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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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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仲尼 祖述堯舜하시고 憲章文武하시며 上律하시고 下襲하시니라
[注]此 以春秋之義 說孔子之德이라
이라하니 二經固足以明之
孔子所述堯舜之道而制春秋하고 而斷以文王武王之法度
春秋傳曰
君子曷爲爲春秋
撥亂世하여 反諸正 莫近諸春秋일새라 其諸君子樂道堯舜之道與
不亦樂乎堯舜之知君子也아하고
又曰
繼文王之體
又曰
王者 孰謂
라하니
此孔子兼包堯舜文武之盛德하여 而著之春秋하여 以俟後聖者也
述也 述天時 謂編年四時具也
因也 因水土 謂記
辟如天地之無不持載하며 無不覆幬하며 辟如四時之錯行하며 如日月之代明이니라
萬物 竝育而不相害하며 道竝行而不相悖
此天地之所以爲大也니라
[注]聖人制作 其德配天地如此하니可以當焉이라
亦覆也
小德川流 浸潤萌芽 喩諸侯也
大德敦化 厚生萬物이니 喩天子也
或作燾
[注]言德不如此하면 不可以君天下也
蓋傷孔子有其德而이라
溥博淵泉하여 而時出之니라
[注]言其臨下普遍하고 思慮深重하여 非得其時 不出政敎
溥博 如天하고 淵泉 如淵이라
見而民莫不敬하며 言而民莫不信하며 行而民莫不說이니라
是以 聲名 洋溢乎中國하여施及하여 舟車所至 人力所通 天之所覆 地之所載 日月所照 霜露所 凡有血氣者 莫不尊親하니
故曰配天이니라
[注]如天 取其運照不已也 如淵 取其淸深不測也
尊親 尊而親之
唯天下至誠이아 爲能하며 知天地之化育이니
[注]至誠 性至誠이니 謂孔子也
大經 謂六藝 而指春秋也
大本 孝經也
肫肫其仁이며 淵淵其淵이며 浩浩其天이니라
[注]安所倚 言無所偏倚也
人人自以被德尤厚하여 似偏頗者
肫肫 讀如之忳이니
忳忳 懇誠貌也
肫肫 或爲純純이라
苟不固聰明聖知達天德者 리오
[注]言唯聖人이아 乃能知聖人也
이라하니惡其文之著也
君子之道 闇然而日章하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하나니라
[注]言君子 深遠難知하고 小人 淺近易知
人所以不知孔子 以其深遠이라
襌爲絅이라
錦衣之美而君子以絅表之 爲其文章露見하여 似小人也
君子之道 淡而不厭하며 簡而文하며 溫而理 이면 리라
[注]淡 其味似薄也
簡而文 溫而理 猶簡而辨하고 直而溫也
謂所從來也
三知者 皆言其睹末察本하고 探端知緖也
入德 入聖人之德이라
君子 內省不疚 니라
[注]孔 甚也
明也
言聖人雖 其德亦甚明矣
病也
君子自省하여 身無愆病이면 雖不遇世라도 亦無損害於己志
君子所不可及者 其唯人之所不見乎인저
혼대 尙不愧于屋漏라하니라
[注]言君子雖隱居 不失其君子之容德也
視也
室西北隅 謂之屋漏
視女在室獨居者하니 猶不愧于屋漏
屋漏非有人也어늘 況有人乎
君子 不動而敬하며 不言而信이니라
無言 時靡有爭이라하니라<현토/>
[注]假 大也
頌也
言奏大樂於宗廟之中 人皆肅敬하여 하여 無有言者 以時太平和合하여 無所爭也
是故 君子 不賞而民勸하며 不怒而民威於鈇鉞이니라
詩曰
惟德이여
라하니라
[注]不顯 言顯也
君也
頌也
言不顯乎
文王之德이여
百君盡刑之 諸侯法之也
是故 君子 이니라
[注]予 我也
歸也
言我歸有明德者 以其不大聲爲嚴厲之色以威我也
[疏]‘仲尼’至‘以色’
○正義曰 : 此一節明子思申明夫子之德與天地相似, 堪以配天地而育萬物, 傷有聖德無其位也.
今各隨文解之.
○‘仲尼 祖述堯舜’者, 祖, 始也.
言仲尼祖述始行堯舜之道也.
○‘憲章文武’者, 憲, 法也.
章, 明也.
言夫子明文武之德.
○‘上律天時’者, 律, 述也.
言夫子上則述行天時, 以與言陰陽時候也.
○‘下襲水土’者, 襲, 因也.
下則因襲諸侯之事水土所在.
此言子思贊揚聖祖之德, 以仲尼修春秋而有此等之事也.
○注‘吾志’至‘之異’
○正義曰 : ‘吾志在春秋 行在孝經’者 孝經緯文.
言褒貶諸侯善惡, 志在於春秋, 人倫尊卑之行在於孝經.
云‘二經固足以明之’者, 此是鄭語, 言春秋‧孝經, 足以顯明先祖述憲章之事.
云‘孔子祖述堯舜之道而制春秋’者, 則下文所引公羊傳云‘君子樂道堯舜之道與’是也.
云‘斷以文王武王之法度’者, 則下文引公羊云‘王者孰謂. 謂文王’是也.
云‘春秋傳曰’至‘堯舜之知君子也’,
哀十四年公羊傳文.
引之者, 謂祖述堯舜之事.
‘君子曷爲爲春秋’, 曷, 何也.
君子, 謂孔子.
傳曰‘孔子何爲作春秋’.
云‘撥亂世 反諸正 莫近諸春秋’者, 此傳之文, 答孔子爲春秋之意.
何休云, “撥猶治也.”
言欲治於亂世, 使反歸正道.
莫近, 莫過也.
言餘書莫過於春秋, 言治亂世者, 春秋最近之也.
云‘其諸君子樂道堯舜之道與’者, 上‘道’, 論道, 下‘道’, 謂道德.
與, 語辭.
言君子, 孔子也.
言孔子樂欲論道堯舜之道與也.
云‘末不亦樂乎堯舜之知君子也’者, 末謂終末, 謂孔子末,
聖漢之初, 豈不亦愛樂堯舜之知君子也.
案何休云, “得麟之後, 天下血書魯端門,
曰‘趨作法,
孔聖沒.
周姬亡, 彗東出.
秦政起, 胡破術.
書記散, 孔不絶.’ 子夏明日往視之, 血書飛爲赤, 化爲白書.
漢當大亂之後, 故作撥亂之法.” 是其事也.
云‘又曰 是子也 繼文王之體 守文王之法度 文王之法無求而求 故譏之也’者, 此文九年公羊傳文.
八年天王崩, 謂周襄王也.
九年春, 毛伯來求金.
傳云, ‘是子, 繼文王之體, 守文王之法度.
文王之法無求而求, 故譏之.’
是子, 謂嗣位之王, 在喪未合稱王,
故稱是子.
嗣位之王, 守文王之法度.
‘文王之法度無所求也’, 謂三分有二以服事殷, 謂在喪之內, 無合求金之法度,
今遣毛伯來求金, 是‘無求而求’也,
故書以譏之.
彼傳云是子, 俗本云子是者, 誤也.
云‘又曰 王者 孰謂 謂文王也’, 此隱元年公羊傳文.
案傳云 ‘元年, 春, 王, 正月. 王者孰謂.
謂文王也.’
武王道同, 文王可知也.
云‘著之春秋 以俟後聖者也’, 哀十四年公羊傳云 “制春秋之義, 以俟後聖.”
何休云
“待聖漢之王, 以爲法也.”
云‘述天時 謂編年四時具也’, 案云 “立五始, 制以天道.” 云 “諸侯不上奉王之正, 則不得卽位.
正不由王出, 不得爲正.
王不承於天以制號令, 則無法.
天不得正其元, 則不能成其化也.”
云‘襲 因也 因水土 謂記諸夏之事山川之異’者, 諸夏之事, 謂諸侯征伐會盟所在之地.
山川之異, 若僖十四年‘沙鹿崩’, 成五年‘梁山崩’之屬是也.
○‘如’至‘大也’
○正義曰 : 此明孔子之德與天地日月相似, 與天子諸侯德化無異.
○‘小德 川流 大德 敦化’者,
言孔子所作春秋, 若以諸侯‘小德’言之, 如川水之流, 浸潤萌芽,
若以天子‘大德’言之, 則仁愛敦厚, 化生萬物也.
‘此天地之所以爲大也’, 言夫子之德比竝天地, 所以爲大不可測也.
○‘○五始’者, 元年, 一也, 春, 二也, 王, 三也, 正月, 四也, 公卽位, 五也.
此春秋元年, 卽當堯典‘欽若昊天’也.
春秋四時, 卽當堯典‘日中星鳥’‧‘日永星火’‧‘宵中星虛’‧‘日短星昴’之類是也.
春秋獲麟, 則當益稷‘百獸率舞, 鳳凰來儀’是也.
此皆祖述堯舜之事.
言春秋四時皆具, 桓四年及七年不書‘秋七月’‧‘冬十月’, 成十年不書‘冬十月’,
桓十七年直云‘五月’不云‘夏’, 昭十年直云‘十二月’不云‘冬’,
如此不具者, 賈‧服之義, 若登而不, 則書‘時’不書‘月’,
若視朔而不登臺, 則書‘月’不書‘時’, 若雖無事, 視朔登臺, 則空書時月.
若杜元凱之意, 凡時月不具者, 皆史闕文.
○‘唯天’至‘別也’
○此又申明夫子之德聰明寬裕, 足以容養天下, 傷其有聖德而無位也.
