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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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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子曰
道不遠人하니
이면 不可以爲道니라
[注]言道卽不遠於人한대 人不能行也
詩云
伐柯伐柯
이라하니 執柯以伐柯호되 睨而視之하고 猶以爲遠하나니
[注]則 法也
言持柯以伐木하여 將以爲柯 近以柯爲尺寸之法이라
此法 不遠人이나 人尙遠之하니 明爲道不可以遠이라
○睨 睥睨也
君子 니라
[注]言人有罪過어든 君子 以人道治之라가 其人 改則止赦之하여 不責以人所不能이라
違道不遠하니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이니라
[注]違 猶去也
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이로니
所求乎子 以事父 未能也하며 所求乎臣으로 以事君 未能也하며 所求乎弟 以事兄 未能也하며 所求乎朋友 先施之 未能也로니
[注]聖人而曰我未能 明人當勉之無已
하여 有所不足이어든 不敢不勉하며 有餘어든 不敢盡하여
言顧行하며 行顧言이니
[注]庸 猶常也
言德常行也 言常謹也
聖人之行 實過於人이나 有餘不敢盡하여 常爲人法 從禮也일새라
君子胡不리오
[注]君子 謂衆賢也
慥慥 守實言行相應之貌
君子 이요 不願乎其外니라
素富貴하여는 行乎富貴하며 素貧賤하여는 行乎貧賤하며 素夷狄하여는 行乎夷狄하며 素患難하여는 行乎患難이니
君子 無入而不自得焉이니라
不願乎其外 謂思不出其位也
自得 謂所鄕不失其道
在上位하여 不陵下하며 在下位하여 不援上이요
[注]援 謂牽持之也
正己而不求於人이면 則無怨이니
上不怨天하며 下不尤人이니라
[注]無怨 人無怨之者也
論語曰
君子 諸己하고 小人 求諸人이니라
君子 居易以俟命하고 小人 行險以徼幸이니라
[注]易 猶平安也
俟命 聽天任命也
謂傾危之道
[疏]‘子曰’至‘徼幸’
○正義曰 : 此一節明中庸之道去人不遠, 但行於己則外能及物.
‘道不遠人’者, 言中庸之道不遠離於人身, 但人能行之於己, 則是中庸也.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言人爲中庸之道, 當附近於人, 謂人所能行, 則己所行可以爲道.
若違理離遠, 則不可施於己, 又不可行於人, 則非道也,
故云‘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也’.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 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此豳風伐柯之篇, 美周公之詩.
柯, 斧柄也.
周禮云, “柯長三尺, 博三寸.”
則, 法也.
言伐柯, 斫也.
柯柄長短, 其法不遠也,
但執柯睨而視之, 猶以爲遠.
言欲行其道於人, 其法亦不遠, 但近取法於身, 何異持柯以伐柯.
人猶以爲遠, 明爲道之法, 亦不可以遠.
卽所不願於上, 無以交於下, 所不願於下, 無以事上, 況是在身外, 於他人之處, 欲以爲道, 何可得乎.
明行道在於身而求道也.
○‘故 君子 以人治人 改而止’者, 以道去人不遠, 言人有過, 君子當以人道治此有過之人.
‘改而止’, 若人自改而休止, 不須更責不能之事.
若人所不能, 則己亦不能, 是行道在於己身也.
○‘忠恕違道不遠’者, 忠者, 內盡於心, 恕者, 外不欺物.
恕, 忖也, 忖度其義於人.
違, 去也.
言身行忠恕, 則去道不遠也.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者, 諸, 於也.
他人有一不善之事施之於己, 己所不願, 亦勿施於人, 人亦不願故也.
‘所求乎子以事父 未能也’, 言此四者, 欲明求之於他人, 必先行之於己,
欲求其子以孝道事己, 己須以孝道事父母,
故云‘所求乎子以事父, 未能也’.
恐人未能行之.
夫子, 聖人, 聖人猶曰我未能行, 凡人當勉之無已.
○‘所求乎臣 以事君 未能也’, 譬如己是諸侯, 欲求於臣以忠事己, 己當先行忠於天子及廟中事尸, 是全臣道也.
