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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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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子曰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無憂者 其唯文王乎신저
“근심이 없는 자는 아마 문왕文王뿐일 것이다.
以王季爲父하시고 以武王爲子하시니 父作之하시고 子述之하시니라
왕계王季를 아버지로 모시고, 무왕武王을 아들로 두었는데, 아버지가 〈왕업王業을〉 일으키고 아들이 〈그것을〉 계승하였다.
[注]聖人以立法度爲大事하고 子能述成之하니 則何憂乎리오
성인聖人이 법도를 세움을 큰 일로 삼았고, 아들이 그것을 잘 계승하여 이루었으니, 어찌 근심하겠는가.
堯舜之父子 則有凶頑하고 禹湯之父子 則寡令聞이니 父子相成 唯有文王이라
임금의 아들과 임금의 아버지는 흉악하고 미련한 점이 있었고, 임금의 아버지와 임금의 아들은 좋은 명성名聲이 적었으니,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루어준 자는 문왕文王뿐이었다.
武王纘大王王季文王之緖하사 而有天下하사대 身不失天下之顯名하사
무왕武王태왕太王왕계王季문왕文王의 일을 계승하여 한 번 군사[戎]를 동원하여 [衣]나라를 쳐서 천하를 소유하였지만, 몸은 천하의 드러난 명성名聲을 잃지 않았다.
尊爲天子하시고 富有四海之內하사
존귀함으로는 천자天子가 되었고, 부유함으로는 사해四海의 안을 소유하였다.
宗廟饗之하시며 子孫保之하시니라
〈죽은 뒤에는〉 종묘宗廟합사合祀되었으며, 자손들이 〈그 제사를〉 보전保全하였다.
[注]纘 繼也 業也 兵也
은 계승함이요, 는 일[業]이요, 은 군사[兵]이다.
讀如殷이니 聲之誤也
처럼 읽으니, 〈(의)라고 읽은 것은〉 발음[聲]이 잘못된 것이다.
齊人言殷 聲如衣
나라 사람들은 을 말할 때에 처럼 발음한다.
虞夏商周氏者多矣하니 今姓有衣者 殷之冑與인저
우씨虞氏하씨夏氏상씨商氏주씨周氏〈라고 한 것〉이 많으니, 지금 에서 의씨衣氏라고 한 것은 나라의 후손일 것이다.
壹戎殷者 壹用兵伐殷也
일융은壹戎殷은 한 번 군사를 동원하여 은나라를 친다는 것이다.
武王 末受命이어시늘 周公 成文武之德하사 追王大王王季하시고 上祀先公以天子之禮하시니
무왕武王노년老年[末]에 천명天命을 받았는데, 주공周公문왕文王무왕武王을 이루고서 태왕太王왕계王季추존追尊하여 왕으로 모시고, 위로는 선공先公들을 천자天子의 예법으로 제사 지냈다.
斯禮也 達乎諸侯大夫 及士庶人하니
이러한 예법이 제후諸侯대부大夫서인庶人까지 적용適用[達]되었다.
父爲大夫 子爲士어든 葬以大夫 祭以士하며
아버지가 대부大夫이고 아들이 이면 대부大夫의 예법으로 장사 지내고 의 예법으로 제사 지낸다.
父爲士 子爲大夫어든 葬以士 祭以大夫하며
아버지가 이고 아들이 대부大夫이면 의 예법으로 장사 지내고 대부大夫의 예법으로 제사 지낸다.
期之喪 達乎大夫하고 三年之喪 達乎天子하니
1연상年喪은 〈서인庶人부터〉 대부大夫까지 적용하고, 3연상年喪은 〈서인庶人부터〉 천자天子까지 적용하였다.
父母之喪 無貴賤一也니라
부모의 은 〈신분의〉 귀천貴賤에 관계없이 똑같다.”
[注]末 猶老也
와 같다.
追王大王王季者 以王跡起焉이라
태왕太王왕계王季를 추존하여 왕으로 모신 것은 〈이들에게서〉 왕업王業의 자취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以上으로 至后稷也
선공先公조감組紺 이상으로 후직后稷까지이다.
