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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附註

심경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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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記
禮樂 不可斯須去身이니 致樂以治心이면之心 油然生矣 易直子諒之心 生則樂하고 樂則安하고 安則久하고 久則天이요 天則神이니 天則不言而信하고 神則不怒而威하나니 致樂以治心者也니라
致禮以治躬則莊敬하고 莊敬則嚴威하나니 斯須不和不樂而鄙詐之心入之矣 外貌斯須不莊不敬而易慢之心入之矣
故樂也者 動於內者也 禮也者 動於外者也 樂極和하고 禮極順하야 內和而外順이면 則民瞻其而弗與爭也 望其而民不生易慢焉이라
하야 而民莫不承聽하고 理發諸外하야 而民莫不承順이라
故曰 致禮樂之道 之天下 無難矣라하니라
原注
[原註]
和易, 正直, 子愛, 諒信이니라
原注
○ 鄭氏曰
猶深審也 油然 新生好貌也
善心生則寡於利欲이요 寡於利欲則樂矣니라
原注
○ 又曰
樂由中出이라 故治心이요 禮自外作이라 故治躬이니라
原注
○ 又曰
鄙詐入之 謂利欲生이니라
原注
[附註]
○ 程子曰
只要鞭辟近裏著己而已
라하며 言忠信하고 行篤敬이면 雖蠻貊之邦이라도 行矣어니와 言不忠信하고 行不篤敬이면 雖州里 行乎哉
하면 하야 與天地同體 持養이니 及其至則一也니라
原注
問鞭辟如何 朱子曰
此是洛中語 一處 說作鞭約하니 大抵是要鞭督向裏去
今人 皆不是鞭督向裏하고 心都向外하니 恰似一隻船 覆在水中이라
須是去翻將轉來라야 便得使 吾輩 須勇猛著力이니라
原注
問每日常遇事 卽能知操存之意어니와 無事時 如何存養得熟이닛고
古之人 耳之於樂 目之於禮 左右起居盤盂几杖 有銘有戒하야 動息 皆有所養이러니 今皆廢此하고 獨有理義之養心耳
但存此涵養意 久則自熟矣리라
敬以直內 是涵養意 言不莊不敬이면 則鄙詐之心生矣 貌不莊不敬이면 則怠慢之心生矣니라
原注
○ 又曰
古者 玉不去身하며 無故어든 不徹琴瑟하고 自成童入學하야 四十而出仕하니 所以敎養之者備矣
理義以養其心하고 禮樂以養其血氣
故其才高者 爲聖賢하고 下者亦爲吉士하니 由養之至也니라
原注
○ 伊川先生 甚愛表記 君子莊敬日强, 安肆日之語하더시니 纔放肆則日就曠蕩하고 自檢束則日就規矩니라
問 强 是志强否잇가 朱子曰
也强이요 氣力 也强이니 今人放肆하나니 那得强이리오
伊川云 人莊敬則日就規矩라하시니 莊敬이면 自是耐得辛苦하야 自不覺其日就規矩也리라
原注
○ 又曰
學者有所得 不必在談經論道間이라
當於行事動容周旋中禮 得之니라
原注
○ 又曰
懈意一生이면 便是自暴自棄니라
原注
朱子曰
孟子云 言非禮義 謂之自暴라하시니 言非禮義 是專道禮義是不好
世上 有這般人 人做好事하야 只道이라하나니 這是他自恁地麤暴了하야 更不通與他說이라
하야는 也自道義理是好라하고 也聽人說호되 只是我做不得이라
라하나니
這箇是自棄 終不可與有爲
故伊川說 自暴者 拒之以不信하고 自棄者 絶之以不爲라하시니 自暴 是剛惡이요 自棄 是柔惡이니라
○ 問向所說自暴 作自麤暴하야 與今集註暴害也 不同이로소이다
害底是하니이니라
言非禮義 謂之自暴 如今人 要罵道學一般이니 只說道這許多做好事之人 自做許多模樣이라하나니
不知這道理是人人合有底하야 他自恁地非議하니 是他自害了這道理니라
○ 又曰
今人 不肯做工夫하니 有是覺得難後 遂不肯做하며 有自知不可爲하고 公然遜與他人하야 하고 自己不願要니라
原注
○ 張子曰
有潛心於道라가 忽忽爲他慮引去者 此氣也
舊習纏繞하야 未能脫灑 이요 但樂於舊習耳
古人 欲得朋友與琴瑟簡編 常使心在於此니라
原注
○ 朱子曰
聖賢之敎 無一言一句不是入德門戶어니와 如所謂禮樂不可斯須去身者 尤爲深切하니 眞當佩服存省하야 以終其身也니라
原注
○ 問 樂以治心, 禮以治躬한대
心要平易하야 無艱深險阻 所以說不和不樂則鄙詐之心入之矣 不莊不敬則易慢之心入之矣니라
原注
○ 南軒張氏曰
問所謂敬之說 當用力이니 誠不可怠惰어니와 亦當隨時라하야늘
某以爲嚮晦入宴息 乃敬也 知嚮晦宴息之爲非怠惰라야 乃可論敬之理矣라호라
原注
○ 東萊呂氏曰
敬之一字 固難形容이니 古人所謂心莊則體舒, 心肅則容敬 此兩語 當深體也니라
原注
西山眞氏曰
謂嚴而重이요 謂靜而恭이니 氣象 固不同也
心嚴重則體安舒하고 心輕肆則體躁擾하니 以身驗之하면 斯可見矣리라
原注
初從하더니 自言初見先生하고 退 頭容少偏이러니 安定 忽厲聲云 頭容直이라하야시늘
某因自思호니 不獨頭容直이라 心亦要直也라하야 自此 不敢有邪心호라
原注
[按] 經云 禮樂不可斯須去身 卽孔子所謂
聖學之基 必謹於此 蓋制於外 所以養其中也
今稍摘其事以附하야 用自警焉하니
原注
② 元城劉氏 嘗擧司馬公讀三國志하야 以語客한대 客曰 非溫公識見이면 不及此니라
劉氏曰
此無他
乃一誠字爾
老先生 讀書 必具衣冠하고 正坐莊色하야 不敢懈怠하야 惟以誠意讀之하시니 誠之至者 可以開金石이어든 況此之事 一看니라
原注
③ 上蔡謝氏曰
明道先生 終日端坐하야이러시니 及至接人하야는 則渾是和氣시니 이니라
原注
先生謂學者曰 賢看顥如此하라
工夫로라
原注
④ 明道先生曰
하니 非是欲字好 只此是學이며 只此求放心이니라
原注
橫渠先生 終日危坐一室하사 左右簡編 俯而讀하고 仰而思하야 有得則호되 或中夜起坐하야 取燭以書하시니 其志道精思 未始須臾息이요 亦未嘗須臾忘也시니라
原注
送伊川할새 道宿僧舍러니 坐處背이어늘 先生 令轉椅勿背하신대
霖曰 其徒敬之故 亦當敬邪잇가 先生曰 但具人形貌 便不當嫚이라하시니라
蓋象人而用之 其流必至於用人이니 君子無所不用其敬이라
見似人者하고 不忽이면 於人 可知矣 若於似人而萌輕忽之心이면 其流必至於輕忽人이니라
原注
⑦ 程子曰
呂與叔 六月中어늘 間居中窺之러니 必見其儼然危坐하니 可謂敦篤矣
學者須恭敬이어니와
但不可令拘迫이니 니라
原注
朱子曰
學者常用提省此心하야 使如日之升이면 則羣邪自息이니 光明廣大
自家只著些子力去하야 提省照管他便了 不要苦著力이니 苦著力이면 反不是니라
原注
⑧ 又曰
在洛 有書室호되 兩旁 各一牖 牖各三十六槅이러니
書天道之要하고 書仁義之道하고 中以一榜으로 書毋不敬, 思無邪하고 中處之하니 此意亦好니라
原注
⑨ 朱子曰
和靖尹公 一室 名三畏齋라하니之意
晩歲片紙 手書聖賢所示治氣養心之要하야 粘之屋壁하야 以自警戒하니
熹竊念前賢 進修不倦하야 死而後已하니 其心炯炯 猶若可識이니라
原注
⑩ 朱子曰
問程先生 如此謹嚴이어시늘 何故 諸門人 皆不謹嚴이닛고하야늘
某答云 是程先生自謹嚴하시고 諸門人自不謹嚴이니 干程先生何事오하니
