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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子髓

손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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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計 未戰而校勝負也 作戰 先事而計勞費也 謀攻 坐運而服人也 皆兵之機謀 而非兵之事也
軍形 兵有形也 兵勢 聲勢張也 虛實則變而極矣 神而化矣 鼓舞之至矣
이나 六翮擧而毛毳闕이면 何以成全鳥리오
軍爭以下 綴拾撰次 多以類從하여 文或不屬이나 而隨擧字眼爲題 非預立篇目하여 刻意結構하여 首尾相貫하고 之體也
軍爭之趨利而附以四治하고 九變之達權而戒以五危하며 處軍相敵竝論하여 而治兵從之하고 六地六敗相屬하여 而將道厠焉이라
致警愼于慍怒 殊無涉於火攻이요 宜微密以鉤情故 專論乎用間하니 皆言兵之所不可無하니 而具眼者所易見也
註家之强欲牽合 亦獨何哉
至於九地一篇하여는 匠心益巧하여 別出機杼하니하여 必死而生하고 幾危而安이라
兵家秘藏 發露無餘하여 爲全書殿後文字하여 으로 同一收結法이라 此乃一部之分段이니 而不可不知者也니라
孫子曰
凡用兵之法 將受命於君하여 合軍聚衆하여 交和而舍 莫難於軍爭이니
軍爭之難者 以迂爲直하고 以患爲利
迂其途而誘之以利하여 後人發하고 先人至하니 知迂直之計者也니라
軍門曰和라하니 交和 謂與敵相對而軍也
止舍 爲營壘也
軍爭 彼我得之皆利 不可不爭이라
이나 彼若先據而我往爭之 彼將以佚待勞하고 憑高乘之하리니 必敗之道也
法曰 無攻而趨其後라하니라
言敵雖先我發而由直徑이나 須設計悞之하여 使他往하고 以利誘之하여 使淹留하고 而我却利其患難하여 迤從迂路而後發先至 此其所以難也
我則以迂爲直하고 敵則以直爲迂
結之曰知迂直之計라하니라
軍爭爲利爲危니라
軍爭 雖則爲利 但動衆以爭則危하니 詳見下文하니라
擧軍而爭利 則不及하고 委軍而爭利 則輜重捐이라
是故 卷甲而趨하여 日夜不處하고 倍道兼行하여 百里而爭利하면 則擒三將軍이요 勁者先하고 疲者後 其法 十一而至하고
五十里而爭利하면 則蹶上將軍하니 其法 半至하고 三十里而爭利하면 則三分之二至
是故 軍無輜重則亡하고 無糧食則亡하고 無委則亡하나니라
猶束也 束甲 欲其速也
猶息也
三將軍 上中下軍之帥也
承上文하여 言軍爭之危也
蓋全軍則行緩不及하고 輕軍疾馳則軍資棄捐이요 而若所爭愈遠이면 則師行愈不屬하여 不能復整部伍하여 必勁者先하고 疲者後 而遇有邀截이면 則或三帥見擒하고 或上將顚蹶이라
其最近者 雖可太半得至 然器械糧食蓄積皆闕하니 安得不亡이리오
所以至危也
不知諸侯之謀者 不能豫交하고 不知之形者 不能行軍하고 不用鄕導者 不能得地利하나니라
一高一下曰阻
洳也
衆水所委爲澤이라
鄕導 以土着鄕人으로 爲前導也
承上文하여 言擧軍委軍俱不可
然則將奈何
惟豫交 則可以先至而得衆하여 借助而自給이요
而知險阻, 用鄕導 尤爲先務也
當時列國繡錯하여 所爭 多三屬之地 其說如此하니라
以詐立하고 以利動하고 以分合爲變者也
其疾如風하고 其徐如林하고 侵掠如火하고 不動如山하고 難知如陰하고 動如雷霆이라 하여 懸權而動하여 先知迂直之計者勝하니 軍爭之法也니라
承上文하여 言軍爭之法 必交諸侯하고 知險阻하고 用鄕導
이나 趨利者 非狙詐 無以自立이라
必以分合爲變하고 多方以誤之하여 使敵莫測하여 如風之疾하고 如林之徐하며 火急而掠하고 山峙而鎭하며 陰秘而難知하고 雷動而莫禦하니 皆所以迂其途而後發先至之術也
旣而掠其鄕而分置兵衆하고 廓其地而分據便利
能委資而足食하고 深入而益固也
이나 凡此 皆至險至危之事也 不可輕擧妄動이요 必稱敵於己하여 見勝乃擧
夫然後 方可謂知迂直之計하여 而勝斯在我矣
