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尉繚子直解

울료자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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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兵談者 談論治兵之法也 蓋取書中義하여 以名篇焉하니라
병담兵談이란 치병治兵하는 방법을 담론談論한 것이니, 가운데의 글 뜻을 취하여 의 이름으로 삼았다.
量土地肥墝而立邑이니 建城稱地하고 以城稱人하고 以人稱粟하여 三相稱이면 則内可以固守 外可以戰勝이라
토지의 비옥하고 척박함을 헤아려 성읍城邑을 세우니, 성읍城邑을 세울 적에는 땅에 맞추고, 의 넓이는 인민人民에 맞추고, 인민人民은 곡식에 맞춰서, 세 가지가 꼭 맞으면 안으로는 굳게 수비할 수 있고, 밖으로는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戰勝於外하고 備主於内하여 勝備相用 猶合符節하여 無異故也니라
이는 밖에서는 싸워서 이기고 안에서는 수비를 잘하여, 승리와 수비를 서로 활용하는 것이 부절符節한 것과 같아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原注
영탕부英蕩符사신使臣에게 주던 신표로, 주자朱子가 《맹자孟子》 〈이루離婁 〉의 ‘약합부절若合符節’을 해석한 내용에 “죽부竹符가 있고 또 영탕부英蕩符가 있다. 은 마디가 짧은 대나무로 지금 사자使者들이 말하는 탕절蕩節인데, 새겨서 부절로 만들었다. 나라에는 동호부銅虎符죽사부竹使符가 있었는데, 동호부銅虎符로는 군대를 동원하고 죽사부竹使符군수郡守가 사용하였다.”라고 보인다. 《주자어류朱子語類 권57》
銅虎符銅虎符
古者土地之肥하여 而建立邑하니
옛날에 토지의 비옥하고 척박함을 헤아려서 성읍城邑을 세웠다.
建立城邑 務稱較地之肥瘠하고 以城之大小 稱較人之衆寡하고 以人之衆寡 稱較得粟之多하니 三者旣相稱이면 内可以固守其國이요 外可以戰勝於敵이라
성읍城邑을 세울 적에는 되도록 땅의 비옥하고 척박함을 비교하여 맞추고, 의 크고 작음을 가지고 인민人民의 많고 적음을 비교하여 맞추고, 인민人民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얻을 수 있는 곡식의 많고 적음을 비교하여 맞추니, 세 가지가 서로 맞으면 안으로는 나라를 굳게 지킬 수 있고, 밖으로는 적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戰取勝於外하고 備主守於内하여 勝與備迭相爲用 猶合符節하여 無有殊異故也
이는 밖에서 싸워 승리를 쟁취하고 안에서 수비를 잘하여 지켜서 승리와 수비를 번갈아 활용하는 것이 부절符節한 듯하여 전혀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符節者 以玉爲之하니 篆刻文字而中分之하여 彼此各藏其半이라가 有故則左右相合하여 以爲信也
부절符節을 가지고 만드니, 문자文字전각篆刻하여 반으로 나누어 피차가 각각 그 반을 보관하고 있다가, 일이 있으면 왼쪽 것과 오른쪽 것을 서로 하여 신표信標로 삼는다.
漢制 以竹爲之하여 分而相合이라
나라 제도에는 대나무를 가지고 부절을 만들어 나누어 가지고 있다가 〈일이 있으면〉 서로 맞춰보았다.
字從竹從付하니是也
그러므로 글자가 을 따르고 를 따랐으니, 죽부竹符영탕부英蕩符 같은 것이 이것이다.
又有銅虎符하여 以起兵하니 凡符節 右留君所하고 左以與人이라가 有故則君以其右 合其左耳
동호부銅虎符가 있어서 이것으로 군대를 일으켰으니, 무릇 부절符節은 오른쪽 것은 임금의 처소에 보관하고 왼쪽 것은 임명받은 사람에게 주었다가, 연고가 있으면 군주君主가 그 오른쪽 것으로 왼쪽 것과 맞춰보는 것이다.
