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하니 執柯以伐柯
호되 睨而視之
하고 猶以爲遠
하나니
注
言持柯以伐木하여 將以爲柯엔 近以柯爲尺寸之法이라
此法이 不遠人이나 人尙遠之하니 明爲道不可以遠이라
注
[注]言人有罪過어든 君子는 以人道治之라가 其人이 改則止赦之하여 不責以人所不能이라
所求乎子로 以事父를 未能也하며 所求乎臣으로 以事君을 未能也하며 所求乎弟로 以事兄을 未能也하며 所求乎朋友로 先施之를 未能也로니
하여 有所不足
이어든 不敢不勉
하며 有餘
어든 不敢盡
하여
注
聖人之行은 實過於人이나 有餘不敢盡하여 常爲人法은 從禮也일새라
素富貴하여는 行乎富貴하며 素貧賤하여는 行乎貧賤하며 素夷狄하여는 行乎夷狄하며 素患難하여는 行乎患難이니
故로 君子는 居易以俟命하고 小人은 行險以徼幸이니라
疏
○正義曰 : 此一節明中庸之道去人不遠, 但行於己則外能及物.
‘道不遠人’者, 言中庸之道不遠離於人身, 但人能行之於己, 則是中庸也.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言人爲中庸之道, 當附近於人, 謂人所能行, 則己所行可以爲道.
若違理離遠, 則不可施於己, 又不可行於人, 則非道也,
疏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 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此豳風伐柯之篇, 美周公之詩.
言欲行其道於人, 其法亦不遠, 但近取法於身, 何異持柯以伐柯.
卽所不願於上, 無以交於下, 所不願於下, 無以事上, 況是在身外, 於他人之處, 欲以爲道, 何可得乎.
疏
○‘故 君子 以人治人 改而止’者, 以道去人不遠, 言人有過, 君子當以人道治此有過之人.
‘改而止’, 若人自改而休止, 不須更責不能之事.
疏
○‘忠恕違道不遠’者, 忠者, 內盡於心, 恕者, 外不欺物.
疏
他人有一不善之事施之於己, 己所不願, 亦勿施於人, 人亦不願故也.
‘所求乎子以事父 未能也’, 言此四者, 欲明求之於他人, 必先行之於己,
夫子, 聖人, 聖人猶曰我未能行, 凡人當勉之無已.
疏
○‘所求乎臣 以事君 未能也’, 譬如己是諸侯, 欲求於臣以忠事己, 己當先行忠於天子及廟中事尸, 是全臣道也.
‘所求乎朋友 先施之 未能也’, 欲求朋友以恩惠施己, 則己當先施恩惠於朋友也.
疏
○‘有所不足 不敢不勉’, 謂己之才行有所不足之處, 不敢不勉而行之.
疏
○‘有餘 不敢盡’, 謂己之才行有餘, 於人常持謙退, 不敢盡其才行以過於人.
疏
○‘君子胡不慥慥爾’, 慥慥, 守實言行相應之貌.
旣顧言行相副, 君子何得不慥慥然守實言行相應之道也.
疏
○‘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至‘行乎患難’,
鄕其所居之位, 而行其所行之事, 不願行在位外之事.
鄕夷狄之中, 行道於夷狄, 夷狄雖陋, 雖隨其俗而守道不改.
鄕難患之中, 行道於患難, 而臨危不傾, 守死於善道也.
疏
○‘君子 無入而不自得焉’者, 言君子所入之處, 皆守善道.
疏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 此‘素夷狄行夷狄’也.
若身入夷狄, 夷狄無禮義, 當自正己而行, 不得求於彼人, 則彼人無怨己者.
疏
○‘上不怨天 下不尤人’, 此‘素患難行患難’也.
疏
○‘小人 行險以徼幸’, 小人以惡自居, 恒行險難傾危之事, 以徼求榮幸之道.
사람이 도를 행한다고 하면서 사람에게서 먼 것을 한다면 도가 될 수 없다.
注
도道는 곧 사람에게서 멀지 않은데 사람이 행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 본보기가 멀리 있지 않다.’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질을 하여〉 도끼자루감을 베면서, 〈잡고 있는 도끼자루를〉 힐끔 곁눈질하고 오히려 〈그 본보기가〉 멀리 있다고 여긴다.
注
도끼자루를 잡고서 나무를 베어 도끼자루를 만들려고 할 때에는 가까이 〈잡고 있는〉 도끼자루를 〈새로 만드는 도끼자루〉 길이[尺寸]의 본보기로 삼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 본보기가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나 사람이 오히려 멀리 있다고 하니, 도道를 행함에 멀리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됨을 밝혔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의 도道〉로써 사람을 다스리다가 〈그 사람이 허물을〉 고치면 〈다스림을〉 그만둔다.
注
사람에게 그릇된 허물이 있으면 군자는 사람의 도道로 그를 다스리다가 그 사람이 〈허물을〉 고치면 〈다스림을〉 그만두고 용서하여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책망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자기에게 베풀어서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베풀지 말아야 한다.
