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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附註

심경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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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附註 第3卷
심경부주心經附註 제3권
22.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
孟子曰
맹자孟子가 말씀하였다.
之木 嘗美矣러니 以其於大國也 斧斤 伐之어니 可以爲美乎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대국大國교외郊外이기 때문에 도끼와 자귀로 매일 나무를 베어 가니, 재목이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是其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이언마는 牛羊 又從而牧之 是以 若彼하나니라
일야日夜(밤낮)에 자라나는 바와 우로雨露가 적셔 주는 바에 싹이 나오는 것이 없지 않지마는 소와 양이 또 따라서 방목放牧되므로 이 때문에 저와 같이 헐벗게 되었다.
人見其濯濯也하고 以爲未嘗有材焉이라하나니 此豈山之性也哉리오
사람들은 그 헐벗은 것을 보고는 〈우산牛山에는〉 일찍이 훌륭한 재목이 있지 않았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찌 본성本性이겠는가.
雖存乎人者인들 豈無리오마는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어니 可以爲美乎
사람에게 보존된 것인들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는가마는 그 양심良心을 잃어버리는 것이 또한 도끼와 자귀가 나무에 있어서 아침마다 베어 가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하고서도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也者 幾希어늘 則其旦晝之所爲 有之矣나니 梏之反覆이면 則其이요 夜氣不足以存이면 則其違禽獸不遠矣리라
일야日夜에 자라나는 바와 평단平旦의 맑은 기운에 그 좋아하고 미워함이 사람들과 서로 가까운 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 낮에 하는 소행이 이것을 곡망梏亡(질곡하여 망하게 함)하니, 반복해서 곡망梏亡하면 야기夜氣가 보존될 수 없고, 야기夜氣가 보존될 수 없으면 금수禽獸와 거리가 멀지 않게 된다.
人見其禽獸也하고 而以爲未嘗有才焉者라하나니 리오
사람들은 그 금수禽獸와 같은 것을 보고는 일찍이 훌륭한 재질材質이 있지 않았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실정實情이겠는가.
故苟得其養이면 無物不長이요 苟失其養이면 無物不消니라
그러므로 만일 잘 기름을 얻으면 물건마다 자라지 않는 것이 없고, 만일 기름을 잃으면 물건마다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孔子曰 操則存하고 舍則亡하야 出入無時하야 莫知其 惟心之謂與인저하시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서 나가고 들어옴이 일정한 때가 없어서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말함일 것이다’ 하셨다.”
原注
[原註]
[原註]
○ 朱子曰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良心者 本然之善心이니 卽所謂仁義之心也
양심良心본연本然한 마음이니, 곧 이른바 인의지심仁義之心이란 것이다.
平旦之氣 謂未與物接之時 淸明之氣也
평단지기平旦之氣는 사물과 접하지 않았을 때의 청명淸明한 기운을 이른다.
好惡與人相近 言得
‘좋아하고 미워함이 사람들과 서로 가깝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똑같이 옳게 여기는 바를 얻음을 말한다.
幾希 不多也
기희幾希는 많지 않음이다.
械也
은 형틀이다.
反覆 展轉也
반복反覆전전展轉함이다.
言人之良心 雖已放失이나 然其日夜之間 亦必有所生長이라
사람의 양심良心이 비록 이미 방실放失되었으나 일야日夜의 사이에 또한 반드시 생장生長하는 것이 있다.
故平旦未與物接하야 其氣淸明之際 此心 必猶有發見者로되
그러므로 평단平旦에 사물과 접하지 않아서 그 기운이 청명淸明할 때에는 이 양심良心이 반드시 발현發見되는 것이 있다.
但其發見至微而旦晝所爲之不善者 又已隨而梏亡之하니 如山木旣伐이나 猶有萌蘖이로되 而牛羊又牧之也
다만 그 발현發見됨이 지극히 미미한데 낮에 하는 바의 불선不善이 또 이미 따라서 곡망梏亡하니, 이것은 마치 의 나무를 이미 베어가나 오히려 싹이 돋아나지만 소와 양이 또 따라서 방목放牧되는 것과 같다.
晝之所爲旣熾 則必有以害其夜之所息이요 夜之所息 旣薄이면 則愈不能勝其晝之所爲
낮에 하는 행위가 이미 치성熾盛하면 반드시 밤에 자라는 바를 해치고, 밤에 자라는 바가 이미 적어지면 또 낮에 하는 바의 나쁜 행위를 이기지 못한다.
是以 展轉相害하야 至於平旦之氣亦不能淸하야 而不足以存其仁義之良心也니라
이 때문에 전전展轉하여 서로 해쳐서 평단平旦의 기운도 청명淸明하지 못해서 인의仁義양심良心을 보존할 수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이다.”
原注
○ 又曰
또 말씀하였다.
孔子言心操之則在此하고 捨之則失去하야 其出入 無定時하고 亦無定處라하시니 孟子引之하야 以明心之시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기를 ‘마음은 잡으면 여기에 있고 놓으면 잃어버려서 그 출입出入이 일정한 때가 없고 또한 정처定處가 없다’고 하셨는데, 맹자孟子가 이것을 인용하여 마음이 신명神明하고 측량할 수 없어 위태롭게 동하여 편안하기 어려움이 이와 같으니, 잠시라도 그 기름을 잃어서는 안됨을 밝히신 것이다.”
原注
○ 程子曰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心豈有出入이리오
“마음이 어찌 출입出入이 있겠는가.
亦以操舍而言耳 操之之道 敬以直內而已니라
또한 잡고 놓음을 가지고 말씀하였을 뿐이니, 마음을 잡는 방법은 하여 마음을 곧게 하는 것일 뿐이다.”
原注
○ 愚聞之師하니
내가 스승에게 들으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此章之指 最爲要切하니 學者宜熟玩而深省之니라
“이 의 뜻이 가장 요긴하고 절실하니,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익숙하게 음미하고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原注
[附註]
[附註]
讀孟子操存章하고 曰 孟子不識心이로다
범순부范純夫의 딸이 《맹자孟子》의 〈조존장操存章〉을 읽고 말하기를 “맹자孟子는 마음을 모르셨다.
心豈有出入이리오한대 伊川先生 聞之하시고 曰 此女雖不識孟子 却能識心이라하시니라
마음이 어찌 출입出入이 있겠는가.” 하였는데, 이천선생伊川先生은 그 말을 듣고 말씀하기를 “이 여자가 비록 맹자孟子는 몰랐으나 도리어 마음은 알았다.” 하였다.
原注
或問 伊川言純夫女 却能識心一段한대 朱子曰
혹자가 이천伊川이 ‘범순부范純夫의 딸이 도리어 마음은 알았다’고 말씀한 한 단락을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心却易識이니 只是不識孟子之意
“마음은 알기가 쉬우니, 다만 맹자孟子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
不是死物이니 須把做活看이니
마음은 죽은 물건이 아니니, 모름지기 잡아 활간活看하여야 한다.
不爾 則是釋氏入定坐禪樣이니라
그렇지 않으면 이는 불가佛家에서 입정入定하고 좌선坐禪하는 모양이다.
存者 只是於應事接物之時 事事中理 便是存이니 若只是兀然守在這裏 忽有事至吾前 操底便散了리니 却是舍則亡也니라
이란 다만 사물을 응접할 때에 일마다 도리道理에 맞게 하는 것이 곧 이니, 만약 다만 오똑히 지켜서 이 속에 있게 하기만 한다면 갑자기 어떠한 일이 자신의 앞에 닥쳤을 때에 잡은 것이 곧 흩어질 것이니, 이것은 도리어 ‘놓으면 잃는 것’이 된다.”
○ 又曰
○ 또 말씀하였다.
純夫女知心而不知孟子하니 此女當是實不이라 故云無出入이라하야 而不知人有出入하니 猶無病者 不知人之疾痛也니라
범순부范純夫의 딸은 마음은 알았으나 맹자孟子는 몰랐으니, 이 여자는 실제로 수고롭게 쫓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출입出入이 없다고 말하여, 딴 사람들의 마음이 출입出入이 있음을 알지 못한 것이니, 병이 없는 자가 남의 질병을 모르는 것과 같다.”
原注
○ 蘭溪范氏曰
난계범씨蘭溪范氏(范浚)가 말하였다.
君子之學 本於心하니 心不在焉이면 則視簡不見하고 聽諷不聞이니 此其於에도 猶莫之入也 況窮理致知乎
군자君子학문學問은 마음에 근본하니, 마음이 있지 않으면 책을 보아도 보이지 않고 간하는 말을 들어도 들리지 않으니, 이는 구이口耳학문學問에도 오히려 들어갈 수가 없는데 하물며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지극히 할 수 있겠는가.
是以學者必先存心이니
이 때문에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마음을 보존하여야 하는 것이다.
心存則本立이니 本立而後可以言學이라
마음이 보존되면 근본이 서니, 근본이 선 뒤에야 학문을 말할 수 있다.
蓋學者 覺也 覺由乎心하나니 心且不存이면 何覺之有리오
배움이란 깨닫는 것이니, 깨달음은 마음에 말미암는데 마음도 보존하지 못한다면 무슨 깨달음이 있겠는가.
孟子曰 人之所以異於禽獸者 幾希하니 庶民 去之하고 君子 存之라하시니 是心不存이면 殆將晦昧僻違하고 觸情從欲하야 不能自別於物이니 尙安所覺哉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것이 별로 없으니, 서민庶民은 이것을 버리고 군자君子는 이것을 보존한다’ 하였으니, 이 마음이 보존되지 못하면 장차 어두워지고 편벽되고 어긋나서 이 나오는 대로 욕심(욕망)을 따라 스스로 사물과 구별되지 못할 것이니, 오히려 무엇을 깨닫겠는가.
然心雖未嘗不動也로되 而有所謂至靜하니 彼紛紜于中者 浮念耳 邪思耳
그러나 마음은 비록 일찍이 하지 않는 적이 없으나 이른바 ‘지극히 고요하다’는 것이 있으니, 저 마음속에 분분한 것은 부념浮念(잡념)이며 간사한 생각일 뿐이다.
物交而引之耳 雖百慮煩擾而
물건이 사귀면 끌려갈 뿐이니, 비록 여러 가지 생각이 번거로우나 이른바 ‘지극히 고요하다’는 것은 진실로 그대로이다.
君子論心 必曰存亡云者 心非誠亡也 以操捨言之耳 人能知所以操之 則心存矣리라
군자君子가 마음을 논할 때에 반드시 ‘보존되었다’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음이 참으로 없다는 것이 아니요 잡고 놓는 것을 가지고 말하였을 뿐이니, 사람이 마음을 잡는 방법을 안다면 마음이 보존될 것이다.
孟子曰 養心 莫善於寡欲이라하시니 養以寡欲하야 使不誘於外 此存心之니라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마음을 기름은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하였으니, 욕심을 적게 하는 것으로 마음을 길러서 외물外物에 유혹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마음을 보존하는 권여權輿(시초)일 것이다.”
原注
[按] 范氏此段 謂學者覺也 及謂心非誠亡이라 以操捨言之 皆有合于程子之說이요
[按]범씨范氏의 이 단락에 ‘배움이란 깨달음’이라는 것과 ‘마음이 참으로 없다는 것이 아니요 잡고 놓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라는 내용은 모두 정자程子의 말씀에 부합되며,
又謂存心 在至靜而權輿于寡欲 亦有合于周子之說이니라
또 마음을 보존함이 지극히 고요한 데에 있고 욕심을 적게 하는 데에서 권여權輿가 된다고 말한 것은 또한 주자周子의 말씀에 부합된다.
原注
○ 朱子答書曰
주자朱子석자중石子重에 답한 편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孔子言操存, 舍亡하야 出入無時, 莫知其鄕四句하시고 而以惟心之謂一句 結之하시니
공자孔子가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서 나가고 들어옴이 일정한 때가 없어 그 방향을 알 수 없다’는 네 를 말씀하시고, ‘오직 마음을 이른다’는 한 로 끝맺으셨으니,
正是直指心之體用하야 而言其周流變化神明不測之妙也
바로 마음의 을 곧바로 가리켜서 두루 유행流行하여 변화하고 신명神明하여 측량할 수 없는 묘함을 말씀한 것이다.
若謂其舍亡 致得如此走作인댄 則孔子言心體者 只說得心之病矣리니 聖人立言命物之意 恐不如此
만약 ‘놓으면 잃는 것이 이처럼 마음이 달아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면 공자孔子가 마음의 를 말씀한 것은 다만 마음의 병통을 말씀한 것일 뿐이니, 성인聖人이 글을 써서 물건을 명명命名(형용)한 뜻이 이와 같지는 않을 듯하다.
하니 不可皆謂舍亡所致也니라
출입出入이란 두 글자는 이 있고 이 있으니, 모두 놓으면 잃는 것이 초래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又謂心之本體 不可以存亡言이라하면 此亦未安이라
또 ‘마음의 본체本體존망存亡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 또한 온당치 못하다.
若所操而存者 初非本體 則不知所存者果爲何物이며 而又何必以其存爲哉
만약 잡아서 보존되는 것이 애당초 본체本體가 아니었다면 보존된 것이 과연 무슨 물건인지 모르겠으며 또 하필 보존할 필요가 있겠는가.
偶記胡文定公所謂不起不滅 心之體 心之用이니 能常操而存이면 則雖一日之間 百起百滅이라도 而心固自若者 自是好語
우연히 기억하건대 호문정공胡文定公(胡安國)의 이른바 ‘일어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은 마음의 이며 막 일어나고 막 없어지는 것은 마음의 이니, 항상 마음을 잡아 보존하면 하루 사이에 비록 백 번 일어났다가 백 번 없어지더라도 마음은 진실로 그대로이다’라는 것이 진실로 좋은 말씀이다.
