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周易傳義(上)

주역전의(상)

나란히 보기 지원 안함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傳
[傳] 習坎은 序卦에 物不可以終過라 故受之以坎하니 坎者는 陷也라하니라 理无過而不已하고 過極則必陷이니 坎所以次大過也라 習은 謂重習이니 他卦雖重이나 不加其名이어늘 獨坎加習者는 見其重險이니 險中復有險하여 其義大也라 卦中一陽이요 上下二陰이니 陽實陰虛하여 上下无據하여 一陽이 陷於二陰之中이라 故爲坎陷之義라 陽居陰中則爲陷이요 陰居陽中則爲라 凡陽在上者는 止之象이요 在中은 陷之象이요 在下는 動之象이며 陰在上은 說之象이요 在中은 麗之象이요 在下는 巽之象이니 陷則爲險이라 習은 重也니 如學習溫習이 皆重複之義也요 坎은 陷[一作險]也니 卦之所言은 處險難之道라 坎은 水也니 一始於中하여 有生之最先者也라 故爲水니 陷은 水之體也라
29. 坎 ䷜
習坎은 有孚야 維心亨이니 行면 有尙이리라
傳
[傳] 陽實이 在中하니 爲中有孚信이라 維心亨은 維其心誠一이라 故能亨通이라 至誠은 可以通金石, 蹈水火하니 何險難之不可亨也리오 行有尙은 謂以誠一而行이면 則能出險하여 有可嘉尙이니 謂有功也라 不行則常在險中矣리라
彖曰 習坎은 重險也ㅣ니
水ㅣ 流而不盈며 行險而不失其信이니
傳
[傳] 習坎者는 謂重險也니 上下皆坎은 兩險相重也라 初六云坎窞이라하니 是는 坎中之坎이니 重險也라 水流而不盈은 陽動於險中而未出於險하니 乃水性之流行而未盈於坎이니 旣盈則出乎坎矣라 行險而不失其信은 陽剛中實로 居險之中하니 行險而不失其信者也라 坎中實과 水就下는 皆爲信義, 有孚也라
維心亨은 乃以剛中也ㅣ오
傳
[傳] 維其心可以亨通者는 乃以其剛中也일새라 中實은 爲有孚之象이니 至誠之道 何所不通[一作亨]이리오 以剛中之道而行이면 則可以濟險難而亨通也라
行有尙은 往有功也ㅣ라
傳
[傳] 以其剛中之才而往이면 則有功이라 故可嘉尙이니 若止而不行이면 則常在險中矣[一作也]리라 坎은 以能行爲功이라
天險은 不可升也ㅣ오 地險은 山川丘陵也ㅣ니 王公이 設險야 以守其國니 險之時用이 大矣哉라
傳
[傳] 高不可升者는 天之險也요 山川丘陵은 地之險也라 王公君人者 觀坎之象하여 知險之不可陵也라 故設爲城郭溝池之險하여 以守其國하고 保其民人하니 是有用險之時에 其用甚大라 故贊其大矣哉라 山河城池는 設險之大端也요 若夫尊卑之辨과 貴賤之分으로 明等威, 異物采하여 凡所以杜絶陵僭, 限隔上下者는 皆體險之用也라
象曰 水ㅣ 洊至ㅣ 習坎이니 君子ㅣ 以야 常德行며 習敎事니라
傳
[傳] 坎爲水니 水流仍洊而至니 兩坎相習은 水流仍洊之象也라 水自涓滴으로 至於尋丈하고 至於江海하여 洊習而不驟[一作讓]者也라 其因勢就下 信而有常이라 故君子觀坎水之象하여 取其有常이면 則常久其德行하나니 人之德行은 不常則僞也라 故當如水之有常이라 取其洊習相受면 則以習熟其敎令之事하나니 夫發政行敎는 必使民熟於聞聽然後能從이라 故三令五申之하나니 若驟告未喩에 遽責其從이면 雖嚴刑以驅之[一无之字]라도 不能也라 故當如水之洊習이라
初六은 習坎애 入于坎窞이니 凶니라
傳
[傳] 初以陰柔[一无柔字]로 居坎險之下하여 柔弱无援而處不得當하니 非能出乎險也요 唯益陷於深險耳라 窞은 坎中之陷處니 已在習坎中이어늘 更入坎窞이면 其凶可知라
