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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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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此記大略本柳宗元訾家洲歐陽公醉翁亭等記來
尙書司門員外郞裴君 治撫之二年 因城之東隅 作臺以遊하고 而命之曰擬峴臺라하니 謂其山谿之形 擬乎
數與其屬與州之寄客者遊其間하고 獨求記於予
州之東 其城因大丘하고 其隍因大谿하며 其隅因客土以出谿上하고
其外連山高陵 野林荒墟 遠近高下 壯大閎廓하여 怪奇可喜之觀 環撫之東南者 可坐而見也
然而雨隳潦毁하여 蓋藏棄委於榛藂茀草之間하여 未有卽而愛之者也
君得之而喜하고 增甓與土하여 易其破缺하고 去榛與草하여 發其亢爽하며 繚以橫檻하고 覆以高甍하여 因而爲臺하고
以脫埃氛하여 絶煩囂하고 出雲氣而臨風雨
然後谿之平沙漫流 微風遠響 與夫浪波洶湧 破山拔木之奔放으로 至於高桅勁艣 沙禽水獸 下上而浮沈者 皆出乎履舃之下
山之蒼顔秀壁 巓崖拔出 挾光景而薄星辰으로 至於平岡長陸 虎豹踞而龍蛇走 與夫荒蹊聚落 樹陰晻曖 遊人行旅 隱見而斷續者 皆出乎袵席之內
若夫雲煙開斂 日光出沒 四時朝暮 雨暘明晦 變化不同하니 則雖覽之不厭하고 而雖有智者라도 亦不能窮其狀也
或飮者淋漓하고 歌者激烈하며
或靚觀微步하고 旁皇徙倚하니
則得於耳目與得之於心者 雖所寓之樂有殊 而亦各適其適也
撫非通道 故貴人蓄賈之遊不至하고 多良田이라 故水旱螟螣之菑少하며
其民樂於耕桑以自足이라
故牛馬之牧於山谷者不收하고 五穀之積於郊野者不垣이나 而晏然不知枹鼓之警 發召之役也
君旣因其土俗하여 而治簡靜이라
故得以休其暇日하여 而寓其樂於此
州人士女 樂其安且治어늘 而又得遊觀之美하여 亦將同其樂也
王遵巖曰 繁絃急管 促節會音하여 喧動嘈雜하니 若不知其宮商之所存이나
而度數齊 自皦如하여 使聽者激竦하고 加以懽悅하나니 此文之謂矣라하니라


03. 의현대擬峴臺에 쓴 기문
이 기문의 체제는 대체적으로 유종원柳宗元의 《자가주訾家洲》와 구양공歐陽公(구양수歐陽脩)의 《취옹정醉翁亭》 등의 기문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상서사문원외랑尙書司門員外郞 진국晉國 배군裴君무주撫州를 다스린 지 2년에 성에 인접한 동쪽 끝에 누대를 쌓아 유락하는 장소를 마련하고 그곳을 의현대擬峴臺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그곳의 산과 계곡의 형상이 양양襄陽현산峴山과 비슷함을 의미한 것이다.
그는 자주 그 부하관료와 무주撫州에 머무르고 있는 빈객들과 그곳에서 어울려 놀면서 특별히 나에게 이 누대를 위해 기문을 지어줄 것을 청하였다.
처음에는 고을의 동쪽이 성곽은 큰 언덕과 이어지고 성곽을 보호하는 해자는 큰 강과 닿아 있으며, 성곽 모서리 부분은 다른 곳에서 운반해 온 흙더미를 쌓아올려 강가에 높이 솟아 있었다.
그리하여 성 밖에 무주撫州의 동남쪽을 에워싸면서 면면히 이어진 산맥과 드높은 구릉, 전야田野의 숲과 황폐한 토산土山들이 멀거나 가까운 곳, 혹은 높거나 낮은 곳에서 장대하고 광활하여 흥미를 유발할 만한 기기묘묘한 경관을 그 성곽 위에 앉아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성이 장마와 홍수에 허물어져 잡목과 잡초 사이에 매몰되고 버려짐으로써 더 이상 그곳을 찾아가거나 즐기는 자가 없었다.
배군裴君은 그곳을 발견하고 기뻐하여 벽돌과 흙을 쌓아 무너진 곳을 수리하고 우거진 잡목과 잡초를 제거해서 높고 훤한 그 지세地勢를 드러내며, 사방으로는 난간을 두르고 위에는 높은 용마루를 덮어서 마침내 하나의 높은 누대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속세의 기분을 벗어나 번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을 멀리하고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가 맑은 바람과 보슬비를 마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뒤에 강 양쪽 물가의 평편한 모래톱과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 골짜기의 산들바람과 먼 산에서 울리는 메아리, 그리고 물결이 세차게 치솟아 올라 산을 허물고 나무를 뽑으면서 거침없이 치닫는 격류에서부터, 강물 위에 돛대를 높이 올리고 빠르게 노를 저어가는 선박과 강기슭의 물새와 물속에서 자맥질하는 각종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발 밑에서 출현한다.