但讀者當知所謂不起不滅者 非是塊然不動하야 無所知覺也 又非百起百滅之中 別有一物 不起不滅也
다만 읽는 자들은 마땅히 이른바 ‘일어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 흙덩이처럼 꼼짝도 하지 않아서 지각知覺하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니요, 또 백 번 일어났다가 백 번 없어지는 가운데에 별도로 한 물건이 있어서 일어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만 이 마음이 밝아서 사사로운 마음이 전혀 없으면 이는 고요하여 하지 않는 본체本體요, 이치를 따라 일어나고 이치를 따라 없어지면 이것이 바로 감동하여 마침내 천하天下(所以然)를 통하는 것이다.”
原注
○ 或問牛山之木一章한대 朱子曰
혹자가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에 대해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夜氣 如雨露之潤이요 良心 如萌蘖之生이니 人之良心 雖是有梏亡이나이라
야기夜氣우로雨露의 적셔 줌과 같고 양심良心은 나무의 싹이 나오는 것과 같으니, 사람의 양심良心이 비록 곡망梏亡함이 있으나 저것(夜氣)이 일찍이 생겨나지 않은 적이 없다.
轉動이요 如將自家物失去了니라
금계禁戒(형틀)를 쓰고서 이곳에 갇혀 있어 다시는 이 몸이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고, 은 자신의 물건을 잃어 버리는 것과 같다.”
又曰
또 말씀하였다.
日夜之所息 却是心이니 夜氣淸하야 不與物接平旦之時 卽此良心發處로되 惟其所發者少 而旦晝之所梏亡者展轉反覆이라
일야日夜(밤)에 자라나는 것이 마음(良心)이니, 야기夜氣가 맑아서 외물外物과 접하지 않은 평단平旦의 때가 바로 이 양심良心이 나오는 곳이나 다만 하는 바가 적고, 낮에 곡망梏亡하는 바가 전전展轉하여 반복된다.
是以 夜氣不足以存矣 이니라
이 때문에 야기夜氣가 보존되지 못하는 것이니, 마치 잠을 한 번 깨어 일어나면 예전처럼 아무 일이 없는 것(잠을 자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
又曰
또 말씀하였다.
良心 當初本有十分이언마는 被他展轉梏亡이라
양심良心이 당초에는 본래 10이 있었지만 저것(욕심)이 전전展轉하여 곡망梏亡한다.
則他長一分이면 自家止有九分하고 明日他又進一分이면 自家又退하야 止有八分하니 他日會進이면 自家日會退니라
그리하여 저것이 1 자라면 자가自家(자신의 양심)는 다만 9만 있고, 다음날 저것이 또 1 진보하면 자가自家는 또 후퇴하여 다만 8만 있을 뿐이니, 저것은 날마다 나아가고 자가自家는 날마다 물러간다.
此章 極精微하니 非孟子 做不得이라
은 지극히 정미精微하니, 맹자孟子가 아니면 말씀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別人 縱有此意라도 亦形容不得이니라
딴사람은 비록 이러한 뜻이 있더라도 형용하여 말하지 못한다.”
原注
仁山金氏曰
인산김씨仁山金氏(金履祥)가 말하였다.
此章 孟子切於救人하시니 山木一段 與良心一段相對하고 養與失養 亦相對하고 而養之得失 又在操舍之間하며
“이 맹자孟子가 사람을 구원함에 간절한 것이니, 산목山木 한 단락은 양심良心 한 단락과 상대가 되고, 기름과 기름을 잃는 것이 또한 상대가 되며, 기름의 득실得失은 또 잡고 놓는 사이에 달려 있다.
程子又發敬以直內一句하야 指示操存之方하시니 可謂切要로다
정자程子가 또 경이직내敬以直內발명發明하여 조존操存하는 방법을 가리켜 보여 주었으니, 간절하고 요긴하다고 이를 만하다.
學者讀之 急宜警省이니 存得則人이요 存不得則禽獸
배우는 자가 이것을 읽을 적에 급히 경계하고 살펴야 할 것이니, 이것을 보존하면 사람이요 이것을 보존하지 못하면 금수禽獸이다.
아!
可畏哉인저
두려울 만하다.”
原注
○ 問人心紛擾時 難把捉이로소이다
“사람의 마음이 분요紛擾할 때에는 마음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眞箇是難이라
“참으로 어렵다.
持把不能久 又被事物及引將去하나니 孟子牛山之木一章 最要看이니라
잡기를 오래하지 못하면 또다시 사물이나 쓸데없는 생각에 끌려가게 되니, 《맹자孟子》의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을 가장 잘 보아야 한다.”
又曰
또 말씀하였다.
這箇 不干別人事 雖是難이나 亦須自著力이라
“이것은 다른 사람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니, 아무리 어렵더라도 모름지기 스스로 힘써야 한다.
常惺惺하야 不要放倒하며 覺得物欲來 便著緊하야 不要隨他去
마음이 항상 깨어 있어서 방도放倒하지 않게 하며, 물욕物慾이 옴을 깨달으면 곧 긴장하여 저것(물욕)을 따라가지 않게 하여야 한다.
라하면 是自壞也 更說甚爲仁由己而由人乎哉
만일 ‘마음을 잡을 수 없고 저것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니, 다시 어찌 ‘을 함은 자신에게 말미암으니(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原注
① 程子曰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學者患心慮紛亂하야 不能寧靜하니 此則天下公病이라
“배우는 자들은 마음과 생각이 분란紛亂하여 편안하고 고요하지 못함을 염려하니, 이는 천하天下의 공통된 병이다.
學者只要立箇心이니 此上頭 儘有이니라
배우는 자는 단지 이 마음을 세워야 하니, 이 위에 참으로 헤아릴 것이 있다.”
原注
[按] 人心之不能操存 多出于思慮紛擾
[按] 사람의 마음을 잡아서 보존하지 못함은 대부분 사려思慮분요紛擾함에서 나온다.
故先儒屢屢言之 然求其所以操而存者컨대 豈有他術哉리오
그러므로 선유先儒들이 누누이 말씀하였으나 마음을 잡아 보존하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찌 딴 방법이 있겠는가.
亦曰靜以養之, 敬以持之而已
또한 고요히 기르고 공경히 잡을 뿐이다.
하고 靜敬하노라
이제 잡아 보존함에 관한 내용 열한 조목을 아래와 같이 뽑고, 을 주장하고 을 잡는 것에 대해서는 별도로 나타내었다.
原注
② 又曰
② 또 말씀하였다.
人多思慮하야 不能自寧 只是作心主不定이라
“사람들이 사려思慮가 많아서 스스로 편안하지 못함은 다만 마음의 주장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惟是 之類
오직 일에 그쳐야 하니, 임금이 되어서는 에 그치는 따위이다.
如舜之誅 四凶已作惡이어늘 舜從而誅之하시니 이리오
임금이 사흉四凶주벌誅罰할 때에 사흉四凶이 이미 을 행하였으므로 임금이 따라서 주벌한 것이니, 임금이 어찌 관여하였겠는가.
人不止於事 只是攬他事하야 不能使이니 物各付物이면 則是役物이요 爲物所役이면 則是役於物이라
사람이 일에 그치지 않는 것은 다만 딴 일을 잡고 있어서 사물을 각각 사물에 맡겨두지 못하기 때문이니, 사물을 각각 사물에 맡겨두면 이는 사물을 부리는 것이요, 사물에게 부려지는 바가 되면 이는 사물에게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
有物必有이니 須是止於事니라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으니, 모름지기 일에 그쳐야 한다.”
原注
西山眞氏曰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程子又嘗言 어니와 只是心 須敎由自家라하시니 此卽做心主之謂也니라
정자程子가 또 일찍이 말씀하기를 ‘사람에게는 4백 4가지의 질병이 있는데, 이것은 모두 자신에게 말미암지 않지만 다만 마음은 모름지기 자신에게 말미암게 해야 한다’ 하였으니, 이는 바로 마음의 주장을 삼음을 말씀한 것이다.”
原注
③ 又曰
③ 또 말씀하였다.
人心作主不定 正如一箇 流轉動搖하야 無須臾停하니 所感萬端이니 若不做一箇主 怎生奈何리오
“사람 마음의 주장함이 안정되지 못함은 바로 하나의 번차翻車(水車)가 돌고 요동하여 수유須臾(잠시)도 정지할 때가 없는 것과 같아서 감동하는 바가 만 가지이니, 만약 하나의 주장을 삼지 않는다면 아무리 한들 어쩌겠는가.
嘗言 約數年 하야 이라하니 不思量後 須强把這心來制縛이어나 이리니 이니라
장천기張天祺가 일찍이 말하기를 ‘몇 년 동안 평상平牀(침상)에 올라 가서 사량思量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하였는데, 조금(잠시)이라도 사량思量하지 않으려 한 뒤에는 모름지기 이 마음을 억지로 잡아서 제재하고 속박하거나 또는 모름지기 하나의 형상形象에 붙여두어야 할 것이니, 이는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原注
④ 又曰
④ 또 말씀하였다.
君實 嘗患思慮紛亂하야 有時中夜而作하야 達旦不寐하니 可謂로다
군실君實(司馬光)이 일찍이 사려思慮분란紛亂함을 염려하여 때로는 한밤중에 일어나 아침이 되도록 잠을 자지 못하였으니, 진실로 스스로 괴로워했다고 이를 만하다.
人都來多少血氣
사람들이 대체로 혈기血氣가 얼마나 되는가.
若此則幾何而不摧殘以盡也리오
이와 같이 한다면 얼마 안 가서 혈기血氣가 꺾이고 쇠잔하여 다하지 않겠는가.
其後告人曰 近得一術하니 常以中爲念이라하니 則又是爲中所亂이라
그후 군실君實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근래에 한 가지 방법을 얻었으니, 항상 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였는데, 이는 또 에게 어지럽힘을 당하는 것이다.
中又何形이완대 如何念得이리오
이 또 무슨 형체가 있기에 어떻게 생각한단 말인가?
也只是於名言之中 揀得一箇好字 與其爲中所亂으론 니라
또한 다만 명언名言(좋은 말) 가운데에서 한 좋은 글자를 가려낸 것일 뿐이니, 에게 어지럽힘을 당하기보다는 한 꿰미 수주數珠(염주)를 주는 것이 나음만 못하다.
夜以安身하고 睡則合眼이니 不知苦苦思量箇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고 잘 때에는 눈을 감아야 하니, 알지 못하겠으나 괴롭고 괴롭게 무엇을 생각한단 말인가.
只是不以心爲主일새니라
이는 다만 마음을 주장으로 삼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原注
他日 又曰 君實 近年 病漸較放得下也니라
후일에 또 말씀하기를 “군실君實이 근년에 병통을 점점 크게 놓아 없앴다.” 하였다.
○ [按] 此言 則知大賢德業之進 日新之功 不以壯而健, 老而衰 學者所當深省也니라
○ [按] 이 말씀에서 대현大賢덕업德業의 진전과 일신日新(날로 새로워짐)의 공부가 젊다고 하여 굳세고 늙었다고 하여 쇠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原注
⑤ 又曰
⑤ 또 말씀하였다.
有謂因苦學而至失心者하니 本是治心이니 豈有反爲心害리오
“학문에 애씀으로 인하여 마음(정신)을 잃은 데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니, 학문은 본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인데, 어찌 도리어 마음에 해가 된단 말인가.
某氣不盛이나 然而能不病, 無惓怠者 只是一箇 其於 思慮儘로라
나는 기운이 왕성하지는 못하나 병이 없고 권태로움이 없는 것은 다만 섭생攝生을 삼가고 마음을 함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니, 〈음식飮食이나 여색女色과 같은〉 밖의 일에 생각이 참으로 한가롭노라.”
原注
⑥ 又曰
⑥ 또 말씀하였다.
하니 是所謂坐馳也니라
사마자미司馬子微(司馬承禎)가 좌망론坐忘論을 지었으니, 이것은 이른바 ‘앉아서 생각이 달려간다[坐馳]’는 것이다.”
原注
朱子曰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人心至靈하야 主宰萬變하야 而非物所能宰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신령스러워서 온갖 변화를 주재主宰하여, 사물이 주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有執持之意 卽是此心 先自動了 此程夫子每言坐忘 卽是坐馳라하시고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잡아 지키려는 뜻이 있으면 곧 이 마음이 먼저 스스로 동요하는 것이니, 이는 바로 정부자程夫子가 언제나 ‘좌망坐忘은 곧 좌치坐馳’라고 말씀한 이유이고,
而其指示學者操存之道 雖曰 而又有便不直矣之云也시니라
배우는 자들에게 조존操存하는 방법을 가리켜 보이실 적에 비록 ‘하여 안을 곧게 한다[敬以直內]’고 말씀하였으나 또 ‘으로써 안을 곧게 하면[以敬直內]곧 곧아지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는 것이다.”
原注
⑦ 又曰
⑦ 또 말씀하였다.
人於夢寐間 亦可以卜自家所學之淺深이니 如夢寐顚倒 卽是心志不定이요 操存不固니라
“사람이 잠자고 꿈꾸는 사이에도 자신이 배운 바의 깊고 얕음을 징험할 수 있으니, 예컨대 꿈속에서 전도顚倒하면 이는 곧 심지心志가 안정되지 못하고 조존操存이 견고하지 못한 것이다.”
原注
朱子曰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而成寐하니 心在其間하야 依舊能思慮
“혼과 넋이 사귀어 잠을 이루니, 마음이 이 사이에 있으면 예전처럼 사려思慮한다.
所以做出夢이니 若心神安定이면 夢寐亦不至顚倒니라
이 때문에 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 만약 마음과 정신이 안정되었으면 꿈에서도 전도顚倒함에 이르지 않는다.”