○‘寬裕溫柔 足以有容也’, 言夫子寬弘性善, 溫克和柔, 足以包容也.
○‘發强剛毅 足以有執也’, 發, 起也.
執, 猶斷也.
言孔子發起志意, 堅强剛毅, 足以斷決事物也.
○‘溥博’至‘配天’
○此節更申明夫子蘊蓄聖德, 俟時而出, 日月所照之處, 無不尊仰.
○‘溥博淵泉’者, 溥, 謂無不周遍, 博, 謂所及廣遠, 以其浸潤之澤, 如似淵泉溥大也.
旣思慮深重, 非得其時, 不出政敎, 必以俟時而出.
○‘溥博 如天’者, 言似天無不覆幬.
○‘淵泉 如淵’, 言潤澤深厚, 如川水之流.
○‘夫焉有所倚’至‘浩浩其天’,
以前經贊明夫子之德, 此又云夫子無所偏倚, 而仁德自然盛大也.
倚, 謂偏有所倚近.
言夫子之德, 普被於人, 何有獨倚近於一人, 言不特有偏頗也.
○‘肫肫其仁’, 肫肫, 懇誠之貌.
仁, 謂施惠仁厚.
言又能肫肫然懇誠行此仁厚爾.
○‘淵淵其淵’, 淵, 水深之貌也.
言夫子之德, 淵淵然若水之深也.
○‘浩浩其天’, 言夫子之德, 浩浩盛大, 其若如天也.
○注‘肫肫 讀如誨爾忳忳之忳’
○正義曰 : 此大雅抑之篇, 剌厲王之詩.
言詩人誨爾厲王忳忳然懇誠不已, 厲王聽我藐藐然而不入也.
‘苟不固聰明聖知達天德者 其孰能知之’者, 上經論夫子之德大如天, 此經論唯至聖乃知夫子之德.
苟, 誠也.
固, 堅固也.
言帝誠不堅固聰明睿聖通知曉達天德者, 其誰能識知夫子之德.
故注引公羊傳云‘堯舜之知君子’者, 言有堯舜之德乃知夫子, 明凡人不知也.
○‘詩曰 衣錦尙褧 惡其文之著也’, 以前經論夫子之德難知, 故此經因明君子小人隱顯不同之事.
此詩衛風碩人之篇, 美莊姜之詩.
言莊姜初嫁在塗, 衣著錦衣, 爲其文之大著, 尙著襌絅加於錦衣之上.
絅, 襌也, 以單縠爲衣, 尙以覆錦衣也.
案詩本文云‘衣錦褧衣’, 此云‘尙絅’者, 斷截詩文也.
又俗本云‘衣錦褧裳’, 又與定本不同者.
記人欲明君子謙退, 惡其文之彰著,
故引詩以結之.
○‘故 君子之道 闇然而日章’者, 章, 明也.
言君子以其道德深遠謙退, 初視未見, 故曰‘闇然’, 其後明著, 故曰‘日章明’也.
○‘小人之道 的然而日亡’者, 若小人好自矜大, 故初視時‘的然’.
以其才藝淺近, 後無所取,
故曰‘日益亡’.
○‘君子’至‘德矣’
○此一經明君子之道, 察微知著, 故能‘入德’.
○‘淡而不厭’者, 言不媚悅於人, 初似淡薄, 久而愈敬, 無惡可厭也.
○‘簡而文’者, 性無嗜欲, 故簡靜, 才藝明辨, 故有文也.
○‘溫而理’, 氣性和潤, 故溫也.
正直不違, 故修理也.
○‘知遠之近’, 言欲知遠處, 必先之適於近, 乃後及遠.
‘知風之自’, 自, 謂所從來處.
言見目前之風則知之適所從來處,
故鄭注云‘睹末察本’.
遠是近之末, 風是所.
‘知微之顯’, 此初時所微之事, 久乃適於顯明, 微是初端, 顯是縱緖,
故鄭注云‘探端知緖’.
○‘可與入德矣’, 言君子或探末以知本, 或睹本而知末, 察微知著, 終始皆知, 故可以入聖人之德矣.
○‘詩 潛雖伏矣 亦孔之昭’, 此明君子其身雖隱, 其德昭著.
所引者小雅正月之篇, 剌幽王之詩.
詩之本文以幽王無道, 喩賢人君子雖隱其身, 德亦甚明著, 不能免禍害, 猶如魚伏於水, 亦甚著見, 被人採捕.
記者斷章取義, 言賢人君子身雖藏隱, 猶如魚伏於水, 其道德亦甚彰矣.
○‘故 君子 內省不疚 無惡於志’者, 疚, 病也.
言君子雖不遇世, 內自省身, 不有愆病, 則亦不損害於己志.
言守志彌堅固也.
○注‘孔 甚也’
○正義曰 : 爾雅釋言文.
○‘君子’至‘屋漏’
○此明君子之閒居獨處, 不敢爲非,
故云‘君子所不可及者, 其唯人之所不見乎’.
○‘詩云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此大雅抑之篇, 剌厲王之詩.
詩人意稱王朝小人, 不敬鬼神, 瞻視女在廟堂之中, 猶尙不愧畏於屋漏之神.
記者引之, 斷章取義, 言君子之人, 在室之中, 屋漏雖無人之處, 不敢爲非, 猶愧懼於屋漏之神, 況有人之處, 君子愧懼可知也.
言君子雖獨居, 常能恭敬.
○注‘言君’至‘人乎’
○正義曰 : 言‘君子雖隱居 不失其君子之容德也’者, 隱居, 謂在室獨居, 猶不愧畏, 無人之處, 又常能恭敬,
是‘不失其君子之容德也’.
云‘西北隅謂之屋漏’者, 爾雅釋宮文.
以戶明漏照其處, 故稱‘屋漏’.
‘屋漏非有人’者, 言人之所居, 多近於戶, 屋漏深邃之處, 非人所居,
故云‘有人也’.
云‘況有人乎’者, 言無人之處尙不愧之, 況有人之處不愧之可知也.
言君子無問有人無人, 恒能畏懼也.
○‘故 君子 不動而敬 不言而信’者, 以君子敬懼如是,
故不動而民敬之, 不言而民信之.
○‘詩曰 奏假無言 時靡有爭’, 此商頌烈祖之篇, 美成湯之詩.
詩本文云‘鬷假無言’.
此云‘奏假’者, 與詩反異也.
假, 大也.
言祭成湯之時, 奏此大樂於宗廟之中, 人皆肅敬, 無有喧嘩之言.
所以然者, 時旣太平, 無有爭訟之事,
故‘無言’也.
引證君子不言而民信.
○注‘假 大也’
○正義曰 : 爾雅釋詁文.
○‘詩曰 不顯 惟德 百辟其刑之’, 此周頌烈文之篇, 美文王之德.
不顯乎
文王之德, 言其顯矣.
以道德顯著, 故天下百辟諸侯皆刑法之.
引之者, 證君子之德猶若文王, 其德顯明在外, 明衆人皆刑法之.
○注‘辟 君也’
○正義曰 : 爾雅釋詁文.
○‘詩 予懷明德 不大聲以色’, 此大雅皇矣之篇, 美文王之詩.
予, 我也.
懷, 歸也.
言天謂文王曰 ‘我歸就爾之明德, 所以歸之者, 以文王不大作音聲以爲嚴厲之色,
故歸之.’
記者引之, 證君子亦不作大音聲以爲嚴厲之色, 與文王同也.


중니仲尼(孔子)는 임금과 임금〈의 〉를 근본으로 삼아 그 뜻을 서술하여 전하고[祖述]문왕文王무왕武王을 본보기로 삼아 드러내 밝혔으며, 위로는 천시天時를 따르고 아래로는 수토水土를 그대로 따랐다.
이것은 《춘추春秋》의 뜻으로 공자孔子을 서술한 것이다.
공자가 “나의 뜻은 《춘추春秋》에 있고, 행실은 《효경孝經》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두 경전經典에서 진실로 〈공자의 을〉 밝혀낼 수 있다.
공자가 임금‧임금의 조술祖述하여 《춘추》를 짓고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법도로써 결단決斷하였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 말하였다.
군자君子(공자)는 어째서 〈기린麒麟을 잡은 지금에서야〉 《춘추》를 지었는가.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요임금‧순임금‧문왕‧무왕의〉 정도正道로 돌이킴에 《춘추》보다 적합[近]한 것이 없으니,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 군자가 요임금‧순임금의 를 말하기 좋아해서일 것이다.
공자가 말년에 또한 요임금‧순임금이 군자를 알아봄을 좋아한 것이 아니겠는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또 말하였다.
“이 (頃王)는 문왕의 혈통血統[體]을 계승하였으니 문왕의 법도를 지켜야 한다.
문왕의 법에 〈제후에게 재물을〉 요구함이 없어야 하는데 요구하였기 때문에 기롱譏弄한 것이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또 말하였다.
이라는 것은 누구를 이르는가.
문왕을 이른다.”
이것은 공자가 요임금‧순임금‧문왕‧무왕의 성대한 을 아울러서 《춘추》에 나타내어 후세의 성인聖人을 기다린 것이다.
은 따름[述]이니, 천시天時를 따랐다는 것은 〈공자가 《춘추》를 지음에〉 연대순年代順으로 편찬하여 사계절의 순서가 갖추어졌음을 이른다.
은 그대로 따름[因]이니, 수토水土를 그대로 따랐다는 것은 제하諸夏의 일과 산천山川기이奇異〈한 현상〉을 기록하였음을 이른다.
