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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洵(1)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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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
10. 한 고조漢 高祖를 논함
雖非當漢成敗確論이나 而行文 却自縱橫可愛
비록 나라의 성패成敗를 명확히 논의한 것은 아니지만, 행문行文은 오히려 자유자재로 거침이 없어 좋아할 만하다.
挾數用術하여 以制一時之利害 不如하고 揣摩天下之勢하여 擧指搖目하여 以劫制 不如하니 微此二人이면 則天下不歸漢이요 而高帝 乃木彊之人而止耳
한 고조漢 高祖술수術數를 가지고 술법術法을 써서 한때의 이해利害를 제어하는 데에는 진평陳平만 못하였고, 천하天下형세形勢를 헤아려 손가락을 들고 눈을 깜박여서 항우項羽를 위협하고 통제하는 데에는 장량張良만 못하였으니, 이들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천하는 나라의 것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고, 고조高祖는 나무처럼 뻣뻣한 융통성 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나 天下已定 後世子孫之計 陳平張良智之所不及하니 則高帝常先爲之規畫處置하여 以中後世之所爲하여 曉然如目見其事하여 而爲之者
그러나 천하가 평정된 뒤에 후세 자손들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데에는 진평陳平장량張良지혜智慧가 〈고조高祖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고조高祖가 언제나 앞서 그것을 계획하고 처리하여 후세에 해야 할 일에 딱 들어맞아, 마치 눈으로 환히 그 일을 직접 보고서 한 것 같았다.
蓋高帝之智 明於大而暗於小 至於此而後 見也
대체로 고조高祖의 지혜는 큰 일에는 밝았지만 작은 일에는 어두웠음이 여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帝嘗語 重厚少文이나이나 安劉氏 必勃也 可令爲라하니라
고조高祖가 일찍이 여후呂后에게 “주발周勃중후重厚하고 겉치레는 적으나, 유씨劉氏를 안정케 해줄 사람은 반드시 주발周勃일 것이니, 그를 태위太尉에 임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方是時 劉氏旣安矣어늘 勃又將誰安耶
바로 그때는 유씨劉氏들이 이미 안정되어 있던 때였거늘, 주발周勃이 또 그 누구를 안정케 해준다는 것이었을까?
吾之意曰 高帝之以太尉屬勃也 知有
그러므로 내 생각으로는, 고조高祖태위太尉의 벼슬을 주발周勃에게 주라고 부탁한 것은 여씨呂氏가 있을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雖然이나 其不去呂后 何也
그러한데도 그가 여후呂后를 제거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勢不可也
형세形勢가 그래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昔者 武王沒 成王幼而하니 帝意 將相大臣及諸侯王 有武庚祿父者 而無有以制之也
옛날 주 무왕周 武王이 죽고 성왕成王이 아직 어렸는데 삼감三監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고조高祖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죽고 난 뒤에 장군將軍재상宰相대신大臣제후왕諸侯王들 중에 무경武庚 녹보祿父 같은 자가 있으면 제어할 방법이 없게 될지 모른다고 여겼을 것이다.
獨計以爲家有主母 而豪奴悍婢 不敢與弱子抗이요 呂氏佐帝定天下하여 爲大臣素所畏服하니 獨此可以鎭壓其邪心하여 以待之壯이라
고조高祖는〉 유일한 계책으로 ‘집안에 주모主母가 있으면, 기운 있는 사내종이나 사나운 계집종이 감히 약한 자식에 대하여 항거하지 못할 것이고, 여후呂后는 나를 도와서 천하를 평정하여 대신들이 평소에도 두려워하고 복종하니, 오직 그녀만이 그들의 사악한 마음을 진압하여 뒤를 이을 자식이 장성할 수 있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不去呂后者 爲惠帝計也
그러므로 여후呂后를 제거하지 아니하였던 것은 혜제惠帝를 위한 계책이었던 것이다.
呂后旣不可去하니 削其黨하여 以損其權하여 使雖有變이라도 而天下不搖
여후呂后는 이미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무리들을 쳐내어 그녀의 권력을 줄임으로써, 변고가 생기더라도 천하가 요동치 않도록 해야 했다.
是故之功으로도 一旦 遂欲斬之而無疑
그래서 번쾌樊噲와 같이 공이 큰 사람도 하루아침에 의심도 없이 죽이려 했던 것이다.