‘所求乎朋友 先施之 未能也’, 欲求朋友以恩惠施己, 則己當先施恩惠於朋友也.
‘庸德之行 庸言之謹’, 庸, 常也.
謂自修己身, 常以德而行, 常以言而謹也.
○‘有所不足 不敢不勉’, 謂己之才行有所不足之處, 不敢不勉而行之.
○‘有餘 不敢盡’, 謂己之才行有餘, 於人常持謙退, 不敢盡其才行以過於人.
○‘言顧行’者, 使言不過行, 恒顧視於行.
○‘行顧言’者, 使行副於言, 謂恒顧視於言也.
○‘君子胡不慥慥爾’, 慥慥, 守實言行相應之貌.
胡, 猶何也.
旣顧言行相副, 君子何得不慥慥然守實言行相應之道也.
○‘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至‘行乎患難’,
素, 鄕也.
鄕其所居之位, 而行其所行之事, 不願行在位外之事.
論語云 “君子思不出其位也.”
鄕富貴之中, 行道於富貴, 謂不驕不淫也.
鄕貧賤之中, 則行道於貧賤, 謂不諂不懾也.
鄕夷狄之中, 行道於夷狄, 夷狄雖陋, 雖隨其俗而守道不改.
鄕難患之中, 行道於患難, 而臨危不傾, 守死於善道也.
○‘君子 無入而不自得焉’者, 言君子所入之處, 皆守善道.
‘在上位 不陵下’, 此‘素富貴 行富貴’也.
若身處富貴, 依我常正之性, 不使富貴以陵人.
若以富貴陵人, 是不行富貴之道.
○‘在下位 不援上’者, 此‘素貧賤行貧賤’也.
援, 牽持也.
若身處貧賤則安之, 宜令自樂, 不得援牽富貴.
若以援牽富貴, 是不行貧賤之道.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 此‘素夷狄行夷狄’也.
若身入夷狄, 夷狄無禮義, 當自正己而行, 不得求於彼人, 則彼人無怨己者.
○‘上不怨天 下不尤人’, 此‘素患難行患難’也.
尤, 過也, 責也.
苟皆應之患難, 則亦甘爲, 不得上怨天下尤人,
故論語云‘不怨天, 不尤人’是也.
○‘故 君子 居易以俟命’者, 易, 謂平安也.
言君子以道自處, 恒居平安之中, 以聽待天命也.
○‘小人 行險以徼幸’, 小人以惡自居, 恒行險難傾危之事, 以徼求榮幸之道.
論語曰‘不仁者, 不可以久處約’是也.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
사람이 도를 행한다고 하면서 사람에게서 먼 것을 한다면 도가 될 수 없다.
는 곧 사람에게서 멀지 않은데 사람이 행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시경詩經》에서 말하였다.
‘도끼자루감을 베네. 도끼자루감을 베네.
그 본보기가 멀리 있지 않다.’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질을 하여〉 도끼자루감을 베면서, 〈잡고 있는 도끼자루를〉 힐끔 곁눈질하고 오히려 〈그 본보기가〉 멀리 있다고 여긴다.
은 본보기[法]이다.
도끼자루를 잡고서 나무를 베어 도끼자루를 만들려고 할 때에는 가까이 〈잡고 있는〉 도끼자루를 〈새로 만드는 도끼자루〉 길이[尺寸]의 본보기로 삼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 본보기가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나 사람이 오히려 멀리 있다고 하니, 를 행함에 멀리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됨을 밝혔다.
는 곁눈질함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의 〉로써 사람을 다스리다가 〈그 사람이 허물을〉 고치면 〈다스림을〉 그만둔다.
사람에게 그릇된 허물이 있으면 군자는 사람의 로 그를 다스리다가 그 사람이 〈허물을〉 고치면 〈다스림을〉 그만두고 용서하여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책망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
자기에게 베풀어서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베풀지 말아야 한다.
(거리)와 같다.
군자의 가 네 가지인데, 나[丘]는 한 가지도 잘하지 못한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 아버지를 잘 섬기지 못하며,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 임금을 잘 섬기지 못하며, 아우에게 바라는 것으로 형을 잘 섬기지 못하며, 벗들에게 바라는 것으로 먼저 잘 베풀지 못한다.