비유하면 하늘과 땅이 실어주지 않음이 없고 덮어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며, 비유하면 사계절이 번갈아 운행하는 것과 같으며, 해와 달이 번갈아 밝게 비추는 것과 같다.
만물이 함께 자라도 서로 해치지 않으며, 가 함께 행해져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작은 은 냇물의 흘러감과 같고, 큰 화육化育을 돈후하게 하니, 이것이 하늘과 땅이 위대한 까닭이다.
성인聖人(孔子)이 〈《춘추春秋》를〉 지음에 그 천지天地에 걸맞음이 이와 같으니, 오시五始를 합당하게 할 수 있다.
도 덮음[覆]이다.
소덕천류小德川流는 적셔주고 싹을 틔우게 하는 것이니 제후諸侯를 비유한 것이다.
대덕돈화大德敦化는 만물을 돈후하게 길러주는 것이니 천자天子를 비유한 것이다.
로 쓰기도 한다.
천하의 지극한 성인聖人만이, 총명하고 슬기롭고 지혜로움은 〈천하를〉 다스리기 충분하며, 〈그의 마음이〉 너그럽고 〈도량度量이〉 크며 〈성정性情이〉 온화하고 유순함은 〈남을〉 포용하기 충분하며, 분발하고 노력하며 〈의지가〉 꿋꿋하고 굳셈은 〈사물을〉 결단하기 충분하며, 경건하고 단정하며 중도에 맞고 〈굽은 것을〉 바로잡음은 〈자신을〉 삼가기 충분하며, 〈예의禮義의〉 절문節文조리條理를 치밀하고 분명하게 살핌은 〈사물을〉 구별하기 충분할 수 있다.
이 이와 같지 않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대개 공자孔子에게 그 이 있으나 그 이 없음을 가슴 아파한 것이다.
널리 두루 미치고 깊어서 때에 맞추어 낸다.
그 아래를 다스림[臨]에 널리 두루 미치며 생각이 깊고 침착하여 그 때를 얻지 않으면 정사政事교화敎化를 내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널리 두루 미침은 하늘과 같고 깊음은 연못과 같다.
〈밖으로〉 드러나면 백성이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말하면 백성이 믿지 않는 이가 없으며, 행동하면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다.
이 때문에 명성名聲이 나라 안에 가득 차 넘쳐 오랑캐[蠻貊]에게까지 뻗어나가 배와 수레가 이르는 곳과, 인간의 힘이 미치는 곳과, 하늘이 덮어주는 곳과, 땅이 실어주는 곳과, 해와 달이 비추는 곳과, 서리와 이슬이 떨어지는 곳에 모든 혈기血氣를 가진 자는 존경하고 친애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하늘과 어우러진다.’라고 한 것이다.
여천如天은 쉼 없이 운행하고 비춤〈이라는 뜻〉에서 〈비유를〉 취하였고, 여연如淵은 헤아릴 수 없이 맑고 깊음〈이라는 뜻〉에서 〈비유를〉 취하였다.
존친尊親은 존경하고 친애함이다.
천하의 지극히 성실한 사람만이 천하의 대경大經논찬論纂하며, 천하의 대본大本확립確立하며, 천지의 화육化育을 알 수 있으니,
지성至誠이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니, 공자孔子를 이른다.
대경大經육예六藝(六經)를 이르는데, 〈여기서는〉 《춘추春秋》를 가리킨다.
대본大本은 《효경孝經》이다.
저 어찌 치우치는 것이 있겠는가.
정성스럽고 지극한 그 어짊이며, 고요하고 깊은 그 연못이며, 넓고 큰 그 하늘 같은 모습이다.
어찌 치우치는 것이 있겠는가는 치우치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은덕恩德을 입음이 매우 두터워 〈자기에게〉 치우친 듯하다.’라고 여긴 것이다.
순순肫肫은 ‘회이돈돈誨爾忳忳(너를 가르치기를 매우 간곡하게 한다.)’의 처럼 읽는다.
돈돈忳忳은 간절하고 정성스러운 모습이다.
순순肫肫순순純純(성실하고 진실하다.)이라고 하기도 한다.
진실로 참으로 총명하고 성스러운 지혜로 천덕天德에 도달한 자가 아니면 그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성인聖人만이 성인聖人을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공자가 말년에 또한 요임금‧순임금이 군자를 알아봄을 좋아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평범한 사람은 알지 못함을 밝힌 것이다.
시경詩經》에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껴입는다.”라고 하였으니, 그 〈비단옷의 아름다운〉 무늬가 드러남을 싫어해서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는 어렴풋한 듯하지만 날로 드러나고, 소인의 는 분명한 듯하지만 날로 없어진다.
군자는 깊고 원대하여 알기 어렵고 소인은 얕고 가까워 알기 쉬움을 말한 것이다.
사람들이 공자孔子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그 깊고 원대함 때문이다.
홑옷을 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고 군자가 홑옷을 〈겉에〉 껴입는 것은 그 〈비단옷의 아름다운〉 무늬가 드러나 소인 같기 때문이다.
군자의 는 담담한 듯하지만 싫증나지 않으며, 간략한 듯하지만 법도가 있으며, 온화한 듯하지만 조리가 있으니, 먼 곳이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함을 알며, 바람이 일어나는 곳이 있음을 알며, 은미한 것이 드러남을 알면, 〈성인聖人의〉 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은 그 맛이 싱거운 듯한 것이다.
간이문簡而文 온이리溫而理’는 간략하면서도 분명[辨]하고 곧으면서도 온화하다는 것과 같다.
는 유래한 것을 이른다.
세 ‘’자는 모두 말단을 보아 근본을 살피고 단서를 더듬어 실마리를 안다는 말이다.
입덕入德성인聖人에 들어감이다.
시경詩經》에 “물속에 들어가 숨었으나, 또한 매우 밝게 드러난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안으로 살펴 흠이 있지 않으면 〈를 실천하려는 자기의〉 뜻에는 손해가 없다.
(매우)이다.
(밝게 드러나다)이다.
성인聖人이 비록 은거하였으나 그 이 또한 매우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는 흠[病]이다.
군자는 스스로 살펴 몸에 흠[愆病]이 없으면 비록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나지 못하였더라도 〈를 실천하려는〉 자기의 뜻에는 손해가 없다.
군자를 따라갈 수 없는 점은 아마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뿐일 것이다.
시경詩經》에 “〈그대가〉 그대의 방에 있을 때를 살펴보니, 〈방의〉 모퉁이에서도 〈마음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군자가 비록 은거하였으나, 그 군자다운 용모와 덕성을 잃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은 살펴봄이다.
방의 서북쪽 모퉁이를 옥루屋漏라고 이른다.
그대가 방에 혼자 거처할 때를 살펴보니 모퉁이에서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
모퉁이는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사람이 있는 곳이겠는가.
그러므로 군자는 행동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공경하며,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믿는다.
시경詩經》에 “〈종묘宗廟에서 성탕成湯에게 제사 지내며〉 대악大樂을 연주할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 엄숙히 하여〉 말함이 없음은, 〈태평한〉 시대여서 다툴 일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는 큼이다.
이것은 〈종묘에서 연주하는 열조烈祖를〉 기리는 음악의 가사[頌]이다.
종묘의 안에서 대악大樂을 연주할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 엄숙하고 경건히 하여 품격과 절조를 갖추어 말함이 없는 것은 시대가 태평하고 화합하여 다툴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권면되며, 나무라지 않아도 백성들이 도끼보다도 두려워한다.
시경詩經》에 “드러나지 않는가.
문왕文王의〉 이여.
제후들이 본받도다.”라고 하였다.
불현不顯은 드러남을 말한다.
은 임금이다.
이것은 〈제후들이 제사를 도운 일을〉 기리는 음악의 가사[頌]이다.
‘드러나지 않는가.
문왕文王이여.
여러 임금이 모두 본받는다.’라고 말하였으니, 제후들이 그를 본받음을 이른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가 〈그 지극히 성실한 을〉 독실하고 공손하게 하면 천하가 공평하게 다스려진다.
시경詩經》에 “〈상제上帝인〉 나는 밝은 을 지닌 사람〈인 당신 문왕文王〉을 친애[懷]하노니, 〈내가 당신을 친애하는 까닭은〉 목소리와 얼굴빛을 크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는 나[我]이다.
는 친애함[歸]이다.
‘〈상제上帝인〉 내가 밝은 을 지닌 사람〈인 당신 문왕文王〉을 친애하는 것은 목소리를 크게 하며 엄격하고 사나운 얼굴빛을 지어 나를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의 [仲尼]에서 [以色]까지
정의왈正義曰 : 이 한 단락은 자사子思부자夫子(孔子)의 천지天地와 서로 비슷하여 천지에 짝하여 만물을 기를 수 있음을 거듭 드러내어 〈공자에게〉 성스러운 만 있고 그〈에 걸맞은〉 지위가 없음을 가슴 아파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지금 저마다 글을 따라 풀이한다.
○[仲尼 祖述堯舜]는 처음이다.
중니仲尼임금과 임금의 조술祖述하여 처음으로 행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憲章文武]은 본받음[法]이다.
은 밝힘[明]이다.
부자夫子(孔子)가 문왕文王무왕武王을 본보기로 삼아 밝혔음을 말한 것이다.
○[上律天時]은 따름[述]이다.
부자夫子(孔子)가 위로는 천시天時를 따라 행하였다고 말한 것은 〈《춘추春秋》에〉 음양시후陰陽時候를 함께 기재[言]하였기 때문이다.
○[下襲水土]은 그대로 따름[因]이다.
