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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附註

심경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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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反情以和其志하고 比類以成其行하야 姦聲亂色 不留聰明하며 淫樂慝禮 不接心術하며 惰慢邪僻之氣 不設於身體하야 使耳目鼻口心知 皆由順正하야 以行其義니라
原注
[原註]
反情 反去情欲也 比類 比擬善類也
原注
[附註]
○ 張子曰
戲言 出於思也 戲動 作於謀也
發於聲하고 見乎四支어늘 謂非己心이면 不明也 欲人無己疑 不能也니라
過言 非心也 過動 非誠也
失於聲하고 繆迷其四體어늘 謂己當然이면 自誣也 欲他人己從이면 誣人也니라
孰甚焉이리오
原注
朱子曰
橫渠學力絶人하야 尤勇於改過하시되 獨以戲爲無傷이러시니
一日 忽曰 凡人之過 猶有出於不知而爲之者어니와 至戲則皆有心爲之也 其爲害尤甚이라하시고 遂作하시니라
○ [按] 戲言戲動 雖與姦聲亂色으로 有間이나 然一向流蕩而不知檢이면 則求其能反情和志하야于順正之域이나 不可得矣
此張子所以痛絶之 而學者尤不可不自警也니라
原注
○ 又曰
戲謔 不惟害事 志亦爲氣所流하나니 不戲謔 亦是之一端이니라
原注
西山眞氏曰
云 昔者 하시고 詩曰 善戲謔兮
라하고 라하니 害其爲道哉리오마는
而張子乃云爾 何邪
蓋牛刀之言 夫子特以發子游而非正言이라 故曰戲爾라하시고
之戲 曰善, 曰不爲虐이라하니 則和而有節 可知
蓋是日也 恣民之燕樂하야 以休其勞 非文武自爲戲也
若張子則持志養氣之功하야 惟恐戲言戲動以害之
故旣爲東銘하시고 又發此語하시니 學者誠以身體之하야 能不爲氣所流否然後 知張子眞藥石之言이니 未可以夫子武公自諉也니라
原注
○ 上蔡謝氏曰
知之亦難이라
情欲信, 辭欲巧라하고 詩稱仲山甫之德曰 令儀令色이라하니 然禮所謂辭欲巧 亦鮮仁乎
仲山甫之德 亦鮮仁乎
至於以出之하야는 辭亦巧矣 逞顔色하야 怡怡如也 色亦令矣 豈以好其言語, 善其顔色으로 直以爲鮮仁也哉
至於小人하야는 蓋嘗 言何嘗巧하니 色何嘗令이리오
然則何者爲巧言이며 何者爲令色
若能知出辭氣可遠 則知之矣 此宜學者深思力索이요 不可以言語道也니라
原注
朱子曰
容貌辭氣之間 正學者持養用力之地 然有意於巧令하야 以悅人之觀聽이면 則心馳於外而鮮仁矣
若是就此持養하야 發禁躁妄하고 動必溫恭하야 只要自家直內方外之實事라야 乃是爲己之功이요 求仁之要 復何病乎리오
故夫子告顔淵以克己復禮之目 不過視聽言動之間이요
夫子所謂孫以出之, 辭欲巧者 亦其一事也
仲山甫之德 , 令儀令色 則大賢成德之行而 夫子之逞顔色, 怡怡如也 乃聖人動容周旋中禮之事 又非仲山甫之所及矣
至於小人訐以爲直, 色厲而內荏하야는 則雖與巧言令色者 不同이나 然考其矯情飾僞之心이면 則實巧言令色之尤者
聖人惡之하시니라
上蔡於此 不肯明言其所以然者 將使學者 深求而得之也
然今學者 反求之於冥漠不可知之中하야 失之愈深이라
故詳論之하야 使學者無力索之苦而有以審夫用力之幾焉이로라
○ [按] 聖賢所論巧言令色與姦聲亂色處 宜參觀이니라
原注
○ 朱子曰
非禮勿視勿聽 卽所謂姦聲亂色不留聰明이요 淫樂慝禮不接心術이니 非是耳無所聞, 目無所視니라
原注
○ 南軒張氏曰
古人衣冠容止之間 不是要作意矜持 只是循他天則合如是
爲尋常因循怠弛 故須著勉强自持 外之不肅而謂能敬於內 可乎
原注
詳考從古聖賢論下學處하면 莫不以正衣冠, 肅容貌爲先하니 蓋必如此然後 而不流於邪僻이니