某所以發此者 正欲才卿 深思而得하야 反之於己하야 如針之箚身하야 하고 無地自存하야 思其所以然之故니라
原注
[按] 程門高弟 如上文所記楊呂朱尹愼獨之事 可謂謹嚴矣어늘 陳氏乃有此問하니 當時必有所指로되 今不可考矣니라
原注
⑪ 先生病中 接應不倦이어시늘 左右한대 先生 厲聲曰 儞懶惰하니 敎我也懶惰로다
原注
朱子曰
某平生 不會懶
故雖甚病이라도 亦一心欲向前做事로라
今人所以懶 未必眞箇怯弱이라 自是先有畏事之心하야 纔見一事 便料其難而不爲하니 所以習成怯弱而不能有所爲也니라
原注
請讀何書한대
心放已久하니 可且收斂精神이라
玉藻 子細體認하야 待有意思어든 却好讀書니라
謂事之不近人情者 鮮不爲大姦慝이라하니 每常嫌此句過當이러니 今見得亦有此樣人호라
某向年過江西할새對語러니하야 라가 被某罵云
原注
⑬ 陳才卿 一日侍食이러니 先生曰 只易中三字 人不曾行得이니라
原注
請問 語聲 末後低어늘 先生 不聞하시고 因云
何故聲氣都恁地하야 說得箇起頭하고 後面懶將去
孔子曰 라하시니 公只管恁地하면 下稍 見道理不分明하야 將漸入於幽暗하야 하야 不能到得正大光明之地리니
說話 須是一字是一字 一句是一句하야 便要見得是非니라
原注
⑮ 有學者每相揖畢 輒縮左手袖中이어늘 先生曰 公常常縮著一隻手하니 是如何
也似不是이로다
原注
⑯ 有侍坐而困睡者어늘 先生責之러시니
曰 僧家言 常常提起此志하야 令堅强이면 則坐得自直하고 亦不昏困이요 纔一縱肆頹放矣라하더이다 曰固是니라
原注
⑰ 先生 看糊窓云 有些子不齊整이면 便不是他道理라하야시늘
原注
[按] 於師友尋常日用之間 一毫不敢自肆如此하니
類聚而觀 有不惕然自警于心者 眞所謂自暴自棄之人이니 不可與有爲矣니라
原注
⑱ 西山眞氏曰
古之君子 以禮樂爲治身心之本이라
故斯須不可去之 致者 極其至之謂也
樂之音 和平中正이라 故致此以治心이면 則易直子諒 油然而生하야 自不能已
生則樂 善端之萌 自然悅豫也 樂則安 樂之然後 安也
安則久 安之然後 能久也 久則天 渾然天成하야 無所作爲也
天則神 變化하야 不可思也
이리오마는 人自信之 以其不忒也 神雖不怒 人自畏之 以其不測也
以恭儉退遜爲本而有節文之詳이라
故致此以治身이면 則自然莊敬이요 敬則自然嚴威니라
夫禮樂 一也로되 以禮治身 至于嚴威而止하야 不若樂之治心 能至于天且神 何也
蓋天者 自然之謂
治身而至于嚴威 則亦自然矣 其效未嘗不同也
但樂之於人 能變化其氣質하야 消融其査滓
故禮以順之於外하고 而樂以和之於中이니 此表裏交養之功而養於中者 實爲之主
이니 記禮者 推明其效 亦若是其至也
於是 又言身心無主 則邪慝易乘이라
中心斯須而不和樂이면 則鄙詐入之하고 外貌斯須而不莊敬이면 則易嫚入之라하니 善惡之相爲消長 如水火然하야 此盛則彼衰也
鄙詐易嫚 皆非本有로되 而謂之心者 和樂不存이면 則鄙詐入而爲之主하고 莊敬不立이면 則易嫚入而爲之主 夫旣爲主於內 非心而何
猶汙泥非水也로되 撓而濁之 是亦水矣 此禮樂所以不可斯須去身也니라


16. 예기禮記 예악불가사수거신장禮樂不可斯須去身章
악기樂記〉에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말하기를 ‘예악禮樂사수斯須(잠시)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되니, 을 지극히 하여 마음을 다스리면 역직易直(평화롭고 정직함)과 자량子諒(慈諒:자애롭고 신실함)의 마음이 유연油然히(크게, 아름답게) 생겨나고 역직易直자량子諒의 마음이 생겨나면 즐겁고 즐거우면 편안하고 편안하면 오래하고 오래하면 천연적이고 천연적이면 신묘해지니, 천연적이면 말하지 않아도 믿고 신묘해지면 노여워하지 않아도 두려워하니, 이것이 을 지극히 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를 지극히 하여 몸을 다스리면 장경莊敬하고 장경하면 위엄이 있으니, 중심中心사수斯須라도 화락和樂하지 않으면 비사鄙詐(비루하고 속임)한 마음이 들어오고 외모外貌사수斯須라도 장경莊敬하지 않으면 역만易慢(함부로 함)한 마음이 들어온다.
그러므로 은 안에서 하고 는 밖에서 하니, 함을 지극히 하고 함을 지극히 하여 안이 화하고 밖이 순하면, 백성들이 그 안색을 바라보고 서로 다투지 않으며 그 용모를 바라보고 감히 역만易慢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의 빛남이 안에서 동하여 백성들이 받들어 따르지 않는 이가 없고, 이치가 밖에서 발하여 백성들이 받들어 순종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악禮樂를 지극히 하면 들어서 천하天下에 둠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原注
[原註]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화이和易하고 정직正直하고 자애子愛(慈愛)롭고 성실誠實한 것이다.”
原注
정씨鄭氏(鄭玄)가 말하였다.
는 깊이 살핌과 같고 유연油然은 새로 생겨나 아름다운 모양이다.
한 마음이 생기면 이욕利慾이 적어지고 이욕利慾이 적어지면 즐거워진다.”
原注
또 말하였다.
심중心中으로부터 나오므로 마음을 다스리고 는 밖으로부터 일어나므로 몸을 다스리는 것이다.”
原注
또 말하였다.
비사鄙詐한 마음이 들어온다는 것은 이욕利慾이 생김을 이른다.”
原注
[附註]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학문은 다만 편벽鞭辟(채찍질)하여 안(裏面)을 가까이 해서 자신에게 붙게 하기를 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이 그 가운데에 있다’고 하였으며,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면 비록 만맥蠻貊의 나라라도 행해질 수 있거니와, 말이 충신忠信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지 못하면 비록 자기가 사는 주리州里(고향마을)라도 행해지겠는가.
서 있으면 이것(言忠信과 행독경行篤敬)이 앞에 참여함을 보고, 수레에 있으면 이것이 멍에에 의지할 때에 보여야 하니, 그런 뒤에야 행해진다’ 하셨으니, 다만 이것이 학문學問이다.
자질資質이 아름다운 자는 밝히기를 다하면 찌꺼기가 곧 완전히 변화變化하여 천지天地가 같아지고, 그 다음 사람은 오직 장경莊敬하여 잡아 기를 뿐이니,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똑같다.”
