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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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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한사인韓舍人에게 올린 글
老蘇强項如此하니 正與前篇詞旨不同이라
노소老蘇강직剛直함이 이와 같으니 꼭 전편前篇과 글의 뜻이 같지 않다.
舍人執事 方今天下雖號無事 而政化未淸하고 獄訟未衰息하고 賦斂日重하며 府庫空竭이라
사인舍人 집사執事께. 바야흐로 지금 천하에는 비록 일이 없다고 하지만 정치政治교화敎化는 맑지 못하고, 송옥訟獄은 줄어들거나 그치지 않고, 부세賦稅의 징수는 날로 무거워지며, 부고府庫는 비어 고갈되고 있습니다.
而大者 又有之不臣이라
그리고 큰 근심은 또한 두 오랑캐가 신하臣下 노릇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天子震怒하고 大臣憂恐이라
천자天子진노震怒하고, 대신大臣들은 근심하고 두려워합니다.
以上宜皆苦心焦思하고 日夜思念하여 求所以解吾君之憂者니이다
양제兩制 이상以上으로는 마땅히 모두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밤낮으로 생각하여 우리 임금님의 근심을 푸는 방법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洵自惟 閑人으로 於國家無絲毫之責하며 得以優游終歲하여 咏歌先王之道以自樂이라
저 스스로 생각건대 저는 한가閑暇한 사람으로 나라에는 털끝만 한 책임도 없으며, 한가로운 말년末年을 얻어 선왕先王를 읊고 노래하며 스스로 즐겼습니다.
時或作爲文章이나 亦不求人知
이따금 어쩌다 문장文章을 지어도 또한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以爲天下方事事어늘 而王公大人豈暇見我哉
생각건대 천하天下에 바야흐로 해야 할 일이 있거늘 왕공王公 대인大人이 어찌 저를 만날 겨를이 있겠습니까?
是以 踰年在京師 而其平生所願 見如 未嘗一至其門이라
그런 까닭에 해가 넘도록 경사京師에 있으면서 평소 소원이 군후君侯와 같은 분을 뵙는 것이면서도 일찍이 한 번도 그 문에 이른 적이 없었습니다.
有來告洵以所欲見之之意하니 洵不敢不見이라
어떤 사람이 제게 와서 만나고자 하신다는 뜻을 알리니 저는 감히 뵙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然不知君侯見之而何也
그러나 군후君侯께서 저를 만나 무엇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天子求治如此之急하신대 君侯爲兩制大臣으로 豈欲見一閒布衣하여 與之論閒事邪
천자天子께서 이런 위급함을 다스리길 구하시는데 군후君侯께서는 양제兩制대신大臣이 되어 어찌 한 한가한 포의지사布衣之士를 만나 함께 한가한 일을 논하고자 하십니까?
此洵所以不敢遽見也니이다
이것이 제가 감히 성급히 뵙지 않는 까닭입니다.
自閒居十年으로 人事荒廢하여 漸不喜承迎將逢하고 拜伏拳跽
한가로이 거처한 10년 이래 인사人事를 잘할 줄 모르게 되어 점차 맞아들여 만나고 절하고 엎드리며 꿇어앉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王公大人苟能無以此求之하니 使得從容坐隅하여 時出其所學이면 或亦有足觀者
왕공王公 대인大人께서는 실로 이러한 것을 가지고 구하실 수 없으니, 조용히 모서리에 앉아 이따금 그 배운 것을 끄집어낼 수 있게 하신다면 더러 또한 볼 만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今君侯辱先求之 此其必有所異乎世俗者矣니이다
그러나 이제 군후君侯께서 외람스럽게도 먼저 구하시니, 이는 반드시 세속世俗과는 다른 것이 있는 것입니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기를 “단간목段干木은 담을 넘어 피하였고, 설류泄柳는 문을 닫고 들이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너무 심하다.
이면 斯可以見矣라하니
〈만나보려는 마음이〉 간절하면 이에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라 하였습니다.
嗚呼 吾豈斯人之徒歟
아아! 제가 어찌 이런 사람들의 무리이겠습니까!
欲見我而見之하고 不欲見而徐去之 何傷이리오
저를 보고 싶으시면 만나보시고, 보고 싶지 않으시면 서서히 버리셔도 될 것이니, 무엇을 근심하시겠습니까?
況如君侯 平生所願見者 又何辭焉이리오 不宣하노이다
하물며 군후君侯 같은 분은 평소 뵙기를 바라는 분이니 또한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줄입니다.
역주
역주1 上韓舍人書 : 韓舍人은 아마 韓絳(1012~1088)일 것이다. 자는 子華이며 雍丘 사람으로 벼슬은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嘉祐 2년(1057) 韓絳은 歐陽脩와 함께 權知禮部貢擧로 있었으며, 蘇軾이 진사에 급제한 후에 지은 〈謝韓舍人啓〉가 있다. 王文誥의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 권1에서는, 《東都事略》과 《宋史》의 本傳을 고찰해보니 韓絳이 起居 中書舍人 등의 관직에 제수된 사실이 수록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대략을 제거하였을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다만 공의 시의 自註에서는 “知制誥는 舍人의 班列에 둔다.”고 하였으니 당시에는 翰林의 知制誥가 아니면 모두 舍人이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본문에 “한가로이 거처한 10년[閑居十年]”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慶曆 7년(1047)에서 嘉祐 원년(1056)까지 두문불출하고 집에만 있었던 것을 가리킬 것이다. 또한 “해가 넘도록 경사에 있으면서[踰年在京師]”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글은 嘉祐 2년 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역주2 二虜 : 북방의 契丹과 서북방의 黨項을 가리킨다.
역주3 兩制 : 翰林學士이면서 知制誥가 된 것을 內制라 하고, 他官으로서 知制誥가 된 것을 外制라고 하는데, 이 둘을 합쳐서 兩制라고 한다.
역주4 君侯 : 秦漢時代에는 列侯로서 승상이 된 자를 가리켰는데, 漢나라 이후로는 貴人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역주5 段干木……斯可以見矣 : 《孟子》 〈滕文公 下〉에 나오는 말이다. 皇甫謐의 《高士傳》에서는 “段干木은 晉나라 사람인데……道를 지키면서 벼슬하지 않았다. 魏 文侯가 만나보고자 하여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段干木은 담을 넘어 피하였다.”라 하였다. 泄柳는 魯나라 사람인데 魯 繆公이 그가 賢明하다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나러 갔는데, 泄柳는 처음에는 문을 닫고 들이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繆公에게서 벼슬을 하였다. 孟子의 뜻은 魏 文侯와 魯 繆公이 두 사람을 만나러 갔을 때 본래 만날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이 거리를 둠이 너무 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蘇洵은 아래에서 “제가 어찌 이런 사람들의 무리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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