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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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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니 曲能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
唯天下至誠이아 爲能化니라
[注]其次 謂自明誠者也
至也
猶小小之事也
不能盡性이나 而有至誠於有焉而已
謂人見其功也
盡性之誠 人不能見也
形之大者也
著之顯者也
動人心也 改惡爲善也 變之久則化而性善也
[疏]‘其次’至‘能化’
○正義曰 : 此一經明賢人習學而致至誠,
故云‘其次致曲’.
曲, 謂細小之事.
言其賢人致行細小之事不能盡性, 於細小之事能有至誠也.
○‘誠則形 形則著’者, 謂不能自然至誠, 由學而來,
故誠則人見其功, 是‘誠則形’也.
初有小形, 後乃大而明著,
故云‘形則著’也.
若天性至誠之人不能見, 則不形不著也.
○‘著則明 明則動’者, 由著故顯明, 由明能感動於衆.
○‘動則變 變則化’者, 旣感動人心, 漸變惡爲善, 變而旣久, 遂至於化.
言惡人全化爲善, 人無復爲惡也.
○‘唯天下至誠 爲能化’, 言唯天下學致至誠之人, 爲能化惡爲善, 改移舊俗, 不如前經天生至誠, 能盡其性, 與天地參矣.
○注‘其次’至‘善也’
○正義曰 : 以前經云‘自明誠謂之敎’, 是由明而致誠, 是賢人次於聖人,
故云‘其次, 謂自明誠也’.
云‘不能盡性 而有至誠於有義焉而已’者, 言此次誠不能如至誠盡物之性, 但能有至誠於細小物焉而已.
云‘形 謂人見其功也’者, 由次誠彰露, 人皆見其功也.
云‘盡性之誠 人不能見也’者, 言天性至誠, 神妙無體, 人不見也.
云‘著 形之大者也’, 解經‘形則著’,
初有微形, 後則大而形著.
云‘變之久則化而性善也’者, 解經‘變則化’,
初漸謂之變,
變時新舊兩體俱有, 變盡舊體而有新體謂之爲化.
如月令‘鳩化爲鷹’, 是爲鷹之時非復鳩也, 猶如善人無復有惡也.


그 다음은 작디작은 일에까지 〈정성이〉 이르게 하니, 작디작은 일에까지 〈정성이〉 이르게 하면 성실해질 수 있다.
성실해지면 〈내면에 쌓인 것이 겉으로〉 나타나고, 나타나면 〈뚜렷하게〉 드러나고, 드러나면 밝게 퍼져 나가고, 밝게 퍼져 나가면 〈상대相對를〉 감동시키고, 〈상대가〉 감동하면 달라지고, 달라지면 바뀐다.
천하의 지극히 성실한 사람만이 〈상대를〉 바뀌게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밝음〈의 〉을 바탕으로 하여 성실해진 사람을 이른다.
는 이름[至]이다.
은 작디작은 일과 같다.
현인賢人은 천하의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 만물의 을 다 발휘하게 하는 것처럼 만물萬物의〉 을 다 발휘하게 할 수는 없으나, 작디작은 일[義]이 있는 곳에 지극히 성실할 수 있을 뿐이다.
은 남들이 그 을 봄을 이른다.
〈만물의〉 을 다 발휘하게 하는 성실함은 남들이 볼 수 없다.
는 나타남이 큰 것이다.
은 드러남이 뚜렷한 것이다.
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임이요, 불선不善[惡]을 고쳐 을 행함이니, 달라짐이 오래되면 바뀌어 이 선해진다.
의 [其次]에서 [能化]까지
정의왈正義曰 : 이 한 경문經文현인賢人이 배워 익혀서 지극히 성실함에 이름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은 작디작은 일에까지 〈정성이〉 이르게 한다.’라고 한 것이다.
은 작디작은 일을 이른다.