공자孔子가〉 아래로는 제후諸侯의 일과 수토水土〈의 기이한 현상〉이 있는 곳을 그대로 따라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사子思성조聖祖을 찬양하여 중니仲尼가 《춘추春秋》를 찬수撰修함에 이러한 일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의 [吾志]에서 [之異]까지
정의왈正義曰 : [吾志在春秋 行在孝經] 《효경위孝經緯》의 글이다.
제후諸侯의 잘잘못을 포폄함에 〈그 기준이 되는〉 뜻은 《춘추春秋》에 있고, 인륜 존비의 항렬은 《효경孝經》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二經固足以明之] 이것은 정현鄭玄의 말이니, 《춘추春秋》와 《효경孝經》에서 공자孔子[先]가 조술祖述하고 헌장憲章한 일을 분명하게 밝혀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孔子祖述堯舜之道而制春秋] 다음 글에 인용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애공哀公 14년 의 “군자악도요순지도여君子樂道堯舜之道與(군자가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를 말하기 좋아해서일 것이다.)”가 이것이다.
[斷以文王武王之法度] 다음 글에 인용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은공隱公 원년元年 정월正月의 ‘왕자숙위王者孰謂 위문왕謂文王(王은 누구를 이르는가. 문왕文王을 이른다.)’이 이것이다.
[春秋傳曰]에서 [堯舜之知君子也]까지.
애공哀公 14년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글이다.
이를 인용한 것은 임금과 임금〈의 〉를 조술祖述한 일을 이른 것이다.
[君子曷爲爲春秋]은 어찌[何]이다.
군자君子공자孔子를 이른다.
전문傳文에 “공자하위작춘추孔子何爲作春秋(공자가 어째서 《춘추春秋》를 지었는가.)”라고 하였다.
[撥亂世 反諸正 莫近諸春秋] 이 전문傳文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지은 뜻에 대답한 것이다.
하휴何休는 “(다스리다)와 같다.”고 하였다.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요임금‧순임금‧문왕‧무왕의〉 정도正道로 돌아가게 하고자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막근莫近은 더 나은 것이 없음이다.
나머지 책은 《춘추》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말하였으니,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리는 경우에는 《춘추》가 가장 적합함을 말한 것이다.
[其諸君子樂道堯舜之道與] 앞의 ‘’자는 논의하여 말함이요, 뒤의 ‘’자는 도덕道德을 이른다.
어조사語助辭이다.
군자君子공자孔子이다.
‘공자가 임금‧임금의 를 논의하여 말하기를 좋아하고 원해서인가.’라는 말이다.
麒麟(《삼재도회三才圖會》)麒麟(《삼재도회三才圖會》)
[末不亦樂乎堯舜之知君子也]종말終末을 이르니, 공자孔子의 말년을 이른다.
성한聖漢의 초기에 어찌 또한 임금과 임금이 군자를 알아봄을 좋아하지 않았겠는가.
살펴보면, 하휴何休가 “기린麒麟을 잡은 뒤, 하늘에서 피가 떨어져 나라의 단문端門(宮殿의 정남문正南門)에 글씨 형태가 나타났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았다.
‘서둘러 〈왕자王者의〉 법을 제정하라.
〈얼마 안 있어〉 공씨孔氏 성인聖人께서 돌아가시리라.
나라 희씨姬氏〈의 왕조〉가 멸망할 것이니, 〈이 때문에 애공哀公 13년 겨울 11월에〉 혜성彗星이 동쪽에 출현한 것이다.
나라 (始皇帝의 이름)이 일어〈나 천자天子가 되〉지만, 〈그의 아들〉 호해胡亥가 〈선왕先王의〉 사업[術]을 파괴할 것이다.
문자로 기록된 전적典籍이 〈모두〉 흩어지겠지만, 공씨孔氏〈의 《춘추》만은 서로 말로 전하여〉 단절되지 않으리라.’ 〈공자가 그 말을 듣고 자하子夏를 시켜 보고 오게 하였는데〉 자하子夏가 그 이튿날 가서 보니, 피는 날려 적오赤烏가 되고 글씨는 하여 백서白書가 되었다.
나라가 큰 난리의 뒤를 이〈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법을 만들〈어 준〉 것이다.”라고 한 것이 그 일이다.
[又曰 是子也 繼文王之體 守文王之法度 文王之法無求而求 故譏之也] 이것은 문공文公 9년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글이다.
8년에 천왕天王하였으니, 양왕襄王을 이른다.
9년 봄에 모백毛伯이 〈나라에〉 와서 재물[金]을 요구하였다.
전문傳文에 “이 (頃王)는 문왕의 혈통[體]을 계승하였으니 문왕의 법도를 지켜야 한다.
문왕의 법에 〈제후에게 재물을〉 요구함이 없어야 하는데 요구하였기 때문에 기롱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시자是子는 지위를 이어받은 왕이 상중喪中에 있어 이라 일컫기 합당하지 않음을 이른다.
그러므로 ‘시자是子’라고 일컬은 것이다.
지위를 이어받은 왕은 문왕의 법도를 지켜야 한다.
문왕의 법도에 〈제후에게〉 요구함이 없다는 것은 〈천하의〉 3분의 2를 소유하고서도 나라에 복종하여 섬김을 이르며, 상중喪中에 있으니 재물[金]을 요구하는 법도가 합당하지 않음을 이른다.
그런데 지금 모백毛伯을 보내와 재물을 요구하는 것이 〈제후에게 재물을〉 요구함이 없어야 하는데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춘추》에〉 기록하여 기롱譏弄한 것이다.
전문傳文에 ‘시자是子’라고 하였으니, 속본俗本에 ‘자시子是’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又曰 王者 孰謂 謂文王也] 이것은 은공隱公 원년元年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글이다.
《춘추공양전》을 살펴보면 “〈경문經文의〉 원년元年 정월正月에 대해 〈전문傳文에〉 왕은 누구를 이르는가.
문왕文王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무왕武王도 동일하나, 문왕을 거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著之春秋 以俟後聖者也]애공哀公 14년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춘추春秋》의 의리를 제정하고서 후세의 성인聖人을 기다린다.”라고 하였다.
하휴何休가 말하였다.
성한聖漢을 기다리면서 법을 만들었다.”
[述天時 謂編年四時具也] 살펴보면, 〈합성도合成圖〉에 “황제皇帝오시五始를 세워 천도天道로 다스린다.”라고 하였고, 〈원명포元命包〉에 “제후諸侯가 위로 정삭正朔을 준수[奉]하지 않으면 즉위할 수 없다.
정삭이 왕에게서 나오지 않으면 정삭이 될 수 없다.
왕이 하늘을 받들어 호령號令을 제정하지 않으면 법이 없게 된다.
하늘이 그 을 바로 할 수 없으면 그 변화變化를 이룰 수 없다.”라고 하였다.
[襲 因也 因水土 謂記諸夏之事山川之異]제하지사諸夏之事는 제후의 정벌征伐회맹會盟이 있는 곳을 이른다.
산천지이山川之異희공僖公 14년의 ‘사록산沙鹿山이 무너졌다.’와 성공成公 5년의 ‘양산梁山이 무너졌다.’ 같은 따위가 이것이다.
의 [譬如]에서 [大也]까지
정의왈正義曰 : 이것은 공자孔子천지天地일월日月과 서로 비슷함이 천자天子제후諸侯덕화德化와 다름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小德 川流 大德 敦化]
공자孔子가 지은 《춘추春秋》는 제후諸侯의 ‘소덕小德’으로 말하면 냇물의 흐름이 식물의 싹을 적셔주는 것과 같고,
천자天子의 ‘대덕大德’으로 말하면 인애仁愛가 돈후하여 만물을 화생化生시켜주는 것과 같다.
[此天地之所以爲大也]부자夫子(孔子)의 천지天地와 나란하기 때문에 위대함을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다.
의 [五始]원년元年이 하나요, 봄이 둘이요, 왕이 셋이요, 정월正月이 넷이요, 즉위卽位가 다섯이다.
여기서 《춘추春秋》의 원년은 바로 《상서尙書》 〈요전堯典〉의 ‘공경히 호천昊天을 따른다.’에 해당한다.
《춘추》의 사시四時는 〈요전〉의 ‘〈춘분春分은〉 낮이 〈하루의〉 반이요, 〈초저녁 정남방正南方에 나타나는〉 별은 〈남방南方주조朱鳥 7宿 중〉 순화성鶉火星이다.’‧‘〈하지夏至는〉 낮이 〈가장〉 길고, 〈초저녁 정남방에 나타나는〉 별은 〈동방東方 창룡蒼龍 7宿 중〉 대화성大火星이다.’‧‘〈추분秋分은〉 밤이 〈하루의〉 반이요, 〈초저녁 정남방에 나타나는〉 별은 〈북방北方 현무玄武 7宿 중〉 허성虛星이다.’‧‘〈동지冬至는〉 낮이 〈가장〉 짧고, 〈초저녁 정남방에 나타나는〉 별은 〈서방西方 백호白虎 7宿 중〉 묘성昴星이다.’에 해당하는 따위가 이것이다.
春夏秋冬昏星圖(《송판육경도宋板六經圖》)春夏秋冬昏星圖(《송판육경도宋板六經圖》)
《춘추》의 기린麒麟을 잡음은 《상서尙書》 〈익직益稷〉의 ‘온갖 짐승들이 서로 이끌고 춤을 춘다.’‧‘봉황鳳凰이 와서 모습을 드러내고 춤을 춘다.’에 해당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는 모두 임금과 임금의 일을 조술祖述한 것이다.