그리고 산빛은 푸르고 절벽은 수려한데 가파른 비탈과 높은 재가 대지 위에 높이 솟아 일월日月을 겨드랑이에 끼고 무수한 별에 닿아 있는 것에서부터, 완만한 산줄기와 길게 이어진 평원에 호랑이와 표범이 걸터앉아 있고 용과 뱀이 출몰하는 광경이며, 궁벽한 산길과 마을이며 어슴푸레 어두운 숲에서 숨었다 나타났다 하며 끊임없이 오가는 유람객과 길손들의 모습이 모두 모두 침상 안에 드러난다.
그리고 운무와 노을이 금방 걷혔다가 금방 깔리고 햇빛이 수시로 나왔다가 들어가곤 하는 광경이며, 춘하추동 사철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때는 비가 내리고 어떤 때는 해가 뜨며 어떤 때는 쾌청하고 어떤 때는 어둡고 하는 등의 이와 같은 천변만화의 광경은 아무리 백 번을 보아도 물리지 않고 비록 뛰어난 지혜를 지닌 자가 있더라도 그 광경을 모두 묘사할 수 없다.
혹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 흥취가 달콤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그 정감이 격앙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감상하여 느긋하게 산보하면서 그 자리를 맴돌며 떠날 줄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이 경관을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보아 감상하기도 하고 혹은 마음속으로 체득하기도 한 것에 따라 그로 인한 흥취는 비록 각기 다르다 하더라도 모두 저마다 자기에게 적합한 즐거움을 찾은 것이다.
무주撫州는 교통의 요지가 아니므로 고관高官거상巨商들이 이곳에 와서 유람하지 않고, 이곳은 또 좋은 논이 많으므로 홍수나 가뭄, 해충으로 인한 피해가 적다.
그리고 이곳의 백성들은 농사짓고 길쌈하는 것을 좋아하여 의식이 풍족하다.
그러므로 산골짜기에 소와 말을 방목하고 우리에다 가두지 않고, 들판에 오곡을 쌓아두고 담을 두르지 않아도 태연하게 지내면서 어떤 도적으로 인한 경보나 노역에 징발되는 일을 모른다.
배군裴君이 이미 그 지방의 풍속에 순응하여 정사를 다스리기를 간소하고 조용히 하였다.
그러므로 한가한 시간이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며 이곳에다 그의 즐거움을 부친 것이다.
무주撫州의 남녀노소가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것을 즐거워하던 중에 또 유람을 즐길 만한 아름다운 경관을 얻었으니, 이에 배군裴君이 또 백성들과 그 즐거움까지도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이 기문記文을 쓴다.
왕준암王遵巖이 말하였다. “박자가 빠르고 웅장한 관현악은 음절이 짧고 높낮은 음이 한꺼번에 모여 있어 시끄럽고 복잡하게 울리므로 음조의 높낮이를 모를 것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규칙이 일정하면 음조가 저절로 분명해져서 그 음악을 듣는 자로 하여금 감격하게 하고 더 나아가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데, 이 문장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역주
역주1 擬峴臺記 : 작자 39세 때인 宋 仁宗 嘉祐 2년(1057)에 지은 것이다. 이때 撫州知州 裴材가 撫州城 동쪽 鹽步嶺에 누대를 만들고 擬峴臺라 이름한 뒤에 작자에게 그 記文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작자는 이 글에서 擬峴臺라 이름하게 된 이유와 자기가 이 문장을 짓게 된 까닭을 설명한 다음, 擬峴臺의 자연풍광과 撫州의 민속 인정을 서술하고, 관리의 공무집행이 깨끗하고 백성이 안정을 누리기를 바라는 자기의 정치관을 토로하였다. 작자가 18세 때 南豐에서 撫州로 거주지를 옮겨와 살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풍광에 익숙하여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다.
역주2 晉國 : 지금의 山西 지방인 晉陽을 가리키는데, 裴氏의 世居地이다.
역주3 峴山 : 峴首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지금의 湖北 襄陽市 남쪽 漢水가에 있다. 西晉 羊祜가 襄陽태수로 있을 적에 峴山에 올라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인생살이는 덧없이 가버린다는 비애를 토로한 고사가 유명하다.
역주4 故予爲之記 : 《元豐類藁》에는 이 문장의 끝에 “그 누대가 완성된 연월일은 嘉祐 2년 9월 9일이었다.[其成之年月日 嘉祐二年之九月九日也]”라는 내용이 더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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