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曾公凡爲佛老氏輩題文 必爲自家門第
門之作而已
然天子諸侯大夫 各有制度하여 加于度則譏之하니 見于易禮記春秋
其旁三門하고 門三塗 惟王城爲然이어늘
老子之敎行天下할새 其宮視天子或過焉하니 其門亦三之
其備豫之意 蓋本於易이나 其加于度 則知禮者所不能損하고 知春秋者所太息而已 甚矣 其法之蕃昌也
建昌軍南城縣麻姑山仙都觀 世傳麻姑於此仙去 故立祠在焉이라
距城六七里 由絶嶺而上하여 至其處하니 地反平寬衍沃하여 可宮可田이요 其穫之多 與他壤倍 水旱之所不能災
予嘗視而歎曰 豈天遺此以安且食其衆하고 使世之衎衎施施趨之者不已歟
不然이면 安有是邪아하니
則其法之蕃昌 人力固如之何哉
其田入旣饒하니 則其宮從而侈也宜
慶曆六年 觀主道士凌齊曄相其室無不修而門獨庳曰 是不足以稱吾法與吾力이라하고 遂大之
旣成 託予記어늘 予與齊曄으로 里人也 不能辭
爲里人而與之記 人之情也 以禮春秋之義告之 天下之公也
不以人之情易天下之公하니
齊曄之取予文 豈不得所欲也夫 豈以予言爲厲己也夫


08. 선도관仙都觀삼문三門에 쓴 기문
증공曾公이 일반적으로 불교와 도교를 신봉하는 무리들을 위해 지은 문장은 반드시 자신이 추구하는 유학儒學의 입장에서 썼다.
문을 만드는 것은 강도의 침입에 미리 대비하자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천자天子제후諸侯대부大夫가 각기 그 신분에 맞는 제도가 있어서 제도보다 넘어서면 비난을 받으니, 그 내용이 《주역周易》‧《예기禮記》‧《춘추春秋》에 보인다.
의 사방에 세 개씩 문을 만들고 문마다 세 갈래의 길을 만드는 것은 오직 왕성王城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노자老子의 가르침이 천하에 만연하게 되자, 도관道觀천자天子에 비해 혹 지나치기도 하여 그 문을 또한 세 개로 만들었다.
강도의 침입에 미리 대비하는 뜻은 《주역周易》에 그 근본을 두고 있지만, 제도보다 넘어서는 것은 《예기禮記》를 아는 자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고 《춘추春秋》를 아는 자는 크게 탄식할 뿐이니, 지나치다, 그들의 법이 번창함이여.
건창군建昌軍 남성현南城縣 마고산麻姑山 선도관仙都觀은 세상에서 전해오는 말에, 마고麻姑가 이곳에서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 곳으로 그를 위해 세운 옛 사당이 있다.
에서 6, 7리 떨어진 곳에서 높은 재를 따라 올라가 그곳에 당도하니, 지대가 도리어 넓고 비옥해서 집을 지을 만하고 농사도 지을 만했는데, 그곳에서 수확하는 곡물이 다른 토양에 비해 곱절이고 가뭄이나 장마의 피해도 없었다.
내가 한번 둘러보고 탄식하기를 “어찌 하늘이 이곳을 세상에 내놓아 도가道家의 무리에게 편안하게 지내고 또 잘 먹고살게 하였으며, 세상에 아무런 걱정도 없이 여유롭게 사는 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이곳으로 달려오게 하였단 말인가.
이와 같은 장소가 없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하였다.
그들의 법이 이처럼 번창하니 인력으로 과연 어떻게 제어할 수 있겠는가.
그 농지의 수입이 풍족하니 도관道觀도 따라서 호화롭게 꾸미는 것은 당연하다.
경력慶曆 6년에 도관주道觀主 도사道士 능제엽凌齊曄이 그 건물은 모두 수리가 잘되었는데 오직 문만 비좁고 낮은 것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 도교의 법도와 힘에 걸맞지 않다.” 하고, 마침내 크게 만들었다.
문이 완성되자 나에게 기문記文을 부탁했는데, 나는 제엽齊曄과 동향인이라 사양할 수가 없었다.
아, 동향인으로서 기문記文을 주는 것은 인지상정이요, 《예기禮記》와 《춘추春秋》의 뜻으로써 고해주는 것은 그것이 천하의 공인된 말이기 때문이다.
인지상정으로 천하의 공인된 말을 바꿀 수는 없다.
제엽齊曄이 내 글을 가져다가 볼 적에 어찌 듣고 싶었던 말을 얻지 못했다고 하지 않겠으며, 또 어찌 내 말이 자기를 해롭게 한 것으로 생각지 않겠는가.


역주
역주1 仙都觀三門記 : 작자 28세 때인 慶曆 6년(1046)에 쓴 작품이다. 仙都觀은 지금의 江西 南城縣 서남쪽 麻姑山 위에 있다. 산 정상에 옛 壇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麻姑가 이곳에서 도를 얻어 신선이 되었다 하여 ‘第二十八洞天’이 되었다 한다. 麻姑山은 풍경이 좋기로 이름난 명산으로, 작자가 일찍이 이곳을 유람하며 지은 〈遊麻姑山九首〉라는 시가 있다. 三門은 王城에만 있는 법인데도 道敎徒가 참람하게 국가의 제도를 무시하고 그와 같은 시설물을 지은 것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역주2 備豫 : 《周易》 〈繫辭 下〉에 “문을 겹으로 만들고 딱다기를 쳐서 강도의 침입에 대비하는 것은 豫卦에서 그 뜻을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春秋左氏傳》 成公 9年에 “예기치 않은 변고에 미리 대비하는 것은 잘하는 일 중에서도 큰 것이다.”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