此節 以詐立三句起端이로되 而其喫緊處 專在分合하니 蓋敵旣先發而我趨其後 非出奇 何以得濟리오
必奇正相生하여 以詭道而變人耳目也
曰 言不相聞故 爲之金鼓하고 視不相見故 爲之旌旗라하니 夫金鼓旌旗者 所以一人之耳目也
人旣專一이면 則勇者不得獨進하고 怯者不得獨退하나니 用衆之法也니라
軍政 古兵家言也
鉦也 詩云 라하니라
析羽注竿曰旌旗 鼓則通稱也
金鼓旌旗 所以一視聽而爲進退之節也
此節으로 起下文奪氣也
夜戰 多火鼓하고 晝戰 多旌旗 所以變人之耳目也니라
夜則旌旗不可見故 代以火
夜不言金하고
亂也 謂敵人이라
言多其火鼓旌旗하여 使敵震於耳目而怖於心也
三軍 可奪氣 將軍 可奪心이라
是故 朝氣銳하고 晝氣惰하고 暮氣歸
[故] 善用兵者 避其銳氣하고 擊其惰歸하나니 治氣者也니라
라하고 待齊人三鼓而敗之 皆治氣也
李靖曰 含生稟血 鼓作爭鬪하여 雖死不省 氣使然也
按銳惰歸者 有以一日而言者하니 古人避朝待暮而得勝者甚多하고
亦有以止舍始末而言者하니 이라하니라
以治待亂하고 以靜待譁하니 治心者也 以近待遠하고 以佚待勞하고 以飽待饑하니 治力者也 無邀正正之旗하고 勿擊堂堂之陣이니 治變者也니라
治亂之由乎心 不待言矣 心撓故
含生禀血 皆有氣故 氣屬之軍하고 將能則整暇故 心屬之將이라
勞佚饑飽 將與卒均也
上文 多設火鼓旌旗 固欲變亂人耳目이요 而今正正堂堂 則去變遠矣
按兵勿擊 所以治變也
用兵之法 高陵勿向하고 背邱勿逆하고 佯北勿從하고 銳卒勿攻하고 餌兵勿食하고 歸師勿遏하고 圍師必闕하고 窮寇勿追 用兵之法也니라
大阜曰陵이요 土山爲邱 高陵勿向하고 背邱勿逆 皆勢不順也
語意大同이나 而勿向勿逆 亦隨其大小而分也
佯北疑於眞敗하니 將所宜察也
餌兵 以利誘我也 如魚之食餌也
歸師 只可尾追 遏則求奮矣
圍而闕이면 則見生路하여 不致死也 追窮寇 則殊死戰也
此節 當自爲一段이니 而借接上文勿擊來하니라


시계始計〉는 싸우기 전에 승부勝負를 비교하는 것이고, 〈작전作戰〉은 전쟁에 앞서 수고로움과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고, 〈모공謀攻〉은 앉아서 수판을 움직여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니, 모두 군대의 기모機謀이고 군대의 전쟁하는 일이 아니다.
군형軍形〉은 군대에 형체가 있는 것이고, 〈병세兵勢〉는 성세聲勢(기세)를 확장하는 것이며, 〈허실虛實〉은 변하여 지극하고 신묘神妙하게 하고 고무鼓舞함이 지극한 것이다.
마치 푸줏간 백정白丁의 손놀림이 음률(절도)에 맞지 않음이 없고, 계자季子가 음악을 구경함이 소소韶箾에서 그친 것과 같으니, 말 또한 여기에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여섯 개의 깃털을 들어도 솜털이 빠져 있으면 어떻게 온전한 새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군쟁軍爭〉 이하는 여러 병법兵法을 모아 차례로 엮어서 대부분 비슷한 종류끼리 서로 따르게 하여 문장文章이 혹 이어지지 않으나, 중요한 글자의 눈[字眼]을 들어 제목으로 삼았고, 미리 의 제목을 세워 결구結構의 뜻을 다해서 머리와 꼬리가 서로 관통하고 단숨에 이루어진 문체文體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쟁軍爭〉은 군대가 이익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네 가지 다스림을 덧붙였고, 〈구변九變〉은 권변權變을 통달하는 것으로 다섯 가지 위험을 경계하였으며, 군대를 주둔함과 적을 살펴봄을 함께 논하면서 치병治兵이 뒤따르고 육지六地육패六敗가 서로 이어지면서 장수의 가 끼어 있다.