斯禮達於諸侯大夫士庶人者 謂葬之從死者之爵하고 祭之用生者之祿也
이러한 예법이 제후諸侯대부大夫서인庶人까지 적용됨은 죽은 사람의 작위爵位를 따라 장사 지내고 산 사람의 녹봉祿俸을 사용하여 제사 지냄을 이른 것이다.
言大夫葬以大夫하고 士葬以士 則追王者 改葬之矣
대부大夫는 대부의 예법으로 장사 지내고 는 사의 예법으로 장사 지낸다고 말하였으니, 추존하여 왕으로 모실 때에는 〈왕의 예법으로〉 개장改葬하였을 것이다.
期之喪達於大夫者 謂旁親所降 在大功者 其正統之期 天子諸侯라도 猶不降也
1년상은 〈서인庶人부터〉 대부大夫까지 적용한다는 것은 방계친족傍系親族으로서 〈상기喪期를〉 강등하여 대공大功(9개월 )을 입는 자를 이르니, 그 직계가족直系家族[正統]의 상기喪期천자天子제후諸侯라도 강등하지 않는다.
大夫所降 天子諸侯 絶之不爲服하고 所不臣乃服之也
대부大夫가 강등하는 대상에 대해 천자天子제후諸侯는 아예 복을 입지 않고, 신하로 여기지 않는 대상은 복을 입는다.
承葬祭하여 說期三年之喪者 明子事父以孝 不用其尊卑變이라
장례葬禮제례祭禮를 이어 1연상年喪‧3연상年喪을 말한 것은 아들이 로 아버지를 섬길 때 그 〈작위爵位의〉 존비尊卑로 〈상기喪期를〉 바꾸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疏]‘子曰’至‘一也’
의 [子曰]에서 [一也]까지
○正義曰 : 此一節明夫子論文王‧武王聖德相承, 王有天下, 上能追尊大王‧王季, 因明天子以下及士庶人葬祭祀之禮,
정의왈正義曰 : 이 한 단락은 부자夫子(孔子)가 문왕文王무왕武王성덕聖德이 서로 이어졌음을 논하고, 왕이 되어 천하를 소유하자 위로 태왕太王왕계王季를 추존하였음을 밝혔으며, 이어 천자天子 이하로 서인庶人장례葬禮제사祭祀의 예법까지 밝혔다.
各隨文解之.
저마다 글을 따라 풀이한다.
○‘以王季爲父 以武王爲子 父作之 子述之’者, 言文王以王季爲父, 則王季能制作禮樂, 文王奉而行之.
○[以王季爲父 以武王爲子 父作之 子述之]문왕文王왕계王季를 아버지로 모셨는데, 왕계가 예악禮樂을 잘 제작하였고, 문왕이 받들어 시행하였다.
文王以武王爲子, 武王又能述成文王之道,
문왕은 무왕武王을 아들로 두었는데, 무왕이 또 문왕의 를 잘 계승하여 이루었다.
故‘無憂’也.
그러므로 ‘근심이 없다.’라고 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武王纘大王王季文王之緖’者, 纘, 繼也.
○[武王纘大王王季文王之緖]은 계승함이다.
緖, 業也.
는 일[業]이다.
言武王能纘繼父祖之業, 以王天下也.
무왕武王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일을 잘 계승하여 천하에 왕이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壹戎衣而有天下’者, 戎, 兵也.
○[壹戎衣而有天下]은 군사[兵]이다.
言一用兵伐殷而勝之也.
한번 군사를 동원하여 나라를 쳐서 이겼음을 말한 것이다.
○注‘’.
의 [衣讀爲殷]
○正義曰 : 案尙書武成云‘一戎衣’, 謂一著戎衣而滅殷.
정의왈正義曰 : 《상서尙書》 〈무성武成〉을 살펴보면 ‘일융의一戎衣’라고 한 것은 한 번 갑옷[戎衣]을 입고서 나라를 멸망시켰음을 이른 것이다.
此云‘一’者, 以經武王繼大王‧王季‧文王三人之業, 一用滅殷, 對三人之業爲‘一’耳.
여기서 ‘’이라고 한 것은 경문經文에 ‘무왕武王태왕太王왕계王季문왕文王 세 사람의 일[業]을 계승하고 한 번 사용하여 은나라를 멸망시켰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세 사람의 일’에 상대하여 ‘’이라고 한 것일 뿐이다.
