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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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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북사北使가 된 석창언石昌言을 전송하는 서문
文有生色하니 直當與韓昌黎 相伯仲이라
글이 생동감 있으니, 곧 한창려韓昌黎(한유韓愈)의 〈송은원외등서送殷員外等序[은원외랑殷員外郞 등을 전송하는 서문]〉과 서로 우열優劣을 가리기 어렵다.
昌言擧進士時 未學也
창언昌言이 진사시험에 응시할 적에 나는 겨우 몇 살밖에 안 되어 아직 공부를 못하고 있었다.
憶與群兒戱하면 昌言從旁取棗栗啖我하니 家居相近하고 又以故甚狎이라
아이들과 선친 곁에서 장난치며 놀던 때를 회상해보면, 창언昌言이 옆에서 따르며 대추와 밤을 집어서 나에게 먹여주었으니 두 집이 가깝고 또 친척이기 때문에 매우 친하게 지냈다.
昌言擧進士하여 日有名하고 吾後漸長 亦稍知讀書하여 學句讀이라가 未成而廢하니라
창언昌言은 진사시험에 천거되어 날마다 명성이 났고, 나는 그 뒤로 점점 자라면서 조금 글을 읽을 줄 알아, 구두句讀를 떼는 법과 대구對句를 만드는 법과 성률聲律을 배우다가 이루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昌言聞吾廢學하고 雖不言이나 察其意甚恨이라
창언昌言은 내가 공부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듣고 비록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 뜻을 살피건대 매우 한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後十餘年 昌言及第第四人하여 守官四方하여 不相聞이라
10여 년이 지난 뒤에 창언昌言이 진사시험에 4등으로 급제하여 각 지방을 다니며 관직생활을 하느라 서로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吾日以壯大하여 乃能感悟하여 摧折復學이라
나는 날로 성장하여 이에 느끼고 깨달아 과거의 습관을 꺾고 다시 학문學問을 하였다.
又數年 遊京師하여 見昌言長安하고 相與勞問如平生歡이라
또 수년 뒤에 경사京師에 유학하여 창언昌言장안長安에서 보고는 서로 함께 위로하며 평소와 같이 기뻐하였다.
出文十數首하니 昌言甚喜稱善이라
10여 편의 글을 내어놓으니 창언이 매우 기뻐하며 잘 지었다고 칭찬하였다.
吾晩學無師하여 雖日爲文이나 中心自慙이라가 及聞昌言說하여 乃頗自喜
내가 스승도 없이 늦게 배워 비록 날마다 글을 짓기는 하였으나 마음속으로 스스로 부끄러워하였는데, 창언昌言의 말을 듣게 되는 데 이르러서 이에 자못 스스로 기뻐하였다.
今十餘年 又來京師하니 而昌言官하여 乃爲天子出使萬里之外彊悍不屈之虜庭할새하고 從騎數百하며 送車千乘하고 出都門 意氣慨然이라
지금 10여 년 만에 또 경사京師에 오니 창언昌言양제兩制에 벼슬하여 이에 천자를 위하여 만 리 밖의 강하고 사나워서 굽히지 않는 오랑캐 조정에 사신 나갈 적에 큰 깃발을 세우고 수백의 기마騎馬가 따르며 천여 대의 수레가 전송을 하고 도성 문을 나서는데 의기가 강개하였다.
自思爲兒時하니 見昌言先府君旁 安知其至此리오
어린아이였을 때를 스스로 생각해보니 창언昌言을 선친 곁에서 볼 적에 이런 영광에 이를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富貴不足怪 吾於昌言獨自有感也하니 大丈夫生不爲將이면 得爲使하여 口舌之間 足矣
부귀富貴는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지만 내가 창언昌言에게 유독 스스로 느낀 점이 있었으니, 대장부 일생에 장수가 되지 않으면 사신이 되어 변론辯論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도 족하다.
往年 하여 爲我言曰
지난해에 팽임彭任이, 부공富公(부필富弼)이 사신使臣으로 가는 데 따라갔다가 돌아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旣出境하여 宿하니 聞介馬數萬騎馳過하고 劍槊相摩하여 終夜有聲하니 從者怛然失色이라
“이미 국경을 나가서 역정驛亭에 숙박하니 철갑을 씌운 말 수만 마리가 달려 지나가고 검과 창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리니 종자從者들이 근심과 두려움에 얼굴빛이 변하였다.
及明 視道上馬跡하고 尙心掉不自禁하니라
날이 밝자 길 위의 말 발자국을 보고 더욱 마음이 요동침을 스스로 금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凡虜所以誇耀中國者多此類也로되 中國之人不測也
무릇 오랑캐가 중국에 자랑하고 뽐내는 것이 이러한 일들이 많은데도 중국 사람이 헤아리지 못하였다.
或至於震懼而失辭하여 以爲夷狄笑하니 嗚呼 何其不思之甚也
이 때문에 혹 두려워 떨며 말실수를 하여 오랑캐의 웃음거리가 되는 데 이르렀으니, 아! 어찌 그리 생각하지 못함이 심하였는가?
昔者 하니 壯士健馬 皆匿不見하여 是以 有平城之役이라
옛날에 봉춘군奉春君묵특冒頓(묵특)에 사신으로 가니 오랑캐가 씩씩한 병사와 건장한 말들을 모두 숨기고 보여주지 않아 이 때문에 평성平城의 전쟁이 있었다.