治兵者 若秘於地하고 若邃於天하여 生於無
군대를 다스림은 땅속에 깊이 감춘 듯하고 하늘에 아득히 숨겨놓은 듯하여 형체가 없는 데에서 생겨난다.
開之 하나니 明乎禁舍開塞하여 民流者 親之하고 地不任者 任之니라
그러므로 열어놓으면 커도 경박하지 않고 작아도 넓어지지 않으니, 금하고 용서하고 열어주고 막음에 밝아서 유랑하는 백성들을 친애하고 가꿔지지 못한 땅(農地)을 맡기는 것이다.
原注
治兵者 若秘藏於地하고 若幽邃於天하니 皆言其深漠而無形迹也
군대를 다스리는 것은 땅속에 깊이 감추어놓은 듯하고 하늘에 아득히 숨겨놓은 듯하니, 모두 그 깊고 아득하여 형적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如物生於無形故 開之 大者不輕窕하고 小者不恢張하나니 明乎禁舍開塞之理하여 民流移者 親而撫之하고 地不可任以耕種者 則任之하여 使可畊可種也
마치 물건이 무형無形에서 생기는 것과 같기 때문에, 열어놓으면 아무리 큰 것도 경박하지 않고 작은 것도 넓어지지 않으니, 금하고 용서하며 열어주고 막는 이치에 밝아서 유이流移하는 백성들을 친애하여 어루만지고, 제대로 경작할 수 없는 땅을 유능한 농부에게 맡겨서 밭을 갈고 곡식을 심게 하는 것이다.
謂抑其邪心이요 謂釋其小過하며 謂啓其生養之道 謂杜其矯枉之風이라
은 간사한 마음을 억제함을 이르고, 는 작은 허물을 용서함을 이르고, 는 생장하는 길을 열어줌을 이르고, 은 거짓으로 속이는 나쁜 풍습을 막음을 이른다.
任地之法 謂厚糞壤以肥沃之하고 通溝以灌溉之하고 勤其力以耘耔之 如之何苗不茂而榖不多也리오
땅을 맡겨주는 방법은 거름을 많이 주어 땅을 비옥하게 하고, 도랑을 통하여 물을 관개灌漑하고, 농사에 부지런히 힘써서 김매고 북돋움을 이르니, 이렇게 하면 어찌 벼 싹이 무성하지 않고 곡식의 수확이 많지 않겠는가.
夫土廣而任이면 則國富하고 民衆而制 則國治하나니
토지가 넓은데 농지의 경작을 제대로 맡기면 나라가 부유해지고, 백성이 많은데 잘 통제하면 나라가 다스려진다.
富治者 民不發軔하고 甲不出이로되 而威制天下
부유하고 다스려진 나라는, 백성들이 바퀴를 고여놓은 나무를 빼지 않고 갑옷을 꺼내어 햇볕에 말리지 않더라도 위엄으로 천하를 제재할 수 있다.
曰 兵勝於朝廷이라하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군대가 조정朝廷에서 승리한다.”라고 한 것이다.
原注
夫土地廣大而任其耕種이면 則收多而國富矣 人民衆盛而有法制 則百姓安而國治矣
토지가 광대廣大한데 농지의 경작을 제대로 맡기면 수확收穫이 많아 나라가 부유해지고, 인민人民이 많은데 법제法制가 있으면 백성百姓들이 편안하여 나라가 다스려진다.
國富治者 民不發軔入行伍하고 甲不出暴與士卒이로되 而威制天下
부유하고 다스려진 나라는, 백성(병사)들이 전거戰車를 타고 출정 길을 떠나 항오行伍에 들어가지 않고, 갑옷을 꺼내어 햇볕에 말려서 병사들에게 주지 않더라도 위엄으로 천하를 제재할 수 있다.
曰 兵取勝於朝廷也라하니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군대가 조정朝廷에서 승리를 취한다.”라고 한 것이다.