由三人之業, 故一身滅之.
세 사람의 일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한 몸이 멸망시킨 것〈과 다름이 없〉다.
鄭必以衣爲殷者, 以, 是再著戎服, 不得稱‘一戎衣’, 故以衣爲殷,
정현鄭玄이 반드시 ‘’를 ‘’이라고 한 것은 11년에 맹진孟津에서 군사를 사열하고 13년에 주왕紂王을 멸망시켰으므로 〈이때는〉 두 번째로 갑옷[戎衣]을 입은 것이니, ‘한 번 갑옷을 입었다.’라고 일컬을 수 없기 때문에, ‘’를 ‘’이라고 한 것이다.
故注云‘齊人言殷聲如衣’.
그러므로 주석에서 ‘나라 사람들은 을 말할 때에 처럼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武王 末受命’, 此美周公之德也.
의 [武王 末受命] 이것은 주공周公을 찬미한 것이다.
末, 猶老也.
와 같다.
謂武王年老, 而受命平定天下也.
무왕武王이 노년에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를 평정하였음을 이른 것이다.
‘斯禮也 達乎諸侯大夫 及士庶人’者, 斯, 此也.
[斯禮也 達乎諸侯大夫 及士庶人]이다.
言周公尊崇先公之禮, 非直天子所行, 乃下達於諸侯‧大夫‧士‧庶人等, 無問尊卑, 皆得上尊祖父, 以己之祿祭其先人, 猶若周公以成王天子之禮祀其先公也.
주공周公선공先公존숭尊崇한 예법은 천자天子가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래로 제후諸侯대부大夫서인庶人 등에게 적용하여 〈작위爵位의〉 존비尊卑를 따지지 않고 모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높이되, 자기의 녹봉으로 그 선인先人을 제사함이 마치 주공이 성왕成王에게 천자의 예법으로 그 선공先公들을 제사하게 한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父爲大夫 子爲士 葬以大夫 祭以士’者, 謂父旣爲大夫, 祭以士禮, 貶其先人而云尊之者, 欲明以己之祿祀其先人也.
○[父爲大夫 子爲士 葬以大夫 祭以士] 아버지가 대부大夫였는데 의 예법으로 제사 지낸다고 하였으니, 그 선인先人〈의 등급〉을 떨어뜨리는 것인데도 ‘높인다[尊之]’고 한 것은 자기의 녹봉으로 자기의 선인先人에게 제사 지냄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期之喪 達乎大夫’者, 欲見大夫之尊, 猶有期喪.
○[期之喪 達乎大夫] 존귀한 대부大夫라도 1연상年喪을 두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謂旁親所降 在大功者’, 得爲期喪, 還著大功之服, 故云‘達乎大夫’.
의〉 ‘방계친족傍系親族으로서 〈상기喪期를〉 강등하여 대공大功을 입은 자를 이른다.’는 것은 1년상을 해도 되는데 도리어 대공복大功服(9개월服)을 입은 것이기 때문에 ‘〈서인庶人부터〉 대부大夫까지 적용한다.’라고 한 것이다.
若天子諸侯, 旁期之喪, 則不爲服也.
천자天子제후諸侯방계친족傍系親族의 1년상에는 복을 입지 않는다.
○‘三年之喪 達乎天子’者, 謂正統在三年之喪, 父母及適子幷妻也.
○[三年之喪 達乎天子] 〈‘삼년지상三年之喪’은〉 3연상年喪을 지내는 직계가족直系家族[正統]을 이르니, 부모父母적자適子본처本妻이다.
‘達乎天子’者, 言天子皆服之.
달호천자達乎天子’는 천자天子까지 모두 을 입음을 말한 것이다.
不云‘父母’, 而云‘三年’者, 包適子也.
부모父母’라고 하지 않고 ‘삼년三年’이라고 한 것은 적자適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天子爲后服期, 以三年包之者, 以后卒必待三年然後娶, 所以達子之志,
천자天子왕후王后를 위하여 입는 복은 1년이지만 3년으로 포괄한 것은 왕후가 죽으면 반드시 3년을 기다린 뒤에 장가들기 때문이고, 자식의 마음[志]을 드러내기[達] 위해서이다.
故通在三年之中.