성인聖人인데도 ‘나는 잘하지 못한다.’라고 한 것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힘써야 함을 밝힌 것이다.
항상 을 행하며 항상 말을 삼가, 〈덕행德行에〉 모자란 점이 있으면 감히 힘쓰지 않음이 없으며, 〈말에〉 넘친다 싶은 점이 있으면 〈할 말이 남아 있어도〉 감히 다 하지 않아야 한다.
말은 행실을 돌아보며 행실은 말을 돌아보아야 하니,
(항상)과 같다.
용덕지행庸德之行용언지근庸言之謹은〉 은 항상 행하며, 말은 항상 삼감을 말한 것이다.
성인聖人의 행실은 실제로 남보다 뛰어나나, 넘친다 싶은 점이 있으면 감히 다 하지 않아 항상 남의 본보기가 됨은 를 따르기 때문이다.
군자가 어찌 성실히 하지 않겠는가.
군자는 여러 현자를 이른다.
조조慥慥는 성실함을 지켜 말과 행실이 서로 호응하는 모습이다.
군자는 자기가 놓여 있는 자리에 향해 있는 대로 행하고, 그 밖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귀富貴에 향해 있으면 부귀에 맞게 행하며, 빈천貧賤에 향해 있으면 빈천에 맞게 행하며, 이적夷狄의 나라에 향해 있으면 이적의 법도에 맞게 행하며, 환난患難에 향해 있으면 환난에 맞게 행한다.
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이 없다.
는 모두 (向하다)라고 읽는다.
불원호기외不願乎其外는 생각이 자기〈가 놓여 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않음을 이른다.
자득自得은 향하는 곳마다 그 를 잃지 않음을 이른다.
윗자리에 있을 때에는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아랫자리에 있을 때에는 윗사람을 끌어내리지 않고,
은 끌어내림[牽持]을 이른다.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을 책망責望하지 않으면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무원無怨은 그를 원망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논어論語》 〈위영공衛靈公〉에서 말하였다.
“군자는 〈스스로〉 자기〈의 덕행德行이 부족함〉를 책망責望하고, 소인은 〈스스로 자기를 책망하지 않고〉 남을 책망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마음이〉 평안한 데[易]에 거처하면서 천명天命에 맡기고, 소인은 위태로운 일을 행하면서 행운을 바란다.”
평안平安과 같다.
사명俟命은 하늘을 따르고 에 맡기는 것이다.
은 기울고 위태로운 를 이른다.
의 [子曰]에서 [徼幸]까지
정의왈正義曰 : 이 한 단락은 중용中庸가 사람과의 거리는 멀지 않으나, 자기에게 행하여야 밖으로 남[物]에게 미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道不遠人]중용中庸가 사람의 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나, 사람이 자기에게 그것을 행할 수 있어야 바로 중용임을 말한 것이다.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사람이 중용中庸를 행함에 사람에게 가까운 것으로 해야 함을 말하였으니,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기가 행한 것을 라고 할 수 있음을 이른 것이다.
만일 이치를 어기고 먼 데로 떠난다면 자기에게 시행할 수 없고, 또 남에게 시행할 수 없으니,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를 행한다고 하면서 사람에게서 먼 것을 한다면 가 될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 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이것은 《시경詩經》 〈빈풍豳風 벌가伐柯〉이니, 주공周公을 찬미한 시이다.
는 도끼자루이다.
주례周禮》 〈동관冬官 고공기考工記 거인車人〉에 “도끼자루의 길이는 3자, 〈도끼날의〉 너비는 3치이다.”라고 하였다.
은 본보기[法]이다.
벌가伐柯’는 벰이다.
도끼자루의 길이는 그 본보기가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잡고 있는 도끼자루를 힐끔 곁눈질하고 오히려 〈그 본보기가〉 멀리 있다고 여김을 말한 것이다.
를 사람에게 시행하고자 한다면 그 본보기 또한 멀리 있지 않아 가까이 〈자신의〉 몸에서 본보기를 취해야 하니, 어찌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감을 베는 것과 다르겠느냐는 말이다.
사람들이 오히려 〈그 본보기가〉 멀리 있다고 여김은 의 본보기가 또한 멀리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됨을 밝힌 것이다.
