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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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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通篇 將古人行事 立言하여 而經緯成文이라
知有所甚愛하고 知有라야 可以用兵矣
夫善將者 以其所不足愛者 養其所甚愛者
士之不能皆銳하고 馬之不能皆良하며 器械之不能皆利 固也 處之而已矣
兵之有上中下也 是兵之有三權也
此兵說也 非馬說也
下之不足以與其上也 吾旣知之矣 吾旣棄之矣
中之不足以與吾上이요 下之不足以與吾中이니 吾不旣再勝矣乎
得之多於棄也 吾斯從之矣
彼其上之不得其中下之援也하니 乃能獨完耶
曰 兵之有上中下也 是兵之有三權也라하니라
三權也者 以一 致三者也
嗚呼 不從其瑕而攻之 天下皆彊敵也
漢高帝之憂 在項籍耳
夫不汲汲於其憂之所在하고 而彷徨乎其不足恤之地하니 彼蓋所以孤項氏也
非其憂在蜀也
諸葛孔明 一出其兵이면 乃與魏氏角하니 其亡宜也
取天下 取一國 取一陣 皆如是也
無與王遇하고 且攻其右하소서
右無良焉하니 必敗 偏敗 衆乃携라하니라
蓋一陣之間 必有牡牝左右 要當以吾彊으로 攻其弱耳
使弱으로 常遇强하고 强常遇弱이라
敵犯吾弱하여 追奔 不過數十百步 吾擊敵弱하여는 常突出自背反攻之하니 以是 必勝이라하니라
後之庸將 旣不能處其强弱하여 以敗하고
而又曰 吾兵 有老弱 雜其間하여 非擧軍精銳 以故 不能勝이라하니라
不知老弱之兵 兵家 固亦不可無
無之 是無以耗敵之彊兵하여 而全吾之銳鋒이니 敗可俟矣
智者 輕棄吾弱하여 而使敵으로 輕用其强이요 忘其小喪하고 而志於大得이라
夫固要其終而已矣
大略祖孫武子三駟中議論이라
三駟者 射千金之法이요 非大將謀國之全也


04. 강약强弱의 활용
이 편 전체가 고인古人들이 행한 일을 가지고 입언立言하여 엮어서 문장을 만들었다.
아주 아껴야 할 것이 있음을 알고, 아끼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군사軍士를 부릴 수 있다.
그러므로 군사를 잘 거느리는 장수將帥는 아끼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아주 아껴야 할 것을 잘 양성養成하는 자이다.
병사兵士들이 다 정예精銳일 수 없고, 말들이 다 양마良馬일 수 없으며, 무기와 기계들이 다 날카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니, 그것을 잘 안배할 따름이다.
병사兵士가 있으니, 용병用兵에도 세 가지 권변權變이 있다.
손빈孫臏의 말에 “그대의 하등 말로 상대방의 상등 말과 경주를 시키고, 그대의 상등 말로 상대방의 중등 말과 경주시키며, 그대의 중등 말로 상대방의 하등 말과 경주시키십시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병법兵法에 관한 이지, 경마競馬에 관한 이 아니다.
하등 말은 그의 상등 말과 족히 경주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내가 이미 그것을 포기한 것이다.
중등 말은 나의 상등 말과 경주가 되지 않고, 하등 말은 나의 중등 말과 경주가 되지 않으니, 나는 이미 두 번은 이긴 것이 아닌가?
이기는 것이 지는 것보다 많으니, 나는 곧 그 방법을 따르겠다.
저들의 그 상등 말은 그의 중등 말과 하등 말의 도움을 얻지 못하니, 그 혼자 〈목표를〉 완수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병사兵士가 있으니, 용병用兵에도 세 가지 권변權變이 있다.”라고 한 것이다.
세 가지 권변權變이란 한 번을 〈포기함으로써〉 세 번의 〈목표에〉 이르는 것이다.
관중管仲은 “적의 견고한 부대를 공격하면 적의 연약한 부대도 견고해지고, 적의 연약한 부대를 공격하면 적의 견고한 부대도 연약해진다.”라고 하였다.