嗚呼 彼豈獨於噲不仁耶 且噲與帝偕起하여 拔城陷陣하며 功不爲少矣嗾項莊時 微噲誚讓羽 則漢之爲漢 未可知也
아아! 고조高祖는 어찌 번쾌樊噲에게만 인자仁慈하지 않았단 말인가? 게다가 번쾌樊噲고조高祖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적의 성을 함락시키고 적진을 쳐부수며 적지 않은 공을 세웠고, 〈홍문鴻門에서〉 범증范增항장項莊을 시켜 〈고조高祖를 죽이려 했을〉 때에 번쾌樊噲항우項羽를 꾸짖지 않았더라면, 곧 나라가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一旦 人有惡噲하여 欲滅라하니
그런데 하루아침에 번쾌樊噲를 미워하여 〈번쾌樊噲가〉 척씨戚氏를 죽이려 한다고 말하는 자가 있자, 당시 번쾌樊噲나라를 정벌하러 나가 있었거늘 즉시 진평陳平주발周勃에게 명하여 진영陣營으로 가서 번쾌樊噲를 죽이도록 하였다.
夫噲之罪 未形也 惡之者誠僞 未必也 且高帝之不以一女子 斬天下功臣 亦明矣
그때 번쾌樊噲의 죄가 드러난 것도 아니었고, 그를 미워한 자의 말의 진위眞僞도 확인할 수 없었으며, 또한 고조高祖가 한 여자 때문에 천하의 공신을 죽이지 않는 것도 분명하였다.
彼其娶於呂氏하고 呂氏之族 皆庸才하여 不足恤이라
번쾌樊噲여씨呂氏 집안에 장가를 들었고, 여씨呂氏의 일족 중 여산呂産이나 여록呂祿 같은 무리들은 모두 용렬庸劣한 인물이어서 걱정할 것이 못 되었다.
獨噲豪健하여 諸將所不能制 後世之患 無大於此矣
오직 번쾌樊噲만이 호걸豪傑이어서 여러 장수들도 제어할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 후세의 환난患難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夫高帝之視呂后也 猶醫者之視
고조高祖여후呂后를 보는 태도는 마치 의사醫師독초毒草를 보는 것과 같았다.
使其毒으로 可以治病하되 而無至於殺人而已矣
그 독이 단지 사람의 병만 치료할 수 있어야지 사람을 죽이는 데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될 따름이다.
樊噲死 則呂氏之毒 將不至於殺人이니 高帝以爲是足以死而無憂矣
번쾌樊噲가 죽으면 여씨呂氏의 독이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니, 고조高祖는 그래야만 죽은 뒤에도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彼平勃者 者也
그런데 저 진평陳平주발周勃고조高祖의 걱정거리를 남겨놓았던 것이다.
이니 天也
번쾌樊噲혜제惠帝 6년에 죽었으니, 천명天命이었다.
其尙在 太尉不得入北軍矣리라
그가 살아 있었더라면, 여산呂産여록呂祿을 속여 넘길 수가 없었을 것이고, 태위太尉주발周勃북군北軍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或謂噲於帝最親하니 使之尙在라도 未必與産祿叛이라
어떤 사람은 번쾌樊噲고조高祖와 가장 친하였으니, 그가 살아 있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여산呂産여록呂祿과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而綰又最爲親幸이나 然及高帝之未崩也 皆相繼以逆誅하니 誰謂百歲之後 之人 見其親戚乘勢爲帝王이면 而不欣然從之耶
한신韓信경포黥布노관盧綰은 모두 왕의 신분이었고, 노관盧綰은 또 가장 임금의 총애를 받았지만, 고조高祖가 죽기도 전에 모두 연이어 반역죄로 처형을 당하였으니, 〈고조高祖가〉 죽고 난 뒤에 사람을 때려죽여 땅에 묻고 개백정 노릇이나 하던 번쾌樊噲가 그의 친척이 시세時勢를 타서 제왕帝王이 되는 것을 본다면 흔쾌히 따르지 않을 것이라 누가 말하겠는가?
吾故曰 彼平勃者 遺其憂者也라하니라
나는 그래서 “저 진평陳平주발周勃고조高祖의 걱정거리를 남겨놓았다.”라고 한 것이다.
愚謂高帝死而呂后獨任陳平하여 未必不由不斬噲一着이요 且噲不死라도 其助祿産之叛亦未必이라
내 생각으로는, 고조高祖가 죽고 여후呂后진평陳平에게 모든 일을 맡겼으니 번쾌樊噲를 제일 먼저 참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또 번쾌樊噲가 죽지 않았다 해도 반드시 여록呂祿여산呂産의 반란을 도왔을 것이라 할 수도 없다.
