力
이 已困矣
라
夫鈍兵挫銳하고 屈力殫貨면 則諸侯乘其弊而起하리니 雖有智者나 不能善其後矣니라
原注
若夫鈍己之兵鋒하고 挫己之銳氣하며 困吾軍之力하고 盡吾國之貨하면 則隣國諸侯 乘我之疲弊하여 起兵而襲之하리니 雖有智謀之士라도 不能取善於後矣라
若
하고 後又加兵於齊晉
하여 盟於黃池
하고 久而不歸
라가 越乘其弊
하여 襲而滅之
하니 當時
에 雖有智謀之士
나 何嘗能爲善謀於後乎
아
原注
故로 兵聞拙速而勝이요 未覩欲取巧하여 與人持久하여 而至於鈍兵挫銳也라
故로 不盡知用兵之害者는 則不能盡知用兵之利也니라
原注
故로 爲將者 不能盡知用兵屈力殫貨之害하면 則不能盡知用兵拙速取勝之利也라
原注
善能用兵者는 役不再籍於民이니 謂一擧兵而取勝이요 不可再驗籍而徵兵於民也라
糧不三載於國은 謂一饋糧而卽止요 不可三次取糧於國也라
原注
國家貧困於師旅者는 因其糧之遠輸也니 糧旣遠輸면 則百姓皆貧乏矣라
管子曰 粟行三百里면 則國無一年之積하고 粟行四百里면 則國無二年之積하고 粟行五百里면 則衆有饑色이라하니
今以七十萬家之力으로 千里饋糧하여 供給十萬之衆이면 百姓이 安得不貧乎리오
近師者 貴賣하니 貴賣면 則百姓財竭하고 財竭이면 則急於丘役이니라
原注
必貪利
하여 而貴賣其物於遠來輸糧之人
이면 則財不得不空竭矣
요 百姓財物空竭
이면 則急迫於丘役供給之事
라
力屈財殫하여 中原이 內虛於家하면 百姓之費 十去其七이요
原注
民之力已困하고 國之財已盡하면 原野之民이 家業內虛니 度其所費컨대 十分中에 去其七分矣라
公家之費는 破車罷馬하며 甲冑, 矢弓, 戟盾, 矛櫓, 丘牛大車에 十去其六이니라
原注
公家費用之物은 車破損而馬罷困하며 至於甲冑, 矢弓, 戟盾, 矛櫓, 丘牛大車하여도 或損壞하고 或遺失하여 十分中에 去其六分矣라
矢는 箭也요 戟은 有枝兵也니 長者는 二丈四尺이요 短者는 一丈二尺이라
矛는 鉤也니 長二丈이요 櫓는 大楯이니 車上之蔽也라
丘牛는 古者에 一丘에 計一十六井하여 出牛一頭하니라
張預는 以破車罷馬로 爲攻城之馳車하고 以丘牛大車로 爲載輜重之革車라하니 不知何所據而云然이로라
故
로 智將
은 務食於敵
이니 食敵一鍾
이면 當吾二十鍾
이요 𦯡
一石
이 當吾二十石
이니라
原注
故로 有智之將은 務取糧食於敵國하나니 食敵人一鍾之粟이면 當吾國之二十鍾也라
𦯡
는 豆萁也
요 秆
은 禾
也
니 因敵人禾豆成熟在野
하여 而取得一石
이면 當吾國之二十石也
라
秦征匈奴에 使天下轉輸할새 率三十鍾而致一石하고 漢武通西南夷에 千里饋糧할새 率十餘鍾而致一石하니
此云 食敵一鍾이면 當吾二十鍾하고 𦯡秆一石이 當吾二十石은 孫子大約言之也라
原注
如田單守卽墨에 令間使誑燕人하여 使劓齊之降卒하고 又誑使燕人으로 掘城外塜墓하니
原注
使吾士卒로 爭奮取敵人之利者는 是는 以貨賂誘之也니
如後漢荊州剌史度尙이 候軍士出獵하고 密使人焚其珍積하니 獵者還하여 莫不泣涕어늘
尙因激之曰 卜陽潘鴻等이 財貨足富數世하니 諸卿이 但不倂力耳라
