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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子髓

손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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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하니 奇正虛實 相因者也
前篇 詳於奇正하고 而虛實則微啓其端이라
此篇 遂專論之
始言審敵虛實하고 而推其妙用하여 至於致敵虛實이면 則敵人之命 操之在我하니 乃用兵之極致也
이나 善於奇正이면 則可馴致 而非有謬巧也
次虛實하니라
孫子曰
凡先處戰地而待敵者하고 後處戰地而趨戰者
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이니라
先處戰地也 後處戰地也
勞佚主客之勢 將莫不聞이로되 而有致人者하고 有致於人者 能與不能而已니라
能使敵人自至者 利之也 能使敵人不得至者 害之也
敵佚이어든 能勞之하고어든 能飢之하고이어든 能動之니라
卽致人之術也
能致人이면 則敵之進退飢飽安佚勞動之權 操之在我 致於人者 反是
出其所不趨하고 趨其所不意
行千里而不勞者 行於無人之地也 攻而必取者 攻其所不守也 守而必固者 守其所不攻也
善攻者 敵不知其所守하고 善守者 敵不知其所攻하나니
微乎微乎 至於無形이요 神乎神乎 至於無聲이라
能爲敵之司命이니라
審敵虛實이면 則出敵所不趨하고 趨敵所不意하여 如行無人之地하여 雖千里而不勞
蓋謂敵所不虞之地
推而至於攻其所不守하고 守其所不攻하여도 莫不皆以虛實爲妙用이라
其極致 能使敵不知所守所攻하여 而至於無形可見하고 無聲可聞이라
詩云 라하니 微而神 幾矣
誠如是也 雖謂司敵之命이라도 可也니라
進而不可禦者 衝其虛也 退而不可追者 速而不可及也
我欲戰이면 敵雖高壘深溝라도 不得不與我戰者 攻其所必救也 我不欲戰이면 雖畫地而守之라도 敵不得與我戰者 乖其所之也니라
乘虛而進이면 則莫我禦 其疾如風이면 則莫我追 蓋又進於出所不趨, 趨所不意
이나 猶是審於虛實也
利誘而不來 則攻其所必救하고 計害而猶來 則誤之使他往 乃實能虛之也 尙安有不聽者哉
形人而我無形이면 則我專而敵分하리니
我專爲一하고 敵分爲十이면 以十攻其一也 則我衆敵寡
能以衆擊寡 則吾之所與戰者約矣
吾所與戰之地 不可知 不可知 則敵所備者多하고 敵所備者多 則吾所與戰者寡矣
備前則後寡하고 備後則前寡하며 備左則右寡하고 備右則左寡하며 無所不備 則無所不寡하니 寡者 備人者也 衆者 使人備己者也니라
如上文利敵使至하고 害敵使止하여 佚而勞之하고 飽而饑之 皆形人也 出所不趨하고 趨所不意하여 進不可禦하고 退不可追 皆無形也
使敵不知所守所攻이면 則分也 在我無形無聲이면 則專也
欲戰則攻其必救하고 不欲則乖其所之하여
戰權不在敵하고 而戰地不可知하면 惶惑疑眩하여 四處置備하여 愈備而愈寡하니 所備十則所分亦十이라
雖衆寡本均이나 而可以十攻一이니 彼以備我而寡 我以與戰者約而衆也
知戰之地하고 知戰之日이면 則可千里而會戰이요 不知戰地하고 不知戰日이면 則左不能救右하고 右不能救左하며 前不能救後하고 後不能救前이어든 而況遠者數十里 近者數里乎
戰日 以戰地而帶敍也
承上文하여 言 形人者 權常在我하여 而預料戰日戰地
可千里而如赴約矣어니와
形於人者 旣隨處分備하여 及其戰也 寡不敵衆하여
而雖欲撤救 左右前後不能相及이어든 況所分 在數里數十里之距乎
度之컨대 越人之兵 雖多 亦奚益於勝哉리오
曰勝可爲也라하니 敵雖衆이나 可使無鬪니라
孫子佐吳以霸 蓋能越人之情形而從之
擧當時之事하여 著之篇曰 越兵雖多 無益於勝하여 而勝可由我 尙何足與我鬪哉리오하니라
軍形曰 勝 可知而不可爲라하고 此云 勝可爲者 彼以敵守固하여 機無乘而言이요 此以旣形敵하여 已入彀而言이니라
策之而知得失之計하고 作之而知動靜之理하고 形之而知死生之地하고 而知有餘不足之處니라
이요 是也
角力也 有餘不足 堅瑕也
形兵之極 至於無形이니 無形이면 則深間不能窺하고 智者不能謀하니
因形而措勝於衆호되 衆不能知
人皆知我所以勝之形하고 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이라
이요 而應形於無窮이니라
我旣無形이요 而所以形人者亦無形이면 則非止敵之深間智計無從窺謀也 卽我兵衆聽我措畫者 只知其勝하고 而莫知我因敵形之術이라
無失何悔리오
라하고 是也
夫兵形 象水하니 水之形 避高而趨下하고 兵之形 避實而擊虛하나니
