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天官書
는 按綱目集覧
에 漢武元封二年
의 德星下
에 引用云 天官書
에 라하니 是亦證焉
이라
原注
梁惠王
은 魏侯
니 名
이요 都大梁
하고 僭稱王者也
라
刑以伐之하고 德以守之는 非所謂天官時日陰陽向背也니 黄帝者는 人事而已矣라
今有城에 東西攻不能取하고 南北攻不能取하나니 四方에 豈無順時乗之者邪잇가
原注
刑以伐人하고 德以自守는 非所謂天官時日與陰陽向背也니 黄帝者는 盡乎人事而已矣라
今有城焉에 東西兩方攻之라도 不能取하고 南北兩方攻之라도 亦不能取하니 四方에 豈無順時而乗之者邪잇가
然이나 不能取者는 城高池深하고 兵器備具하고 財穀多積하고 豪士一謀者也일새니이다
原注
然이나 不能取之者는 城之高也하고 池之深也하며 守禦之兵器具備也하고 資財糧穀之多積也하며 豪傑之士 同心而一謀也일새니이다
若城下池淺守弱이면 則取之矣니 由是觀之컨대 天官時日이 不若人事也니이다
原注
若城卑下하고 池狹淺하고 守者又怯弱이면 則必取之矣라
按天官曰 背水
을 爲絶紀
하고 向阪陣
을 爲廢軍
이라하나
武王伐紂에 背濟水하고 向山阪而陣하여 以二萬二千五百人으로 擊紂之億萬而滅商하니 豈紂不得天官之陣哉잇가
原注
按天官曰 背水陳을 爲之絶紀하고 向阪陣을 爲之廢軍이라하나
周武王伐紂之時에 背濟水하고 向山阪而爲陣하여 以二萬二千五百人으로 擊紂之億萬而滅殷商하니 豈紂獨不得天官之陣哉잇가
二萬二千五百人은 蓋以革車三百輛而言이니 共三萬人이로되 除將重車七千五百人外하면 戰士止有二萬二千五百人也라
背水陣者는 敵在吾前하고 水在吾後也요 向阪陣者는 敵處其高하고 我處其下也라
絶紀, 廢軍은 謂陷之死地하여 有廢絶之形하고 無生全之勢也라
武王背濟水
하고 向山阪而勝紂者
는 以有道伐無道
하고 以至仁伐至不仁
하여 니 紂雖得天官之陣
이나 何益於用哉
아
楚將公子心
이 與齊人戰
할새 時有
星出
하여 柄在齊
하니 柄所在勝
하여 不可撃
이라한대
以彗鬪者는 固倒而勝焉이라하고 明日에 與齊戰하여 大破之하니이다
黄帝曰 先神先鬼하여 先稽我智라하니 謂之天官은 人事而已니이다
原注
昔春秋時에 楚將公子心이 與齊人戰할새 時에 有彗星出하여 其柄在齊하니
以彗
鬪者
는 固倒而取勝焉
이라하고 明日
에 與齊戰
하여 遂大破之
하니이다
黄帝有曰 先信之於神하고 聽之於鬼가 不若先稽我之智耳라하니 謂之天官은 在盡乎人事而已니이다
原注
천관天官은 시일時日의 지간支干(干支)에 고허孤虛와 왕상旺相의 일을 논한 것이니, 바로 병가兵家의 음양서陰陽書이다.
이 가운데에 ‘천관天官’ 두 글자가 있기 때문에 취하여 편을 이름한 것이다.
천관서天官書는 살펴보건대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覧》에 한漢 무제武帝 원봉元封 2년(B.C. 109)의 덕성德星 아래에 인용하기를 “천관서天官書에 ‘경성景星은 덕성德星이다.’ 했다.” 하였으니, 이것이 또한 증거이다.
“
황제黄帝의 형벌과
덕德이 백 번 승리할 수 있다고 하니, 이러한 것이 있는가?”
黃帝
原注
“황제黄帝의 형벌과 덕德의 말(내용)이 백 번 싸워 백 번 승리할 수 있다고 하니, 이러한 것이 있는가?”
양梁 혜왕惠王은 위魏나라 제후諸侯이니 이름이 앵罃이고, 대량大梁에 도읍하여 참람하게 왕王이라 칭한 자이다.
황제黄帝는 설명이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에 보인다.
“형벌로써 정벌하고 덕德으로써 지키는 것은 이른바 천관天官의 시일時日과 음양陰陽의 향배向背라는 것이 아니니, 황제黄帝는 사람의 일일 뿐입니다.
지금 한 성城이 있는데, 동쪽과 서쪽에서 공격하여도 함락하지 못하고, 남쪽과 북쪽에서 공격하여도 함락하지 못하니, 사방에서 어찌 좋은 시운을 순히 타는 자가 없겠습니까.
原注
“형벌로써 남을 정벌하고 덕德으로써 자신을 지키는 것은 이른바 천관天官의 시일時日과 음양陰陽의 향배向背라는 것이 아니니, 황제黄帝는 사람의 일을 다했을 뿐입니다.