原注
○ 西山眞氏曰
君子之所以自養者 無他
內外交致其功而已
故姦聲亂色 不留聰明者 所以養其外也 淫樂慝禮 不接心術者 所以養其內也 外無聲色之誘 則內亦正矣 內無淫慝之惑이면 則外亦正矣
惰嫚之氣 自內出者也 邪僻之氣 自外入者也 二者不得設於身體
如是 則外而耳目鼻口四肢百體 內而心知 皆由順正하야 以行其義 自養之功 畢矣니라
原注
反情 復其情性之正也 情不失其正이면 則志無不和 比類 分次善惡之類也 不入於惡類 則行無不成이니라
曰不留, 不接, 不設 如論語四勿之謂 皆反情比類之事
如此 則百體從令而리니 此一節 乃學者修身之要法이니라


17. 군자반정화지장君子反情和志章
군자君子성정性情의 바름을 회복하여 뜻을 하게 하고 를 나란히 비교하여 행실을 이루어서, 간사한 소리와 어지러운 색을 총명聰明(耳目)에 머물러 두지 않으며, 음탕한 음악과 간사한 를 마음속에 접하지 않으며, 태만하고 사벽邪辟(간사)한 기운을 신체에 베풀지 아니하여, 이목구비耳目口鼻와 마음의 지각知覺과 온몸으로 하여금 모두 순하고 바름을 따르게 하여 를 행한다.
原注
[原註]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반정反情정욕情慾을 돌이켜 제거하는 것이요 비류比類에 견주는 것이다.”
原注
[附註]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희롱하는 말은 생각에서 나오고 희롱하는 행동은 계획에서 나온다.
소리에 나타나고 사지四肢에 나타나는데, 자기의 마음(진심)이 아니라고 하면 지혜가 밝지 못한 것이고 사람들이 자기를 의심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될 수 없는 것이다.
잘못된 말은 진심眞心이 아니고 잘못된 행동은 성심誠心(眞心)이 아니다.
소리에 실수하고 사체四體(四肢)를 잘못하였는데, 자기의 잘못이 당연하다고 한다면 자기를 속이는 것이고 타인이 자기를 따르기를 바란다면 남을 속이는 것이다.
혹자는 마음에서 나온 것을 허물을 돌려 자기의 희롱이라 하고, 생각에서 잘못된 것을 스스로 속여 자기의 성심誠心이라고 하여, 너(자기)에게서 나온 것을 경계하고 너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에 허물을 돌릴 줄을 알지 못하니, 오만함을 자라게 하고 또 비행非行을 이룬다.
지혜롭지 못함이 무엇이 이보다 심하겠는가.”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횡거橫渠는 학문한 공력이 일반인들보다 뛰어나서 허물을 고치는 데에 더욱 용감하였으나 오직 희롱하는 것만은 해로울 것이 없다고 여겼는데,
하루는 갑자기 말씀하기를 ‘무릇 사람의 허물은 오히려 부지不知에서 나와 〈무심無心히〉 하는 것이지만 희롱에 이르러서는 모두 마음을 두어 하는 것이니, 그 폐해가 더욱 심하다’ 하고는 마침내 〈동명東銘〉을 지으셨다.”
○ [按] 희롱하는 말과 희롱하는 행동은 비록 간사한 소리와 어지러운 색과는 간격(차이)이 있으나 한결같이 흘러가서 검속檢束할 줄을 모르면 성정性情의 바름을 돌이켜 뜻을 화하게 해서 순하고 바른 경지에 이르기를 구하나 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장자張子가 통렬히 끊으신 것이니, 배우는 자는 더욱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原注
또 말씀하였다.
