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번창현繁昌縣의 건설공사에 관한 기문
亦有幅尺
이 문장 또한 법도가 있다.
太宗二年 取宣之爲太平州한대 而繁昌在籍中이라
태종太宗 2(977)에 선주宣州의 3개 태평주太平州로 만들었고 번창현繁昌縣이 그 안에 들어 있다.
繁昌者 故南陵地러니 唐昭宗始以爲縣이라
번창繁昌은 옛날 남릉南陵 땅이었는데 당 소종唐 昭宗이 최초로 이곳을 으로 삼았다.
縣百四十餘年 無城垣而濱大江하여 常編竹爲障以自固 歲輒更之 用材與力 一取於民이라
번창현繁昌縣은 140여 년 동안 성채가 없이 큰 강에 접해 있어 늘 대나무를 엮어 보루를 구축하여 자체적으로 강물이 범람하는 것을 대비하였고, 해마다 시설들을 다시 만들면서 그 자재와 노동력을 오로지 백성들로부터 징발하였다.
出入無門關하고 賓至無舍館하며
그러는 동안 이 지역을 드나들 때 제대로 된 관문關門이 없었고, 외지外地 사람이 번창현繁昌縣에 와도 이렇다 할 관사館舍가 없었다.
今治所雖有屋이나 而庳逼破露하여 至聽訟於廡下하고
현재의 치소治所에도 건물은 있지만, 비좁고 파손되어 송사를 처마 밑에서 처리할 정도였다.
案牘簿書 棲列無所하여 往往散亂不可省하니 而獄訟賦役失其平이라
그리고 각종 공문서와 기록물도 제대로 보관할 곳이 없어 거의 살펴볼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게 흩어지고 정리되지 않아 송사를 판결하고 부역을 징수할 때 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토록 爲令者 不知幾人하고 恬不知改革하여 日入於壞하니
7를 거치는 동안 무수한 전임 현령縣令들이 무사안일에 젖어 문제점을 개혁할 줄 몰라 날로 무너지는 지경에 빠져들었다.
故世指繁昌爲陋縣이라하여 而仕者不肯來하며 行旅者不肯遊하여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번창현繁昌縣을 형편없는 으로 지목하여 벼슬하는 사람들도 이 지역으로 부임하기를 꺼려하며 여행하는 사람들도 유람 오는 것을 꺼렸다.
政事愈以疵하고 市區愈以索寞하니 爲鄕老吏民者 羞且憾之러라
그로 인하여 이 지역의 정사政事는 갈수록 병들고 저자거리도 갈수록 삭막해져 가므로 이 고을의 노인, 관리, 백성 된 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수치스럽고 유감스럽게 여겼다.
事之窮必變이라
일이 극단에 이르면 반드시 변화가 생긴다.
故今有能令出하여 因民之所欲爲하여 悉破去竹障하고 而垣其故基하며 爲門以通道往來하고 而屋以取固
때문에 지금 능력이 있는 현령縣令이 나타나 백성들의 바람에 따라 대나무 보루를 모두 철거하고, 그 원래 자리에는 담을 쌓고 성문을 세워 왕래하는 도로를 만들었으며, 가옥들 또한 견고하게 지었다.
卽門之東北하여 構亭瞰江하여 以納四方之賓客하고
성문의 동북쪽에는 강을 굽어볼 수 있는 정자를 지어 사방의 외지 사람들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旣又自大其治所하여 爲重門步廊하고 門之上爲樓하여 斂勅書置其中하고
그 뒤에 또 번창현繁昌縣치소治所를 확대하고 겹문과 행랑채를 짓고, 문 위에는 누각을 지어 칙서勅書를 모아 그 안에 보관하였다.
廊之兩旁 爲群吏之舍 視事之廳 便坐之齋하며 寢廬庖湢 各以序爲하고
그리고 행랑채의 양옆에는 관리들이 머물 관사館舍와 업무를 볼 대청大廳, 편히 앉아 쉴 건물을 지었으며, 숙소, 주방, 욕실도 각각 차례대로 지었다.
廳之東西隅 凡案牘簿書 室而藏之하니 於是乎在
대청의 동서쪽 모퉁이에는 방을 마련하여 모든 공문서와 기록물을 수장함으로써 관아의 서류가 보존될 수 있게 되었다.
自門至於寢廬 總爲屋凡若干區
문에서부터 숙소까지 약간의 구역에 건물들을 새로 지었다.
自計材至於用工 總爲日凡二千三百九十六日而落成焉하니라
건축 자재를 준비한 시기부터 노동력을 투입한 시기까지 총 2,396일이 걸린 뒤에 준공되었다.
夏希道太初 此令之姓名字也 慶曆七年十月二十三日 此成之年月日也
하희도夏希道 태초太初현령縣令성명姓名이며, 경력慶曆 7년 10월 23일은 준공된 연월일이다.
始繁昌爲縣 止三千戶로되 九十年間 之德澤으로 覆露生養하여 今幾至萬家
처음에 번창繁昌이 되었을 때 3천 뿐이었으나, 90년 동안 네 군주의 덕치德治와 은택으로 백성들이 늘어나 현재는 거의 1만 에 달하며,
田利之入 倍他壤有餘하며 魚蝦竹葦柿栗之貨 足以自資하여 而無貧民이요
농지로 얻는 수익도 다른 지역에 비해 배가 넘으며, 물고기, 새우, 대나무, 갈대, 감, 밤과 같은 물품은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어 가난한 백성이 없다.
