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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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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소명윤蘇明允에 대한 애사
敍明允生平 亦儘有生色可觀이라
명윤明允의 생애를 서술한 내용이 또한 매우 생동감 있어 볼 만하다.
明允 蘇氏이니 眉州眉山人也
명윤明允은 성은 소씨蘇氏이고 이름은 이니 미주眉州 미산眉山 사람이다.
처음에 진사과進士科에 응시하고 또다시 무재이등과茂才異等科에 응시하였으나 모두 합격하지 못하였다.
歸焚其所爲文하고 閉戶讀書하니
고향으로 돌아와 그동안 자신이 지은 글을 태워버린 뒤에 문을 닫고 책을 읽었다.
居五六年 所有旣富矣하니 乃始復爲文이라 蓋少或百字 多或千言이니
이렇게 5, 6년을 지내다가 학문이 풍부해진 뒤에 비로소 다시 글을 지었는데, 이 글들은 짧은 것은 혹 백 자가 되고 긴 것은 혹 천 마디나 되었다.
其指事析理 引物託諭 侈能盡之約하고 遠能見之近하며 大能使之微하고 小能使之著하며 煩能不亂하며 肆能不流
사물의 이치를 분석하거나 어떤 사물을 빌어 드러내고픈 생각을 가탁한 것을 살펴보면, 풍부한 내용을 능히 간결한 문자로 표현하고 심원한 도리를 능히 쉬운 문자로 전달하고, 큰 일을 능히 미세하게 만들고 작은 일을 능히 드러나게 하였으며, 내용이 번잡하더라도 능히 어지럽지 않게 하고 기세가 자유분방하더라도 능히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게 하였다.
其雄壯俊偉 若決江河而下也 其輝光明白 若引星辰而上也
그 웅장하고 준수하고 위대한 기운은 마치 제방이 터진 강물이 세차게 흘러내려 가는 것 같고, 그 빛나고 밝은 논리는 마치 별들이 밤하늘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其略如是하니 以余之所言으로 於余之所不言 可推而知也
그 정황이 대략 이와 같으니, 내가 언급한 이 말을 통해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明允 每於其窮達得喪 憂歎哀樂 念有所屬이면 必發之於此하며 於古今治亂興壞 是非可否之際 意有所擇이면 亦必發之於此하며
명윤明允은 매양 자신의 궁달과 득실, 근심스럽거나 즐거운 일을 만났을 때 생각이 촉발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문장 속에 드러내었고, 고금의 치란과 흥망, 시비와 가부 등의 사례에 대해 내심 평가를 내리는 일이 있으면 또한 반드시 문장 속에 드러내었으며,
於應接酬酢萬事之變者 雖錯出於外라도 而用心於內者 未嘗不在此也
천만 가지로 변하는 세상사에 대응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것을 외면으로 표현하는 모양이야 복잡하더라도 속으로 철저히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이것을 문장 속에 반영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가우嘉祐 초에 비로소 그의 두 아들 소식蘇軾, 소철蘇轍과 함께 다시 을 떠나 도성으로 왔다.
今參知政事歐陽公脩 爲翰林學士어늘 得其文而異之하여 以獻於上이러니
이때 지금의 참지정사參知政事구양수歐陽脩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있었는데 명윤明允의 글을 읽고는 뛰어나다고 여겨 황상皇上에게 올렸다.
旣而歐陽公 爲禮部 又得其二子之文하여 擢之高等이라
얼마 후에 구양공歐陽公예부禮部고시考試를 주관하면서 또 그의 두 아들의 문장을 읽고 그들을 높은 등수로 발탁하였다.
於是 三人之文章 盛傳於世하니 得而讀之者 皆爲之驚하여 或歎不可及하며 或慕而效之하여 自京師 至於海隅障徼 學士大夫 莫不人知其名하여 家有其書
이에 이들 부자 세 사람의 문장이 세상에 성대하게 전해지니, 그것을 읽은 자들이 모두 경탄하여 어떤 이는 그 미칠 수 없는 경지에 감탄하고 어떤 이는 그를 경모하고 본받아서, 도성에서부터 해변과 변방에 이르기까지 학사대부學士大夫가 모두 이들의 이름을 알았고 집집마다 이들의 글을 소장하였다.