분노와 노여움에 대해 지극히 경계하고 신중히 함은 자못 〈화공火攻〉과 상관이 없고, 마땅히 은미하고 치밀히 행동하여 적의 실정을 탐지하여야 하므로 오로지 간첩間諜을 사용함을 〈용간用間〉에서 논하였는데, 이는 모두 병법兵法을 논함에 없을 수 없는 것으로, 안목을 구비한 자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석가들이 억지로 이것을 끌어다가 맞추고자 함은 또한 유독 어째서인가.
구지九地〉 한 에 이르러서는 장인匠人의 마음이 더욱 공교로워 따로 한 문장을 지어냈으니, 마치 기마驥馬태행산太行山에서 곤궁하고 배가 여량呂梁을 지나오는 것과 같아서, 거의 죽었다가 살아나고 거의 위태로웠다가 편안해졌다.
병가兵家에서 남모르게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남김없이 노출하여, 《손자孫子전서全書의 후미를 장식하는 문자文字가 되었는바, 몽장蒙莊의 〈천하天下〉와 맹견孟堅의 〈서전敍傳〉과 함께 수습하여 맺은 이 동일하니, 이는 바로 이 한 권의 단락을 나눈 것으로 독자讀者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손자孫子가 말하였다.
무릇 용병用兵하는 방법은 장수가 군주에게 명령을 받아 군대를 합치고 무리(병력)를 모아서 화문和門을 마주하여 머물(대치할) 적에는 군쟁軍爭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다.
군쟁軍爭의 어려움은 우회하는 길을 직선의 길로 만들고 환란을 이로움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길을 우회하되 이로움으로써 적을 유인해서 적보다 뒤에 출발하여 적보다 먼저 도착하여야 하니, 이는 우회와 직선의 계책을 아는 것이다.
군문軍門화문和門이라 하니, ‘교화交和’는 과 상대해 을 주둔함을 이른다.
오자吳子》에 “나라에서 화합하지 못하면 군대를 출동할 수 없고, 군대에서 화합하지 못하면 나아가 진을 칠 수 없고, 진영陣營에서 화합하지 못하면 나아가 싸울 수 없고, 싸움터에서 화합하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 하였다.
’는 머무는 것이니, 머물면서 진영과 보루를 만드는 것이다.
군쟁軍爭은 바로 〈구지九地〉의 쟁지爭地(다투는 땅)이니, 적과 우리가 얻으면 모두 이로우므로 다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적이 만약 먼저 점거하였는데 우리가 가서 다투면, 적이 장차 편안함으로써 수고로운 우리를 상대하고 높은 곳에 의지하여 기세를 탈 것이니, 이는 필패必敗의 방도이다.
그러므로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공격하면서 그 뒤로 달려가지 말라.” 한 것이다.
적이 비록 나보다 먼저 출발하여 직선의 길로 가더라도, 모름지기 계책을 만들어 적을 그르쳐서 적으로 하여금 딴 곳으로 가게 하고, 이익으로 유도하여 지체하게 만들며, 우리가 도리어 적의 환난을 이롭게 여겨 우회하는 길을 따라 뒤늦게 출발해서 먼저 싸움터에 이르러야 하니, 이것이 그 어려운 이유이다.
우리는 우회하는 길을 직선으로 만들고, 적은 직선의 길을 우회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회와 직선의 계책을 안다.”라는 구절로 끝맺은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가 적과 다툼은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나, 무리(오합지졸)를 동원하여 다툼은 위태로움이 되는 것이다.
군쟁軍爭이 비록 이로움이 되나 무리(오합지졸)를 동원하여 다투면 위태로우니, 자세한 내용이 아랫글에 보인다.
전군全軍을 동원하여 이로움을 다투면 제때에 도착하지 못하고, 군대(행군속도가 느린 보병)를 버리고 이익을 다투면 치중輜重을 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갑옷을 말아 급히 달려가서 밤낮으로 머물지 않고 행군속도를 배가하여 백 리에 이익을 다투면, 세 장군이 사로잡히게 되고 굳센 자가 먼저 도착하고 피로한 자가 뒤에 도착하게 되니, 그 법이 10분의 1만 도착한다.
50리를 달려가 이익을 다투면 상장군上將軍이 쓰러지니 그 법이 군대가 반만 도착하고, 30리를 달려가 이익을 다투면 군대의 3분에 2가 도착한다.
이 때문에 군대는 치중輜重이 없으면 망하고 양식이 없으면 망하고 위적委積(저축)가 없으면 망하는 것이다.