희학戱謔은 비단 일을 해칠 뿐만 아니라 심지心志 또한 기운에 흘러가게 되니, 희학하지 않는 것도 기운(뜻)을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이다.”
原注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한자韓子(韓愈)가 장적張籍에게 준 편지에 ‘옛날에 부자夫子도 오히려 희롱한 바가 있었고 《시경詩經》에 「희학을 잘함이여!
지나침이 되지 않는다」 하였고, 《예기禮記》에 「조이기만 하고 풀어놓지 않으면 문왕文王무왕武王도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하였으니, 〈희롱하는 것이〉 어찌 를 행함에 해롭겠는가’ 하였다.
그런데도 장자張子가 이처럼 말씀한 것은 어째서인가?
소 잡는 칼을 말씀한 것은 부자夫子가 다만 자유子游에게 말씀하신 것이요 바르게 말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희롱이라고 하신 것이며,
무공武公의 희롱은 ‘잘한다’ 하고 ‘지나침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하면서 절도가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백일百日납향臘享제사와 하루의 은택은 이 날에 백성들이 마음껏 잔치하고 즐기도록 내버려두어서 수고로움을 쉬게 한 것이니, 문왕文王무왕武王이 스스로 희롱한 것이 아니다.
장자張子로 말하면 뜻을 지키고 기운을 기르는 공부가 엄격하여 행여 희롱하는 말과 희롱하는 행동으로 해칠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동명東銘〉을 지으시고 또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니, 배우는 자가 진실로 몸으로 체행하여 희학戱謔할 때에 심지心志가 기운에 흘러가는 바가 되지 않는가를 살핀 뒤에야 장자張子의 말씀이 참으로 약석藥石임을 알 것이니, 부자夫子무공武公의 말씀을 가지고 스스로 핑계대어서는 안 된다.”
原注
상채사씨上蔡謝氏(謝良佐)가 말하였다.
교언영색巧言令色(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함)을 알기가 또한 어렵다.
예기禮記》 〈표기表記〉에 ‘신실信實하고자 하고 말은 잘하고자 한다’ 하였고, 《시경詩經대아大雅증민蒸民〉에 중산보仲山甫을 칭찬하기를 ‘위의威儀를 좋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한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예기禮記》의 ‘말은 잘하고자 한다’는 것도 한 자가 적은 것인가?
중산보仲山甫한 자가 적은 것인가?
성인聖人의 이른바 ‘공손히 하여 낸다’는 것도 말을 또한 잘하는 것이요, ‘얼굴빛을 펴서 화하게 한다’는 것도 얼굴빛을 좋게 하는 것이니, 어찌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는 것을 곧바로 한 자가 적다고 말하겠는가.
소인小人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고자질하는 것을 곧다고 여기니 어찌 일찍이 말을 잘하겠으며, 비록 안은 나약하나 얼굴빛이 엄숙하니 어찌 일찍이 얼굴빛을 좋게 하겠는가.
그렇다면 어떤 것이 교언巧言이 되며 어떤 것이 영색令色이 되는가?
만약 사기辭氣를 낼 때에 비루함과 도리에 위배되는 것을 멀리 할 줄 안다면 이것을 알 것이니, 이는 마땅히 배우는 자가 깊이 생각하고 힘써 찾아야 할 것이요, 언어言語로써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용모容貌사기辭氣의 사이는 바로 배우는 자가 지양持養(잡아 기름)하여 힘쓰는 곳이나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뜻을 두어서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기쁘게 하려 한다면 마음이 밖으로 달려서 한 자가 적게 된다.
만일 여기에 나아가 지양持養하여, 발설發說함에 조급함과 경망함을 금하고 함에 반드시 온순하고 공손하여 다만 자신의 경이직내敬以直內의이방외義以方外하는 실제 일을 체당體當(체득)하여야 바로 자신을 위한 공부이고 을 찾는 요점이니, 다시 무슨 병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자夫子안연顔淵에게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을 말씀해 준 것이 의 사이에 지나지 않았고,
증자曾子가 장차 임종할 적에 하신 선언善言용모容貌안색顔色사기辭氣의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부자夫子의 이른바 ‘공손히 내고 말을 잘하고자 한다’는 것도 이 한 가지 일이다.
