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王季爲父하시고 以武王爲子하시니 父作之하시고 子述之하시니라
注
[注]聖人以立法度爲大事하고 子能述成之하니 則何憂乎리오
堯舜之父子는 則有凶頑하고 禹湯之父子는 則寡令聞이니 父子相成은 唯有文王이라
武王纘大王王季文王之緖
하사 而有天下
하사대 身不失天下之顯名
하사
武王이 末受命이어시늘 周公이 成文武之德하사 追王大王王季하시고 上祀先公以天子之禮하시니
注
斯禮達於諸侯大夫士庶人者는 謂葬之從死者之爵하고 祭之用生者之祿也라
言大夫葬以大夫하고 士葬以士니 則追王者엔 改葬之矣라
期之喪達於大夫者는 謂旁親所降 在大功者니 其正統之期는 天子諸侯라도 猶不降也라
大夫所降에 天子諸侯 絶之不爲服하고 所不臣乃服之也라
承葬祭하여 說期三年之喪者는 明子事父以孝에 不用其尊卑變이라
疏
○正義曰 : 此一節明夫子論文王‧武王聖德相承, 王有天下, 上能追尊大王‧王季, 因明天子以下及士庶人葬祭祀之禮,
疏
○‘以王季爲父 以武王爲子 父作之 子述之’者, 言文王以王季爲父, 則王季能制作禮樂, 文王奉而行之.
疏
○正義曰 : 案尙書武成云‘一戎衣’, 謂一著戎衣而滅殷.
此云‘一’者, 以經武王繼大王‧王季‧文王三人之業, 一用滅殷, 對三人之業爲‘一’耳.
鄭必以衣爲殷者, 以
, 是再著戎服, 不得稱‘一戎衣’, 故以衣爲殷,
疏
‘斯禮也 達乎諸侯大夫 及士庶人’者, 斯, 此也.
言周公尊崇先公之禮, 非直天子所行, 乃下達於諸侯‧大夫‧士‧庶人等, 無問尊卑, 皆得上尊祖父, 以己之祿祭其先人, 猶若周公以成王天子之禮祀其先公也.
疏
○‘父爲大夫 子爲士 葬以大夫 祭以士’者, 謂父旣爲大夫, 祭以士禮, 貶其先人而云尊之者, 欲明以己之祿祀其先人也.
疏
○‘期之喪 達乎大夫’者, 欲見大夫之尊, 猶有期喪.
‘謂旁親所降 在大功者’, 得爲期喪, 還著大功之服, 故云‘達乎大夫’.
疏
○‘三年之喪 達乎天子’者, 謂正統在三年之喪, 父母及適子幷妻也.
天子爲后服期, 以三年包之者, 以后卒必待三年然後娶, 所以達子之志,
是以昭十五年左傳云, “穆后崩”, “大子壽卒”, “叔向云, ‘王一歲而有三年之喪二焉.’” 是包后爲三年也.
直云‘達乎天子’, 不云‘諸侯’者, 諸侯旁親, 尊同則不降,
故喪服大功章云, ‘諸侯爲姑姊妹嫁於國君者’是也.
疏
○‘父母之喪 無貴賤一也’, 唯父母之喪, 無問天子及士庶人, 其服竝同,
疏
○正義曰 : ‘末 猶老也’者, 謂文王受命,
, 是老而受命,
疏
云‘追王大王王季者 以王跡起焉’, 案詩頌閟宮云, “大王, 居岐之陽, 實始翦商”, 是‘王跡起’也.
疏
云‘先公 組紺以上 至后稷也’者, 組紺, 太王之父, 一名諸盭.
太公卒, 子古公亶父立.’ 又
云, ‘亞圉雲
生太公組紺諸盭’, 則叔穎‧組紺‧諸盭是一人也.
此文云‘追王大王‧王季, 上祀先公’, 則先公之中包后稷也.
以后稷爲周之始祖, 祫祭於廟, 當同先王用袞, 則先公無后稷也.
若四時常祀, 唯后稷及大王‧王季之等, 不得廣及先公.