原注
⑧ 張子曰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淸時少하고 亂時多하니 其淸時 視明聽聰하고 四體不待羈束而自然恭謹하며 其亂時 反是하니 何也
“마음이 깨끗할 때는 적고 혼란할 때는 많으니, 깨끗할 때에는 보는 것이 분명하고 듣는 것이 밝고 사지四肢가 속박하지 않아도 자연 공손하고 삼가며, 혼란할 때에는 이와 반대가 되니, 이는 어째서인가?
蓋用心未熟하야 客慮多而常心少也 習俗之心未去而實心未完也일새라
마음을 씀이 익숙하지 못하여 객려客慮(잡념)가 많고 떳떳한 마음이 적으며, 습속習俗의 마음이 제거되지 못하여 진실한 마음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人又要得剛이니 剛則守得定不回하야 進道勇敢이니라
사람은 또 하여야 하니, 하면 지킴이 안정되고 회곡回曲하지 않아서 에 나아감이 용감하게 된다.”
原注
朱子曰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橫渠說做工夫處 하니 二程 資稟 高潔淨하야 不大段用工夫하고 橫渠 資稟 有偏駁夾雜處
횡거橫渠가 공부하는 곳을 말씀한 것이 이정二程보다 정밀하고 간절하니, 이정二程자품資稟이 높고 깨끗하여 대단하게 공부하지 않았고, 횡거橫渠는 자품이 편협하고 박잡한 부분이 있었다.
他大段用工夫來하니 觀此言컨대 說得來大段精切이니라
그리하여 저가 대단하게 공부를 하였으니, 이 말씀을 보면 말씀한 것이 대단히 정밀하고 간절하다.”
○ 又曰
장자張子가 또 말씀하였다.
客慮 是泛泛底思慮 習俗之心 便是從來習熟偏勝等心이요 實心 是義理底心이니라
객려客慮는 범범한 사려이고, 습속習俗의 마음은 곧 종래에 익히고 익숙한 편벽되고 치우친 마음이고, 실심實心의리義理의 마음이다.”
原注
⑨ 朱子曰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今日 學者不長進 只是心不在焉이라
“오늘날 배우는 자들이 크게 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만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嘗記少年時하야 夜聞鐘聲할새 聽其一聲未絶 此心 已自走作이어늘
일찍이 기억하건대 소년 시절 동안同安에 있으면서 밤에 종소리를 들었는데, 한 종소리를 들어 채 끝나기도 전에 이 마음이 이미 스스로 달려가곤 하였다.
因是警省하니 乃知爲學 須是로라
이로 인하여 경계하고 살폈으니, 학문을 함은 모름지기 뜻을 지극히 해야 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原注
⑩ 又曰
⑩ 또 말씀하였다.
李先生 說人心中大段惡念 却易制伏이어니와 最是那不大段計利害 乍往乍來底念慮 相續不斷 難爲驅除라하시니 是如此로라
이선생李先生(李侗)이 ‘사람의 마음속에 대단히 한 생각은 도리어 제어하고 굴복시키기가 쉬우나 대단하게 이해利害를 따지는 것도 아니면서 별안간 갔다가 별안간 오는 생각이 서로 이어져서 끊이지 않는 것이 가장 몰아내기 어렵다’ 하였으니, 지금 경험하여 봄에 참으로 이와 같노라.”
原注
⑪ 又曰
⑪ 또 말씀하였다.
人有一正念 自是分曉로되 又從旁別生一小念하야 漸漸放闊去하나니 不可不察이니라
“사람이 한 올바른 생각이 있는 것이 자연 분명하나 또 옆에서 별도로 한 작은 생각이 생겨나서 점점 퍼져 나가니, 이것을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된다.”
原注
① 謝顯道從明道先生於러니 明道一日謂之曰 爾輩在此相從 只是學某言語
사현도謝顯道명도선생明道先生부구扶溝에서 수행하였는데, 하루는 명도선생明道先生이 이르기를 “그대들이 이곳에 있으면서 서로 따름에 다만 나의 말만 배운다.
故其學 心口不相應하니 盍若行之
이 때문에 그 학문하는 것이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지 않으니, 어찌 실행하는 것만 하겠는가.” 하였다.
請問焉한대 曰且하라
사현도謝顯道가 청하여 묻자, “우선 정좌靜坐하라.” 하였다.
原注
[按] 先儒論主靜者 로라
[按]선유先儒들이 을 주장함을 논한 것을 명도선생明道先生으로부터 이하 모두 아홉 조목을 얻었다.
原注
② 伊川先生 每見人靜坐하시면 便歎其善學이러시다
이천선생伊川先生은 언제나 사람이 정좌靜坐하는 것을 보면 학문을 잘한다고 감탄하곤 하였다.
原注
③ 邵康節先生 하고 獨處其中이러니
소강절선생邵康節先生백원산百原山의 깊은 산중에 서재書齋를 열고는 홀로 이 가운데에 거처하였다.
常乘月訪之할새 必見其燈下 正襟危坐하야 雖夜深이라도 亦如之러라
왕승지王勝之(王益柔)가 항상 달밤에 방문하곤 하였는데, 반드시 등잔불 아래에 옷깃을 바르게 하고 무릎 꿇고 앉아서 아무리 밤이 깊어도 이와 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原注
朱子曰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看康節컨대 這人 須極會處置事하니 被他神閑氣定하야 不動 須處置得精明하니
강절선생康節先生을 보건대 이 분은 모름지기 지극히 일을 잘 처치하였으니, 저가 정신이 한가롭고 기운이 안정되어 음성과 정신 기운을 동하지 않았으므로 처치함이 정밀하고 분명하였다.
他氣質 本淸明이어늘 又養得純厚하고 又不曾枉用了心하야 他用那心 都在緊要上하니 被他靜極了
그 기질이 본래 청명한 데다가 또 수양하기를 순수하고 후하게 하였으며, 또 일찍이 마음을 헛되이 쓰지 아니하여, 그 마음을 쓰는 것이 모두 긴요한 데에 있었으니, 그의 고요함이 지극하였다.
所以看得天下事理 如此精明이니라
이 때문에 천하의 사리事理를 보기를 이와 같이 정하고 밝게 한 것이다.”
原注
④ 朱子曰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主靜 夜氣一章 可見이니라
을 주장함을 〈《맹자孟子》의〉 야기夜氣에서 볼 수 있다.”
原注
⑤ 問程子常敎人靜坐하시니 如何
⑤ “정자程子가 항상 사람들에게 정좌靜坐하게 하셨으니,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且敎人收拾此心耳시니 初學 亦當如此니라
“또한 정자程子는 사람들이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함을 보았으므로 우선 사람들로 하여금 이 마음을 수습하게 하신 것이니, 처음 배우는 자들은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한다.”
原注
⑥ 又曰
⑥ 또 말씀하였다.
延平先生 嘗言道理 須是日中理會하고 夜裏 却去靜處하야 坐地思量이라야 方始有得이라하시니 某依此說去做하니 이로라
연평선생延平先生이 일찍이 말씀하기를 ‘도리道理를 모름지기 낮 동안에 이해하고 밤에는 조용한 곳에 가서 앉은자리에서 생각하고 헤아려야 비로소 얻음이 있을 것이다’ 하셨으니, 내가 이 말씀을 따라 해 보니, 효과가 참으로 각별하였다.”
原注
⑦ 又曰
⑦ 또 말씀하였다.
今人 皆不肯於根本上理會
“지금 사람들은 모두 근본상根本上에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如敬字 只是將來說하고 更不做將去하야 根本不立이라
예컨대 경자敬字를 가져다가 다만 말만 할 뿐이고 다시는 공부해 나가지 아니하여 근본이 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기타 자질구레한 공부가 머무를 곳이 없는 것이다.
明道, 延平 皆敎人靜坐하시니 看來 須是靜坐러라
명도明道연평延平이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정좌靜坐하게 하셨으니, 내가 보건대 모름지기 정좌靜坐하여야 하겠더라.”
原注
⑧ 先生호되 如何用工 曰 且學靜坐하야 痛抑思慮로소이다
선생先生(朱子)이 백우伯羽(董蜚卿)에게 “어떻게 공부하는가?” 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우선 정좌靜坐를 배워 사려를 통렬히 억제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이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통렬히 억제하는 것도 옳지 않으니, 다만 놓아 물러가게 해야 한다.
若全閉眼而坐 却有思慮矣니라
만약 눈을 완전히 감고 앉아 있으면 도리어 사려가 있게 될 것이다.”
又言也不可全無思慮 無邪思耳니라
또 말씀하기를 “또한 전혀 사려가 없을 수 없으니, 간사한 생각이 없을 뿐이다.” 하였다.
原注
⑨ 又曰
⑨ 또 말씀하였다.
心未嘗遇事時 須是靜이라야 臨事方用 便有氣力이니 如當靜時 不靜하야 思慮散亂이면 及至臨事 已先倦了
“마음이 일찍이 일을 만나지 않았을 때에 모름지기 고요하여야만 일을 당하여 막 쓰려고 할 때에 곧 기력(효력)이 있는 것이니, 만약 고요하여야 할 때에 고요하지 아니하여 사려가 산란하다면 일을 당했을 때에 이르러 이미 먼저 피곤해진다.
伊川解處云 不專一則不能直遂라하시니 閑時 須是收斂이라야 做事 便有精神이니라
이천伊川이 ‘고요함이 전일專一함’을 해석한 곳에 이르기를 ‘전일專一하지 않으면 곧바로 이루지 못한다’ 하였으니, 한가로울 때에 모름지기 수렴하여야 일을 할 때에 곧 정신精神이 있는 것이다.”
原注
① 程子曰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操約者 敬而已矣니라
“잡음이 간략한 것은 일 뿐이다.”
原注
[按] 先儒論持敬者 로라
[按]선유先儒들이 을 잡음을 논한 것을 정자程子로부터 이하 모두 열 조목을 얻었다.
原注
問心術最難하니 如何執持잇가 程子曰 敬이니라
소백온邵伯溫이 “심술心術이 가장 어려우니, 어떻게 잡아야 합니까?” 하고 묻자, 정자程子는 “이다.” 하였다.
原注
又曰 敬勝百邪니라
그리고 또 말씀하기를 “은 온갖 간사함을 이겨낸다.” 하였다.
○ 朱子曰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程先生所以有功於後學者 最是敬之一字 有力이니라
정선생程先生후학後學들에게 이 있는 까닭은 이 한 경자敬字가 가장 공력功力이 있어서이다.”
原注
③ 又曰
③ 〈정자程子가〉 또 말씀하였다.
入道莫如敬이니 未有能致知而不在敬者니라
에 들어가는 것은 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치지致知를 하면서 에 있지 않는 자는 있지 않다.
今人 主心不定하야 視心如寇賊而不可制하나니 이라 乃是心累事
지금 사람들은 주장하는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여 마음을 보기를 도적처럼 여겨 제재하지 못하니, 이는 일이 마음을 얽매는 것이 아니요 바로 마음이 일에 얽매이는 것이다.
천하에는 한 물건도 없어서는 안 되니 미워해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原注
問程子謂格物窮理 但立誠意以格之라하시고 又曰 入道莫如敬이라하시니
정자程子는 ‘격물格物궁리窮理를 다만 성의誠意를 세워 궁구하는 것이다’ 하였고, 또 ‘에 들어감은 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愚以爲誠意工夫 在格致後어늘 今乃云 先立誠意라야 始去格物이라하시니 毋乃反經意與잇가 潛室陳氏曰
어리석은 제 생각에는 성의誠意공부는 격물格物치지致知의 뒤에 있는데, 이제 마침내 성의誠意를 세워야 비로소 가서 격물格物을 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경전經傳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묻자, 잠실진씨潛室陳氏(陳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문程門에는 이러한 가 매우 많으니, 예컨대 치지致知을 쓰는 것도 정심正心성의誠意의 지위(경계)를 먼저 침범(점령)하였다.
蓋誠敬二字 通貫動靜始末하니 不是於格致之先 更有一敬工夫在
두 글자는 , 을 관통하니, 격물格物치지致知하기 전에 다시 하나의 경공부敬工夫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只是欲立箇主人翁耳 不然이면 皆妄이니라
다만 주인옹主人翁(心)을 세우고자 할 뿐이니, 그렇지 않으면 모두 망령된 것이다.”
○ 西山眞氏曰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一事有一事之理하니 人能安定其心하야 順其理以應之 則事皆得所하고 心亦不勞어니와 若擾擾焉以私心處之 則事必不得其當이요 而其心亦無須臾之寧이니 人徒知爲事之累心이요 不知乃心之累事也니라
“한 일에는 한 일의 이치가 있으니, 사람이 그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따라 응하면 일이 모두 제자리를 얻고 마음 또한 수고롭지 않지만 만약 분요紛擾하여 사사로운 마음으로 대처한다면 일이 반드시 마땅함을 얻지 못할 것이요 마음 또한 잠시도 편안함이 없을 것이니, 사람들은 다만 일이 마음을 얽매는 것만 알고 바로 마음이 일에 얽매이는 것은 알지 못한다.”
原注
④ 又曰
④ 또 말씀하였다.
大凡人心 不可二用이니 用於一事 則他事不能入者 事爲之主也
“대체로 사람의 마음을 두 가지로 써서는 안 되니, 한 가지 일에 쓰면 다른 일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그 일이 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事爲之主라도 尙無思慮紛擾之患이어든 若主於敬이면 又焉有此患乎
일이 주장이 되어도 오히려 사려思慮분요紛擾해지는 걱정(병폐)이 없는데, 만약 을 주장한다면 또 어찌 이러한 걱정이 있겠는가.”
