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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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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卽木假山하고 看出許多幸不幸來하고 有感慨하고 有態度
凡六轉入山하고 末又一轉하니 有百尺竿頭之意
木之生 或蘖而殤하고 或拱而夭
幸而至於任爲棟梁則伐하고 不幸而爲風之所拔하며 水之所漂하여 或破折或腐
幸而得不破折不腐 則爲人之所材하여 而有斧斤之患이라
其最幸者 漂沈하여 汨沒於湍沙之間하여 不知其幾百年이나 而其激射齧食之餘 或髣髴於山者 則爲好事者取去하여 彊之以爲山이라
然後 可以脫泥沙而遠斧斤이라
而荒江之濱 如此者幾何 不爲好事者所見하고 而爲樵夫野人所薪者 何可勝數리요
則其最幸者之中 又有不幸者焉이라
予家 有三峰한대 予每思之 이라
且其蘖而不殤하고 拱而不夭하고
任爲棟梁而不伐하고 風拔水漂而不破折不腐하고
不破折不腐而不爲人所材以及於斧斤하고
出於湍沙之間이나 而不爲樵夫野人之所薪而後
得至乎此하니 則其理似不偶然也
이나 予之愛之 則非徒愛其似山이요 而又有所感焉이라
非徒愛之 而又有所敬焉이라
予見中峰 魁岸踞肆하여 意氣端重하여 若有以服其旁之二峰이요 二峰者 莊栗刻峭하여 凜乎不可犯하여
雖其勢服於中峰이나 而岌然決無阿附意
其可敬也夫인저 其可以有所感也夫인저


03. 목가산木假山에 대한 기문
목가산木假山을 보고서 수많은 불행不幸을 거쳐서 온 것을 간취해내고, 감개무량한 감정이 생겨나고 그것을 대하는 특별한 자세도 갖게 되었다.
글에서 무릇 여섯 번이나 전절되어서 산이 되고 끝에 가서 한 번 더 전절되니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 있는 것 같은 우뚝한 뜻이 있다.
나무의 삶이 더러는 움이 터서 죽기도 하고, 더러는 두 손으로 마주 잡을 만큼 자라다가 일찍 죽기도 한다.
다행히 기둥이나 들보가 될 만하게 자라게 되면 벌목되기도 하고, 불행하게도 바람에 뽑혀 물에 떠내려가다가 더러는 부서지거나 꺾어지고 더러는 썩게 된다.
다행히 부서지거나 꺾어지지 않고 썩지도 않으면 곧 사람들에게 재목으로 여겨져 도끼에 찍히는 고통이 있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다행한 것은 표류하다가 잠기어 여울과 모래 사이에 가라앉아 몇 백 년이 지났는지 알지 못하지만 물에 씻기고 모래에 부딪혀 갉아 먹힌 나머지가 간혹 산과 비슷한 모양이 되면 호사가好事家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억지로 산처럼 꾸며놓는다.
그렇게 된 뒤에야 진흙과 모래에서 벗어나고 도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거친 강가에서 그와 같은 것이 몇이나 되며, 호사가好事家들의 눈에 발견되지 않고 나무꾼이나 촌사람들의 땔감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가장 다행스런 것 중에도 또 불행한 것이 있는 것이다.
내 집에는 봉우리가 세 개인 목가산木假山이 있는데, 내가 그것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아마 거기에는 어떤 운수運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움이 트다가 죽지 아니하고, 두 손으로 마주 잡을 만큼 자라다가 일찍 죽지 아니하고,
기둥이나 들보감이 될 만큼 자라다가 벌목당하지 아니하고, 바람에 뽑혀 물에 떠내려가다가 부서지거나 꺾어지지 아니하고 썩지도 아니하고,
부서지거나 꺾어지지 아니하고 썩지도 아니하면서 사람들에게 재목材木으로 여겨져 도끼에 찍히는 데도 미치지 아니하고,
여울과 모래 사이에 드러나도 나무꾼이나 촌사람들의 땔감이 되지 아니하여,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으니 그 이치가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 비단 산을 닮았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감회가 있기 때문이요,
비단 그것을 사랑할 뿐만이 아니라 또한 공경할 바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건대 가운데 봉우리는 우뚝하게 솟아 뜻과 기운이 단정하고 엄중하여 마치 그 곁의 두 봉우리를 복종시킴이 있는 것 같고, 그 두 봉우리는 씩씩하고 뾰쪽하여 범할 수 없을 만큼 늠름하여,
비록 그 형세가 가운데 봉우리에 복종하고는 있으나 우뚝하니 결코 아부하는 뜻은 없다.
아! 공경할 만하구나. 감회가 있을 만하구나.


역주
역주1 木假山記 : 큰 나무토막이 물과 모래 사이에서 오랜 세월 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산 모양으로 만들어져 자기 집에 관상용으로 오게 된 木假山을 두고 지은 글이다. 中峯은 蘇洵 자신을, 그 곁에 있는 두 봉우리는 아들 兄弟를 은근히 비유하고 있다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嘉祐 2년(1057년)에 지은 글이다.
역주2 則疑其有數存乎其間 : 조선 중기의 朴孝伯(1562∼1623)은 70년 동안 글을 읽어 한 번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여 궁색하고 고생스럽게 지냈지만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지 않았다. 우연히 蘇洵의 이 〈木假山記〉를 읽고 말하기를 “하나의 이치가 빽빽히 둘러싼 채 動靜에 따라서 맺어지는 것은 이치이고, 하나의 氣가 돌고 돌아 吉凶이 나뉘어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은 運數이다. 번갈아가며 발하고 생기는 것은 勢力으로 면할 수도 없고 智巧로도 바랄 수도 없는 것이니, 오직 하늘이 명하는 바를 들어서 순순히 받아들이고 고요히 기다릴 뿐이다.”라고 하였다. 《順菴集》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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