’은 과 같으니, 갑옷을 말아 묶음은 신속히 행군하고자 해서이다.
’는 쉼과 같다.
세 장군은 상군上軍중군中軍하군下軍의 장수이다.
이는 위의 글을 이어 군쟁軍爭의 위태로움을 말한 것이다.
전군全軍을 이끌고 가면 행군속도가 느려서 미치지 못하고, 경무장한 군대로 급히 달려가면 군수물자를 버리게 되고, 만약 다투는 곳이 더욱 멀면 군대의 행군이 더욱 이어지지 못해서 다시는 부대를 정돈하지 못하여, 반드시 굳센 자가 먼저 이르고 피곤한 자가 뒤에 이르며, 적이 길을 가로막고 차단함을 만나면 혹 세 장군이 사로잡히거나 상장군上將軍이 쓰러진다.
가장 가까운 경우는 〈하루에 30리를 달려가는 것으로〉 비록 태반太半이 도착할 수 있으나, 만일 병기와 양식과 저축이 모두 없게 되면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위태로움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후들의 계책을 알지 못하는 자는 미리 외교外交하지 못하고, 산림山林험조險阻저택沮澤(저습한 늪지와 못)의 지형을 알지 못하는 자는 행군하지 못하고, 향도鄕導를 사용하지 않는 자는 지리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 높고 한 번 낮은 것을 라 한다.
’는 습지이다.
여러 물이 모이는 곳을 이라 한다.
향도鄕導’는 지방의 토착민을 앞세워 길을 인도하게 하는 것이다.
위의 글을 이어서 전군全軍을 총동원하거나 군대(보병)를 버리는 것이 모두 불가함을 말하였다.
그렇다면 장수는 어찌하여야 하는가?
오직 미리 외교外交를 하면 먼저 도착하여 병력을 얻어서 이웃 나라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공급할 수 있다.
지형의 험하고 막힘을 알고 향도鄕導를 사용함은 더더욱 급선무가 된다.
당시 열국列國의 지형이 서로 교차하여 다투는 지역이 세 나라에 소속한 땅이 많았으므로 그 말이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는 속임수를 근본으로 세우고, 이익에 따라 출동하고, 분산하고 합치는 것을 변화로 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빠름이 바람과 같고 느림이 숲과 같으며, 적을 침략할 적에는 불꽃과 같게 하고 움직이지 않을 적에는 산과 같게 하며, 〈적으로 하여금 우리를〉 알기 어려움이 그늘과 같게 하고 출동할 적에는 천둥벼락과 같게 하며, 지방을 노략질하여 병력을 분산 배치하고 땅을 넓혀 편리한 곳을 점거해야 하며, 저울대를 매달아놓고 거동(출동)하여, 먼저 우회와 직선의 계책을 아는 자는 승리하니, 이것이 군쟁軍爭의 법이다.
위의 글을 이어 군대가 서로 다투는 은 먼저 반드시 제후諸侯들과 외교外交하여야 하고, 지형의 험하고 막힘을 알고, 향도鄕導를 활용하여야 함을 말하였다.
그러나 이익에 달려가는 자는 속임수가 아니면 스스로 성립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분산하고 합치는 것으로 변화를 삼고 여러 방략方略으로 적을 그르쳐서 적으로 하여금 측량하지 못하게 하여, 바람의 빠름과 같고 숲의 느림과 같게 하며 불꽃처럼 급하게 노략질하고 산처럼 우뚝이 솟아 안정하며 음지陰地처럼 비밀스러워 알기가 어렵고 우레처럼 신속히 출동하여 막지 못하게 하여야 하니, 이는 모두 그 길을 우회하여 뒤늦게 출발해서 먼저 이르는 방법이다.
이윽고 적의 지역을 노략질하여 병력을 분산 배치하고 땅을 넓혀 편리한 곳을 점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능히 노략질한 물자를 쌓아 양식이 풍족하고 깊이 쳐들어가 더욱 견고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지극히 위험한 일이니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적을 자기와 저울질해서 승산勝算을 발견하고서 비로소 출동하여야 한다.
이렇게 한 뒤에야 비로소 우회와 직선의 계책을 안다고 이를 수 있어서 승리가 우리 편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은 ‘이사립以詐立’ 이하 세 로 시작하였으나, 긴요한 부분은 오로지 분산하고 합침에 있으니, 적이 이미 먼저 출발하고 우리가 그 뒤로 달려감은 기병奇兵을 출동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상생相生하여 속임수로써 적의 귀와 눈을 변란變亂시켜야 하는 것이다.
