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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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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범관지주의집范貫之奏議集》에 쓴 서문
須覽公所序奏議之忠直하되 而能本朝廷所以容忠直處 纔是法家
공이 주의奏議의 내용이 충직함을 서술하면서도 능히 조정이 그 충직을 수용한 것에다가 그 근본을 둔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처럼 문장을 지어야 모범적인 대가大家이다.
尙書戶部郞中直龍圖閣范公貫之之奏議 凡若干篇이니 其子世京 集爲十卷하여 而屬余序之
상서호부랑중尙書戶部郞中 직용도각直龍圖閣 범공范公 관지貫之주의奏議는 모두 약간 편인데, 그의 아들 세경世京이 모아 10권을 만들고서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蓋自至和以後十餘年間 公嘗以言事任職이라
지화至和(송 인종宋 仁宗의 연호, 1054~1055) 연간 이후로 십여 년 동안 언관言官의 직책을 맡았다.
自天子大臣으로 至於群下 自掖庭으로 至於四方幽隱 一有得失善惡關於政理하면 公無不極意反復하여 爲上力言하되 或矯拂情欲하고 或切劘計慮하며 或辨別忠佞하여 而處其進退
천자와 대신으로부터 여러 아랫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궁중신하로부터 사방의 은둔한 선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득실得失선악善惡 중에 조금이라도 정사政事에 관계가 있는 것이 있으면 은 마음을 다하여 반복해서 황제를 위해 진언進言하되, 혹은 정욕情欲을 바로잡아 떨쳐버리도록 하고 혹은 계책을 보완하도록 하며 혹은 충직하고 간사한 무리를 변별해내어 그들의 진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章有一再하고 或至於十餘上하며 事有陰爭獨陳하고 或悉引諫官御史合議肆言이라
주장奏章을 올린 것은 한두 차례인 것부터 혹 십여 번에 이르는 것도 있으며, 논사論事한 것은 은밀히 홀로 간쟁한 경우부터 혹 모든 간관諫官어사御史를 이끌고 함께 의논하고 진언한 경우도 있었다.
仁宗常虛心采納하여 爲之變命令하고 更廢擧하되 近或立從하고 遠或越月逾時하며 或至於其後하여 卒皆聽用이라
그러면 인종仁宗은 항상 마음을 비우고 간언을 받아들여 명령을 고치고 등용 여부를 바꾸되, 빠를 때는 곧바로 따르고 느릴 때는 혹 한 달을 지나거나 한 철을 지나기도 하며 혹 일이 끝난 뒤가 되기도 하였지만 결국에는 진언進言을 모두 따랐다.
蓋當是時하여 仁宗在位歲久하여 熟於人事之情僞與群臣之能否하여 方以仁厚淸靜으로 休養元元이요 至於是非予奪하여는 則一歸之公議而不自用也
당시에 인종仁宗은 재위한 지 오래되어 인사人事진위眞僞군신群臣현부賢否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인후仁厚청정淸靜으로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있었으며, 시비是非를 가리고 여탈予奪을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오로지 공론에 따라 처리하고 자신의 사견은 쓰지 않았다.
其所引拔以言爲職者 如公皆一時之選이요 而公與同時之士 亦皆樂得其言하여 不曲從苟止
인종仁宗이 선발한 언관言官은 모두 과 같은 훌륭한 인재였으며, 과 당시의 언관言官들 또한 모두 진언進言할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여 사사로이 굽히거나 구차히 멈추지 않았다.
故天下之情 因得畢聞於上하고 而事之害理者 常不果行이요 至於奇衺恣睢 有爲之者라도 亦輒敗悔
그러므로 천하의 실정이 이들을 통해 모두 천자에게 알려졌고 상도常道에 어긋나는 일들이 전혀 실행되지 못하였으며, 간사하고 방자한 일을 행하는 자가 있어도 번번이 실패하고서 후회하였다.