今之匈奴 吾知其無能爲也
오늘날의 흉노匈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라하시니 況於夷狄이리오 請以爲贈하노라
맹자孟子가 말씀하시기를 “대인大人을 설득할 적에는 그를 가볍게 여겨야 한다.” 하였으니 하물며 이적夷狄의 경우이겠는가! 청컨대 이 말을 선물로 드리노라!
역주
역주1 送石昌言爲北使引 : 石昌言(995~1057)의 이름은 揚休이며 자가 昌言이다. 저자와 같은 眉山 사람으로 43세인 仁宗 景祐 4년(1037)에 진사시험에 급제하였으며, 仁宗 嘉祐 원년(1056)에 刑部員外郞 知制誥의 관직으로 거란 국모의 생신 사절이 되어 갔다가, 嘉祐 2년(1057)에 江都郎中으로 죽으니 나이가 63세였다. 北使는 거란으로 사신 감을 말한다. 이 글은 동향의 선배인 石昌言이 거란에 사신으로 갈 때 漢나라의 고사를 인용하여 그들의 무력시위는 약한 것을 감추기 위해서이니 言論으로 그들을 제압하여 사신의 업무를 잘 이행해주기를 바라는 뜻으로 쓴 글이다.
역주2 送殷員外等序 : 唐나라 憲宗 때에 韓愈가 지금의 위구르 지방인 回鶻로 사신 가는 員外郞 殷侑를 전송한 글이다.
역주3 吾始數歲 : 이때 蘇洵의 나이가 겨우 4세였다.
역주4 先府君 : 돌아가신 아버지의 敬稱이니 蘇洵의 아버지인 蘇序를 가리킨다.
역주5 親戚 : 蘇序의 둘째 딸이 石昌言과 형제의 항렬인 石揚言에게 시집갔기 때문에 두 집안은 사돈관계이다.
역주6 屬對聲律 : 屬對는 두 낱말을 이어서 對句를 만드는 것이고, 聲律은 四聲(平聲‧上聲‧去聲‧入聲)의 規律, 또는 그 법을 따라 지은 詩賦나 文章을 말한다.
역주7 兩制 : 宋代의 內制와 外制를 말하니, 翰林學士가 황제의 誥命을 관장하는 것을 內制라 하고, 中書舍人과 知制誥가 황제의 誥命을 관장하는 것을 外制라 한다.
역주8 大旆 : 大將이 세우는 기이다, 검은 바탕에 雜色의 비단으로 그 가장자리를 꾸미고, 끝은 갈라져서 제비꼬리 같다.
역주9 折衝 : 적과 흥정하여 자기편의 체면을 保全하거나 국제상의 담판 또는 외국사절과의 담판을 말한다.
역주10 彭任 從富公使還 : 彭任의 자는 有道이며 蜀 지방 사람이다. 富公은 宋 仁宗 때의 유명한 정치가이며 외교가인 富弼(1004~1083)이니, 자는 彦國이고 시호는 文忠으로 韓國公에 봉해졌다.
역주11 驛亭 : 驛站에 마련되어 있던 여인숙으로, 驛馬를 마련하여 일반 관리가 말을 바꿔 타고 왕래를 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역주12 奉春君使冒頓 : 奉春君은 齊나라 사람인 婁敬이다. 漢 高祖가 여러 신하의 건의로 도읍을 洛陽으로 정하려고 하자 婁敬이 長安이 요새임을 들어 적극 권하니, 마침내 長安으로 도읍을 정하고, 婁敬에게 奉春君의 호를 내리고 劉氏 姓을 내려주었다. 漢 高祖가 흉노의 우두머리인 冒頓(묵특)을 치고자 하여 사자를 보내 엿보게 하였는데, 冒頓이 건장한 병사와 살찐 소들을 모두 숨기고 노약자와 파리한 가축들만 보여주었다. 使者 10인이 모두 흉노를 칠 만하다고 말하니 高祖가 다시 劉敬을 사신으로 보내 살펴보게 하였는데, 돌아와서 말하기를 “두 나라가 서로 칠 때에 자랑하고 뽐내며 長點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거늘, 臣이 가서 한갓 파리하고 수척한 노약자만 보았으니, 이것은 短點을 드러내 보이고 奇兵을 매복시켜 놓아 이로움을 다투려는 것입니다. 저는 흉노를 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高祖가 노하여 말하기를 “齊나라 오랑캐가 입과 혀로써 관직을 얻어 망령된 말로 우리 군대를 막는구나.” 하고 劉敬을 가두고 平城의 전쟁을 시작하였다가 白登山에서 7일 동안이나 포위되었다. 陳平이 冒頓의 처에게 뇌물을 쓴 계책으로 겨우 벗어난 뒤에 劉敬을 사면하고 앞서 사신 갔던 10인을 목 베었다. 劉敬을 建信侯로 封하였다. 《史記》, 《漢書 劉敬列傳》
역주13 孟子曰 說(세)大人則藐之 : 《孟子》 〈盡心 下〉에 나온다. 趙岐의 注에 “大人은 당시의 尊貴한 자이고, 藐은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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