旣而明允召試舍人院한대 不至하니 特用爲秘書省校書郞하니라
얼마 후에 명윤明允이 부름을 받아 사인원舍人院 고시考試에 응시할 기회가 있었지만 응하지 않자, 그를 특별히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으로 등용하였다.
頃之 以爲霸州文安縣主簿하여 編纂太常禮書하고 而軾轍 又以賢良方正策入等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패주霸州 문안현文安縣주부主簿가 되어 태상시太常寺 예서禮書를 편찬하였고, 소식蘇軾소철蘇轍이 또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책문策問에 응시하여 합격 등수에 들었다.
於是 三人者尤見於當時하여 而其名益重於天下하니라
그리하여 이들 세 사람이 당시에 더욱 알려져 그 명성이 더욱 드러났다.
治平三年春 明允上其禮書호되 未報하고 四月戊申 以疾卒하니 享年五十有八이라
치평治平 3년(1066) 봄에 명윤明允이 그가 편찬한 예서禮書황상皇上께 올렸으나 답을 얻지 못하였고, 4월 무신일戊申日에 병으로 죽으니 향년 58세였다.
自天子輔臣으로 至閭巷之士 皆聞而哀之하니라
천자 측근의 대신들로부터 시골의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슬퍼하였다.
明允所爲文集 有二十卷行於世
명윤明允이 저술한 문집이 20권 있는데 세상에 유포되었다.
所集太常因革禮者一百卷이요 更定諡法三卷 藏於有司 又爲易傳이나 未成이라
그리고 그가 편집한 《태상인혁례太常因革禮》라는 책은 1백 권이며, 개정한 《시법諡法》은 관부官府에 보관하고 있으며, 또 《역전易傳》을 편찬하였으나 완성되지 못했다.
讀其書者 則其人之所存 可知也리라
그의 글을 읽은 사람은 곧 그의 학문수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明允爲人聰明辨智하고 遇人氣和而色溫하며
명윤明允은 사람됨이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남을 대할 때 기운이 온화하고 낯빛이 따뜻하였다.
而好爲策謀하되 務一出己見하여 不肯躡故迹하니라
그리고 계책을 강구하기를 좋아하여 오로지 자기만의 독창적인 견해를 애써 내놓고 옛사람의 낡은 자취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頗喜言兵하여 慨然有志於功名者也니라
군사軍事에 대해 논변하기를 몹시 좋아하였으니 그는 심지가 강개 격앙하고 공명功名에 뜻을 둔 사람이었다.
二子 軾爲殿中丞直史館하고 轍爲大名府推官이라
두 아들 중에 전중승殿中丞직사관直史館이 되고, 대명부大名府추관推官이 되었다.
其年 以明允之喪으로 歸葬於蜀地하고 旣請歐陽公爲其銘하고 又請予爲辭以哀之하여 曰 銘將納之於壙中이요 而辭將刻之於冢上也라하니
그해에 명윤明允의 죽음으로 인해 으로 돌아가 장사를 지낸 뒤에 구양공歐陽公에게 을 써줄 것을 부탁하고 또 나에게 를 지어 애도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은 무덤 속에 넣을 것이고 는 돌에 새겨 무덤 위에 세울 예정이다.” 하였다.
余辭不得已하여 乃爲其文하니라
나는 사양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마침내 그 글을 다음과 같이 짓는다.
嗟明允兮邦之良으로 氣甚夷兮志則彊이라
아, 명윤明允이여 나라에서 뛰어난 인물로기품은 온화하고 의지는 꿋꿋하였네.
閱今古兮辨興亡하고 驚一世兮擅文章이라
고금의 문헌 섭렵하여 흥망의 원인 가려내고 독보적인 문장으로 한 세상을 놀라게 했네.
