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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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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제곡帝嚳에 대한 논문
이라
변론이다
사기史記》에는 “제곡帝嚳원비元妃강원姜嫄이요, 차비次妃간적簡狄이니, 간적簡狄이 목욕을 하러 갔다가 제비가 그 알을 떨어뜨린 것을 보고 그것을 취해 삼켜 그로 인해 을 낳았으니, 이분이 나라의 시조이다.
강원姜嫄이 들에 나갔다가 거인巨人의 발자국을 보고 마음이 설레어 그 발자국을 밟고 나서 그로 인해 을 낳았으니, 이분이 나라 시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其祖商周信矣로되 其妃之所以生者 神奇妖濫하니 不亦甚乎
그들이 나라와 나라의 조상祖上이란 것은 믿을 만하되, 그 부인들이 자식을 낳게 된 연유가 지나치게 신기하고 요상하니, 또한 너무 심하지 않은가!
商周有天下七八百年하니 其享天之祿하여 以能久其社稷이어늘 而其祖宗 何如此之不祥也
나라와 나라가 천하를 소유한 지 7, 8백 년이나 되었으니, 이것은 그 나라들이 하늘의 복록福祿을 누려서 그 사직社稷을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 조상들이 어찌 이처럼 상서롭지 못하단 말인가?
使聖人而有異於衆庶也 吾以爲天地必將陰陽之和하고 積元氣之英하여 以生之하니 又焉用此二不祥之物哉
성인聖人이라면 일반 사람과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니, 내 생각으로는 천지天地가 반드시 음양陰陽의 조화를 쌓고 원기元氣의 정수를 축적하여 그들을 낳았을 것인데, 또한 어찌 이 두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을 사용했단 말인가?
燕墮卵於前하여 取而呑之라하니 簡狄 其喪心乎
제비가 앞에 알을 떨어뜨리자 그것을 주워 삼켰다니, 간적簡狄이 아마도 정신을 놓았단 말인가?
巨人之迹 隱然在地 走而避之且不暇어늘 忻然踐之라하니 何姜嫄之不自愛也
거인의 발자국이 은연히 땅에 있으면 달려가다 피하기에도 틈이 없었을 것이거늘, 설레어 그것을 밟았다니, 어찌 강원姜嫄이 그토록 자신을 아끼지 않았단 말인가?
又謂行浴出野하여 而遇之 以簡狄姜嫄爲淫泆無法度之甚者
간적簡狄이 목욕을 하러 갔다가 잉태하고, 강원姜嫄이 들에 나갔다 발자국을 만나 잉태했다면, 이것은 간적簡狄강원姜嫄을 심히 음란淫亂하고 법도法道가 없는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帝嚳之妃 稷契之母 不如是也리라
제곡帝嚳의 부인이며, 의 어머니이니 이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러하지만, 사마천司馬遷의 뜻은 틀림없이 《시경詩經》의 “천제天帝께서 제비에게 명하여, 내려가 나라 조상祖上을 낳게 하셨네.”라는 구절과, “처음 백성을 내신 분은, 바로 강원姜嫄이란 분이시네. 백성을 어떻게 낳으셨을까, 정결히 제사 지내시어, 자식 없는 나쁜 징조 쫒아내시었네. 의 발자국 밟고 기뻐서, 휴식하시며 편히 머무셨네. 아기 배어 삼가시고, 아기 낳아 기르시니, 이분이 후직后稷이시다.”라는 구절을 가지고 말했을 것이다.
此又遷求詩之過也
아! 이것 또한 사마천司馬遷이 《시경詩經》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以鳦鳥降으로 爲祀郊禖之候하고 履帝武 爲從高辛之行이러니
모공毛公은 《시경詩經》의 이 시를 해설함에 ‘제비가 내려왔다.’라는 말을 ‘교외郊外에서 매제사禖祭祀를 지낼 때’가 된 것으로 보았고, ‘의 발자국 밟다.’라는 말을 ‘〈남편인〉 고신씨高辛氏를 따라간 것’으로 보았다.
而後 有呑踐之事
그런데 정현鄭玄 이후에 ‘제비 알을 삼켰다.’거나 ‘거인의 발자국을 밟았다.’는 사실이 있게 되었다.
當毛之時 未始有遷史也
모공毛公의 시대에는 애초에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가 없었다.
遷之說 出於疑詩하고 而鄭之說 又出於信遷矣
따라서 사마천司馬遷은 《시경詩經》을 억측臆測한 데에서 나왔고, 정현鄭玄은 또 사마천司馬遷을 믿은 데에서 나왔다.