原注
편벽鞭辟은 어떠한 것입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이것은 낙양洛陽지방의 말이니, 어떤 곳에서는 편약鞭約이라고도 하는 바, 대체로 채찍질하여 안을 향해 가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 채찍질하여 안을 향하지 않고 마음이 모두 밖을 향하니, 흡사 한 척의 배가 물 속에 엎어져 있는 것과 같다.
모름지기 가서 뒤집어 놓아야만 곧 부릴 수 있으니, 우리들은 모름지기 용맹하게 힘을 써야 한다.”
原注
이단백李端伯(李籲)이 “매일 항상 일을 만날 때에는 조존操存하여야 하는 뜻을 알겠으나 일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하여야 존양存養함이 익숙해질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옛사람은 귀가 (음악)에 있어서와 눈이 에 있어서와 좌우左右기거起居하는 곳과 반우盤盂(세수 그릇과 밥사발)와 궤장几杖(안석과 지팡이)에 이 있고 경계하는 글이 있어서 동하고 쉼에 모두 기르는 바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것을 모두 폐하고 오직 의리義理로 마음을 기르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이 함양涵養하는 뜻을 보존하여야 하니, 오래되면 저절로 익숙해질 것이다.
하여 안을 곧게 한다는 것이 바로 함양涵養의 뜻이니, 말이 장경莊敬하지 않으면 비사鄙詐한 마음이 생기고 외모가 장경莊敬하지 않으면 태만한 마음이 생김을 말한 것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옛날에는 을 몸에서 제거하지 않았으며 연고가 없으면 거문고와 비파를 치우지 않았고, 성동成童의 때로부터 학교에 들어가서 40세가 되어야 나와서 벼슬하였으니, 교양敎養한 것이 구비되었다.
의리義理로써 마음을 기르고 예악禮樂으로써 혈기血氣를 길렀다.
이 때문에 재주가 높은 자는 성현聖賢이 되고 낮은 자도 착한 선비가 되었으니, 이는 기르기를 지극히 한 때문이다.”
原注
이천선생伊川先生은 《예기禮記》 〈표기表記〉의 ‘군자君子장경莊敬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사安肆(편안하고 방사)하면 날로 게을러진다’는 말을 매우 좋아하였으니, 보통사람의 마음은 조금만 방사放肆하면 날로 광탕曠蕩(방탕)한 데로 나아가고, 스스로 검속檢束하면 날로 규구規矩(법도)로 나아간다.
함은 뜻이 강한 것입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뜻도 강하고 기력氣力도 강한 것이니, 지금 사람들은 방사放肆하면 날마다 하루보다 더 게을러지니, 어찌 강할 수 있겠는가.
이천伊川이 말씀하기를 ‘사람이 장경莊敬하면 날로 규구規矩로 나아간다’고 하였으니, 장경莊敬하면 저절로 신고辛苦를 인내하여 날로 규구規矩로 나아감을 스스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가 소득이 있는 것은 굳이 경전經傳을 말하고 를 논하는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일을 행하고 용모를 동하며 주선함이 에 맞는 데에서 얻어야 한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게으른 뜻이 한 번 생기면 곧 자포자기自暴自棄이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맹자孟子가 ‘말함에 예의禮義를 그르다 하는 것을 자포自暴라 한다’ 하셨으니, 말함에 예의禮義를 그르다고 하는 것은 오로지 예의禮義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서 남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여 다만 ‘사람들이 허다한 겉모양만 한다’고 비난하여 말하니, 이는 그 스스로 이렇게 거칠고 포악한 것이어서 다시는 그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자기自棄에 이르러서는 또한 스스로 의리義理가 좋다고 말하고 또 남의 말을 들으나 다만 ‘나는 하지 못한다.
네가 어떻게 하든 맡긴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自棄이니, 끝내 그와 더불어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천伊川이 말씀하기를 ‘자포自暴하는 자는 거절하여 믿지 않고 자기自棄하는 자는 끊어서(체념하여) 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자포自暴는 강한 이요 자기自棄는 유약한 이다.”
○ “지난번에 말씀할 때에는 자포自暴를 스스로 거칠고 포악한 것이라 하여, 지금 《집주集註》에 ‘는 해치는 것’이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해친다는 것이 옳으니, 백성을 해롭게 함이 심하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말함에 예의禮義를 그르다고 하는 것을 자포自暴라 한다는 것은 지금 사람들이 도학道學매도罵倒(매도)하는 것과 똑같으니, 다만 허다하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고는 스스로 허다한 모양만 한다고 비난하여 말한다.
도리道理를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이처럼 비난하는 것이니, 이는 스스로 이 도리道理를 해치는 것이다.”
○ 또 말씀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는데, 여기에는 공부의 어려움을 깨달은 뒤에 마침내 하지 않으려는 자도 있고,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알고는 공공연히 타인他人에게 양보해서 재산을 물려주듯 하여 기꺼이 비퇴批退하고 자신은 하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이 하는 자도 있다.”
原注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에 마음을 잠겨 두고 있다가 갑자기 딴 생각에 이끌려 가는 것은 바로 이다.
옛습관에 얽매여서 깨끗이 벗어나지 못하면 필경 유익함이 없고 다만 옛습관만을 좋아할 뿐이다.
옛사람이 붕우朋友금슬琴瑟간편簡編을 얻고자 한 것은 항상 마음을 이 속에 두고자 해서였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성현聖賢의 가르침은 한 말씀과 한 글귀가 에 들어가는 문호門戶 아님이 없지만 이른바 ‘예악禮樂사수斯須(잠시)라도 몸에서 떠날 수 없다’는 말씀은 더욱 깊고 간절하니, 진실로 가슴속에 새겨두고 살펴서 몸을 마쳐야 할 것이다.”
原注
으로써 마음을 다스리고 로써 몸을 다스리는 것을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마음이 평이平易하여 어렵고 깊고 험조險阻함이 없어야 하니, 이러한 연유로 마음이 화락和樂하지 않으면 비사鄙詐한 마음이 들어오고 장경莊敬하지 않으면 역만易慢한 마음이 들어온다고 말한 것이다.”
原注
남헌장씨南軒張氏가 말하였다.
이계수李季修가 묻기를 ‘이른바 의 말씀을 마땅히 힘을 써야 하니, 진실로 게을리 할 수 없지만 향회嚮晦(날이 저묾)하여 연식宴息(편안히 쉼)하는 것도 마땅히 때를 따라야 합니다’ 하기에
나는 대답하기를 ‘향회嚮晦하여 들어가 연식宴息함이 바로 공경이니, 향회嚮晦하여 연식宴息하는 것이 태만함이 아닌 것을 알아야 비로소 의 이치를 논할 수 있다’ 하였다.”
原注
동래여씨東萊呂氏가 말하였다.
한 글자는 진실로 형용하기 어려우니, 옛사람의 이른바 ‘마음이 장엄하면 몸이 펴지고 마음이 엄숙하면 용모가 공경해진다’는 이 두 말을 마땅히 깊이 체득하여야 할 것이다.”
原注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은 장엄하고 중후함을 이르고 정숙靜肅하고 공손함을 이르니, 기상氣象이 똑같지 않다.
마음이 엄중하면 몸이 편안하고 펴지며 마음이 가볍고 방사하면 몸이 조급하고 분요紛擾하니, 몸으로써 징험해 보면 이것을 알 것이다.”
原注
절효서공節孝徐公(徐積)이 처음 안정安定 호선생胡先生(胡瑗)을 따라 배웠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처음 선생을 뵙고 물러나올 적에 머리 모양이 조금 기울자, 안정安定이 갑자기 큰 소리로 ‘머리 모양은 곧아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내가 이로 인하여 스스로 생각해 보니, 단지 머리 모양만 곧을 것이 아니라 마음 또한 곧아야 한다고 여겨져서 이로부터 감히 간사한 마음을 두지 못하였다.” 하였다.