중산보仲山甫이 유순하고 아름다워 법이 될 만하며 위의威儀를 잘하고 얼굴빛을 잘한 것은 대현大賢성덕成德한 행실로 이보다 더 나아간(진보한) 자이고, 부자夫子의 얼굴빛을 펴서 화하게 한 것은 바로 성인聖人동용주선動容周旋에 맞은 일이니, 또 중산보仲山甫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소인小人들이 고자질하는 것을 정직하다고 여기며 얼굴빛은 엄숙하나 속마음이 나약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와는 똑같지 않으나 실정을 속여서 거짓을 꾸미는 마음을 상고해 보면 실로 교언영색巧言令色함이 심한 자이다.
이 때문에 성인聖人이 이것을 미워하신 것이다.
사상채謝上蔡가 이에 대하여 그 소이연所以然을 분명히 말씀하지 않은 것은 장차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깊이 찾아서 스스로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배우는 자들이 아득하여 알 수 없는 가운데에 돌이켜 찾아서 잃음이 더욱 심하다.
그러므로 이것을 자세히 논하여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생각하고 힘써 찾는 수고로움이 없이 힘쓰는 기미를 살필 수 있게 한 것이다.”
○ [按]성현聖賢교언영색巧言令色간성난색姦聲亂色을 논한 부분을 참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原注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마는 것은 곧 이른바 간사한 소리와 어지러운 색을 총명聰明에 머물러 두지 않는다는 것이요 음탕한 음악과 간사한 심술心術에 접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는 귀로 듣는 바가 없고 눈으로 보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니다.”
原注
남헌장씨南軒張氏가 말하였다.
“옛사람들이 의관衣冠용지容止의 사이에 뜻을 두어 긍지矜持하려고 한 것이 아니요, 다만 저 하늘의 법칙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함을 따른 것이다.
평소 인순因循하고 태이怠弛하기 때문에 모름지기 면강勉强하여 스스로 잡아 지키는 것이니, 외모가 엄숙하지 못하면서 속마음에 공경한다고 이르는 것이 될 수 있겠는가.”
原注
또 말씀하였다.
“예로부터 성현聖賢들이 하학下學을 논한 곳을 자세히 상고해 보면 의관을 바루고 용모를 엄숙히 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반드시 이와 같이 한 뒤에야 〈마음이〉 보존하는 바를 얻어서 사벽邪辟함에 흐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주역周易》의 이른바 ‘를 막아 을 보존한다’는 것과 정씨程氏(伊川)의 이른바 ‘밖을 제재하여 마음을 기른다’는 것이 이것이다.”
原注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스스로 기르는 바는 딴 것이 없다.
안과 밖이 서로 그 공부를 지극히 할 뿐이다.
그러므로 간사한 소리와 어지러운 색을 이목耳目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은 밖을 기르는 것이요, 음탕한 음악과 간사한 심술心術에 접하지 않는 것은 안을 기르는 것이니, 밖에 소리와 색의 유혹이 없으면 안이 또한 바르게 되고, 안에 음탕하고 간사한 유혹이 없으면 밖이 또한 바르게 될 것이다.
태만한 기운은 안에서 나오고 사벽한 기운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니, 이 두 가지를 신체에 베풀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밖으로 이목구비耳目口鼻사지四肢백체百體와 안으로 마음의 지각知覺이 모두 순하고 바름을 따라서 그 를 행할 것이니, 스스로 기르는 공부가 다하게 된다.”
原注
동회택東匯澤 진씨陳氏(陳澔)가 말하였다.