故當此之時하여 常委事七八大臣 而朝政無大缺失하고 群臣奉法遵職하여 海內乂安이라
그러므로 당시에는 항상 7, 8명의 대신大臣들에게 국정을 맡겨두어 조정엔 큰 문제가 없었고, 군신群臣은 법을 받들고 직무를 이행하여 천하가 안정되었다.
夫因人而不自用者 天也 仁宗之所以其仁如天하여 至於享國四十餘年하고 能承太平之業者 繇是而已
남을 따르고 자신의 사견을 쓰지 않는 것은 공정한 천리天理이니, 인종仁宗의 그 어진 덕은 하늘과 같아 40여 년간 나라를 소유하고 태평의 왕업王業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일 뿐이다.
後世 得公之遺文하여 而論其世하고 見其上下之際相成如此하면 必將低回感慕하여 有不可及之嘆이요 然後知其時之難得이리라
후세에 유문遺文을 얻어 그 당시 세상을 논하고 상하가 이와 같이 서로 돕고 이루어주었음을 본다면, 필시 깊이 감동하여 그때에 미쳐 태어나지 못했음을 탄식하게 될 것이요, 그런 후에 그런 시대는 얻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則公言之不沒 豈獨見其志리오
그러니 의 말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 어찌 다만 그의 뜻을 보이는 의미만 있겠는가.
所以明先帝之盛德於無窮也
선제先帝의 거룩한 덕을 무궁한 후세에까지 밝히는 일인 것이다.
公爲人溫良慈恕하여 其從政寬易愛人이라
은 사람됨이 온화하고 진실하고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정무政務를 볼 때에는 관대하고 소탈하였으며 백성을 사랑하였다.
及在朝廷하여는 危言正色하여 人有所不能及也
그러나 조정에 있을 때에는 직언直言을 하고 정색正色을 하여 남들은 미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凡同時與公有言責者 後多至大官이어늘 而公獨早卒이라
동시대에 과 함께 언관言官을 맡았던 자들은 뒤에 대부분 높은 관직에 이르렀는데 만 홀로 일찍 죽고 말았다.
諱師道 其世次州里歷官行事 有今資政殿學士趙公忭 爲公之墓銘云이라
은 이름이 사도師道이다. 그의 세차世次, 관적貫籍, 수행한 관직, 업적은 지금 자정전학사資政殿學士로 있는 조공趙公 의 묘갈명에 기록해놓았다.
王遵巖曰 沈着頓挫하고 光采自露
왕준암王遵巖이 말하였다. “무게 있고 함축적이며 변화가 많아 광채가 절로 드러난다.
且序人奏議 發明直氣切諫하고 而能形容聖朝之氣象 治世之精華하니 眞大家數手段이라
또 다른 사람의 주의奏議에 서문을 쓰면서 그의 곧은 기운과 간절한 간언을 드러내되 성조聖朝의 기상과 치세治世의 핵심을 형용해내었으니, 참으로 대가大家의 솜씨이다.
如蘇公序田錫奏議 亦有此意 然其文詞 過於俊爽而氣輕味促이라하니라
소공蘇公(소식蘇軾)이 쓴 〈전표성주의서田表聖奏議序〉도 이러한 뜻이 있으나 그 문장이 지나치게 호탕하여 기운이 가볍고 맛이 짧다.”
역주
역주1 范貫之奏議集序 : 貫之는 范師道(1005~1063)의 자이다. 宋 名臣 范仲淹의 從兄 아들로, 仁宗 만년 무렵에 이름난 諫官이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아들이 그가 생전에 작성한 奏議를 수집하여 작자에게 그 서문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范師道는 조정에서 곧은 절개와 늠름한 기풍으로 남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거침없이 토로하였는데, 작자의 이 서문도 잡다한 수식어 대신 소박하고 진실한 어구를 사용하여 范師道의 꿋꿋한 정신과 부합시켰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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