그러므로 모두 3년 안에 있는 것이다.
是以昭十五年左傳云, “穆后崩”, “大子壽卒”, “叔向云, ‘王一歲而有三年之喪二焉.’” 是包后爲三年也.
이 때문에 소공昭公 15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목후穆后하였다.”라고 하였고, “태자太子 하였다.”라고 하였으며, “숙향叔向이 ‘왕이 한 해에 삼년복三年服을 입을 을 두 번 당하였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왕후를 포함하여 3년이라고 한 것이다.
直云‘達乎天子’, 不云‘諸侯’者, 諸侯旁親, 尊同則不降,
직접 ‘달호천자達乎天子’라고 말하고 ‘제후諸侯’를 말하지 않은 것은 제후諸侯방계친족傍系親族과 존귀함이 같으면 〈상기喪期를〉 강등하지 않는다.
故喪服大功章云, ‘諸侯爲姑姊妹嫁於國君者’是也.
그러므로 《의례儀禮》 〈상복喪服대공장大功章의 ‘제후의 고모姑母[姑姊妹]로서 국군國君에게 시집간 사람’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父母之喪 無貴賤一也’, 唯父母之喪, 無問天子及士庶人, 其服竝同,
○[父母之喪 無貴賤一也] 부모의 만은 천자天子서인庶人을 따지지 않고, 그 이 모두 같다.
故云‘無貴賤一也’.
그러므로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똑같다.’라고 한 것이다.
○注‘末猶’至‘卑變’
의 [末猶]에서 [卑變]까지
○正義曰 : ‘末 猶老也’者, 謂文王受命, , 是老而受命,
정의왈正義曰 : [末 猶老也]문왕文王천명天命을 받았고, 11년에 무왕武王맹진孟津에서 군사를 사열하였는데 흰 물고기가 왕의 배에 들어왔으니, 〈무왕도〉 노년老年에 천명을 받은 것이다.
受命後七年而崩.
〈무왕이〉 천명을 받은 뒤 7년 만에 하였다.
文王赤雀, 武王俯取白魚, 皆七年
’是也.
그러므로 정현鄭玄이 《상서尙書》 〈낙고洛誥〉에 주석하여 ‘문왕은 붉은 새〈에게서 단서丹書〉를 받았고, 무왕은 몸을 숙여 흰 물고기를 집어 들었는데, 〈천명을 받은 지〉 모두 7년 만〈에 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追王大王王季者 以王跡起焉’, 案詩頌閟宮云, “大王, 居岐之陽, 實始翦商”, 是‘王跡起’也.
[追王大王王季者 以王跡起焉] 《시경詩經》 〈노송魯頌 비궁閟宮〉을 살펴보면 “태왕太王기산岐山의 남쪽에 거주하여 진실로 비로소 나라〈의 세력〉을 깎았다.”라고 한 것이 ‘왕적기王跡起’이다.
云‘先公 組紺以上 至后稷也’者, 組紺, 太王之父, 一名諸盭.
[先公 組紺以上 至后稷也]조감組紺태왕太王의 아버지이니, 일명 제려諸盭라고 한다.
周本紀云, ‘亞圉卒, 子立.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에 ‘아어亞圉하자 아들 태공숙영太公叔穎이 즉위하였다.
太公卒, 子古公亶父立.’ 又云, ‘亞圉雲生太公組紺諸盭’, 則叔穎‧組紺‧諸盭是一人也.
태공太公하자 아들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즉위하였다.’라고 하였고, 또 《세본世本》에 ‘아어운도亞圉雲都태공太公 조감제려組紺諸盭를 낳았다.’고 하였으니, 숙영叔穎조감組紺제려諸盭는 한 사람이다.
此文云‘追王大王‧王季, 上祀先公’, 則先公之中包后稷也.
경문經文에서 ‘태왕太王왕계王季를 추존하여 왕으로 모시고 위로는 선공先公들을 제사 지냈다.’는 것은 선공先公 가운데 후직后稷을 포함시킨 것이다.
故云‘組紺以上至后稷’也.
그러므로 ‘조감組紺 이상으로 후직后稷까지’라고 한 것이다.
案司服云, ‘享先王則袞冕, 先公則鷩冕.’