原注
或問 事爲之主一段 疑當使心爲事主 不可使事爲心主니이다 [朱子]曰
혹자가 묻기를 “일이 주장이 된다는 한 단락은 의심컨대 마음으로 하여금 일의 주장이 되게 하고 일로 하여금 마음의 주장이 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인 듯합니다.” 하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之主 只是此心 收在一事上하야 不走作耳 伊川 欲以數珠與溫公之類니라
“일이 주장이 된다는 것은 다만 이 마음이 수렴되어 한 가지 일 위에 있어서 다른 데로 달려가지 않게 하는 것일 뿐이니, 이천伊川온공溫公에게 염주를 주고자 한 것과 같은 따위이다.”
原注
⑤ 橫渠先生 嘗言吾十五年 學箇이나 不成이로라 明道先生曰 로다
횡거선생橫渠先生이 일찍이 말씀하기를 “내 15년 동안 ‘공손하면서도 편안함’을 배웠으나 이루지 못하였다.”라고 하자,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기를 “학문이 이루어지지 못함은 이처럼 수많은 병통이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하였다.
原注
謝氏曰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凡恭謹이면 必勉强不安肆하고 安肆 必放縱不恭하나니
“무릇 공손하고 삼가면 반드시 억지로 힘써 편안하지 못하고 편안하면 반드시 방종하여 공손하지 못하다.
이니 正當勿忘勿助長之間 子細體認取니라
공손함은 ‘잊지 말라는 것’과 같고, 편안함은 ‘조장助長하지 말라는 것’과 같으니, 바로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않는 사이에 자세히 체인體認하여야 한다.”
○ 問橫渠只是 故不安否잇가 朱子曰
○ “횡거橫渠는 다만 굳게 잡기만 하였기 때문에 편안하지 못한 것입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他只是學箇恭하야 自驗見不曾熟이니 不是學箇恭하고 又學箇安이니라
“그는 다만 공손함만 배워서 스스로 일찍이 익숙하지 못함을 경험하여 본 것이니, 공손함을 배우고 또다시 편안함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原注
⑥ 又曰
⑥ 또 말씀하였다.
學者須敬守此心하야 不可急迫이요 當栽培深厚하야 於其間然後 可以自得이니 但急迫求之 只是私己 終不足以達道니라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이 마음을 공경히 지켜서 급박하게 하지 말 것이요, 마땅히 재배栽培하기를 깊고 후하게 하여 이 사이에서 함양한 뒤에야 자득自得할 수가 있으니, 다만 급박하게 구하면 다만 사사로움일 뿐이어서 끝내 에 도달하지 못한다.”
原注
或問 持敬 覺不甚安이로소이다 朱子曰
혹자가 “을 잡아 지키는 것이 심히 편안하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初學 如何便得安이리오
“초학자가 어떻게 곧 편안할 수 있겠는가.
孔子라야 方恭而安이니라
오직 공자孔子라야 비로소 공손하면서도 편안할 수 있는 것이다.
初要持敬 也須勉强하야 但覺見有些子放去어든 便收斂提掇起하면 敬便在這裏 常常相接이면 久後自熟이리라
처음 공경을 잡아 지키려고 할 때에는 모름지기 힘써서 다만 조금이라도 놓아버림이 있음을 깨닫거든 곧 거두어들이고 제기提起(깨워 일으킴)하면 이 곧 이 가운데에 있게 되니, 항상 서로 이어지게 하면 오랜 뒤에는 저절로 익숙해질 것이다.”
○ 問今於下工夫之時 不痛自警策하고 而遽栽培涵泳이면 恐或近於放倒로소이다 南軒張氏曰
○ “이제 공부할 때에 통렬히 스스로 경책警策하지 않고 대번에 재배栽培하고 함영涵泳하면 혹 방도放倒함(뒤집어짐)에 가까울까 두렵습니다.” 하고 묻자, 남헌장씨南軒張氏가 말씀하였다.
敬守此心하야 栽培涵泳이면 正是下工夫處 若近於放倒 則何栽培涵泳之有리오
“이 마음을 공경히 지켜서 재배하고 함영하면 이것이 바로 공부하는 곳이니, 만약 방도放倒함에 가깝다면 어찌 재배하고 함영함이 있겠는가.”
原注
⑦ 朱子曰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乃聖門第一義
은 바로 성문聖門에 제일의 이니, 철두철미하다.
不可頃刻間斷이니라
경각頃刻(잠시)이라도 간단間斷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原注
⑧ 又曰
⑧ 또 말씀하였다.
이니 人常敬이면 則天理自明하야 人欲 上來不得이니라
인욕人欲을 대적하는 것이니, 사람이 항상 공경하면 천리天理가 저절로 밝아져서 인욕人欲이 올라올 수가 없다.”
原注
⑨ 又曰
⑨ 또 말씀하였다.
是箇人底道理
은 사람을 붙들어 주고 경책警策하는 도리道理이다.
人當放肆怠惰時 이면 便扶策得此心起 常常恁地 雖有些放僻邪侈意思라도 也自退聽이니라
사람이 방사하고 나태할 때에 조금만 공경하면 곧 이 마음을 붙들고 경책警策하여 일으킬 수 있으니, 항상 이와 같이 하면 비록 약간의 방벽放辟하고 사치邪侈의사意思가 있더라도 저절로 물러가 명령을 들을 것이다.”
原注
할새 於靜時 最好라가 及臨事 則厭倦하고
⑩ “평소 을 잡아 지킬 적에 고요할 때에는 매우 좋다가 일을 당하게 되면 싫어지고 게을러지며,
或於臨事時著力이면 則覺紛擾 不然이면 則於正存敬時 忽忽爲思慮引去하니
혹은 일을 당했을 때에 힘을 쓰면 분요紛擾함을 깨닫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을 보존할 때에 갑자기 사려思慮에 끌려가곤 하니,
是三者 將何以勝之잇가
이 세 가지를 장차 어떻게 이겨야 합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今人 將敬來하야 別做一事
“지금 사람들은 을 가져다가 별도로 한 가지 일로 삼는다.
所以有厭倦하며 爲思慮引去하나니 只是自家一箇心常惺惺 便是
이 때문에 싫어지고 게을러지는 마음이 있으며 사려에 끌려가는 것이니, 은 다만 자신의 한 마음을 항상 깨우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不可將來別做一事 又豈可指하야 塊然在此而後 爲敬이리오
을 가져다가 별도로 한 가지 일로 삼아서는 안 되니, 또 어찌 손을 들고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고서 흙덩이처럼 여기에 있은 뒤에야 을 한다고 가리켜 말할 수 있겠는가.”
原注
西山眞氏曰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秦漢以下諸儒 皆不知敬爲學問之本이러니 至程子하야 指以示人하시고 而朱子又發明之하야 極其切至하시니 有功于聖門 此其最大者也니라
이후로 여러 학자들은 모두 학문學問근본根本인 줄을 몰랐는데, 정자程子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여주었고 주자朱子가 또 발명發明하여 지극히 간절하게 하였으니, 두 선생이 성문聖門이 있음은 이것이 그 가장 큰 것이다.”
노재허씨魯齋許氏(許衡)가 말하였다.
爲學之初 先要持敬이니 敬則身心收斂하야 氣不粗暴하야 淸者愈淸而濁者不得長하고 美者愈美而惡者不得行이라
“학문하는 초기에는 먼저 을 잡아 지켜야 하니, 하면 몸과 마음이 수렴되어서 가 거칠고 사납지 아니하여, 맑은 것은 더욱 맑아져 탁한 것이 자라나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은 더욱 아름다워져 악한 것이 행해지지 못한다.
靜而敬 常念天地鬼神臨之하야 不敢少忽하고 動而敬 一一省察하야 不要逐物去了하야 雖在千萬人中이라도 常知有己 此持敬之大略也
할 때에 하여 항상 천지귀신天地鬼神이 강림하고 있음을 생각하여 감히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할 때에 하여 보고 들음, 얼굴빛과 모양, 말과 일, 의심과 분함, 얻음에서부터 일일이 성찰해서 외물外物을 따라가지 않게 하여 비록 천만인千萬人의 속에 있더라도 항상 자신이 있음을 알아야 하니, 이것이 을 잡아 지키는 대략이다.
禮記一書 近千萬言이로되 最初一句曰 毋不敬이라하니 天下古今之善 皆從敬字上起하고 天下古今之惡 皆從不敬上生하나니
예기禮記》 한 책은 천만자千萬字에 가까운데 최초最初의 한 는 ‘무불경毋不敬(敬하지 않음이 없음)’이니, 천하天下 고금古今이 모두 경자敬字에서 나오고 천하天下 고금古今이 모두 불경不敬에서 생겨난다.
在小學 이요 在大學에도 也索要敬이요 爲子爲臣爲君爲父 皆索要敬이요 以至當小事, 當大事에도 都索要敬이니 這一件 先能著力然後 可以論學이요 又先要窮理니라
소학小學》에 있어서도 곧 을 찾아야 하고, 《대학大學》에 있어서도 을 찾아야 하며, 자식이 되고 신하가 되고 군주가 되고 부모가 되었을 때에도 모두 을 찾아야 하고, 작은 일을 당하거나 큰 일을 당함에 이르러서도 모두 을 찾아야 하니, 이 한 가지 일에 먼저 힘을 쓴 뒤에야 학문을 논할 수 있으며, 학문은 또 먼저 이치를 연구해야 한다.”
○ [按] 하야 無所師承이로되 而獨有得于程朱之心學하니 惜乎
○ [按]허씨許氏(許衡)는 예융裔戎(변방의 오랑캐)이 처음 중국中國을 어지럽히던 시기에 태어나서 스승에게서 전수傳受받은 바가 없었는데도 홀로 정주程朱심학心學에 얻음이 있었으니, 애석하다.
言語文字 不能盡見이요 其可見者 若居敬窮理之類 皆至論也
그의 언어言語문자文字를 다 볼 수 없고, 볼 수 있는 것은 거경居敬궁리窮理 같은 인데 모두 지극한 말씀이다.
然則民彝物 固不與世爲存亡이요 而非豪傑之士 則亦豈能奮起乎百世之下也哉
그렇다면 백성의 떳떳한 성품과 사물의 법칙은 진실로 세상에 따라 존재하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이며, 호걸豪傑의 선비가 아니라면 또한 어찌 〈이처럼〉 백세百世의 뒤에 분발하여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原注
① 程子曰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人心 常要活이니 則周流無窮而不滯於一隅니라
“사람의 마음은 항상 살아 있어야 하니, 살아 있으면 두루 유행流行하여 다함이 없어서 한 귀퉁이에 막히지 않는다.”
原注
[按] 聖賢論心 固以出入操存爲難하시고 而程子又以周流不滯 爲貴하시니
[按]성현聖賢이 마음을 논한 것은 진실로 나가고 들어옴과 잡아 보존함을 어렵게 여겼고, 정자程子는 또 두루 유행流行하여 막히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
하고 敬兼動靜하니 非欲爲坐禪攝念之一於靜者
마음은 을 갖추고 을 겸하니, 좌선坐禪하여 생각을 잡는 것처럼 에 한결같이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니 學者所當謹也
이는 바로 털끝 만한 것에서 천리千里의 차이가 생기는 구분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삼가야 할 바이다.
先儒論敬兼動靜者 하노라
선유先儒들이 동정動靜을 겸함을 논한 것을 모두 열한 조목을 얻어 아래에 자세히 나열하노라.
原注
② 又曰
② 또 말씀하였다.
呂與叔 하니 蓋爲前日思慮紛擾어늘 今要虛靜이라 故以爲有助
여여숙呂與叔은 〈노장老莊의〉 양기養氣유학儒學에 도움이 된다고 의심하였으니, 이는 전일前日에는 사려思慮분요紛擾하였는데, 이제 허정虛靜(비고 고요함)하려 하므로 도움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前日思慮紛擾 又非義理 又非事故
전일에 사려가 분요함은 또 의리義理가 아니고 또 사고事故가 아니다.
如是則只是狂妄人耳 懲此以爲病이라 故要得虛靜이어니와 其極 欲得如槁木死灰하니 又却不是
이와 같다면 미치고 망령된 사람일 뿐이니, 이것을 징계하여 병으로 여겼기 때문에 마음이 허정虛靜하려고 한 것이나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마른나무와 꺼진 재와 같아지려고 하였으니, 이는 또 옳지 않다.
蓋人 活物也 又安得槁木死灰리오
사람은 살아 있는 물건이니, 또 어찌 마른나무와 죽은 재와 같아질 수 있겠는가.
旣活則須有動作이요 須有思慮
이미 살아 있으면 반드시 동작動作이 있고 반드시 사려思慮가 있다.
何也
충신忠信을 진전시킴은 어째서인가?
閑邪則誠自存이니 誠者存이면 斯忠信也
를 막으면 (진실)이 저절로 보존되니, 이 보존되면 충신忠信이다.
如何是閑邪
어떻게 하는 것이 를 막는 것인가?
非禮而勿視聽言動이면 邪斯閑矣 以此言之하면 又幾時要身如枯木이며 心如死灰리오
가 아니거든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고 동하지 않으면 가 막아지니,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또 어느 때에 몸이 마른나무와 같고 마음이 꺼진 재와 같아지겠는가.
또 네 가지(意‧)를 끊은 뒤에는 마침내 〈그 기상이〉 어떠한가.
又幾時 須如리오
또 어느 때에 모름지기 마른나무와 꺼진 재와 같아지겠는가.
敬以直內 則須君則是君이요 臣則是臣이라
하여 안을 곧게 하면 모름지기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지는 것이다.
凡事如此하니 니라
모든 일이 이와 같으니, 얼마나 크게 직절直截(간단하고 분명함)한가.”
原注
多事하야 或人憫之어늘 程子曰
사람들이 일이 많음을 싫어하여 혹자가 이를 고민하자,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世事雖多 盡是人事 人事 不敎人做 更責誰做리오
“세상일이 비록 많으나 모두 사람의 일이니, 사람의 일을 사람으로 하여금 하게 하지 않으면 다시 누가 해주기를 바란단 말인가.”