군정軍政》에 이르기를 “말소리가 서로 들리지 않기 때문에 징과 북을 사용하고, 시력이 서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깃발을 사용한다.” 하였으니, 징과 북과 깃발은 사람의 귀와 눈을 통일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귀와 눈이 이미 통일되면 용감한 자가 홀로 전진할 수 없고 겁이 많은 자가 홀로 후퇴할 수 없으니, 이것은 많은 병력을 운용하는 방법이다.
군정軍政》은 옛 병가兵家의 말이다.
(징)이니,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징 치는 사람이 북을 친다.” 하였다.
깃털을 쪼개어 깃대에 매단 것을 정기旌旗라 하고, 북은 큰 북과 작은 북의 통칭이다.
징과 북과 정기旌旗는 사람의 보고 들음을 통일시켜 전진하고 후퇴하는 절도節度로 삼는 것이다.
미리 출전하여 적의 수급首級 두 개를 베어오면 홀로 나갔다 하여 주벌하고, 등 뒤에 있다가 상처를 입으면 홀로 후퇴했다 하여 죽이니, 용맹스런 자와 겁이 많은 자를 어찌 통일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을 가지고 아랫글의 ‘탈기奪氣[三軍 可奪氣]’의 구절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므로 야간 전투에는 불과 북을 많이 사용하고, 주간 전투에는 깃발을 많이 사용하니, 이는 사람(적)의 귀와 눈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밤에는 깃발을 볼 수 없으므로 불로 대신하는 것이다.
밤에는 징을 말하지 않고 낮에 다만 깃발을 든 것은 호문互文이다.
은 어지럽히는 것이요, 사람은 을 이른다.
불과 북과 정기旌旗를 많이 사용하여 적으로 하여금 귀와 눈이 놀라 마음에 두려워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에 이르기를 “일제히 북을 쳐서 나라 군대를 동요하게 하였다.” 하였고, 《오자吳子》에 이르기를 “적을 놀라게 하여 패주시킬 수 있다.” 하였다.
그러므로 삼군三軍를 빼앗을 수 있고 장군은 마음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침 기운은 예리하고 낮 기운은 태만하고 저녁 기운은 지쳐서 돌아가려 한다.
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의 예리한 기운을 피하고 나태하여 돌아갈 적에 공격하는 것이니, 이는 기운을 잘 다스리는 자이다.
범려范蠡가 말하기를 “적의 양절陽節이 다하기를 기다리고 우리의 음절陰節을 가득 채워 빼앗는다.” 하였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조귀曹劌나라 사람이 세 번 북치기를 기다려 공격해서 제군齊軍을 패퇴시킨 것’이 모두 기운을 다스린 것이다.
이정李靖이 말하기를 “생명을 간직하고 피를 가지고 있는 자(사람)가 고무鼓舞되어 싸워서, 비록 죽더라도 돌아보지 않는 것은 기운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오기吳起사기四機 중에 기기氣機를 앞에 두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싸우게 하면 그 예봉銳鋒을 당할 수 없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이른바 아침 기운이 예리하다는 것은 시각을 제한하여 말한 것이 아니요, 하루의 처음과 끝을 들어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아침 기운은 예리하고 낮 기운은 태만하고 저녁 기운은 지쳐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은 하루를 가지고 말한 경우가 있으니, 옛사람이 아침을 피하고 저녁을 기다려 승리한 자가 매우 많으며,
또한 군대를 주둔한 처음과 끝을 가지고 말한 경우가 있으니, 《오자吳子》에 “적군이 오랫동안 정체하고 이동시키지 아니하여 적의 장병들이 태만해지고 군대가 대비함이 없으면, 은밀히 군대를 출동시켜 습격할 수 있다.” 하였다.
자군自軍의 다스려짐으로써 적이 혼란하기를 기다리고 자군自軍의 고요함으로써 적이 떠들기를 기다려야 하니 이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요, 가까이 있는 자군自軍으로 멀리서 온 적을 기다리고 편안한 자군自軍으로 수고로운 적을 기다리고 배부른 자군自軍으로 굶주린 적을 기다려야 하니 이는 힘을 다스리는 것이요, 바르고 정돈된 적의 깃발을 맞아 싸우지 말고 당당한 적의 진영을 공격하지 말아야 하니, 이는 변화를 다스리는 것이다.
다스려짐과 혼란함이 마음에 달려 있음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니, 병사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에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다.