水因地而制流하고 兵因敵而制勝이라
兵無常勢하고 水無常形하니 能因敵變化而取勝者 謂之神이니라
以水喩兵 雙融俱解하여 簡當切該하니 詎復須註리오
兵無常勢하여 因敵形也 水無常形하여 性趨下也
因敵變化 變化任敵而因者我也
라하고 하고 赤者赭之是也
因上文以水喩兵而擬之於神이라
復引造化之妙하여 申喩以結之하니라
○軍形者 兵始成形也 兵勢者 以勢使人하여 人自爲戰也 虛實者 因敵變化而取勝也 三篇 相因爲始終이라
軍形之度量數稱 但有陣形이요 而兵勢之勢險節短 紛紜混沌 乃戰勢也
兵勢之利動本待 始言形敵이로되 而虛實之無形 乃因形措勝也
有形而隱故 喩積水하고 無形而著故 喩木石하고 虛實則變而化之故 喩五行四時日月하니라


이정李靖은 말하기를 “은 적의 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 은 서로 연관되는 것이다.
앞 편은 을 자세히 말하고, 에 대해서는 약간 그 단서를 열어놓았다.
그러므로 이 편에서는 마침내 오로지 을 논한 것이다.
처음에는 을 살핌을 말하고, 그 묘용妙用을 미루어 적의 을 드러나게 함에 이르면 적의 목숨(운명)이 내 손안에 들어 있으니, 바로 용병의 극치이다.
그러나 을 잘하면 이것(虛‧)은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요, 특별한 속임수나 교묘한 계책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허실虛實〉을 다음에 둔 것이다.
손자孫子가 말하였다.
무릇 싸울 장소에 먼저 있으면서 적을 기다리는 자는 편안하고, 싸움터로 늦게 달려가는 자는 수고롭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이 오도록 만들고 적에게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
조사趙奢가 먼저 북산北山을 점거함은 싸울 장소에 먼저 있은 것이요, 고환高歡위곡渭曲으로 달려감은 싸울 곳에 뒤늦게 달려간 것이다.
수고로움과 편안함, 주인主人의 형세를 듣지 못한 장수가 없으나, 적이 오도록 만드는 자가 있고 적에게 끌려가는 자가 있는 것은 〈장수의〉 능하고 능하지 못함일 뿐인 것이다.
능히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오게 하는 것은 적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요, 능히 적으로 하여금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적을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이 편안하거든 능히 수고롭게 하고, 적이 배부르거든 능히 굶주리게 하고, 적이 안심하거든 능히 동요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적이 오도록 하는 방법이다.
적이 오도록 하면 적의 전진과 후퇴, 굶주림과 배부름, 편안함과 수고로움의 권세가 내 손안에 달려 있고, 적에게 끌려가는 자는 이와 반대이다.
적이 달려오지 않는 곳으로 출동하며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천 리를 행군하고도 수고롭지 않은 것은 사람(적병)이 없는 지역을 가기 때문이요, 공격하여 반드시 점령하는 것은 적이 지키지 않는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요, 지키면 반드시 견고한 것은 적이 공격하지 않는 곳을 지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격을 잘하는 자는 적이 지킬 곳을 알지 못하고, 수비를 잘하는 자는 적이 공격할 곳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미묘하고 미묘하여 형체가 없음에 이르고, 신묘하고 신묘하여 소리가 없음에 이른다.
그러므로 능히 적의 사명司命이 되는 것이다.
적의 을 살펴서 알면 적이 달려오지 않는 곳으로 출동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 사람이 없는 지역을 가듯이 하여, 비록 천 리를 행군하더라도 수고롭지 않은 것이다.