춘추春秋》에 사시四時가 모두 갖추어졌음을 말하였으나, 환공桓公 4년 및 7년에 ‘추칠월秋七月’‧‘동시월冬十月’을 기록하지 않았고, 성공成公 10년에 ‘동시월冬十月’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환공桓公 17년에는 ‘오월五月’이라고만 하고 ‘’라고 하지 않았고, 소공昭公 10년에는 ‘십이월十二月’이라고만 하고 ‘’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처럼 갖춰지지 않았을 경우, 가공언賈公彦복건服虔의례義例에 만일 에 오르기만 하고 시삭時朔하지 않았으면 ‘’는 기록하고 ‘’은 기록하지 않으며,
만일 시삭時朔만 하고 에 오르지 않았으면 ‘’은 기록하고 ‘’는 기록하지 않으며, 만일 비록 일이 없는데 시삭時朔하고 에 올랐으면 ‘’와 ‘’을 비워두는 것과 같다.
두원개杜元凱(杜預)의 생각에 ‘’와 ‘’이 갖춰지지 않은 것은 모두 사관史官이 의심나는 부분을 빼놓고 기록[闕文]한 것이다.
그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의 뜻은 저마다 곡해曲解된 설이니, 지금 생략하고 취하지 않는다.
의 [唯天]에서 [別也]까지
○이것은 또 부자夫子(孔子)의 이 총명하고 〈그 마음이〉 너그럽고 〈도량度量이〉 큼은 천하를 포용하고 기르기 충분하나, 그에게 성스러운 만 있고 그〈에 걸맞은〉 지위가 없음을 가슴 아파하였음을 거듭 밝힌 것이다.
○[寬裕溫柔 足以有容也]부자夫子(孔子)가 관대하고 하며 따뜻하고 공손하고 화목하고 부드러움은 포용하기 충분함을 말한 것이다.
○[發强剛毅 足以有執也]은 일어남이다.
(결단하다)과 같다.
공자孔子가 의지를 일으키고 꿋꿋하고 굳셈을 단단히 함은 사물을 결단하기 충분함을 말한 것이다.
의 [溥博]에서 [配天]까지
○이 단락은 다시 부자夫子(孔子)가 성스러운 을 깊이 쌓아두고 때를 기다려서 내기 때문에, 해와 달이 비추는 곳에 존경하고 추앙하지 않는 이가 없음을 거듭 밝힌 것이다.
○[溥博淵泉]는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음을 이르고, 은 미치는 곳이 멀고 넓음을 이르니, 적셔주는 은택이 깊고 넓은 듯하기 때문이다.
이미 사려가 깊고 침착하여 그 때를 얻지 않으면 정사政事교화敎化를 내지 않으니, 반드시 때를 기다렸다가 낼 것이다.
○[溥博 如天] 하늘이 덮어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淵泉 如淵] 푹 적셔줌이 냇물의 흐름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夫焉有所倚]에서 [浩浩其天]까지.
앞의 경문經文부자夫子(孔子)의 을 찬미하여 밝혔고, 여기서는 또 부자夫子가 치우치는 것이 없어 인덕仁德이 자연스럽게 성대해졌음을 말하였다.
는 치우쳐 의지하고 가까이하는 것이 있음을 이른다.
부자夫子의 덕이 널리 사람들에게 입혀지는데, 어찌 한 사람만 의지하고 가까이함이 있겠느냐는 말이니, 특별히 치우쳐 공평하지 못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肫肫其仁]순순肫肫은 간절하고 정성스러운 모습이다.
은 은혜를 베풂이 어질고 두터움을 이른다.
순순연肫肫然히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이 어질고 두터움을 행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淵淵其淵]은 물이 깊은 모습이다.
부자夫子(孔子)의 이 아득한 물처럼 깊음을 말한 것이다.
○[浩浩其天]부자夫子(孔子)의 이 드넓고 성대하여 마치 하늘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의 [肫肫 讀如誨爾忳忳之忳]
정의왈正義曰 : 이것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이니, 여왕厲王을 풍자한 시이다.
시인詩人은 너 여왕에게 돈돈연忳忳然히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가르쳐 마지않는데, 여왕은 나의 말을 건성으로 들어 받아들이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의 [苟不固聰明聖知達天德者 其孰能知之] 앞의 경문經文부자夫子(孔子)의 이 하늘처럼 큼을 논하였고, 이 경문經文은 지극히 스러운 사람만이 부자夫子의 덕을 알 수 있음을 논하였다.
는 진실로[誠]이다.
는 참으로[堅固]이다.
임금[帝]으로서 진실로 참으로 총명한 슬기와 막힘없이 통하는 지혜로 천덕天德에 도달한 자가 아니면 그 누가 부자夫子의 덕을 알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므로 에서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요순지지군자堯舜之知君子’를 인용한 것은 임금‧임금의 덕이 있어야 부자夫子를 알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니, 평범한 사람은 알 수 없음을 밝혔다.
○[詩曰 衣錦尙褧 惡其文之著也] 앞의 경문經文에서 부자夫子(孔子)의 이 알기 어렵다고 논하였기 때문에, 이 경문에서 이어서 군자君子소인小人의 숨김과 드러냄이 같지 않은 일을 밝혔다.
이것은 《시경詩經》 〈위풍衛風 석인碩人〉이니, 장강莊姜(衛 장공莊公부인夫人)을 찬미한 시이다.
장강이 처음 〈나라에서〉 시집올 때 〈교외의〉 길에 있으면서 비단옷을 입었는데 그 〈아름다운〉 무늬가 크게 드러났기 때문에, 비단옷 겉에다 홑옷을 껴입었다.
은 홑[襌]이니, 홑명주로 옷을 만들어 입어 비단옷을 덮은 것이다.
《시경》의 본문을 살펴보면 ‘의금경의衣錦褧衣’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상경尙絅’이라고 한 것은 《시경》의 글을 절취截取한 것이다.
속본俗本에는 ‘의금경상衣錦褧裳’이라고 하였으니, 또 정본定本과 다르다.
〈〈중용中庸〉의 이 을〉 기록한 사람[記人]이 군자가 겸손하게 물러남이 그 〈아름다운〉 무늬가 드러남을 싫어해서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시경》을 인용하여 매듭지은 것이다.
○[故 君子之道 闇然而日章]은 밝게 드러남[明]이다.
군자는 그 도덕道德이 깊고 원대하여 겸손하게 물러나, 처음 볼 때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렴풋하다[闇然]’라고 하였고, 그 나중에는 밝게 드러나기 때문에 ‘날로 밝게 드러난다[日章明]’라고 한 것이다.
○[小人之道 的然而日亡]소인小人의 경우는 스스로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처음 볼 때에는 ‘분명한 듯[的然]’하다.
그러나 재주와 기예가 천근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취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날로 더욱 없어진다[日益亡]’라고 한 것이다.
의 [君子]에서 [德矣]까지
○이 한 경문經文은 군자의 는 은미한 것을 살펴 드러날 것을 알기 때문에, ‘〈성인聖人의〉 에 들어갈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淡而不厭] 남에게 아첨하지 않아 처음에는 담박한 듯하지만, 오래될수록 더욱 공경하여 싫증날 만한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簡而文]에 즐기려는 욕심이 없기 때문에 간략하고 깨끗하며, 재주와 기예가 분명하게 변별되기 때문에 법도[文]가 있는 것이다.
○[溫而理]기질氣質[氣性]이 조화롭고 윤택하기 때문에 온화한 것이다.
정직하여 어기지 않기 때문에 조리를 갖춘 것이다.
○[知遠之近] 먼 곳은 반드시 먼저 가까운 데에서 나아간 뒤에야 먼 곳에 미칠 수 있음을 알게 하고자 함을 말한 것이다.
[知風之自]는 나오는 곳을 이른다.
눈앞의 바람을 보면 불어 나오는 곳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현鄭玄에 ‘도말찰본睹末察本(말단을 보아 근본을 살핀다.)’이라고 한 것이다.
은 가까움의 말단이요, 은 나오는 곳의 말단이다.
[知微之顯] 이것은 처음에 은미하게 여겼던 일이 오래되면 밝게 드러남에 나아가니, 는 처음의 단서요, 은 실마리를 풀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정현鄭玄에 ‘탐단지서探端知緖(단서를 더듬어 실마리를 안다.)’라고 한 것이다.
○[可與入德矣] 군자는 말단을 더듬어 근본을 알기도 하고 근본을 보아 말단을 알기도 하니, 은미한 것을 살펴 드러날 것을 알면 처음과 끝을 모두 아는 것이므로 성인聖人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詩云 潛雖伏矣 亦孔之昭] 이것은 군자가 그 몸은 비록 숨겼으나 그 은 밝게 드러남을 밝힌 것이다.
인용한 것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이니, 유왕幽王을 풍자한 시이다.
시경詩經》의 본문은 유왕이 무도하기 때문에, 현인賢人군자君子가 비록 그 몸을 숨겨도 이 매우 밝게 드러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물고기가 물속에 숨어 있어도 매우 잘 드러나 사람에게 붙잡히는 것과 같음을 비유하였다.
〈그러나 여기서는 〈중용中庸〉의 이 을〉 기록한 사람[記者]이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현인‧군자가 몸은 비록 숨겼으나 물고기가 물속에 숨어 있는 것처럼 그 도덕道德이 또한 매우 잘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故 君子 內省不疚 無惡於志]는 흠[病]이다.
군자가 비록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나지 못하였더라도, 안으로 스스로 자신을 살펴 흠[愆病]이 있지 않으면 또한 자기의 뜻에 손해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뜻을 지킴이 더욱 견고함을 말한다.