○ [按] 此 言學者於動時 宜無所不用其敬也니라
○ [按] 이는 배우는 자가 동할 때에 마땅히 을 쓰지 않는 바가 없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原注
③ 張子曰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言有敎 動有法이요 晝有爲 宵有得이요 이니라
“말함에는 가르침이 있고 동함에는 법이 있고 낮에는 함이 있고 밤에는 얻음이 있고 눈 깜짝할 사이에도 기름이 있고 숨 쉴 때에도 보존함이 있어야 한다.”
原注
朱子曰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橫渠此語極好하니 君子終日乾乾하야 不可食息間이며 亦不必盡日讀書니라
횡거橫渠의 이 말씀이 지극히 좋으니, 군자君子는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써서 밥 먹을 때나 숨 쉴 때에도 간단間斷하지 않으며, 또한 굳이 종일토록 책만 읽지 않는다.
或靜坐存養 皆是用功處
혹 고요히 앉아서 존양存養하는 것이 모두 공부하는 곳이다.
天地生物 以四時運動하니 春生夏長 固是不息이어니와 雖秋冬凋落이라도 未嘗不在其中하니 學者常喚令此心不死 則日有進이니라
천지天地가 만물을 낼 적에 사시四時로써 운동하니, 봄에 낳고 여름에 자라는 것은 진실로 쉬지 않는 것이요, 비록 가을과 겨울에 초목이 말라 잎이 떨어지더라도 생의生意가 일찍이 그 가운데에 있지 않은 적이 없으니, 배우는 자가 항상 불러 깨워서 이 마음으로 하여금 죽지 않게 하면 날로 진보함이 있을 것이다.”
○ [按] 張子動靜交修之功 如此하시니 眞學者法守也니라
○ [按]장자張子을 서로 닦는 공부가 이와 같았으니, 참으로 배우는 자가 본받아 지켜야 할 것이다.
原注
④ 上蔡謝氏曰
상채사씨上蔡謝氏가 말하였다.
不與之往 非敬乎
“일이 이르면 응하고 마음이 일을 따라 함께 가지 않는 것이 이 아니겠는가.
萬物變而하니 奚紛擾之有리오
만물은 변화하여도 이 마음은 항상 보존되니, 어찌 분요紛擾함이 있겠는가.
正謂此耳니라
부자夫子께서 ‘일할 적에는 공경함을 생각한다’고 하신 것은 바로 이것을 이른 것이다.”
原注
⑤ 朱子答書曰
주자朱子양자직楊子直(楊方)에게 답한 편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身心內外 初無間隔하니 所謂心者固主乎內 而凡視聽言動出處語默之見於外者 亦卽此心之用이라 未嘗離也어늘
신심身心내외內外가 애당초 간격이 없으니, 이른바 마음이라는 것이 진실로 안을 주장하나 밖에 나타나는 모든 시청언동視聽言動출처어묵出處語默 또한 이 마음의 이어서 일찍이 떨어져 있지 않다.
今於其空虛不用之處 則操而存之하고 於其流行運用之實 則棄而不省하면 此於心之全體 雖得其半이나 而失其半矣
그런데 지금 공허하여 쓰지 않는 곳에 있어서는 잡아서 보존하고 유행流行하여 운용運用하는 실제에 있어서는 버리고 살피지 않는다면, 이는 마음의 전체에 비록 반은 얻었으나 반은 잃은 것이다.
然其所得之半 又必待有所安排布置然後能存이라
그러나 얻은 반도 반드시 안배安排하고 포치布置함이 있은 뒤에야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故存則有之患하고 하니
그러므로 보존하면 싹을 뽑아 조장助長하는 병폐가 있고, 보존하지 않으면 버리고 김매지 않는 잘못이 있는 것이다.
是則其所得之半 又將不足以自存而失之 孰若一主於敬而此心卓然하야 內外動靜之間 無一毫之隙, 一息之停哉리오
이렇게 되면 그 얻은 바의 반도 장차 스스로 보존하지 못하여 잃게 될 것이니, 어찌 한결같이 을 주장해서 이 마음이 우뚝하여 내외內外동정動靜의 사이에 털끝 만한 틈과 잠깐동안의 정체停滯도 없는 것만 하겠는가.”
原注
⑥ 問敬 通貫動靜而言이나 然靜時少하고 動時多하니 恐易得撓亂이로소이다 朱子曰
⑥ “을 관통한다고 말하나 할 때는 적고 할 때는 많으니, 요란해지기 쉬울까 두렵습니다.”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如何都靜得이리오
“마음이 어찌 모두 할 수 있겠는가.
有事 須著應이니
일이 있으면 마음이 모름지기 응해야 한다.
人在世間 未有無事時節하야 自早至暮 有許多事하니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일이 없을 때가 없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허다한 일이 있으니, 일이 많아 나를 요란하게 하므로 우선 가서 정좌靜坐한다고 말하는 것은 되지 않는다.
不是如此
은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아니다.
若事至前而自家却要主靜하야 頑然不應이면 便是心都死了
만일 일이 앞에 닥쳤는데도 자신이 도리어 을 주장하고자 하여 완연頑然히 응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마음이 모두 죽은 것이다.
無事時 敬在裏面하고 有事時 敬在事上하야 有事無事 吾之敬 未嘗間斷也
일이 없을 때에는 이면裏面에 있고 일이 있을 때에는 이 일 위에 있어서 일이 있던 일이 없던 나의 이 일찍이 간단間斷하지 않아야 한다.
故程子說라하시니 蓋專一則有事無事 皆是如此 是緊要處니라
그러므로 정자程子가 말씀하기를 ‘학문學問전일專一함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좋다’ 하였으니, 전일專一하면 일이 있던 일이 없던 모두 이와 같이 할 수가 있으니, 정자程子의 이 단락에 이 한 가 바로 긴요한 부분이다.”
原注
⑦ 問一向把捉이라가 待放下하야는 便覺恁하니 不知當如何잇가
⑦ “한결같이 마음을 잡다가 마음을 놓아버리면 곧 이처럼 쇠삽衰颯(쓸쓸함)을 느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這箇也不須只管恁地把捉이라
“이것 또한 다만 이렇게 잡을 필요가 없다.
만약 가서 잡으려고 한다면 또다시 하나의 마음을 더하게 되니, 그대가 만약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마음을 들어(깨우쳐) 일으키는 것이 바로 이다.”
曰 靜坐久之 一念 不免發動하니 如何잇가
정좌靜坐를 오래하면 한 생각이 발동함을 면치 못하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也須看一念 是要做甚麽事 若是好事當做인댄 或此事 思量未透어든 須著 若是不好底事인댄 便不要做 自家纔覺得如此 這敬 便在這裏니라
“또한 모름지기 한 생각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하니, 만약 좋은 일로 마땅히 해야 할 것이라면 모름지기 가서 주관할 것이요, 혹 이 일을 사량思量하여 아직 통투通透하지 못했으면 모름지기 사량思量하여 끝낼 것이며, 만약 좋지 못한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하니, 자신이 잠시라도 이와 같음을 깨달으면 이 이 곧 이 안에 있는 것이다.”
原注
⑧ 問當官事多하야 하니 奈何잇가
⑧ "관직을 맡아 일이 많아서 어지러우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他自膠擾 我何與焉이리오
“저 스스로 어지러운 것이니,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濂溪云 이라하시니 中與仁 是發動處 是當然定理處 是截斷處
주염계周濂溪가 말씀하기를 ‘로써 하되 을 주장한다’ 하였으니, 은 발동하는 곳이고 은 당연한 정리定理의 곳이고 절단截斷하는 곳이다.
常要主靜이니 豈可只管放出하야 不收斂이리오
항상 을 주장하여야 하니, 어찌 다만 마음을 놓아버리고 수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절단截斷’이라는 두 글자가 가장 긴요하다.”
原注
⑨ 黃直卿 勸先生且謝賓客하고 數月한대 先生曰
황직경黃直卿(黃榦)이 주선생朱先生에게 우선 빈객을 사절하고 몇 달동안 요양하여 신병을 조리할 것을 권하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天生一箇人 便須著管天下事 若要不管인댄 須是如라야 方得이니
“하늘이 한 사람을 낼 적에 모름지기 천하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으니, 만약 주관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양씨楊氏(楊朱)의 위아爲我와 같이 하여야만 될 것이다.
某却不曾去學得이로라
나는 일찍이 이러한 학문은 배우지 않았노라.”
原注
又曰
또 말씀하였다.
人每欲不見客하나니 不知他是如何
“사람들이 언제나 빈객을 만나보지 않으려 하니, 저들이 어찌하여 그러는지 모르겠다.
若使某不見客이면 必須大病一月似
만약 나로 하여금 한 달 동안 빈객을 만나보지 못하게 한다면 반드시 한 달 동안 큰 병을 앓는 것과 같을 것이다.
今日 與客說話一日하니 却覺得意思舒暢이라
오늘 빈객과 하룻동안 말을 나누니, 의사意思가 펴지고 통창通暢함을 깨닫겠다.
不知關著門不見人底 是如何過日
저 문을 닫고 사람을 만나보지 않는 자들은 어떻게 날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 [按] 朱子以楊氏爲我 答黃直卿 與程子以槁木死灰 答呂與叔同意하고 見客一事 亦與程子世事須敎人做 同意하니 皆言動之不可不敬也니라
○ [按]주자朱子양씨楊氏위아爲我를 가지고 황직경黃直卿에게 답한 것은 정자程子가 마른나무와 꺼진 재로 여여숙呂與叔에게 답한 것과 뜻이 같고, 빈객을 만나보는 한 가지 일은 또한 정자程子가 세상일은 모름지기 사람으로 하여금 하게 한다는 것과 뜻이 같으니, 모두 할 때에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原注
⑩ 朱子答書曰
주자朱子허순지許順之(許升)에게 답한 편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來諭 欲棲心淡泊하야 與世少求하고 玩聖賢之言하야 以資吾神, 養吾眞者 無一字不有病痛이라
“보내온 편지에 ‘마음을 담박함에 깃들여 세상에 구하는 것을 적게 하고, 성현聖賢의 말씀을 살펴보아 나의 정신精神을 자뢰하고 나의 진리眞理(性)를 기르고자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한 글자도 병통이 없는 것이 없소.
夫人心 活物이라 當動而動하고 當靜而靜하야 不失其時 則其道光明이니 是乃本心全體大用이라
사람의 마음은 살아 있는 물건이니, 해야 할 때에는 하고 해야 할 때에는 하여 때를 잃지 않으면 광명光明해지니, 이것이 바로 본심本心전체全體대용大用이오.
如何須要棲之澹泊然後 爲得이리오
어떻게 모름지기 담박함에 깃들인 뒤에야 얻음이 되겠소.
且此心 是箇완대 又如何其可棲也邪
또 이 마음은 어떤 것이기에 또 어떻게 깃들게 할 수 있단 말이오.”
原注
⑪ 答張敬夫書曰
⑪ 〈주자朱子가〉 장경부張敬夫(張栻)에게 답한 편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來諭 謂靜則溺於虛無라하니 如佛老之論인댄 誠有此患이어니와 若以天理觀之 則動之不能無靜 猶靜之不能無動也 靜之不可不養 猶動之不可不察也
“보내온 편지에 ‘하면 허무에 빠진다’고 하였으니, 이 한 정자靜字불로佛老의 말과 같이 여긴다면 진실로 이러한 병통이 있거니와 만약 천리天理로 본다면 이 없을 수 없는 것은 이 없을 수 없는 것과 같으며, 을 기르지 않을 수 없음은 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但見一動一靜 互爲其根하고 敬義夾持하야 不容間斷之意 則雖下靜字라도 元非死物이라 至靜之中 自有動之端焉하니 이라
다만 한 번 하고 한 번 하는 것이 서로 뿌리가 되고 를 양쪽으로 잡아서 간단間斷함을 용납하지 않는 뜻을 본다면 비록 정자靜字를 놓더라도 원래 죽은 물건이 아니어서 지극히 한 가운데에 자연 의 단서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천지天地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선왕先王동지冬至관문關門을 닫은 까닭입니다.
蓋當此時 則安靜以養乎此耳 固非遠事絶物하고 閉目하야 而偏於靜之謂
이때를 당하면 안정安靜하여 이것(陽)을 기를 뿐이니, 진실로 사물을 멀리 끊고 눈을 감고 오똑히 앉아서 에 편벽되게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但未接物時 便有敬以主乎中이면 則事至物來 善端昭著하야 所以察之者益精明耳리라
다만 사물을 접하지 않았을 때에 곧 을 두어 마음을 주장하면 사물이 올 적에 착한 마음이 밝게 드러나서 살피는 것이 더욱 정밀해지고 분명할 것입니다.
又謂某言以靜爲本 不若遂言以敬爲本이라하니 此固然也어니와
또 말씀하기를 ‘제가 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말한 것은 마침내 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말하는 것만 못하다’고 하셨는데, 이는 참으로 옳습니다.
然敬字工夫 而必以靜爲本하니 今若遂易爲敬이면 雖若完全이나 却不見敬之所施 有先有後하니 亦未爲
그러나 경자敬字의 공부가 을 관통하되 반드시 을 근본으로 삼으니, 이제 만약 경자敬字로 바꾼다면 비록 완전한 듯하나 의 베푸는 바가 가 있음을 볼 수 없으니, 또한 적당的當(正當)하지 못합니다.
必如所謂要須靜以涵動之所本하고 察夫動以見靜之所存하야 動靜하고 體用不離而後
반드시 보내온 편지에 말씀한 대로 ‘모름지기 으로써 의 근본한 바를 함양하고 을 살펴 의 보존한 바를 보아서 이 서로 필요하고 이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과 같이 한 뒤에야 물샐 틈이 없게 될 것입니다.