趙太祖命將伐蜀
할새 諭之曰 所獲
藏
을 悉以饗士
하리니 國家所欲
은 惟土疆耳
라한대
故
로 車戰
에 得車十乘以上
이면 賞其先得者
하고 而
旌旗
하며
原注
故로 用軍與敵人戰에 若得車十乘已上이어든 賞其先得車者하고 而更換敵人之旌旗니
言不可徧賞이요 但賞其倡謀陷陳先獲者하여 以激勸之耳라
原注
所獲一車에 該步卒七十二人하여 十車에 共七百二十人이니 當以恩信撫養之하여 俾爲我用也라
原注
故로 兵貴拙速而勝이요 不貴巧而曠日持久하여 以致屈力殫貨하여 而爲他人乘我之弊耳라
故로 知兵之將은 民之司命이요 國家安危之主也니라
原注
故로 知兵之將은 乃爲生民之司命이요 國家安危之主宰也라
原注
묘당廟堂의 위에서 계산이 이미 결정된 뒤에 군대를 일으켜 적과 싸운다.
그러므로 〈작전作戰〉을 두 번째 편으로 삼은 것이다.
무릇 용병用兵하는 법은 치달리는 수레[馳車]가 1천 사駟이고, 혁거革車가 1천 승乘(輛)이고, 무장한 갑사甲士[帶甲]가 10만 명이다.
原注
무릇 용병하는 법은 치달리는 수레가 1천 사駟이니, 한 수레에 두 복마服馬와 두 참마驂馬가 있어서 모두 네 필의 말이므로 사駟라 하였고, 가죽으로 바퀴통을 감싸서 혁거革車라고 이름한 것이 또 1천 승乘이니, 바로 사駟이다.
옛날에 병거兵車 1승乘마다 갑사甲士가 3명이고 보졸步卒이 72명이고 또 25명이 짐수레인 치중거輜重車를 가지고 뒤에 있어 모두 100명이다.
병거兵車 1천 사駟와 혁거革車 1천 양輛(乘)을 총 계산하면 무장한 갑사甲士가 모두 10만의 무리이다.
原注
○ 살펴보건대
주周나라의
정전제도井田制度는 8
가家를
정井으로, 4
정井을
읍邑으로, 4
읍邑을
구丘로, 4
구丘를
전甸으로 삼았다.
小戎
1전甸인 16정井에 융마戎馬(軍馬) 4필匹과 소 16마리와 병거兵車 1승乘과 치중거輜重車 1양輛과 갑사甲士 3명과 보졸步卒 72명과 치중거輜重車를 가지고 있는 자 25명을 내니, 이는 다만 병거兵車와 치중거輜重車만 있는 것이다.
병거兵車는 일명 소융小戎이라 하고 일명 혁거革車라 하니, 《맹자孟子》에 “혁거革車가 3백 양輛이다.” 하였으니, 이 혁거革車는 바로 병거兵車이고,
《시경詩經》에 “소융小戎은 뒤턱이 얕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무늬 있는 호피 방석에 곡轂이 길다.” 하였으니, 이 소융小戎은 바로 혁거革車이니, 이것을 가지고 전투를 하면 공거攻車라 한다.
중거重車는 바로 치중輜重의 수레이니, 의복과 양식과 병기와 의장儀仗을 싣는 것이니, 아래의 구거丘車가 이것이다.
정전제도井田制度는 구丘의 묘수畝數를 대조하여 소를 내어서 대거大車(큰 짐수레)를 멍에하니 이로써 치중輜重을 싣는 것이요, 진영陣營을 만들 때에는 이것을 가지고 수비하므로 수거守車라 한다.
