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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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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子路 問强한대
[注]强 勇者所好也
子曰
南方之强與 北方之强與
[注]言三者所以爲强者異也
辭也
而之言 女也
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니라
[注]南方 以舒緩爲强이라
不報無道
○校 報也
衽金革하여 死而不厭 北方之强也 居之
居之니라
[注]衽 猶席也
北方 以剛猛爲强이라
君子 하나니 强哉矯
中立而不倚하나니 强哉矯
國有道 하나니 强哉矯
國無道 하나니 强哉矯
[注]此抑女之强也
猶移也 猶實也
國有道 不變以趨時 國無道 不變以辟害 有道無道 一也
强貌
이라
[疏]‘子路’至‘哉矯’
○正義曰 : 此一節明中庸之道, 亦兼中國之强.
子路聞孔子美顔回能擇中庸, 言己有强, 故問之, 問强中亦兼有中庸否.
庾氏云, 問强中之中庸者.
然此問之, 亦如論語云,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唯我與爾有是夫.’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之類是也.
○‘子曰 南方之强與 北方之强與 抑而强與’者, 抑, 語助也.
而之言女也, 女, 子路也.
夫子將答子路之問, 且先反問子路, 言强有多種, 女今所問, 問何者之强,
爲南方, 爲北方, 爲中國, 女所能之强也.
子路之强, 行中國之强也.
○‘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者, 反問旣竟, 夫子遂爲歷解之.
南方, 謂荊之南, 其地多陽.
陽氣舒散, 人情寬緩和柔, 假令人有無道加己, 己亦不報, 和柔爲君子之道,
故云‘君子居之’.
○‘衽金革 死而不厭 北方之强也 而强者居之’者, 衽, 臥席也.
金革, 謂軍戎器械也.
北方沙漠之地, 其地多陰.
陰氣急, 故人生剛猛, 恒好鬪爭,
故以甲鎧爲席, 寢宿於中, 至死不厭, 非君子所處, 而强梁者居之.
然唯云南北, 不云東西者, 鄭沖云, “是必南北互擧, 蓋與東西俗同, 故不言也.”
‘故君子 和而不流 强哉矯’, 此以下, 皆述中國之强也.
流, 移也.
矯亦强貌也.
不爲南北之强, 故性行和合而不流移, 心行强哉, 形貌矯然.
○‘中立而不倚 强哉矯’者, 中正獨立而不偏倚, 志意强哉, 形貌矯然.
○‘國有道 不變塞焉 强哉矯’者, 若國有道, 守直不變, 德行充實, 志意强哉, 形貌矯然.
○‘國無道 至死不變 强哉矯’者, 若國之無道, 守善至死, 性不改變, 志意强哉, 形貌矯然.
○注‘此抑’至‘强貌’
○正義曰 : ‘此抑女之强也’, 何以知之.
上文旣說三種之强, 又見南方之强, 又見北方之强, 唯‘抑而之强’未見,
故知此經所云者, 是‘抑女之强也’.
云‘流 移也’者, 以其性和同, 必流移隨物, 合和而不移, 亦中庸之德也.
云‘國有道 不變以趨時’者, 國雖有道, 不能隨逐物以求榮利.
今不改變己志, 以趨會於時也.
云‘矯 强貌’者, 矯是壯大之形,
故云‘强貌’也.


자로子路가 강함에 대해 물었다.
강함은 용자勇者가 좋아하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묻는 것이〉 남방의 강함이냐, 북방의 강함이냐, 아니면 〈중국中國의 강함으로서〉 네〈가 할 수 있는〉 강함이냐?
세 가지가 강함이 되는 원인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
어조사語助辭이다.
라는 말은 (너)라는 뜻이니, 중국中國을 이른다.
너그럽고 부드러움으로 가르치고 〈남이 나에게 행한〉 무도無道한 짓에 앙갚음하지 않음은 남방의 강함이니, 군자君子는 그것에 의거依據[居之]한다.