不暴甲而勝者 主勝也 陳而勝者 將勝也
갑옷을 꺼내어 햇볕에 말리지 않고서도 승리하는 것은 군주가 승리하는 것이요, 을 치고서 승리하는 것은 장수가 승리하는 것이다.
原注
不暴甲而取勝於朝廷者 主勝也 戰陳而取勝於行伍者 將勝也
갑옷을 꺼내어 햇볕에 말려서 병사들에게 주지 않고도 조정朝廷에서 승리를 취하는 것은 군주가 〈계책으로〉 승리하는 것이요, 을 치고 싸워서 항오行伍에서 승리를 취하는 것은 장수가 〈전투로〉 승리하는 것이다.
兵起 非可以忿也 見勝則興하고 不見勝則止니라
군대를 일으킴은 분노忿怒로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승리가 보이면 일으키고, 승리가 보이지 않으면 중지하여야 한다.
原注
兵起 非可以私忿也
군대를 일으킴은 사사로운 분노忿怒로써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見其可勝則興하고 見其不可勝則止니라
승리할 수 있는 요소가 발견되면 군대를 일으키고, 승리할 수 없는 요소가 발견되면 그치는 것이다.
환난患難이 백 리의 안에 있으면 하루의 군대를 일으키지 않고, 환난이 천 리의 안에 있으면 한 달의 군대를 일으키지 않고, 환난이 사해四海의 안에 있으면 1년의 군대를 일으키지 않는다.
原注
患難 在百里之内하면 出師宜頃刻之間이라 不起一日之師 患難 在千里之内하면 則越境矣 亦當速而乗之 不起一月之師 患難 在四海之内하면 地雖甚遠이나 亦不可延緩歲月이니 使彼謀定而計成이면 亦難制矣 不起一歲之師
환난이 백 리의 안에 있으면 경각頃刻의 사이(잠깐 동안)에 군대를 출동해야 하므로 하루의 군대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요, 환난이 천 리의 안에 있으면 국경을 넘어가니 또한 마땅히 신속히 출동하여 기회를 타야 하므로 한 달의 군대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요, 환난이 사해四海의 안에 있으면 지역이 비록 멀더라도 세월을 지연해서는 안 되니, 〈만일 세월을 지체하여〉 적으로 하여금 계책을 정하고 계획을 이루게 하면 또한 제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1년의 군대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皆言兵神速이면 則能乗人之不及矣
이는 모두 군대를 신속히 출동하면, 적이 미처 대비하지 못할 때에 기회를 탈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將者 上不制於天하고 下不制於地하고 中不制於人하며 寛不可激而怒 清不可事以財니라
장수는 위로는 하늘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고 아래로는 땅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고 중간으로는 사람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으며, 너그러워서 격동시켜 노하게 할 수 없고, 청백淸白하여 재물로 유혹할 수 없어야 하는 것이다.
原注
將者 上不制於天 卽無天於上이니 是也 下不制於地 卽無地於下 是也 中不制於人 卽無敵於前하고 無君於後하고 進兵襲破之 是也
장수가 위로 하늘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은 바로 위에 제재하는 하늘이 없는 것이니, 나라 장수 공자公子 혜성彗星을 거스르고 나라와 싸워 이긴 것과 같은 경우이고, 아래로 땅에게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은 바로 아래에 제재하는 땅이 없는 것이니, 등애鄧艾촉한蜀漢을 정벌할 적에 검각劍閣을 경유하지 않고 음평陰平으로 쳐들어간 것과 같은 경우이고, 가운데로 사람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은 바로 앞에 제재하는 적이 없고 뒤에 제재하는 군주가 없는 것이니, 이정李靖힐리가한頡利可汗을 맞이해 오라는 태종太宗조명詔命을 따르지 않고 군대를 전진하여 돌궐突厥을 기습, 격파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
寛不可激之而怒 則爲 清不可事之以財 則爲
장수는 성품이 너그러워서 격동시켜 성내게 할 수 없어야 하니, 〈격동시켜 성내면〉 나라 장수 자옥子玉이 되는 것이요, 청백淸白하여 재물로써 유혹할 수 없어야 하니, 〈재물로써 유혹되면〉 나라 장수 가유賈孺가 되는 것이다.
