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鄭玄이 ‘〈대학大學〉이라고 한 것은 이 편篇이 박학博學에 대해 기록하고 있어 〈이것으로〉 정사政事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疏
정의왈正義曰 : 정현鄭玄의 《삼례목록三禮目錄》을 살펴보니 “〈대학大學〉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이 〈편篇이〉 박학博學에 대해 기록하고 있어 〈이것으로〉 정사政事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칠략별록七略別錄》에서 〈통론通論〉에 들어 있다.”라고 하였다.
이 〈대학〉은 학문을 완성하는 일이 그 나라를 잘 다스려 천하에 자신의 덕德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을 논하였지만 도리어 덕德을 밝히는 것에 뿌리를 두어, 그 방법은 먼저 자기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함[誠意]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역주
역주1大學 第四十二 :
《大學》은 원래 《禮記》의 제42편이다. 漢나라‧唐나라의 학자들은 이를 특별히 귀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玉海》 권34 〈聖文 御書 天聖賜進士大學篇〉에 “宋 仁宗 天聖 8년(1030)에 새로 급제한 王拱辰에게 《대학》 1軸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司馬光(宋)이 《大學廣義》 1권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니(《皇淸文潁》 권13 劉藻의 〈經解〉), 《대학》이 《예기》에서 독립한 것은 아마 宋 仁宗 때부터이고 《대학》에 주석한 것은 사마광부터일 것이다. 程子는 이를 초학자가 德에 들어가는 문이라고 表章하여 《論語》‧《孟子》‧《中庸》과 함께 자제들을 가르쳤고, 朱熹가 《大學章句》를 지으면서부터 단행본으로 천하에 크게 유포되기 시작하였다.
역주3大學 :
朱熹는 〈大學章句序〉에서 “《대학》은 옛날 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방법에 관한 책이다.”라고 하였고, 또 주석에서 ‘大人之學’으로 풀이하였으니, 어린이들이 배우는 《小學》에 상대하여 成人들이 배우는 책이라는 의미이다. 반면 鄭玄(後漢)은 ‘大學’을 ‘博學에 대해 기록한 책’이라고 풀이하여 정치에 관련된 책으로 여겼다.
역주4以其記博學 :
鄭玄의 《三禮目錄》에서 《禮記》의 첫 편 〈曲禮 上〉의 解題에는 “名曰曲禮者 以其篇記五禮之事(‘曲禮’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그 편이 五禮의 일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나머지 편에는 모두 ‘其篇’의 ‘篇’자가 생략되었다. 따라서 ‘篇’자를 보충하여 해석하였다.(袁均(淸) 輯, 《鄭氏佚書》) 朱熹의 性理學과 王守仁(明)의 陽明學이 소홀하게 여기는 ‘博學’의 강조는 《대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