이는 적이 예상하지(수비하지) 않은 지역을 말한 것이니, 하필 등애鄧艾가 털방석으로 몸을 싸서 음평陰平으로 진출한 것과 같게 할 것이 있겠는가.
미루어서 적이 지키지 않는 곳을 공격하고 적이 공격하지 않는 곳을 수비함에 이르러서도 모두 다 을 가지고 묘용妙用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극치極致에 이르게 되면 능히 적으로 하여금 지킬 바와 공격할 바를 알지 못하게 하여, 볼 만한 형체가 없고 들을 만한 소리가 없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상천上天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하였으니, 은미하고 신묘함이 여기에 가까운 것이다.
진실로 이와 같게 한다면 비록 적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말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진격하면 적이 막지 못하는 것은 적의 빈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요, 후퇴하면 적이 추격해오지 못하는 것은 신속하게 행동하여 적이 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적과 싸우고자 하면 적이 비록 보루를 높이 쌓고 해자를 깊이 파고 수비하더라도 우리와 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적이 반드시 구원할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요, 우리가 싸우고자 하지 않으면 비록 땅을 긋고 지키더라도 적이 우리와 싸울 수 없는 것은 적이 가는 곳을 어긋나게 하기 때문이다.
한 틈을 타서 전진하면 우리를 막지 못하고, 질풍과 같이 빠르게 행동하면 우리를 추격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또 적이 달려오지 않는 곳으로 출동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는 것에서 더 진보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을 살피는 것이다.
이익으로 적을 유인하여 따라오지 않으면 적이 반드시 구원할 곳을 공격하고, 계책으로 적을 해롭게 하는데도 적이 오면 적을 오판하게 하여 다른 데로 가게 하는 것은 바로 실하면서도 허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니, 이러고도 오히려 나의 계책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적에게 형체를 드러내 보이되 우리가 실제로 형체가 없게 하면, 우리는 전일專一하고 적은 분산될 것이다.
우리는 전일하여 하나가 되고 적은 분산되어 열이 되면 이는 열을 가지고 하나를 공격하는 것이니, 우리는 많고 적은 적게 된다.
많은 병력을 가지고 적은 병력의 적을 공격하면 우리가 상대하여 싸우는 자들이 적게 된다.
우리가 적과 싸우는 지역을 적이 알지 못하게 하여야 하니, 알지 못하면 적이 대비하는 곳이 많게 되고, 적이 대비하는 곳이 많게 되면 우리가 상대하여 싸우는 곳이 적게 된다.
그러므로 앞쪽을 대비하면 뒤쪽이 적어지고 뒤쪽을 대비하면 앞쪽이 적어지며, 왼쪽을 대비하면 오른쪽이 적어지고 오른쪽을 대비하면 왼쪽이 적어지며, 대비하지 않는 곳이 없으면 적어지지 않는 곳이 없게 되니, 〈적의 병력이〉 적어지는 까닭은 우리를 대비하기 때문이요, 〈우리의 병력이〉 많아지는 까닭은 적으로 하여금 여러 곳에서 우리를 대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윗글에서 말한 것처럼 적을 이롭게 하여 적이 싸우러 오게 하고, 적을 해롭게 하여 적이 추격을 중지하게 해서, 적이 편안하거든 수고롭게 만들고 적이 배부르거든 굶주리게 만드는 것은 모두 남에게 형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요, 적이 달려오지 않는 곳으로 출동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는 곳으로 달려가서, 진격하면 적이 막지 못하고 후퇴하면 적이 추격해오지 못하는 것은 모두 형체가 없는 것이다.
적으로 하여금 지킬 곳과 공격할 곳을 알지 못하게 하면 적의 병력이 분산되고, 나에게 있어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게 하면 우리의 병력이 전일하게 된다.
우리가 싸우고자 하면 적이 반드시 구원해야 할 곳을 공격하고, 우리가 싸우고자 하지 않으면 적이 가는 곳을 어긋나게 한다.
그리하여 전쟁의 권한이 적에게 있지 않게 하고 싸울 지역을 적이 알 수 없게 하면, 적이 두렵고 의혹에 빠져 사방의 여러 곳에 병력을 배치해서 우리를 방비할수록 적의 병력이 더욱 적어질 것이니, 방비하는 곳이 열 곳이면 적의 병력이 또한 열로 분산된다.