此數語卓然하야 意語俱到하니 當書之座右하야 出入觀省이로라
이 몇 말씀은 드높아서 뜻과 말이 모두 지극하니, 마땅히 이것을 자리 오른쪽에 써 붙여서 출입할 때에 보며 살피겠습니다.”
原注
○ 南軒張氏曰
남헌장씨南軒張氏가 말하였다.
程子敎人以敬니라
정자程子가 사람들에게 을 하라고 가르친 것은 곧 주자周子을 주장한다는 뜻이다.”
原注
○ 又曰
또 말씀하였다.
一二年來 頗專於敬字上勉力호니 愈覺周子主靜之意 爲有味
“1, 2년 동안에 자못 오로지 경자敬字 에 힘을 써보니, 주자周子을 주장한다는 뜻이 재미가 있음을 더욱 깨닫겠다.
程子謂於喜怒哀樂未發之前生求리오
정자程子가 이르시기를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발하기 이전에 다시 무엇을 구한단 말인가.
只平日涵養 便是라하시니 此意 當深體之也니라
다만 평소에 함양涵養하는 것이 곧 이것이다’ 하였으니, 이 뜻을 마땅히 깊이 체득해야 할 것이다.”
原注
西山眞氏曰
서산진씨西山眞氏가 말하였다.
南軒此言 蓋合이니 學者宜深味之니라
남헌南軒의 이 말씀은 을 합하여 하나로 만든 것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깊이 음미해야 할 것이다.”
역주
역주1 牛山之木章 : 《孟子》 〈告子 上〉에 보인다.
역주2 [釋疑]牛山 : 齊나라 都城의 동쪽에 있는 산이다.
역주3 [刊補]郊 : 邑의 밖을 郊라 하니, 都城의 10里 밖이다. 郊의 밖을 牧이라 하고 牧의 밖을 野라 하고 野의 밖을 林이라 한다.
역주4 [刊補]日夜之所息 : 息은 生長한다는 뜻이다. 饒氏(饒魯)가 말하기를 “息字의 訓詁는 본래 止息인데, 물건은 쉬기만 하면 자라기 때문에 息字를 生長의 뜻으로도 풀이한다.” 하였다. 吐를 ‘이(是)’로 달아야 하니, ‘과(果)’로 다는 것은 잘못이다. [補註]日夜는 밤낮의 뜻이나 여기서는 특히 밤을 위주하여 말하였는 바, 아래 夜氣에서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刊補》에는 吐를 ‘이’로 달아야 함을 강조하였으나 內閣本 諺解와 栗谷의 諺解 및 艮齋(田愚)의 懸吐에 모두 ‘과’로 표시되었으므로 그대로 따랐음을 밝혀둔다. ‘日夜之所息이’로 懸吐할 경우 ‘日夜에 生長한 것이 비와 이슬의 적셔줌에’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역주5 [釋疑]濯濯 : 草木이 없어 깨끗한 모양이다.
역주6 [釋疑]仁義之心 : 仁‧義‧禮‧智의 四德 중에 다만 仁과 義만을 말하였으니, 이 두 글자를 들면 禮와 智는 이 가운데에 들어 있는 것이다. 朱子는 말씀하기를 “禮는 仁의 드러난 것이요, 智는 義의 감추어진 것이다.” 하였다.
역주7 [釋疑]好惡與人相近 : 곧 사람의 마음에 똑같이 옳게 여기는 것[人心之所同然]이니, 바로 仁義의 良心이다. [補註]好惡는 善을 좋아하고 惡을 미워하는 올바른 마음을 가리킨다. ‘사람의 마음에 똑같이 옳게 여긴다’ 함은 義理의 良心을 누구나 옳게 여기는 것으로 《孟子》 〈告子 上〉에 “입이 맛에 있어서 똑같이 즐김이 있으며, 귀가 소리에 있어서 똑같이 들음이 있으며, 눈이 色에 있어서 똑같이 아름답게 여김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마음에 이르러서만 홀로 똑같이 옳게 여기는 바가 없겠는가. 마음에 똑같이 옳게 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理와 義를 말한다. 聖人은 우리 마음에 똑같이 옳게 여기는 바를 먼저 아셨다. 그러므로 理‧義가 우리 마음에 기쁨은 芻豢이 우리 입에 좋음과 같은 것이다.[口之於味也 有同耆焉 耳之於聲也 有同聽焉 目之於色也 有同美焉 至於心 獨無所同然乎 心之所同然者何也 謂理也 義也 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耳 故理義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 라고 보인다.
역주8 [釋疑]梏亡 : 良心을 梏亡하는 것이다.
역주9 [刊補]夜氣不足以存 : 氣로써 理를 담고 있으니, 存은 바로 仁義의 良心을 보존하는 것이다. 氣가 만약 桎梏하여 망하게 되면 理도 따라서 망하게 된다. ○ 살펴보건대 낮에 하는 소행이 이 良心을 梏亡하니, 반복해서 梏亡하면 精神이 소모되고 氣가 흩어져서 良心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이다. [補註]夜氣는 사람이 새벽에 잠을 자고 일어나서 맑고 깨끗한 기운(마음)으로 뒤에 인용한 日夜之所息의 夜와 平旦之氣의 氣를 합하여 말한 것이다.
역주10 [釋疑]此豈山之性也哉 …… 是豈人之情也哉 : 山에는 性이라고 말하고 사람에게는 情이라고 말하였으니, 性은 곧 情의 근본이고 情은 바로 性의 苗脈이다. 性을 말하면 情이 이 가운데에 들어 있고 情을 말하면 性이 이 가운데에 들어 있으니, 서로 바꾸어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산은 情이 없고 사람은 性과 情을 갖추고 있으므로 산에는 性이라고 말하고 사람에게는 情이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11 : 向
역주12 [釋疑]人心之同然 : 朱子는 말씀하기를 “然은 곧 옳다, 아니다 할 경우의 然이니, 사람의 마음이 똑같이 옳게 여기는 것은 바로 義理이다.” 하였다.
역주13 [刊補]神明不測 …… 朱其養也 : 살펴보건대 《孟子》의 本註에는 ‘神明不測’의 아래에 ‘得失之易而保守之難’으로 이었고, ‘失其養’의 아래에 ‘學者當無時而不用其力’으로 이었으니, 出入과 得失 및 學者는 어느 때나 힘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겸하여야 뜻이 비로소 완전히 갖추어진다. 그런데 지금 위태롭게 동하여 편안하기 어렵다고만 말하였으니, 어떠한지 모르겠다. [補註] 《孟子》 本註(朱子의 集註)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孟子引之 以明心之神明不測 得失之易而保守之難 不可頃刻失其養 學者當無時而不用其力 使神淸氣定 常如平旦之時 則此心常存 無適而非仁義矣”
역주14 [刊補]范純夫之女 : 뒤에 耿氏에게 시집갔는데, 일찍 죽었다.
역주15 [釋疑]勞攘 : 勞는 수고로움이요 攘은 쫓아다님이다.
역주16 [譯註]口耳之學 : 학문을 함에 있어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지 않고, 단지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을 이른다.
역주17 [刊補]所謂至靜者 固自若也 : 退溪가 崔見叔(崔應龍)에게 답하기를 “蘭溪의 말은 朱子가 인용한 胡文定의 ‘백 번 일어났다가 백 번 없어지더라도 마음은 진실로 그대로이다’ 라는 말과 같으나, 이 말은 더욱 의심스러울 만하다. 한 번 動하고 한번 靜하는 것은 마음의 體와 用이니, 지극히 고요한 한 마음이 별도로 있어서 분분한 잡념 속에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다. …… ” 하고는 아래의 두 絶句를 지어 그 뜻을 논하였다. 이 詩에 “明鏡止水는 마음과 같아 고요함이 體가 되니, 動할 때에 파도가 일면 고요함을 찾기 어렵네. 비록 고요하지 않더라도 고요함이 없는 것은 아니니, 파도가 그치면 예전 그대로 물은 고요히 깊다네.[止水如心靜爲體 動時波洶靜難尋 縱饒不靜非無靜 浪息依然水靜深]” 하였으며, 또 “體가 用을 따라 잘못되면 고요함이 없는 듯하지만, 본성은 끝내 없어지지 아니하여 그대로 있다네. 고요하면 원래 그대로라고 말할 뿐이니, 蘭溪의 이 말은 너무 심한 것이 아니겠는가.[體隨用失如無靜 性不終亡本固存 只說靜爲元自若 蘭溪無乃太深言]” 하였다. [補註] 이 시는 《退溪集》에 보이는 바, 詩序에 “蘭溪范氏가 이르기를 ‘여러 가지 생각이 번거로우나 지극히 고요한 것은 진실로 그대로이다’ 하였는데, 府伯인 崔見叔이 이를 의심하였다. 나는 생각하건대 이러한 이치가 없는 것은 아니나, 단지 ‘自若’ 두 글자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두 絶句로써 그 뜻을 논한다.[范蘭溪云 百慮煩擾 至靜者自若 崔見叔府伯以爲疑 某謂非無此理 但自若二字 可疑耳 以二絶論其旨]” 하였다.
역주18 [釋疑]權輿 : 저울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저울대[權]부터 시작하고, 수레를 만들 때에는 반드시 수레 판[輿]부터 시작하므로 일의 시초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역주19 [釋疑]石子重 : 이름은 (敦/土)(돈)이고 호는 克齋이니, 朱子의 門人이다.
역주20 [釋疑]兼出入兩字 有善有惡 : 兼은 又字와 且字의 뜻이 있다. 石子重은 ‘마음은 놓아버리면 없어지기 때문에 출입하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어서 그 방향을 알지 못한다’고 잘못 말하였다. 이에 朱子는 말씀하기를 “들어와 보존된 것은 善이고 나가 없어진 것은 惡이니, 어찌 보존되어 善한 것까지 아울러 모두 놓아버리면 없어지는 소치로 본단 말인가.” 하였다.
역주21 [釋疑]方起方滅 : 막 없어지는 것[方滅]도 마음의 用이라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막 일어나는 것[方起]은 마음이 처음 동할 때이고 막 없어지는 것은 마음이 이미 동하여 靜으로 돌아가는 때여서이다.
역주22 [釋疑]寂然不動之本體 …… 斯乃所以感而遂通天下之故 : 《周易》 〈繫辭傳〉에 “생각함이 없고 함이 없어서 고요하여 동하지 않다가 感하면 마침내 天下의 故(所以然)를 통한다.[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 天下之故]” 하였다.
역주23 [刊補]彼未嘗不生 : 彼는 日夜를 가리킨다.
역주24 [釋疑]如被他禁械 …… 更不容他 : 위의 他字는 바로 낮에 하는 나쁜 일이고, 아래의 他字는 바로 良心이니, 械梏의 일로 말하면 위의 他字는 桎梏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아래의 他字는 바로 몸이다. [補註]他는 저것이라는 뜻으로 지시대명사이며, 械梏은 형틀이다.
역주25 [刊補]如睡 一覺起來 : 다음 날 아침이 온다(된다)는 뜻과 같다.
역주26 [釋疑]依前無狀 : 잠을 자다가 깨면 다시는 잠을 잘 생각이 없어서 잠들기 전과 똑같은 것이다. 良心이 나오는 때는 비유하면 잠잘 때와 같고, 良心이 없어진 때는 비유하면 잠을 깨었을 때와 같은 것이다.
역주27 [刊補]閑思慮 : 쓸데없는 생각이란 말과 같다.
역주28 [釋疑]便著緊 …… 勝他不去 : 《語類》에 이 일을 비유하여 이르기를 “한 사람은 문안에 있고 한 사람은 문 밖에 있어 서로 끌어당길 적에 만약 문안에 있는 사람의 힘이 약하면 이기지 못하여 문 밖에 있는 사람에게 끌려가고, 만약 힘이 세어 제어할 수 있으면 끌려가지 않는다. 만약 잡아당길 수가 없어서 문 밖에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면 이 집이 타인의 집이 되지 않는 것도 다행일 것이다.” 하였다.
역주29 [釋疑]商量 : 비유하면 집을 짓는 자가 먼저 터를 평평하게 고른 뒤에 집 짓는 일을 商量(헤아림)하는 것과 같다.
역주30 [譯註]今摭其論操存之說十一條如左 : 十一條는 위의 ‘程子曰’條부터 그 아래 ‘又曰人多思慮’條, ‘又曰人心’條, ‘又曰君實’條, ‘又曰有謂’條, ‘又曰司馬子微’條, ‘又曰人於夢寐間’條, ‘張子曰’條, ‘朱子曰’條, ‘又曰李先生’條, ‘又曰人有一正念’條까지의 열한 조목을 가리킨다.
역주31 : 현
역주32 [刊補]止於事 : 事字는 그 理를 겸하여 말한 것이다. ○ 退溪가 崔見叔에게 답하기를 “思慮가 紛擾함은 배우는 자들의 공통된 병통이다. 지금 이것을 고치고자 한다면 程子의 ‘일에 그친다[止於事]’는 말씀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大學》에서도 그칠 데를 안 뒤에 定하고 고요하고 편안한 효과가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한갓 이 한 마디만 지켜서는 또한 일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하여 朱門에서는 居敬(尊德性)을 중시하면서도 窮理(道問學)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학문의 첫 번째 義理로 여긴 것이다. 程子 또한 ‘익힘이 專一할 때에야 바야흐로 좋게 된다’ 하였으니, 이 말씀이 더욱 맛이 있다.” 하였다.
역주33 [譯註]爲人君止於仁 : 《大學》에 보이는 내용으로 文王의 德行을 표현한 것이다.