반정反情성정性情의 바름을 회복하는 것이니 이 그 바름을 잃지 않으면 뜻이 화하지 않음이 없고, 비류比類선악善惡를 나누어 차등하는 것이니 에 들어가지 않으면 행실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머물러 두지 말라 하고 접하지 말라 하고 베풀지 말라 한 것은 《논어論語》의 사물四勿이란 말과 같으니, 모두 성정性情의 바름을 회복하고 를 나누어 차등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하면 백체百體가 명령을 따라서 를 따르게 될 것이니, 이 한 은 바로 배우는 자가 몸을 닦는 중요한 법이다.”


역주
역주1 君子反情和志章 : 《禮記》 〈樂記〉에 보인다.
역주2 [釋疑]百體 : 온몸을 다 들어 말한 것이다.
역주3 [釋疑]孔氏曰條 : 이 註는 東匯(陳澔)의 《集說》만큼 정밀하고 간절하지 못하다.
역주4 [釋疑]或者謂出於心者 …… 自誣爲己誠 : ‘허물을 돌려 자기의 희롱이라 함[歸咎爲己戱]’은 바로 윗글에 자기의 마음이 아니라고 함을 이르고, ‘스스로 속여 자기의 진실이라고 함[自誣爲己誠]’은 바로 윗글에 자기의 잘못이 당연하다고 함을 이른다. 그러나 윗글은 그 이치를 평범하게 말하였고, 이것은 사람 중에 혹 이와 같은 자가 있음을 말하여 반복해서 미루어 밝힌 것이다.
역주5 [釋疑]出汝者 : 희롱하는 말과 희롱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역주6 [釋疑]歸咎其不出汝者 : 不出汝者는 잘못된 말과 잘못된 행동을 가리킨다. ○ 윗글에 不知의 뜻이 여기에서 끝난다. [補註]反歸咎其不出汝者로 표기하여 反字가 더 있는 本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역주7 [釋疑]長敖 : 허물을 돌려 자기의 희롱이라고 함을 이른다.
역주8 [釋疑]遂非 : 스스로 속여 자기의 진실이라고 함을 이른다.
역주9 : 智
역주10 [釋疑]東銘 : 처음에는 砭愚라고 이름하였으니, 침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을 砭이라고 이르는 바, 이 銘으로 어리석은 병통을 치료하기 때문에 砭愚라고 이름한 것이다. 또 〈西銘〉을 〈訂頑(證頑)〉이라 하였으니, 완악함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리하여 〈訂頑〉은 仁의 體를 밝히고, 砭愚는 智의 術(방법)을 밝혔다. 그런데 伊川은 이러한 명칭을 보고 “이는 논쟁의 단서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자, 橫渠는 마침내 〈西銘〉과 〈東銘〉으로 이름을 고쳤으니, 이 銘文을 동쪽과 서쪽 벽에 걸어 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명칭한 듯하다. [補註] 위에 소개한 글이 바로 〈東銘〉이다.
역주11 : 지
역주12 [釋疑]持氣 : 氣字는 의심컨대 志字의 잘못인 듯하다.
역주13 [譯註]韓子與張籍書 : 韓子는 唐나라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韓愈를 가리키며, 張籍은 그의 門人이다. 張籍이 쓸데없이 잡박한 말씀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자, 이를 해명하여 쓴 편지로 ‘重答張籍書’에 보인다.
역주14 [譯註]夫子猶有所戲 : 夫子는 孔子를 가리킨다. 孔子의 제자인 子游가 武城의 邑宰가 되어 백성들에게 禮樂을 가르쳤다. 孔子는 武城에 갔다가 백성들이 樂器를 연주하여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는 내심으로 기뻐하며 농담으로 子游에게 “닭을 잡는데 어이하여 소 잡는 칼을 사용하는가?” 하고 반문하였다. 즉 禮樂은 나라를 다스리는 도구이므로 소를 잡는 큰 칼에 비유하여, 이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데 禮樂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子游는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가 예전에 선생님에게 듣자오니, ‘윗사람이 道를 배우면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들이 道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에 孔子는 제자들을 불러 “제자들아! 子游의 말이 옳으니, 내가 방금 전에 한 말은 희롱하여 한 말이다.” 하였는 바, 이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15 [譯註]詩曰 …… 不爲虐兮 : 《詩經》 〈衛風 淇奧(기욱)〉에 보인다.