象曰 習坎入坎은 失道ㅣ라 凶也ㅣ라
傳
[傳] 由習坎而更入坎窞은 失道也라 是以凶이니 能出於險이라야 乃不失道也라
九二 坎애 有險나 求 小得리라
傳
[傳] 二當坎險之時하여 陷上下二陰之中하니 乃至險之地니 是有險也라 然其剛中之才로 雖未能出乎險中이나 亦可小自濟하여 不至如初의 益陷入于深險하니 是所求小得也라 君子處險難而能自保者는 剛中而已니 剛則才足自衛요 中則動不失宜니라
象曰 求小得은 未出中也라
傳
[傳] 方爲二陰所陷하여 在險之地로되 以剛中之才로 不至陷於深險하니 是所求小得이나 然未能出坎中之險也라
六三은 來之예 坎坎며 險애 且枕야 入于坎窞이니 勿用이니라
傳
[傳] 六三은 在坎陷[一作險]之時하여 以陰柔而居不中正하니 其處不善하여 進退與居 皆不可者也라 來下則入于險之中하고 之上則重險也니 退來與進之皆險이라 故云來之坎坎이라하니 旣進退皆險而居亦險이라 枕은 謂支倚니 居險而支倚以處는 不安之甚也라 所處如此하니 唯益入於深險耳라 故云入于坎窞이요 如三所處之道[一无之道字]는 不可用也라 故戒勿用하니라
象曰 來之坎坎은 終无功也이라
傳
[傳] 進退皆險하고 處又不安하니 若用此道면 當益入于險이니 終豈能有功乎아 以陰柔로 處不中正하니 雖平易之地라도 尙致悔咎어든 況處險乎아 險者는 人之所欲出也로되 必得其道라야 乃能去之니 求去而失其道면 益困窮耳라 故聖人이 戒如三所處는 不可用也시니라
六四 樽酒와 簋貳를 用缶고 納約自牖ㅣ면 終无咎리라
傳
[傳] 六四陰柔而下无助하니 非能濟天下之險者로되 以其在高位라 故言爲臣處險之道하니라 大臣이 當險難之時하여 唯至誠見信於君하여 其交固而不可間이요 又能開明君心이면 則可保无咎矣[一作也]라 夫欲上之篤信인댄 唯當盡其質實而已니 多儀而尙飾은 莫如燕享之禮라 故以燕享喩之하니 言當不尙浮飾이요 唯以質實이라 所用一樽之酒와 二簋之食에 復以瓦缶爲器면 質之至也라 其質實如此요 又須納約自牖니 納約은 謂進結於君之道요 牖는 [一有有字]開通之義라 室之暗也라 故設牖하니 所以通明이라 自牖는 言自通明之處니 以況君心所明處라 하니 亦開通之謂[一作義]라 人臣以忠信善道로 結於君心인댄 必自其所明處라야 乃能入也라 人心이 有所蔽하고 有所通하니 所蔽者는 暗處也요 所通者는 明處也니 當就其明處而告之하여 求信則易也라 故云納約自牖니 能如是면 則雖艱險之時라도 終得无咎也라 且如君心이 蔽於荒樂은 唯其蔽也故爾니 雖力詆其荒樂之非라도 如其不省에 何오 必於所不蔽之事에 推而及之면 則能悟其心矣라 自古로 能諫其君者 未有不因其所明者也라 故訐直强勁者는 率多取忤하고 而溫厚明辯者는 其說多行이라 且如漢祖愛戚姬하여 將易太子하니 是其所蔽也라 群臣爭之者衆矣니 嫡庶之義와 長幼[一作少長]之序를 非不明也로되 如其蔽而不察에 何오 四老者는 高祖素知其賢而重之하니 此其不蔽之明心也라 故因其所明而及其事엔 則悟之如反手라 且이리오 然而不從彼而從此者는 由攻其蔽與就其明之異耳라 又如라 故其聽也如響이라 非惟告於君者如此요 爲敎者亦然이라 夫敎는 必就人之所長이니 所長者는 心之所明也라 從其心之所明而入然後에 推及其餘니 是也라
象曰 樽酒簋貳 剛柔際也라
傳
[傳] 象에 只擧首句하니 如此比多矣라 樽酒簋貳는 質實之至니 剛柔相際接之道能如此면 則可終保无咎라 君臣之交 能固而常者는 在誠實而已라 剛柔는 指四與五니 謂君臣之交際也라