아아! 적의 연약한 부대부터 공격하지 않으면 천하는 모두가 강적强敵이 될 것이다.
한 고조漢 高祖의 걱정거리는 오직 항우項羽에게 있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한 고조漢 高祖가〉 친히 그의 군대를 거느려 항우項羽와 싸운 것은 대략 몇 번도 되지 않는다.
수하隋何구강九江을 취하고, 한신韓信를 취하고 를 취하고 를 취하고 를 취하고 난 다음에야, 고조高祖가 출병하여 항우項羽를 취하였다.
대저 그 걱정거리가 있는 곳에서는 급급하지 않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오랫동안 배회하였으니, 한 고조漢 高祖는 아마 항우項羽를 고립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나라의 걱정거리는 육국六國에 있었으니, 나라가 가장 편벽되고 가장 작았지만 가장 먼저 취하였고, 나라는 가장 강하였지만 가장 뒤에 취하였다.
의 걱정거리는〉 나라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제갈량諸葛亮은 일단 출병出兵만 하면 바로 가장 강한 나라와 겨루었으니, 그 망함은 마땅하다.
천하를 취하든 한 나라를 취하든 하나의 진지陣地를 취하든 다 이와 같다.
범려范蠡는 “무릇 포진布陣의 방법은 좌측을 강화하여 웅진雄陣으로 삼고, 우측에 약한 부대를 두어 자진雌陣으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춘추春秋 때에 나라가 나라를 치니, 〈나라〉 계량季梁이 “나라는 왼쪽을 높이니, 임금은 반드시 왼쪽에 있을 것입니다.
초왕楚王과 마주치지 마시고 우선 그 우측을 공격하소서.
우측에는 정병精兵이 없으니 반드시 패배시킬 수 있을 것이고, 한쪽이 패하게 되면 주력부대도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대개 하나의 진지陣地 속에는 반드시 〈강약强弱이 다른〉 웅자雄雌좌우左右가 있으니, 요컨대 당연히 우리의 강한 부대로 적의 약한 부대를 공격해야 할 따름이다.
당 태종唐 太宗은 “내가 군대를 일으키면서부터 군진軍陣의 형세를 자세히 관찰하여, 매번 싸울 때마다 적이 그 좌측을 강하게 하는 것을 보면 나도 우리의 좌측을 강하게 하였고, 적이 그 우측을 약하게 하면 나도 우리의 우측을 약하게 하였다.
〈우리의〉 약한 부대로 항상 〈적의〉 강한 부대를 맡게 하고, 〈우리의〉 강한 부대로 항상 〈적의〉 약한 부대를 맡게 하였다.
적이 우리의 약한 곳을 침범해서 추격해온 것은 수십 수백 보에 불과하였고, 우리가 적의 약한 곳을 공격할 때에는 항상 〈적군의 진지를〉 돌파하여 적의 배후에서 되돌아 공격하였으니, 이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었다.”라고 하였다.
후세의 용렬한 장군들은 그 강약强弱을 제대로 안배할 수 없어 패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부대에는 노약자들이 사이에 끼어 있어 전군全軍정예精銳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길 수 없었다.”라고 한다.
그들은 노약한 병사들도 병가兵家에서 진실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모른다.
그들이 없으면, 이것은 적의 강병强兵을 소모시켜 우리의 예봉銳鋒을 보전할 수 없는 것이니, 패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우리의 약한 부대를 가볍게 희생해서 적이 그들의 강병强兵을 가볍게 쓰도록 하고, 그 작은 손실損失은 잊어버리고 크게 얻는 데 뜻을 둔다.
진실로 요체는 그 끝맺음일 뿐이다.
대략 손무孫武삼사三駟 속의 의논을 조술祖述한 것이다.
삼사三駟라는 것은 천금을 걸고 내기하는 방법이지 장군이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아니다.