역주16 [釋疑]記曰 …… 文武不能也 : 子貢이 臘享(납향)제사를 구경할 적에 孔子가 말씀하기를 “賜야! 즐거우냐?” 하니, 대답하기를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미친 듯이 열광하니, 저는 즐거운 줄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孔子가 말씀하기를 “百日의 납향제사에 하루의 은택을 받은 것이니, 네가 알 바가 아니다. 활줄을 당기기만 하고 풀어놓지 않으면[張而不弛]文王과 武王도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납향제사를 지낼 적에 들쥐를 잡아 먹게 하기 위하여 고양이를 맞이해서 제사하고, 멧돼지를 잡아먹게 하기 위하여 범을 맞이해서 제사하는 바, 蘇氏는 “고양이를 맞이할 때에는 고양이의 尸(神主)를 만들고 범을 맞이할 때에는 범의 尸를 만들어서 광대들의 놀이에 가깝다. 이 때문에 子貢이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미친 듯이 열광한다고 말한 것이다.” 하였다.
역주17 : 오
역주18 [釋疑]武公 : 衛나라 武公이다. [刊補]武公은 곧 衛나라 武公이니, 《詩經》 〈國風 衛風〉에 나온다.
역주19 [釋疑]百日之蜡 一日之澤 : 百日은 耕作하는 때(기간)이니, 봄부터 여름까지 백일이 넘는데 백일이라고 말한 것은 큰 수만을 든 것이다. 군주는 납향제사하는 날에 백성들로 하여금 하루 동안 즐겁게 놀게 하니, 이것이 바로 은택이다. 蜡(사)는 《禮記》 〈郊特牲〉에 “蜡란 찾음이니, 12월에 萬物의 神을 찾아서 합하여 祭享하는 것이다.” 하였다. [刊補] 《禮記》 〈雜記〉에 보이는 내용으로, 孔子가 子貢(段木賜)과 함께 蜡祭(臘享祭祀)를 구경하다가 말씀하기를 “賜야! 즐거우냐?” 하니, 대답하기를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미친 듯이 열광하니, 그 즐거움을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공자가 말씀하기를 “百日의 臘享제사와 하루의 우리 임금의 恩澤은 네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활줄을 당기기만 하고 풀어놓지 않으면 文王‧武王도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풀어놓기만 하고 당기지 않는 것은 文王‧武王은 하지 않으며, 한 번 당기고 한 번 풀어놓는 것이 文王‧武王의 道이다.” 하였다. ○ 옛날에는 새해가 오기 전에 미리 날짜를 잡아서 마을에 있는 社 및 國都의 社稷에 蜡祭를 지냈는데,(蜡는 만물의 神이다.) 이 날은 백성들에게 마음놓고 즐기도록 허락하였다. ○ 先王은 백성들이 일년 내내 고생하는 것을 민망히 여겨 이 날이 되면 마음놓고 마시고 즐기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므로 ‘百日의 臘享제사와 하루의 임금의 은택 …… ’ 이라고 한 것이다. 百日은 범연히 일년의 날짜 수가 많음을 말한 것이다. [補註] 활은 평소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줄을 풀어놓았다가 사용하게 되면 줄을 매어 팽팽히 당겨서 발사하는 바, 이로써 정치할 적에 때로는 백성들을 풀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법을 준엄하게 적용하기도 하여 기강을 세워야 함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20 [釋疑]當戲謔時 志 : 이 사이에 빠진 글이 있는 듯하다.
역주21 [刊補]巧言令色 : 《書經》 〈皐陶謨〉에 나온다. 《論語》 〈學而〉에도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는 사람 중에는 어진이가 드물다.[巧言令色鮮矣仁]” 하였다.
역주22 [刊補]禮曰 : 《禮記》 〈表記〉에 보이는 孔子의 말씀이다.
