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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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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01. 나라에 관한 논설
文格似弱이나 而其議則正當이라
문장의 품격이 약한 듯하나 그 논변은 정당하다.
歿而民生不見先王之治하여 日入於亂이라가 以至於秦하여는 盡除前聖數千載之法하니 天下旣攻秦而亡之하고 以歸於漢이라
성왕成王강왕康王이 죽자 백성들이 선왕先王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여 날이 갈수록 혼란에 빠지다가 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성군들이 수천 년간 시행한 법을 모두 없애버리니, 천하 사람들이 을 공격하여 패망시키고 귀의歸依하였다.
漢之爲漢 更二十四君하고 東西再有天下하여 垂四百年이라
나라는 24명의 군주君主가 대를 이어갔고 동한東漢서한西漢이 거듭 천하를 소유하여 4백 년 가까이 이어졌다.
然大抵多用秦法하고 其改更秦事에도 亦多附己意하니 非放先王之法而有天下之志也
그러나 대체로 나라의 법을 많이 적용하였고 나라의 정사政事를 고칠 적에도 자의적인 뜻을 많이 덧붙였으니, 선왕先王을 본받고 천하를 잘 다스리려는 뜻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有天下之志者 文帝而已
천하를 잘 다스리려는 뜻을 가진 자는 문제文帝뿐이었다.
然而天下之材不足이라 故仁聞雖美矣라도 而當世之法度 亦不能放於三代
하지만 천하를 잘 다스릴 재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비록 인자하다는 칭송이 대단하였지만 그 당시의 법도가 또한 삼대三代와는 견줄 수 없었다.
漢之亡 而强者遂分天下之地어늘 晉與隋雖能合天下於一이나 然而合之未久而已亡하니 其爲不足議也
나라가 망하자 강한 자들이 마침내 천하의 땅을 나누었는데, 나라와 나라가 비록 능히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통일한 지 오래지 않아 패망하였으니 그들이 한 일은 논할 만한 것이 못 된다.
代隋者唐이니 更十八君하여 垂三百年이어늘 而其治莫盛於太宗之爲君也
나라를 대체한 것은 나라이니 18명의 군주가 이어가서 3백 년 가까이 이어졌는데 그 치적이 태종太宗이 군주로 있을 때보다 성대한 적이 없었다.
詘己從諫하며 仁心愛人하니 可謂有天下之志
그는 자기를 굽히고 간언諫言을 따르며 인자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였으니, 천하를 잘 다스리려는 뜻을 지녔다고 할 만하다.
以租庸任民하고 以府衛任兵하며 以職事任官하고 以材能任職하며 以興義任俗하고 以尊本任衆이라
조용조租庸調로써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고, 부병제府兵制로써 군대를 편제하였으며, 직무를 적절한 관리에게 맡기고 재능을 기준으로 관직을 맡겼으며, 도덕을 진작시키는 것으로써 세속을 다스렸으며, 농업을 중시하는 것으로써 백성을 다스렸다.
賦役有定制하며 兵農有定業하며 官無虛名하며 職無廢事
부역賦役은 일정한 제도가 있었고 군사와 농민은 일정한 생업이 있었으며, 관리는 부실하게 임용하는 일이 없고 직무는 유기되는 일이 없었다.
人習於善行하고 離於末作하니 使之操於上者 要而不煩하고 取於下者 寡而易供이라
사람들이 선행에 익숙해지고 말업末業인 상공업을 멀리하니 윗자리를 맡은 사람은 그 직무가 간단하여 복잡하지 않도록 하고, 아래 백성으로부터 징수하는 것은 적어서 백성들이 바치기 용이하게 하였다.
民有農之實 而兵之備存하며 有兵之名 而農之利在
백성들이 실제로는 농사에 치중하면서도 군사장비를 유지하였으며, 사병士兵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농사에 치중한 것으로 인한 이익이 있었다.
事之分有歸하니 而祿之出不浮하며 材之品不遺하니 而治之體相承이라
각종 직무를 맡아 수행하는 사람이 있어 국록이 부실하게 지출되는 일이 없으며, 재능이 각기 다른 인재를 폐기하지 않아 선왕先王이 나라를 다스리는 체계가 유기적으로 서로 이어졌다.
其廉恥日以篤하고 其田野日以闢하여 以其法修則安且治하며 廢則危且亂하니 可謂有天下之材
예의염치가 날로 두터워지고 전야田野가 날로 개간되어 그 법이 행해지면 나라가 편안하고 다스려졌으며 폐해지면 위태롭고 혼란스러웠으니, 천하를 잘 다스릴 재능을 지녔다고 할 만하다.
行之數歲 粟米之賤 斗至數錢하니 居者有餘蓄하고 行者有餘資하여 人人自厚하여 幾致刑措하니 可謂有治天下之效
그와 같은 법을 시행한 지 몇 년 만에 곡물이 지천으로 많아져서 한 말 값이 몇 돈까지 내려갔으니, 한곳에 머물러 사는 사람은 넉넉히 쌓아둔 곡물이 있고 여행하는 사람은 충분한 돈이 있어 사람들이 스스로 언행을 신중히 하여 거의 형벌을 쓸 일이 없게 되니, 천하를 잘 다스린 성과가 있었다고 할 만하다.
夫有天下之志 有天下之材 又有治天下之效
무릇 천하를 잘 다스리려는 뜻을 지니고 천하를 잘 다스릴 재능을 지녔으며 또 천하를 잘 다스린 성과가 있었다.