남방은 느긋함[舒緩]을 강하다고 한다.
불보무도不報無道는 〈남이 나를〉 침범하여도 앙갚음[校]하지 않음을 이른다.
는 앙갚음[報]이다.
무기와 갑옷을 깔고서 죽더라도 싫어하지 않음은 북방의 강함이니, 강한 자는 그것에 의거한다.
(깔다)과 같다.
북방은 굳세고 용맹함을 강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 화합하여 휩쓸려 가지 않으니, 강하구나 그 굳센 모습이여.
중도中道에 서서 기울어지지 않으니, 강하구나 그 굳센 모습이여.
나라에 가 있을 때에는 〈곧음을 지켜〉 바꾸지 않아 〈덕행이〉 충실하니, 강하구나 그 굳센 모습이여.
나라에 가 없을 때에는 〈을 지켜〉 죽음에 이르더라도 〈을〉 바꾸지 않으니, 강하구나 그 굳센 모습이여.”
이것이 ‘도리어 네〈가 할 수 있는〉 강함’이다.
(옮겨가다)와 같고, (충실하다)과 같다.
나라에 가 있을 때에는 〈자기의 뜻을〉 바꾸어 때를 따르지 않고, 나라에 가 없을 때에는 〈평소 자기가 지키던 지조志操를〉 바꾸어 해를 피하지 않으니, 가 있을 때나 가 없을 때나 한결같게 한다.
는 강한 모습이다.
(얼굴빛)이라고 하기도 한다.
의 [子路]에서 [哉矯]까지
정의왈正義曰 : 이 한 단락은 중용中庸가 또한 중국中國의 강함을 겸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자로子路안회顔回가 중용을 잘 선택한다고 찬미하는 공자孔子의 말을 듣고는 자기에게 강함이 있음을 〈공자에게〉 말했기 때문에, 그것을 물어 “강함 가운데에 중용을 아울러 가질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유씨庾氏가 “강함 가운데의 중용을 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물은 것은, 또한 《논어論語》 〈술이述而〉에서 “공자가 안연을 두고 ‘등용되면 〈를〉 행하고 버려지면 〈도를〉 간직하는 것을 나와 너만이 이런 점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니, 자로가 ‘선생님께서 삼군三軍을 동원하여 출정하신다면 누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하였다.”라고 한 종류와 같다.
○[子曰 南方之强與 北方之强與 抑而强與]어조사語助辭이다.
’라는 말은 (너)라는 뜻이니, 자로子路이다.
부자夫子(孔子)가 자로의 물음에 대답하려고 함에 우선 자로에게 되물어 ‘강함에 많은 종류가 있으니, 네가 지금 물은 것은 어떤 강함을 물은 것이냐.
남방〈의 강함〉이냐, 북방〈의 강함〉이냐, 중국中國〈의 강함〉으로서 네가 할 수 있는 강함이냐?’라고 말한 것이다.
자로의 강함은 중국의 강함을 행하는 것이다.
○[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 〈자로에게〉 되물은 뒤에 부자夫子(孔子)가 마침내 하나하나 풀이한 것이다.
남방南方형주荊州양주揚州의 남쪽을 이르니, 그 지역은 양기陽氣가 많다.
양기가 펴지고 흩어져 인정人情이 너그럽고 느긋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워, 가령 남이 자기에게 무도한 짓을 한다고 해서 자기도 앙갚음하지 않으니,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군자의 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그것에 의거한다.’라고 한 것이다.
○[衽金革 死而不厭 北方之强也 而强者居之]은 누워 자는 깔개이다.
금혁金革군용기계軍用器械를 이른다.
북방北方사막지대沙漠地帶이니 그 지역은 음기陰氣가 많다.