역주23 [刊補]聖人所謂孫(遜)以出之 …… 怡怡如也 : 모두 《論語》에 보이는데, 〈衛靈公〉에는 “君子는 義를 바탕으로 삼고, 禮로써 이것을 행하며 孫(恭遜)으로써 이것을 내며 信으로써 이것을 이루니, 이것이 君子이다.[君子 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하였고, 〈鄕黨〉에는 “孔子는 殿上에서 나와 한 계단을 내려서서는 얼굴빛을 펴서 화평하게 하셨다.[出降一等 逞顔色 怡怡如也]” 하였다.
역주24 : 遜
역주25 [刊補]訐以爲直矣 : 訐은 남의 비밀이나 약점을 들추어내는 것이다. [補註] 《論語》 〈陽貨〉에 “惡訐以爲直者” 라고 보인다.
역주26 [刊補]內荏而色厲 : 荏은 柔弱하다는 뜻이다. [補註]色厲는 얼굴빛만 엄숙한 것으로 《論語》 〈陽貨〉에 “얼굴빛은 위엄이 있으면서 마음이 유약한 것을 小人에게 비유하면 벽을 뚫고 담을 넘는 도적과 같을 것이다.[色厲而內荏 譬諸小人 其猶穿窬之盜也與]” 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바꾸어 쓴 것이다.
역주27 [刊補]鄙倍 : 鄙는 범범하고 비루하다는 뜻이고 倍는 背와 통하는 바, 이치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 살펴보건대 이 아래에 ‘正顔色’이란 한 구절이 있어야 할 듯하다. [補註] ‘正顔色’이란 한 구절은 “얼굴빛을 바룰 때에는 성실함에 가깝게 한다.[正顔色 斯近信]”는 내용을 가리킨다. 《論語》 〈泰伯〉에 “새가 장차 죽으려 할 때에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에는 그 말이 착한 법이다. 君子가 귀중히 여기는 道가 세 가지가 있으니, 용모를 동할 적에는 거칠고 태만함을 멀리 해야 하며, 얼굴빛을 바룰 적에는 성실함에 가깝게 해야 하며, 말소리를 낼 적에는 비루함과 도리에 위배되는 말을 멀리 해야 한다.[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라고 보이는 바, 이는 曾子가 병환이 위독할 때에 문병 온 孟敬子에게 告한 말씀이다.
역주28 : 背
역주29 [釋疑]體當 : 體得이란 말과 같다.
역주30 [譯註]曾子將死之善言 亦不外乎容貌顔色辭氣三者而已 : 《論語》 〈泰伯〉에 나오는 바, 앞의 註 262)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31 [刊補]柔嘉 : 嘉는 善하다는 뜻이다.
역주32 : 칙
역주33 [釋疑]進乎此 : 此는 上面에 이른바 ‘공손히 하여 낸다.[遜以出之]’는 것을 가리킨 것이니, 仲山甫의 德行은 이보다 더하다.
역주34 [刊補]淫思 : 淫은 지나치다는 뜻이다. [補註] 이 글은 《朱子大全》 〈巧言令色說〉에 보이는 바, 一本에는 ‘深思’로 되어 있으나 원본에 따라 ‘淫思’로 바로잡았다.
역주35 [刊補]又曰條 : 이는 朱子가 呂伯恭에게 답한 편지인데, 篁墩이 이를 잘못 張南軒의 말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36 [刊補]得所存 : 朱子書의 본문에는 得字 위에 心字가 있다.
역주37 [譯註]易所謂閑邪存其誠 程氏所謂制之於外以養其中者 : 程氏는 程伊川으로 위의 내용은 《周易》 〈乾卦 文言傳〉에 보이고, 아래의 내용은 程伊川의 〈四勿箴〉 序에 보인다.
역주38 [釋疑]東匯澤陳氏 : 이름은 澔이니, 《禮記》에 註(集說)를 내었다.
역주39 [釋疑]義之與比 : 比는 따름이다. [補註] 《論語》 〈里仁〉에 “君子는 天下의 일에 있어서 오로지 주장함도 없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없어서 義를 따를 뿐이다.[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라고 보인다.

심경부주 책은 2019.05.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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