무제武帝가 전투에 임해서 의사意思를 편안하고 한가롭게 하여 전투하고자 하지 않는 듯이 함은 마음을 잘 다스린 것이다.
생명生命을 간직하고 피를 가지고 있는 자는 모두 기운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기운을 병사에게 소속시켰고, 장수가 유능하면 군대를 정돈하여 여유가 있으므로 마음을 장수에게 소속시켰다.
수고로움과 편안함, 굶주림과 배부름은 장수와 병사가 똑같다.
위의 글에 불과 북, 정기旌旗를 많이 설치함은 진실로 적의 귀와 눈을 어지럽히고자 한 것이요, 지금 정정正正하고 당당堂堂하게 대함은 과는 거리가 멀다.
군대를 주둔하고 공격하지 않음은 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병用兵하는 방법은 높은 언덕의 적은 향하지 말고, 언덕을 등진 적은 맞서 싸우지 말고, 거짓 패하여 달아나는 적은 추격하지 말고, 정예로운 적은 공격하지 말고, 미끼로 내놓은 적은 취하지 말고, 돌아가는 적은 막지 말고, 포위된 적은 반드시 한쪽을 비워주고, 궁지에 빠진 적은 압박하지 말아야 하니, 이는 용병하는 방법이다.
큰 언덕을 이라 하고 토산土山라 하니, ‘높은 언덕의 적은 향하지 말고 언덕을 등진 적은 맞서 싸우지 말라.’는 것은 모두 형세가 순하지 않아서이다.
말뜻은 대략 같으나, 향하지 말라는 것과 맞서지 말라는 것은 그 크고 작음에 따라 나눈 것이다.
거짓 패주함은 진짜 패주함과 유사하니, 장수가 마땅히 살펴야 한다.
예졸銳卒’은 선발된 선봉대이니, 나라 이릉李陵이 기이한 재주가 있는 검객劍客을 데리고 스스로 한 부대를 담당하였고, 나라 상석영商石英이 12명의 기병騎兵으로 4백 명의 적을 죽인 것이 이것이다.
이병餌兵’은 이익으로써 우리를 유인하는 것이니, ‘’은 고기가 낚싯밥을 먹는 것과 같다.
돌아가는 군대는 다만 후미를 추격해야 하니, 앞을 가로막으면 분발하여 싸우게 된다.
적을 포위할 적에 한쪽을 비워주면 적이 살 길을 보고서 사력死力을 다해 결사적으로 싸우지 않으며, 궁지에 빠진 적을 추격하면 결사적으로 싸운다.
은 마땅히 따로 한 단락이 되어야 하니, 위의 글에 ‘공격하지 말라.’는 것을 빌려 접속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庖丁之技……止於韶箾 : 庖丁은 전국시대 이름난 白丁으로 소를 잡아 해체하는 데에 神技에 가까운 기술을 가졌다. ‘莫不中音’은 《莊子》 〈養生主〉에 “庖丁이 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았는데, 손이 닿는 곳과 어깨를 기대는 곳과 발을 딛는 곳과 무릎으로 누르는 곳마다, 휙휙 뼈를 발라내는 소리와 칼로 가르는 소리가 절도(음률)에 모두 맞았다.[庖丁爲文惠君解牛 手之所觸 肩之所倚 足之所履 膝之所踦 砉然嚮然 奏刀騞然 莫不中音]”라고 보인다.
季子는 춘추시대 吳王 壽夢의 넷째 아들인 季札을 이르며, 韶箾는 舜임금의 음악이다. 계찰이 禮樂에 밝아 魯나라로 사신 가서 周나라의 음악을 듣고 列國의 치란과 흥망성쇠를 예견하였으며, 또 여러 왕조의 춤을 관람하였는데, 象箾舞‧南籥舞‧韶濩舞‧大夏舞를 차례로 보고 평하다가, 韶箾舞를 보고서는 “아무리 盛大한 德이라 해도 이보다 더할 수 없으니, 훌륭하기 그지없습니다. 설령 다른 樂舞가 있다 하더라도 나는 감히 더 보기를 청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 29년》
역주2 一氣呵成 : 문장이 하나로 연결되어 단숨에 이루어진 것을 이른다.