原注
[按](《禮記》)에 ‘예악禮樂사수斯須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곧 공자孔子의 이른바 ‘군자는 밥 한 그릇을 다 먹는 사이도 을 떠남이 없으니, 조차造次라도 이에 반드시 하고 전패顚沛라도 이에 반드시 한다’는 것이다.
성학聖學의 터전은 반드시 이것을 삼가니, 밖을 제재함은 속마음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이제 대략 이 일을 뽑아 붙여서 스스로 경계하려 하는 바, 모두 18조목을 얻었다.
原注
원성유씨元城劉氏(劉安世)가 일찍이 사마온공司馬溫公(司馬光)이 《삼국지三國志》에 조조曹操유명遺命한 일을 읽고 말씀한 것을 들어 에게 말하자, 객이 말하기를 “온공溫公식견識見이 아니면 이에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이에 유씨劉氏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는 딴 이유가 없다.
바로 한 성자誠字 때문이다.
노선생老先生(司馬光)이 책을 읽을 적에 반드시 의관衣冠을 갖추고는 바르게 앉아 얼굴빛을 장엄하게 하여 감히 게을리 하지 않고 오직 성의誠意로써 책을 읽으셨으니, 정성이 지극한 자는 금석金石도 열 수 있는데, 하물며 이 허탕虛蕩한 일쯤은 한 번 보면 곧 풀 수 있는 것이다.”
原注
상채사씨上蔡謝氏(謝良佐)가 말하였다.
명도선생明道先生이 종일토록 단정히 앉아서 진흙으로 만든 소상塑像과 같으셨는데, 사람을 접견함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한 덩어리의 온화한 기운이셨으니, 이른바 ‘바라보면 엄숙하고 나아가면 온화하다’는 것이다.”
原注
선생先生이 배우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그대들은 내가 이와 같이 하는 것을 보라.
나는 크게 공부(힘)를 쓰노라.” 하였다.
原注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였다.
“내가 글자를 쓰기를 매우 공경히 하니, 이는 글자를 아름답게 쓰려고 해서가 아니요, 다만 이것이 배움이며 다만 이것이 방심放心을 찾는 일이다.”
原注
남전여씨藍田呂氏(呂大臨)가 말하였다.
횡거선생橫渠先生이 종일토록 한 방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좌우의 간편簡編을 머리를 숙여 읽고 우러러 생각하여 터득함이 있으면 기록하되 혹은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서 촛불을 밝히고 쓰셨으니, 에 뜻을 두고 생각을 정밀하게 함이 일찍이 잠시도 그친 적이 없었고 또한 일찍이 잠시도 잊은 적이 없으셨다.”
原注
구산양씨龜山楊氏가 말하였다.
적림翟霖(적림)이 서쪽으로 귀양가는 이천伊川을 전송할 적에 도중에 승방僧房에서 유숙하였는데, 앉은 자리가 소상塑像(佛像)과 등지게 되어 있자, 선생은 의자를 돌려 등지지 않게 하였다.
적림翟霖이 말하기를 ‘그 무리(승려)들이 불상을 공경하기 때문에 또한 공경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자, 선생은 ‘다만 사람의 형모形貌를 갖추고 있으면 곧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였다.
나(龜山)는 인하여 이 말씀을 탄상歎賞하며 말하기를 ‘공자孔子께서 처음에 을 만든 자는 후손後孫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사람과 똑같이 만들어 장례에 썼기 때문이다.
사람과 똑같이 만들어 장례에 사용하면 그 말류末流에는 반드시 산 사람을 사용함에 이를 것이니, 군자君子는 공경을 쓰지 않는 바가 없다.
사람과 비슷한 것을 보고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사람에게 대하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만약 사람과 유사한 것에 경홀히 하는 마음이 싹튼다면 그 말류末流에는 반드시 사람을 경홀히 하는 데에 이를 것이다’ 하였다.”
原注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여여숙呂與叔(呂大臨)이 6월에 구지緱氏(구지)에 오셨는데 한가히 거처하는 중에 내 일찍이 엿보니, 반드시 엄숙히 무릎꿇고 앉아 계신 것을 보았으니, 돈독하다고 이를 만하다.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공경해야 한다.
다만 구박拘迫(억지로 구속하고 압박함)해서는 안되니, 구박하면 오래하기 어렵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가 항상 이 마음을 제성提省하여(일깨워) 떠오르는 태양太陽처럼 밝게 하면 여러 간사한 마음이 저절로 그칠 것이니, 이 마음은 본래 스스로 광명光明하고 광대廣大하다.
자신이 다만 조금만 힘을 붙여 나아가서 이것을 제성提省하고 조관照管하면 되는 것이요 굳이 괴롭게 힘을 쓸 것이 없으니, 괴롭게 힘을 쓰면 도리어 옳지 못하다.”
原注
⑧ 또 말씀하였다.
주공섬朱公掞(朱光庭)이 낙양洛陽에 있을 때에 서실書室을 장만하였는데, 양곁에 각각 창문이 하나씩 있고 창문에는 각각 36개의 창살이 있었다.
한 창문에는 천도天道의 요점을 쓰고 다른 창문에는 인의仁義를 쓰고 가운데에는 한 에다가 ‘무불경毋不敬[공경하지 않음이 없음]’과 ‘사무사思無邪[생각함에 간사함이 없음]’를 쓰고는 이 가운데에 거처하였으니, 이 뜻이 또한 좋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화정和靖 윤공尹公(尹焞)이 한 서실書室삼외재三畏齋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천명天命을 두려워하고 대인大人을 두려워하고 성인聖人의 말씀을 두려워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말년에 작은 종이에 성현聖賢이 보여주신 ‘기운을 다스리고 마음을 기르는 요점’을 손수 써서 집의 벽에 붙여 놓고 스스로 경계하였다.
내가 삼가 생각하건대 선현先賢들은 을 진전시키고 을 닦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여 죽은 뒤에야 그만두었으니, 그 마음의 밝고 밝음을 오히려 알 수 있을 듯하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진재경陳才卿(陳文蔚)이 ‘정선생程先生이 이처럼 근엄하셨는데 무슨 연고로 여러 문인門人들은 모두 근엄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묻자,
내가 대답하기를 ‘정선생程先生은 그분대로 근엄하셨고 여러 문인門人들은 그들대로 근엄하지 않은 것이니, 정선생程先生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였으니,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바로 재경才卿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여 터득해서 자기 몸에 돌이켜 이 몸을 찌르는 듯이 황공하고 분발하며 스스로 몸둘 곳이 없어서 소이연所以然의 연고를 생각하게 하고자 해서였다.”
原注
[按]정문程門고제高弟 중에 윗글에 기록한 바 양씨楊氏(楊時), 여씨呂氏(呂大臨), 주씨朱氏(朱光庭), 윤씨尹氏(尹焞)의 신독愼獨한 일이 근엄하다고 이를 만한데, 진씨陳氏가 마침내 이러한 질문이 있었으니, 당시에 반드시 〈어떤 일을〉 가리켜 말한 바가 있었을 것이나 지금 상고할 수가 없다.
原注
선생先生(朱子)이 병환 중에도 사람들을 응접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자, 좌우左右 사람들이 조금 절제節制할 것을 청하니, 선생은 큰 소리로 말씀하기를 “너희들이 게으르니, 나까지도 게으르라고 가르치는구나.”하였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나는 평소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비록 병을 심하게 앓더라도 또한 한 마음으로 예전처럼 일을 하려 하노라.