역주34 [譯註]四凶 : 堯임금 때의 네 흉악한 사람으로 共工과 驩兜, 三苗와 鯀(곤)을 이르는 바, 공공은 관명이고 삼묘는 삼묘의 군주인데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舜임금은 섭정을 하면서 공공을 幽州로 귀양보내고 환도를 崇山으로 추방하고 삼묘를 三危에 가두고 곤을 羽山에 가두었는데, 죄가 있어 처벌하였을 뿐이요, 개인의 감정이 개입(관여)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35 [釋疑]舜何與焉 : 사람의 예쁘고 미운 것이 저절로 거울에 나타나 거울이 예쁘게 만들거나 밉게 만들 수가 없고 다만 그 形體에 따라 응할 뿐이니, 舜임금이 四凶을 誅罰한 따위가 바로 이것이다.
역주36 [刊補]物各付物 : 사물에는 각기 당연한 이치가 있으니, 그 이치를 따라 대응하고 자기의 사사로운 마음으로 적당히 안배하지 않음을 이른다. [補註] 사물이 지니고 있는 原則대로 그 사물에 대처함을 이르는 바, 나쁜 사람에게는 그대로 벌을 주고 좋은 사람에게는 그대로 상을 주며,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살아가고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역주37 : 칙
역주38 [譯註]人有四百四病 皆不由自家 : 鄭萬陽‧鄭葵陽 兄弟가 지은 《塤篪別集》 일명 《兩先生別集》의 〈心經釋疑補遺〉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黃仲擧(黃俊良)가 묻기를 ‘사람들의 4백 4가지 질병은 모두 外感에서 오는 것으로 모두 자신에게 말미암지 않으나 오직 마음만은 操存함이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모름지기 자신에게 말미암도록 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一說에는 사람의 4백 4가지 질병은 모두 마음에 말미암고 몸에 말미암지 않으므로 모름지기 자신에게 말미암도록 통제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니, 退溪는 ‘앞의 해석이 맞는다’ 하였다. 내가 일찍이 《維摩經》을 보니, ‘이 몸이 재앙이 되어 1백 1가지 질병과 번뇌가 생겨난다’ 하였는데, 僧肇의 註에 ‘한 번 크게 增損하면 1백 1가지의 질병이 생기고 네 번 크게 增損하면 4백 4가지의 질병이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 하였으니, 이것을 가지고 보면 4백 4가지의 질병은 참으로 모두 자신에게 말미암지 않는 바, 退溪가 ‘앞의 해석이 맞는다’고 답하신 것이 십분 옳아 의심할 것이 없다.”
역주39 [釋疑]翻車 : 물을 퍼 올리는 기구로 水車라 이름한다. 陳簡齋(陳興義)의 詩에 “황폐한 마을에 종일토록 수차가 울린다.[荒村終日水車鳴]” 하였다.
역주40 [釋疑]張天祺 : 이름은 戩(전)이니, 張橫渠의 아우로 修養功夫에 苦心하여 힘을 다한 學者였다.
역주41 [釋疑]自上著牀 : 牀은 寢牀이니, 中原(中國) 사람들은 앉고 눕는 것을 반드시 침상에서 한다.
역주42 [釋疑]便不得思量 : 張天祺의 말은 여기까지이다.
역주43 : 纔
역주44 [釋疑]亦須寄寓在一箇形象 : 이 조목은 아랫글에 君實(司馬光)이 잠을 자지 않았다는 조목과 같은 뜻이다. 이른바 形象은 하나의 好字와 같은 類이니, 禪家에도 이러한 話頭가 있다. 혹자는 이르기를 “항상 思量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思量하지 않는 것도 형상이다.” 하였고, 혹자는 이르기를 “이 마음을 억지로 속박해서 항상 몸속에 있게 하면 몸도 하나의 형상이다.” 하였다.
역주45 [釋疑]强把這心 …… 皆非自然 : 위에서는 모름지기 이 마음을 억지로 잡아서 속박하라고 하였고, 아래에서는 또한 모름지기 하나의 形象에 붙여 두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두 가지 일이기 때문에 皆라고 한 것이다. [刊補]黃仲擧(黃俊良)가 묻기를 “張天祺가 침상에 올라가서 思量하지 않기로 작심했는데, 잠시라도 思量하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이 마음을 잡아서 제재하고 속박하거나, 또는 혹 하나의 形象에 붙여 두어야 할 것이니, 이는 마치 司馬溫公이 中字를 찾는 것을 염두에 둔 것과 같습니다. 두 가지가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하니, 退溪는 답하기를 “나쁜 思慮뿐만 아니라 비록 좋은 思慮라도 만약 마음을 두어 억지로 몰아내거나 제재하고 속박하여 동요하지 않게 하려고 하면 모두 병통이 된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억지로 제재하고 속박하는 것과 形象에 붙여 두는 것은 각각 하나의 병통이다. 조금이라도 思量하지 않으려 하면 이는 마음을 제재하고 속박하는 것이요, 또 思量하지 않을 것을 思量하는 것은 곧 하나의 形象을 잡아서 여기에 붙여두는 것이니, (朱子는 말씀하기를 “思量하지 않을 것을 思量하는 것은 하나의 形象에 붙여두는 것이다.” 하였다.)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역주46 [刊補]良自苦 : 良은 儘(진실로)과 같은 뜻이다.
역주47 [釋疑]却不如與一串數珠之愈也 : 數珠는 佛家의 念珠이다. 이 염주를 셀 때에는 생각이 염주에 있어서 마음이 다른 데로 가지 않는다.
역주48 : 삼
역주49 : 쇄
역주50 [釋疑]愼生不恣意 : 生(衛生 또는 生命)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음을 말한다.
역주51 [釋疑]外事 : 飮食과 男女 따위이다.
역주52 [刊補]悠悠 : 한가하여 긴요함이 없다는 말과 같다.
역주53 [釋疑]司馬子微作坐忘論 : 司馬子微는 이름이 承禎이니, 煉丹術을 한 자이다. 坐忘論은 그가 지은 것인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坐忘이란 생각을 함으로 인하여 얻고, 생각을 함으로 인하여 잊는 것이다. 길을 가면서도 길 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坐의 뜻이 아니겠는가. 보이는 것이 있는데도 보지 않는 것이 忘의 뜻이 아니겠는가. 어째서 가지 않는다고 이르는가? 마음이 동하지 않기 때문이요, 어째서 보지 않는다고 이르는가? 형체가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다. 혹자가 ‘어떻게 하여야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天隱子는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또 ‘어떻게 하여야 형체를 모두 없앨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天隱子는 눈을 감고 보지 않았다. 이에 혹자는 道를 깨닫고 물러가며 말하기를 ‘道는 과연 나에게 있다’ 하였다. 이에 彼와 我를 모두 잊어서 전혀 照會하는 바가 없었다.” ○ 살펴보건대 이에 근거해 보면 坐와 忘이 자연 두 가지 일이요, 坐馳(앉아서 달림)의 說로 살펴보면 자연 한 가지 일이다. 坐馳는 몸은 여기에 앉아 있으나 마음은 밖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莊子》의 註에 “몸이 비록 이곳에 앉아 있으나 마음이 밖으로 달려간다면 또 어찌 坐忘(앉아서 잊음)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여 坐馳 두 글자로 도리어 坐忘을 설명하였다. [補註]坐忘과 坐馳는 《莊子》 〈大宗師〉와 〈人間世〉에 보인다.
역주54 : 纔
역주55 [釋疑]敬以直內 : ‘敬하여 써 內를 直하다’로 해석한다. ○ 마음이 스스로 敬하면 저절로 곧아짐을 말한 것이다.
역주56 [釋疑]以敬直內 : ‘敬으로써 內를 直하다’로 해석한다. ○ 한 마음으로 敬을 지켜서 마음을 곧게 함을 이르니, 이는 마음으로 마음을 부려서 도리어 분분하고 소요함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곧지 못하다고 말한 것이다.
역주57 [釋疑]魂與魄交 : 魂은 陽이니, 깨어 있을 때에는 밖으로 나타났다가 잘 때에는 陰精인 魄에 칩거한다.
역주58 [釋疑]便精切似二程 : 似는 於이니, 二程보다 정밀하고 간절함을 말한 것이다. [刊補]似字는 於字와 같다. 張橫渠의 말씀이 二程보다 더욱 정밀하고 간절하다는 뜻이다.
역주59 [釋疑]同安 : 縣의 이름이니, 朱子가 이 縣의 主簿가 되었었다.
역주60 [釋疑]致志 : 《孟子》 〈告子 上〉에 ‘專心致志(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지극히 함)’란 말이 보인다.
역주61 [釋疑]看得來 : 得來는 語助辭이다.
역주62 [釋疑]扶溝 : 地名이니, 明道가 이곳의 主簿가 되었었다.
역주63 [釋疑]靜坐 : 無思無念의 상태로 앉아 있는 것인 바, 朱子는 말씀하기를 “靜坐는 무릎꿇고 앉는 것과 다리를 포개고 앉는 것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역주64 [譯註]自明道先生以下凡得九條 : 九條는 ‘謝顯道從明道先生’條부터 그 아래 ‘伊川先生’條, ‘邵康節先生’條, ‘朱子曰’條, ‘問程子常敎人靜坐’條, ‘又曰延平先生’條, ‘又曰今人’條, ‘先生問伯羽’條, ‘又曰心未嘗遇事時’條까지의 아홉 조목을 가리킨다.
역주65 [釋疑]百原(源)山 : 共城縣에 있으니, 康節이 講學하던 곳이다.
역주66 [釋疑]闢書齋 : 闢은 造(만들다), 開(열다)와 같다.
역주67 [釋疑]王勝之 : 이름은 益柔이다.
역주68 [釋疑]聲氣 : 音聲과 神氣(정신기운)이다.
역주69 [釋疑]亦是他見人要多慮 : 《語類》에는 慮字 위에 思字가 있다. ○ 他는 程子를 가리킨다.
역주70 [釋疑]眞箇是不同 : 不同은 自別(각별, 특별)함이다.
역주71 [刊補]零碎工夫 無湊泊處 : 零은 餘雨(가랑비)이고, 碎는 잘게 부순다는 뜻이다. 湊泊은 혹 ‘揍泊’이라 쓰기도 하는데, 모여들어 정박한다는 말이다.
역주72 [釋疑]伯羽 : 董蜚卿의 字이다.
역주73 [釋疑]痛抑 …… 只是放退 : 痛抑은 억지로 제재하는 뜻이고, 放退는 놓아 물러가게 하는 것이다.
역주74 [釋疑]靜專 : 《周易》 〈繫辭傳〉에 “乾은 그 靜함은 전일하고 그 動함은 곧다. 이 때문에 大가 생겨난다.[乾 其靜也專 其動也直 是以大生焉]” 하였다.
역주75 [譯註]自程子以下凡得十條 : 十條는 ‘程子曰’條부터 그 아래 ‘邵伯溫’條, ‘又曰入道’條, ‘又曰大凡’條, ‘橫渠先生’條, ‘又曰學者’條, ‘朱子曰’條, ‘又曰敬’條, ‘又曰敬’條, ‘問居常持敬’條까지의 열 조목을 가리킨다.
역주76 [釋疑]邵伯溫 : 字는 子文이니, 康節(邵雍)의 아들이다.
역주77 [釋疑]不是事累心 : 佛老는 일이 마음을 얽매는 것만 알고 마음이 일에 얽매임은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모두 寂滅과 玄妙를 추구한 것이다.
역주78 [釋疑]當知天下無一物是合少得者 不可惡(오)也 : 天下의 事物이 모두 없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得字는 굳이 해석할 필요가 없다. [補註]合은 當과 같고 少는 無(없음)와 같은 바, 合少得은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이란 뜻이다.
역주79 [釋疑]如致知用敬 亦是先侵了正心誠意地位 :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히 할 때에 마땅히 持敬(경을 지킴) 공부를 써야 하고, 지식을 지극히 할 때에도 마땅히 敬을 써야 하므로 말한 것이다. [補註]致知는 知工夫이고 正心‧誠意는 行工夫인 바, 敬은 몸과 마음을 공경하는 것으로 行工夫에 해당한다. 그러나 致知 역시 敬과 誠意가 없이는 안 되므로 行工夫인 正心‧誠意의 지위(경계)를 침범한다고 말한 것이다.
역주80 [釋疑]曰事爲 : 앞에 마땅히 ‘朱子’ 두 글자가 있어야 한다.
역주81 [譯註]恭而安 : 공손하면서도 불안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論語》 〈述而〉에 “子溫而厲 威而不猛 恭而安” 이라고 보인다.
역주82 [刊補]可知是學不成 有多少病在 : 有多少病在는 허다한 병통이 있다는 말이다. 知字는 在字 다음에 새겨야 한다.
역주83 [釋疑]恭如勿忘 安如勿助長 : 《孟子》에 “반드시 일삼음이 있으면서도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라.[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 하였으니, ‘잊는다[忘]’는 것은 그 일을 내버려두고 하지 않음을 이르고, ‘조장한다[助]’는 것은 공부는 하지 않고 망령되이 효험만을 바람을 이른다. 孟子는 비록 浩然之氣를 길러야 한다고 말씀하였으니, 이와 같이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고〉 공부하여 오래되면 자연 節度에 맞아 편안해지는 것이다.
역주84 [刊補]硬把 : 굳고 강하게 잡는다는 뜻이다.
역주85 [釋疑]涵養 : 養字가 《近思錄》에는 泳字로 되어 있다.
역주86 [釋疑]除是 : ‘是非를 덜고’로 해석한다. [補註]除是非의 줄임말로 除非라고도 쓰는 바, ‘이 말 저 말 할 것 없이’ 또는 ‘여하튼(如何間에)’과 같은 뜻이다.
역주87 [釋疑]徹頭徹尾 : 始終을 일관한다는 말과 같다.
역주88 [釋疑]所以抵敵人欲 : 소나 양이 뿔로 물건을 받는 것을 抵라고 하니, 人欲이 올적에 이 마음을 공경히 지켜서 대적하는 것은 마치 뿔로 물건을 받아서 물건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역주89 [釋疑]扶策 : 扶持하고 警策하는 것이다.