역주3 驥困太行 船經呂梁 : 驥는 驥馬로 천리마를 이르고, 太行은 太行山으로 중국 河南省과 山西省 경계에 있는 대협곡인데, 길이 험준하기로 유명하다. 呂梁은 중국 泗水에 있는 여울로, 물살이 급하고 험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莊子》 〈達生〉에 “孔子가 여량을 구경하였는데, 폭포가 30길 높이였고 거센 물결의 물거품이 40리나 퍼지니, 자라와 악어, 물고기와 거북도 헤엄치지 못하는 곳이었다.[孔子觀於吕梁 縣水三十仞 流沫四十里 黿鼉魚鱉之所不能游也]”라고 보인다.
역주4 與蒙莊之天下 : 蒙莊은 莊周로, 그가 蒙縣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莊周가 지은 《莊子》는 33편 가운데 〈天下〉가 맨 끝에 있으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5 孟堅之敍傳 : 孟堅은 後漢 중기의 문신이자 역사가로 《漢書》의 편찬자인 班固(32~92)의 字인바, 《漢書》의 〈敍傳〉이 맨 끝에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6 吳子曰……不可以决勝 : 이 내용은 《吳子》 〈圖國〉에 보인다.
역주7 九地之爭地 : 九地는 아래에 보이는 편명이다. 爭地는 〈九地〉에 “우리가 얻어도 이롭고 적이 얻어도 이로운 것을 爭地라 한다.[我得亦利 彼得亦利者 爲爭地]”라고 보인다.
역주8 [爭] : 저본에는 ‘爭’이 없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9 : 자
역주10 山林險阻沮澤 : 劉寅의 《孫武子直解》에 “지세가 높은 것이 山이고 나무가 빽빽이 모인 것이 林이며, 구덩이가 險이고 한 번 높고 한 번 낮은 것이 阻이며, 진흙이 있어서 저습한 것이 沮이고 여러 물이 모여 흐르지 않는 것이 澤이다.[勢崇峻者爲山 木叢聚者爲林 坑坎者爲險 一高一下者爲阻 泥濘漸洳者爲沮 衆水所歸不流者爲澤]”라고 풀이하였다.
역주11 掠鄕分衆 廓地分利 : 이 구절을 劉寅의 《直解》와 몇몇 주석가들은 “향촌을 노략질할 적에는 병력을 나누며, 넓은 지역에는 편리한 곳을 나누어 지킨다.”라고 해석하였으나, 趙羲純은 이를 구차하여 찬성할 수 없다고 附錄에서 비판하였다.
역주12 軍政 : 고대 병법서 중의 하나로 西周 시기의 병서로 보이나 지금은 失傳되었고 작자 또한 미상이다.
역주13 鉦人伐鼓 : ‘징 치는 사람이 북을 친다.’는 뜻으로, 이 구절은 《詩經》 〈小雅 采芑〉에 보이는바, 이는 ‘징 치는 사람은 징을 치고, 북 치는 사람은 북을 친다.’는 표현을 축약하여 쓴 것으로, 이러한 문장을 互文이라 한다.
역주14 前獲雙首 則以獨進而誅 : 이 내용은 《尉繚子》 〈武議〉에 다음과 같이 보인다. “吳起가 秦나라와 싸울 적에 교전하기 전에 한 병사가 자기의 용맹을 주체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 적의 首級 두 개를 베어 가지고 돌아오자, 吳起가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이때 軍吏가 諫하기를 ‘이는 勇力이 뛰어난 병사이니, 목을 베어서는 안 됩니다.’ 하였으나, 吳起는 ‘勇力이 뛰어난 병사임은 분명하지만 나의 명령을 따른 것이 아니다.’라 하고, 참수하였다.[吳起與秦戰 未合 一夫不勝其勇 前獲雙首而還 吳起立斬之 軍吏諫曰 此는 材士也 不可斬 起曰 材士則是也 非吾令也 斬之]”
역주15 背後被創 則以獨退而死 : 이 내용은 위 경문의 ‘勇者不得獨進 怯者不得獨退’를 설명하기 위해 趙羲純이 앞 문장과 對句를 맞춘 것으로 다른 병서에는 보이지 않는다.
역주16 形名 : 形은 旌旗와 麾幟(깃발)의 형체를 이르고, 名은 징과 북, 피리와 젓대의 名聲(소리)을 이른다.