其江山又天下之勝處 可樂也
그리고 이곳의 자연경관은 또 천하의 명승지로 유람하며 즐길 만하다.
今復得能令하여 爲樹立如此하여 使得無歲費而有巨防하고 賓至不惟得以休 而耳目尙得以爲之觀이라
지금 게다가 능력 있는 현령縣令을 만나 이와 같은 규모를 건설함으로써 해마다 더 이상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강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완전하게 방비하며, 외지 사람이 찾아왔을 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있을 뿐만 아니라 눈과 귀를 즐길 수 있는 경치를 제공하게 되었다.
令居不惟得以安이라 而民吏之出入仰望者 益知尊且畏之하니라
현령縣令은 이 지역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아에 출입하고 우러러보는 백성과 관리들이 더욱 존경하고 두려워할 줄 알게 될 것이다.
獄訟賦役之書悉完하니 則是非倚而可定也
그리고 송사를 판결하고 부역을 부과하는 문서가 완비되어 있으니 시비是非는 이를 통해 가릴 수 있다.
予知縣之去陋名하고 而仕者爭欲來하며 行旅者爭欲遊하여 昔之疵者 日已減去하고 而索寞者 日以富蕃하여 稱其縣之名 其必自此始
나는 앞으로, 번창현繁昌縣이 형편없다는 오명을 씻어 벼슬하는 사람들은 앞다투어 부임하려 하고 여행하는 사람들은 앞다투어 유람하려고 함으로써, 예전의 흠결은 날로 줄어들고 삭막하던 재정도 날마다 부유하고 번창해져서 번창현繁昌縣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되는 일이 반드시 이때부터 시작될 것임을 안다.
夏令用薦者爲是縣하여 至二十七日한대
하령夏令이 추천을 받고 이 현령縣令으로 부임한 지 27일이 지나자 그때부터 개혁에 착수하였다.
而計材以至於落成 不惟興利除弊可法也 而其變因循하며 就功效 獨何其果且速歟
건축자재를 준비하던 때부터 준공할 때까지 수익을 늘리고 폐단을 없앤 치적은 모범적일 뿐만 아니라, 구습을 개혁하고 성과를 이룩한 것이 어쩌면 그렇게 과감하고 신속하단 말인가.
아, 옛날에 맹자孟子께서는 자산子産이 백성들에게 은혜는 베풀었지만 정사를 할 줄 모른다고 비판하였다.
於戱 如夏令者 庶幾所謂知政者歟인저
아, 하령夏令과 같은 사람은 거의 이른바 정사를 하는 대체大體를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於是過子産矣로다
그러므로 그는 자산子産보다도 훌륭하다.
凡縣之得令爲難이요 幸而得能令이라도 而興事尤難이요
이란 능력 있는 현령縣令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다행히 능력 있는 현령을 만났더라도 건설하는 공사는 착수하기가 더욱 어렵다.
幸而事興이라도 而得後人不廢壞之又難也
또 다행히 공사를 마쳤더라도 뒷사람들이 이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은 또 어렵다.
今繁昌民 旣幸得其所難得이요 而令又幸無不便己者하여 得卒興其所尤難하니 皆可喜無憾也
지금 번창繁昌의 백성들은 다행하게도 이미 얻기 어려운 능력 있는 현령縣令을 얻은데다가, 현령縣令이 정사를 행하는 것도 다행히 자기 의도대로 하지 못할 장애물이 없어 마침내 특히나 이루기 어려운 건설을 수행하였으니, 이 모두 기뻐할 만하고 유감스러울 일이 없다고 하겠다.
惟其欲後人不廢壞之 未可必也일새 故屬予記하니 其不特以著其成이라 其亦有以警也
다만 뒷사람들이 이 성과물을 무너뜨리지 않기를 바라는 일은 보장할 수 없기에 나에게 기문記文을 부탁하였으니, 그 목적은 이 건설사업의 성공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뒷사람도 경계하자는 것이었다.
역주
역주1 繁昌縣興造記 : 작자 29세 때인 慶曆 7년(1047) 10월 이후에 쓴 글이다. 繁昌縣의 각종 건설공사가 완료된 뒤에 縣令 夏希道의 요청을 받은 王安石의 부탁으로 그 공정의 전말을 기록하였다. 아울러 안일하여 개혁할 줄 몰랐던 전임 縣令들의 행위를 비평하고, 과감하게 개혁하여 이익을 창출하고 폐단을 제거한 夏希道의 정신을 찬양하였다. 繁昌縣은 지금의 安徽省에 있었던 현이다.
역주2 三縣 : 繁昌縣, 當塗縣, 蕪湖縣을 가리킨다. 이들은 원래 宣州 북부에 있었다.
역주3 七代 : 唐나라, 五代, 宋나라를 가리킨다.
역주4 四聖 : 宋 太祖, 太宗, 眞宗, 仁宗 등 네 군주를 가리킨다.
역주5 孟子譏子産 惠而不知爲政 : 子産이 鄭나라의 국정을 관장할 때, 자신이 타던 수레로 사람들을 태워 溱水와 洧水를 건너게 해주자, 孟子가 이를 두고 사람들을 하나하나 수레에 태워 건너게 할 수 있겠느냐며 비판했다. 《孟子 離婁 下》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