위魏 무제武帝(曹操)와 두목杜牧과 장예張預 삼가三家의 주소註疏에는 어찌하여 치거馳車를 전거戰車라 하고 혁거革車를 치중거輜重車라 하였으며, 아랫글에 또 치거馳車를 성城을 공격하는 가벼운 수레라 하고 구우丘牛를 대우大牛라 해석하고 대거大車를 장곡長轂의 수레라 해석하였는가?
만약 이 설說을 따른다면 무왕武王의 혁거革車 3백 양輛은 당시에 다만 의복과 양식과 병기를 실었을 뿐이니, 맹자孟子께서 하필 이것을 말씀하였겠는가.
대거大車를 장곡거長轂車라고 한다면 〈소융小戎〉詩의 문채 나는 호피방석과 곡轂이 길다는 것은 또 모두 맞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건대 옛날 전차전戰車戰에 다만 혁거革車만 있었으니, 혁거革車는 바로 장곡거長轂車이다.
만약 의복과 양식과 병기와 의장을 싣게 되면 구우丘牛의 큰 수레가 있었으니 멈추면 사용하여 수비하였고, 별도로 경거輕車가 있었으니 혹 치달려서 견고한 적진을 무너뜨리며, 강한 적을 맞이하여 싸우고 패주하는 적군을 요격하며, 성城을 공격할 때에는 또 별도로 이른바 충거衝車, 임거臨車, 천온거輤轀車 등이 있었으니, 이는 바로 국가에서 미리 대비하는 것이요, 정전井田의 부세賦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혁거革車 1천 승乘에 이미 말 4천 필匹을 사용하였고 치거馳車에 또 4천 필匹을 사용하였으니, 구우丘牛를 또 장차 어느 곳에 쓰겠는가.
천 리에 군량을 공급하면 내외內外의 비용과 빈객賓客의 비용과 아교와 옻칠의 재료와 수레와 갑옷의 받듦으로 하루에 천금千金을 소비하니, 그런 뒤에야 10만 명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것이다.
原注
양식을 천 리 밖에 수송하게 되면 안으로는 국가와 밖으로는 군대에 모두 비용이 있게 되고, 빈객賓客을 접대함에 모두 사용하는 바가 있으며, 아교와 옻칠로 사용하는 재료와 수레와 갑옷으로 들어가는 물건이 계산하면 하루에 천금千金의 많음을 소비해야 하니, 그런 뒤에야 10만 명의 군대를 비로소 동원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戰爭에 사용함은 신속히 하여 승리해야 하니, 오래 끌면 병기를 무디게 하고 병사들의 예기銳氣를 꺾게 된다.
原注
전쟁戰爭에 사용함은 중요함이 신속히 하여 반드시 승리함에 있으니, 만약 서로 대치하여 시일이 오래되면 우리 병기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우리 병사들의 예기銳氣를 꺾게 된다.
原注
적의 성城을 공격할 적에 오랫동안 함락시키지 못하면 그 힘이 반드시 곤궁하고 쇠함에 이른다.
예컨대 안녹산安祿山의 난에 윤자기尹子奇와 영호조令狐潮 등이 수양성睢陽城을 공격하여 오랫동안 함락하지 못하자,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이 기이한 계책을 내어서 적을 매우 많이 죽였으니, 뒤에 비록 수양성睢陽城이 함락되었으나, 윤자기尹子奇와 영호조令狐潮의 힘이 이미 곤궁해진 것과 같다.
오랫동안 군대를 밖에 동원하면 국가의 재용財用이 부족하게 된다.
原注
오랫동안 밖에 군대를 동원하게 되면 국가에서 공급하는 비용이 반드시 부족하게 된다.
예컨대 한漢 무제武帝가 전쟁을 계속하여 끝까지 토벌討伐해서 오랫동안 해산하지 못하여 국가의 재정이 텅 비고 중원中原이 피폐한 뒤에야 비로소 애통哀痛해하는 조서를 내린 것이 이것이다.