윗사람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아랫사람과 교제하지 말며, 아랫사람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데, 하물며 〈자기의〉 몸 밖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을 도라고 여기고자 한들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도를 행함이 〈자신의〉 몸에서 도를 구함에 달려 있음을 밝힌 것이다.
○[故 君子 以人治人 改而止]는 사람과의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 허물이 있으면 군자는 사람의 도를 가지고 이 허물이 있는 사람을 다스려야 함을 말한 것이다.
[改而止] 만일 사람이 스스로 〈허물을〉 고치면 〈다스림을〉 그만두어 할 수 없는 일을 다시 책망해서는 안 된다.
만일 남이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자기도 할 수 없으니, 도를 행함이 자기의 몸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忠恕違道不遠]은 안으로 마음을 다하는 것이요, 는 밖으로 남[物]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는 헤아림이니, 남에게서 그 를 헤아리는 것이다.
는 거리이다.
몸소 를 행하면 와의 거리가 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이다.
다른 사람이 한 가지 불선不善한 일을 자기에게 베풀었는데,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자신〉 또한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남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所求乎子以事父 未能也] 이 네 가지를 말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반드시 자기에게 먼저 시행해야 함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자기 자식이 효도孝道로써 자기를 섬기기를 원한다면 자기가 효도로써 부모를 섬겨야 한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 아버지를 잘 섬기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이 행하지 못할까 염려하였다.
부자夫子(孔子)는 성인聖人인데, 성인도 ‘나는 잘 행하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평범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힘써야 한다.
○[所求乎臣 以事君 未能也] 비유하자면 자기가 제후이고 신하들이 으로써 자기를 섬겨주기를 원한다면 자기가 먼저 천자天子에게 하고 사당 안에서 시동尸童을 섬기는 일을 행해야 하니, 이것이 온전한 신하의 도리이다.
[所求乎朋友 先施之 未能也] 벗들이 은혜恩惠를 자기에게 베풀어주기를 원한다면 자기가 먼저 벗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庸德之行 庸言之謹](항상)이다.
스스로 자기의 몸을 닦아 항상 을 행하고 항상 말을 삼감을 이른 것이다.
○[有所不足 不敢不勉] 자기의 재주와 행실에 모자란 점이 있으면 감히 힘써 행하지 않음이 없음을 이른 것이다.
○[有餘 不敢盡] 자기의 재주와 행실에 넘친다 싶은 점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항상 겸손하게 물러나는 마음을 가져 감히 자기의 재주와 행실을 다하여 남보다 지나치게 하지 않음을 이른 것이다.
○[言顧行] 말이 행실을 지나치지 않게 하려면 항상 행실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行顧言] 행실을 말에 걸맞게 하려면 항상 말을 돌아보아야 함을 이른 것이다.
○[君子胡不慥慥爾]조조慥慥는 성실함을 지켜 말과 행실이 서로 호응하는 모습이다.
(어찌)와 같다.
이미 말과 행실을 돌아보아 서로 걸맞으니, 군자가 어찌 성실하게 말과 행실이 서로 호응하는 를 참답게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에서 [行乎患難]까지
(向하다)이다.
자기가 놓여 있는 자리를 향하여 자기가 행한 일을 행하고, 자리 밖에 있는 일을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군자는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부귀富貴의 안을 향해 있으면 부귀의 안에서 도를 행해야 하니, 교만하지 않음‧〈분수分數에〉 넘치지 않음을 이른다.
빈천貧賤의 안을 향해 있으면 빈천의 안에서 도를 행해야 하니, 아첨하지 않음‧굴복하지 않음을 이른다.
이적夷狄의 안을 향해 있으면 이적의 안에서 도를 행하여 이적〈의 풍속〉이 비록 볼품없더라도 그들의 풍속을 따라 도를 지켜 고치지 않아야 한다.
환난患難의 안을 향해 있으면 환난의 안에서 도를 행하여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해도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고 죽음으로 선도善道를 지켜야 한다.
○[君子 無入而不自得焉] 군자는 들어가는 곳마다 모두 선도善道를 지킴을 말한 것이다.