그러므로 비록 병력의 많고 적음이 본래 피아彼我가 대등하였더라도 우리의 병사 열 명으로 적의 병사 한 명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니, 저들은 우리를 대비하느라 병력이 분산되어 적어지고, 우리는 싸우는 상대가 적어져서 병력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투할 지역을 알고 전투할 날짜를 알면 천 리 멀리에서도 적과 회전會戰할 수 있고, 전투할 지역을 알지 못하고 전투할 날짜를 알지 못하면 왼쪽이 오른쪽을 구원하지 못하고 오른쪽이 왼쪽을 구원하지 못하며, 앞쪽이 뒤쪽을 구원하지 못하고 뒤쪽이 앞쪽을 구원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먼 경우에는 수십 리이고 가까운 경우도 몇 리에 있어서이겠는가.
전투할 날짜는 전투할 지역에 덧붙여 말한 것이다.
윗글을 이어서 적의 형체를 드러나게 하는 자는 권세가 항상 자신에게 있어서, 전투할 날짜와 전투할 지역을 미리 헤아린다.
그러므로 천 리 멀리에서도 약속에 달려가듯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에게 자신의 형체를 드러내 보이는 자는 이미 곳에 따라 병력을 분산 대비하여 전투할 때에 병력이 적어져서 많은 적을 상대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비록 병력을 철수하여 구원하고자 하나 , 앞과 뒤가 서로 미치지 못하는데, 더구나 분산 배치한 병력이 몇 리와 몇 십 리의 먼 거리에 있음에랴.
나라를 가지고 헤아려보건대 나라 사람의 병력이 비록 많으나 또한 어찌 승리에 유익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승리는 만들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니, 적의 병력이 비록 많으나 우리와 싸우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손자孫子나라를 보좌하여 패자霸者가 되게 한 것은 나라 사람의 실정과 형체를 잘 헤아려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일을 들어서 이 편에 드러내기를 “나라의 병력이 비록 많더라도 승리에 유익함이 없어서 승리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어찌 우리와 싸울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다.
군형軍形〉에 이르기를 “승리는 알 수는 있어도 만들 수는 없다.” 하였는데 여기에서 “승리를 만들 수 있다.”라고 한 것은, 저 〈군형軍形〉에서는 적이 굳게 수비하여 틈탈 만한 기회가 없음을 가지고 말하였고, 여기서는 이미 적의 형태를 드러나게 하여 적이 이미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적을 헤아려 득실得失의 계책을 알며, 적을 격동시켜 적의 동정動靜의 이치를 알며, 형체를 보여주어 죽고 사는 땅을 알며, 적과 다투어(적을 협공하여) 적의 유여有餘하고 부족한 곳을 아는 것이다.
’은 설공薛公경포黥布의 세 가지 계책을 헤아린 것과 같은 것이고, ‘’은 악백樂伯이 적을 격동시킨 것과 오기吳起가 적을 살펴본 것과 같은 방법이요, ‘’은 진탕陳湯오손烏孫을 계산하고 건숙蹇叔이 두 언덕을 기약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은 힘으로 다툼이요, ‘유여有餘’와 ‘부족不足’은 견고함과 하자이다.
그러므로 병력을 드러내 보임의 지극함은 형태가 없음에 이르는 것이니, 형태가 없으면 깊이 숨어든 간첩도 엿보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도 도모하지 못한다.
형태를 인하여 사람들(병사)에게서 승리를 취하되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모두 내가 승리하는 형태만 알고, 내가 승리하게 만드는 형태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싸우면 승리하여 후회함이 없으니, 적의 형태에 대응하기를 무궁무진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형태가 없고 적에게 드러내 보임이 또한 형태가 없으면, 단지 깊이 숨어든 간첩과 지혜롭게 계책을 세우는 자도 따라서 엿보고 도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의 병사로서 나의 지시를 따르는 자들도 오직 승리함만 알고 내가 적의 형태를 따르는 방법을 알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한신韓信배수진背水陣을 쳐서 나라를 격파하고는 병법兵法의 ‘사지死地에 빠진다.’는 말을 인용하여 장수들의 의혹을 풀어주었고, 이광필李光弼평야平野에 진영을 설치했다가 이윽고 밤중에 은밀히 떠나가고 잔약한 병사들만 남겨두어 지키게 하여 끝내 고정휘高庭暉를 항복시킨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돌아온다.[復]’는 것은 후회하는 말이니, 잃음이 없으면 어찌 후회하겠는가.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자기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온다.” 하였고,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온다.” 한 것이 이것이다.