병기를 무디게 하고 병사들의 예기銳氣를 꺾으며 힘이 쇠하고 재물을 다하게 되면 제후諸侯들이 그 피폐한 틈을 타서 일어날 것이니, 비록 지혜로운 자가 있더라도 그 뒤를 잘 수습할 수 없는 것이다.
原注
만약 우리 병기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우리 병사들의 예기銳氣를 꺾으며, 우리 군대의 힘을 곤궁하게 하고 우리나라의 재화財貨를 다 쓰게 되면 이웃 나라의 제후諸侯들이 우리의 피폐한 틈을 타서 군대를 일으켜 습격할 것이니, 비록 지모智謀가 있는 인사人士라도 그 뒤를 잘 수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컨대 오吳나라가 초楚나라를 정벌하여 수도인 영郢 땅으로 쳐들어가고, 뒤에 또 제齊나라와 진晉나라에게 공격을 가하여 황지黃池에서 맹약하고 오랫동안 본국本國으로 돌아가지 않다가, 월越나라가 그 피폐한 틈을 타서 습격하여 오吳나라를 멸망시켰으니, 당시에 비록 지모智謀가 훌륭한 인사人士가 있었으나 어찌 일찍이 뒤를 잘 도모하여 수습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군대는 졸속拙速히 하여 승리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공교롭게 하여 오랫동안 지체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으니,
原注
그러므로 군대는 졸속拙速하게 하여 승리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공교로움을 취하고자 해서 적과 지구전持久戰을 하여 병기를 무디게 하고 병사들의 예기銳氣를 꺾음에 이름은 보지 못하였다.
군대를 오랫동안 동원하고 국가가 이로운 경우는 있지 않았다.
原注
군대를 오랫동안 밖에 동원하고 국가가 이롭게 된 경우는 일찍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용병用兵의 폐해를 다 알지 못하는 자는 용병用兵의 이로움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原注
이 때문에 장수 된 자가 용병用兵함에 힘이 쇠하고 재화를 다하는 폐해를 다 알지 못하면 용병用兵함에 졸속拙速하게 하여 승리를 취하는 이로움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병역兵役을 두 번 장부에 올리지 않고 군량을 세 번 수송하지 않으며,
原注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병역兵役을 백성들에게 두 번 부과하지 않으니, 한 번 군대를 일으켜 승리하고 재차 호적을 대조하여 백성들을 징병徵兵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군량을 나라에서 세 번 수송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 번 군량을 수송하였으면 곧 멈추고, 세 번 국가에서 군량을 취해 가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사용하는 기물器物은 본국本國에서 취하고 군량軍糧은 적지敵地에서 이용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군대의 식량을 충족할 수 있는 것이다.
原注
기용器用은 본국에서 취하고 군량은 적지敵地에서 이용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군대의 식량을 풍족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가 군대로 인하여 빈곤貧困해지는 것은 군량을 멀리 수송하기 때문이니, 멀리 수송하면 백성들이 빈곤해진다.
原注
국가가 군대로 인하여 빈곤해지는 것은 군량軍糧을 멀리 수송하기 때문이니, 군량軍糧을 멀리 수송하면 백성들이 모두 빈곤하고 궁핍하게 된다.
《관자管子》에 이르기를 “곡식(군량)을 300리를 수송해 가면 국가에 1년의 저축이 없게 되고, 곡식을 400리를 수송해 가면 국가에 2년의 저축이 없게 되고, 곡식을 500리를 수송해 가면 사람들이 굶주린 기색이 있다.” 하였으니,
이제 70만 가호家戶의 힘으로 천 리에 군량을 수송하여 10만 명의 병사들에게 공급하면 백성들이 어찌 빈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군대와 가까이 있는 자들은 비싼 값으로 물건을 파니, 비싼 값으로 물건을 팔면 백성들의 재정이 고갈枯渴되고, 재정이 고갈되면 구역丘役이 급하게 된다.