故天保云, ‘禴
蒸嘗, 于公先王.’ 是四時常祀, 但有后稷‧諸盭以下,
故不同.
.
祫廟制圖(《六經圖》)
疏
云‘則追王者 改葬之矣’者, 以大王‧王季身爲諸侯, 葬從死者之爵, 則大王‧王季祗得爲諸侯葬禮, 不得言‘追王’,
案
云, ‘武王追王大王亶父‧王季歷.’ 此云周公追王, 不同者, 武王旣伐紂, 追王布告天下, 周公追而改葬, 故不同也.
疏
云‘期之喪達於大夫者 謂旁親所降在大功者’, 熊氏云 “此對天子諸侯, 故云‘期之喪達乎大夫’,
其實大夫爲大功之喪, 得降小功, 小功之喪, 得降緦麻.” 是大功‧小功, 皆達乎大夫.
熊氏又云 “天子爲正統之喪, 適婦大功, 適孫之婦小功.” 義或然, 但無正文耳.
疏
云‘所不臣乃服之也’者, 喪服傳云, “始封之君不臣諸父昆弟, 封君之子不臣諸父而臣昆弟.” 但不臣者, 皆以本服服也.
“근심이 없는 자는 아마 문왕文王뿐일 것이다.
왕계王季를 아버지로 모시고, 무왕武王을 아들로 두었는데, 아버지가 〈왕업王業을〉 일으키고 아들이 〈그것을〉 계승하였다.
注
성인聖人이 법도를 세움을 큰 일로 삼았고, 아들이 그것을 잘 계승하여 이루었으니, 어찌 근심하겠는가.
요堯임금의 아들과 순舜임금의 아버지는 흉악하고 미련한 점이 있었고, 우禹임금의 아버지와 탕湯임금의 아들은 좋은 명성名聲이 적었으니,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루어준 자는 문왕文王뿐이었다.
무왕武王이 태왕太王‧왕계王季‧문왕文王의 일을 계승하여 한 번 군사[戎]를 동원하여 은殷[衣]나라를 쳐서 천하를 소유하였지만, 몸은 천하의 드러난 명성名聲을 잃지 않았다.
존귀함으로는 천자天子가 되었고, 부유함으로는 사해四海의 안을 소유하였다.
〈죽은 뒤에는〉 종묘宗廟에 합사合祀되었으며, 자손들이 〈그 제사를〉 보전保全하였다.
注
찬纘은 계승함이요, 서緖는 일[業]이요, 융戎은 군사[兵]이다.
의衣은 은殷처럼 읽으니, 〈의衣(의)라고 읽은 것은〉 발음[聲]이 잘못된 것이다.
제齊나라 사람들은 은殷을 말할 때에 의衣처럼 발음한다.
우씨虞氏‧하씨夏氏‧상씨商氏‧주씨周氏〈라고 한 것〉이 많으니, 지금 성姓에서 의씨衣氏라고 한 것은 은殷나라의 후손일 것이다.
일융은壹戎殷은 한 번 군사를 동원하여 은나라를 친다는 것이다.
무왕武王이 노년老年[末]에 천명天命을 받았는데, 주공周公이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덕德을 이루고서 태왕太王‧왕계王季를 추존追尊하여 왕으로 모시고, 위로는 선공先公들을 천자天子의 예법으로 제사 지냈다.
이러한 예법이 제후諸侯와 대부大夫 및 사士‧서인庶人까지 적용適用[達]되었다.
아버지가 대부大夫이고 아들이 사士이면 대부大夫의 예법으로 장사 지내고 사士의 예법으로 제사 지낸다.
아버지가 사士이고 아들이 대부大夫이면 사士의 예법으로 장사 지내고 대부大夫의 예법으로 제사 지낸다.
1연상年喪은 〈서인庶人부터〉 대부大夫까지 적용하고, 3연상年喪은 〈서인庶人부터〉 천자天子까지 적용하였다.
부모의 상喪은 〈신분의〉 귀천貴賤에 관계없이 똑같다.”
注
태왕太王‧왕계王季를 추존하여 왕으로 모신 것은 〈이들에게서〉 왕업王業의 자취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선공先公은 조감組紺 이상으로 후직后稷까지이다.