지금 사람들이 게으른 까닭은 반드시 참으로 겁내고 나약해서가 아니요, 본래 먼저 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겨우 한 가지 일을 보면 곧 그 어려움을 생각하여 하지 않으니, 이 때문에 겁내고 나약한 습관을 이루어서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原注
요진경廖晉卿이 “무슨 책을 읽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은 마음을 놓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우선 정신을 수렴하여야 한다.
예기禮記》 〈옥조玉藻〉의 구용九容을 자세히 체인體認하여 의사意思가 있기를 기다린 다음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변간론辨姦論〉에 ‘인정人情에 가깝지 않은 일은 큰 간악함이 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하였으니, 나는 언제나 항상 이 과당過當(지나침)하다고 혐의하였는데, 이제 보니 또한 이러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지난 해 강서江西를 지날 적에 육자수陸子壽(陸九齡)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유순수劉淳叟(劉堯夫)가 홀로 뒷편의 구석으로 가서 도가道家타좌打坐(跏趺坐)하는 을 배우다가 나에게 꾸짖음을 당하였다.
그때 나는 꾸짖기를 ‘곧 나와 육장陸丈의 말이 들을 만하지 못하지만 또한 몇 살이 더 많으니, 무슨 연고로 이처럼 괴이한 짓을 하는가’ 하였노라.”
原注
진재경陳才卿이 하루는 주선생朱先生을 모시고 음식을 먹었는데, 선생先生이 말씀하기를 “다만 《주역周易》의 ‘절음식節飮食[음식을 절제하라]’ 세 글자를 사람들이 일찍이 이행하지 못한다.” 하였다.
原注
섭하손葉賀孫이 물을 적에 말소리가 끝부분이 낮아지자, 선생先生이 듣지 못하고 인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선향仙鄕사람들은 무슨 연고로 목소리가 모두 이와 같아서 기두起頭만 말하고 후면後面에는 게을러지는가?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군자君子는〉 말소리를 들어보면 분명하다’ 하셨으니, 이 다만 이렇게 어물어물하면 하초下稍(종말)에는 도리道理를 봄이 분명치 못하여 장차 점점 유암幽暗한 데로 들어가서 함함호호含含胡胡(흐리멍텅)하여 정대正大하고 광명光明한 곳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말은 모름지기 한 는 한 가 되고 한 는 한 가 되게 해서 곧 옳고 그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原注
⑮ 배우는 자가 매번 상읍례相揖禮(서로 하는 예)가 끝나면 곧 왼손을 소매 속에 움츠려 넣자, 선생이 말씀하기를 “은 항상 한 쪽 손을 움츠리고 있으니, 어째서인가?
또한 거지擧止하는 모양(올바른 행동거지)이 아닌 듯하다.” 하였다.
原注
⑯ 모시고 앉았다가 피곤하여 조는 자가 있으므로 선생先生이 꾸짖었다.
이에 심경자沈敬子가 말하기를 “승가僧家(佛家)에서 말하기를 ‘항상 이 마음을 제기提起하여(일깨워) 견고하고 강하게 하면 앉는 자세가 저절로 곧아지고 정신 또한 어둡거나 피곤하지 않으며, 잠시라도 한 번 방종하면 멍하니 쓰러진다’ 하였습니다.” 하자, 선생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하였다.
原注
선생先生이 창문을 바르는 것을 보고는 말씀하기를 “조금이라도 가지런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곧 도리道理가 아니다.” 하였다.
주계역朱季繹이 “보기 좋게 하려면 밖에서 발라 〈사람들이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자, 황직경黃直卿이 말하기를 “이는 스스로 속이는 단서이다.” 하였다.
原注
[按]선정先正(先賢)들은 사우師友들이 심상한(대단치 않은) 일상생활의 사이에 있어 일호一毫라도 감히 스스로 방사放肆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이것을 로 모아 보면서도 척연惕然히 스스로 마음에 경계하지 않음이 있다면 참으로 이른바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사람이란 것이니, 더불어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原注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옛날 군자君子예악禮樂으로써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근본을 삼았다.
그러므로 예악禮樂사수斯須(잠시)라도 몸에서 떠나지 않게 한 것이니, 는 지극함을 다함을 이른다.
음악 소리가 화평和平하고 중정中正하므로 이것을 지극히 하여 마음을 다스리면 역직易直자량子諒(慈諒)의 마음이 유연油然히 생겨서 저절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생기면 즐겁다[生則樂]’는 것은 한 마음이 싹틈에 자연 기뻐지는 것이요, ‘즐거우면 편안하다[樂則安]’는 것은 즐거운 뒤에 편안한 것이요,
‘편안하면 오래다[安則久]’는 것은 편안한 뒤에 오래할 수 있는 것이요, ‘오래하면 천연天然[久則天]’이라는 것은 혼연渾然(완전)히 천연天然으로 이루어져서 작위作爲하는 바가 없는 것이요,
천연天然이면 신묘해진다[天則神]’는 것은 변화가 일정한 방체方體(方所와 형체形體)가 없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마는 사람들이 스스로 믿는 것은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요, 이 비록 노여워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은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맹자孟子의 이른바 와 같으니 천연天然이 되고 또 신묘함에 이르면 대인大人이 되어서 하는 것이다.
공검恭儉퇴손退遜(겸손)을 근본으로 삼고 절문節文도수度數의 상세함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지극히 하여 몸을 다스리면 자연 장경莊敬해지고, 장경莊敬하면 자연 위엄威嚴이 있는 것이다.
은 똑같은 것인데 로써 몸을 다스림은 위엄威嚴에 이르고 그칠 뿐이어서 의 마음을 다스림이 천연天然하고 신묘神妙함에 이름만 못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란 자연自然을 이른다.
몸을 다스려 위엄威嚴에 이르면 또한 자연自然이니, 그 효험이 일찍이 다르지 않다.
다만 은 사람에게 있어서 기질氣質을 변화하여 그 찌꺼기를 사라지게 하고 녹인다.
그러므로 로써 외면을 순하게 하고 으로써 마음을 화하게 하는 것이니, 이는 겉과 속을 서로 기르는 공부인데 마음속에 기름이 실로 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聖門의 가르침이 서는 것은 로써 하고 완성은 으로써 하는 것이니, 를 기록하는 자가 그 효험을 미루어 밝히기를 또한 이와 같이 지극히 하였을 뿐이다.
이에 또 말하기를 ‘몸과 마음이 주장이 없으면 사특함이 틈타기가 쉽다.
중심中心사수斯須라도 화락和樂하지 않으면 비사鄙詐한 마음이 들어오고 외모가 사수斯須라도 장경莊敬하지 않으면 역만易慢한 마음이 들어온다’ 하였으니, 이 서로 사라지고 자라남은 마치 물과 불과 같아서 이것이 성하면 저것이 쇠한다.
비사鄙詐역만易慢은 모두 마음속에 본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이것을 마음이라 이른 것은 화락和樂한 마음이 보존되지 않으면 비사鄙詐가 들어와서 주장이 되고, 장경莊敬한 마음이 보존되지 않으면 역만易慢이 들어와서 주장이 되기 때문이니, 이미 안에 주장이 된다면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진흙은 물이 아니나 흔들어서 흐려진 것도 이 또한 물인 것과 같으니, 이것이 예악禮樂사수斯須라도 몸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역주
역주1 禮樂不可斯須去身章 : 《禮記》 〈樂記〉에 보인다.
역주2 [釋疑]君子曰 : 《左傳》에도 이와 같은 例가 많이 있으니, 당시 군자들의 말이 이와 같다고 한 것이다.
역주3 [釋疑]易直 : 易는 평이하고 평탄한 것이고, 直은 白直하여 험함이 없는 것이다.
역주4 [釋疑]子諒 : 慈良으로 앞의 〈心經贊〉 註에 보인다.