의 [孔 甚也]
정의왈正義曰 : 《이아爾雅》 〈석언釋言〉의 글이다.
의 [君子]에서 [屋漏]까지
○이것은 군자가 한가로이 혼자 거처하는 곳에서 감히 그릇된 짓을 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를 따라갈 수 없는 점은 아마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뿐일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詩云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이것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이니, 여왕厲王을 풍자한 시이다.
시인의 뜻은 왕조王朝의 소인들이 귀신을 공경하지 않는데, 네가 묘당廟堂 안에 있음을 살펴보니 모퉁이의 에게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일컬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중용中庸〉의 이 을〉 기록한 사람[記者]이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인용해서 군자인 사람은 방 안에 있을 때, 모퉁이가 비록 사람이 없는 곳이지만 감히 그릇된 짓을 하지 않고 오히려 모퉁이의 에게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니, 더욱이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군자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함을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군자는 비록 홀로 거처하더라도 항상 잘 공경함을 말한다.
의 [言君]에서 [人乎]까지
정의왈正義曰 : [君子雖隱居 不失其君子之容德也]은거隱居는 〈군자가〉 방에 혼자 거처할 때에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니,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항상 잘 공경함을 이른다.
이것이 ‘그 군자다운 용모와 덕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西北隅謂之屋漏] 《이아爾雅》 〈석궁釋宮〉의 글이다.
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와 그곳을 비추기 때문에, ‘옥루屋漏’라고 일컬은 것이다.
[屋漏非有人] 사람이 자리하는 곳은 대부분 문에서 가깝고, 방의 모퉁이 깊숙한 곳은 사람이 자리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
[況有人乎]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니, 더욱이 사람이 있는 곳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군자는 사람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고 항상 잘 무서워하고 두려워함을 말한다.
의 [故 君子 不動而敬 不言而信] 군자가 공경하고 두려워함이 이와 같다.
그러므로 행동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공경하며, 말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믿는다.
○[詩曰 奏假無言 時靡有爭] 이것은 《시경詩經》 〈상송商頌 열조烈祖〉이니, 성탕成湯을 찬미한 시이다.
시경詩經》의 본문에서는 ‘종가무언鬷假無言’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주가奏假’라고 한 것은 《시경》과 도리어 다르다.
는 큼이다.
성탕에게 제사 지낼 때 종묘宗廟의 안에서 이 대악大樂을 연주하면 사람들이 모두 엄숙하고 공경히 하여 시끄럽게 떠드는 말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시대가 이미 태평하여 쟁송하는 일이 없어서이다.
그러므로 ‘말이 없는 것’이다.
〈이 시를〉 인용하여 군자는 말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믿음을 증명하였다.
의 [假 大也]
정의왈正義曰 :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의 [詩曰 不顯 惟德 百辟其刑之] 이것은 《시경詩經》 〈주송周頌 열문烈文〉이니, 문왕文王을 찬미하였다.
‘드러나지 않았는가.
문왕의 덕이여.’는 그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도덕道德이 밝게 드러났기 때문에,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본받는 것이다.
〈이 시를〉 인용한 것은 군자의 덕이 문왕과 같아 그 덕이 밖으로 밝게 드러남을 증명한 것이니, 중인衆人들이 모두 본받음을 밝힌 것이다.
의 [辟 君也]
정의왈正義曰 :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의 [詩曰 予懷明德 不大聲以色] 이것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황의皇矣〉이니, 문왕文王을 찬미한 시이다.
는 나[我]이다.
는 친애함[歸]이다.
하늘〈의 상제上帝〉가 문왕을 두고 ‘〈상제인〉 나는 그대의 밝은 을 친애하노니, 친애하는 이유는 문왕이 음성音聲을 크게 하여 엄격하고 사나운 얼굴빛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애[歸]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중용中庸〉의 이 을〉 기록한 사람[記者]이 〈이 시를〉 인용하여 군자도 음성을 크게 하여 엄격하고 사나운 얼굴빛을 짓지 않음이 문왕과 같음을 증명한 것이다.


역주
역주1 天時 : 봄‧여름‧가을‧겨울이 차례대로 운행하는 질서를 말한다.
역주2 水土 :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토질‧지형‧기후‧동식물 등등의 자연조건을 말한다.
역주3 孔子曰……行在孝經 : 《孝經緯》 〈鉤命決〉에 나온다.
역주4 春秋傳曰……堯舜之知君子也 : 《春秋公羊傳》 哀公 14년 春西狩獲麟傳에 나온다. ‘春秋’와 ‘其諸’ 사이에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則未知其爲是與]”라는 말이 생략되었다.
역주5 : 《春秋公羊傳注疏》의 徐彦(唐) 疏에 “孔子의 道가 堯임금‧舜임금과 딱 맞았기 때문에, 요임금‧순임금과 서로 마주해보면 首와 末이 된다.[孔子之道 旣與堯舜雅合 故得與堯舜相對爲首末]”라고 하였으니, 末은 공자를 가리킨다. 孔穎達은 疏에서 “末은 終末을 이르니, 孔子의 말년을 이른다.[末謂終末 謂孔子末]”라고 하였다.
역주6 是子也 : 子는 周 頃王을 말한다. 魯 文公 8년에 周 襄王이 죽자, 周 頃王이 장례 지내기 위하여 毛伯 衛를 魯나라에 보내 사사로이 재물을 요구하였는데, 아직 喪中에 있고 즉위하지 않았기 때문에 ‘王’이라고 하지 않고 ‘子’라고 일컬은 것이다.
역주7 又曰……故譏之也 : 《春秋公羊傳》 文公 9년 春毛伯來求金傳에 나온다.
역주8 又曰……謂文王也 : 《春秋公羊傳》 隱公 元年 春王正月傳에 나온다.
역주9 諸夏之事山川之異 : 諸夏之事는 列國 제후들의 征伐‧會盟‧朝聘 따위를 이르고, 山川之異는 산사태나 홍수, 또는 비정상적인 것 등의 기이한 현상을 이른다.(海保漁村(日), 《中庸鄭氏義》)
역주10 小德 川流 : 孔穎達은 川流를 ‘川水之流’라고 하였고, 朱熹도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줌에 만물이 그 사이에서 함께 자라도 서로 해치지 않으며, 사계절과 해‧달이 번갈아 운행하고 번갈아 밝게 비춰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해치지 않고 어긋나지 않음은 작은 德이 냇물의 흐름과 같기 때문이다.……작은 덕은 全體의 부분이다.……川流는 냇물의 흘러감과 같으니, 줄기가 분명하여 쉼 없이 흘러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兪樾(淸)은 “小德川流와 大德敦化는 서로 대비되는 글인데, 川流를 냇물의 흐름이라고 풀이하면 敦化와 대비되지 않으니, 川은 順으로 읽어야 한다.……《周易》 坤卦의 《經典釋文》에 ‘坤은 본래 巛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으니, 巛은 바로 川자의 隷書이다. 川을 坤이라고 한 것은 川을 順이라고 읽은 것이다.……小德順流는 작은 덕이 순히 받들어 유행함을 말한다.[小德川流大德敦化相對爲文 若解作如川水之流 則與敦化不對矣 川當讀爲順……周易坤卦釋文曰 坤本又作巛 巛乃隷書川字 以川爲坤者 讀川爲順也……小德順流 言小德順承而流行也]”라고 하였다.(《群經平議》 〈小戴禮記 四〉 小德川流條)
역주11 大德 敦化 : 朱熹는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줌에 만물이 그 사이에서 함께 자라도 서로 해치지 않으며, 사계절과 해‧달이 번갈아 운행하고 번갈아 밝게 비춰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함께 자람과 함께 행해짐은 큰 德이 化育을 돈후하게 하기 때문이다. 큰 덕은 만 가지 갈래의 근본이다.……敦化는 그 화육을 돈후하게 함이니, 뿌리가 매우 크고 왕성하여 끝없이 뻗어나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12 五始 : 《春秋》의 紀事를 시작할 때 쓰는 元年‧春‧王‧正月‧公卽位 등 다섯 가지 일이다. 《漢書》 〈王褒傳〉의 顔師古 注에 “元은 氣의 시초, 春은 사계절의 시초, 王은 受命의 시초, 正月은 正敎의 시초, 公卽位는 一國의 시초이니, 이것이 五始이다.[元者氣之始 春者四時之始 王者受命之始 正月者正敎之始 公卽位者一國之始 是爲五始]”라고 하였다.
역주13 聰明睿知……足以有別也 : 朱熹는 ‘聰明睿知’는 ‘태어나면서 〈저절로〉 아는 자질[生知之質]’이고 ‘寬裕溫柔’‧‘發强剛毅’‧‘齊莊中正’‧‘文理密察’ 네 가지는 ‘仁義禮智의 德’이라고 하여 ‘聰明睿知’는 綱, 다음 네 가지는 目처럼 보았다.
그러나 孔穎達은 ‘聰明寬裕’를 함께 말하고, 또 ‘爲能聰明睿知’의 ‘爲能’을 ‘足以有別也’까지 연결시켜 다섯 가지를 대등한 병렬구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언해의 토씨도 ‘足以有臨也니’에서 ‘足以有臨也며’로 바꾸었다. 伊藤東涯(日)도 ‘저마다 說이 되어 綱目으로 나누기 어렵다.[各自爲說 難分綱目]’라고 하였다.(東條一堂(日), 《中庸知言》)
역주14 無其命 : 命이 없다는 것은 天子의 지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역주15 蠻貊 : 蠻은 華夏 남쪽의 소수민족을, 貊은 화하 북쪽의 소수민족을 통칭하는 말로, 그들을 업신여겨 부르는 용어이다. 貊은 貉이라고도 쓰는데, 狄과 같은 뜻이다.
