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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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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역사歷史에 대한 논문
經史幷言하니 是對客論主
를 함께 말하였으니 손님에게 주인의 주장을 논한 것이다.
역사歷史는 무엇 때문에 짓는가? 아마 근심이 있어서일 것이다.
何憂乎 憂小人也니라
무슨 근심인가? 소인小人을 근심함이다.
何由知之 以其名知之니라
무슨 이유로 그것을 아는가? 그 이름으로 안다.
나라의 역사를 《도올檮杌》이라고 한다. 도올檮杌사흉四凶의 하나이다.
君子不待褒而勸이요 不待貶而懲이라
군자君子포양褒揚을 기다리지 않고 격려激勵하며, 폄훼貶毁를 기다리지 않고 징벌懲罰한다.
然則史之所懲勸者 獨小人耳니라
그렇다면 역사가 징계하고 격려하는 것은 다만 소인일 따름이다.
중니仲尼의 뜻이 컸으므로 그 근심이 더욱 컸으며, 근심이 더욱 컸으므로 지음이 더욱 컸다.
其作愈大니라 是以 因史修經이니 卒之 論其效者 必曰 亂臣賊子懼라하니라
그런 까닭으로 역사를 통하여 경서經書를 편수하였는데, 그것을 끝내자 그 효과를 논하는 자들이 반드시 말하기를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두려워하였다.”라 하였다.
由是史與經 皆憂小人而作이니 其義一也
이로 말미암아 역사와 경서는 모두 소인을 근심하여 지었는데 그 뜻은 마찬가지이다.
其義一이요 其體二이니 曰史焉이요 曰經焉이라
그 뜻은 하나이고 그 는 둘이기 때문에 그것을 ‘’라 하고 ‘’이라고 한다.
大凡文之用四 事以實之 辭以章之 道以通之 法以檢之 此經史所兼而有之者也
대체로 의 쓰임은 네 가지인데, 사실事實진실眞實을 드러내고, 문사文辭문채文彩를 드러내고, 로 통하게 하며, 으로 규범規範을 드러내니, 이는 가 겸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다.
雖然이나 經以道法勝하고 史以事辭勝이라
비록 그러하지만 을 뛰어난 것으로 여기고, 사실事實문사文辭를 뛰어난 것으로 여긴다.
經不得史 無以證其褒貶이요 史不得經이면 無以酌其輕重이며 經非一代之實錄이요 史非萬世之常法이라
를 얻지 않으면 그 포폄褒貶을 증명할 방법이 없고, 을 얻지 못하면 그 경중輕重을 짐작할 방법이 없으며, 일대一代실록實錄이 아니고 는 만세의 상법常法이 아니다.
體不相沿이나 而用實相資焉이라
는 서로 따르지 않지만 은 서로 바탕으로 삼는다.
夫易禮樂詩書 言聖人之道與法詳矣이나 弗驗之行事니라
대체로 《주역周易》, 《예기禮記》, 《악기樂記》, 《시경詩經》, 《서경書經》에서 성인聖人을 말한 것은 상세하지만 행사行事로 그것을 증험證驗하지 않았다.
仲尼懼後世以是爲聖人之私言이라 하여 旌善而懲惡이니 此經之道也
중니仲尼는 후세에서 이것을 성인聖人의 사사로운 말로 생각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부고赴告책서策書에 따라 《춘추春秋》를 편수하여 을 격려하고 을 징계하였는데 이것이 이다.
猶懼後世以爲己之臆斷이라
그래도 후세에서 자기가 억단臆斷한 것으로 생각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주례周禮》에 근본함을 대요大要로 삼았는데, 이것이 이다.
至於事則擧其略이요 辭則務於簡이라
사실事實에 이르면 그 대략을 들고 문사文辭는 간략함에 힘쓴다.
吾故曰 經以道法勝이라
내 그러므로 말하기를 “을 뛰어난 것으로 여긴다.”라 하였다.
역사는 그렇지 않으니, 사실事實은 이미 상세하고 문사文辭 또한 화려하고 아름다워 이른바 포폄褒貶은 ‘논찬論贊’ 외에는 거의 없다.