주례周禮》 〈춘관春官 종백宗伯〉의 사복장司服章을 살펴보면 ‘선왕先王에게 제향祭享할 때에는 곤면袞冕을 하고, 선공先公에게 제향할 때에는 별면鷩冕을 한다.’라고 하였다.
以后稷爲周之始祖, 祫祭於廟, 當同先王用袞, 則先公無后稷也.
후직后稷나라의 시조로 여겨 사당에서 협제祫祭를 지낼 때에는 선왕先王과 동일하게 곤면袞冕을 사용해야 하니, 선공先公에 후직은 없다.
故鄭注司服云, ‘先公不窋至諸盭.’
그러므로 정현鄭玄사복장司服章에 ‘선공先公불굴不窋(后稷의 아들)부터 제려諸盭까지이다.’라고 주석한 것이다.
若四時常祀, 唯后稷及大王‧王季之等, 不得廣及先公.
만일 사시四時의 정해진 제사[常祀]에 후직后稷태왕太王왕계王季 등일 뿐이라면 선공先公에게 널리 미치지 못한 것이다.
故天保云, ‘禴蒸嘗, 于公先王.’ 是四時常祀, 但有后稷‧諸盭以下,
그러므로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약사증상禴祠蒸嘗 우공선왕于公先王(禴祭‧사제祠祭증제蒸祭상제嘗祭선공先公선왕先王에게 올리시니)’이라고 한 것은 사시四時의 정해진 제사에 후직后稷제려諸盭 이하에만 둔 것이 된다.
故鄭注天保云, ‘先公謂后稷至諸盭.’
그러므로 정현이 〈천보天保〉에 ‘〈은〉 선공先公이니, 후직부터 제여까지를 이른다.’라고 주석한 것이다.
此皆盡望經上下釋義,
이것은 모두 의 앞뒤를 다 조망하여 뜻을 풀이한 것이다.
故不同. .
祫廟制圖(《六經圖》)祫廟制圖(《六經圖》)
그러므로 같지 않다.
云‘則追王者 改葬之矣’者, 以大王‧王季身爲諸侯, 葬從死者之爵, 則大王‧王季祗得爲諸侯葬禮, 不得言‘追王’,
[則追王者 改葬之矣]태왕太王왕계王季 자신은 제후〈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장례葬禮는 죽은 자의 작위爵位를 따른다〈는 법도를 따르〉면 태왕과 왕계는 제후의 장례법葬禮法만으로 〈장사〉 지낼 수 있었으니 ‘추존하여 왕으로 모신다.’라고 말할 수 없다.
從天子法, 故知追王之時, 而更改葬用天子禮.
〈그러나 제사는〉 천자天子의 예법을 따랐기 때문에 추존하여 왕으로 모실 때, 천자의 예법으로 다시 개장改葬하였음을 안 것이다.
云, ‘武王追王大王亶父‧王季歷.’ 此云周公追王, 不同者, 武王旣伐紂, 追王布告天下, 周公追而改葬, 故不同也.
상서대전尙書大傳》을 살펴보면 ‘무왕武王태왕太王 단보亶父왕계王季 을 추존하여 왕으로 모셨다.’라고 하여, 여기에서 ‘주공周公이 추존하여 왕으로 모셨다.’는 〈경문經文의〉 말과 같지 않은 것은 무왕이 주왕紂王을 정벌한 뒤에 ‘추존하여 왕으로 모실 것’을 천하에 포고하고 주공이 추존하여 개장改葬하였기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이다.
云‘期之喪達於大夫者 謂旁親所降在大功者’, 熊氏云 “此對天子諸侯, 故云‘期之喪達乎大夫’,
[期之喪達於大夫者 謂旁親所降在大功者]웅씨熊氏(熊安生)가 “이것은 천자天子제후諸侯를 상대하였기 때문에 ‘1년상은 〈서인庶人부터〉 대부大夫까지 적용한다.’라고 한 것이다.
其實大夫爲大功之喪, 得降小功, 小功之喪, 得降緦麻.” 是大功‧小功, 皆達乎大夫.
그 실제는 대부大夫대공大功(9개월服)의 을 당하면 소공小功(5개월服)으로 강등할 수 있고, 소공小功시마緦麻(3개월服)로 강등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대공大功소공小功은 모두 대부에게 적용된다.