역주16 : 墜의 뜻이다.
역주17 經綸天下之大經 立天下之大本 : 朱熹는 “經과 綸은 모두 실을 다루는 일이다. 經은 그 실마리를 서려 나누는 것이요, 綸은 그 비슷한 것을 추려 합치는 것이다. 經은 綱常이다. 大經은 다섯 가지의 人倫이다. 大本은 性의 전체이다.”라고 하였다.
陸德明의 《經典釋文》에는 ‘經綸’이 ‘經論’으로 되어 있다. 鄭玄은 아마 이것을 근거로 ‘大經’을 《春秋》로, ‘大本’을 《孝經》으로 주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정현의 설을 따르지 않는다. 陳戍國(中)은 朱熹와 鄭玄의 설을 모두 부정하면서 ‘大經’은 ‘修身’, ‘大本’은 ‘至聖이 갖춘 至誠’으로 풀이한다.(《四書校注》)
역주18 夫焉有所倚 : 朱熹는 倚를 ‘의지하다’라고 보아, ‘聖人은 다른 事物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至誠에 바탕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역주19 (無)[有] : 저본에는 ‘無’로 되어 있으나, 惠棟校宋本‧宋監本‧岳本‧嘉靖本‧衛氏集說本에 ‘有’로 되어 있고, 阮刻本에 “閩本‧監本‧毛本에는 ‘無’로 되어 있으니 誤字이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有’로 바로잡았다.
역주20 (故)[而] : 저본에는 ‘故’로 되어 있으나, 阮刻本에 “惠棟校宋本에는 ‘故’가 없고, 岳本에는 ‘故’가 ‘而’로 되어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故’를 衍文으로 처리하고 ‘而’를 보충하였다.
역주21 誨爾忳忳 : 《詩經》 〈大雅 抑〉에는 ‘誨爾諄諄’으로 되어 있다.
역주22 其孰能知之 : 佐藤一齋(日)는 “이 知자는 主管한다는 뜻이다.[此知字 亦主管之意]”라고 하여, 앞의 ‘經綸天下之大經’‧‘立天下之大本’‧‘知天地之化育’의 세 가지를 주관하는 것으로 보았다.(《中庸欄外書》)
역주23 春秋傳曰 末不亦樂(요)乎堯舜之知君子 : 앞의 204쪽 주2) ‘末’과 주3) ‘春秋傳曰……堯舜之知君子也’ 참조.
역주24 詩曰 衣錦尙絅 : 《詩經》 〈衛風 碩人〉과 〈鄭風 丰〉에 나온다. 〈위풍 석인〉에는 ‘衣錦褧衣’, 〈정풍 봉〉에는 ‘衣錦褧衣 裳錦褧裳’으로 되어 있다. 孔穎達의 疏에 “《詩經》의 본문을 살펴보면 ‘衣錦褧衣’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尙絅’이라고 한 것은 《시경》의 글을 截取한 것이다. 또 俗本에는 ‘衣錦褧裳’이라고 하였으니, 또 定本과 다르다.”라고 하였다.
王引之(淸)는 “衣錦尙絅은 《시경》에 없는 말이니, ‘詩曰’의 아래에는 본래 ‘衣錦絅衣’ 4자가 있었고, ‘衣錦尙絅’은 詩를 풀이한 말이다.[衣錦尙絅 詩無此語 竊謂詩曰下 本有衣錦絅衣四字 衣錦尙絅 則釋詩之詞也]”라고 하여, ‘詩曰’의 아래에 ‘衣錦絅衣’ 4자가 탈락된 것으로 본다.(《經義述聞》 〈禮記 下〉 詩曰衣錦尙絅條)
반면 兪樾(淸)은 絅은 褧, 尙은 裳의 假借字로서 〈정풍 봉〉의 ‘衣錦褧衣 裳錦褧裳’을 聚合하여 인용한 것으로, 孔穎達의 疏에서 ‘衣錦褧裳’이라고 한 俗本이 옳다고 하였다. “《古本禮記》에는 대체로 ‘衣錦絅尙’이라고 되어 있는데, 絅은 바로 褧의 다른 글자이고, 尙은 裳의 가차자이다. 古文은 소리를 주로 한다. 裳은 尙聲이기 때문에 곧 尙을 裳이라고 한 것이다. 《시경》 〈정풍 봉〉에 ‘衣錦褧衣 裳錦褧裳’이라고 하였는데, 〈〈中庸〉의 이 章을〉 기록한 사람이 그 말을 聚合하여 ‘衣錦褧裳’이라고 한 것이다.……모두 두 구절을 합하여 한 구절로 만든 것이다. 經師들이 서로 전수하면서 이 絅尙이 바로 《시경》의 褧裳이기 때문에, 마침내 그 글자를 고쳐 《毛詩》를 따른 것이 있었으니, 《正義》에 이른바 俗本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戴記(禮記)》가 오래된 책은 아니지만 그 글은 진실로 잘못되지 않았다. 〈‘衣錦尙絅’을 曲解하는 것은〉 假借의 뜻이 밝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자가 古本에 ‘衣錦絅尙’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도 尙이 裳의 가차자인 줄 몰랐다면 그 뜻이 통하지 못함을 의심해야 하는데, 마침내 尙자를 絅자의 앞으로 옮겨 ‘衣錦尙絅’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唐人이 定本을 만들자, 그것을 따라 서로 좇아 지금까지 바로잡을 수 있는 이가 없었다.[古本禮記 蓋作衣錦絅尙 絅乃褧之異文 尙乃裳之叚字 古文以聲爲主 裳從尙聲 故卽以尙爲裳也 詩鄭風丰篇曰 衣錦褧衣 裳錦褧裳 記人撮擧其辭曰 衣錦絅尙……竝合兩句爲一句也 經師相傳 以此絅尙 卽詩之褧裳 遂有改其字以從毛詩者 正義所謂俗本 是也 雖非戴記之舊 然其文固未誤 自叚借之義不明 學者見古本作衣錦絅尙 而不知尙爲裳之叚字 則疑其義之不可通 遂移尙字於絅字之上 而作衣錦尙絅 於是唐人作定本 從之相沿 至今莫能是正矣]”라고 하였다.(《群經平議》 〈小戴禮記 四〉 詩曰衣錦尙絅惡其文之著也條)
역주25 知遠之近……知微之顯 : 兪樾(淸)은 ‘知遠之近 知風之自 知微之顯’의 세 ‘之’자를 접속사 ‘與’로 보아 ‘知遠與近 知凡與目(유월은, 風은 凡과 통용하고 自는 目의 誤字라고 하였다.) 知微與顯’이라고 해야 뜻이 분명해진다고 하였다.(《古書疑義擧例》 〈五十一 古書連及之詞例〉) 이 경우 ‘먼 것과 가까운 것을 알며, 큰 일(大凡)과 작은 일(細目)을 알며, 은미한 것과 드러난 것을 알다.’라는 뜻이다.
역주26 可與入德矣 : 朝鮮 校正廳 《中庸諺解》에는 ‘可히 더브러 德애 入하리라’라고 하여 ‘與’를 實辭로 보았으나, 李珥(朝鮮)는 《中庸釋義》에서 ‘入ᄒᆞᆯ디니라’라고 하였고, 孔穎達은 疏에서 ‘故可以入聖人之德矣’라고 하여 ‘與’를 虛辭 ‘以’로 보았다.
역주27 詩云……亦孔之昭 : 《詩經》 〈小雅 正月〉에 나온다.
역주28 無惡於志 : 朱熹는 ‘惡’는 ‘愧(부끄럽다)’로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하여 愼獨의 일로 보았다. 그러나 鄭玄은 ‘道를 실천하려는 자기의 뜻에는 손해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하였고, 孔穎達은 ‘뜻을 지킴이 더욱 견고해진다.[守志彌堅固也]’라고 부연하였다.
역주29 隱居 : 陸德明의 《經典釋文》에는 표제어가 ‘隱遯’으로 되어 있고, “또 어떤 판본에는 遁으로 되어 있다.[本又作遁字]”라고 하였다.
역주30 詩云……尙不愧于屋漏 : 《詩經》 〈大雅 抑〉에 나온다.
역주31 : 孔穎達은 《詩經》 〈大雅 抑〉에서는 室이 廟堂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으나, 여기서는 斷章取義하여 ‘군자가 한가로이 혼자 거처하는 房’이라는 의미로 보았다.
역주32 詩曰……時靡有爭 : 《詩經》 〈商頌 烈祖〉에 나온다.
역주33 奏假無言 時靡有爭 : 朱熹의 《詩集傳》 〈商頌 烈祖〉에는 바로 앞의 篇인 〈商頌 那〉 ‘奏假’에 대해 “음악을 연주하여 祖考를 이르게 함을 말한다.[言奏樂以格于祖考也]”라고 주석한 것과 동일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中庸章句》에서는 “〈제사를〉 올려 신명을 감동시켜 이르게 하는 것이다.[進而感格於神明]”라고 하였다.