[在上位 不陵下] 이것은 ‘부귀富貴에 향해 있으면 부귀에 맞게 행한다.’라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부귀富貴함에 처했으면 나의 항상 바른 에 의지하여 부귀함으로 남을 업신여기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만일 부귀함으로 남을 업신여긴다면 부귀의 도를 행하지 못한 것이다.
○[在下位 不援上] 이것은 ‘빈천貧賤에 향해 있으면 빈천에 맞게 행한다.’라는 것이다.
은 끌어내림[牽持]이다.
만일 자신이 빈천貧賤함에 처했으면 그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스스로 즐거워하여 부귀한 이를 끌어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부귀한 이를 끌어내린다면 빈천의 도를 행하지 못한 것이다.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 이것은 ‘이적夷狄의 나라에 향해 있으면 이적의 법도에 맞게 행한다.’라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이적夷狄〈의 나라〉에 들어갔는데 이적이 예의禮義가 없더라도 스스로 자기를 바르게 하여 행하고 저 사람들을 책망하지 않는다면 저 사람들이 자기를 원망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논어論語》에 ‘말은 충신忠信하고 행실은 독경篤敬함은 비록 이적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上不怨天 下不尤人] 이것은 ‘환난患難에 향해 있으면 환난에 맞게 행한다.’라는 것이다.
는 허물함이며, 책망함이다.
진실로 모두 환난患難에 호응한다면 또한 기꺼이 〈환난의 도를 행〉하여 위로 하늘을 원망하거나 아래로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어論語》 〈헌문憲問〉에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故 君子 居易以俟命]평안平安을 이른다.
군자는 로써 자처하여 항상 평안한 가운데에 거처하면서 천명을 기다림을 말한 것이다.
○[小人 行險以徼幸] 소인은 으로써 자처하여 항상 위험하고 어려우며 기울고 위태로운 일을 행하면서 많은 행운[榮幸]의 를 바란다는 것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에서 ‘불인不仁한 자는 오래도록 빈곤貧困함에 처하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역주
역주1 爲道而遠人 : 李滉(朝鮮)은 ‘道ᄅᆞᆯ 호ᄃᆡ 人의게 遠한 거ᄉᆞ로 ᄒᆞ면’으로 풀이하였다.(《中庸釋義》)
역주2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 許謙(元)은 ‘人之爲道의 爲자는 行을, 不可以爲道의 爲자는 謂를 뜻한다.’라고 하여 두 爲자의 뜻을 다르게 보았다.(《中庸章句大全》 小注)
역주3 詩云……其則(칙)不遠 : 《詩經》 〈豳風 伐柯〉에 나온다.
역주4 以人治人 改而止 : 朱熹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만약 사람〈의 道〉로써 사람을 다스리면 사람 됨의 도가 저마다 해당되는 사람의 몸에 있어서 애초에 이것과 저것의 구별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가 사람을 다스림에 그 사람의 道로 오히려 그 사람의 몸을 다스리다가 그 사람이 〈허물을〉 잘 고치면 곧 그만두고 다스리지 않는다. 대개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요구하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서 먼 것을 가지고 도를 행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역주5 忠恕 : 皇侃(梁)은 《論語集解義疏》 〈里仁〉 吾道一貫章에서 “忠은 〈자기 내면의〉 속마음을 다하는 것을 이르고, 恕는 자기를 미루어 생각하여 남[物]을 헤아리는 것을 이른다.[忠謂盡中心也 恕謂忖我以度於心也]”라고 하였다. 朱熹는 이를 계승하여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것을 忠이라 하고, 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을 恕라고 한다.[盡己之心爲忠 推己及人爲恕]”라고 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것을〉 자기에게 베풀어서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베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忠’‧‘恕’의 일이다. 자기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려봄에 다른 적이 없었으니, ‘道가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역시 사람에게서 멀지 않은 것으로 도를 행하는 일이다.”
孔穎達은 “忠은 안으로 마음을 다하는 것, 恕는 밖으로 남을 속이지 않는 것[忠者內盡於心 恕者外不欺物]”이라고 하였다.