夫心狂, 耳聾, 目盲하여 以三悖率人者 難矣니라
마음이 어지럽고 귀가 먹고 눈이 멀어서, 이 세 가지 어그러짐을 가지고 남을 통솔하는 자는 어려운 것이다.
原注
心狂 是不能謀也 耳聾 是不能聽也 目盲 是不能視也
마음이 어지럽다는 것은 제대로 도모하지 못하는 것이요, 귀가 먹었다는 것은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이요, 눈이 멀었다는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心不能謀하고 耳不能聽하고 目不能視하면 是三悖也 用之率人이면 亦難矣
마음이 제대로 도모하지 못하고 귀로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눈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면, 이는 세 가지가 어그러진 것이니, 이러한 사람을 등용하여 사람(병사)을 통솔하게 하면 또한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兵之所及 羊腸亦勝이요 鋸齒亦勝이요 緣山亦勝이요 入谷亦勝이요 方亦勝이요 圓亦勝이니라
方陣方陣
군대가 이르는 곳에는 양장羊腸에서도 승리하고, 거치鋸齒에서도 승리하고, 을 기어 올라가도 승리하고, 골짝으로 들어가도 승리하고, 방진方陣으로도 승리하고, 원진圓陣으로도 승리하는 것이다.
原注
兵之所及 하며 緣山而戰 亦勝이요 入谷而戰 亦勝이며 方陣亦勝이요 圓陣亦勝이라
圓陣圓陣
군대가 이르는 곳에는 양장羊腸의 지형에서도 승리하고 거치鋸齒의 지형에서도 승리하며, 을 기어 올라가 싸워도 승리하고 골짝으로 들어가 싸워도 승리하며, 방진方陣에서도 승리하고 원진圓陣에서도 승리하는 것이다.
重者 如山如林하고 如江如河하며 輕者 如炮如燔하고 如垣壓之하고 如雲하여 令人으로 聚不得以散하고 散不得以聚하며 左不得以右하고 右不得以左하나니라
중병重兵과 같고 숲과 같고 장강長江과 같고 대하大河와 같으며, 경병輕兵은 불로 태우는 것과 같고 불로 지지는 것과 같고 담으로 누르는 것과 같고 구름으로 뒤덮는 것과 같아서, 적으로 하여금 모이면 흩어질 수가 없고 흩어지면 모일 수가 없게 하며, 왼쪽은 오른쪽을 마음대로 구원하지 못하고 오른쪽은 왼쪽을 마음대로 구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原注
重者 重兵也
중병重兵(중무장한 군대)이다.
重兵 宜徐行故 如山如林이니 言其緩也 如江如河 言其盛也
중병重兵은 서서히 행군하여야 하기 때문에 과 같고 숲과 같은 것이니 그 느림을 말한 것이요, 장강長江과 같고 대하大河와 같음은 그 성대함을 말한 것이다.
輕者 輕兵也 輕兵 宜速進하여 如火之炮하고 如火之燔하며 如垣之壓物하여 不可避하고 如雲之覆物하여 不可逃
경병輕兵(경무장한 군대)이니, 경병輕兵은 속히 전진해서 불로 태우는 것과 같고 불로 지지는 것과 같으며, 담이 물건을 누르는 것과 같아 피할 수 없고, 구름이 물건을 뒤덮는 것과 같아 도망칠 수 없는 것이다.