熊氏又云 “天子爲正統之喪, 適婦大功, 適孫之婦小功.” 義或然, 但無正文耳.
웅씨가 또 “천자가 직계가족直系家族[正統]의 을 당하면 맏며느리[嫡婦]의 에는 대공복大功服을, 맏손자며느리[適孫之婦]의 에는 소공복小功服을 입는다.”라고 하였으니, 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정문正文이 없을 뿐이다.
云‘所不臣乃服之也’者, 喪服傳云, “始封之君不臣諸父昆弟, 封君之子不臣諸父而臣昆弟.” 但不臣者, 皆以本服服也.
[所不臣乃服之也] 《의례儀禮》 〈상복喪服〉의 전문傳文에 “처음으로 책봉된 임금은 제부諸父형제兄弟를 신하로 삼지 않으며, 봉군封君의 아들은 제부諸父는 신하로 삼지 않으나 형제兄弟는 신하로 삼는다.”라고 하였으니, 다만 신하로 삼지 않는 자는 모두 본복本服으로 복을 입는다.
역주
역주1 壹戎衣(은) : 朱熹는 戎衣(의)를 甲冑 따위로 보아 《尙書》 〈武成〉에서처럼 “한 번 갑옷을 입고 전쟁하다.”라고 풀이하였다. 그러나 鄭玄과 孔穎達은 戎을 兵, 衣을 殷으로 보아 “한 번 군사를 동원하여 殷나라를 치다.”라고 풀이하였다. 毛奇齡(淸)은 壹은 殪, 戎은 大로서 《尙書》 〈康誥〉의 ‘殪戎殷’처럼 “큰 은나라를 멸망시키다.”라는 말이라고 하였다.(《四書賸言》)
역주2 先公……至后稷也 : 后稷 → 不窋 → 鞠 → 公劉 → 慶節 → 皇業 → 差弗 → 毁隃 → 公非 → 高圉 → 亞圉 → 公叔祖類까지 12公이다.(《史記》 〈周本紀〉)
역주3 組紺 : 太王의 아버지이다. 《史記》 〈周本紀〉에는 ‘公叔祖類’로 되어 있다.
역주4 衣讀爲殷 : 앞의 注文에는 ‘衣讀如殷’으로 되어 있으나, 諸本에 모두 ‘爲’로 되어 있고, ‘爲’에는 ‘如’의 훈고가 있으므로 교감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역주5 十一年觀兵於孟津 十三年滅紂 : 이 사건은 《尙書》 〈泰誓〉‧〈牧誓〉‧〈武成〉 등에 보인다.
역주6 十一年武王觀兵於孟津 白魚入王舟 : 《史記》 〈周本紀〉에 “武王이 河水를 건널 때, 중류쯤 이르자 흰 물고기가 왕의 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왕이 몸을 숙이고 집어 들어 제를 지냈다.[武王渡河 中流 白魚躍入王舟中 武王俯取以祭]”라고 하였는데, 馬融이 “물고기는 딱딱한 비늘이 있는 생물이니, 군사의 상징이다. 흰색은 殷나라 왕가의 正色이다. 〈물고기와 흰색은〉 殷나라의 군사와 周나라의 상징을 말한 것이다.[馬融曰 魚者介鳞之物 兵象也 白者殷家之正色 言殷之兵衆與周之象也]”라고 하였다.(裴駰(劉宋), 《史記集解》 〈周本紀〉) 이 내용은 《尙書》 〈僞泰誓〉의 글로 여러 학자들이 信憑하지 않았고, 司馬遷이 《史記》에 이 글을 채록한 것은 그가 괴이한 것을 좋아해서라고 한다.