原注
백성 중에 군대와 가까이 있는 자들은 반드시 이익을 탐하여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멀리 와서 군량軍糧을 수송하는 사람들에게 비싸게 파니, 이렇게 되면 재물이 고갈되지 않을 수가 없으며, 백성들의 재물이 고갈되면 구역丘役을 공급하는 일이 급하게 된다.
구역丘役이라는 것은 구전丘甸의 수를 대조하여 부세賦稅를 바치는 것이니, 예컨대 춘추시대春秋時代의 노魯 성공成公 때에 구갑丘甲을 만든 따위와 같은 것이다.
힘이 쇠하고 재정이 다하여 중원中原이 안으로 집이 텅 비게 되면 백성의 비용이 10분 가운데 그 7분을 잃게 되고,
原注
백성의 힘이 이미 곤궁하고 국가의 재정이 이미 다하면 들에 있는 백성들의 가업家業이 안에서 텅 비게 되니, 그 허비한 바를 헤아려보면 10분 가운데 그 7분을 잃게 되는 것이다.
국가의 비용은 수레가 부서지고 말이 피폐하며 갑옷과 투구, 활과 화살, 창과 방패, 갈고리 창과 큰 방패, 구우丘牛의 대거大車가 10분에 그 6분을 잃게 된다.
原注
국가가 소비하는 물건은 수레가 파손되고 말이 피폐하고 지치는 것과, 갑옷과 투구, 활과 화살, 창과 방패, 갈고리 창과 큰 방패, 구우丘牛가 끄는 대거大車에 이르기까지 혹은 파손되고 혹은 유실되어서 10분 가운데 그 6분을 잃게 된다.
시矢는 화살이고 극戟은 가지가 있는 병기이니, 긴 것은 2장丈 4척尺이고 짧은 것은 1장丈 2척尺이다.
모矛는 갈고리 창이니 길이가 2장丈이고, 노櫓는 큰 방패이니 수레 위에서 막는 것이다.
구우丘牛는 옛날 한 구丘에 16정井을 계산하여 소 한 마리를 내었다.
대거大車는 바로 치중거輜重車이니, 의복과 양식과 병기와 의장儀仗을 싣는 따위이다.
장예張預는 ‘파거파마破車罷馬’를 성城을 공격하는 치거馳車라 하고, ‘구우대거丘牛大車’를 치중輜重을 끄는 혁거革車라 하였으니, 무엇을 근거로 하여 이렇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장수는 적지敵地에서 양식을 취하는 것을 힘쓰니, 적지에서 1종鍾의 양식을 취하면 우리의 20종鍾에 해당하고, 적지에서 콩깍지와 볏짚 1석石을 취하면 우리의 20석石에 해당한다.
原注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장수는 적국에서 양식을 취함에 힘쓰니, 적의 1종鍾의 곡식을 먹으면 우리나라의 20종鍾에 해당하는 것이다.
종鍾은 양量의 이름이니, 6곡斛 4두斗를 담는다.
𦯡는 콩깍지이고 간秆은 볏짚이니, 적의 벼와 콩이 익어서 들에 있을 때를 이용해서 1석石을 취하여 얻으면 우리나라의 20석石에 해당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1곡斛을 1석石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2곡斛을 1석石이라 한다.
진秦나라가 흉노匈奴를 정벌하면서 천하로 하여금 양식을 수송하게 하였는데, 대체로 30종鍾에 1석石을 가져왔고, 한漢 무제武帝는 서남쪽의 오랑캐와 교통할 적에 천 리의 거리에 양식을 수송하여 대체로 10여 종鍾에 1석石을 가져왔으니,
여기서 ‘적의 1종鍾을 먹으면 우리의 20종鍾에 해당하고, 콩깍지와 볏짚 1석石은 우리의 20석石에 해당한다.’고 말한 것은 손자孫子가 대략으로 말한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병사들이 능히 적敵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격동하여 분노함에 있는 것이다.