음기가 단단하고 세차기 때문에 사람이 태어나면 굳세고 용맹하여 항상 싸움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갑옷을 깔개로 삼아 그 안에서 잠을 자고 죽음에 이르더라도 싫어하지 않으니, 군자가 처하는 것이 아니요, 강하고 용맹한 자가 그것에 의거한다.
그러나 만 말하고 西를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정충鄭沖이 “반드시 남‧북을 서로 들었으니, 대체로 동‧서의 습속과 같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故君子 和而不流 强哉矯] 이 이하는 모두 중국中國의 강함을 서술한 것이다.
는 옮겨감이다.
도 강한 모습이다.
의 강함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이 화합하여 휩쓸려 가지 않으니, 마음과 행실이 강하여 그 모습이 굳센 것이다.
○[中立而不倚 强哉矯]중정中正함으로 홀로 서서 기울어지지 않으니, 의지가 강하여 그 모습이 굳센 것이다.
○[國有道 不變塞焉 强哉矯] 만일 나라에 가 있으면 곧음을 지켜 변하지 않아 덕행德行이 충실하니, 의지가 강하여 그 모습이 굳센 것이다.
○[國無道 至死不變 强哉矯] 만일 나라에 가 없으면 선도善道를 지켜 죽음에 이르더라도 을 바꾸지 않으니, 의지가 강하여 그 모습이 굳센 것이다.
의 [此抑]에서 [强貌]까지
정의왈正義曰 : [此抑女之强也] 어떻게 아는가?
앞 글에서 이미 세 종류의 강함을 말하고서 다시 남방의 강함을 소개하였고, 또 북방의 강함을 소개하였으나, ‘도리어 네〈가 할 수 있는〉 강함’만은 소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경문經文에서 말한 것이 ‘도리어 네〈가 할 수 있는〉 강함’임을 안다.
[流 移也] 그 이 동화되면 반드시 휩쓸려 가 사물을 따르나, 화합하면서도 휩쓸려 가지 않음이 또한 중용中庸이기 때문이다.
[國有道 不變以趨時] 나라에 비록 가 있더라도 사물을 쫓아 명예와 이익을 추구할 수는 없다.
지금 자기의 뜻을 바꾸어 때를 따라 영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矯 强貌]는 씩씩하고 훌륭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강한 모습’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抑而强與 : 여기서 而를 鄭玄은 “女(너)라는 뜻으로서 中國을 이른다.”고 하였고, 孔穎達의 견해도 같다. 이렇게 보면 남방‧북방‧중국(중앙)이라는 세 등급이 설정된다.
大田錦城(日)은 《孔子家語》 〈辨樂〉의 “자로는 북쪽 변방의 살벌한 음악을 하였는데, 孔子가 그것을 싫어하여 南音과 南風을 일러주었다. 南音과 南風은 바로 군자의 음악이다.”라고 한 것을 인용하면서 子路問强章과 같은 例라고 하였다.(《中庸原解》) 이 《공자가어》의 말을 근거로 보면 북방의 강함이 바로 자로의 강함이 된다.
海保漁村(日)은 《論語》 〈先進〉에서 자로가 “하필 글을 읽은 뒤에야 학문을 하는 것이겠는가.[何必讀書然後爲學]”라고 한 말을 근거로, 자로는 평소 독서를 迂闊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학문을 좋아한 顔淵을 짝으로 삼아 中庸의 道는 讀書를 통해 道를 배운 功效를 마음에 얻은 것이라고 강조하며 “‘네가 힘써야 할 것이 中國 聖人들의 강함이냐.’라는 말과 같다. 중국 성인들의 강함은 〈독서를 통해〉 道를 배워 터득하는 것이니, 자로가 힘써야 하는 것이다.[猶言汝所當務 中國聖人之强與也 中國聖人之强 是學道所得 子路當務也]”라고 부연하였다.(《中庸鄭氏義》)
朱熹는 ‘자로 네가 힘써 실천해야 할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며, 이 힘써야 할 것은 ‘故君子’ 이하의 네 가지, 즉 和而不流‧中立而不倚‧國有道不變塞焉‧國無道至死不變이라고 하였다.