丁若鏞(朝鮮)은 “奏假은 백성들이 믿고 감격한다는 것이지 신명이 감격하는 것이 아니다. 편 마지막에 모두 7편의 시를 인용하였는데 앞의 3절은 모두 스스로 닦는 것이고, 뒤의 3절은 모두 백성을 교화하는 것이고, 마지막 1절은 人道와 天道를 합하여 매듭지었다. 그렇다면 奏假無言은 백성을 감격시키는 것이지 신명을 감격시키는 것이 아니다.[奏假者 百姓孚格也 非神明感格也 篇末凡七引詩 上三節皆自修也 下三節皆化民也 末一節人道天道之合結也 然則奏假無言者 格民也 非格神]”라고 하였다.(《中庸講義補》)
鄭玄과 孔穎達은 《毛詩正義》에서 ‘奏假’를 ‘總升’으로 보아 ‘모두 모여 堂에 올라 자리하는 것[總集升堂]’으로 풀이하였으나, 〈中庸〉에서는 ‘종묘의 안에서 大樂을 연주하다.’라고 풀이하였다.
역주34 奏假 : 《詩經》 〈商頌 烈祖〉에는 ‘鬷假’로 되어 있고, 《春秋左氏傳》 昭公 20년 齊侯至自田條에 인용된 곳에는 ‘鬷嘏’로 되어 있다.
역주35 金聲玉色 : 곧고 바른 품격과 절조를 비유하는 말로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형용한 말로 보인다.
역주36 不顯 : 不은 丕와 통용하기 때문에 ‘크다[大]’는 뜻으로 보아 ‘〈누구나 알 수 있게〉 크게 드러나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역주37 詩曰……百辟其刑之 : 《詩經》 〈周頌 烈文〉에 나온다.
역주38 [謂] : 저본에는 ‘謂’가 없으나, 阮刻本에 “惠棟校宋本에는 본래 ‘謂’자가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9 篤恭而天下平 : 篤恭은 聖人의 몸가짐[容]을 표현한 말이다. 朱熹는 “篤恭은 드러나지 않은 그 공경스러움이니, 篤恭而天下平은 바로 聖人의 지극한 덕이 깊고 은미하여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이니, 中庸의 지극한 공효이다.”라고 하였다.
李瀷(朝鮮)은 이를 부연하여 “恭은 敬이 겉에 나타난 것이요, 敬은 恭이 안에 자리잡은 것이다. ‘不顯’은 보이지 않게 안으로 쌓인 것이니, ‘不顯其敬’이 바로 ‘篤恭’이다. 天子가 안으로 敬을 닦아 자기를 공손히 하여 南面하면 제후들이 본받고 천하가 저절로 화평해짐에 이른다. 이는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를 닦는 敬이 두텁게 쌓여 멀리까지 미칠 뿐이다.……孔子가 ‘자신을 공손하게 하여 남쪽을 향해 바르게 앉아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는데, 《論語集註》에 ‘恭己는 聖人이 德을 敬虔하게 실천하는 몸가짐[容]이니, 이미 인위적인 것이 없으면 사람들이 보기에 이와 같을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장의 글과 함께 참조해 보아야 할 것이다.[恭者敬之見於外者 敬者恭之主於中者也 不顯者闇然而內積 不顯其敬便是篤恭也 天子內修以敬 而恭己南面 至於百辟刑之 天下自平 非有他術 只這修己之敬 敦積遠及而已……子曰恭己正南面而已 集註云恭己者聖人敬德之容 旣無所爲 則人之所見如此而已 宜與此參看]”라고 하였다.(《中庸疾書》)
海保漁村(日)도 李瀷과 비슷한 논조로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이러므로 孔子篤恭而天下平이라는 구절은 앞의 ‘詩曰 不顯惟德 百辟其刑之’를 맺은 말로서, 篤恭은 ‘不顯惟德’을 받았고 天下平은 ‘百辟其刑之’를 받았다. 《論語》 〈衛靈公〉에서 孔子가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작위함 없이 다스린 자는 아마 舜임금일 것이다. 무슨 일을 하였겠는가. 자기를 공손히 하고 바르게 南面하였을 뿐이다.)’라고 하였는데, 篤恭은 바로 ‘恭己正南面’이다. 篤恭은 《논어》의 ‘篤信’과 같으니, 공손함이 성대한 것[恭之盛]을 이른다.[是故君子篤恭而天下平句 是上節結語 篤恭承不顯惟德 天下平承百辟其刑之 論語孔子曰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篤恭卽恭己正南面也 篤恭與論語篤信同 謂恭之盛也]”(《中庸鄭氏義》)
역주40 : 여기서 크게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심하게 한다는 뜻이다. 李滉(朝鮮)은 “大는 귀하게 여김이며, 주로 함이다.[大 猶貴也主也]”라고 하였다.(《中庸釋義》)
역주41 予懷明德 不大聲以色 : 朝鮮 校正廳 《中庸諺解》에는 “내 明德의 聲과 다뭇 色을 크게 아니홈을 懷ᄒᆞ노라”라고 하였고, 李滉(朝鮮)은 《中庸釋義》에서 “내 明德이 聲이며 다뭇 色을 크게 아니ᄒᆞᄂᆞ 니ᄅᆞᆯ 懷ᄒᆞ노라”와 “聲과 다뭇 色을 크게 아니호믈 懷ᄒᆞ다”라는 두 가지 풀이를 제시하였다.
역주42 詩曰……不大聲以色 : 《詩經》 〈大雅 皇矣〉에 나온다.
역주43 聲以色 : 以는 與와 통용되니, ‘聲以色’은 ‘聲與色’과 같다. 聲은 號令을 내는 것이다. 鄭玄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色을 顔色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汪德鉞(淸)은 “色은 象魏懸書 따위를 이른다.[色謂象魏懸書之類]”라고 하였다.(馬瑞辰(淸), 《毛詩傳箋通釋》) ‘象魏’는 옛날 천자나 제후의 宮門 밖 양쪽에 세운 한 쌍의 높은 건축물로, 여기에 敎令을 게시하였다. 象魏는 ‘闕’ 또는 ‘觀’이라고도 부른다.
역주44 (發)[法] : 저본에는 ‘發’로 되어 있으나, 阮刻本에 “살펴보건대 이는 윗글의 ‘憲은 본받음이다. 章은 밝힘이다.’라는 말을 이었으니, 憲章은 法明과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文王‧武王의 德을 본보기로 삼아 밝혔음을 말한 것이다. 閩本‧監本‧毛本에는 모두 ‘法’이 ‘發’로 되어 있으니, 그 본의를 잃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法’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5 (鳥)[烏] : 저본에는 ‘鳥’로 되어 있으나, 阮元(淸)의 《春秋公羊傳注疏校勘記》에 “蜀大字本‧閩本‧監本‧毛本은 똑같으나 誤字이다. 鄂本에는 ‘鳥’가 ‘烏’로 되어 있으니, 마땅히 이에 근거하여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烏’로 바로잡았다.
역주46 (秦)[繼] : 저본에는 ‘秦’으로 되어 있으나, 《春秋公羊傳注疏》에 의거하여 ‘繼’로 바로잡았다.
역주47 (譽)[擧] : 저본에는 ‘譽’로 되어 있으나, 阮刻本에 “惠棟校宋本에는 ‘譽’가 ‘擧’로 되어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擧’로 바로잡았다.
역주48 合成圖 : 緯書集成本에는 ‘合誠圖’로 되어 있다.
역주49 皇帝 : 緯書集成本에는 ‘黃帝’로 되어 있다.
역주50 元命包 : 緯書集成本에는 ‘元命苞’로 되어 있다.
역주51 : 저본 및 諸本의 經文에는 ‘辟’로 되어 있으나, ‘譬’는 辟의 後起字로서 疏의 표제어에서 ‘辟’를 직접 풀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저본대로 두었다.
역주52 :
臺(《三才圖會》)臺(《三才圖會》)
《五經異義》에 ‘天子에게는 세 개의 臺가 있으니, 靈臺는 天文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요, 時臺는 四時와 施化(자연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한 것이요, 囿臺는 鳥獸魚鼈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다.[天子有三臺 靈臺以觀天文 時臺以觀四時施化 囿臺以觀鳥獸魚鼈]’라고 하였다.(徐堅(唐), 《初學記》 〈臺 六〉)
역주53 視朔 : 옛날 天子나 諸侯가 매월 초하루에 祖廟에 제사를 지낸 뒤, 太廟에서 政事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54 ○五始者……今略而不取也 : 저본에는 앞의 疏 ‘云述天時……不能成其化也’의 뒤에 붙어 있다. 그러나 이 단락은 經文의 ‘辟如天地……所以爲大也’에 대한 鄭玄의 注 ‘唯五始可以當焉’의 五始를 풀이한 것이므로, 여기로 옮겨 번역하였다.
역주55 [○] : 저본에는 ‘○’이 없으나, 汲古閣本‧福建本에 의거하여 보충하고 단락을 나누었다.
역주56 從來之末也 : 저본에는 ‘原空缺五字 從來之末也’라고 되어 있으나, 阮刻本에 “《七經孟子考文補遺》에 실려 있는 宋板 《禮記正義》에는 빈 칸에 ‘從來之末也’ 5자를 보충하였다. 살펴보건대 5자가 중복되기 때문에 衍文으로 본 것이니, 各本에서 삭제한 것이 옳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原空缺五字’는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57 (曰)[云] : 저본에는 ‘曰’로 되어 있으나, 經文에 의거하여 ‘云’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8 (無)[非] : 저본에는 ‘無’로 되어 있으나, 注文 및 汲古閣本‧福建本‧武英殿本에 의거하여 ‘非’로 바로잡았다.
역주59 (云)[曰] : 저본에는 ‘云’으로 되어 있으나, 經文 및 汲古閣本에 의거하여 ‘曰’로 바로잡았다.
역주60 (○) : 저본에는 ‘○’이 있으나, 文例에 의거하여 삭제하였다.

예기정의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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