군대의 형태는 물을 형상하니, 물의 형태는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으로 달려가고, 군대의 형태는 적의 견실한 곳을 피하고 허약한 곳을 공격한다.
그리하여 물은 땅에 따라 흐르고 군대는 적에 따라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는 일정한 형세가 없고 물은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이니, 적에 따라 변화하여 승리하는 것을 신묘神妙하다 이른다.
물을 가지고 군대를 비유함은 두 가지 모두 잘 이해되어서 간략하고 합당하고 간절하고 명백하니, 어찌 다시 를 낼 필요가 있겠는가.
군대는 항상 일정한 형세가 없어서 적의 형태를 따르고, 물은 항상 일정한 형태가 없어서 성질이 아래로 달려간다.
적을 이용하여 변화함은 변화를 적에게 맡기고 내가 이용하는 것이다.
삼략三略》에 이르기를 “변동함에 일정함이 없어서 적에 따라 바꾸고 변화한다.” 하였고, 《울료자尉繚子》에 이르기를 “이 희면 우리도 희게 만들고, 이 붉으면 우리도 붉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오행五行은 항상 이기는 것이 없고 사시四時는 일정한 자리(위치)가 없으며, 해는 짧고 긺이 있고, 달은 죽고 삶이 있는 것이다.
윗글에 물로 군대를 비유하고 에게 비견함을 인하여 말하였다.
그러므로 다시 조화造化의 묘함을 인용해서 거듭 비유하여 맺은 것이다.
군형軍形은 군대가 처음 형태를 이룬 것이고, 병세兵勢는 기세로써 사람을 부려 사람들이 스스로 싸우게 하는 것이고, 허실虛實은 적의 변화를 인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니, 〈군형軍形〉‧〈병세兵勢〉‧〈허실虛實〉 세 이 서로 연하여 시작과 끝이 되었다.
그러므로 군형軍形, 은 다만 의 형체만 있고, 병세兵勢의 ‘기세氣勢가 험하고 절도節度가 짧은 것’과 ‘분분운운紛紛紜紜하고 혼혼돈돈混混沌沌함’은 바로 전세戰勢이며,
병세兵勢의 ‘이로움에 따라 동하고 근본으로 대비함’은 처음으로 적에게 형태를 드러내 보임을 말했으나, 의 형체가 없음은 바로 형태를 따라 승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은 형태가 있으나 숨겨져 있으므로 저장해놓은 물로 비유하였고, 는 형태가 없으나 드러나 보이므로 나무와 돌로 비유하였고, 허실虛實변화變化하므로 오행五行사시四時일월日月로 비유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李靖曰……所以致敵之虛實 : 이 내용은 《李衛公問對》 〈中卷〉에 보인다.
역주2 趙奢之先據北山 : 이 내용은 본서 155쪽 주 2) 참조.
역주3 高歡之趨赴渭曲 : 高歡(496〜547)은 東魏의 丞相으로 뒤에 아들 高洋이 北齊를 창건하여 神武帝로 추존된 인물이다. 渭曲은 지명으로 高歡이 西魏의 丞相 宇文泰(507〜556)와 회전하여 대패한 곳이다. 西魏 大統 3년(537), 高歡이 西魏를 정벌하고자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遠征하였다가, 渭曲에 배수진을 치고 기다린 宇文泰의 1만 군대에 대패하였다. 《周書 권2 文帝 下》
역주4 豈必如鄧艾之裹氈耶 : 鄧艾(197〜264)는 삼국시대 魏나라의 명장이다. 景元 4년(263), 鄧艾가 蜀漢을 정벌할 적에 陰平에서 景穀의 길을 따라 사람이 없는 지역으로 7백 리를 행군하였는데, 털방석으로 몸을 싸서 협곡을 통과하여 江油에 이르러, 蜀漢의 守將 馬邈의 항복을 받고 綿竹關에서 蜀漢의 衛將軍 諸葛瞻을 격파하니, 蜀漢의 後主인 劉禪이 항복을 청하였다. 《三國志 권28 鄧艾列傳》
이 경문과 관련하여 《孫子十家註》 중 張預의 註에 “적의 텅 빈 곳을 엄습하고 대비가 없는 곳을 공격하면 비록 천 리의 먼 곳을 공격하더라도 병사들이 피로하지 않는 것은, 鄧艾가 蜀을 칠 적에 陰平의 지름길을 통하여 사람이 없는 지역 700여 리를 행군한 것과 같음이 이것이다.”라고 하였는바, 趙羲純이 이를 비판하고, 당시 적이 수비하지 않는 곳으로 출동하면 비록 천 리 멀리 행군하여도 수고롭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5 上天之載無聲無臭 : 이 구절은 《詩經》 〈大雅 文王〉에 보인다.
