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言審敵虛實하고 而推其妙用하여 至於致敵虛實이면 則敵人之命이 操之在我하니 乃用兵之極致也라
凡先處戰地而待敵者는 佚하고 後處戰地而趨戰者는 勞라
勞佚主客之勢를 將莫不聞이로되 而有致人者하고 有致於人者는 能與不能而已니라
能使敵人自至者는 利之也요 能使敵人不得至者는 害之也라
故로 敵佚이어든 能勞之하고 飽어든 能飢之하고 安이어든 能動之니라
能致人이면 則敵之進退飢飽安佚勞動之權이 操之在我요 致於人者는 反是라
行千里而不勞者는 行於無人之地也요 攻而必取者는 攻其所不守也요 守而必固者는 守其所不攻也라
故로 善攻者는 敵不知其所守하고 善守者는 敵不知其所攻하나니
微乎微乎여 至於無形이요 神乎神乎여 至於無聲이라
審敵虛實이면 則出敵所不趨하고 趨敵所不意하여 如行無人之地하여 雖千里而不勞라
推而至於攻其所不守하고 守其所不攻하여도 莫不皆以虛實爲妙用이라
故로 其極致 能使敵不知所守所攻하여 而至於無形可見하고 無聲可聞이라
進而不可禦者는 衝其虛也요 退而不可追者는 速而不可及也라
故로 我欲戰이면 敵雖高壘深溝라도 不得不與我戰者는 攻其所必救也요 我不欲戰이면 雖畫地而守之라도 敵不得與我戰者는 乖其所之也니라
乘虛而進이면 則莫我禦요 其疾如風이면 則莫我追니 蓋又進於出所不趨, 趨所不意라
利誘而不來면 則攻其所必救하고 計害而猶來면 則誤之使他往은 乃實能虛之也니 尙安有不聽者哉아
我專爲一하고 敵分爲十이면 是는 以十攻其一也니 則我衆敵寡라
吾所與戰之地를 不可知니 不可知면 則敵所備者多하고 敵所備者多면 則吾所與戰者寡矣라
故로 備前則後寡하고 備後則前寡하며 備左則右寡하고 備右則左寡하며 無所不備면 則無所不寡하니 寡者는 備人者也요 衆者는 使人備己者也니라
如上文利敵使至하고 害敵使止하여 佚而勞之하고 飽而饑之는 皆形人也요 出所不趨하고 趨所不意하여 進不可禦하고 退不可追는 皆無形也라
使敵不知所守所攻이면 則分也요 在我無形無聲이면 則專也라
戰權不在敵하고 而戰地不可知하면 惶惑疑眩하여 四處置備하여 愈備而愈寡하니 所備十則所分亦十이라
故로 雖衆寡本均이나 而可以十攻一이니 是는 彼以備我而寡요 我以與戰者約而衆也라
故로 知戰之地하고 知戰之日이면 則可千里而會戰이요 不知戰地하고 不知戰日이면 則左不能救右하고 右不能救左하며 前不能救後하고 後不能救前이어든 而況遠者數十里며 近者數里乎아
承上文하여 言 形人者는 權常在我하여 而預料戰日戰地라
形於人者는 旣隨處分備하여 及其戰也에 寡不敵衆하여
而雖欲撤救나 左右前後不能相及이어든 況所分이 在數里數十里之距乎아
故로 擧當時之事하여 著之篇曰 越兵雖多나 無益於勝하여 而勝可由我니 尙何足與我鬪哉리오하니라
軍形曰 勝은 可知而不可爲라하고 此云 勝可爲者는 彼以敵守固하여 機無乘而言이요 此以旣形敵하여 已入彀而言이니라
故
로 策之而知得失之計
하고 作之而知動靜之理
하고 形之而知死生之地
하고 而知有餘不足之處
니라
策
은 如
요 作
은 如
와 이요 形
은 如
과 이 是也
라
故로 形兵之極은 至於無形이니 無形이면 則深間不能窺하고 智者不能謀하니
我旣無形이요 而所以形人者亦無形이면 則非止敵之深間智計無從窺謀也라 卽我兵衆聽我措畫者도 只知其勝하고 而莫知我因敵形之術이라
夫兵形은 象水하니 水之形은 避高而趨下하고 兵之形은 避實而擊虛하나니
故로 兵無常勢하고 水無常形하니 能因敵變化而取勝者를 謂之神이니라
以水喩兵은 雙融俱解하여 簡當切該하니 詎復須註리오
兵無常勢하여 因敵形也요 水無常形하여 性趨下也라
○軍形者는 兵始成形也요 兵勢者는 以勢使人하여 人自爲戰也요 虛實者는 因敵變化而取勝也니 三篇이 相因爲始終이라
故로 軍形之度量數稱은 但有陣形이요 而兵勢之勢險節短과 紛紜混沌은 乃戰勢也며
兵勢之利動本待는 始言形敵이로되 而虛實之無形은 乃因形措勝也라