이러한 예법이 제후諸侯‧대부大夫‧사士‧서인庶人까지 적용됨은 죽은 사람의 작위爵位를 따라 장사 지내고 산 사람의 녹봉祿俸을 사용하여 제사 지냄을 이른 것이다.
대부大夫는 대부의 예법으로 장사 지내고 사士는 사의 예법으로 장사 지낸다고 말하였으니, 추존하여 왕으로 모실 때에는 〈왕의 예법으로〉 개장改葬하였을 것이다.
1년상은 〈서인庶人부터〉 대부大夫까지 적용한다는 것은 방계친족傍系親族으로서 〈상기喪期를〉 강등하여 대공大功(9개월 복服)을 입는 자를 이르니, 그 직계가족直系家族[正統]의 상기喪期는 천자天子와 제후諸侯라도 강등하지 않는다.
대부大夫가 강등하는 대상에 대해 천자天子와 제후諸侯는 아예 복을 입지 않고, 신하로 여기지 않는 대상은 복을 입는다.
장례葬禮와 제례祭禮를 이어 1연상年喪‧3연상年喪을 말한 것은 아들이 효孝로 아버지를 섬길 때 그 〈작위爵位의〉 존비尊卑로 〈상기喪期를〉 바꾸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한 단락은 부자夫子(孔子)가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성덕聖德이 서로 이어졌음을 논하고, 왕이 되어 천하를 소유하자 위로 태왕太王‧왕계王季를 추존하였음을 밝혔으며, 이어 천자天子 이하로 사士‧서인庶人의 장례葬禮와 제사祭祀의 예법까지 밝혔다.
疏
○[以王季爲父 以武王爲子 父作之 子述之]문왕文王은 왕계王季를 아버지로 모셨는데, 왕계가 예악禮樂을 잘 제작하였고, 문왕이 받들어 시행하였다.
문왕은 무왕武王을 아들로 두었는데, 무왕이 또 문왕의 도道를 잘 계승하여 이루었다.
그러므로 ‘근심이 없다.’라고 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疏
무왕武王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일을 잘 계승하여 천하에 왕이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疏
한번 군사를 동원하여 은殷나라를 쳐서 이겼음을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상서尙書》 〈무성武成〉을 살펴보면 ‘일융의一戎衣’라고 한 것은 한 번 갑옷[戎衣]을 입고서 은殷나라를 멸망시켰음을 이른 것이다.
여기서 ‘일一’이라고 한 것은 경문經文에 ‘무왕武王이 태왕太王‧왕계王季‧문왕文王 세 사람의 일[業]을 계승하고 한 번 사용하여 은나라를 멸망시켰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세 사람의 일’에 상대하여 ‘일一’이라고 한 것일 뿐이다.
세 사람의 일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에 한 몸이 멸망시킨 것〈과 다름이 없〉다.
정현鄭玄이 반드시 ‘의衣’를 ‘은殷’이라고 한 것은 11년에 맹진孟津에서 군사를 사열하고 13년에 주왕紂王을 멸망시켰으므로 〈이때는〉 두 번째로 갑옷[戎衣]을 입은 것이니, ‘한 번 갑옷을 입었다.’라고 일컬을 수 없기 때문에, ‘의衣’를 ‘은殷’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석에서 ‘제齊나라 사람들은 은殷을 말할 때에 의衣처럼 발음한다.’라고 하였다.
疏
○경經의 [武王 末受命] 이것은 주공周公의 덕德을 찬미한 것이다.
무왕武王이 노년에 천명天命을 받아 천하를 평정하였음을 이른 것이다.
[斯禮也 達乎諸侯大夫 及士庶人]사斯는 차此이다.