역주6 (吾)[吳] : 저본에는 ‘吾’로 되어있으나, 아래 주에도 모두 ‘吳’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저자가 ‘吳’로 바꾸어 孫子가 당시 소속되어 있던 吳나라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뜻에는 큰 차이가 없다.
역주7 : 탁
역주8 角之 :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宣公 12년 조에 ‘左右角之’라고 보이는데, 杜預의 주에 “兩角(양쪽)으로 펼쳐 옆에서 협공하는 것이다.[張兩角 從旁夾攻之]” 하였다.
역주9 薛公料黥布之三計 : 黥布는 六縣 사람으로 項羽 밑에서 큰 공을 세워 九江王에 봉해졌다가 漢 高祖(劉邦)에게 귀순하여 淮南王에 봉해진 인물이다. 高祖 11년(B.C. 196)에 黥布가 배반하자, 高祖가 薛公을 불러 물으니, 대답하기를 “만일 黥布가 上策으로 나오면 山東 지방은 漢나라의 소유가 아닐 것이요, 中策으로 나오면 승패를 알 수 없고, 下策으로 나오면 陛下께서 베개를 높이 베고 누우셔서 漢나라에 아무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高祖가 묻기를 “黥布의 계책이 장차 어디로 나오겠는가?” 하니, 薛公은 “黥布는 驪山에서 부역하던 무리로서 스스로 萬乘의 군주가 되었으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하고 후손을 돌아보지 아니하여 반드시 下策으로 나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는데, 黥布는 과연 下策을 따르다가 멸망하였다. 《史記 권91 黥布列傳》
역주10 樂伯致師 : 樂伯은 춘추시대 楚 莊王의 신하이고, 致師는 도전을 이른다. B.C. 597년, 楚나라와 晉나라가 싸우다가 楚나라 임금이 晉나라에 화친을 청하고 晉나라가 이를 허락하여 결맹할 날짜를 정하였는데, 樂伯이 許伯을 御(마부)로, 攝叔을 車右로 삼아 戰車를 몰고 나가 진나라 군영까지 쳐들어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다. 《春秋左氏傳 宣公 12년》
역주11 吳起相敵之術 : 吳起(B.C. 440〜B.C. 381)는 춘추시대 衛나라 출신의 장군이자 兵法家로 《吳子》의 저자이다. ‘相敵’은 적장의 능하고 능하지 못함을 살피는 것인바, 魏 武侯가 이에 대해 묻자, 吳起는 “천하고 용감한 자로 하여금 경무장한 정예병을 거느리고 적을 시험하게 하되, 되도록 패하여 달아나고 얻는 것을 힘쓰지 않게 하여 적이 추격해오는 것을 살펴야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吳子 論兵》
역주12 陳湯之算烏孫 : 陳湯(?〜B.C. 6)은 前漢 元帝 때의 무신으로 字가 子公이다. 匈奴의 郅支單于가 漢나라를 배반하고 漢나라의 사신을 살해하자, 당시 西域副校尉로 있던 陳湯이 西域都護 甘延壽와 함께 황제의 制書를 위조하고 여러 성의 병력을 징발하여 匈奴를 불시에 공격해서 郅支單于를 목 베었다. 이 공으로 甘延壽는 義成侯, 陳湯은 關內侯에 봉해졌다.《漢書 권70 陳湯傳》
烏孫은 본래 漢나라 때에 天山 北路 주변에 살던 터키계 유목 민족을 이르나, 여기서는 匈奴를 가리켜 말하였다.