形은 有形而隱故로 喩積水하고 勢는 無形而著故로 喩木石하고 虛實則變而化之故로 喩五行四時日月하니라
이정李靖은 말하기를 “기奇와 정正은 적의 허虛와 실實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기奇와 정正, 허虛와 실實은 서로 연관되는 것이다.
앞 편은 기奇와 정正을 자세히 말하고, 허虛와 실實에 대해서는 약간 그 단서를 열어놓았다.
그러므로 이 편에서는 마침내 오로지 허虛와 실實을 논한 것이다.
처음에는 적敵의 허虛‧실實을 살핌을 말하고, 그 묘용妙用을 미루어 적의 허虛‧실實을 드러나게 함에 이르면 적의 목숨(운명)이 내 손안에 들어 있으니, 바로 용병의 극치이다.
그러나 기奇‧정正을 잘하면 이것(虛‧실實)은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요, 특별한 속임수나 교묘한 계책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릇 싸울 장소에 먼저 있으면서 적을 기다리는 자는 편안하고, 싸움터로 늦게 달려가는 자는 수고롭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이 오도록 만들고 적에게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
조사趙奢가 먼저 북산北山을 점거함은 싸울 장소에 먼저 있은 것이요, 고환高歡이 위곡渭曲으로 달려감은 싸울 곳에 뒤늦게 달려간 것이다.
수고로움과 편안함, 주인主人과 객客의 형세를 듣지 못한 장수가 없으나, 적이 오도록 만드는 자가 있고 적에게 끌려가는 자가 있는 것은 〈장수의〉 능하고 능하지 못함일 뿐인 것이다.
능히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오게 하는 것은 적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요, 능히 적으로 하여금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적을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이 편안하거든 능히 수고롭게 하고, 적이 배부르거든 능히 굶주리게 하고, 적이 안심하거든 능히 동요하게 해야 한다.
적이 오도록 하면 적의 전진과 후퇴, 굶주림과 배부름, 편안함과 수고로움의 권세가 내 손안에 달려 있고, 적에게 끌려가는 자는 이와 반대이다.
적이 달려오지 않는 곳으로 출동하며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천 리를 행군하고도 수고롭지 않은 것은 사람(적병)이 없는 지역을 가기 때문이요, 공격하여 반드시 점령하는 것은 적이 지키지 않는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요, 지키면 반드시 견고한 것은 적이 공격하지 않는 곳을 지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격을 잘하는 자는 적이 지킬 곳을 알지 못하고, 수비를 잘하는 자는 적이 공격할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미묘하고 미묘하여 형체가 없음에 이르고, 신묘하고 신묘하여 소리가 없음에 이른다.
적의 허虛‧실實을 살펴서 알면 적이 달려오지 않는 곳으로 출동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 사람이 없는 지역을 가듯이 하여, 비록 천 리를 행군하더라도 수고롭지 않은 것이다.