역주90 : 纔
역주91 [刊補]問居常持敬 : 《朱子語類》에 나오는 楊道夫의 疑目 九條 가운데 하나이다. [補註]楊道夫는 字가 仲思이며 建寧府 사람이다.
역주92 [釋疑]擎跽曲拳 : 《莊子》의 註에 “擎은 손을 드는 것이고, 跽는 무릎을 꿇는 것이다. 拳은 卷과 같으니, 또한 굽힌다는 뜻으로 모두 공경하여 절하고 무릎꿇는 모양이다.” 하였다. [補註] 《莊子》 〈人間世〉에 보인다.
역주93 [釋疑]二先生 : 程子와 朱子를 가리킨다.
역주94 [釋疑]魯齋許氏 : 이름은 衡이고 자는 平仲이니, 南宋의 進士로 元나라에서 벼슬하였다.
역주95 [譯註]自視聽色貌言事疑忿得 : 九思의 조목인 視思明‧聽思聰‧色思溫‧貌思恭‧言思忠‧事思敬‧疑思問‧忿思難‧見得思義의 앞에 나오는 글자를 든 것으로 《論語》 〈季氏〉에 보인다.
역주96 [釋疑]便索要敬 : 索과 要는 모두 求字와 欲字의 뜻이다.
역주97 [釋疑]許氏生裔戎俶擾之秋 : 裔는 먼 변방이다. 俶은 시작이다. 金나라와 元나라가 中國을 어지럽혀 衣冠과 文物이 모두 大江(揚子江) 이남으로 옮겨갔는데, 許氏는 江北인 懷孟에서 출생하였다. [補註]秋는 시기를 이른다. 가을은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중요한 시기를 秋라고 하는 바, 諸葛亮의 出師表에도 ‘危急存亡之秋’ 라고 보인다.
역주98 : 칙
역주99 [釋疑]心具寂感 : 위의 朱子가 石子重에게 답한 조목에 이미 보인다.
역주100 [釋疑]正毫釐千里之辨 : 이른바 털끝 만한 차이가 종말에는 千里나 어긋난다는 것이다. 마음은 두루 유행하여 막히지 않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니, 만약 靜에만 한결같이 한다면 반드시 禪學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니, 이는 다만 털끝 만한 차이를 다툴 뿐이다.
역주101 [譯註]凡得十一條 具列如左 : 十一條는 ‘程子曰’條부터 그 아래 ‘又曰呂與叔’條, ‘張子曰’條, ‘上蔡謝氏曰’條, ‘朱子答楊子直書曰’條, ‘問敬通貫動靜’條, ‘問一向把捉’條, ‘問當官事多’條, ‘黃直卿’條, ‘朱子答許順之書曰’條, ‘答張敬夫書曰’條까지의 열한 조목을 가리킨다.
역주102 [釋疑]疑養氣爲有助 : 이 養氣는 바로 老莊에서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는 학문이요, 孟子의 이른바 養氣(浩然之氣를 기름)가 아닌데, 呂與叔은 性理學에 도움이 있다고 의심한 것이다.
역주103 [釋疑]忠信所以進德 : 《周易》 〈乾卦 文言傳〉에 “忠信은 德을 진전하는 것이다.” 하였는데, 그 註에 “忠信은 마음을 주장하니, 한 생각도 성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하였다.
역주104 [釋疑]又如絶四後 畢竟如何 : ‘네 가지(意‧必‧固‧我)를 끊은 뒤에 그 氣象이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반드시 枯木死灰와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함과 같다.
역주105 [釋疑]枯木死灰 : 마른나무와 죽은(꺼진) 재로, 《莊子》에 보이는데, 頑然하여 知覺이 없는 모양이다. [補註] 《莊子》 〈齊物論〉에 보인다.
역주106 [釋疑]大小大直截也 : 大小大는 多少라는 말과 같고 直截은 분명하다는 뜻과 같다. ‘君則是君’ 이하는 바로 ‘義以方外’를 해석한 것이다. [補註]多少는 때로는 많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적음을 나타내기도 하는 바, 여기서는 매우 많음(큼)을 의미한다.
역주107 : 오
역주108 [刊補]瞬有養 息有存 : 《韻會》에 “瞬은 눈을 자주 깜빡거리는 것이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원문(橫渠集)에는 ‘瞬有存 息有養’으로 되어 있다.
역주109 [譯註]生意 : 萬物을 낳는 뜻, 또는 萬物의 살려는 뜻을 가리킨다.
역주110 [釋疑]事至應之 : 應之는 마음이 응함을 이른다.
역주111 [釋疑]此常存 : 此는 마음을 가리킨다.
역주112 [譯註]夫子曰 事思敬 : 夫子는 孔子를 가리키며 事思敬은 九思의 하나로 《論語》 〈季氏〉에 보인다.
역주113 [釋疑]楊子直 : 이름은 方이니, 朱子의 門人이다.
역주114 [釋疑]揠苗助長 : 孟子는 助長하는 잘못을 논하면서 苗(벼싹)를 뽑는 것을 들어 증명하였는 바, 《孟子》 〈公孫丑 上〉의 浩然之氣章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15 [譯註]存則有揠苗助長之患 否則有舍而不芸之失 : 揠苗助長과 舍而不芸은 모두 《孟子》 〈公孫丑 上〉의 浩然之氣章에 보이는 내용으로, 孟子는 浩然之氣를 기르는 방법을 논하면서 “반드시 浩然之氣를 기르는데 종사하되 효과를 기대하지 말라. 효과를 기대하다가 성과가 없어 억지로 助長하면 이는 마치 농부가 벼를 가꾸다가 잘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하여 벼싹을 뽑아 올려놓는 것과 같으며, 또 浩然之氣를 내버려 두고 기르지 않으면 이는 마치 벼를 내버려 두고 김매지 않는 것과 같다.” 한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역주116 [刊補]不成說事多撓亂我 且去靜坐 : 일이 많아 나를 요란하게 하므로 우선 가서 靜坐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역주117 [刊補]學到專一時方好 : 이 말은 蘇季明과의 問答 가운데 있는 말로, 〈敬以直內章〉에 보인다.
역주118 [釋疑]程子此段 : 蘇季明이 喜怒哀樂의 未發을 물은 한 단락이다.
역주119 [釋疑]這一句 : ‘學問은 專一함에 이르렀을 때에 비로소 좋다’는 한 구이다.
역주120 [刊補]衰颯(쇠삽) : 쓸쓸한 모양이다.
역주121 [刊補]這箇也不須只管恁地把捉 …… 便是敬 : 살펴보건대 ‘這箇’에서 ‘一箇心’까지는 마음을 잡는데 따르는 병통을 구원한 것이고, ‘公若知得’에서 ‘便是敬’까지는 마음을 놓아버리는 데 따르는 병통을 구원한 것이다.
역주122 [刊補]須去幹了 : 幹은 《周易》 〈蠱卦〉에 말한 ‘幹蠱’의 幹이다. 《周易》의 註에 “나무에 큰 줄기가 있는 것과 같다.” 하였다. [補註]幹蠱는 일을 주관하는 것으로, 나무의 큰 줄기를 幹이라 하는 바, 사람이 중한 임무를 맡아 일을 처리함은 나무의 큰 줄기와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역주123 [釋疑]思量敎了 : 了는 끝마침이다. [補註]敎는 ‘하여금’이니, 思量하여 끝마치게 함을 말한다.
역주124 [釋疑]膠膠擾擾 : 《莊子》의 註에 “擾는 어지러움이다.” 하였다. 膠膠 또한 擾擾의 뜻이다. [補註] 《莊子》 〈天道〉에 보인다.
역주125 [釋疑]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 〈太極圖說〉에 보인다.
역주126 [釋疑]截斷二字 最緊要 : 물은 자가 思慮가 많음을 걱정하였으므로 이 두 글자를 긴요함으로 삼은 것이다.
역주127 [釋疑]將息病 : 將은 기름(요양)이요, 息은 調息(조리함)이다.
역주128 [譯註]楊氏爲我 : 楊氏는 戰國時代의 思想家인 楊朱이며 爲我는 자신만을 위하는 것으로 《孟子》 〈滕文公 下〉에 “楊氏는 자신만을 위하니,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다.” 라고 보인다.
역주129 [釋疑]這般學 : 이까짓 학문이란 뜻으로 楊氏의 學問을 가리킨다.
역주130 [釋疑]一月日 : 한 달의 어느 날을 이른다. [補註] 번역에서는 日字를 풀이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역주131 [釋疑]他門 : 門은 們과 통하는 바, 他人을 지칭한다. [補註]他們은 ‘저 사람들’이란 뜻이다.
역주132 [釋疑]許順之 : 이름은 升이니, 朱子의 門人이다.
역주133 [刊補]什麽(십마) : 甚麽(삼마)와 같은 말로, ‘무엇’이라는 뜻이다.
역주134 [釋疑]此二{一}字 : 二는 의심컨대 一이 되어야 할 듯하니, 靜字를 가리킨 것이다. [刊補]二는 마땅히 一이 되어야 할 듯하다.
역주135 [釋疑]是乃所以見天地之心者而先王之所以至日閉關 : 《周易》 〈復卦〉에 자세히 보인다. 冬至에 한 陽이 여러 陰의 아래에서 생기니, 이는 물건을 낳는 단서로 이른바 ‘天地의 마음’이란 것이다. 그러나 陽氣가 처음 생김에 마땅히 안정하여 길러야 한다. 그러므로 이날 關門을 닫아서 장사꾼과 여행자들이 통행하지 않게 하고 군주도 지방을 巡狩하지 않으니, 모두 어린 陽을 고요히 기르기 위한 것이다. [補註] 《周易》 〈復卦 彖傳〉에 ‘復其見天地之心’이라 하였고, 〈象傳〉에 ‘先王以 至日閉關’ 이라고 보이는 바, 復卦는 한 陽爻가 처음 아래에서 생겨 冬至에 해당하는 바, 한 陽爻가 아래에서 생김은 바로 天地가 물건을 낳는 마음이라 한다. 한 陽爻가 처음 생겨 매우 미약하기 때문에 이것을 고요히 기르기 위하여 동짓달에 관문을 닫아 여행자나 상인들이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역주136 [釋疑]兀坐 : 오똑히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佛家의 參禪과 같다.
역주137 [釋疑]貫動靜 : 貫字 앞에 본래 通字가 있다.
역주138 [釋疑]的當 : 正當의 뜻이다.
역주139 [釋疑]相須 : 《周易》의 註에 須字를 사용할 때에 待(기다리다, 필요로 하다)의 뜻으로 많이 해석하였다.
역주140 [釋疑]要須靜以涵動之所本 …… 爲無滲漏也 : 이는 본래 張南軒의 말씀인데, 朱子가 인용한 것이다. 南軒의 本文에는 “모름지기 動으로써 靜의 보존한 바를 보고 靜으로써 動의 근본한 바를 함양하도록 살펴야 한다.” 하여, 要須察夫의 뜻이 滲漏에까지 이르렀다. 朱子는 먼저 動을 말하고 뒤에 靜을 말한 것이 온당치 못하다 하여 이것을 바꾸려 하였다. 그러므로 篁墩이 이것을 바꾸어 놓았는데, 要須를 靜에 속하고 察夫를 動에 속하게 하여 本旨를 크게 잃었다. [刊補] 살펴보건대 이 부분은 곧 南軒(張栻)의 말로, 본래는 ‘要須察夫動以見靜之所存 靜而涵動之所本 …… ’이라 하였는데, 眞西山이 〈太極圖說〉을 論하면서 朱子의 뜻에 따라 動‧靜 두 구절의 위치를 바꾸어 놓고 ‘要須察夫’ 네 자를 動‧靜에 分屬시켰는데, 篁墩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晦齋先生(李彦迪)이 曺忘機堂(曺漢輔)에게 답한 편지에도 이를 인용하면서 ‘存諸靜以涵 …… 察夫動以見 …… ’이라 하였다. [補註] 《釋疑》에는 “篁墩이 이것을 바꾸어 놓았다.” 하였으나 篁墩은 眞西山의 《讀書記》를 그대로 인용하였을 뿐이니, 《刊補》의 내용이 옳다. 그러나 《刊補》에 ‘眞西山이 〈太極圖說〉을 논하면서’ 라고 한 것은 誤記로 보인다. 이 내용은 《西山讀書記》 권 19의 “程子曰 靜後見萬物自然皆有春意” 아래에 보인다. 그리고 南軒의 原文은 ‘要須察夫動以見靜之所存 靜以涵動之所本 動靜相須 體用不離’로 되어 있는데, 만일 이것을 朱子의 뜻에 따라 動靜을 靜動의 순서로 바꾼다면 마땅히 ‘要須察夫靜以涵動之所本 動以見靜之所存 動靜相須 體用不離’로 하여 ‘모름지기 靜으로써 動의 근본을 涵養하고 動으로써 靜의 보존한 바를 보아서 動과 靜이 서로 필요로 하고 體와 用이 떠나지 않음을 살펴야 한다’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역주141 [釋疑]周子主靜之意 : 공경하면 마음이 어지럽지 않기 때문에 곧 靜을 주장하는 것이다. [補註] 〈太極圖說〉에 “聖人이 中‧正‧仁‧義로써 定하되 靜을 주장하여 사람의 極(法)을 세웠다.[聖人 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 라고 보인다.
역주142 : 즘
역주143 [釋疑]敬靜爲一 : 敬과 靜은 본래 두 가지 물건이나 靜을 주장하고자 하면 반드시 敬으로써 해야 하기 때문에 敬과 靜을 합하여 하나라고 한 것이다.

심경부주 책은 2019.05.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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