지금 한 성城이 있는데, 동쪽과 서쪽 두 방위에서 공격하여도 점령하지 못하고, 남쪽과 북쪽 두 방위에서 공격하여도 점령하지 못하니, 사방에서 〈공격함에〉 어찌 좋은 시운을 순히 타는 자가 없겠습니까.”
이는 바로 《맹자孟子》에 이른바 ‘3리 되는 작은 성城과 7리 되는 외성外城을 포위하여 공격하여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포위 공격하면 반드시 천시天時를 얻을 때가 있으련마는 그런데도 이기지 못함은, 이는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한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성城을 점령하지 못하는 것은, 성城이 높고 해자가 깊으며 병기兵器가 구비되고 재물과 곡식이 많이 저축되어 있으며, 호걸스러운 선비가 한결같이 도모하기 때문입니다.
原注
“그러나 성城을 점령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城이 높고 해자가 깊으며 성을 지키는 병기兵器가 구비되어 있고 재물과 곡식이 많이 저축되어 있으며 호걸스러운 선비가 한마음으로 한결같이 도모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맹자孟子》에 이른바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는 뜻이다.
만약 성이 낮고 해자가 얕고 수비가 약하면 점령하게 되니,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건대, 천관天官의 시일時日은 사람의 일만 못합니다.
原注
“만약 성이 낮고 해자가 좁고 얕으며, 지키는 자가 또 겁이 많고 나약하면 반드시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천관天官의 시일時日은 인사人事를 다하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천관서天官書를 살펴보건대, 여기에 이르기를 ‘배수진背水陣을 절기絶紀라 하고 향판진向阪陣을 폐군廢軍이라 한다.’ 하였으나,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할 적에 제수濟水를 등 뒤에 두고 산판山阪을 향해 진陣을 쳐서 2만 2,500명을 가지고 주왕紂王의 억만 대군을 공격하여 상商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어찌 주왕紂王이 천관天官의 진陣을 얻지 못했겠습니까.
原注
“천관서天官書를 살펴보면 ‘배수진背水陣을 절기絶紀라 하고 향판진向阪陣을 폐군廢軍이라 한다.’ 하였으나,
주周 무왕武王이 상商의 주왕紂王을 정벌할 적에 제수濟水를 등 뒤에 두고 산판山阪을 향하고서 진陣을 쳐서 2만 2,500명을 가지고 주왕紂王의 억만(십만) 대군을 공격하여 상商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어찌 주왕紂王이 유독 천관天官의 진陣을 얻지 못했겠습니까.”
2만 2,500명은 혁거革車 300양輛을 가지고 말한 것이니, 병사가 모두 3만 명이나 치중거輜重車에 있는 7,500명을 제외하면 전투하는 군사는 다만 2만 2,500명이 있는 것이다.
배수진背水陣이란 적敵이 우리의 앞에 있고 물이 우리의 뒤에 있는 것이요, 향판진向阪陣이란 적敵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우리가 그 아래에 있는 것이다.
절기絶紀와 폐군廢軍은 죽을 땅에 빠져서, 폐하고 끊어지는 형세만 있고 살아서 온전한 형세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무왕武王이 제수濟水를 등 뒤에 두고 산판山阪을 향해 주왕紂王을 이겼던 것은, 도道가 있는 사람으로서 도道가 없는 사람을 정벌하고, 지극히 인仁한 자로서 지극히 인仁하지 못한 자를 공격하여, 마음이 같고 덕德이 같은 신하들과 함께 마음이 떠나고 덕德이 떠난 주왕紂王을 공격했기 때문이니, 주왕紂王이 비록 천관天官의 진陣을 얻었으나 사용함에 무슨 유익함이 있었겠는가.
초楚나라 장수인 공자公子 심心이 제齊나라와 싸울 적에, 당시 혜성彗星이 출현하여 혜성彗星의 자루가 제齊나라에 있자, 혜성彗星의 자루가 있는 곳이 승리한다 하여 사람들이 ‘제齊나라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공자公子 심心이 말하기를 ‘혜성彗星이 무엇을 알겠는가.
빗자루를 가지고 싸우는 자는 진실로 빗자루를 거꾸로 잡아 공격하여야 승리한다.’ 하고는, 다음날 제齊나라와 싸워 대파大破하였습니다.
황제黄帝가 말하기를 ‘신神과 귀鬼에 앞서서 먼저 나의 지혜를 상고한다.’ 하였으니, 천관天官은 사람의 일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原注
“옛날 춘추春秋 때에 초楚나라 장수 공자公子 심心이 제齊나라와 싸울 적에, 혜성彗星이 출현하여 그 자루가 제齊나라에 있었는데,
세성의 자루가 있는 곳이 승리한다고 하여, 사람들이 ‘공격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자,
공자公子 심心이 말하기를 ‘혜성彗星이 무엇을 알겠는가.
빗자루를 가지고 남과 싸우는 자는 진실로 빗자루를 거꾸로 잡고 싸워야 승리한다.’ 하고는, 다음날 제齊나라와 싸워서 마침내 대파大破하였습니다.
황제黄帝는 말하기를 ‘먼저 신神을 믿고 귀鬼를 따르는 것이, 먼저 나의 지혜를 상고하는 것만 못하다.’ 하였으니, 천관天官은 사람의 일을 다함에 있을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