이는 적이 예상하지(수비하지) 않은 지역을 말한 것이니, 하필 등애鄧艾가 털방석으로 몸을 싸서 음평陰平으로 진출한 것과 같게 할 것이 있겠는가.
미루어서 적이 지키지 않는 곳을 공격하고 적이 공격하지 않는 곳을 수비함에 이르러서도 모두 다 허虛와 실實을 가지고 묘용妙用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극치極致에 이르게 되면 능히 적으로 하여금 지킬 바와 공격할 바를 알지 못하게 하여, 볼 만한 형체가 없고 들을 만한 소리가 없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상천上天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하였으니, 은미하고 신묘함이 여기에 가까운 것이다.
진실로 이와 같게 한다면 비록 적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말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진격하면 적이 막지 못하는 것은 적의 빈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요, 후퇴하면 적이 추격해오지 못하는 것은 신속하게 행동하여 적이 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적과 싸우고자 하면 적이 비록 보루를 높이 쌓고 해자를 깊이 파고 수비하더라도 우리와 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적이 반드시 구원할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요, 우리가 싸우고자 하지 않으면 비록 땅을 긋고 지키더라도 적이 우리와 싸울 수 없는 것은 적이 가는 곳을 어긋나게 하기 때문이다.
허虛한 틈을 타서 전진하면 우리를 막지 못하고, 질풍과 같이 빠르게 행동하면 우리를 추격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또 적이 달려오지 않는 곳으로 출동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는 것에서 더 진보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허虛와 실實을 살피는 것이다.
이익으로 적을 유인하여 따라오지 않으면 적이 반드시 구원할 곳을 공격하고, 계책으로 적을 해롭게 하는데도 적이 오면 적을 오판하게 하여 다른 데로 가게 하는 것은 바로 실하면서도 허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니, 이러고도 오히려 나의 계책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적에게 형체를 드러내 보이되 우리가 실제로 형체가 없게 하면, 우리는 전일專一하고 적은 분산될 것이다.
우리는 전일하여 하나가 되고 적은 분산되어 열이 되면 이는 열을 가지고 하나를 공격하는 것이니, 우리는 많고 적은 적게 된다.
많은 병력을 가지고 적은 병력의 적을 공격하면 우리가 상대하여 싸우는 자들이 적게 된다.
우리가 적과 싸우는 지역을 적이 알지 못하게 하여야 하니, 알지 못하면 적이 대비하는 곳이 많게 되고, 적이 대비하는 곳이 많게 되면 우리가 상대하여 싸우는 곳이 적게 된다.
그러므로 앞쪽을 대비하면 뒤쪽이 적어지고 뒤쪽을 대비하면 앞쪽이 적어지며, 왼쪽을 대비하면 오른쪽이 적어지고 오른쪽을 대비하면 왼쪽이 적어지며, 대비하지 않는 곳이 없으면 적어지지 않는 곳이 없게 되니, 〈적의 병력이〉 적어지는 까닭은 우리를 대비하기 때문이요, 〈우리의 병력이〉 많아지는 까닭은 적으로 하여금 여러 곳에서 우리를 대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윗글에서 말한 것처럼 적을 이롭게 하여 적이 싸우러 오게 하고, 적을 해롭게 하여 적이 추격을 중지하게 해서, 적이 편안하거든 수고롭게 만들고 적이 배부르거든 굶주리게 만드는 것은 모두 남에게 형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요, 적이 달려오지 않는 곳으로 출동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는 곳으로 달려가서, 진격하면 적이 막지 못하고 후퇴하면 적이 추격해오지 못하는 것은 모두 형체가 없는 것이다.
적으로 하여금 지킬 곳과 공격할 곳을 알지 못하게 하면 적의 병력이 분산되고, 나에게 있어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게 하면 우리의 병력이 전일하게 된다.
우리가 싸우고자 하면 적이 반드시 구원해야 할 곳을 공격하고, 우리가 싸우고자 하지 않으면 적이 가는 곳을 어긋나게 한다.