令人之聚不得以散 謂合而不能分也 散不得以聚 謂分而不能合也 左不得以右 謂左不能救右也 右不得以左 謂右不能救左也
적으로 하여금 모이면 흩어질 수 없게 함은 적이 집합하였다가 나뉘지 못하게 함을 이르고, 흩어지면 모일 수 없게 함은 적이 나뉘었다가 집합하지 못하게 함을 말한 것이요, 왼쪽 군대가 오른쪽 군대를 마음대로 구원하지 못함은 적의 왼쪽 군대가 오른쪽 군대를 자유롭게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요, 오른쪽 군대가 왼쪽 군대를 마음대로 구원하지 못함은 적의 오른쪽 군대가 왼쪽 군대를 자유롭게 구원하지 못함을 이른다.
以者 能左右之謂也
좌지우지左之右之함을 이른다.
如總木弩하고 如羊角하여 人人 無不騰陵張膽하여 絶乎疑慮하고 堂堂決而去하나니라
군대는 나무로 만든 쇠뇌를 잡고 있는 것과 같고 양각羊角과 같아서, 사람마다 모두 뛰어오르고 대담하여 의심스러운 생각을 끊고 당당堂堂하게 결단하여 가야 한다.
原注
夫兵 如總持木弩하여 機牙發動而人不可禦하고 又如羊角旋風하여 上行而勢不可遏이라
군대는 나무로 만든 쇠뇌를 잡은 것과 같아서 기아機牙가 발동하면 적이 막을 수 없고, 또 양각羊角의 회오리바람과 같아서 위로 올라가면 형세가 막을 수 없는 것과 같다.
羊角者 旋風也
양각羊角은 회오리바람이다.
九成縣 有旋風하여 望之하면 揷天如羊角하니 言曲而上行也
구성현九成縣에 회오리바람이 자주 일어서 이것을 바라보면 하늘 높이 올라감이 의 뿔과 같으니, 돌면서 위로 올라감을 말한 것이다.
人人無不騰陵張膽하여 絶乎疑慮하고 堂堂然果決而去하면 而敵亦安可禦哉
사람마다 모두 뛰어오르고 대담하여 의심스러운 생각을 끊고 당당堂堂하게 결단하여 가면 적이 또한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堂堂 盛大之貌
당당堂堂성대盛大한 모양이다.
역주
역주1 : 탁
역주2 (疽)[瘠] : 저본의 ‘疽’는 明本에 의거하여 ‘瘠’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小)[少] : 저본의 ‘小’는 明本에 의거하여 ‘少’로 바로잡았다.
역주4 竹符英蕩符 : 竹符는 竹使符로 漢나라 때 고을을 맡아 다스리는 수령에게 銅虎符와 함께 내려주던 두 가지 신표 중 하나이다. 가운데를 쪼개 둘로 나누어 오른쪽은 군주의 처소에 두고 왼쪽은 지방 수령에게 주었다가, 군대를 출동할 경우에는 銅虎符를 내려 보내고, 나머지 일에는 죽사부를 信表로 삼았다.
역주5 大不窕 小不恢 : 《直解》에 의거하여 아래와 같이 해석하였으나 뜻이 분명하지 않다.
역주6 : 혁
역주7 : 폭
역주8 (獲)[穫] : 저본의 ‘獲’은 漢文大系本에 의거하여 ‘穫’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不起一日之師……不起一歲之師 : 漢文大系本의 〈補註〉에는 ‘不起’를 모두 ‘不待’의 오류로 보았다. 이 경우 원문은 “환난이 백 리의 안에 있으면 하루를 기다리지 않고 군대를 일으키고, 환난이 천 리의 안에 있으면 한 달을 기다리지 않고 군대를 일으키고, 환난이 四海의 안에 있으면 1년을 기다리지 않고 군대를 일으킨다.”로 해석해야 하는바, 아래의 《直解》는 이렇게 해석하여야 전체적인 맥락이 순조롭다. 그러나 저본의 원문이 오류임을 밝힐 분명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대로 해석하였음을 밝혀둔다.