주공周公이 선공先公을 존숭尊崇한 예법은 천자天子가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래로 제후諸侯‧대부大夫‧사士‧서인庶人 등에게 적용하여 〈작위爵位의〉 존비尊卑를 따지지 않고 모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높이되, 자기의 녹봉으로 그 선인先人을 제사함이 마치 주공이 성왕成王에게 천자의 예법으로 그 선공先公들을 제사하게 한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疏
○[父爲大夫 子爲士 葬以大夫 祭以士] 아버지가 대부大夫였는데 사士의 예법으로 제사 지낸다고 하였으니, 그 선인先人〈의 등급〉을 떨어뜨리는 것인데도 ‘높인다[尊之]’고 한 것은 자기의 녹봉으로 자기의 선인先人에게 제사 지냄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疏
○[期之喪 達乎大夫] 존귀한 대부大夫라도 1연상年喪을 두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주注의〉 ‘방계친족傍系親族으로서 〈상기喪期를〉 강등하여 대공大功을 입은 자를 이른다.’는 것은 1년상을 해도 되는데 도리어 대공복大功服(9개월服)을 입은 것이기 때문에 ‘〈서인庶人부터〉 대부大夫까지 적용한다.’라고 한 것이다.
천자天子와 제후諸侯는 방계친족傍系親族의 1년상에는 복을 입지 않는다.
疏
○[三年之喪 達乎天子] 〈‘삼년지상三年之喪’은〉 3연상年喪을 지내는 직계가족直系家族[正統]을 이르니, 부모父母와 적자適子와 본처本妻이다.
‘달호천자達乎天子’는 천자天子까지 모두 복服을 입음을 말한 것이다.
‘부모父母’라고 하지 않고 ‘삼년三年’이라고 한 것은 적자適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천자天子가 왕후王后를 위하여 입는 복은 1년이지만 3년으로 포괄한 것은 왕후가 죽으면 반드시 3년을 기다린 뒤에 장가들기 때문이고, 자식의 마음[志]을 드러내기[達] 위해서이다.
이 때문에 소공昭公 15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목후穆后가 붕崩하였다.”라고 하였고, “태자太子 수壽가 졸卒하였다.”라고 하였으며, “숙향叔向이 ‘왕이 한 해에 삼년복三年服을 입을 상喪을 두 번 당하였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왕후를 포함하여 3년이라고 한 것이다.
직접 ‘달호천자達乎天子’라고 말하고 ‘제후諸侯’를 말하지 않은 것은 제후諸侯가 방계친족傍系親族과 존귀함이 같으면 〈상기喪期를〉 강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례儀禮》 〈상복喪服〉 대공장大功章의 ‘제후의 고모姑母[姑姊妹]로서 국군國君에게 시집간 사람’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疏
○[父母之喪 無貴賤一也] 부모의 상喪만은 천자天子와 사士‧서인庶人을 따지지 않고, 그 복服이 모두 같다.
그러므로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똑같다.’라고 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末 猶老也]문왕文王이 천명天命을 받았고, 11년에 무왕武王이 맹진孟津에서 군사를 사열하였는데 흰 물고기가 왕의 배에 들어왔으니, 〈무왕도〉 노년老年에 천명을 받은 것이다.
〈무왕이〉 천명을 받은 뒤 7년 만에 붕崩하였다.
그러므로 정현鄭玄이 《상서尙書》 〈낙고洛誥〉에 주석하여 ‘문왕은 붉은 새〈에게서 단서丹書〉를 받았고, 무왕은 몸을 숙여 흰 물고기를 집어 들었는데, 〈천명을 받은 지〉 모두 7년 만〈에 붕崩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
[追王大王王季者 以王跡起焉] 《시경詩經》 〈노송魯頌 비궁閟宮〉을 살펴보면 “태왕太王이 기산岐山의 남쪽에 거주하여 진실로 비로소 상商나라〈의 세력〉을 깎았다.”라고 한 것이 ‘왕적기王跡起’이다.
疏
[先公 組紺以上 至后稷也]조감組紺은 태왕太王의 아버지이니, 일명 제려諸盭라고 한다.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에 ‘아어亞圉가 졸卒하자 아들 태공숙영太公叔穎이 즉위하였다.
태공太公이 졸卒하자 아들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즉위하였다.’라고 하였고, 또 《세본世本》에 ‘아어운도亞圉雲都가 태공太公 조감제려組紺諸盭를 낳았다.’고 하였으니, 숙영叔穎‧조감組紺‧제려諸盭는 한 사람이다.