그리하여 전쟁의 권한이 적에게 있지 않게 하고 싸울 지역을 적이 알 수 없게 하면, 적이 두렵고 의혹에 빠져 사방의 여러 곳에 병력을 배치해서 우리를 방비할수록 적의 병력이 더욱 적어질 것이니, 방비하는 곳이 열 곳이면 적의 병력이 또한 열로 분산된다.
그러므로 비록 병력의 많고 적음이 본래 피아彼我가 대등하였더라도 우리의 병사 열 명으로 적의 병사 한 명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니, 저들은 우리를 대비하느라 병력이 분산되어 적어지고, 우리는 싸우는 상대가 적어져서 병력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투할 지역을 알고 전투할 날짜를 알면 천 리 멀리에서도 적과 회전會戰할 수 있고, 전투할 지역을 알지 못하고 전투할 날짜를 알지 못하면 왼쪽이 오른쪽을 구원하지 못하고 오른쪽이 왼쪽을 구원하지 못하며, 앞쪽이 뒤쪽을 구원하지 못하고 뒤쪽이 앞쪽을 구원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먼 경우에는 수십 리이고 가까운 경우도 몇 리에 있어서이겠는가.
전투할 날짜는 전투할 지역에 덧붙여 말한 것이다.
윗글을 이어서 적의 형체를 드러나게 하는 자는 권세가 항상 자신에게 있어서, 전투할 날짜와 전투할 지역을 미리 헤아린다.
그러므로 천 리 멀리에서도 약속에 달려가듯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에게 자신의 형체를 드러내 보이는 자는 이미 곳에 따라 병력을 분산 대비하여 전투할 때에 병력이 적어져서 많은 적을 상대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비록 병력을 철수하여 구원하고자 하나 좌左와 우右, 앞과 뒤가 서로 미치지 못하는데, 더구나 분산 배치한 병력이 몇 리와 몇 십 리의 먼 거리에 있음에랴.
오吳나라를 가지고 헤아려보건대 월越나라 사람의 병력이 비록 많으나 또한 어찌 승리에 유익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승리는 만들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니, 적의 병력이 비록 많으나 우리와 싸우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손자孫子가 오吳나라를 보좌하여 패자霸者가 되게 한 것은 월越나라 사람의 실정과 형체를 잘 헤아려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일을 들어서 이 편에 드러내기를 “월越나라의 병력이 비록 많더라도 승리에 유익함이 없어서 승리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어찌 우리와 싸울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군형軍形〉에 이르기를 “승리는 알 수는 있어도 만들 수는 없다.” 하였는데 여기에서 “승리를 만들 수 있다.”라고 한 것은, 저 〈군형軍形〉에서는 적이 굳게 수비하여 틈탈 만한 기회가 없음을 가지고 말하였고, 여기서는 이미 적의 형태를 드러나게 하여 적이 이미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적을 헤아려 득실得失의 계책을 알며, 적을 격동시켜 적의 동정動靜의 이치를 알며, 형체를 보여주어 죽고 사는 땅을 알며, 적과 다투어(적을 협공하여) 적의 유여有餘하고 부족한 곳을 아는 것이다.
‘책策’은 설공薛公이 경포黥布의 세 가지 계책을 헤아린 것과 같은 것이고, ‘작作’은 악백樂伯이 적을 격동시킨 것과 오기吳起가 적을 살펴본 것과 같은 방법이요, ‘형形’은 진탕陳湯이 오손烏孫을 계산하고 건숙蹇叔이 두 언덕을 기약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각角’은 힘으로 다툼이요, ‘유여有餘’와 ‘부족不足’은 견고함과 하자이다.
그러므로 병력을 드러내 보임의 지극함은 형태가 없음에 이르는 것이니, 형태가 없으면 깊이 숨어든 간첩도 엿보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도 도모하지 못한다.