역주17 晝止擧旗 互文也 : 互文이란 똑같은 내용이 중복될 경우 두 번 다 쓰지 않고 각각 한 가지만 씀을 이르는바, 곧 ‘징[金]’을 밤과 낮에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역주18 傳曰 鈞鼓以震楚師 : 이 내용은 춘추시대 蔡나라의 聲子가 楚나라에 빙문 가서 令尹 子木과 나눈 대화에 “繞角의 전투에 晉軍이 도주하려 하자, 析公이 ‘楚軍은 경솔하여 쉽게 동요시킬 수 있으니, 일제히 북을 울리면서 야음을 틈타 공격하면 楚軍은 반드시 도망갈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晉人이 그 말을 따르니, 과연 楚軍은 밤에 흩어져 도망하였습니다.[繞角之役 晉將遁矣 析公曰 楚師輕窕 易震蕩也 若多鼓鈞聲 以夜軍之 楚師必遁 晉人從之 楚師宵潰]”라고 보인다. 《春秋左氏傳 襄公 26년》
역주19 吳子曰 可震而走 : 이 내용은 《吳子》 〈論將〉에 보인다.
역주20 : 저본에는 ‘故’가 두 곳에 모두 없으나 諸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21 范蠡曰……盈吾陰節而奪之 : 陽節은 剛强한 기세를 이르고, 陰節은 침착하고 안정된 기세를 이른다. 이 내용은 《李衛公問對》 〈中卷〉에 보이는데, 劉寅은 《孫武子直解》에서 “范蠡는 越나라 사람이니, 《漢書》 〈藝文志〉에 ‘《范蠡》 2편이 있다.’ 하였으나, 지금은 볼 수가 없다.” 하였다.
역주22 左傳 曹劌(귀)待齊人三鼓而敗之 : 曹劌는 춘추시대 魯나라의 대부이다. B.C. 684년 봄, 齊軍이 魯나라를 공격하자, 魯 莊公이 曹劌와 같은 수레를 타고 長勺에서 齊軍과 전투하였는데, 莊公이 공격의 북을 치려 하자 曹劌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렸다. 齊軍이 북을 세 번 치자, 曹劌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하여 북을 쳐 공격해서 齊軍을 대패시켰다. 승전한 뒤에 莊公이 曹劌에게 북을 늦게 치게 한 이유를 묻자, 曹劌는 “전쟁의 승패는 용기에 달려 있습니다. 북이 한 번 울리면 용기가 진작되고, 두 번 울리면 용기가 쇠하고, 세 번 울리면 용기가 고갈됩니다. 齊軍이 북을 세 번 울렸을 때 저들은 이미 용기가 고갈되고 아군은 한창 용기가 왕성하였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春秋左氏傳 莊公 10년》
역주23 : 귀
역주24 李靖曰……則其銳莫當 : 이 내용은 《李衛公問對》 〈下卷〉의 “생명을 간직하고 피를 가지고 있는 자가 鼓舞되어 싸워서 비록 죽더라도 돌아보지 않는 것은 기운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吳起의 四機 중에 氣機를 제일로 삼은 것은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능히 사람마다 스스로 싸우게 하면 그 예기를 당할 수가 없습니다.[含生稟血 鼓作闘爭 雖死不省者 氣使然也……吳起四機 以氣機爲上 無他道也 將能使人人自闘 則其銳莫當]”라는 구절을 약간 바꿔서 인용한 것이다. 吳起의 四機는 《吳子》 〈論將〉에 “무릇 군대에는 네 가지 機가 있으니, 첫 번째는 氣機이고 두 번째는 地機이고 세 번째는 事機이고 네 번째는 力機이다.”라고 보인다.
역주25 又曰……擧一日始末爲喩也 : 이 내용은 《李衛公問對》 〈下卷〉에 보인다.
역주26 吳子曰……可潛而襲 : 이 내용은 《吳子》 〈論將〉에 보인다.
역주27 魏武之意思安閒 如不欲戰 : 魏武는 曹操로, 아들인 曹丕가 魏나라 황제의 지위에 오른 뒤에 武帝로 추존되었다. 조조는 평소 전투에 임했을 적에 태연하여 마치 전쟁하지 않으려는 자와 같았으므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역주28 漢李陵以奇材劍客 自當一隊 : 李陵은 前漢 武帝 때의 장군으로, 天漢 2년(B.C. 99) 匈奴를 공격할 적에 武帝가 그를 貳師將軍 李廣利의 부하로 輜重隊를 이끌고 군량 수송을 담당하게 하자, 李陵이 “臣이 거느리고 있는 병사들은 모두 吳‧楚 지방의 기이한 재주가 있는 劍客으로서 힘이 호랑이를 겨드랑이에 끼어 죽일 수 있고 활을 쏘면 명중시킬 수 있으니, 스스로 한 부대를 담당하여 單于의 군대를 분산시키겠다.”라고 한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역주29 明商石英……殺賊四百 : 이 내용은 자세하지 않다.

손자수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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