현인이 작디작은 일을 행함에 이르러 〈만물의〉 을 다 발휘하게 할 수는 없으나, 작디작은 일에 지극히 성실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誠則形 形則著] 자연스럽게 지극히 성실하지 못하고 배움을 통하여 왔음을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성실하면 남들이 그의 을 보니, 이것이 ‘성실해지면 〈내면에 쌓인 것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게 나타나지만, 나중에는 크고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나타나면 〈뚜렷하게〉 드러난다.’라고 한 것이다.
만일 타고난 이 지극히 성실한 사람〈의 〉을 볼 수 없다면 나타나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는다.
○[著則明 明則動] 드러남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밝게 퍼져 나가고, 밝게 퍼져 나감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대중大衆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動則變 變則化]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면 점차 불선不善[惡]을 고쳐 을 행하고, 〈불선不善을〉 고쳐 〈을 행함이〉 오래된 뒤에는 마침내 바뀜[化]에 이른다.
악인惡人이 온전히 바뀌어 을 행하면 사람들이 다시는 불선不善[惡]을 행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唯天下至誠 爲能化] 천하에 배워서 지극히 성실함에 이른 사람만이 불선不善[惡]을 바꿔 을 행하고 묵은 풍속을 바꿀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니, 앞의 경문經文에서 천생적天生的으로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 자기의 을 다 발휘하여 천지天地와 〈그 이〉 나란할 수 있다고 한 것만 못하다.
의 [其次]에서 [善也]까지
정의왈正義曰 : 앞의 경문經文에서 ‘밝음의 을 바탕으로 하여 성실해짐을 가르침대로 했다고 이른다.’라고 한 것은 밝음〈의 〉을 바탕으로 하여 성실함에 이른 것이니, 현인賢人으로서 성인聖人의 다음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은 밝음의 을 바탕으로 하여 성실해짐을 이른다.’라고 한 것이다.
[不能盡性 而有至誠於有義焉而已] 이것은 버금가는 성실함으로서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 만물의 을 다 발휘하게 하는 것처럼 할 수는 없으나 작디작은 일[物]에 지극히 성실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形 謂人見其功也] 버금가는 성실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남들이 모두 그 을 보는 것이다.
[盡性之誠 人不能見也] 타고난 이 지극히 성실함은 신묘하고 실체가 없어서 남들이 볼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著 形之大者也]경문經文의 ‘형즉저形則著’를 풀이한 것이다.
처음에 미미하게 나타났다가 나중에 크고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變之久則化而性善也]경문經文의 ‘변즉화變則化’를 풀이한 것이다.
처음에 점차 〈달라져감을〉 ‘’이라고 한다.
하는 때에는 새로운 것과 묵은 것 두 가 모두 있으나, 묵은 가 다 변하고 새로운 만 있는 것을 ‘’라고 한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의 “산비둘기가 하여 매가 된다.”와 같으니, 매가 되었을 때에는 더 이상 산비둘기가 아니듯 선인善人이 다시는 불선不善[惡]함이 없는 것과 같다.


역주
역주1 其次 : 朱熹는 “大賢 이하로서 일반적으로 성실함에 지극하지 못한 자를 통틀어 말한 것이다.”라고 하여 賢人을 포함한 그 이하의 평범한 사람까지 아우르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그러나 鄭玄은 “밝음의 德을 바탕으로 하여 성실해진 사람을 이른다.[謂自明誠者也]”라고 하여 ‘聖人 다음 단계의 賢人’이라는 의미로 한정하여 사용하였다.
역주2 致曲 : 朱熹는 “致는 미루어 극진하게 함이고, 曲은 한쪽 면이다.[致推致也 曲一偏也]”라고 한 반면, 鄭玄은 “致는 이름이고, 曲은 작디작은 일과 같다.[致至也 曲猶小小之事也]”라고 하여 ‘작디작은 일에까지 정성을 이르게 한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역주3 : 儀로서 ‘威儀三千’의 ‘儀’와 같으니, 작디작은 일을 이른다.
역주4 (次) : 저본에는 舊本에 없는 ‘次’를 보충하였으나, 汲古閣本‧福建本‧武英殿本과 阮元(淸)의 校勘記에 “次자는 衍文인 듯하다.”라고 한 말에 의거하여 ‘次’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예기정의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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