鄧林(淸)은 “抑 한 글자는 대략 앞 글과 반대되는 것으로 而强에 중점을 둔 것이니, 而强은 그 사람이 스스로 가져야 하는 강함이다.[一抑字 略反上文 跌重而强上 而强 只還他而自有之强]”라고 하여 그 사람이 배워야 할 강함이라는 뜻으로 풀이하였다.(《中庸補註備旨》)
역주2 中國 : 여기서는 천하의 중앙, 즉 南方‧北方과 비교하여 중앙이라는 뜻이다.
역주3 犯而不校 : 《論語》 〈泰伯〉에 나온다.
역주4 而强者居之 : 朝鮮 校正廳 《中庸諺解》에는 ‘强ᄒᆞᆫ者ㅣ 居ᄒᆞᄂᆞ니라’라고 풀이하였으나, 田愚(朝鮮)는 《中庸記疑》에서 ‘强者ㅣᄂᆞ 居ᄒᆞᄂᆞ니라’라고 언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역주5 而强者 : 朝鮮 校正廳 《中庸諺解》와 李滉(朝鮮)의 《中庸釋義》에서는 모두 而자를 해석하지 않았다. 이는 朱熹의 해석과 동일하다. 그러나 李瀷(朝鮮)은 “이 章에서 而자가 두 군데 있는데, ‘而强者’는 모두 子路를 가리킨다.[章內兩而字相帖 則而强者 皆指子路也]”라고 하였다.(《中庸疾書》)
荻生徂來(日)도 《中庸解》에서 “而强者는 바로 앞 글의 抑而强이다. 君子의 앞에 而자가 없고 强者의 앞에 而자가 있으니, 북방의 강함이 바로 자로의 강함임을 알 수 있다.[而强者 卽上文抑而强也 君子上無而字 强者上有而字 可見北方之强卽子路之强矣]”라고 하였으나, 佐藤一齋(日)는 《中庸欄外書》에서 “앞의 ‘而强與’ 때문에 잘못 중복된 것인 듯하다.[疑因上文而强與而誤複]”라고 하여 衍文으로 보고 있다.
역주6 和而不流 : 孔穎達은 和를 性과 行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역주7 不變塞(색)焉 : 朱熹는 塞을 未達, 즉 ‘벼슬에 이르기 전에 지키던 것[未達之所守]’으로 풀이하여, 不變塞焉을 출사하여 벼슬을 하더라도 벼슬하기 전에 지키던 뜻을 바꾸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그러나 鄭玄은 塞을 實(충실하다)로 풀이하였고, 孔穎達은 여기에 ‘德行이 충실한 것[德行充實]’이라고 부연하였다.
역주8 至死不變 : 朱熹는 ‘평소 지키던 것[平生之所守]’, 즉 평소 지키던 자기의 道를 바꾸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孔穎達은 “善道를 지켜 죽음에 이르더라도 性을 바꾸지 않는다.[守善至死 性不改變]”라고 하였다.
역주9 或爲色 : 海保漁村(日)은 《中庸鄭氏義》에서 “얼굴빛을 바르게 하여 지키던 것을 견고히 한다.[謂正其顔色 所守之堅也]”는 것으로 풀이하였고, 顧實(中)은 《中庸鄭注講疏》에서 “차용한 글자로 本色이라는 말과 같다.[借用字 猶言本色也]”라고 풀이하였다.
역주10 (陽)[揚] : 底本 및 諸本에는 ‘陽’으로 되어 있으나, 衛氏集說本에 의거하여 ‘揚’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1 (褊)[堅] : 저본에는 ‘褊’으로 되어 있으나, 阮刻本에 “惠棟校宋本과 衛氏集說本에 ‘堅’으로 되어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堅’으로 바로잡았다.

예기정의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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