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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曾鞏(1)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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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청심정淸心亭에 쓴 기문
此記與醒心亭記 所謂說理之文이니 子固於諸家尤擅所長이라
이 기문과 〈성심정기醒心亭記〉는 이른바 도리를 설명하는 글이니 자고子固가 다른 문장가와 견주어볼 때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嘉祐六年 尙書虞部員外郞梅君 하여 改作其治所之東亭하여 以爲燕息之所하고 而名之曰淸心之亭이라하니라
가우嘉祐 6년에 상서우부원외랑尙書虞部員外郞 매군梅君서주徐州 소현蕭縣의 수령이 되어서 관아 동쪽의 정자를 개수하여 편안히 휴식하는 장소로 만들고 이름을 청심정淸心亭이라 하였다.
是歲秋冬 來請記於京師하니 屬余有亡之悲하여 不果爲하고 明年春 又來請하니 屬予有之悲하여 又不果爲러니
그해의 가을과 겨울에 도성에 있는 나에게 기문을 부탁해왔는데 그때 마침 내게 누이와 딸을 잃은 슬픔이 있어 결국 짓지 못했고, 다음 해 봄에 다시 청해왔는데 그때도 마침 나에게 아내를 잃은 슬픔이 있어 또 끝내 짓지 못하였다.
而其請猶不止하여 至冬乃爲之記曰
그런데도 그 부탁이 계속되어 겨울에 이르러 마침내 기문을 지었다.
夫人之所以神明其德하여 與天地同其變化者 夫豈遠哉
대체로 사람이 그 덕을 신묘하고 밝게 수양하여 천지와 그 변화를 함께하는 것이 어찌 멀리 있겠는가.
生於心而已矣
마음에서 생기는 것일 뿐이다.
若夫極天下之知하고 以窮天下之理하여 於夫性之在我者 能盡之하고 命之在彼者 安之 則萬物自外至者 安能累我哉리오
천하의 지식을 극대화하고 천하의 이치를 모두 궁구하여, 나에게 있는 천성을 잘 간직하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편안히 여긴다면, 밖으로부터 이르는 만물이 어찌 나에게 부담을 줄 수 있겠는가.
此君子之所以虛其心也
이것이 군자가 그 마음을 비우는 까닭이다.
萬物不能累我矣로대 而應乎萬物하여 與民同其吉凶者 亦未嘗廢也
만물이 이미 나에게 부담을 줄 수 없는 경지가 되었다 하더라도 만물에 호응하여 백성과 길흉을 함께하는 것 또한 그만둘 수 없다.
於是有法誡之設 邪僻之防하니 此君子之所以齊其心也
그러므로 법과 경계를 제정하고 간사함과 편벽됨을 막는 일이 있게 되니 이것이 군자가 그 마음을 다스리는 까닭이다.
虛其心者 極乎精微하여 所以入神也 齊其心者 由乎中庸하여 所以致用也
그 마음을 비우는 것은 정밀한 이치를 깊이 궁구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요, 그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중용의 도를 따라 실용을 다하는 것이다.
然則君子之欲修其身治其國家天下者 可知矣
이것으로 본다면 군자가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그 국가와 천하를 다스리고자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것이다.
今梅君之爲是亭 曰 不敢以爲遊觀之美 蓋所以推本爲治之意하고 而且將淸心於此라하니 其所存者 亦可謂能知其要矣
지금 매군梅君이 이 정자를 지을 적의 의도는 놀고 구경할 만한 좋은 경관을 위해서가 아니고,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적인 의미를 추구하고 아울러 이곳에서 마음을 깨끗하게 하자는 것이었으니, 그 소견이 또한 요점을 잘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
乃爲之記하여 而道予之所聞者焉이라
이에 기문을 써서 내가 들은 바를 말하였다.
十一月五日 南豐曾鞏記하노라
11월 5일에 남풍南豐 증공曾鞏은 기문을 짓노라.
唐荊川 曰 程朱以前 此等議論亦少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정자程子주자朱子 이전에는 이 같은 의논이 또한 적었다.”
역주
역주1 淸心亭記 : 작자의 나이 42세 때인 嘉祐 6년(1061)에 지은 기문이다. 정자의 이름인 淸心을 주제로 삼아 군자가 마음을 비워 자만하지 않고 욕심을 줄여 부질없는 것을 구하지 않는 까닭을 서술한 후, 淸心亭을 지은 이유도 정치를 위한 자기 수양을 위한 것이었음을 말하였다. 작자의 유교적 논리와 정치관이 잘 나타난다.
역주2 爲徐之蕭縣 : 徐州는 현재 江蘇省 徐州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徐州의 蕭縣도 강소성에 속했으나 지금은 安徽省 북단에 속한다.
역주3 : 여기에서 妹는 증공의 여덟째 누이 曾德耀로 字는 淑明이고, 1061년 9월에 병으로 도성에서 죽었다. 이는 증공의 〈曾氏女墓誌銘〉에서 확인된다.
역주4 : 증공의 딸 慶老를 말하며, 1061년 11월에 죽었다. 이는 〈二女墓誌〉에서 확인된다.
역주5 悼亡 : 증공의 아내 晁氏가 죽은 것을 말한다. 晁氏는 1062년 3월에 도성에서 죽었다. 이는 〈亡妻宜興縣君文柔晁氏墓誌銘〉에서 확인된다.

당송팔대가문초 증공(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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