역주5 [釋疑]中心 : 《禮記》에는 心中으로 되어 있다.
역주6 [刊補]顔色 : 顔面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역주7 [釋疑]容貌 : 온몸을 들어 말한 것이다.
역주8 [釋疑]德輝動於內 : 和順함이 마음속에 쌓여서 英華가 외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역주9 [釋疑]擧而錯 : 이것을 들어 저기에 더하는 것이다. ○ 위에서는 다만 ‘백성들이 다투지 않고 태만하지 않다’고만 말하였으니 그 효험이 오히려 얕고, 아래에서는 ‘백성들이 받들어 따르고 받들어 순히 하지 않는 이가 없다’고 말하였으니 그 효험이 더욱 깊고 또 원대하다.
역주10 [釋疑]孔氏 : 唐나라 孔穎達이다. [補註]唐나라 초기의 學者로 字는 仲達인데 총명하고 박학하였으며 經學에 밝았다. 國子監에 있으면서 太宗의 명을 받아 《五經正義》를 지어 유명하다.
역주11 [釋疑]切問而近思 則仁在其中矣 : 《論語》 〈子張〉에 나오는 子夏의 말이니,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돈독히 하며 묻기를 간절히 하고 생각을 가까이 하면 마음이 보존되어 이치가 익숙해지므로 ‘仁이 이 가운데에 있다’고 한 것이다. [刊補] ○ 朱子가 말씀하기를 “여기(切問‧近思)에 종사하면 마음이 밖으로 치닫지 아니하여 보존하는 것이 절로 익숙해진다. 그러므로 ‘仁이 그 가운데 있다’고 한 것이다.” 하였다.
역주12 [釋疑]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則見其倚於衡也 : 혹자가 묻기를 “忠信과 篤敬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아서 〈말을 충신하게 하고 행실을 독경하게 하는 모습이〉 서 있으면 눈앞에 어른거리고 수레에 있으면 가로댄 나무에 기대고 있을 때에 보인다면 이것은 편벽되이 매이는 병통이 아닙니까?” 하자, 朱子는 말씀하기를 “이와 같기 때문에 程子가 ‘뜻을 붙여서도 안 되고, 또한 뜻을 붙이지 않아서도 안 된다’고 한 것이다.” 하였다.
역주13 [刊補]言忠信 …… 夫然後行 : 子張이 行을 묻자, 孔子가 이에 답한 말씀으로 《論語》 〈衛靈公〉에 보인다. ○ 묻기를 “心學에서는 마음 가운데 한 물건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는데, 말을 충성스럽고 신실하게 하며 행실을 돈독하고 공경할 것을 항상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아서 이것이 앞에 참여함을 보고 수레의 멍에에 의지할 때에도 보이게 한다면 이것은 너무 치우치거나 얽매이는 병통이 아닙니까?” 하니, 退溪는 답하기를 “이와 같은 까닭에 程子는 ‘집착해서도 안 되고, 또 생각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고 하신 것이다.” 하였다. [補註]行은 모든 일이 뜻대로 행해짐을 이른다.
역주14 [釋疑]質美者 : 顔子와 같은 분이다.
역주15 [釋疑]明得盡 : 앎이 분명(극진)한 것이다.
역주16 [釋疑]査滓便渾化却 : 査滓는 渣滓로도 쓰는 바, 찌꺼기로 곧 氣質이 거칠고 탁한 것을 이르며, 渾化는 완전히 變化한 것으로 行(실천)의 효험이다. 却은 語辭인데, 혹은 위로 붙여 읽기도 하고 혹은 아래로 붙여 읽기도 한다. [刊補]渾化却는 찌꺼기가 渾化하여 없어짐을 말한다. 찌꺼기가 渾化함은 이를 實行한 효과이다. 却은 어조사이다. 世間에는 却字를 뒤로 붙여 ‘却與天地 …… ’라고 읽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補註] 위의 ‘明得盡’은 知工夫가 지극한 것이고, ‘査滓便渾化却’은 찌꺼기가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行이 지극하면 나타나는 효험이다.
역주17 [釋疑]其次 : 仲弓과 같은 사람이다.
역주18 [釋疑]莊敬 : 莊은 용모를 위주로 하고 敬은 마음을 위주로 한다. 그러나 서로 바꾸어 보아도 된다.
역주19 [釋疑]李端伯 : 이름은 籲(유)이니, 程門의 高弟이다.
역주20 : 투
역주21 [釋疑]蓋常人之情 : ‘常人之情’ 이하는 呂本中의 말이다.
역주22 [釋疑]日怠惰一日 : ‘날마다 한 날에서 더 怠惰하니’로 諺解하였다.
역주23 : 오
역주24 [釋疑]人做許多模樣 : 실제가 없으면서 헛되이 儀形만 하는 것을 이른다.
역주25 [刊補]到得自棄底 : ‘自棄로 말하면’이란 말과 같다.
역주26 [釋疑]任儞如何 : 네가 善을 하도록 맡겨 두고(내버려두고) 나는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역주27 [譯註]暴其民甚 : 《孟子》 〈離婁 上〉에 “暴其民甚 則身弑國亡” 이라고 보인다.
역주28 [釋疑]如退産相似 甘伏批退 : 批退는 批를 받고 재산을 물려주는 것으로, 批는 지금에 所志(청원서)를 올리는 것과 같다. ○ 중국 사람들은 財産을 交易(매매나 증여)할 때에 반드시 관청에 아뢰어 뜻을 써서 글을 올린다. 그러므로 만약 재산을 물려주고자 하는 자는 所志를 관청에 올리고 批를 받은 뒤에 물려주었으니, 재산을 물려준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 이 단락은 《語類》의 龔盖卿의 기록과 廖謙의 기록에 보이는 바, “지금 交易할 적에 情願批退帳(학문을 남에게 미루고 하지 않는 것)을 내어 他人이 사도록 하는 것과 같으니, 지금 사람들은 情願批退學問하는 사람이 많다.” 하였다. 帳은 세속의 이른바 所志와 같으니, 甘伏批退는 마음에 좋게 여겨서 스스로 원치 않음을 이른다. [補註]産은 재산이며, 甘伏은 달게(좋게) 여겨 승복(허락)하는 것으로 情願(청원)과 같은 뜻이다.
역주29 [釋疑]畢竟無益 : 비록 道에 潛心하고 있으나 끝내 유익한 바가 없음을 이른다.
역주30 [釋疑]李季修 : 출처가 보이지 않으나 張南軒의 門人인 듯하다.
역주31 [釋疑]嚮晦宴息 : 우레가 못 가운데에 감추어져 있어서 때에 따라 휴식하는 것이니, 하늘을 체행하여 일함이 바로 공경하는 것이다. [補註] 《周易》 〈隨卦 象傳〉에 “못 가운데 우레가 있는 것이 隨이니, 君子가 이것을 보고서 날이 어둠으로 향하거든 방안에 들어가 편안히 쉰다.[澤中有雷隨 君子以 嚮晦入宴 息]” 하였는 바, 이 말을 인용한 것이다. 隨卦는 못을 상징하는 兌가 위에 있고 우레를 상징하는 震이 아래에 있으므로 못 가운데 우레가 있다 한 것이며, 이는 군자가 때에 따라 휴식하는 象이라 한다.
역주32 [釋疑]節孝徐公 : 이름은 積이고 자는 仲車이며 節孝는 私諡이다.
역주33 [釋疑]安定胡先生 : 이름은 瑗이고 자는 翼之이다.
역주34 [譯註]君子無終食之間違仁 …… 顚沛必於是 : 《論語》 〈里仁〉에 보인다.