李樗(宋) 역시 “孔穎達이 ‘白魚入舟’를 무왕이 天命을 받은 것으로 여긴 것은 잘못이니, 후세의 사람들이 讖緯說에 빠져 제왕이 흥성할 때에는 반드시 천명을 받는 징조[符]를 두었다.[孔氏謂白魚入舟爲武王之受命 此說非也 大抵後世溺於讖緯之言 以帝王之興 必有受命之符]”라고 하여 신빙하지 않았고, 바로 다음의 ‘文王受赤雀’도 마찬가지로 신빙하지 않았다.(李樗(宋)‧黃櫄(宋), 《毛詩集解》 〈大雅 下武〉)
역주7 故鄭注洛誥……皆七年 : 《尙書》 〈洛誥〉의 “在十有二月 惟周公誕保文武受命 惟七年”에 대한 鄭玄의 注이다. 그 注에 “문왕이 붉은 새〈에게서 丹書〉를 받았고, 무왕은 몸을 숙여 흰 물고기를 집어 들었으니, 〈모두 天命을 받은 것이다.〉 天命을 받은 지 모두 7년 만에 崩하였다. 주공이 섭정의 지위에 있을 때에 감히 그 年數를 넘길 수 없었다.[文王得赤雀 武王俯取白魚 受命皆七年而崩 及周公居攝 不敢過其數也]”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皆七年’은 ‘皆七年而崩’을 뜻한다.
역주8 文王受赤雀 : 《尙書中候》에 “周 文王이 西伯이 되었을 때 9월[季秋之月]甲子日에 赤雀이 丹書를 물고 豐鄗에 들어와 昌戶에 머물렀다. 이에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그 丹書를〉 받았다. 〈그 丹書에서 말하였다.〉 ‘姬昌은 蒼帝의 아들이요, 殷나라를 멸망시키는 자는 紂이다.’[周文王爲西伯 季秋之月甲子 赤雀銜丹書入豐鄗 止於昌戶 乃拜 稽首受取 曰姬昌蒼帝子 亡殷者紂也]”라고 하였고(《太平御覽》 〈時序部 九 秋 上〉), 《史記》 〈周本紀〉 “生昌, 有聖瑞.(〈太妊이〉 昌을 낳았을 때 성스러운 길조가 있었다.)”에 대해 張守節의 《史記正義》에 《尙書帝命驗》을 인용하여 “9월 甲子日에 赤爵이 丹書를 물고 酆에 들어와 昌戶에 머물렀다. 그 글에서 말하였다. ‘공경함이 태만함을 이기는 자는 길하고 태만함이 공경함을 이기는 자는 멸망하며, 義가 慾望을 이기는 자는 순하고 욕망이 義를 이기는 자는 흉하다. 무릇 일은 강하게 하지 않으면 굽어지고, 공경히 하지 않으면 바르게 되지 않는다. 바르지 않게 하는 자는 폐하여 멸망하고, 공경히 하는 자는 萬世토록 이어지리라. 仁으로 얻고 仁으로 지키면 아마 百世토록 이어지리라. 不仁으로 얻고 仁으로 지키면 아마 十世토록 이어지리라. 不仁으로 얻고 不仁으로 지키면 當世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季秋之月甲子 赤爵銜丹書入于酆 止于昌戶 其書云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凡事不强則枉 不敬則不正 枉者廢滅 敬者萬世 以仁得之 以仁守之 其量百世 以不仁得之 以仁守之 其量十世 以不仁得之 不仁守之 不及其世]”라고 한 것을 말한다.
역주9 : 《詩經》 〈大雅 文王 序〉의 疏에는 ‘受’가 ‘得’으로 되어 있다.(《毛詩正義》)
역주10 太公叔穎 : 《史記》 〈周本紀〉에는 ‘公叔祖類’로 되어 있다.
역주11 世本 : 先秦時期 史官이 찬수한 책으로 上古帝王‧諸侯‧卿‧大夫家의 世系傳承을 기록한 책이다. 唐‧宋을 거치면서 모두 逸失되었다. 淸代의 王謨‧孫馮翼 등의 輯本이 있다.
역주12 [都] : 저본에는 없으나, 裵駰(劉宋)의 《史記集解》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3 (祀)[祠] : 저본에는 ‘祀’로 되어 있으나, 《詩經》 및 汲古閣本‧福建本‧武英殿本에 의거하여 ‘祠’로 바로잡았다.
역주14 (或有至字誤也) : 이 6자는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지 않다. 따라서 孫詒讓(淸)의 《十三經注疏校記》에서 “‘或有’句는 未詳이다.”라고 한 말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5 大傳 : 伏勝(前漢)이 지은 《尙書大傳》의 略稱이다. 皮錫瑞(淸) 등의 輯本이 있다.

예기정의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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