天下皆曰 聖人 非人이니 人不可及也라하니
그래서 천하 사람들은 모두 “성인聖人범인凡人과 다르니 범인이 미칠 수 없다.”라고 한다.
甚矣 遷之以不祥으로 誣聖人也
심하도다! 사마천司馬遷이 상서롭지 못한 두 가지 일로써 성인聖人을 왜곡함이여.
나라 말기에 두 마리 용이 궁정에 노닐다가 그 용이 흘린 침을 감추었다가 나라에 이르러 감춘 침을 드러내니, 침이 변하여 자라가 되었다.
以生褒姒하여 以滅周하니 使簡狄而呑卵하고 姜嫄而踐跡 則其生子 當如褒姒하여 以妖惑天下어늘 奈何其有稷契也
〈어린 궁녀宮女가 자라를 만나 임신姙娠하여〉 포사褒姒를 낳아, 〈포사褒姒로〉 인해 결국 나라는 망하였으니, 가령 간적簡狄이 알을 삼키고, 강원姜嫄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서 〈자식을 낳았다면〉, 그녀들이 낳은 자식들도 당연히 포사褒姒처럼 요상한 행동으로 천하를 현혹시켰을 것이거늘, 어찌하여 그녀들은 같은 훌륭한 사람을 갖게 되었을까?
或曰 然則稷 何以棄 曰 稷之生也 하니 或者姜嫄 疑而棄之乎인저
어떤 사람이 “그렇다면 은 무엇 때문에 버려졌는가?”라고 하자, “후직后稷이 태어남에, 재해災害피해被害도 끼치지 않았으니, 어쩌면 강원姜嫄이 그를 의심하여 버리신 것이리라.
정 장공鄭 莊公은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이미 태어나 있어, 어머니 강씨姜氏를 놀라게 하여 강씨姜氏가 그를 싫어하였으니, 일이란 본래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라고 하였다.
吾非惡夫異也 惡夫遷之以不祥으로 誣聖人也로라
나는 기이한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마천司馬遷이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성인聖人을 왜곡한 것을 싫어한다.
棄之하여 而牛羊避하고 遷之하여 而飛鳥覆하니 吾豈惡之哉
그를 버리자 소와 양이 피해 가고, 그를 옮겨놓자 새가 날개로 덮어주었다고 하니, 내 어찌 그런 것을 싫어하겠는가?
하니 吾固不惡夫異也로라
나라 자문子文은 태어나서 〈버려지자〉 호랑이가 젖을 먹이기도 하였으니, 나는 본래 기이한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역주
역주1 嚳妃論 : 이 글은 《史記》에 기술된 帝嚳의 두 아내가 아이를 잉태하여 낳게 된 일을 論한 것으로, 蘇洵은 이것을 司馬遷이 《詩經》의 시를 잘못 이해하여 불길한 두 가지 허황한 일로써 聖人을 왜곡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역주2 帝嚳元妃……曰簡狄 : 帝嚳은 黃帝의 曾孫으로 辛에 거주하여 高辛氏라고 하였으며, 姜嫄과 簡狄이라는 두 부인이 있었다. 姜嫄의 嫄은 《嘉佑集》에는 原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저본을 따랐다.
역주3 簡狄行浴……因生契(설) : 《史記》 〈殷本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殷나라 契은 어머니가 簡狄인데, 有娀氏의 딸이며, 帝嚳의 次妃이다. 세 사람이 목욕하러 가다가 제비가 그 알을 떨어뜨린 것을 보고 簡狄이 그것을 취해 삼켜 이로 인해 아이를 잉태하여 契을 낳았다. 契이 자라서 禹의 治水를 도와 功이 있었다.[殷契母曰簡狄 有娀氏之女 爲帝嚳次妃 三人行浴 見玄鳥墮其卵 簡狄取呑之 因孕生契 契長而佐禹治水有功]”
역주4 姜嫄……因生稷 : 《史記》 〈周本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姜嫄이 들에 나아갔다가 巨人의 발자국을 보고는 마음이 너무 설레고 기뻐 그 발자국을 밟고 싶었다. 그 발자국을 밟았더니 몸이 움직이며 孕胎한 것 같았는데,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상서롭지 못하다 생각하여 좁은 골목길에 버렸으나 소와 말이 지나면서 모두 피하여 밟지 않았고, 숲 속으로 옮겨두었더니 마침 산속에 사람이 많이 있어서, 그를 옮겼다가 다시 도랑의 얼음 위에 버렸더니 날짐승들이 날개로 덮어 보호해주었다. 姜嫄이 신성스럽게 여겨 마침내 데려다 키웠다. 처음에 버리려고 했으므로 이름을 棄라고 하였다.”