역주35 [譯註]凡得十八條 : 十八條는 ‘節孝徐公’條부터 그 아래 ‘元城劉氏’條, ‘上蔡謝氏曰’條, ‘明道先生曰’條, ‘藍田呂氏曰’條, ‘龜山楊氏曰’條, ‘程子曰’條, ‘又曰朱公掞’條, ‘朱子曰和靖尹公’條, ‘朱子曰陳才卿’條, ‘先生病中’條, ‘廖晉卿’條, ‘陳才卿’條, ‘葉賀孫’條, ‘有學者每相揖畢’條, ‘有侍坐而困睡者’條, ‘先生看糊窓云’條, ‘西山眞氏曰’條까지의 열 여덟 조목을 가리킨다.
역주36 [釋疑]曹操遺令事 : 溫公이 曹操가 죽을 때에 명령한 일을 읽고서 그 거짓을 간파하여 말하기를 “曹操는 生前에 나갈 때에는 경호하고 들어올 때에는 辟除(벽제)하여 天子의 禮를 행해서 漢나라를 찬탈한 지가 이미 오래이다. 다만 天命을 두려워하고 惡名을 받을까 싫어하였기 때문에 죽을 때에 이 말로써 하늘과 사람을 속인 것이니, 자신이 天子가 되었으면 宮女의 생활은 걱정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이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司馬溫公이 일찍이 曹操가 遺令한 일을 논하기를 “이는 曹操의 은미한(숨겨진) 뜻이다. 遺令은 세상의 이른바 遺囑이란 것이니, 遺囑하는 일은 반드시 긴요한 것을 가려서 말하고, 긴요하지 않은 하찮은 일에 있어서는 말할 겨를이 없다. 또 曹操가 죽은 뒤의 일은 皇帝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제 曹操가 여러 말을 간곡히 늘어놓아 아래로 香을 나누어 주고 신을 파는 일까지 언급하여 집안 식구들과 婢妾들을 모두 자세히 조처하였으면서도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한 것이 없었다. 그 의도는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은 내 일찍이 시킨 적이 없음’을 보인 것이니, 이는 실제로는 자손에게 天下를 물려주면서 자신은 漢나라의 신하라는 명분을 누린 것이다.” 하였다. ○ 또 살펴보건대 이는 바로 朱子의 이른바 ‘귀를 막고 鍾을 훔친다’는 것이어서 그 죄가 더욱 큰데, 司馬溫公은 마침내 은미한 뜻이라고 하였으니, 지나치게 용서함에 잘못되었다고 이를 만하다. [刊補] 《考誤》에 “元城劉氏(劉安世)가 말하기를 ‘司馬溫公이 하루는 나에게 말씀하기를 「曹操가 遺令(遺命)한 일이 어떠한가?」 하기에 나는 대답하기를 「曹公의 평생의 간사함이 이에 이르러 다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임하여 간곡히 이러한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하였더니, 溫公은 말씀하기를 「그렇지 않다. 이것은 바로 曹操의 숨겨진 뜻이다. 遺令이란 세상의 이른바 遺囑이란 것으로, 반드시 긴요한 말을 가려서 자손들에게 부탁하는 것인 바, 曹操가 죽은 뒤의 일 중에 禪代(황제의 자리를 대신 차지함)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 지금 曹操는 遺令을 함에 여러 말을 간곡히 늘어놓았다. 아래로는 향을 나누어 주고 신발을 파는 일에 이르기까지 집안 식구들과 婢妾을 모두 자세히 조처하였는데, 禪代하는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한 것이 없으니, 그의 뜻은 대체로 禪代는 자연 子孫들이 할 일이니, 내가 일찍이 가르칠 것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는 실제로는 天下를 子孫에게 물려주면서 자신은 漢나라 臣下라는 이름을 누리려고 한 것이니, 이것이 遺令의 本意이다. 千百年이 지나도록 누구도 그의 숨은 뜻을 간파하지 못하였는데, 어제 저녁에 내가 우연히 간파하였다.」고 하였다. 이렇게 말씀한 溫公은 기뻐하는 기색이 있는 듯하였으며, 또 나에게 경계하기를 「識見이 높은 선비가 아니면 이것을 말할 수 없다. …… 」 했다.” 하였다. [補註] 향을 나누어 주고 신을 파는 일이란 조조가 죽을 때에 자신이 보관해 두었던 좋은 향을 여러 첩과 계집종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또 그들에게 당부하기를 “내가 죽거든 너희들은 부지런히 여자의 일을 배워서 비단신 등을 만들어 팔아먹고 생활하라.”고 하였는 바, 이는 마치 자신이 죽고 나면 비첩들이 살아갈 방도가 없음을 염려하여 말한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 자식이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 아비의 비첩들을 굶주리게 할 리가 있겠는가. 이 역시 조조가 교묘하게 자신이 漢나라의 신하라는 것을 나타내어 말한 것일 뿐이다.
역주37 [釋疑]虛蕩 : 蕩은 一本에는 僞字로 되어 있다.
역주38 [譯註]解散 : 확연히 알아서 숨김이 없음을 이른다.
역주39 [刊補]泥塑 : 《韻會》에 “흙으로 빚은 인형이다.” 하였다.
역주40 [釋疑]一團 : 一段이라는 말과 같다.
역주41 [釋疑]所謂望之儼然 卽之也溫 : 《近思錄》을 근거해 보면 이 10字는 葉氏의 註釋 내용인데, 여기에 연결하여 썼으니,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 [補註]葉氏는 葉采이며 ‘望之儼然 卽之也溫’은 《論語》 〈子張〉에 보이는 子夏의 말이다. 謝良佐의 말은 ‘一團和氣’에서 끝났으며 ‘所謂’ 이하는 葉采가 《近思錄》을 주석하면서 자신의 말로 《論語》의 내용을 인용한 것인데, 지금 篁墩이 이를 구분하여 밝히지 않고 《近思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여 마치 謝良佐의 말이 끝까지 이어진 것처럼 하였음을 지적한 것이다.
역주42 [刊補]煞用 : 煞는 殺(쇄)와 같으니, ‘가장’ ‘특히’라는 뜻이다.
역주43 [刊補]明道先生曰 某書字甚敬 : 退溪가 金惇敍에게 답하기를 “明道先生은 진실로 글자를 아름답게 쓰려고 하신 것도 아니요, 또한 글자를 아름답지 않게 쓰려고 하신 것도 아니며, 단지 글씨를 씀에 공경히 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반드시 養氣에 종사하되 미리 효과를 기대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고 助長하지도 말라’는 것이 일에 나타난 것이니, 글씨 쓰는 것만 이러할 뿐이 아니다. 보내 온 편지에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굳이 書藝에 힘쓰지 않게 하고자 한다’ 하였는데, 이는 程子의 본뜻이 아니며, 또 ‘일부러 아름답지 않게 쓴다’ 하였는데, 이것은 程子의 뜻과 더욱 거리가 멀다.” 하였다.
역주44 [釋疑]藍田呂氏 : 바로 呂與叔이다.
역주45 : 지
역주46 [釋疑]龜山楊氏曰 : ‘楊氏曰’ 세 자는 ‘語錄’ 두 자로 고쳐야 마땅할 듯하다.
역주47 [釋疑]翟霖 : 나오는 곳이 없다.
역주48 [釋疑]西遷 : 涪州로 유배갈 때를 이른다.
역주49 : 소
역주50 [釋疑]豈以 : 豈는 豈不이다.
역주51 [釋疑]因賞此語曰 : 이는 楊龜山이 伊川의 말씀에 감탄한 것이다. [刊補]賞은 玩味하여 嘉尙하게 여김을 이른다. 이는 龜山이 伊川의 말씀에 歎賞한 것이다. 혹자는 “伊川이 孔子의 말씀에 歎賞한 것이다.”라고 하기도 하고 “翟霖이 伊川의 말씀에 歎賞한 것이다.”라고 하기도 하는데, 앞의 말이 옳다.