군자의 도道가 네 가지인데, 나[丘]는 한 가지도 잘하지 못한다.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 아버지를 잘 섬기지 못하며,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 임금을 잘 섬기지 못하며, 아우에게 바라는 것으로 형을 잘 섬기지 못하며, 벗들에게 바라는 것으로 먼저 잘 베풀지 못한다.
注
성인聖人인데도 ‘나는 잘하지 못한다.’라고 한 것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힘써야 함을 밝힌 것이다.
항상 덕德을 행하며 항상 말을 삼가, 〈덕행德行에〉 모자란 점이 있으면 감히 힘쓰지 않음이 없으며, 〈말에〉 넘친다 싶은 점이 있으면 〈할 말이 남아 있어도〉 감히 다 하지 않아야 한다.
말은 행실을 돌아보며 행실은 말을 돌아보아야 하니,
注
〈용덕지행庸德之行과 용언지근庸言之謹은〉 덕德은 항상 행하며, 말은 항상 삼감을 말한 것이다.
성인聖人의 행실은 실제로 남보다 뛰어나나, 넘친다 싶은 점이 있으면 감히 다 하지 않아 항상 남의 본보기가 됨은 예禮를 따르기 때문이다.
注
조조慥慥는 성실함을 지켜 말과 행실이 서로 호응하는 모습이다.
군자는 자기가 놓여 있는 자리에 향해 있는 대로 행하고, 그 밖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귀富貴에 향해 있으면 부귀에 맞게 행하며, 빈천貧賤에 향해 있으면 빈천에 맞게 행하며, 이적夷狄의 나라에 향해 있으면 이적의 법도에 맞게 행하며, 환난患難에 향해 있으면 환난에 맞게 행한다.
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터득하지 못함이 없다.
注
불원호기외不願乎其外는 생각이 자기〈가 놓여 있는〉 자리를 벗어나지 않음을 이른다.
자득自得은 향하는 곳마다 그 도道를 잃지 않음을 이른다.
윗자리에 있을 때에는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아랫자리에 있을 때에는 윗사람을 끌어내리지 않고,
자기를 바르게 하고 남을 책망責望하지 않으면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注
무원無怨은 그를 원망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군자는 〈스스로〉 자기〈의 덕행德行이 부족함〉를 책망責望하고, 소인은 〈스스로 자기를 책망하지 않고〉 남을 책망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마음이〉 평안한 데[易]에 거처하면서 천명天命에 맡기고, 소인은 위태로운 일을 행하면서 행운을 바란다.”
注
사명俟命은 하늘을 따르고 명命에 맡기는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한 단락은 중용中庸의 도道가 사람과의 거리는 멀지 않으나, 자기에게 행하여야 밖으로 남[物]에게 미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道不遠人]중용中庸의 도道가 사람의 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나, 사람이 자기에게 그것을 행할 수 있어야 바로 중용임을 말한 것이다.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사람이 중용中庸의 도道를 행함에 사람에게 가까운 것으로 해야 함을 말하였으니,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기가 행한 것을 도道라고 할 수 있음을 이른 것이다.
만일 이치를 어기고 먼 데로 떠난다면 자기에게 시행할 수 없고, 또 남에게 시행할 수 없으니,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도道를 행한다고 하면서 사람에게서 먼 것을 한다면 도道가 될 수 없다.’라고 한 것이다.
疏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 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이것은 《시경詩經》 〈빈풍豳風 벌가伐柯〉이니, 주공周公을 찬미한 시이다.
《주례周禮》 〈동관冬官 고공기考工記 거인車人〉에 “도끼자루의 길이는 3자, 〈도끼날의〉 너비는 3치이다.”라고 하였다.
도끼자루의 길이는 그 본보기가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잡고 있는 도끼자루를 힐끔 곁눈질하고 오히려 〈그 본보기가〉 멀리 있다고 여김을 말한 것이다.
그 도道를 사람에게 시행하고자 한다면 그 본보기 또한 멀리 있지 않아 가까이 〈자신의〉 몸에서 본보기를 취해야 하니, 어찌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감을 베는 것과 다르겠느냐는 말이다.
사람들이 오히려 〈그 본보기가〉 멀리 있다고 여김은 도道의 본보기가 또한 멀리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됨을 밝힌 것이다.
윗사람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아랫사람과 교제하지 말며, 아랫사람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윗사람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데, 하물며 〈자기의〉 몸 밖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을 도라고 여기고자 한들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도를 행함이 〈자신의〉 몸에서 도를 구함에 달려 있음을 밝힌 것이다.
疏
○[故 君子 以人治人 改而止]도道는 사람과의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 허물이 있으면 군자는 사람의 도를 가지고 이 허물이 있는 사람을 다스려야 함을 말한 것이다.
[改而止] 만일 사람이 스스로 〈허물을〉 고치면 〈다스림을〉 그만두어 할 수 없는 일을 다시 책망해서는 안 된다.
만일 남이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자기도 할 수 없으니, 도를 행함이 자기의 몸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疏
○[忠恕違道不遠]충忠은 안으로 마음을 다하는 것이요, 서恕는 밖으로 남[物]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서恕는 헤아림이니, 남에게서 그 의義를 헤아리는 것이다.