吾故曰 史以事辭勝이라하니라
내 그러므로 말하기를 “역사는 사실과 문사를 뛰어난 것으로 여긴다.”라 하였다.
使後人不知史而觀經이면 則所褒莫見其善狀이요 所貶弗聞其惡實이라
후인後人들로 하여금 역사歷史를 알지 못하고 을 보게 한다면 포양褒揚한 것에서 그 좋은 모습을 보지 못하고 폄훼貶毁한 것에서 그 나쁜 실상을 듣지 못한다.
吾故曰 經不得史 無以證其褒貶이라
내 그러므로 말하기를 “역사歷史를 얻지 못하면 그 포폄褒貶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라 하였다.
使後人不通經而傳史 則稱讚不知所法하고 懲勸不知所沮
후인後人들로 하여금 에 통하지 않고 역사歷史를 전하게 한다면 칭찬稱讚을 본받을 줄 모르고 징권懲勸을 그만둘 줄 모른다.
吾故曰 史不得經이면 無以酌其輕重이라하니라
내 그러므로 말하기를 “역사歷史을 얻지 못하면 그 경중輕重을 헤아릴 길이 없다.”고 하였다.
은 혹 거짓 부고赴告를 따라 기록하기도 하였고, 혹 꺼리는 것을 숨기고 기록하지 않기도 하였다.
若此者衆한대 皆適於敎而已
이와 같은 것은 많은데 모두가 ‘가르침’으로 나아갈 따름이다.
吾故曰 經非一代之實錄이라
내 그러므로 말하기를 “일대一代실록實錄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史之一紀一世家一傳 其間美惡得失 固不可以一二數니라
역사歷史의 한 와 한 세가世家, 한 에 있는 그 사이의 미악美惡득실得失은 실로 일일이 헤아릴 수 없다.
則其論贊數十百言之中 安能事爲之貶褒하여 使天下之人으로 動有所法如春秋哉
곧 그 논찬論贊 수십백數十百 가운데 어찌 사위事爲포폄褒貶하여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춘추春秋》처럼 본받게 할 수 있겠는가?
吾故曰 史非萬世之常法이라하니라
내 그래서 말하기를 “역사歷史만세萬世상법常法이 아니다.”라 하였다.
夫規矩準繩 所以制器 器所待而正者也
대체로 그림쇠, 곡척曲尺, 수준기水準器, 먹줄은 기물器物을 제어하는 것이니, 기물이 이에 의지하여 바르게 되는 것이다.
然而不得器 則規無所效其圓이요 矩無所用其方이요 準無所施其平이요 繩無所措其直이니라
그러나 기물을 얻지 못하면 그림쇠는 을 그릴 때 아무 효과가 없고, 곡척은 방형方形을 만들 때 소용이 없으며, 수준기는 평평하게 할 때 베풀 곳이 없고, 먹줄은 곧게 할 때 쓸 곳이 없게 될 것이다.
史待經而正이며 不得史則經晦니라
역사歷史을 기다려 바르게 되니, 역사歷史를 얻지 못하면 은 어두워질 것이다.
吾故曰 體不相沿이나 而用實相資焉이라하니라
내 그러므로 말하기를 “는 서로 따르지 않지만 은 서로 바탕으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一規一矩一準一繩으로도 足以制萬器니라
아, 하나의 그림쇠, 하나의 곡척曲尺, 하나의 수준기水準器, 하나의 먹줄로 충분히 모든 기물을 제어할 수 있다.
후대의 사람들이 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의 실록을 바라는 데 힘쓴 것은 옳다.
愼無若王通陸長源輩 囂囂然冗且僭이면 則善矣
실로 왕통王通육장원陸長源 같은 무리들이 야단스레 쓸데없고 참람되이 한 것은 없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역주
역주1 史論 上 : 이 글은 經과 史는 서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논하였다. 곧 經은 道와 法을 뛰어난 것으로 여기고 史는 事實과 文辭를 뛰어난 것으로 여기며, 經은 史를 따라 그 褒貶을 증명하고 史는 經에 의거하여 그 輕重을 헤아리며, 經은 곧 常法이며 史는 곧 實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쓰임은 실로 서로 바탕으로 삼으니 곧 그 뜻은 모두 小人이 일을 짓는 것을 근심하고, 그 쓰임은 또한 經史가 겸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다. 全文은 經史를 짝지어 들고 둘씩 내려가며 서로 發明하고 있다.