역주52 [譯註]孔子云 …… 爲其象人而用之也 : 이 내용은 《孟子》 〈梁惠王 上〉에 보이는 바, ‘始作俑者 其無後乎’ 까지만 孔子의 말씀이고 그 아래는 孟子가 孔子의 뜻을 부연 설명한 것이다. 俑은 나무를 깎아 만든 장승 따위이다. 옛날 장례할 때에 풀단을 묶어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장례에 사용하였는데, 중간에 俑으로 바꾸니, 俑은 얼굴과 눈이 있고 몸을 움직일 수가 있어 인형과 매우 유사하였다. 그러다가 후세에는 직접 산 사람을 殉葬하였다. 이 때문에 孔子는 처음 俑을 만든 자는 큰 罪惡을 저질러 後孫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생전에 죄악을 저지르면 그 殃禍가 子孫에게 미쳐 후손이 끊어진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말씀한 것이다.
역주53 [釋疑]緱氏 : 산 이름이니, 洛陽에 있다.
역주54 : 嘗
역주55 [釋疑]拘迫則難久也 : 너무 구속하면 氣體가 피로하고 상하여 싫어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이 생기며, 너무 박절하면 心神이 번거로워 편안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오래하기 어려운 것이다.
역주56 [釋疑]他本自 : 他는 마음을 가리키니, 아래도 이와 같다.
역주57 [釋疑]朱公掞(주공염) : 이름은 光庭이니, 程子의 門人이다.
역주58 [譯註]畏天命 …… 畏聖人之言 : 《論語》 〈堯曰〉에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이라고 보인다.
역주59 [釋疑]陳才卿 : 이름은 文蔚(문울)이다.
역주60 : 惶
역주61 [釋疑]發憤 : 憤은 忿字와 뜻이 똑같지 않으니, 性이 발한 것이다. [刊補]憤은 忿字와는 조금 다르다.(性의 發임) 《論語》 〈述而〉의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는다.[不憤不啓]’의 註에 ‘憤은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하나 되지 않아 애태우는 뜻이다’ 하였는데, 마땅히 이러한 憤字로 보아야 한다. [補註]憤은 善한 일을 하려고 분발하는 것이므로 性의 發이라 하였으며, 忿은 분노로 감정에서 나온 것이어서 心의 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性發‧理發은 退溪의 理氣一原論的 입장에서 말하는 것일 뿐, 栗谷은 性發‧理發이 모두 性理가 직접 發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원리상으로 말한 것일 뿐임을 강조하였다.
역주62 [釋疑]請少節之 : 應接을 줄이는 것이다.
역주63 [釋疑]廖晉卿 : 이름은 자세하지 않다.
역주64 [刊補]九容 : “발 모양을 무겁게 하고, 손 모양을 공손히 하고, 눈 모양을 단정히 하고, 입 모양을 그치고, 소리 모양을 조용히 하고, 머리 모양을 곧게 하고, 숨쉬는 모양을 엄숙하게 하고, 서 있는 모양을 덕스럽게 하고, 얼굴 모양을 장엄하게 한다.[足容重 手容恭 目容端 口容止 聲容靜 頭容直 氣容肅 立容德 色容莊]”는 것을 말한다.
역주65 [釋疑]辨姦論 : 老泉 蘇洵이 지은 것으로 姦人을 알아낸다는 뜻인데, 姦人은 王介甫(王安石)를 가리킨다.
역주66 [釋疑]陸子壽 : 이름은 九齡이니, 학문이 陸象山(陸九淵)과 다름이 없었다.
역주67 [釋疑]劉淳叟獨去後面角頭 : 劉淳叟는 이름은 堯夫이니, 오랫동안 朱子의 門下에 있었으나 후일에 지극히 낭패하였다. 後面角頭는 앉은 자리의 뒷모퉁이를 이른다.
역주68 [釋疑]學道家打坐 : 打는 거듭 포개는 것이다. 道家에 跏趺坐(가부좌)가 있으니, 바로 打坐이다.
역주69 [刊補]某與陸丈 …… 何故恁地作怪 : “나와 陸丈(陸九淵)의 말은 들을 것이 못되지만 나이로 보면 너보다 몇 살이 많은데, 무슨 까닭으로 방자히 괴이한 짓을 하는가.”라는 말씀이다.
역주70 [釋疑]節飮食 : 《周易》 〈頤卦〉의 내용이다. 朱子는 말씀하기를 “음식을 절제함은 몸을 기르는 간절한 일이다.” 하였다. [補註] 《周易》 〈頤卦 象傳〉에 “山 아래에 우레가 있는 것이 頤이니, 君子가 보고서 言語를 삼가며 飮食을 절제한다.[山下有雷頤 君子以 愼言語 節飮食]” 라고 보인다.
역주71 [釋疑]葉賀孫 : 字는 味道이다.
역주72 [釋疑]仙鄕 : 貴鄕이란 말과 같으니, 당시의 俗語이다. [補註]貴鄕은 상대방이 사는 고장을 높여 칭한 것이다.
역주73 [譯註]聽其言也厲 : 厲는 분명한 것으로 《論語》 〈子張〉에 “君子有三變 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厲” 라고 보인다.
역주74 [釋疑]含含胡胡 : 매우 분명치 않음을 이른다. [補註]含胡를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중복하여 쓴 것으로 胡는 糊로도 쓴다.
역주75 胡胡 : 糊糊
역주76 [刊補]擧止模樣 : ‘행동거지의 儀則’이란 말과 같다.
역주77 [釋疑]沈敬子 : 자세하지 않다.
역주78 [釋疑]嗒然 : 《韻會》에 “嗒然(탑연)은 解體하는 것이다.” 하였다. 《莊子》에 “嗒然하여 그 짝을 잃은 듯하다.” 하였는데, 註에 “탑연은 無心한 모양이다.” 하였다.
역주79 [釋疑]朱季繹 : 자세하지 않다.
역주80 [釋疑]要好看 …… 此自欺之端也 : 朱季繹의 뜻은 밖에서 풀을 발라 사람들로 하여금 정돈되지 않은 모양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으니, 이는 허물을 은폐하고 잘못을 숨기는 일이므로 自欺의 단서라고 한 것이다.
역주81 [釋疑]先正 : 先賢이란 말과 같다.
역주82 [釋疑]無方 : 方體(방소와 형체)가 없는 것이다. [刊補]方所가 없다는 뜻이다.
역주83 : 탁
역주84 [釋疑]天雖何言 : 《論語》 〈陽貨〉에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겠는가.”라고 하였는데, 眞氏가 이에 근본하여 말한 것이다.
역주85 [譯註]孟子所謂善信美大也 …… 則大而化之矣 : 《孟子》 〈盡心 下〉에 “可欲스러움을 善人이라 이르고, 善을 자기 몸에 소유함을 信人이라 이르고, 充實함을 美人이라 이르고, 充實하여 光輝가 있음을 大人이라 이르고, 大人이면서 저절로 化함을 聖人이라 이르고, 聖스러워 알 수 없는 것을 神人이라 이른다.[可欲之謂善 有諸己之謂信 充實之謂美 充實而有光輝之謂大 大而化之之謂聖 聖而不可知之之謂神]” 라고 보인다.
역주86 [刊補]度數 : 度는 制度이고 數는 品數이다.
역주87 [譯註]聖門之敎 立之以禮而成則以樂 : 聖門은 孔子의 門下를 가리키는 바, 《論語》 〈泰伯〉에 “詩에서 興起하며 禮에 서며 樂에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하였으므로 이것을 들어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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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부주 책은 2019.05.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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