하고 하며 粲星斗兮射精光하니 衆伏玩兮雕肺腸이라 自京師兮洎幽荒 矧二子兮與翺翔 하여
여섯 필 용마 몰아 끝없이 치닫고 큰 강물 터져 흘러 부상扶桑까지 밀려가듯 밤하늘 별 되어 찬란한 빛 쏘아대니 폐장 찌른 문장에 뭇사람이 감복하여 도성에서 변방까지 하나같이 칭송했고 게다가 두 아들과 한가로이 소요하며 율려律呂로 선창하고 궁상宮商으로 화답하였네.
羽峨峨兮勢方颺이러니 孰云命兮變不常하여 奄忽逝兮이리오
두 나래 높이 들고 힘차게 날으려더니 그 누가 알았으랴. 운명이란 무상하여 변수汴水의 북쪽에서 갑자기 떠날 줄을.
維自著兮暐煌煌하여 在後人兮慶彌長하니 嗟明允兮庸何傷이리오
하지만 스스로 찬란한 빛 드러내어 후인에게 남겨서 그 복이 무한하니, 아, 명윤明允이여 슬퍼할 게 뭐 있으랴.
역주
역주1 蘇明允哀辭 : 明允은 蘇軾과 蘇轍의 아버지인 蘇洵(1009~1066)의 字이다. 세상에 이름을 날린 문장가로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哀辭는 흔히 韻字를 붙여 짓는 문체의 이름으로 본디 요절한 사람을 애도하는 글이지만 후대에는 수명의 장단에 관계없이 사용하였으며, 돌에 새겨서 무덤 앞에 세우는 일종의 墓表이다. 작자와 蘇軾은 모두 歐陽脩의 문하생이고 같은 해에 進士試에 급제한 인연으로 인해 상호 관계가 밀접하였다. 앞부분의 서문에서 蘇洵의 평소 경력과 인품에 관해서는 간단히 서술하고 문학적인 성취를 깊이 있게 평가하였다. 작자는 이때 47세로 史館에서 봉직하고 있었다.
역주2 始擧進士……皆不中 : 茂才異等은 宋 仁宗 天聖 7년(1029)에 설치한 貢擧科目 가운데 하나이다. 蘇洵은 29세 때인 景祐 4년(1037)에 進士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고, 38세 때인 慶曆 6년(1046)에 茂才異等科에 응시하였으나 또 합격하지 못하였다.
역주3 嘉祐初……游京師 : 嘉祐는 宋 仁宗의 연호이다. 과거시험에 여러 번 낙방하여 실의에 차 있던 蘇洵이, 두 아들이 시험에 응시하도록 하기 위해 嘉祐 원년(1056) 3월에 이들과 함께 고향인 蜀(지금의 四川)을 떠나 도성으로 들어간 일을 말한다. 이때 蘇軾의 나이는 21세이고 蘇轍은 18세였다.
역주4 御六馬兮馳無疆 : 六馬는 황제가 탄 수레를 끄는 여섯 마리의 말, 혹은 天神이 탄 수레를 끄는 여섯 마리의 용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러 마리의 준마가 힘차게 수레를 끌고 달린다는 뜻만을 취하여 문장을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을 형용한 것이다.
역주5 決大河兮嚙扶桑 : 扶桑은 전설 속에 나오는 나무의 이름으로, 해가 그 밑에서 떠오른다고 하여 동쪽의 먼 끝을 뜻한다. 여기서는 문장의 기세가 워낙 강해 마치 큰 제방이 터진 강물이 거세게 거침없이 흘러 동해의 먼 곳까지 들이닥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역주6 唱律呂兮和宮商 : 律呂는 고대에 樂律을 바로잡던 기구이다. 竹管, 혹은 金屬管 으로 만드는데 모두 12개이다. 管의 지름은 같고, 길이의 장단으로 음의 높낮이를 확정한다. 낮은 음의 管부터 세어 홀수 여섯 개를 陽律이라 하고, 짝수 여섯 개를 陰呂라 한다. 宮商은 宮商角徵羽 5음 가운데 宮音과 商音을 가리킨다. 이들이 모두 음악의 和音을 이룬다는 뜻을 취하여 蘇洵이 그의 두 아들과 호흡을 잘 맞추는 것을 말한다.
역주7 汴之陽 : 汴水의 북쪽, 곧 宋나라의 도성인 汴京을 말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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