九五 坎不盈이니 면 无咎ㅣ리라
傳
[傳] 九五在坎之中하니 是不盈也니 盈則平而出矣라 祗는 宜音柢니 抵也라 復卦云 无祗悔라하니라 必抵於已平則无咎어니와 旣曰不盈이면 則是未平而[一无而字]尙在險中이니 未得无咎也라 以九五剛中之才로 居尊位면 宜可以濟於險이나 然下无助也라 二陷於險中하여 未能出하고 餘皆陰柔하여 无[一作非]濟險之才하니 人君雖才나 安能獨濟天下之險이리오 居君位而不能致天下出於險이면 則爲有咎니 必祗旣平이라야 乃得无咎라
象曰 坎不盈은 中이 未大也ㅣ라
傳
[傳] 九五는 剛中之才而得尊位하니 當濟天下之險難이나 而坎尙不盈하니 乃未能平乎險難이니 是其剛中之道 未光大也라 險難之時에 非君臣協力이면 其能濟乎아 五之道未大는 以无臣也라 人君之道는 不能濟天下之險難이면 則爲未大니 不稱其位也라
上六은 야 寘于叢棘야 三歲라도 不得이니 凶니라
傳
[傳] 上六이 以陰柔而居險之極하니 其陷之深者也니 以其陷之深으로 取牢獄爲喩라 如係縛之以徽纆하여 囚寘於叢棘之中하니 陰柔而陷之深하여 其不能出矣라 故云 至于三歲之久라도 不得免也라하니 其凶可知니라
象曰 上六失道 凶三歲也리라
傳
[傳] 以陰柔而自處極險之地하니 是其失道也라 故其凶이 至于三歲也라 三歲之久而不得免焉하니 終凶之辭也라 言久에 有曰十, 有曰三하니 隨其事也라 陷于獄하여 至于三歲는 久之極也라 他卦에 以年數言者도 亦各以其事也니 如三歲不興, 十年乃字 是也라




역주
역주1 麗 : 리
역주2 著 : 착
역주3 시운천지유민(詩云天之牖民)……모공훈유위도(毛公訓牖爲道) : 모공(毛公)은 《시경(詩經)》을 주해(註解)한 모장(毛萇)을 가리키는 바, 위의 내용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에 보인다.
역주4 사노인지력(四老人之力)……숙여주창숙손통(孰與周昌叔孫通) : 네 노인(老人)은 상산사호(商山四皓)로 진(秦)나라 말기 상산(商山)에 은둔하여 살던 네 노인(老人)인 바, 곧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동원공(東園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을 이른다. 한(漢)나라 고조(高祖)인 유방(劉邦)은 적처(嫡妻)인 여후(呂后)의 아들 혜제(惠帝)를 처음에 태자(太子)로 세웠으나 척부인(戚夫人)을 사랑하여 그녀의 소생인 조왕(趙王) 여의(如意)를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다. 이에 주창(周昌)과 숙손통(叔孫通) 등은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고조(高祖)는 듣지 않았다. 고조(高祖)는 일찍이 상산사호(商山四皓)의 뛰어난 인품을 사모하여 여러 차례 이들을 초청하였으나 이들은 모두 숨고 나오지 않았었다. 이때 장량(張良)은 태자(太子)인 혜제(惠帝)로 하여금 상산사호(商山四皓)를 초빙하여 태자궁(太子宮)에 두고 태자(太子)를 모시게 하였다. 그 결과, 고조(高祖)는 이들이 태자(太子)를 따라 보필하는 것을 보고 태자(太子)를 교체하려던 계획을 포기하여 혜제(惠帝)가 즉위할 수 있었다.