이 경문經文에서 ‘태왕太王‧왕계王季를 추존하여 왕으로 모시고 위로는 선공先公들을 제사 지냈다.’는 것은 선공先公 가운데 후직后稷을 포함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조감組紺 이상으로 후직后稷까지’라고 한 것이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종백宗伯〉의 사복장司服章을 살펴보면 ‘선왕先王에게 제향祭享할 때에는 곤면袞冕을 하고, 선공先公에게 제향할 때에는 별면鷩冕을 한다.’라고 하였다.
후직后稷을 주周나라의 시조로 여겨 사당에서 협제祫祭를 지낼 때에는 선왕先王과 동일하게 곤면袞冕을 사용해야 하니, 선공先公에 후직은 없다.
그러므로 정현鄭玄이 사복장司服章에 ‘선공先公은 불굴不窋(后稷의 아들)부터 제려諸盭까지이다.’라고 주석한 것이다.
만일 사시四時의 정해진 제사[常祀]에 후직后稷과 태왕太王‧왕계王季 등일 뿐이라면 선공先公에게 널리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약사증상禴祠蒸嘗 우공선왕于公先王(禴祭‧사제祠祭‧증제蒸祭‧상제嘗祭를 선공先公과 선왕先王에게 올리시니)’이라고 한 것은 사시四時의 정해진 제사에 후직后稷‧제려諸盭 이하에만 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정현이 〈천보天保〉에 ‘〈공公은〉 선공先公이니, 후직부터 제여까지를 이른다.’라고 주석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 경經의 앞뒤를 다 조망하여 뜻을 풀이한 것이다.
疏
[則追王者 改葬之矣]태왕太王과 왕계王季 자신은 제후〈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장례葬禮는 죽은 자의 작위爵位를 따른다〈는 법도를 따르〉면 태왕과 왕계는 제후의 장례법葬禮法만으로 〈장사〉 지낼 수 있었으니 ‘추존하여 왕으로 모신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제사는〉 천자天子의 예법을 따랐기 때문에 추존하여 왕으로 모실 때, 천자의 예법으로 다시 개장改葬하였음을 안 것이다.
《상서대전尙書大傳》을 살펴보면 ‘무왕武王이 태왕太王 단보亶父‧왕계王季 역歷을 추존하여 왕으로 모셨다.’라고 하여, 여기에서 ‘주공周公이 추존하여 왕으로 모셨다.’는 〈경문經文의〉 말과 같지 않은 것은 무왕이 주왕紂王을 정벌한 뒤에 ‘추존하여 왕으로 모실 것’을 천하에 포고하고 주공이 추존하여 개장改葬하였기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이다.
疏
[期之喪達於大夫者 謂旁親所降在大功者]웅씨熊氏(熊安生)가 “이것은 천자天子‧제후諸侯를 상대하였기 때문에 ‘1년상은 〈서인庶人부터〉 대부大夫까지 적용한다.’라고 한 것이다.
그 실제는 대부大夫가 대공大功(9개월服)의 상喪을 당하면 소공小功(5개월服)으로 강등할 수 있고, 소공小功의 상喪은 시마緦麻(3개월服)로 강등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대공大功‧소공小功은 모두 대부에게 적용된다.
웅씨가 또 “천자가 직계가족直系家族[正統]의 상喪을 당하면 맏며느리[嫡婦]의 상喪에는 대공복大功服을, 맏손자며느리[適孫之婦]의 상喪에는 소공복小功服을 입는다.”라고 하였으니, 의義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정문正文이 없을 뿐이다.
疏
[所不臣乃服之也] 《의례儀禮》 〈상복喪服〉의 전문傳文에 “처음으로 책봉된 임금은 제부諸父와 형제兄弟를 신하로 삼지 않으며, 봉군封君의 아들은 제부諸父는 신하로 삼지 않으나 형제兄弟는 신하로 삼는다.”라고 하였으니, 다만 신하로 삼지 않는 자는 모두 본복本服으로 복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