몸소 충忠‧서恕를 행하면 도道와의 거리가 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疏
다른 사람이 한 가지 불선不善한 일을 자기에게 베풀었는데,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자신〉 또한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남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所求乎子以事父 未能也] 이 네 가지를 말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반드시 자기에게 먼저 시행해야 함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자기 자식이 효도孝道로써 자기를 섬기기를 원한다면 자기가 효도로써 부모를 섬겨야 한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 아버지를 잘 섬기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부자夫子(孔子)는 성인聖人인데, 성인도 ‘나는 잘 행하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평범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힘써야 한다.
疏
○[所求乎臣 以事君 未能也] 비유하자면 자기가 제후이고 신하들이 충忠으로써 자기를 섬겨주기를 원한다면 자기가 먼저 천자天子에게 충忠하고 사당 안에서 시동尸童을 섬기는 일을 행해야 하니, 이것이 온전한 신하의 도리이다.
[所求乎朋友 先施之 未能也] 벗들이 은혜恩惠를 자기에게 베풀어주기를 원한다면 자기가 먼저 벗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의 몸을 닦아 항상 덕德을 행하고 항상 말을 삼감을 이른 것이다.
疏
○[有所不足 不敢不勉] 자기의 재주와 행실에 모자란 점이 있으면 감히 힘써 행하지 않음이 없음을 이른 것이다.
疏
○[有餘 不敢盡] 자기의 재주와 행실에 넘친다 싶은 점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항상 겸손하게 물러나는 마음을 가져 감히 자기의 재주와 행실을 다하여 남보다 지나치게 하지 않음을 이른 것이다.
疏
○[言顧行] 말이 행실을 지나치지 않게 하려면 항상 행실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疏
○[行顧言] 행실을 말에 걸맞게 하려면 항상 말을 돌아보아야 함을 이른 것이다.
疏
○[君子胡不慥慥爾]조조慥慥는 성실함을 지켜 말과 행실이 서로 호응하는 모습이다.
이미 말과 행실을 돌아보아 서로 걸맞으니, 군자가 어찌 성실하게 말과 행실이 서로 호응하는 도道를 참답게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疏
○[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에서 [行乎患難]까지
자기가 놓여 있는 자리를 향하여 자기가 행한 일을 행하고, 자리 밖에 있는 일을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군자는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부귀富貴의 안을 향해 있으면 부귀의 안에서 도를 행해야 하니, 교만하지 않음‧〈분수分數에〉 넘치지 않음을 이른다.
빈천貧賤의 안을 향해 있으면 빈천의 안에서 도를 행해야 하니, 아첨하지 않음‧굴복하지 않음을 이른다.
이적夷狄의 안을 향해 있으면 이적의 안에서 도를 행하여 이적〈의 풍속〉이 비록 볼품없더라도 그들의 풍속을 따라 도를 지켜 고치지 않아야 한다.
환난患難의 안을 향해 있으면 환난의 안에서 도를 행하여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해도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고 죽음으로 선도善道를 지켜야 한다.
疏
○[君子 無入而不自得焉] 군자는 들어가는 곳마다 모두 선도善道를 지킴을 말한 것이다.
[在上位 不陵下] 이것은 ‘부귀富貴에 향해 있으면 부귀에 맞게 행한다.’라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부귀富貴함에 처했으면 나의 항상 바른 성性에 의지하여 부귀함으로 남을 업신여기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만일 부귀함으로 남을 업신여긴다면 부귀의 도를 행하지 못한 것이다.
疏
○[在下位 不援上] 이것은 ‘빈천貧賤에 향해 있으면 빈천에 맞게 행한다.’라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빈천貧賤함에 처했으면 그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스스로 즐거워하여 부귀한 이를 끌어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부귀한 이를 끌어내린다면 빈천의 도를 행하지 못한 것이다.
疏
○[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 이것은 ‘이적夷狄의 나라에 향해 있으면 이적의 법도에 맞게 행한다.’라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이적夷狄〈의 나라〉에 들어갔는데 이적이 예의禮義가 없더라도 스스로 자기를 바르게 하여 행하고 저 사람들을 책망하지 않는다면 저 사람들이 자기를 원망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논어論語》에 ‘말은 충신忠信하고 행실은 독경篤敬함은 비록 이적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疏
○[上不怨天 下不尤人] 이것은 ‘환난患難에 향해 있으면 환난에 맞게 행한다.’라는 것이다.
진실로 모두 환난患難에 호응한다면 또한 기꺼이 〈환난의 도를 행〉하여 위로 하늘을 원망하거나 아래로 사람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어論語》 〈헌문憲問〉에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疏
○[故 君子 居易以俟命]이易는 평안平安을 이른다.
군자는 도道로써 자처하여 항상 평안한 가운데에 거처하면서 천명을 기다림을 말한 것이다.
疏
○[小人 行險以徼幸] 소인은 악惡으로써 자처하여 항상 위험하고 어려우며 기울고 위태로운 일을 행하면서 많은 행운[榮幸]의 도道를 바란다는 것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에서 ‘불인不仁한 자는 오래도록 빈곤貧困함에 처하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