역주5 조왕태후(趙王太后)……인기명이도지이장구지계(因其明而導之以長久之計) : 조왕(趙王)의 태후(太后)는 혜문왕(惠文王)의 후비(后妃)인 위후(威后)를 가리킨다. 혜문왕(惠文王)이 죽고 효성왕(孝成王)이 즉위하자, 모후(母后)인 태후(太后)가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때 조(趙)나라는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위급하였으므로 제(齊)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제(齊)나라에서는 효성왕(孝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며 태후(太后)의 막내아들인 장안군(長安君)을 인질로 보내야만 원병(援兵)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이에 왕(王)과 대신(大臣)들은 장안군(長安君)을 제(齊)나라에 보낼 것을 청하였으나 태후(太后)는 나이어린 막내아들을 사랑하여 이를 듣지 않았다. 이에 좌사(左師)인 촉룡(觸龍)은 태후(太后)를 찾아 뵙고 자신의 막내아들을 태후(太后)에게 부탁하여 태후(太后)의 마음을 회유하는 한편 장안군(長安君)이 장구(長久)하게 부귀(富貴)를 누리려면 이러한 기회에 인질로 나가 국가에 크게 공헌해야 함을 넌지시 말하였다. 이에 태후(太后)는 장안군(長安君)을 제(齊)나라에 인질로 보냈으며, 그 결과 제(齊)나라의 원병(援兵)이 출동하여 진군(秦軍)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 내용은 《사기(史記)》 〈조세가(趙世家)〉와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에 모두 보이는데 《전국책(戰國策)》에는 촉섭(觸讋)으로 되어 있다.
역주6 맹자소위성덕달재(孟子所謂成德達才) : 성덕(成德)은 덕을 이루는 것이고 달재(達才)는 재능을 발달시키는 것인 바, 《맹자(孟子)》 〈진심상(盡心上)〉에 “군자지소이교자오(君子之所以敎者五) 유여시우화지자(有如時雨化之者) 유성덕자(有成德者) 유달재자(有達財者)”라고 보인다. 재(財)는 재(材)‧재(才)와 통하는 바, 달재(達才)는 상대방의 장점을 따라 가르침을 이른다.
역주7 주례대제삼이(周禮大祭三貳) : 《주례(周禮)》 〈천관(天官) 주정(酒正)〉에 “대제삼이(大祭三貳) 중제재이(中祭再貳) 소제일이(小祭壹貳)”라고 보인다.
역주8 육씨석문본(陸氏釋文本) : 육씨(陸氏)는 당(唐)나라 고조(高祖) 때의 국자박사(國子博士)였던 육덕명(陸德明)을 가리키며, 석문본(釋文本)은 그가 지은, 경전(經典)의 음독(音讀)을 풀이한 《경전석문(經典釋文)》을 가리킨다.
역주9 지기평(祗旣平) : 앞의 복괘(復卦) 초구(初九) 효사(爻辭)의 《정전(程傳)》역주(譯註)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0 계용휘묵(係用徽纆) : 사계(沙溪)는 “휘(徽)는 삼규승(三糾繩)[세 겹으로 꼰 노]이고 묵(纆)은 양고삭(兩股索)[두 가닥으로 꼰 새끼줄]이다.” 하였다.

주역전의(상)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