역주13 蹇叔之期二陵 : 蹇叔은 춘추시대 秦 穆公을 도와 패자가 되게 한 名臣이다. B.C. 628년 秦나라의 대부였던 杞子가 鄭나라에 있으면서 사람을 보내 穆公에게 고하기를 “鄭나라가 나로 하여금 北門의 자물쇠를 관장하게 하였으니, 만일 군대를 은밀히 출동하면 정나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자, 穆公이 이 일을 蹇叔과 상의하였다. 蹇叔이 극력 반대하였으나 목공은 이를 물리치고 마침내 孟明 등으로 하여금 정나라를 공격하게 했다가 晉 襄公에게 殽山에서 대패하였는바, 이때 蹇叔이 출전하는 자신의 아들에게 울며 말하기를 “晉나라 장수는 반드시 우리 군대를 殽山에서 막을 것이다. 殽山에는 두 언덕[二陵]이 있는데, 남쪽 언덕은 夏后 皐의 무덤이 있는 곳이고, 북쪽 언덕은 文王이 風雨를 피했던 곳이다. 네가 반드시 이 두 언덕 사이에서 죽을 것이니, 내가 그곳으로 가서 너의 시신을 거두리라.” 하였는데, 그 후 과연 그의 말대로 되었다. 《春秋左氏傳 僖公 32년》
역주14 其戰勝不復(복) : 대부분의 주석서에는 ‘復’자를 ‘다시’의 뜻으로 보아, ‘不復’을 ‘전에 사용한 계책을 두 번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으나, 저자는 “이러한 해석 또한 뜻은 통하나 글 뜻이 자못 짧다.”라고 비판하고, 아래의 해설처럼 復을 ‘회복하다’, ‘돌아오다’로 해석하였다.
역주15 : 복
역주16 韓信背水破趙……以解諸將之惑 : B.C. 204년에 漢나라 將軍인 韓信이 수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趙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이때 韓信은 주력군 1만 명으로 背水陣을 치고, 또 2천 명의 奇兵을 운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전투가 끝난 뒤에 여러 장수들이 병법에서 금기로 여기는 背水陣을 사용한 까닭을 묻자, 韓信은 “병법에 ‘死地에 빠진 뒤에 살고 망할 땅에 놓인 뒤에 보존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또 나는 평소에 어루만져 복종하는 병사와 軍官를 얻은 것이 아니니, 이는 이른바 ‘장꾼을 몰아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살 땅을 주면 모두 달아날 것이니, 어떻게 쓰겠는가?”라고 대답하여 諸將들을 悅服시켰다. 《史記 권92 淮陰侯列傳》
역주17 李光弼營于平野……卒降高暉 : 李光弼(708〜764)은 唐나라 玄宗‧肅宗 때의 명장으로 安祿山과 史思明의 난을 평정한 인물이며, 高暉는 安祿山이 죽은 뒤에 반란군의 수장이 된 史思明의 부장인 高庭暉이다. 史思明이 河淸에 주둔하자 李光弼이 野水渡에 진영을 설치하였으나 史思明 군대의 기습을 예상하고 병사들을 일부만 잔류시켜 놓고 기다렸다가 賊將 李日越을 사로잡아 후대하니 高庭暉가 마침내 항복하였다. 《資治通鑑 권221 唐紀37 肅宗皇帝 上》
역주18 復 悔之之辭 : 復은 잃었다가 다시 되찾거나 다른 길로 가다가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오는 것이므로, ‘후회하는 말’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19 語曰 克己復禮 : ‘克己復禮’는 자기의 私慾을 이겨 禮로 돌아온다는 의미로 《論語》 〈顔淵〉 1장에 보인다.
역주20 易曰 不遠復 : 멀리 가지 않고 다시 善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로, 《周易》 復卦 初九 爻辭에 보인다.
역주21 三略曰……因敵轉化 : 이 내용은 《三略》 〈上略〉에 보인다.
역주22 尉子曰……赤者赭之 : 이 내용은 《尉繚子》 〈武議〉에 보인다.
역주23 : 악
역주24 五行……月有死生 : 五行은 金‧木‧水‧火‧土로, 金은 木을, 木은 土를, 土는 水를, 水는 火를, 火는 金을 돌려가면서 이기며, 四時는 봄‧여름‧가을‧겨울로, 봄은 동쪽, 여름은 남쪽, 가을은 서쪽, 겨울은 북쪽에 해당하는데, 이 역시 변화하므로 말한 것이다. 해는 冬至부터는 길어지고 夏至부터는 짧아지며, 달은 초사흘에는 초승달이 생기고 그믐에는 달빛이 보이지 않으므로 죽고 삶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손자수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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