형태를 인하여 사람들(병사)에게서 승리를 취하되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모두 내가 승리하는 형태만 알고, 내가 승리하게 만드는 형태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싸우면 승리하여 후회함이 없으니, 적의 형태에 대응하기를 무궁무진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형태가 없고 적에게 드러내 보임이 또한 형태가 없으면, 단지 깊이 숨어든 간첩과 지혜롭게 계책을 세우는 자도 따라서 엿보고 도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의 병사로서 나의 지시를 따르는 자들도 오직 승리함만 알고 내가 적의 형태를 따르는 방법을 알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한신韓信이 배수진背水陣을 쳐서 조趙나라를 격파하고는 병법兵法의 ‘사지死地에 빠진다.’는 말을 인용하여 장수들의 의혹을 풀어주었고, 이광필李光弼이 평야平野에 진영을 설치했다가 이윽고 밤중에 은밀히 떠나가고 잔약한 병사들만 남겨두어 지키게 하여 끝내 고정휘高庭暉를 항복시킨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돌아온다.[復]’는 것은 후회하는 말이니, 잃음이 없으면 어찌 후회하겠는가.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자기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온다.” 하였고,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온다.” 한 것이 이것이다.
군대의 형태는 물을 형상하니, 물의 형태는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으로 달려가고, 군대의 형태는 적의 견실한 곳을 피하고 허약한 곳을 공격한다.
그리하여 물은 땅에 따라 흐르고 군대는 적에 따라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는 일정한 형세가 없고 물은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이니, 적에 따라 변화하여 승리하는 것을 신묘神妙하다 이른다.
물을 가지고 군대를 비유함은 두 가지 모두 잘 이해되어서 간략하고 합당하고 간절하고 명백하니, 어찌 다시 주註를 낼 필요가 있겠는가.
군대는 항상 일정한 형세가 없어서 적의 형태를 따르고, 물은 항상 일정한 형태가 없어서 성질이 아래로 달려간다.
적을 이용하여 변화함은 변화를 적에게 맡기고 내가 이용하는 것이다.
《삼략三略》에 이르기를 “변동함에 일정함이 없어서 적에 따라 바꾸고 변화한다.” 하였고, 《울료자尉繚子》에 이르기를 “적敵이 희면 우리도 희게 만들고, 적敵이 붉으면 우리도 붉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오행五行은 항상 이기는 것이 없고 사시四時는 일정한 자리(위치)가 없으며, 해는 짧고 긺이 있고, 달은 죽고 삶이 있는 것이다.
윗글에 물로 군대를 비유하고 신神에게 비견함을 인하여 말하였다.
그러므로 다시 조화造化의 묘함을 인용해서 거듭 비유하여 맺은 것이다.
○군형軍形은 군대가 처음 형태를 이룬 것이고, 병세兵勢는 기세로써 사람을 부려 사람들이 스스로 싸우게 하는 것이고, 허실虛實은 적의 변화를 인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니, 〈군형軍形〉‧〈병세兵勢〉‧〈허실虛實〉 세 편篇이 서로 연하여 시작과 끝이 되었다.
그러므로 군형軍形의 도度와 양量, 수數와 칭稱은 다만 진陣의 형체만 있고, 병세兵勢의 ‘기세氣勢가 험하고 절도節度가 짧은 것’과 ‘분분운운紛紛紜紜하고 혼혼돈돈混混沌沌함’은 바로 전세戰勢이며,
병세兵勢의 ‘이로움에 따라 동하고 근본으로 대비함’은 처음으로 적에게 형태를 드러내 보임을 말했으나, 허虛‧실實의 형체가 없음은 바로 형태를 따라 승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형形은 형태가 있으나 숨겨져 있으므로 저장해놓은 물로 비유하였고, 세勢는 형태가 없으나 드러나 보이므로 나무와 돌로 비유하였고, 허실虛實은 변화變化하므로 오행五行과 사시四時와 일월日月로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