觀其譙羽鴻門與排闥而諫이면 噲似有氣岸而能守正者 豈可以屠狗之雄而遽逆其詐哉
그가 홍문연鴻門宴에서 항우項羽를 꾸짖었던 일과 문을 밀어제치고 들어가 한 일로 볼 때, 번쾌樊噲는 마음이 견실하고 정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인 듯한데, 어찌 개 잡는 사나이라 하여 갑자기 그가 가장하고 있을 것이라 지레 짐작할 수 있단 말인가!
蘇氏父子兄弟 往往以事後成敗하여 摭拾人得失 類如此
소씨蘇氏 부자父子형제兄弟들은 왕왕 사후事後성패成敗에 의거해서 남의 득실을 주워담는 것이 대개 이와 같다.
역주
역주1 高帝 : 이 글은 독특한 관점에서 漢 高祖의 인물을 논한 것이다. 蘇洵은 高祖가 呂氏들의 禍를 미리 예견하여 周勃을 太尉에 임명하였고, 자신의 뒤를 이을 惠帝가 무사히 장성할 수 있도록 呂后를 제거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呂后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陳平과 周勃에게 樊噲를 죽이도록 하였지만, 이들이 그때 당장 죽이지 않음으로써 큰 우환거리를 남겼는데, 다행히 樊噲가 그 뒤 오래 살지 못하였기 때문에, 뒤에 周勃이 呂氏 일족을 제거할 수 있었고, 劉氏 왕조가 지속될 수 있었다고 했다. 蘇洵의 才氣가 번뜩이는 글이다.
역주2 漢高祖 : 劉邦으로, 項羽와 천하를 다툰 끝에 秦나라를 멸망시키고 漢나라를 세웠다. 재위기간은 B.C. 206~B.C. 195년이다.
역주3 陳平 : 漢 高祖를 도와 천하를 차지하게 한 功臣의 한 사람이다. 특히 策士로 알려졌다.
역주4 項羽 : 이름은 籍이고, 楚 땅의 귀족 출신으로 힘이 센 장사였으나, 뒤에 漢 高祖와 천하를 다투다가 패하여 죽었다.
역주5 張良 : 漢 高祖를 섬겼던 功臣의 한 사람으로, 군사고문으로 유명했다.
역주6 呂后 : 漢 高祖가 젊었을 때에 고향에서 결혼한 본실 부인이다. 呂后의 아버지가 高祖를 일찍이 알아보고 딸을 주었고, 呂后는 여장부로, 高祖가 죽은 뒤에는 스스로 권력을 잡았다.
역주7 周勃 : 高祖의 공신 중 한 사람으로, 성품이 매우 質朴하였다.
역주8 太尉 : 漢나라 때 丞相‧御史大夫와 함께 三公이라 불렸다. 丞相이 行政, 御史大夫가 司法의 최고 책임자였고, 太尉는 軍事의 최고 책임자였다.
역주9 呂氏之禍 : 高祖가 죽은 뒤 呂后가 권력을 잡고, 자기가 낳지 않은 高祖의 자식들은 모두 죽이고, 자기 呂氏 집안 사람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었다.
역주10 三監 : 周 武王은 殷나라를 멸한 다음, 紂王의 아들 武庚(이름은 祿父)을 자기네 옛 땅에 봉해주고, 자기 형제인 管叔‧蔡叔‧霍叔으로 하여금 이들을 감시케 하였다. 그러나 武王이 죽고 周公이 攝政을 하자 이들은 오히려 紂王의 아들과 공모하여 난을 일으켰는데, 이를 三監之亂이라 한다. 周公이 東征하여 이들을 평정하였다.
역주11 百歲後 : 王이 죽는 것을 가리키는 隱語이다.
역주12 嗣子 : 뒤를 이을 아들을 말하는데, 바로 惠帝(B.C. 194~B.C. 188 在位)를 가리킨다.
역주13 樊噲 : 漢 高祖의 공신 중 한 사람이다. 유명한 鴻門宴에서 項羽의 삼촌인 項莊이 칼춤을 추며 高祖를 죽이려 했을 때에, 용감히 鴻門 안으로 뛰어들어 高祖를 구해냈다. 그는 呂后의 동생에게 장가들어 공신들 중에서는 呂氏 집안과 가장 친밀한 관계였다. 漢 高祖가 오히려 呂后와 너무 가까운 것을 걱정하여 자기의 재위기간 중에 제거하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뒤에 惠帝 6년까지 살다가 죽었다.
