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하니 善用兵者
는 惟死地是求
하나니 何云誤居耶
아
衆寡不相恃를 舊註云 衆者는 大陣也요 寡者는 大陣之小陣이라하니 誤矣라
古之所謂善用兵一段을 題矩曰 合利는 切定九地說이니 利는 卽九地中之利라
合字에 有審時, 度勢, 相機, 因變意하니 承上死地則戰하여 言動卽戰也라
合利는 是兵入死地어든 而我以節制之兵衝擊也라하고
周魯觀曰 動無主하여 以利爲主하니 死地求生은 卽死地之利也라하고
按火攻篇에 亦有合於利而動하고 不合於利而止之語하니 蓋泛論也라 安所從見承死地而言乎아
九地一篇이 旣專論死地어늘 而歷敍九地之後에 便次此節이라 故로 三家之說如是하니
運兵計謀 爲不可測
을 舊註云 運我兵機
하여 令敵人不可測
이라하니 誤矣
라
其所安之居
하고 迂其所趨之道
하여 無使人能慮
라하니
若無緣而去安從危하고 舍近卽遠이면 則非以愚之요 乃反擾之니 豈理也哉아
過則從을 以爲過詿誤也니 人有誤失하여 陷在危難이면 則皆聽從이라하니 誤矣라
若以四五合爲九하여 而爲謂九地라하면 則謂五利爲二三者可乎아
若曰四當作此요 五當作三이라하면 則卽指上三者而言也어니와 若九地則不須於此段에 更提也니라
以順詳之詳으로 爲審察하고 以厲於廊廟之厲로 訓嚴, 訓惕은 皆不穩妥라
劉寅曰 微는 無也니 先奪敵人之所顧愛호되 無與之相期也라하니라
가림賈林은 사지死地에 대하여 “잘못해서 이러한 사지死地에 주둔하였을 경우에는 속히 싸우면 산다.” 하였는데, 용병用兵을 잘하는 자는 오직 사지死地를 찾으니, 어찌 잘못 주둔했다고 말한단 말인가.
‘병력이 많은 부대와 적은 부대가 서로 믿지 못하게 한다.[衆寡不相恃]’를 구주舊註에는 “중衆은 큰 진陣이고 과寡는 큰 진陣의 작은 진陣이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고지소위선용병古之所謂善用兵’ 한 단락에 대하여, 제구題矩는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은 구지九地의 설說에 매우 적합하니, 이利는 바로 구지九地 가운데의 이익이다.
‘합合’자에는 때를 살피고 세勢를 헤아리고 기회를 살피고 변화를 이용한다는 뜻이 있으니, 위의 ‘사지死地에서는 결사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글을 이어서 동動함이 바로 싸움임을 말한 것이다.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은 군대가 사지死地에 들어갔으면 내가 절제節制하는 군대로 충격衝擊하는 것이다.” 하였고,
주로관周魯觀은 말하기를 “출동할 적에 일정한 주장이 없어서 이익을 위주로 하니, 사지死地에서 삶을 구함은 바로 사지死地의 이익이다.” 하였고,
후천방侯天放은 말하기를 “이는 오로지 ‘사지死地에서는 결사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글을 이어서 말한 것이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화공火攻〉에도 “이익에 부합하면 출동하고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중지하여야 한다.”라는 글이 있는데, 이는 범연히 논한 것일 뿐, 사지死地를 이어 말하였음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구지九地〉 한 편은 오로지 사지死地를 논하였는데 아홉 가지 지형을 차례로 서술한 뒤에 곧 이 절을 다음에 두었으므로, 삼가三家의 설說이 이와 같은 것이다.
글을 씀이 어떠한지를 돌아볼 뿐이니, 어찌 억지로 해석할 수 있겠는가.
‘운병계모運兵計謀 위불가측爲不可測’을 구주舊註에는 “우리 병기兵機를 운용하여 적으로 하여금 측량해서 헤아릴 수 없게 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이는 바로 자기 병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계책을 측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망할 곳이 없는 곳으로 병력을 투입한다.’는 글로 뒤를 이은 것이다.
솔연率然을 “서로 대응하기를 신속히 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솔연率然은 본래 뱀의 이름인데, 뱀을 가지고 명명命名한 까닭은 아마도 이 뱀이 신속히 대응하기 때문일 것이다.
‘휴수携手’를 “손을 들어 지휘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삼군三軍을 총동원하되, 한 사람의 손을 잡는 것과 같이 함을 말한 것이다.
두목杜牧이 말하기를 “‘주둔하는 지역을 바꿈[易其居]’은 편안함을 버리고 위험함을 따르는 것이요, ‘길을 우회함[迂其途]’은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으로 가는 것이다.” 하였고, 매요신梅堯臣은 “편안한 거처를 바꾸고 달려가는 길을 우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였으니.
만약 이유 없이 편안한 곳을 버리고 위태로움을 따르고,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으로 간다면, 군사들을 어리석게 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동요시키는 것이니, 어찌 이치에 맞겠는가.
‘주둔하는 지역을 바꿈’은 장병들을 경계시키기 위한 것이니, 《오자吳子》에 “군대를 오랫동안 정체시키고 이동시키지 않으면 장병들이 태만해진다.”는 것이 이것이다.
‘길을 우회함’은 적을 속이기 위한 것이니, 한漢나라 군대가 연잠延岑의 군대 뒤로 돌아 나온 경우가 이것이다.
만약 곧장 앞으로 나아가 범한다면 장병들의 마음이 두려워하고 꺼리기 때문이다.
‘과즉종過則從’에 대해 “과過는 잘못이니, 사람이 잘못이 있어서 위험하고 어려운 곳에 빠져 있으면 장수인 나의 말을 모두 듣고 따른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어찌 ‘과過’를 과실過失로 해석할 수 있겠는가.
‘사오四五’에 대해 “‘아홉 가지 지형[九地]’을 말한 것이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만약 “4와 5를 합하면 9가 된다고 해서 아홉 가지 지형이라고 말한다면, ‘다섯 가지 이로움[五利]’은 2와 3을 합쳤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이 되겠는가.
여기에는 반드시 탈자脫字와 오자誤字가 있을 것이다.
만약 “사四자는 마땅히 ‘차此’가 되어야 하고, 오五자는 마땅히 ‘삼三’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면, 바로 위의 세 가지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 되지만, 만약 아홉 가지 지형이라면 이 단락에서 다시 제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범삼군犯三軍’의 범犯을 “범犯은 쓰는 것이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훈고訓詁를 따르지 않고 글에 따라 제멋대로 해석한다면 크게 옳지 않다.
‘능위승패能爲勝敗’를 “능히 승리하는 군대가 되어서 적으로 하여금 패하게 한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순상順詳’의 ‘상詳’을 “자세히 살피다.”라 하고, ‘여어낭묘厲於廊廟’의 ‘여厲’를 엄嚴함으로 훈訓하고 두려움으로 훈訓하는 것은 모두 온당치 못하다.
‘미여지기微與之期’의 ‘미微’는 은밀함이니, 은밀히 시기時期에 맞춰 달려가는 것이다.
유인劉寅은 말하기를 “‘미微’는 무無이니, 적이 돌아보고 아끼고 의지하고 믿는 곳을 먼저 빼앗되 더불어 기약하지 말아야 한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기期’라는 것은 남을 기다린다는 말이니, 알지 못하겠다.
‘미微’는 마땅히 본자本字(은미함)와 같이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