역주
역주1 强弱 : 이 글은 戰爭에서 形勢의 强弱과 軍隊의 强弱을 활용하는 방법을 논한 것이다. 蘇洵은 形勢의 强弱을 잘 활용한다는 것은 먼저 상대방의 약한 곳을 공격하여 상대의 강한 곳을 약화시킴으로써 승리로 이끄는 것이라 하였고, 軍隊의 强弱을 잘 활용한다는 것은 자신의 강한 군대로 상대의 약한 군대를 공격하고 자신의 약한 군대로 상대의 강한 군대를 유인하여 희생시킴으로써 승리로 이끄는 것이라 하였다.
역주2 所不足愛 : ‘아끼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이란 병사 가운데 노약자를 가리킨다.
역주3 孫臏 : 孫臏은 齊나라 사람으로, 孫武의 후손이다. 그는 일찍이 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는데, 龐涓이 魏 惠王을 섬겨 장군이 되자 孫臏의 재능이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두려워하여 孫臏을 魏나라로 불러서 죄에 빠뜨린 뒤 臏刑(무릎을 잘라내는 형벌)에 처하였다. 그의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孫臏은 齊나라 사신을 따라 탈출하여 齊 威王의 軍師가 되어 魏나라를 격파하고 龐涓을 죽였다. 그의 《孫臏兵法》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역주4 以君下駟……與彼下駟 : 《史記》 〈孫子吳起列傳〉에 보인다. 駟는 戰車 한 대를 네 마리 말이 끌었기 때문에 ‘말 네 마리’ 혹은 ‘네 마리가 끄는 수레 한 대’란 의미로 쓰였지만, ‘말’을 통칭하기도 하였다.
역주5 攻堅……則堅者瑕 : 《管子》 〈制分〉에 보인다.
역주6 親以其兵……蓋無幾也 : 《史記》 〈高祖本紀〉와 〈項羽本紀〉를 통해 ‘漢 高祖가 친히 그의 군대를 거느리고 項羽와 싸운 것’을 살펴보면, 모두 다섯 차례에 불과하다.
역주7 隋何 取九江 : 張良의 계책에 따라 隋何가 項羽의 수하로 있던 九江王 英布를 찾아가 楚나라를 버리고 漢나라로 투항시킨 것을 말한다. 《史記》 〈黥布列傳〉
역주8 韓信……取齊 : 《史記》 〈淮陰侯列傳〉에 나온다.
역주9 高帝 起而取項籍 : 高祖 5년(B.C. 202) 12월 劉邦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垓下에서 項羽의 군대를 대파하자 項羽는 결국 자결하였다. 《史記 高祖本紀, 淮陰侯列傳》
역주10 蜀最僻最小……最後取 : 秦나라가 B.C. 316년에 蜀을 멸하였고, B.C. 224년에 楚나라를 멸하였으며, 그리고 1년 뒤 燕나라를, 2년 뒤 齊나라를 각각 멸하였다. 《史記 秦本紀》 蘇洵이 ‘楚나라는 가장 강하였는데에도 가장 뒤에 취하였다.’는 말은 사실에 맞지 않는다.
역주11 范蠡 : 春秋 때에 楚나라 사람이었으나 越나라의 大夫가 되어 越 句踐을 도와 吳나라를 멸하였다. 그는 句踐에 대해 患難은 같이할 수 있으나 榮樂은 같이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하고, 越나라를 떠나 齊나라로 가서 陶라는 곳에 거주하며 陶朱公이라 했다. 장사를 하여 巨富가 되기도 했다.
역주12 凡陣之道……設右以爲牝 : 《國語》 〈越語〉에 보인다. 옛날에는 牡(수컷)를 강한 것으로 여기고, 牝(암컷)을 약한 것으로 여겼으며, 또 左를 右보다 높였다.
역주13 春秋時 楚伐隋 : 隋는 西周‧春秋 때의 周나라 同姓의 諸侯國이었지만, 戰國 때에 초나라에 멸망되어 楚邑이 되었다.
역주14 季梁曰……衆乃携 : 《春秋左氏傳》 桓公 8년에 보인다.
역주15 唐太宗曰……必勝 : 《冊府元龜》 卷43 〈帝王 多能〉에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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