역주5 : 《嘉祐集》에는 ‘構’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저본을 따랐다.
역주6 天命鳦鳥 降而生商 : 《詩經》 〈商頌 玄鳥〉에 나온다.
역주7 厥初生民……時維后稷 : 《詩經》 〈大雅 生民〉에 나온다.
역주8 毛公之傳詩也 : 毛公은 漢代에 《詩經》의 注釋을 단 사람으로, 두 가지 說이 있다. 하나는 大毛라 불리는 毛亨이고, 다른 하나는 小毛라 불리는 毛萇인데, 淸代 학자들은 대부분 大毛인 毛亨이라 여겼다. 傳은 ‘해설하다.’, ‘주석을 달다.’의 뜻이다.
역주9 鄭之箋 : 鄭은 鄭玄(127~200)이다. 東漢 高密 사람이다. 馬融에게 經學을 배웠고 五經의 注를 달았다. 箋은 鄭玄이 注한 《毛詩》를 가리키며, 《鄭箋》이라 한다.
역주10 夏之衰……以滅周 : 옛날 夏나라 말기에 두 마리의 神龍이 夏나라 임금의 궁정에 머물며 말했다. “우리는 褒의 두 임금이다.” 夏나라 임금이 占을 치니 죽이든 쫓아내든 궁 안에 머물든 모두 불길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점을 치게 하니 용의 타액을 받아 보관하면 길하다고 나왔다.…… 夏나라 임금은 그 타액을 목갑에 넣어 깊이 보관하도록 하였다. 夏나라가 망하고 그 목갑은 殷나라에 전해졌고, 殷나라가 망하자 다시 周나라에 전해졌다. 三代가 지나도록 감히 그 목갑을 열어보지 못했다가 周나라 厲王 말년에 목갑을 열어보게 되었다. 목갑을 열자 그 안에 있던 용의 침이 궁정의 뜰로 흘러내리는데 없앨 방법이 없었다.……용의 타액이 검고 큰 자라로 변하더니 後宮으로 숨어 들어갔다. 후궁의 侍女 가운데 어린 宮女가 자라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가 열다섯 성년이 되어 아이를 배니, 시집도 가지 않고 아이를 낳게 되자 두려워 아이를 내다 버렸다. 宣王 때 어린 계집아이들이 童謠를 불러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箕草로 만든 箭筒으로 周나라가 망하리라!” 하였다. 이에 宣王은 그 노래를 듣고 그 물건을 파는 부부가 있자 잡아서 죽이도록 하였다. 그 부부는 길로 달아나다가, 후궁의 어린 궁녀가 낳아서 버린 어린아이가 길에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밤중에 우는 소리를 듣자 불쌍하여 거두어 褒城으로 달아났다. 褒城의 사람이 죄를 짓자 후궁의 어린 궁녀가 낳아 버린 아기를 구해서 왕에게 바치며 贖罪를 청했다. 버려진 아기가 자란 곳이 褒城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褒姒라 했다. 《史記 周本紀》
역주11 無菑無害 : 《詩經》 〈大雅 生民〉에 나온다.
역주12 鄭莊公……姜氏惡之 : 《春秋左氏傳》 隱公 元年에 보인다. “이보다 앞서 鄭 莊公이 申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했는데, 이름이 武姜이다. 武姜은 莊公과 共叔段을 낳았다. 莊公은 난산 끝에 태어나 어머니를 놀라게 하였으므로 이름을 寤生이라 하고 마침내 그를 싫어하였다.” 이 구절에 대해 杜預는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莊公이 이미 태어나 있었기 때문에 놀라서 그를 싫어하였다.”라고 주석을 달았는데, 蘇洵도 이 說을 따랐다. 그런데 楊伯峻 같은 사람은 寤生의 寤의 주체를 莊公으로 보았고, 아울러 寤를 牾[거스르다]의 假借字로 보고서 ‘莊公이 때어날 때 다리부터 먼저 나와 난산을 한 것’으로 보았다.
역주13 楚子文之生也 虎乳之 : 《春秋左氏傳》 宣公 4년에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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