역주2 史何爲而作乎 其有憂也 : 司馬遷의 〈報任安書〉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분을 가지고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난 일을 서술하여 후세 사람이 자신의 뜻을 알아주기를 생각하였다.”라 하였는데, “마음속에 울분을 가지고 있다.[意有所鬱結]”는 것이 곧 蘇洵이 이른바 “근심이 있어서일 것이다.”라는 것의 근거이다.
역주3 楚之史曰檮杌 檮杌四凶之一也 : 《春秋左氏傳》 文公 18년에 “檮杌은 顓頊의 될성싶지 않은 자식[不才子]이다.”라고 하였고, 또 “舜은 四凶인 渾敦, 窮奇, 檮杌, 饕餮을 유배시켰다.”라고 하였다. 《孟子》 〈離婁 下〉에는 “晉나라의 《乘》, 楚나라의 《檮杌》, 魯나라의 《春秋》는 마찬가지이다.”라는 말이 수록되어 있으니, 楚나라는 檮杌을 史書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며, 이는 小人을 懲勸하기 위함이다.
역주4 仲尼之志大……必曰亂臣賊子懼 : 《孟子》 〈滕文公 下〉에 보인다.
역주5 故因赴告策書以修春秋 : ‘赴’는 ‘訃’와 뜻이 통하고, ‘策’은 ‘冊’과 뜻이 통한다. 〈春秋左氏傳序〉에서는 “周나라의 德이 衰頹하자 史官이 그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위에 있는 사람(임금)도 〈勸戒와 褒貶 같은〉 《春秋》의 大義를 밝히지 못하여, 赴告‧策書와 모든 記注가 대부분 옛 法度와 어긋나게 되었다. 仲尼가 이에 魯나라의 史官이 책에 기록한 成文에 의거하여 그 眞僞를 校勘하고 그 典禮를 기록하였다.”라 하였다. 孔穎達은 “凶事를 赴라 하고, 다른 일은 告라고 한다.”라 하였다.
역주6 本周禮以爲凡 此經之法也 : 〈春秋左氏傳序〉에서는 또한 “《춘추좌씨전》에 ‘凡’자를 써서 例를 말한 것들은 모두 나라를 다스리는 不變의 制度와 周公이 전한 법과 史書의 옛 典章을 仲尼가 그대로 따라 編修하여 《春秋》 一經의 通體로 이루었다.”라 하였다.
역주7 史則不然……論贊之外無幾 : 劉知幾의 《史通》 〈六家〉에서는 《史記》를 평하여 “그 기록한 말은 모두 褒貶하는 말이 드물고 黜陟의 일이 적으므로, 司馬遷이 이른바 整齊한 故事일 따름이니 어찌 《春秋》에 비견하겠는가?”라 하였다.
역주8 經或從僞赴而書 : 이를테면 鄭나라 公子 騑가 임금인 僖公을 죽이고 제후들에게 寢疾로 죽었다고 부고하였는데, 《春秋》에서는 다만 “僖公이 죽었다.[僖公卒]”로 기록한 것 같은 따위이다.
역주9 或隱諱而不書 : 이를테면 齊 威王이 項을 멸하였는데 《春秋》에서는 꺼리어 기록하지 않은 따위이다. 《春秋公羊傳》 閔公 원년에 “《春秋》는 높은 자를 꺼리며, 친한 자를 꺼리고, 현명한 자를 꺼린다.”는 말이 있다.
역주10 後之人其務希遷固實錄可也……則善矣 : 《漢書》 〈司馬遷傳〉에서는 “그 文章은 곧았고 그 일은 核心을 파악했으며 아름다움을 비우지 않았고 惡을 숨기지 않았으므로 實錄이라고 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史記》와 《漢書》를 實錄이라 하는 것은 여기서 기인한다. 隋나라 王通의 자는 仲淹인데 일찍이 《元經》을 지어 《春秋》를 이었으며, 唐나라 陸長源의 자는 泳之로 일찍이 《唐春秋》를 지었는데, 모두 無益하고 雜駁하여 史書의 체례에 어긋난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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