然而不得與先王竝者 法度之行 擬之先王未備也하며 禮樂之具 田疇之制 庠序之敎 擬之先王未備也일새니라
그런데도 선왕先王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한 것은 법도法度의 시행이 선왕先王에 비해 갖추어지지 못했으며 예악의 시행과 농토의 제도와 학교의 교육이 선왕先王에 비해 갖추어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躬親行陣之間하여 戰必勝하고 攻必克하여 天下莫不以爲武로되 而非先王之所尙也
몸소 전쟁에 참여하여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무찔러 천하 사람들이 모두 용맹하다고 여겼으나 이는 선왕先王이 지향하던 바가 아니었고,
四夷萬里古所未及以政者 莫不服從하여 天下莫不以爲盛로되 而非先王之所務也
사방 만 리 밖의 오랑캐로서 옛날에는 다스림이 미치지 못했던 자들이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어서 천하 사람들이 모두 성대하다고 여겼으나 이는 선왕先王이 힘쓰던 바가 아니었다.
太宗之爲政於天下者 得失如此
태종太宗이 천하를 다스린 것이 그 득실이 이와 같았다.
由唐虞之治五百餘年而有湯之治하고 由湯之治五百餘年而有文武之治하고 由文武之治千有餘年而始有太宗之爲君이어늘 有天下之志 有天下之材 又有治天下之效
임금과 임금의 치세治世로부터 5백여 년이 지나 탕왕湯王치세治世가 있었고, 탕왕湯王치세治世 이후 5백여 년이 지나 문왕文王무왕武王치세治世가 있었고, 문왕文王무왕武王치세治世로부터 천여 년이 지나 비로소 태종太宗군주君主가 되어 천하를 잘 다스리려는 뜻을 지니고 천하를 잘 다스릴 재능을 지니고 또 천하를 잘 다스린 성과가 있었다.
然而又以其未備也하여 不得與先王竝而稱極治之時
그러나 또한 제도 등이 갖추어지지 못했기에 선왕先王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말할 수 없다.
是則人生於文武之前者 率五百餘年而一遇治世하고 生於文武之後者 千有餘年而未遇極治之時也하니 非獨民之生於是時者之不幸也
이로 보면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대체로 5백여 년이 지나 한 번 치세治世를 만나고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천여 년이 지나도 치세治世를 만나지 못하였으니, 단지 이 치세治世가 아닌 때에 태어난 백성들만 불행한 것이 아니다.
士之生於文武之前者 如舜禹之於唐 之於舜 伊尹之於湯 太公之於文武하여 率五百餘年而一遇하고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이전에 태어난 선비들은, 임금 시대의 , 임금시대의 팔원八元팔개八凱, 탕왕湯王시대의 이윤伊尹, 문왕文王무왕武王시대의 태공太公과 같은 경우들은 대체로 5백여 년이 지나 한 번 만났을 뿐이며,
生於文武之後千有餘年 雖孔子之聖 孟軻之賢而不遇하고 雖太宗之爲君而未可以必得志於其時也하니 是亦士民之生於是時者之不幸也
문왕文王무왕武王 이후 천여 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은 비록 공자孔子 같은 성인聖人맹자孟子 같은 현인賢人이더라도 만나지 못하였고, 비록 태종太宗 같은 군주가 재위한 때라도 반드시 그 당시에 뜻을 얻지는 못하였으니, 이는 또한 이때 태어난 선비와 백성들의 불행이었다.
故述其是非得失之迹하니 非獨爲人君者可以考焉이요 士之有志於道而欲仕於上者 可以鑑矣리라
그러므로 그 시비와 득실의 자취를 서술하였으니 군주 된 자가 살펴볼 만한 자료가 될 뿐이 아니라, 에 뜻을 두고 윗자리에서 벼슬하고자 하는 선비도 이를 거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唐論 : 제목의 의미는 唐 왕조의 역사를 논한 일종의 史論이라 할 수 있으나 사실은 唐 太宗의 업적에 집중되었다. 唐 太宗은 여타 군주와는 달리 천하를 다스릴 포부와 재능을 지녔고, 또 천하를 잘 다스린 治績이 있었다는 것을 서술하였다. 한편 唐 太宗이 堯, 舜, 禹, 湯 등 옛 성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한 이유는 그 법도와 예악과 교육제도가 완비되지 못하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전쟁에 치중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역주2 成康 : 西周 제2대 및 제3대의 군주인 成王 姬誦과 康王 姬釗를 가리킨다. 周公이 武王을 도와 周나라의 예악제도를 제정한 뒤에, 그것을 成王과 康王시대에 계속 추진하여 국가가 크게 다스려졌기 때문에 후대에 이를 成康之治로 불렀다.
역주3 八元八凱 : 八元은 高辛氏의 여덟 아들로 伯奮, 仲堪, 叔獻, 季仲, 伯虎, 仲熊, 叔豹, 季貍 등을 말하고, 八愷는 高陽氏의 여덟 아들로 蒼舒, 隤敳, 檮戭, 大臨, 龍降, 庭堅, 仲容, 叔達 등을 말하는데, 이들의 후손이 모두 재능이 뛰어나 舜이 등용했다고 한다. 八元, 八凱가 바로 舜임금의 신하라는 설도 있는데 여기서는 이 설을 따른 것이다. 《史記 五帝本紀》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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