역주10 如楚將公子心 逆彗星而勝齊 : 이 내용은 앞의 〈天官〉편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1 鄧艾伐蜀 不由劍閣而入陰平 : 鄧艾(197〜264)는 삼국시대 魏나라의 장수이다. 景元 4년(263), 魏나라의 征西將軍 鄧艾가 陰平에서 景穀의 길을 따라 은밀히 江油에 이르러 蜀漢의 守將 馬邈의 항복을 받고, 綿竹關에서 蜀漢의 衛將軍 諸葛瞻을 격파하니, 蜀漢의 後主인 劉禪이 항복을 청하였다. 《三國志 권28 鄧艾傳》
역주12 李靖不聽太宗之詔……進兵襲破之 : 李靖(571〜649)은 唐나라 초기의 名將으로 衛國公에 봉해져 李衛公으로 불리는바, 《李衛公問對》의 저자이다. 頡利는 唐나라 貞觀 연간에 突厥을 다스린 군주(可汗)의 이름이다.
貞觀 4년(630)에 李靖과 李世勣이 突厥을 기습하여 격파하자, 頡利可汗이 병력 10만을 이끌고 鐵山으로 도망하였는데, 頡利可汗은 전 병력을 이끌고 磧北으로 달아나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사신을 唐나라에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太宗이 이를 받아들여 鴻臚卿 唐儉 등을 보내어 慰撫하고, 李靖에게 명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頡利可汗을 맞이하여 오게 하였는데, 頡利可汗의 본심을 알아차린 李靖이 군대를 무장시켜 밤에 출동하여 방심하고 있는 突厥의 본진을 급습해서 1만여 명의 首級을 베고 10여 만을 포로로 잡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에 突厥의 나머지 酋長들이 모두 병력을 거느리고 와서 항복하여 突厥이 평정되었다. 《李衛公問對直解 中卷》
역주13 : 힐
역주14 楚將子玉 : 楚나라가 晉나라의 동맹국인 宋나라를 포위 공격하자, 晉 文公은 楚나라와 친한 衛나라를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다음 해 晉나라와 楚나라가 城濮에서 결전을 하게 되었는데, 楚王은 晉나라와의 전쟁을 회피하려 하였으나 성질이 강한 令尹 子玉이 기어이 싸울 것을 청하니, 楚王은 일부의 병력만을 내주었다.
子玉은 大夫인 宛春을 晉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晉나라에서 衛나라 임금을 復位시키고 曹나라를 봉해주면 저도 宋나라의 포위를 풀겠습니다.”라고 제의하였는데, 晉나라는 先軫의 계책에 따라 使者인 宛春을 衛나라에 구류하였으며 또 은밀히 曹나라와 衛나라의 임금을 복위시킬 것을 허락하고, 두 나라로 하여금 楚나라와의 국교 단절을 子玉에게 통고하게 하였다. 이에 子玉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출전하였다가 대패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27년》
역주15 秦將賈孺 : B.C. 207년, 漢王(劉邦)이 군대를 이끌고 秦나라 수도 咸陽으로 진격할 적에 병사 2만 명으로 嶢關에 진영을 설치하였다. 張良이 말하기를 “臣이 들으니 秦軍의 장수 賈孺는 이익에 쉽게 움직인다고 하니, 우선 堡壘에 머무신 채 여러 산에 旗幟를 증설하여 疑兵을 만들어 적을 의혹하게 하면서, 辯士인 酈食其로 하여금 보물을 가지고 가서 주도록 하십시오.” 하였다. 賈孺는 과연 秦나라를 배반하고 沛公과 화친하여 함께 서쪽으로 咸陽을 습격하려 하였으나, 漢王은 賈孺의 군대가 따르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화친을 받아들이지 않고, 방심하고 있는 賈孺의 군대를 공격하여 大破하였다. 《史記 권55 留侯世家》
역주16 羊腸之勢亦勝 鋸齒之勢亦勝 : 羊腸은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하고 험난한 지형을 이르고, 鋸齒는 톱날처럼 뾰족뾰족하고 험악한 지형을 이른다.
역주17 : 부

울료자직해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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