전단田單이 즉묵卽墨을 지킬 적에 간사間使(첩자인 사자使者)로 하여금 연燕나라 사람들을 속여서 제齊나라의 항복한 병사들을 코 베게 하고, 또 속여서 연燕나라 사람들이 성城 밖에 있는 무덤을 도굴하는 것처럼 꾸몄다.
이에 즉묵성卽墨城 안에 있는 제齊나라 병사들이 모두 분노하여 결사적으로 싸우고자 하였는데, 뒤에 소 꼬리에 불을 붙인 기세를 인하여 다투어 뛰쳐나가 공격해서 마침내 제齊나라의 70여 성읍城邑을 회복하였다.
原注
우리 병사들로 하여금 다투어 분발해서 적敵의 이로움을 취하게 하는 것은 재화財貨로써 우리 병사들을 유인하는 것이다.
예컨대 후한後漢의 형주자사荊州剌史 도상度尙이 병사들이 사냥 나갔을 때를 기다렸다가 은밀히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진귀한 화물貨物과 노적露積을 불태우게 하니, 사냥 나갔던 자들이 돌아와서 보고는 모두 통탄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도상度尙은 인하여 이들을 격동시키기를 “복양卜陽의 반홍潘鴻 등은 재화財貨가 풍족하여 몇 세대를 지낼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다만 힘을 합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가 잃은 것은 그리 많지 않으니, 적은 것을 어찌 개의介意하겠는가.”라고 하니, 병사들이 모두 분발하고 날뛰며 나가 싸울 것을 원하여 마침내 반홍潘鴻을 격파하였다.
그리고 조태조趙太祖가 장수에게 명하여 촉蜀을 정벌할 적에 타이르기를 “얻은 창고의 재화財貨를 모두 병사들에게 나누어줄 것이니, 국가에서 바라는 것은 오직 적敵의 강토疆土뿐이다.” 하였다.
이 때문에 장수와 관리들이 결사적으로 싸워서 이르는 곳마다 모두 적敵을 무찔러 마침내 촉蜀을 평정하였다.
그러므로 전거전戰車戰에 적敵의 수레 10승乘 이상을 얻었으면 맨 먼저 얻은 자에게 상을 주고 적敵의 깃발을 바꾸며,
原注
그러므로 군대를 운용하여 적敵과 싸워서 만약 적敵의 수레 10승乘 이상을 얻었으면 맨 먼저 수레를 얻은 자에게 상을 주고 다시 적敵의 깃발을 우리 깃발로 바꾸는 것이다.
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상 줄 수가 없어서 다만 그중에 계략을 내어 적진敵陣을 무찔러서 먼저 얻은 자에게 상 주어 격동시키고 권장함을 말한 것이다.
적敵에게서 얻은 수레를 우리 수레와 뒤섞어서 타게 하고,
原注
노획한 적敵의 수레를 우리 수레와 서로 뒤섞어서 타게 하는 것이다.
原注
노획한 적敵의 수레 한 대에 보졸步卒이 72명이어서, 수레 열 대면 모두 720명이 되니, 마땅히 은혜와 신의로써 이들을 어루만지고 길러서 하여금 우리를 위해 쓰이게 하여야 한다.
이것을 일러 ‘적敵을 이기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다.
原注
이것이 이른바 ‘적敵에게서 승리를 쟁취하여 수레와 병사를 얻어서 자신의 강함을 더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는 속히 싸워 승리함을 귀하게 여기고, 오랫동안 지체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군대는 졸속拙速하게 하여 승리함을 귀하게 여기고, 잘하려고 오랫동안 지구전持久戰을 하다가 힘이 쇠하고 재물이 다함에 이르러 적이 우리의 피폐함을 이용하게 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법을 아는 장수는 백성의 생명을 좌우하는 자요[司命] 국가 안위安危의 주체인 것이다.
原注
그러므로 병법을 아는 장수는 바로 백성들의 생명을 좌우하는 자가 되고 국가 안위의 주재主宰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