역주14 亞父 : 項羽의 군사고문인 范增이다. 項羽가 평소에 그를 존경하여 叔父와 비슷한 말로 ‘亞父’라 불렀다. 鴻門에서 項羽가 劉邦을 불러 잔치를 벌였을 때, 范增은 項羽의 삼촌 項莊을 使嗾하여, 술자리에서 칼춤을 추다가 기회를 엿보아 劉邦을 찔러 죽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뒤에 樊噲가 이를 알고 뛰어 들어와 큰소리치는 바람에 劉邦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역주15 戚氏 : 戚夫人으로 高祖의 첩이다. 趙王 如意를 낳았으나 高祖가 죽자 呂后가 如意를 독살하고, 戚氏 부인의 팔다리를 자르고 눈과 귀를 멀게 하여 ‘사람돼지’로 만들었다.
역주16 時噲出伐燕……卽軍中斬之 : 燕은 지금의 河北省 지방이다. 漢 高祖의 친구였던 공신 盧綰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하여 樊噲가 대장으로 정벌에 나섰었다. 高祖는 “軍中으로 가서 바로 樊噲를 죽여라.” 하고 陳平과 周勃에게 명하였으나, 陳平은 呂后의 보복이 두려워 樊噲를 죽이지 않고 長安으로 호송하였다. 그가 長安에 도착하자 高祖가 이미 죽은 뒤여서, 樊噲는 바로 석방되었고, 陳平도 무사할 수 있었다.
역주17 産祿 : 呂産과 呂祿이다. 각각 呂后의 오빠 아들로, 이들 두 사람을 필두로 呂氏 집안 사람들은 모두 王侯에 봉해지고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다.
역주18 : 毒草의 일종이다. 잘 쓰면 병을 고치지만 잘못 쓰면 사람을 죽게도 하는 藥草이다.
역주19 遺其憂 : 漢 高祖의 걱정을 후세에까지 남기는 것, 곧 樊噲를 죽이지 않았던 일을 가리킨다.
역주20 噲之死於惠之六年 : 樊噲는 惠帝 6년에 병으로 죽었다. 呂后가 죽고 呂氏 일가가 멸족된 것은 그로부터 9년 뒤의 일이다.
역주21 使 : 저본에는 ‘彼’로 되어 있으나 《嘉祐集》에 의해 ‘使’로 고쳤다.
역주22 呂祿不可紿 : 呂后가 죽은 뒤, 長安의 군대는 남북 양군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呂産과 呂祿 두 사람이 지휘를 맡아, 太尉인 周勃도 軍中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마침 여러 제후들이 呂氏 토벌의 군사를 일으키자, 周勃은 陳平과 의논한 끝에, 呂祿에게 첩자를 보내어 呂祿으로 하여금 자기 領地인 趙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러면 呂氏가 帝位를 탐내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져 여러 제후들의 군대도 저절로 수그러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呂祿은 그 말을 믿고 北軍의 지휘권을 즉시 내놓았다. 그러자 周勃은 곧장 北軍으로 들어가 군사들을 선동하여 呂氏 일족을 모두 잡아 죽여버렸다. 만약 樊噲가 살아 있었더라면 呂氏 일족이 그토록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역주23 韓信 : 漢 高祖의 장군으로, 項羽와의 싸움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뒤에 반란을 꾀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역주24 黥布 : 본명은 英布이다. 墨刑을 받아 黥布라고도 부른다. 項羽를 섬기다가 漢 高祖에게로 와서 많은 공을 세웠다. 韓信이 죽임을 당하자 선수를 치려고 반란을 꾀하다가 역시 죽임을 당하였다.
역주25 盧綰 : 漢 高祖와 동향으로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건국 공신 중 高祖와 가장 친하였으나, 燕王에 봉해진 뒤 모반을 했다는 혐의로 征討되었다.
역주26 南面稱孤 : 왕은 남쪽을 향해 앉아 신하들을 맞아 조회를 하고 자신을 ‘孤’라 부른다. 따라서 임금 노릇하는 것을 뜻한다.
역주27 椎埋屠狗 : 사람을 쳐 죽여 땅에 묻어버리는 무법자[椎埋]와 개백정[屠狗]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樊噲를 말한다. 樊噲는 젊어서 개 잡는 일을 업으로 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순(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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