丁若鏞(朝鮮)은 忠恕를 둘로 보는 견해에 반대하여, “恕는 하나로써 만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니, 忠恕라고 말한 것은 속마음[中心]으로 恕를 행하기 때문이다. 만일 반드시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것을 忠이라 하고, 자기를 미루는 것을 恕라고 한다면 忠恕가 두 가지 종류가 되니, 옳지 않은 듯하다.[恕者以一而貫萬者也 謂之忠恕者 以中心行恕也 若必盡己之謂忠 推己之謂恕 則忠恕仍是二物 恐不可也]”라고 하였다.(《中庸自箴》)
역주6 庸德之行 庸言之謹 : 朱熹는 “庸은 平常이다.”라고 하여 庸德과 庸言을 ‘평상시 지켜야 할 덕’과 ‘일상적인 평범한 말’로 받아들인다.
역주7 慥慥 : 朱熹는 ‘篤實한 모습[篤實之貌]’이라고 하여 찬미하는 말로 풀이하였고, 鄭玄은 ‘성실함을 지켜 말과 행실이 서로 호응하는 모습’이라고 하였다.
王引之(淸)는 “慥라는 말은 蹙이라는 뜻이며 急이라는 뜻이다.……慥慥는 부지런히 힘써 감히 느슨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汲汲(골똘하다)이라는 말과 같다. ‘君子胡不慥慥爾’는 군자가 어떤 일이든 골똘하게 스스로 힘쓰지 않겠는가라는 말이다.[慥之言蹙也急也……慥慥者 黽勉不敢緩之意 猶言汲汲耳 君子胡不慥慥爾 言君子何事不汲汲然自勉乎]”라고 하였다.(《經義述聞》 〈禮記 下〉 慥慥條)
역주8 素其位而行 : 素其位의 ‘素’는 풀이가 매우 다양하다. 佐藤一齋(日)의 《中庸欄外書》에 따르면, 鄭玄은 ‘傃’, 孔穎達은 ‘鄕’, 楊時는 ‘固’, 朱熹는 ‘見在’, 方慤은 ‘自然無雜’, 郭忠厚는 ‘豫’, 張九成은 ‘雅’, 倪思는 ‘舊居已然’, 尤時凞는 ‘淡’, 袁黃은 ‘平’, 鄭維嶽이 인용한 一說에는 ‘定’, 毛奇齡은 ‘本’‧‘固’, 陳祥道는 《周易》 履卦 初九 〈象傳〉 “素履之往, 獨行願也.(평소의 본분을 편안히 행하여 가는 것은 오직 마음에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의 ‘素’로 풀이하였으며, 佐藤一齋 자신은 陳祥道의 說에 근거하여 ‘安其分而若固有之(분수를 편안히 여겨 본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여기다.)’로 풀이하였다.
李滉(朝鮮)은 첫 번째 “位에 素ᄒᆞ야셔 行ᄒᆞ고”, 두 번째 “見在ᄒᆞᆫ 그 位예셔 行ᄒᆞ그”의 두 가지 풀이를 들면서, 두 번째 풀이는 주석에 근거하여 좋은 듯하지만 ‘素富貴’ 등에 대해서는 합당하지 않고, 첫 번째 풀이의 ‘素’처럼 주석 가운데 ‘因’의 뜻을 겸하여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中庸釋義》)
여기서는 정현과 공영달이 주석한 대로 ‘傃’‧‘鄕’, 즉 ‘向하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향하다’는 直面해 있다는 말로 ‘處해 있다’는 뜻이다.
역주9 (傃皆讀爲素)[素皆讀爲傃] : 저본에는 ‘傃皆讀爲素’로 되어 있으나, 阮刻本에 “惠棟校宋本에 ‘素皆讀爲傃’로 되어 있다. 宋監本‧岳本‧嘉靖本도 같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素皆讀爲傃’로 바로잡았다.
역주10 : 何晏(魏)은 《論語集解》 〈衛靈公〉에서 ‘責’으로 풀이하였다.
역주11 言忠信 行篤敬 : 《論語》 〈衛靈公〉에는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말은 忠信하고 행실은 篤敬함은 비록 蠻貊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다.)”로 되어 있다.
역주12 雖之夷狄 不可棄 : 《論語》 〈子路〉에는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 不可棄.(거처할 때에는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할 때에는 공경히 하며 사람을 대할 때에는 충성스럽게 함을, 비록 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로 되어 있다.

예기정의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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